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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삼연(2004-04-28 19:05:32, Hit : 8518, Vote :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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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국지연의의 판본과 지은이를 둘러싼 문제(민경욱)
삼국지연의의 판본과 지은이를 둘러싼 문제

                                                    
                                                             -민경욱


1. 삼국지는 없다?
최근에 나온 번역본인 열림원 출판사의 삼국지를 보면, 표지에 “나관중 원작/ 모종강 편집/ 조성기 정역”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정역(正譯)’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면서까지 제대로 된 번역임을 강조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여 옮긴이의 서문을 한 번 읽어보았습니다.
「삼국지가 없다」라는 제목의 글에서 옮긴이는 “ꡔ삼국지ꡕ라는 책들이 넘치는데도 ꡔ삼국지ꡕ가 없는 희한한 현상”을 지적하면서 기존의 삼국지를 두 종류로 나눕니다. 하나는 “ꡔ삼국지연의ꡕ를 다시 ‘연의’해놓은 작품들”로 나름의 작품성은 있지만, 옮긴이는 이들 “작가들의 작품을 먼저 읽어버리는 것이 ꡔ삼국지ꡕ독서체험에 있어 이롭지 못하다는” 의견에 암묵적으로 동의합니다. 다른 하나는 원본이나 정본의 이름을 달고 나온 것들로서 옮긴이에 의하면 이들 직역본은 “단 하나의 책을 제외하고는” 모두 “오역투성이”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그는 오늘날 삼국지를 다시 새롭게 읽을 필요성을 제시하는데, 단 “그 텍스트는 우선 원본이거나 원본 번역이어야 함”을 재차 강조합니다.
여기까지 읽고 나니, 그가 “삼국지가 없다”라고 말할 때 그 ‘삼국지’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원본이 정확하게 번역된 삼국지”이며, 자신의 번역본이야말로 그 기준에 가장 부합한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원본을 내세워 자신의 번역이 가지는 차별성을 확보하려는 현상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닌 듯 합니다. 지금까지 출간된 삼국지 번역본의 명단을 살펴보면 “원본”, “정본”등의 수식어를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에 해당하는 몇몇 번역본의 경우, 정작 옮긴이는 점잖게 있는데 막상 책의 겉표지와 광고 띠지에는 “원전에 가장 충실한”, “국내 유일”, “정통” 등의 익히 많이 들었던 거창한 어구가 들어가 있다는 점도 흥미롭습니다.
이들 광고문안은 과연 우리의 어떤 심리에 호소하려고 하는 것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도 가짜가 많아 불신풍조가 만연하는 작금의 세태를 반영한 현상일까요? 기존의 번역본 가운데 중역(重譯)의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꽤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타당성 있는 설명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이보다 우리 안에 깊숙이 잠재해 있는 어떤 고정관념이 이 같은 문구에 반응하는 것은 혹시 아닐까요?


2. 그 원문을 찾아서
사실 이러한 현상은 시기적으로 오늘날에 국한된 것도, 지역적으로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아닙니다. 일찍이 모륜·모종강 부자가 기존의 삼국연의를 대대적으로 수정하여 새로운 판본인 모평본-‘모씨 부자의 평점(評點)본’의 줄임말-을 내놓았을 때에도, 그들은 태연하게 “이제 (권위 있는) 옛 판본古本에 의거하여 (지금 나돌아다니는) 저속한 판본俗本을 바로 잡는다”라고 주장했습니다(「凡例」).
지금의 학계 또한 원본을 중시하는 이러한 경향에서 자유로운 편은 못 됩니다. 중국의 한 삼국연의 전문가는 1980년대 이후 중국의 삼국연의 연구 경향을 크게 1 작가의 인적사항에 관한 문제, 2 작품이 쓰여진 시기에 관한 문제, 3 판본에 관한 문제, 4 작품주제에 관한 문제, 5 인물형상에 관한 문제, 6 예술적 성취도에 관한 문제, 7 모평본에 관한 문제, 8 문화연구의 문제 등으로 나눕니다. 이 분류를 보면 모두 여덟 가지 가운데 네 가지가 원본 연구에 관련됩니다. 특히 앞의 세 가지는 연구자 사이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연구 주제로 알려져 있는데, 아시아권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이 고전의 원래 모습을 찾기 위해 각 나라의 학자들이 기울인 노력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이러한 학계의 주요 성과를 보면서 경탄을 금치 못하게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일말의 의구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과연 이 학자들은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해 이러한 연구를 하는 것일까요? 아니, 왜 이러한 연구경향이 주류를 이루게 되었을까요? 삼국연의가 아무리 연구를 해도 지나치지 않은 대상이 아닌 바에야, 이러한 연구는 왜라고 묻는 지금의 독자에게 늘 이유를 댈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과연 삼국지는 처음부터, 즉 그들이 찾고자 하는 원본 단계에서부터 이미 지금 누리는 위상에 걸맞은 대단한 작품이었을까요? 그리고 이를 지은 나관중은 모든 면에서 우러러볼 만한 훌륭한 작가였을까요?


3. 원본/정전 중심주의
이러한 현상은 모두 ‘원본/정전 중심주의’라고 통속적으로 이름 붙일 만한 통념에 바탕을 둔 것으로 보입니다. 말 그대로 ‘원본/정전 중심주의’란 한 작품을 역사적 권위인 원본(原本) 또는 문학적 권위인 정전(正典)의 반열에 올려놓고 숭배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우리나라의 원본 논쟁은 번역대본인 모씨 부자의 판본이 가지는 권위에 기대어 자신의 번역본 삼국지에 정통성을 부여하려는 시도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이 논쟁은 모본을 문학적 정전(正典)으로 인정하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합니다. 이에 따라 우리말 삼국지는 이 모본을 얼마나 고스란히 옮겼는지의 여부에 따라 평가받게 됩니다. 이 와중에 원본, 정전, 정본, 원전 등의 다양한 수식어가 번역본에 붙여지나, 이들 명칭은 그 본래의 낱말 뜻과는 무관하게 단지 번역본의 권위를 높이기 위한 선전 기능만을 수행할 뿐입니다.
그에 비해 나관중이라는 위대한 작가가 직접 쓴 작품의 원형을 복원해보려는 학계의 노력은 그의 원본(原本)이야말로 삼국연의가 지니는 권위의 원천이라는 신념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들 가운데 일부는 최초의 원본 단계야말로 작가의 뛰어난 솜씨가 온전하게 구현된 순수한 상태였는데, 그 이후부터는 조금씩 불순물이 섞이기 시작했다고 믿기도 합니다.
물론 원본이나 정전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마치 권위 자체는 나쁘지 않지만 권위주의는 나쁜 것과 마찬가지로, 정작 문제는 원본/정전 중심주의입니다.
이러한 생각을 지닌 사람들은 나관중본과 모본이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이고 그것이 오늘날 지니는 의미는 무엇인지 자문하기보다는 그저 이들 판본이 지닌 권위와 정통성의 후광 아래 안주하려고 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각은 삼국연의의 영향력을 긍정하는 것을 전제함으로써 삼국연의 자체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하지 않으며, 그 결과 대개는 기존의 관점을 재생산하는 수준에서 멈추고 맙니다.
마지막으로 원본/정전 중심주의는 원본 이후의 판본들 가운데 정전의 자리에 오르지 못한 소위 속본(俗本)이나 번역본을 자연히 열등한 것으로 취급하는 태도에 논리적 근거를 제공해 줍니다.
이어지는 글에서 우리는 삼국연의의 양대 판본인 나관중의 삼국지통속연의와 모륜·모종강 부자의 삼국연의 평점본에 대해 간략히 다루어 보겠습니다. 주로 이들 판본의 형성과정이 지니는 의의와 그들이 거둔 성공의 의미를 오늘날의 입장에서 자리 매김 하는데 주력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 판본을 무비판적으로 떠받드는 경향이 불러오는 폐해에 대해서도 살펴보려고 합니다.


4. 나관중과 삼국지통속연의
우리말 삼국지의 대본인 삼국연의의 기원, 즉 나관중이 지은 바로 그 책을 찾기 위해 벌어지는 학자들의 연구모습은 관객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마치 보물을 찾아 나서는 탐험가의 모습을 연상시킬 정도로 흥분과 열정으로 가득 차있습니다. 그러나 원저자와 원본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 과연 타당한 근거를 가지는 것인지 아니면 신기루와 같은 허상(虛像)에 기초한 것인지는 한번 검토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나온 판본 연구 가운데 비교적 신뢰할 만한 자료에 의하면, 현재 남아있는 모든 삼국연의 판본은 궁극적으로는 하나의 책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 책이 과연 나관중이 직접 쓴 것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최초의 저자는 따로 있고 나관중은 개작자였을 가능성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나관중을 삼국연의의 원저자로 보는 이유도 다만 현재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완본인 가정본(嘉靖本) ꡔ삼국지통속연의ꡕ의 저자가 나관중으로 되어 있고, 또 그 후의 많은 문헌기록에서 그를 저자로 지목하기 때문이지, 어떤 확고부동한 증거가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사실 나관중이라는 사람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거의 없는 편입니다. 그러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그가 삼국연의의 원저자라는 주장은 아직 반증가능성이 남아있는 잠정적인 결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설령 어떤 확실한 지은이가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생각만큼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점은 나관중이 어떻게 삼국연의를 지었는지 살펴봄으로써 어느 정도 드러나리라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여러 연구를 통해 그의 창작원리는 어느 정도 규명이 되어있는 상태입니다.
나관중은 삼국시대에 관한 역사 이야기와 민간 이야기를 재료 삼아 취사선택과 결합확장의 과정을 거쳐 하나의 거대한 작품을 만들어냈습니다. 삼국연의라는 사건들의 긴 고리에서 비중이 큰 사건의 경우 그는 주로 민간 이야기를 윤색하여 채워 넣었고, 그 사이의 작은 공간은 역사서에서 나온 이야기를 가지고 메웠습니다. 역사 재료의 경우 그는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보다는 이야기로 사용하기에 적합한 사건을 골라서 사용했으며, 민간에서 소재를 고를 경우에는 그것의 논리적 인과관계 유무와 촉나라에 유리한가의 여부를 선택기준으로 삼았습니다. 그 결과 나관중의 삼국연의는 외적인 규모나 내적인 구성에서 모두 이전의 단계를 아우르는 하나의 이정표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이야기를 빚어내면서 보여주었던 솜씨는 더할 나위 없이 탁월합니다. 그러나 재료라는 표현에서도 드러나듯이, 그는 기본적으로 위대한 편집자였지 창조자는 아니었습니다. 그가 거둔 성공의 원인은 바로 이 점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모두가 알고 있는 이야기를 어떤 방법으로 가공하여 독자들에게 잘 전달할지 궁리하는 전통시기의 작가 역할에 충실했으며, 사실상 그들 가운데 최고 정점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설사 오늘날의 우리가 나관중의 삼국연의에서 특정한 가치관을 발견했다 하더라도 그것이 그 자신의 생각인지 아니면 그 당시의 가치관을 그가 대변한 것에 불과한지 확정할 길이 없습니다. 또 우리는 그가 훌륭한 사상가였는지 아니면 일개 촌구석 서생에 불과했는지 작품을 통해서는 알아낼 방법이 없습니다.
그리고 삼국연의는 나관중의 원본 이후에도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계속 발전해온 작품이라는 점 역시 염두에 두어야할 사항입니다. 연구에 의하면 나관중의 원본이 후대의 판본보다 더 뛰어난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었을 확률은 희박합니다.
이 같은 점을 고려해볼 때 결국 그와 그의 원본에 쏟아지는 연구자들의 관심은 과도한 것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지금 자손이 번창한다고 해서 굳이 과거의 족보에 몰두할 필요는 없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조상 덕택에 성공한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이러한 연구를 통해 삼국연의에 대한 우리의 관점에 어떠한 변화가 생기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원본중심주의의 상당 부분은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작가 개념을 가지고 그를 이해하려고 하는데서 발생합니다. 지금 우리가 쓰는 작가라는 말에는 작가의 창조적 개성을 작품 가치의 근원으로 보는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원작자를 작품의 주인으로 보는 이러한 태도에서 자연히 원본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판본이고, 이후의 판본은 원본보다 못하다라는 논리가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앞서 살펴본 대로, 삼국연의는 엄밀하게 말해 결코 나관중 일개인의 창작품이 아니며, 또한 그 이후로 부단한 수정작업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비로소 더 훌륭한 작품이 된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많은 연구자들이 이러한 선입견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삼국연의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의 모순된 성격을 두고 일찍이 노신은 이를 작가의 역량부족으로 보았으며, 플락스 같은 현대 연구자는 이를 작가의 교묘한 의도로 봅니다. 언뜻 보면 정반대의 평가 같지만, 둘 다 모두 전지전능한 작가의 존재를 상정한다는 점에서 동일한 사고방식의 소산입니다.
근대 작가의 개념은 직업으로서의 작가와 개성적 주체로서의 작가를 둘 다 강조하지만, 실제로는 늘 후자에 가치가 집중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삼국연의를 놓고 볼 때, 훌륭한 작품의 필요조건은 후자가 아니라, 자기가 하는 일에 대한 성실성을 뜻하는 전자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나관중을 근대적 의미의 작가로 부르기보다는, 기술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리는 ‘장인(匠人)’으로 부르는 것이 더 타당할 것입니다.


5. 모씨 부자의 삼국연의 평점본
앞서의 원본 논쟁에서도 보았듯이, 국내 번역본 저자의 대부분은 모씨 부자의 판본이야말로 삼국연의 판본 가운데 최고의 권위본이라는 점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실제로 과거 청나라 강희 연간(1662-1722)에 모본이 출현하자 기존의 대다수 판본이 소멸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그리고 지금 중국에서 읽히고 있는 삼국연의를 보더라도, 열 손가락 안에 꼽을 수 있는 다른 판본의 활자본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모본을 바탕으로 출판한 것입니다. 본고장에서도 그러한 마당에, 우리나라에서 이 모본을 대본으로 번역을 한 다음, ‘원본’ 또는 ‘정본’ 등의 제목을 붙이는 것쯤이야 하등 이상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국내 번역본 서문에서 간과하고 있는 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현재 중국에서 통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모본이 실은 평점이 빠진 채로 활자화된 일종의 삭제본이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직역본 상당수가 번역대본으로 삼고 있는 대만의 활자본은 거의 모두가 삭제본입니다. 근자에 와서 대륙을 중심으로 평점까지 복원한 활자본이 조금씩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대다수 독자들은 원래 모본에는 평점이 있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렇게 지금까지 대륙이나 대만의 모본은 대부분 출간 당시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는 판본인 만큼, 이를 대본으로 하여 번역된 국내 직역본에 ‘원전’, ‘정통’ 등의 수식어를 붙이는 것은 어폐가 있습니다. 설령 이들 역본이 번역될 당시 정황(본고장의 판본변형을 알 길이 없었다)을 십분 고려하여 이들이 가지는 가치(아무튼 이야기 부분은 번역되었다)와 의의(삼국지를 널리 알렸다)를 인정한다 할지라도, 엄밀하게 말해 지금까지 국내에서 모평본을 고스란히 옮긴 삼국지는 존재한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결국 서두에 언급했던 “삼국지가 없다”라는 도발적인 문제제기는 당초 의도와는 달리 발언자 자신을 향한 부메랑이 되어버립니다.
혹자는 이렇게 질문할 수도 있습니다: ‘모씨 부자의 삼국연의는 당시 평점이 유행하던 시기에 출판되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삼국연의의 본문을 수정한 뒤 거기에 평점을 붙인 것은 단지 유행을 따라한 것에 불과한 만큼 현대 독자의 감성에 맞게 평점을 삭제하여 출판하는 행위는 정당하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모평본에서 평점이 지니는 위상을 과소평가한 것입니다. 모씨 부자에게 있어 평점을 다는 작업은 삼국연의의 본문을 개정하는 가운데 덧붙여진 부차적인 행위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그들의 작업의도가 드러나는 가장 핵심적인 행위였습니다. 따라서 평점을 삭제한 것은 그 이유를 불문하고 모평본의 원래 의도에 명백히 반하는 것이며, 소위 ‘정전’의 본모습을 훼손한 처사입니다. 다음에서 살펴볼 모씨 부자 평점의 역할과 특징을 감안하면 이 점이 분명히 드러나리라고 생각합니다.
각 회의 맨 앞 부분과 본문의 구석구석에 배치된 평점은 그 형태상 본문을 둘러싸는 모습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평본에서 평점의 분량은 대략 본문의 삼분의 이에 해당하는 방대한 양입니다. 만약 평점이 별 의미 없는 작업이었다면 모씨 부자는 굳이 이 많은 양의 평점을 작성하는 수고를 감당하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 평점을 통해 모씨 부자는 작품에 대한 해석을 독자들에게 제시합니다. 그들이 평점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을 살펴보면 정통론과 같은 역사철학적 논의에서부터 구조 분석 같은 문학적 평론 및 시시콜콜한 시사논평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한데 굳이 나누자면 크게 작품에 나오는 인물과 사건에 대한 논평, 그리고 작품의 구조에 대한 분석, 이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모씨 부자의 평점에서 두드러진 특색으로는 우선 매우 완고한 촉한정통론(蜀漢正統論)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는 것과 대비(對比)를 주된 수사법으로 활용한다는 점을 들 수 있습니다.
모씨 부자는 자신들의 작업이 작품 속에 숨겨진 의미를 밝혀내는 가치중립적 해석일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평점을 조금만 읽어보면 실제 이들의 작업은 자신들의 주관적 해석을 독자들에게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지극히 가치개입적인 행위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이렇게 평점은 ‘해석의 길잡이’ 노릇을 하는 입론 체계이므로, 독자들이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해석의 지평이 넓어질 수도 있고 반대로 풍요로운 해석의 걸림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만큼 평점은 독자에게 해석의 선택 폭을 넓혀줍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대부분의 학자들은 기존의 모든 판본이 사라지다시피 할 정도로 모평본이 성공을 거둔 이유로 모평본의 본문 자체가 가지고 있는 문학적 우수성만을 들어 왔습니다. 하지만 모씨 부자가 본문에 가한 수정만으로 이전의 판본과 모평본과의 질적인 차이점을 설명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그보다는 삼국연의라는 역사 소재의 이야기와 자유롭게 작품에 대한 의견을 개진하는 평점이라는 두 형식이 잘 맞아떨어져 일종의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다고 보아야할 것입니다. 당시의 문헌을 보면 삼국연의 평범본이 독자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전근대시기에 삼국연의 평점본이 광범위한 인기를 누렸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지금까지 평점본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평점 스스로가 사라졌던 것일까요?
실상은 우리의 문학 관념이 변했기 때문입니다. 전근대시기에도 평점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평점이 배척된 것은 호적의 절대적인 영향 아래 1920년부터 아동도서관(亞東圖書館)에서 평점을 삭제한 활자본 장회소설을 출판하기 시작한 때부터입니다(삼국연의는 1922년에 평점이 삭제된 채 출판되었습니다). 이 시리즈의 첫 번째인 ꡔ수호ꡕ의 서문인 「수호전고증」(1920.7)에서 호적은 김성탄의 평점이 작가의 의도와는 무관한 주관적인 견해라는 점, 그리고 독자의 자발적인 해석을 방해한다는 점, 피상적이고 통속적 사고를 작품 안에 끌어들인다는 점등을 이유로 평점에 대한 사형선고를 내립니다. 그가 이러한 판단을 한 것은 그가 받아들인 서구의 문학 개념에 비추어 보았을 때 평점은 도저히 문학적 성질의 것으로 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노신 또한 그의 ꡔ중국소설사략ꡕ에서 평점의 존재를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두 사람이 각각 대만과 대륙 소설학계에서 권위를 부여하는 ‘최후의 보증인’이었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이들 지역에서 평점에 대한 자의식이 거의 없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평점이 있는 판본이 더 우월하다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과거 서구에서 유입된 문학 개념으로 인해 기존의 전통에 대한 전면적인 부정이 이루어졌다면, 지금은 어떠한 이유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아마도 근대에 대한 서구인들의 반성의 여파로- 한때 잊혀졌던 전통에 대한 기억이 다시 되살아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모든 것들은 개념이 가지고 있는 위력과 폐해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일깨워줍니다.


6. 우리시대의 관점
우리는 어떤 사물이나 현상을 객관적으로 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편견의 안경을 통해 그것을 바라본 것에 불과한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의 관점이나 시각 또한 마찬가지로 어느 한 시대 혹은 한 집단의 편견일 수 있습니다. 삼국지의 경우에도 각 시대마다 삼국지를 바라보는 지배적인 관점이 있고, 또 이어서 그것을 비판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이 생겨납니다. 새로운 관점이 다시 지배적인 위치를 획득하더라도 기존의 관점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옛 것과 새 것이 뒤엉켜 경쟁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삼국지를 바라보는 관점은 여전히 원본/정전 중심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 원본/정전 중심주의는 작가와 그를 둘러싼 역사적 환경으로 작품을 설명하려는 관점과 작품 자체를 하나의 완결체로 보는 관점이 교묘하게 착종(錯綜)된 현상입니다. 얼핏 보면 이 역사적 접근법과 문학적 접근법은 서로 매우 이질적인 것으로 보이나, 권위와 정통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공통 분모를 가집니다.
사실 이들 접근법은 그동안 삼국지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작품만 있지 그것을 바라보는 관점이 없던 시기에 역사적 접근법은 삼국지라는 영향력 있는 실체를 처음으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문학적 접근법은 삼국지에 담겨있는 내용에 함몰되지 않고 삼국지의 형식-전근대 시기의 장회(章回)와 평점(評點)-이 가지는 역할에 대해 살필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삼국지의 다수를 이루는 번역본 삼국지와 비문자 매체 삼국지를 이해하는데 있어 이러한 접근법은 이제 도움은커녕 방해물이 되어 가는 느낌입니다. 이를테면 권위를 획득하는 과정을 천착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정통성의 표식에만 집착하는 관점으로는 모평본 이후에 나온 각 나라의 삼국지-특히 일본의 개작본과 우리나라의 평역본-의 의의를 파악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삼국지가 여러 매체로 모습을 바꾸어 가면서 번식하는 이 시대에 작품성을 따지는 접근법은 이제 의미가 없다기보다는 무망(無望)한 일이 되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는 원본과 복제품, 사실과 허구, 작가와 독자, 형식과 내용 같은 종래의 이분법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과거의 이야기들이 오늘날 과연 어떠한 과정을 통해 생산되고 소비되는지 분석하는 일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데올로기 각축전이 된 삼국지 (민경욱)
삼국지 팬을 울린 한글판 《삼국지》(리동혁)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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