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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삼연(2004-07-28 15:26:39, Hit : 8659, Vote : 1195
 http://www.samgookji.com
 삼국지연의를 통해서 본 사실과 허구의 관계(민경욱)
***삼국지연의를 통해서 본 사실과 허구의 관계


                                                                              ** 민경욱


*삼국지는 무엇인가?
삼국지가 워낙 인기 있다보니 현재 시중에는 삼국지에 관한 서적이 상당수 나와 있습니다. 일차 문헌이라고 볼 수 있는 삼국지 번역본을 제외하면, 주로 삼국지를 세상사에 응용한 처세술 종류의 책이나 삼국지에 관한 배경지식을 알려주는 문답식의 책이 이차 문헌의 주종을 이루고 있습니다. 또 무수한 삼국지 관련 사이트에서도 삼국지에 관한 수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데, 대부분 게임에 관한 것입니다만 그 외 나머지는 삼국지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처세술 서적을 제외한 이차 문헌, 그리고 게임과 관계없는 삼국지 사이트에서 다루는 내용을 가만 살펴보면, 흥미롭게도 대부분의 사람이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 작품 자체가 아니라 역사서인 진수의 ꡔ삼국지ꡕ를 주된 논거로 사용함을 볼 수 있습니다.. ꡔ다르게 읽는 삼국지 이야기ꡕ(책이 있는 마을, 2001)의 역자 서문에서 정원기도 이 같은 점을 지적합니다. 물론 필자와 그의 관점은 다소 다릅니다.
물론 삼국지에 관한 논쟁은 대개 삼국지의 사실 여부를 가려내는 작업으로 이어지는 만큼, 이들이 삼국지의 모태인 역사서를 참고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자연스러워 보이는 이 현상은 좀 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러한 책을 사보고 또 관련 사이트에서 삼국지에 관한 지식을 나누며 때로는 서로 갑론을박하는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보다 삼국지에 대한 관심이 높은 애독자 층입니다. 삼국지는 역사에서 출발한 것이지만 이미 분명히 역사서의 내용과는 달라졌다는 것을 그들이 모를 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들은 토론을 하면서 왜 삼국지 자체보다는 역사서에서 근거를 찾으려고 할까요? 관심 있는 대상의 모든 것을 알고자하는 매니아의 성향을 감안한다 할지라도 역사서에 대한 그들의 신임은 유별난 데가 있습니다.
아마추어 층에서는 이처럼 역사의 잣대로 삼국지를 논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에 정작 삼국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곳은 역사학과가 아니라 어문학과입니다. 그리고 삼국지는 엄연히 중국문학사에 사대기서, 즉 백화소설의 일부로서 기술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소설이라고 불리는 것들을 보면 사실인 부분보다는 허구인 부분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에 비해 삼국지는 태생적인 이유 때문에 어느 문학 작품보다도 많은 사실 성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삼국지를 명목상 소설로 분류하고 있긴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석연치 못한 구석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처럼 삼국지는 역사로 보기도 어렵고, 소설로 보아도 뭔가 개운하지 않습니다. 이러한 난점을 피하기라도 하듯, 온라인 서점의 항목분류를 보면 삼국지는 동양고전(산문)으로 분류되어 있거나 더 많게는 소설의 하위 범주인 역사소설로 간주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소설이라는 개념 또한 모호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역사소설이라는 말에서 우리는 해당 작품에 사실과 허구가 뒤섞여 있다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 과연 역사와 소설은 어떠한 관계인지,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사실과 허구가 엉켜있는지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찾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삼국지를 역사소설로 구분하는 것은 실제 있었던 인물이나 사건을 소재로 했다는 정도의 편의에 의한 단순 분류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삼국지가 역사와 소설 사이에서 갈팡질팡 하면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있는 동안 위에서 언급한 대로 현행분류상 소설인 삼국지에 관해 토론하려고 역사서를 우선적으로 인용하는 일이 자연스럽게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가 삼국지에 대해 가지고 있는 관념과 삼국지의 실제 위상 사이에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삼국지를 분류하는 방식이나 그것을 읽어내는 독법, 그 어느 것도 실상과 부합한다고 보긴 어려우며 심지어는 서로 괴리되어 있는 듯 합니다.
명실상부라는 말과는 거리가 먼 이런 어정쩡한 상태가 의미하는 것은 우리가 삼국지를 잘 알지 못한 채 그저 즐기기만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대상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는 애정은 진정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강좌가 삼국지에 대한 지식 몇 가지를 습득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로 삼국지를 읽는 우리의 모습을 돌이켜보기 위한 것임을 감안하면, 삼국지를 둘러싼 관념상의 혼란을 제거하는 작업 또한 나름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사실 이러한 현상은 일시적인 것이 아닙니다. 이어지는 글에서 우리는 이러한 난맥상이 발생한 정황을 역사적으로 고찰해 보고자 합니다.


*삼국지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 독법의 역사
전통 시기에 삼국지는 구연 및 책의 형태로 널리 보급되었지만, 정작 사회적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은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우리나라와 중국의 고급 지식인들은 삼국지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삼국연의에 대한 우리나라 지식인의 부정적 인식은 이경선의 ꡔ삼국지연의의 비교문학적 연구ꡕ(일지사, 1976)에서 120-128 쪽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사실 그 때의 사회적 통념을 감안한다면 그들이 삼국지를 공식적으로 배척했던 사정이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당시 진수의 ꡔ삼국지ꡕ와 같은 공식 역사서는 유교 경전의 뒤를 잇는 정통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삼국지가 포함된 연의 작품들은 지식의 주요 범주인 경(經: 경전)·사(史: 오늘날의 역사)·자(子: 오늘날의 철학)·집(集: 오늘날의 문학)의 어디에도 들어가 있지 못했습니다. 한마디로 삼국지는 글로 쓰여진 최소한의 작품 취급도 받지 못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이 같은 인식에 충실했던 고급 지식인들의 눈에 비친 삼국지는 그저 민간에서 크게 유행하는 이야기를 글로 옮겨놓은 것에 불과했습니다. 그 자신들도 대부분 삼국지를 소일거리로 읽어본 경험이 있지만, 그들은 삼국지가 사실과는 동떨어진 이야기임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었으며 때때로 삼국지 이야기를 사실로 혼동하는 주위의 문인들을 조소하는 일을 잊지 않았습니다.. 傅隆基, ꡔ古老大地上的英雄史詩-三國演義ꡕ, 雲南人民出版社, 1999. 48쪽; 이경선, 앞의 책, 125-6쪽.
청나라의 사학자인 장학성의 다음과 같은 말은 그 시절 삼국지에 대한 지식인의 평가를 대변해주는 발언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무릇 연의라는 책 가운데 ꡔ열국지ꡕ ꡔ東西漢ꡕ ꡔ說唐ꡕ ꡔ南北宋ꡕ 등은 대부분 실제 사실을 기록하였고, ꡔ서유기ꡕ ꡔ금병매ꡕ와 같은 종류는 모두 허구에 바탕을 두었기 때문에 해롭지 않다. 유독 삼국연의만은 칠 할은 실제 사실이고 삼 할은 허구이어서 독자들로 하여금 종종 헷갈리게 만드니 예를 들면 도원결의 같은 사건은 학식 있는 사대부들조차 전고로써 줄곧 인용하는 형편이다. 따라서 연의의 부류에 속하는 것들은(····) 마땅히 사실이면 그 실제 내용을 따라야하고 허구라면 그것이 우언(寓言) 임을 분명히 밝혀야 하니, 삼국연의처럼 허구와 사실이 뒤섞여 사람을 혼동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章學誠, ꡔ章氏遺書外編·丙辰札記ꡕ(段啓明, 「從三國志到三國演義」, ꡔ古典文學知識ꡕ, 1994年 第六期, 54쪽에서 재인용).


이처럼 사실을 숭상하는 전통과 이를 통해 확립된 역사의 권위가 절대적이었던 그 시절에 식자층을 대상으로 삼국지를 판매해야 했던 출판업자들은 자연히 삼국지가 가지고 있는 교육적 기능을 전면에 내세우는 방식으로 삼국지 출판을 정당화하려고 애썼습니다.. 삼국연의가 완성되기까지의 역사화 경향에 관해서는 김문경의 ꡔ삼국지의 영광ꡕ(사계절, 2002) 85-132쪽을 참조하기 바랍니다.
다시 말해 어려운 역사서를 쉽게 풀이해주는 부교재로서의 실용적 효과를 최대한 강조함으로써 지배 권위와의 타협을 시도한 것입니다. 사실 ꡔ삼국지통속연의 三國志通俗演義ꡕ라는 이름을 택한 것 자체가 이미 춘추(春秋)에서부터 이어지는 역사서의 대의(大義)를 부연설명하는 역할에 만족하겠다는 의사를 대외에 천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식적인 차원에서는 그 존재 가치가 폄하되거나 심지어는 부정될 정도로 수세에 몰려있었던 것과는 정반대로 삼국지의 인기는 점차 식자층 전반에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역사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삼국지를 부정했던 소수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일반 식자층들은 표면상으로는 삼국지를 비난하는 이들의 주장에 전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지만, 실제로는 삼국지 공연을 즐겼던 일반 백성들 못지 않게 삼국지를 탐독했습니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삼국지를 유사 역사로 읽었습니다. 역사적 독법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러한 방식은 따라서 역사서를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작품에 나타난 인물과 사건에 대한 도덕적 평가 및 교훈을 중시했으며, 시종일관 그 내용을 지금의 처세에 응용하는 실용적 태도를 견지했습니다. 다만 엄정한 사실 기록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는 점에서 이러한 독법은 역사의 열매만을 추구하되 그 과정 내내 태만한 자세를 보이는 역사가에 비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난 것이 모씨 부자의 삼국지 평점입니다. 그들은 평점의 전체 분량 가운데 절반 이상을 인물과 사건의 윤리적· 도덕적 평가에 할애했습니다. 역사 전통에서 비롯된 평점의 논평. “방대한 중국의 사(史) 개념의 극히 작은 분야를 대상으로 하여 여기에 표현된 역사의식을 살펴, 1 역사를 도덕적·정치적 평가의 수단으로 보아온 점과 2 역사가 중국이라는 문화체·역사체를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다능적인 것으로 이해되었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였다.”(민두기, 「중국에서의 역사의식의 전개」, ꡔ중국의 역사인식ꡕ上, 창작과 비평사, 1989. 61쪽)
은 독자들의 취향에 잘 들어맞았고, 결국 모평본이 삼국연의의 결정본으로 되는데 주된 역할을 했습니다.. 모씨 부자의 평점은 사실 오늘날의 눈으로 보자면 역사적 독법과 문학적 독법이 어우러진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학적 독법에 해당하는 부분은 구조 분석에 국한되며, 허구를 적극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독법은 그것이 삼국지 자신을 긍정하는 논리가 아니라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지닙니다. 자체의 가치를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의 후광을 빌려오는 것이기 때문에 설령 속마음으로는 삼국지 자체를 긍정한다 하더라도 표면상으로는 그 단독의 가치를 부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울러 역사적 독법은 삼국지의 효용성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정작 사람들이 삼국지를 즐기는 이유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전통 시기에 삼국지를 즐겼던 수많은 일반 백성들과 상당수의 식자층이 교훈을 얻기 위해 삼국지를 읽었다고 보기는 사실 어렵습니다.
이렇게 역사적 독법은 삼국지의 흡입력 내지는 예술적 매력을 설명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기는 하지만, 과거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들이 삼국지를 즐기기 위해 공통적으로 사용했던 방식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오늘날 일반적으로 바람직하다고 여겨지는 소설 독법, 즉 내용의 사실 여부에 신경 쓰지 않고 작가가 구성한 인물의 성격과 작품의 구조에 몰입하는 방식을 통해 삼국지를 읽는 것만으로 독서를 끝내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삼국지를 읽는 행위 그 자체만큼이나 그 속의 사건과 인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평하기를 즐깁니다.
그런데 이는 사실 소설보다는 역사책이나 신문을 읽는 방식에 더 가깝습니다. 이처럼 삼국지는 작품 자체로서 독자에게 승부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바탕으로 더 많은 이야기와 논평을 이끌어내는 재료 역할에 치중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오늘날 삼국지를 신문을 보듯이 즐기는 방식-ꡔ삼국지신문ꡕ이라는 책도 나와 있습니다-은 분명히 이 역사적 독법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그 좋은 예로 근래에 우리나라에서 삼국지 평역본이 직역본보다도 인기를 끌었던 이유도 부분적으로는 이전의 평점처럼 이야기와 논평을 함께 제공한 것이 독자들의 기호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인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효용론의 관점에서 삼국지를 옹호하던 역사적 독법은 전통 시기 말부터 점차 그 영향력을 상실하기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서구의 문학 개념, 특히 허구를 기반으로 하는 소설 개념이 유입되었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물론 내부적으로 이미 청대의 비주류 지식인들은 역사적 독법에서 탈피해 거의 서구 소설과 유사한 내용의 소설 개념을 제기한 바 있습니다(루샤오펑 지음, 조미원 외 옮김, ꡔ역사에서 허구로 : 중국의 서사학ꡕ, 길, 2001. 6장 참조). 그러나 이들의 주장은 전통 시기가 끝날 때쯤에야 지식인 사회의 공식적인 인정을 받기 시작했으며, 이와는 상관없이 삼국지 출판자들은 시종일관 삼국지를 역사적 독법으로 읽을 것을 주장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 비주류 지식인의 기준을 따른다면 삼국지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장점은 단점으로 바뀌기 때문입니다.
그 후 이 서구 소설 개념을 적극적으로 긍정하는 일군의 지식인들이 전면에 부상하여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합니다. 이들 젊은 지식인들은 중국소설사의 체계를 확립하는 작업을 수행하면서, 연의라는 범주로 인식되던 삼국지를 백화소설의 범주에 포함시켰습니다. 이처럼 역사의 보조교재에서 소설의 휘하로 편입됨에 따라, 삼국지는 더 이상 역사의 기준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른 백화장편소설 작품과 동일한 잣대로 평가받게 되었습니다. 다음에서는 그 비교평가 과정을 항목별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삼국지는 역사에서 파생된 이야기로서 다른 작품에 비해 실제 있었던 역사적 사실을 많이 포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허구성의 측면에서 다른 작품들에 비해 많이 처집니다. 그 다음 언어성의 측면에서 삼국지는 읽기 쉬운 반문반백(半文半白)의 문장이었기 때문에 이들 지식인이 근대 중국어의 모델로 생각했던 순수 백화문으로 쓰여진 다른 작품과 애초 경쟁이 되지 못했습니다. 인물형상화의 측면에서도 삼국지는 인물의 성격을 모순되게 묘사함으로써 의도와는 반대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지적을 공통적으로 받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사상성의 차원에서 삼국지의 등장인물은 모두 왕후장상뿐이며 그 안에 담긴 내용 역시 진부하고 고루한 봉건사상을 담고 있는 작품으로 판정 받았습니다. 결국 삼국지는 그 시대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며 현재와 관련해 어떠한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는 퇴행적이고 반동적인 작품으로 낙인찍혔습니다.
이들이 제시한 것은 이른바 삼국지에 대한 문학적 독법이었습니다. 이는 삼국지를 근대적인 문학 관념에 입각하여 읽어내는 방식으로, 평가의 주요 기준인 허구성·언어성·인물형상화·사상성·구조성 등은 서구 소설의 평가 기준과 동일합니다. 이들은 이 기준을 삼국지에 엄격히 적용했고, 그 결과 삼국지는 다른 백화소설에 비해 모든 면에서 열등한 문학 작품으로 판정 받았습니다.
기존 역사적 독법에서 높이 샀던 삼국지의 교훈성 및 실용성은 더 이상 장점으로 인정되지 못했습니다. 호적만이 「삼국지연의서」에서 삼국지의 대중적 가치를 인정함으로써 중도적 입장을 취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는 한술 더 떠서 애초부터 삼국지는 통속연의일 뿐 문학으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못박고 있습니다.
지난 강좌에서 호적이 서구 소설의 개념에 입각하여 삼국지의 평점을 삭제했음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이 말고도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본을 비롯하여 일본에서 나온 수많은 개작본도 서구 소설의 영향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이들 개작본은 서구 소설의 감각과 언어로 삼국지를 새로 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와 일본의 번역본에서 각 회의 마지막에 나오는 “그럼 다음 회의 설명을 들으시라 且聽下回分解”와 같은 상투어를 대부분 아무런 설명 없이 삭제한 것도 그것이 근대 소설의 시각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구연 전통의 말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문학적 독법이 일반 독자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는 좀 더 자세한 고찰이 필요하지만, 적어도 문학연구자 층에서는 지배적인 관점으로 인정받은 것이 분명합니다. 그 이후부터 근래까지 나온 중국문학사 가운데 최근의 일부를 제외하고는 그들의 시각과 크게 다른 서술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는 점에서 이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문학적 독법의 문제는 공교롭게도 역사적 독법과 같습니다. 즉, 문학적 독법에 의해서도 삼국지는 긍정되지 않으며 오히려 조목조목 논리적으로 그 가치가 부정됩니다. 그리고 이 독법 역시 고금의 사람들이 삼국지를 읽는 이유에 대해 속시원한 해명을 하지 못합니다. 그저 삼국지의 부분 부분이 어떤 예술적 장치로 이루어져 있는지 분석해낼 수 있을 뿐입니다.
실제로 요즘의 삼국지 연구가들은 삼국지에 대한 예술적 분석을 통해 그것의 장점을 부각시키는 글을 많이 내놓고 있습니다. 다소 결벽증적인 면이 없지 않았던 이전 세대의 평가에서 탈피하여 그들은 삼국지의 인물형상화 및 전형성, 그리고 구조성을 적극 긍정하는 방식으로 삼국지를 옹호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글들을 읽어보면-특히 일반인을 대상으로 쓴 삼국지 단락 감상-, 종전의 삼국지 평가와 이를 뒷받침하는 5·4세대의 문학적 권위에 대한 정면 대결을 펼쳐 삼국지의 진정한 복권을 시도하는 것이 아니라 두루뭉실하게 문학사적 쟁점을 피해가면서 그저 삼국지만을 보호하려고 한다는 인상이 짙습니다.
그들이 고정관념을 해체하는 데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은 삼국지를 긍정하기 위해 구조성을 주로 제시하는 데서도 알 수 있습니다. 허구성· 언어성 등에서는 불리하니까 아예 언급하지 않거나 아니면 역사소설의 특수성 때문이라고 변명한 뒤, 비교적 예술적 형태를 갖추고 있는 삼국지의 구조를 분석하여 그 결과를 삼국지가 가진 문학적 가치의 증거로 내놓습니다. 그러나 이는 형성과정 상의 이유로 다소 불완전하거나 반복적인 구조를 가지게 된 수호전· 서유기· 금병매· 홍루몽 등의 약점을 의식한 작업으로 그다지 이론적 가치를 가진 생각이라 볼 수 없습니다. 또한 그들은 삼국지의 인물이 역사소설의 전형성에 부합한다는 식으로 인물형상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이 사용하는 리얼리즘 계열의 용어는 삼국지 등장인물의 대중적 호소력을 설명하기에는 미흡하다고 여겨집니다.
돌이켜보면 문학적 독법을 도입한 세대들에게는 적어도 서구 개념을 도입해 기존의 전통을 해체한 뒤 다시 재구축 하겠다는 명백한 목표가 있었습니다. 다소 지나치게 과감한 면을 보이긴 했지만 그들의 사유는 문학사를 새로 구축하여 제시할 만큼 충분히 수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근래의 삼국지 연구자 층의 경우는 문학사적 구획을 철저히 지키면서 그 아래의 자기 분야만 아는 강단학자들의 병폐를 그대로 보이고 있습니다. 연구를 위한 연구이라는 인상을 주는 그들의 작업이 일반 독자들의 삼국지 독법에 그다지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개괄했던 독법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하자면, 전통시기에는 역사적 독법의 압도적 권위가 유지된 것으로, 근대시기에는 문학적 독법이 명목상 우위를 점한 것으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전통시기에는 역사적 독법이 삼국지의 이름(名)과 그것을 읽는 실제 방법(實)을 모두 장악했습니다. 통속연의라는 명칭과 그리고 역사의 춘추 독법과 다를 것 없는 삼국지 독법이 그 증거입니다. 근대에 들어와 서구에서 수입된 문학적 독법은 삼국지를 소설에 포함시키는데 성공하면서 삼국지의 이름을 획득했습니다. 그러나 실질적인 독법은 장악하지 못했으니, 그것은 역사적 독법이 일반 독자층을 중심으로 여전히 세력을 확보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명목은 소설이나, 즐기는 실제 방식은 역사적 독법과 문학적 독법이 혼재된 것이 오늘날 삼국지 독법의 실상입니다. 그리고 연구자 층에서는 여전히 삼국지를 단순히 소설이라고 부르기보다는 연의소설 내지는 역사소설로 부르는 것을 선호하는데, 이 또한 문학적 독법의 미약함을 보여주는 예입니다.


*삼국지로 가는 길 : 누구를 위한 삼국지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두 개의 질문을 던져 보았습니다. 우선 ‘삼국지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삼국지가 역사인지 소설인지, 또는 달리 말해 사실인지 허구인지 명확한 개념 규정이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우회하여, 또 다른 질문으로 ‘삼국지는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과거로 던져 보았습니다. 이전에 삼국지를 과연 어떻게 읽어왔는지 살펴본 결과, 우리는 삼국지를 역사의 눈으로 보는 독법과 소설의 관점에서 보는 독법이 시차를 두고 우위를 점해왔음을 발견했습니다. 이 두 독법은 논리상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배척하는 관계이지만, 실제로는 한데 뒤섞이면서 오늘날의 혼란을 일으킨 것으로 판명되었습니다.
첫 번째 질문은 결국 잘못된 질문이었습니다. 삼국지는 순수한 사실도, 순수한 허구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없습니다. 그렇다면 순수한 사실을 추구하는 역사도, 순수한 허구를 높이 사는 소설도 결국 삼국지에 걸맞는 명칭은 아니라는 결론이 나옵니다. 앞에서 우리는 역사와 소설의 개념이 궁극적으로는 삼국지를 폄하할 수밖에 없는 논리를 그 안에 갖추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어떠한 대상에 붙여진 이름이 그 대상의 특성을 담아내지 못하고 심지어는 그 대상을 부정하게끔 한다면, 그 이름은 버려야 마땅합니다.
삼국지를 역사나 소설, 또는 역사소설로 부르지 않는다고 해서 불편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까지 그 같은 이름으로 불러온 것을 반성해야 합니다. 사실 역사, 소설, 역사소설이라는 개념은 삼국지를 낳은 문화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서구 근대에 확립된 그들의 개념을 번역한 것에 불과합니다. 물론 동양에도 역사, 소설이라는 개념은 존재했었고, 어떤 측면에서는 서구와 그 의미가 별 다르지 않은 점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역사, 소설, 역사소설이라는 용어는 history, novel, historical novel의 역어로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이 단어 속에 담겨진 가치나 함의가 서구의 것과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동양의 많은 학자들과 일부 독자들이 역사와 소설이라는 단어를 근대 이전의 의미로 사용하고 있긴 합니다. 그러나 이들 단어의 용법을 좌우하는 주도권이 서구로 넘어간지 오래기 때문에 그와 같은 사용은 혼란만을 가중시킬 뿐입니다.
두 번째 질문으로 넘어가 봅시다. 역사적 독법과 문학적 독법이 이분법적으로 대립하는 현재의 상황 아래에서 사람들은 자연히 역사와 문학을 상호배타적인 관계로 파악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는 역사 마인드를 가진 사람과 문학 마인드를 가진 사람간의 소통부재가 여전히 보편적인 현상임을 익히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립은 개념의 분화에서 비롯된 근대 분업제도의 소산으로 역사적으로 그리 오래된 일도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삼국지는 근대 이전에 생겨 나와 지금은 역사와 문학 어디에도 잡히지 않은 채 그 중간쯤에서 떠도는 존재이므로, 현재의 독법으로는 삼국지를 부분적으로 파악할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지금의 두 독법은 삼국지의 가치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실제 삼국지를 읽고 즐기는 이유와 방식에 대해서도 충분한 설명을 하지 못합니다.
개념과 관점, 둘 다 반성해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개념에 의존해서 사고를 하기 때문에 개념에 대한 사고를 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한 시기의 문학연구 논문을 살펴보면 소재는 각각 다르지만 그 안에 사용되는 개념-술어·용어·서술도식·가치판단의 근거-들은 놀랄 만큼 비슷합니다. 그것은 그들이 개념과 그것에 가치판단을 부여하는 관점을 유행처럼 공유했음을 잘 말해줍니다. 개념은 현실을 떠나 이상을 추구하기 마련이지만, 삼국지의 새 이름과 새 관점은 실제 사람들이 삼국지를 즐기는 이유를 설명해내야 합니다. 현실보다 개념을 우선시할 수는 없습니다.
이 점을 감안하여 독법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우리는 그것이 결국은 다 자신들의 실제 필요에 의한 독법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 독법은 지배적 권위 아래 삼국지를 옹호해야 했던 출판업자와 하층 지식인이 개발한 논리이며, 문학적 독법은 전통의 변혁에 몰두했던 신세대 지식인의 머리에서 나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실 여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모두들 자신의 관점에서 현실을 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관점 역시 중요하지 않습니다. 속내를 비치지는 않지만-또는 스스로도 모르고 있지만-, 자신의 필요에 의해 관점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어떤 상황에서 개념과 관점을 만들어내는지 관찰하는 방법이 현재로서는 대안을 찾기위한 접근법 가운데 하나라고 여겨집니다.




[교수신문] 삼국지 번역 비평 [2]
이데올로기 각축전이된 삼국지--2 (민경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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