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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삼연(2004-04-23 23:12:42, Hit : 15603, Vote : 1237
 http://www.samgookji.com
 삼국지 팬을 울린 한글판 《삼국지》(리동혁)
* *[안내문] 신동아에 게재되었던 중국 자유기고가 리동혁 선생의 글. 삼국지에 관해 매우 해박한 지식이 엿보이는 내용이라 회원 여러분에게 소개한다. 리 선생의 삼국지에 관한 글은 앞으로도 종종 본 사이트에 등재될 예정이다. 단, 본문의 주장은 전적으로 리 선생 개인의 견해이며 본 사이트와는 무관함을 밝힌다. 본문에 관해 이견이 있을 경우, 관리자의 심사를 거쳐 본 란에 게재될 수 있다. -정삼연-    



                                         제목: 삼국지 팬을 울린 한글판 《삼국지》
                                                                                                                          리동혁(중국 자유기고가)


* *[필자의 말] 워낙 2003년 10월호 《신동아》에 실렸던 “《삼국지》팬을 울린 한글판《삼국지》”의 원고입니다. 원고가 아주 길기에 잡지의 속성 때문에 잘린 부분이 있어 이해하기 약간 불편한 점이 있으므로, 삼국지 마니아들이 견해를 충분히 알 수 있도록 원고를 올립니다.  
  

<총 5장>
1. 황석영 《삼국지》 저본에 대한 의문과 오류
2. 황석영 《삼국지》의 오류-답습과 창조
3. 연변의 한글 《삼국지》출판 상황
4. 《삼국지》번역의 어려운 점과 한글판에 오류가 거듭 생겨나는 원인
5. 올바른 한글 《삼국지》를 만들려면


들어가면서

한국에서 100만부, 1000만권 이상이 팔리면서 10여 년간 꾸준히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 오류가 너무 많아, 필자는 그런 오류들을 지적하는 동시에 중국문화의 실상을 밝히고 중국어를 이해하는 방법도 곁들여 《삼국지가 울고 있네》라는 책을 8월에 펴냈다.
《삼국지》의 한글판이 아주 많은데 아무리 시원치 않은 번역물이라도 갑이 을을 죽인 것을 갑이 을에게 죽었다고 바꾸지는 않았으니, 무용담이나 줄거리만 보자면 그런 책도 그럭저럭 볼만할 것이다. 그러나 작품의 묘미를 충분히 감상하려면 반드시 우리 글로 읽기 편하면서도 원작에 충실한 번역물이 있어야겠다.
좋은 번역 작품은 읽기 편해야 하고, 원작의 맛을 살려야 하며, 남들이 비슷한 작품을 옮기는데 도움을 주는 번역 지침서도 되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는 필자는 《삼국지가 울고 있네》를 다 쓰고 나서 막 책으로 펴내려는 시점에, 유명 소설가 황석영씨가 6년간 품을 들여 원본의 맛을 최대한 살렸다ꡑ고 하면서 원전에 충실한ꡑ 《삼국지》를 냈다는 소식을 듣고 대단히 기뻤다.
기존의 한글 《삼국지》에 실망할 대로 실망한 필자로서는 이제야 바로 옮겨진 한글 《삼국지》가 나오나 싶어 책을 주문했는데, 솔직히 말해 읽어보면서 고개를 수없이 저었고, 하마터면 눈물을 흘릴 뻔했다. 일일이 밝히려면 너무 벅차고 또 그럴 필요성도 없다고 판단되어, 그 일부만 다루면서 아울러 한글판 《삼국지》들이 안고 있는 공통의 문제점과 그 이유를 짚어보려 한다.
한글 《삼국지》들의 내실이 부족한 까닭을 살펴보면 옮긴이들을 뒷받침한 전문가들의 수준에도 문제가 있지 않나 싶다. 한국 사람이라면 《삼국지》를 모르는 이가 없을 텐데 전문가라고 나서는 이들의 견해를 살펴보면 황당한 소리가 많기 때문이다.
《삼국지》 연혁을 다루는 글에서 약국의 감초처럼 끼이는 자료들이 있다. 당나라 시인 이상은(李商隱 813-858년)의 교아시(驕兒詩)에 나오는 두 마디와 북송의 문학가 소식(蘇軾, 서기 1036~1101년, 호는 東坡)의 《동파지림(東坡誌林)》에 나오는 말 한 단락을 인용하지 않는 사람이 없는데, 한국인들의 글을 보면 해석이 뒤죽박죽이다.
예를 들어 귀여운 아들을 자랑하는 이상은의 시 제목 교아시(驕兒詩)가 황석영씨의 《삼국지》 해제에서는 버릇없는 아이ꡑ(10권 255쪽)가 되었다.
또 다른 사람이 소동파를 보고 아이들이 유비를 좋아하고 조조를 싫어한다고 하면서, 이로써 군자와 소인의 영향은 백 대를 지나도 끊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以是知君子小人之澤, 百世不斬)라고 한 말이 이문열 《삼국지》의 부록에서는 소식의 말로 변했다(1권 372쪽). 더욱이 장정일, 김운회, 서동훈 공저로 된 《삼국지해제》라는 책에서는 이렇게 주장한다.
송나라 때 소동파(蘇東坡)는 자신이 편찬한 《지림(誌林)》에서 「《삼국지》처럼 군자와 소인을 구별한 책은 백세가 지나도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삼국지해제》30쪽, 김영사 2003년 3월 1판 1쇄)
중국어를 바로 알거나 이상은의 교아시ꡑ 전문을 찾아보고, 《동파지림》을 얻어 보았더라면 이처럼 황당한 말들은 나올 리 없다. 소설 《삼국지》는 소동파가 백골로 변한 뒤 200년쯤 지난 원나라 시대에 나왔다는 것이야 《삼국지》연구가들에게는 상식이 아니겠는가?
한국의《삼국지》 번역물이나 연구논문들이 보는 이들에게 만족을 주기는 고사하고 헷갈리게 만든다는 점을 심각하게 느낀 필자는 최신 판본인 황석영씨의 《삼국지》를 비롯해 한글 《삼국지》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봄으로써 《삼국지》의 제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여줄까 한다. 중국에서는 《삼국연의(三國演義)》라는 이름으로 알려졌으나, 서술의 편리를 위해 아래에 모두 《삼국지》로 지칭한다.


1. 황석영 《삼국지》 저본에 대한 의문과 오류
황석영 《삼국지》 출간 소식을 인터넷에서 처음 접했을 때, 우선 그 원서의 판본에 인상 깊었다.
번역의 줄기가 되는 원서도 꼼꼼히 골랐다. 1970년대 이후 지금까지 국내 번역본들은 대개 대만 삼민서국(三民書局)에서 나온 《삼국연의》를 원본으로 삼았지만 그는 1999년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나온 《수상삼국연의》를 원본으로 했다.
《수상삼국연의》는 청대에 나온 모종강본 삼국지의 번잡한 가필을 바로잡고 명대 나관중의 원본에 가장 가깝게 다가간 판본으로 꼽힌다.
보통 명대 나관중의 원본이라면 현존 최초의 나관중 엮음으로 된 소설 《삼국지》인 가정본(嘉靖本, 1522년 출판) 《삼국지통속연의(三國志通俗演義)》를 가리킨다. 필자는 1986년에 상하이고적(上海古籍)출판사의 간체자 문자표본(전2권, 1980년 4월 초판 1쇄, 1984년 6월  초판 3쇄)을 샀고, 2003년에는 고서와 형식이 거의 같은 인민문학출판사 영인본(전8권, 1975년 7월 초판 1쇄)도 갖췄다. 개인적으로는 나관중본을 더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기대가 클 수밖에 없었다. 헌데 황석영 《삼국지》를 펼쳐보니 일러두기ꡑ의 설명은 기사와 달랐다.이 책은 중국 인민문학출판사에서 발간한 간체자(簡體字) 《삼국연의》와 이를 번체자(煩體字)로 바꾼 강소고적(江蘇古籍) 출판사의 《수상삼국연의(繡像三國演義)》를 저본으로 했다.
번체자(繁體字)가 번체자(煩體字)로 틀린 것은 웃고 넘어가더라도 판본의 해석은 참으로 이상했다. 중국에서 번체자로 된 옛날 책들을 간체자로 바꾸어 펴내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지만, 간체자로 된 책을 번체자로 바꾸면 시장성이 없거니와 연구가치도 별로 없다. 지금 베이징의 고서 시장에서 인민폐로 50원~80원 주면 1950년대의 인민문학출판사판 《삼국지》를 살 수 있는데, 당시 아직 간체자가 보급되지 않았기에 바로 번체자로 찍었으니 이리 저리 옮길 필요도 없다. 고서적 정리에서 내노라하는 쟝수고적[江蘇古籍]출판사에서 다른 출판사의 책을 뒤집어 낸다는 것도 해석하기 어려운 현상이다.
다음 황씨는 옮긴이의 말―원문의 맛 그대로 느끼는 고전의 재미ꡑ에서 이렇게 썼다.
이때에는 상하이 강소고적출판사에서 펴낸 《수상삼국연의》를 저본으로 했다.(1권 12쪽)
중국을 조금만이라도 아는 사람이라면 이런 말이 나올 리 없다. 상하이는 직할시고 쟝수[江蘇]는 성(省)이다. 쟝수고적출판사는 난징[南京]시에 있다. 그러니 이 말은 인천시 경상남도 고적출판사에서…ꡑ라고 쓰는 격이다.
옮긴이와 펴낸이들이 이처럼 처음부터 이상하니까 판본에 대한 믿음이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중국에서 인민문학출판사의 《삼국지》를 가장 알아준다는 것은 필자가 쓴 《삼국지가 울고 있네》라는 책에서 밝힌 바인데, 지금 중국의 큰 서점에 가보면 《삼국지》가 20종쯤 되어 사는 이들이 갈팡질팡할 때가 많다. 인세를 지불할 필요가 없는 고서라 하여 마구 찍어낸 것들이 대부분이다. 심심풀이로 읽을 수는 있어도 연구용이나 번역용으로는 자격이 없다. 필자는 가끔 《삼국지》를 사려는 이들에게 좋은 판본을 가려보는 비결을 전수한다.
19회에서 조조에게 포위된 여포가 보낸 사람이 원술에게 도와달라고 사정할 때, 명공(明公)이라고 하면 보통 모종강본에서 파생된 판본이고, 명상(明上) 이라고 적혔으면 인민문학출판사의 판본에 기초한 것이다. 워낙 인민문학출판사에서 《삼국지》를 정리할 때 나관중본에 나오는 명상ꡑ이 더 논리에 맞다고 인정하여 모본의 명공ꡑ을 되돌려 놓은 것이다. 왜냐하면 당시 황제로 자칭하는 원술에게 임금을 대하는 말인 명상ꡑ을 써야 원술이 화를 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황석영 《삼국지》에서는 분명 세 번 다 명공ꡑ(2권 173~174쪽)으로 나온다. 인민문학출판사의 판본을 제대로 보았더라면 절대 나타날 수 없는 말이다.
필자는 강소고적출판사의 판본을 보지 못했지만 명공ꡑ이라는 낱말만 보더라도 이는 어느 모종강본의 정리본이리라 짐작된다.
책을 다 읽어보니 인명, 지명 따위는 확실히 황석영씨의 설명대로 우석대 전홍철 교수가 인민문학출판사의 판본에 의해 고친 흔적들이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교열은 깔끔하지 못했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전홍철씨는 황석영 《삼국지》의 해제인 소설 《삼국지》의 오랜 역사와 변함없는 매력ꡑ에서 많은 오류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중 가장 황당한 잘못은 황석영 《삼국지》의 원본으로 삼았다는 인민문학출판사 본을 높이기 위해 모종강본을 내리 깎은 것이다.
“방금 언급했듯이 모본은 명대 고본(古本, 나관중본과 동일)을 바탕으로 청대 독자들의 구미에 맞추어 수정한 것이다. 하지만 모본은 출간 당시에는 독자들에게 널리 환영을 받았을지 모르나, 수차례 개정하는 과정을 거치며 나본의 정확성을 크게 훼손하고 말았다. 텍스트의 신뢰도에서 보면 명대 나본이 청대 모본보다 정확하다 할 수 있는데, 모본이란 개정판이 등장하면서 개선되기보다는 오히려 개악되고 말았던 것이다.ꡓ (10권 265쪽)
뒤이어 전홍철씨는 인민문학출판사본은 가정 임오년(1522)에 발간된 나본(일명 홍치본)을 참조해 모본의 수많은 오류를 바로잡은 텍스트로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267쪽)고 썼다.
필자는 《삼국지가 울고 있네》에서 이미 《삼국지》의 연혁을 다뤘기에 길게 말할 필요는 느끼지 않는다. 그러나 세 가지만 밝히고 싶다.
첫째로 인민문학출판사본은 바로 괜찮은 모본들을 몇 종 모아 대조하면서 나관중본은 일부만 참고한 것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성립된 이래 중국 대륙에서 잘 팔린 여러 출판사들의 유행본들은 모두 모본에 의해 정리한 것들이다.
둘째로 모종강본이 300년 동안 시장을 독점한 것은 정부의 권장 덕분이 아니었다. 시장이 자연적으로 다른 수많은 판본들을 도태시켰으니, 모본의 우수성은 외면할 수 없다. 모종강 부자가 《삼국지》를 다듬지 않았더라면 책이 그처럼 널리 퍼지기 어려웠을 것이다. 학계에서도 대체로 모종강 부자의 수정은 《삼국지》의 유행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보는 이들이 대다수다.
셋째로 나관중본을 읽어보면 알 수 있듯이 문장은 아직도 어수선한 대목이 많고, 틀린 인명 따위는 모본보다 훨씬 심하다. 정통관념이 모본보다 덜하여 인간들이 보다 더 진실하지만, 소설의 잣대로 재어볼 때 모본보다 몇 차원 떨어지고 오류도 많다. 때문에 지금 《삼국지》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의 손에나 들어있을 뿐 보통 독자들의 호응을 받기는 어렵다.
판본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혔을 것이니 이제 번역문으로 들어가 보자.


2. 황석영 《삼국지》의 오류-답습과 창조

당연한 일이지만 필자가 지적한 이문열 《삼국지》의 오류들이 황석영 《삼국지》에서는 바로잡혔나 관심을 가지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러나 실망하고 말았다.
꼽아보면 오류들은 대체로 다섯 가지 부류로 나눌 수 있다.
그 첫 번째 부류는 기존 한글 《삼국지》의 잘못을 답습한 흔적이 뚜렷한 오류들이다.
장비가 술상에서 조표라는 사람에게 술을 권하니 조표가 사양한다. 이문열씨는 조표의 말을 이렇게 옮겼다.
ꡒ저는 천계(天戒)에 따라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ꡓ(이문열판 3권 60쪽)
원문을 보면서 그대로 옮긴 것이다. 천계가 무언지 잘 모르더라도 이해에 불편이 없다. 헌데 황석영 《삼국지》에서는 이전에 나온 한글 《삼국지》의 하늘에 맹세한 일이 있어서 술을 안 먹겠다ꡑ는 오류를 되풀이해버렸다.
ꡒ이 사람은 하늘에 맹세한 일이 있어서 술을 먹지 못하겠소이다.ꡓ(2권 58쪽)
사실 이 경우에 천계ꡑ는 선천적으로 어떤 기호(嗜好)가 금지되었다는 뜻이다.
그러니 조표는 술이 체질에 맞지 않는다고 사양한 것이다.
황석영씨의 책에서 장비는 대번에 욕을 퍼붓는다.
ꡒ이런 죽일 놈 같으니라고. 술을 안 먹겠다고?ꡓ(2권 58쪽)
그 점에서는 이문열씨 역시 마찬가지다.
ꡒ죽일 놈 같으니라고. 어찌하여 너만 홀로 마시지 않겠단 말이냐?ꡓ(이문열판 3권 60쪽)
원문을 제대로 옮기면 장비는 싸움하는 사나이(?殺漢)가 어찌 술을 마시지 않는가ꡑ 하며 술을 권한다.
죽음도 겁내지 않고 싸우는(?殺) 사나이(漢)가 어찌 술 마시기를 저어하겠는가? 반박하기 어려운 술꾼의 논리다. 술상의 룰이란 나름대로 있기 마련이고 장비도 술상에서 술을 권하는 방법대로 권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싸우는 사나이ꡑ가 양쪽 다에서 죽일 놈ꡑ으로 변한 것이다.
이 두 마디가 사소한 듯하지만 사실은 장비의 이미지를 흐리고 또 조표가 맹세를 어기는 비겁한 자로 변하는 결과가 나온다. 장비는 성급하니까 화를 잘 낼 수밖에ꡑ하고 단정해버려 난폭한 무뢰배로 그린다는 논리는 통하지 않는다. 장비의 이미지가 변형되는 오류는 다음에 또 나온다.
이처럼 기존 판본을 답습한 오류들이 황석영 《삼국지》에 너무나도 많다. 때때로, 무시로, 수시로ꡑ라는 뜻을 가지는 뿌스[不時]를 불시에ꡑ(7권 7쪽)라고 옮겨 뜻을 흐리는 정도는 이야기할 것도 못된다. 아주 사소한 예를 하나 들어보면 조조가 원소의 장수 문추(文醜)와 싸우다가 형세가 위급해지자 군사들을 높은 곳으로 피하게 한다.
조조는 채찍을 들어 양쪽 산언덕을 가리키며 말했다.(3권 33쪽)
가뜩이나 숫자가 적은 군사들을 양쪽 산언덕으로 갈라 보낸다니. 필자가 연구한 십여 종 중국어 《삼국지》들의 원문은 전부 난부[南阜], 즉 남쪽에 있는 흙산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이문열씨의 《삼국지》에서 바로 양쪽ꡑ이라는 말이 나온다.
문득 채찍을 들어 양쪽 언덕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문열판 4권 89쪽)
두 번째 부류는 기존 한글판들의 문제점을 의식하고 고치려 하다가 새로 만들어낸 오류들이다.
조조에게 포위된 관우가 잠시 항복하겠지만 이후에 반드시 유비에게로 돌아가겠다는 조건을 내세우니, 조조가 주저한다. 관우와 친한 장요가 조조를 설득한다.
ꡒ명공께서는 예(豫), 양(襄)땅의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유현덕이 운장에게 베푼 것은 그저 두터운 은의에 지나지 않습니다. 승상께서 이제 다시 두터운 은의로 그 마음을 사로잡는다면 운장이 어찌 승상을 따르지 않겠습니까?ꡓ (이문열판 4권 59쪽)
어딘가 이상스러운 이 말의 앞부분이 사실은 전국시대의 이름난 자객 예양(豫讓)을 예와 양 땅ꡑ으로 잘못 푼 것이고, 보통사람이라는 뜻인 중인(衆人)을 사람들ꡑ로 옮겼으며 국사(國士)는 빼먹었다는 것은, 필자가 이미 책에서 대표적인 오류로 지적한 바다. 원문 치뿌원위랑쭝런궈스즈룬후[豈不聞豫讓衆人國士之論乎]?를 알기 쉽게 풀어 쓰면 그 말은 이러하다.
ꡒ저 옛날 예양(豫讓)이 남이 자기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보답도 달라진다고 논한 말을 듣지 못하셨습니까? 자기를 보통사람으로 대하면 보통 사람 정도로 보답하고. 자기를 특출한 인재로 대하면 특출한 인재답게 보답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ꡓ
인민문학출판사본에는 이 대목에 주해가 붙어있다.
예양은 전국시기 사람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임금(國君)이 중인(衆人, 보통사람)을 대하는 태도로 나를 대하면 나도 보통사람의 태도로 그에게 보답하고, 만약 그가 국사(國士, 나라의 특출한 인재)를 대하는 태도로 나를 대하면 나도 국사의 태도로 보답하겠다.
주해만 보아서는 예양이 그런 말을 한 배경까지는 밝히지 않았지만, 그 뜻은 분명히 밝혀졌다. 그런데 바로 그 인민문학출판사본에 근거했다는 황석영씨의 《삼국지》에서는 말이 심하게 뒤집혀졌다.
ꡒ승상께서는 평범한 사람에 대한 대접과 국가적 인물에 대한 예우가 다르다던 예양을 말을 못 들으셨습니까?ꡓ(3권 12쪽)
이문열판에서처럼 인명이 지명으로 둔갑하지는 않았고, 충분히 뜻을 풀어 쓰려고 노력한 것은 좋았으나 뜻이 틀려도 여간 심하게 틀리지 않았다. 따라서 그 아래에 장요가 제시한 방법도 설득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세 번째 부류는 중국 고대문화에 밝지 못해 틀린 오류들이다.
창을 빼들고ꡑ(3권 25쪽) 따위의 괴상한 말들은 그저 넘겨버리고, 역시 장비의 예를 들어본다.
관우가 잠시 조조에게 항복했다가 장비를 만나자, 장비는 관우를 배신자로 단정하고 죽이려 한다. 관우는 아무리 자신의 결백을 설명해도 말이 통하지 않으니 조조의 장수를 죽여 증명하겠다고 말한다. 장비는 요구를 제시한다.
ꡒ그렇다면 내가 북을 세 번 울릴 테니, 그동안에 적장의 목을 가져오너라.ꡓ
관우가 응낙하고 말을 달려 나간다.
때마침 장비가 몸소 북채를 쥐고 북을 울렸다. 첫 북소리가 채 끝나기도 전에 관운장의 청룡도가 번뜩이더니 채양의 목을 쳐 떨어뜨렸다. (2권 85~87쪽)
이문열씨의 《삼국지》에서도 내용은 크게 다름없다.
겨우 첫 번째 북소리가 났을 때였다. 관공의 청룡도가 번쩍 들렸다 내려쳐지는 곳에 채양의 목이 날았다. 눈 깜짝할 새에 대장이 목 없는 시체로 변하는 꼴을 보자…ꡑ (이문열판 4권 159쪽)
북 한 번 치는 사이에 적을 죽인다면, 허수아비처럼 가만히 있는 사람의 목에 칼이 거의 닿기를 기다렸다가 북을 두드린다면 혹시 가능할지 모른다. 북을 세 번 치는 사이에 적의 장수를 죽이라는 장비 또한 얼마나 가혹한가? 단순한 장비니까 그럴 수도 있다거나, 관우는 무예가 놀라우니 가능하다고 풀이한다면 아무래도 황당한 느낌이 든다.
북을 세 번 울릴 테니ꡑ와 첫 북소리가 끝나기 전에ꡑ의 원문은 싼퉁구빠[三通鼓罷], 이퉁구워이찐[一通鼓未盡]이다. 고대 중국 독자들은 군대들의 북 치는 소리를 들을 기회가 많았기에 퉁[通]에 대한 판단을 쉽게 했는데, 현대의 연구자들은 반드시 고대의 군사제도를 조사해보고, 옛날 병서(兵書)들을 한바탕 뒤져야 북 치는 규정을 조금 알 수 있다.
또 옛날에 한자를 아는 한국인들을 상대로 하여 중국어 원문에 우리 글 토를 달아 읽게 만든, 이른바 현토본 <삼국지>( 한어 원문에 우리 글 토를 붙여, 張飛曰 하면 張飛는 曰가라사대 이런 식으로.) 시대에는 삼통고가 파하면ꡑ, 일통고가 미진하는데ꡑ 식으로 옮겨도 독자들이 대충 짐작해 넘어갔지만, 꼭 풀어써야 하는 한글시대에 번ꡑ으로 옮기면 점점 더 불합리한 이야기가 만들어진다.
퉁[通]이란 일정한 리듬과 규정에 따라 북을 한바탕 두드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상세한 정황을 설명하려면 너무 길어지는데, 알기 쉽게 비유하면 내가 악악악 세 번 소리칠 테니ꡑ나 처음 악 지른 소리가 끝나기 전에ꡑ가 아니라, 내가 노래 세 곡을 부르는 동안ꡑ이나 노래 한 곡이 끝나기 전에ꡑ라는 뜻이다. 노래 한 곡 뽑는 사이라면 적과 싸우다가 이기는 것도 가능하지 않는가?
원작을 보면 장비는 상당히 귀여운 점이 있으나 한글판에서는 많이 사라졌다.
물론 이런 것은 너무 특수성이 강하여 틀릴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한글판 《삼국지》들에서 이 부류의 오류들만은 너그럽게 보아주어야겠다.
네 번째 부류의 오류는 잘 모르면서 제멋대로 고친 대목들이다.
몰라서 틀린 것은 하는 수 없다 치더라도 틀릴 이유가 없는 대목에서도 이상하게 꼬이면 말이 안 된다.
관우가 왕충이라는 장수와 싸우다가 짐짓 달아난다. 왕충이 쫓아가 산허리를 돌아선 순간, 관우가 되돌아서서 달려들며 왕충의 갑옷자락을 움켜쥔다.
한 순간에 왕충을 사로잡아 옆구리에 끼고 본진으로 돌아오니…ꡑ(2권 250~251쪽)
원작에서 관우가 쥔 것은 레이쟈타오[勒甲?], 말하자면 갑옷을 졸라맨 띠였다. 그런 튼튼한 띠를 틀어쥐면 사람을 다룰 수 있어도 그 무슨 갑옷 자락을 쥐고 묵직한 장수를 가지고 논다면 무협소설의 협객들을 내놓고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 그리고 멀리 달아났던 관우가 무거운 장수를 옆구리에 끼고 온다는 것 역시 쓸데없이 힘만 빼는 짓이다. 원문에는 헝딴위마쌍[橫擔於馬上], 즉 말 위에 가로 걸쳐놓았다는 말이다.
아무튼 한글 《삼국지》를 읽다가 어딘가 부자연스럽고 논리에 맞지 않다고 느껴지는 대목의 80% 정도는 오역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싶다.
그런데 우리 글로 읽기에는 불편이 없더라도 이상하게 틀린 대목도 많다.
조조와 유비의 영웅담이 이문열씨의 《삼국지》에서처럼 심하게 틀리지는 않았으나, 조조가 유비를 영웅이라 지적하니 유비가 놀라 젓가락을 떨어트렸다가 장면을 수습하는 대목은 엉뚱한 오역이 생겼다.
ꡒ현덕은 천연스레 몸을 숙여 떨어뜨린 젓가락을 집으며 혼잣말처럼 되뇌인다.ꡓ(2권 218쪽)
오역과 변형이 많은 이문열씨의 《삼국지》에서도 이 대목은 머리를 수그려ꡑ라고 푸서우[俯首]를 제대로 옮겼는데, 황석영씨만은 몸을 숙여ꡑ라고 고쳤다. 217쪽에 있는 삽화에서 유비와 조조가 걸상에 높직이 앉아있으니 머리만 숙여서는 땅에 떨어진 젓가락을 집을 수 없다고 판단하여, 특별히 독자들을 위해 배려해 기어이 유비가 몸을 굽히도록 바꾸지 않았을까?
물론 명나라, 청나라 《삼국지》 판본들에도 유비와 조조가 걸상에 앉은 그림들이 있지만, 그 누구도 머리를 숙이며ꡑ를 몸을 숙여ꡑ 따위로 고치지 않았다.
1990년대에 중국의 관영TV에서 드라마 《삼국지》를 찍을 때, 고문으로 나선 학자가 가장 힘주어 요구한 점이 바로 인물들의 앉는 자세였다. 후한말년과 삼국시대에는 사람들이 흔히 바닥에 돗자리를 펴고 그 위에 꿇어앉았고, 탑(榻)이라고 하는 낮은 침대가 있어 눕거나 앉았는데 탑 위에 앉을 때에도 반드시 무릎을 꿇어야 예절에 맞았다. 때문에 소설에서 유비는 당연히 돗자리에 꿇어앉았고, 머리만 약간 숙여도 얼마든지 땅에 떨어진 젓가락을 집을 수 있었다. 후세 중국인들의 생활상을 생각하고 제멋대로 원문의 뜻을 뒤집어버린다면 충실한 번역이라 하기 어렵다.
다섯 번째 부류는 독자들을 위해 원문을 풀어쓰거나 해석을 붙이려 하다가 중국어에 없는 이상한 말뜻을 만들어낸 오류들이다. 그 몇 가지만 꼽아본다.
관우가 죽음을 겁내지 않는다면서 이렇게 말한다.
ꡒ내 비록 지금 궁지에 몰렸으나 죽음을 그저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 정도로밖에 여기지 않으니…ꡓ (3권 10쪽)
중국어의 성구(成句) 쓰스루구이[視死如歸]를 문자 그대로 풀면 죽음을 돌아가는 것처럼 본다ꡑ라는 말이다. 어디로 돌아가는가? 권위 있는 사전들에는 전부 죽음을 집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본다ꡑ고 해석했다. 황석영씨는 어림짐작으로 옮겼거나 시원치 않은 사전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사마사(司馬師)가 관구검(?丘儉)의 반란을 진압하려고 관원들과 상의하니 정무(鄭?)라는 사람이 방어를 주장한다.
ꡒ이는 주아부(周亞夫, 한 문제文帝 때의 명장 주발)가 즐겨 쓰던 계책입니다.ꡓ(10권 30쪽)
그러나 주아부(?~기원전 143)는 주발(周勃, ?~기원전 169)의 아들이고, 단 한 차례 전쟁에서 방어하는 계책을 썼다. 원문의 창처[長策]은 좋은 계책이라는 뜻이지, 즐겨 쓰는 계책ꡑ이 아니다. 한글 사전에서도 장책ꡑ은 1. 원대한 계책, 2. 승산(勝算)이라고 해석한다. 이 경우 창(長)은 좋다는 뜻이지 오래 썼거나 즐겨 썼다는 뜻이 아닌데, 고정된 합성어를 제멋대로 한 글자씩 뜯어보다가 생긴 오류다. 한글 《삼국지》들에서는 알듯하면 대담하게 뜯어고쳐 문제가 생긴다.
촉나라의 대신 초주(?周)가 강유(姜維)에게 보낸 글 수국론ꡑ은 또 어떻게 해석했을까?
초주는 마침내 수국론(?國論, 나라를 바로잡는 방법을 논함)을 한 편 지어 강유에게 보냈다.(10권 74쪽)
수(?)는 중국어에서 열 가지 이상의 뜻을 가지지만 무엇을 바로잡는다는 뜻은 전혀 없다. 교열(校閱)한다는 뜻이 있다 하여 나라도 바로잡는다고 비약하면 억지다. 조금만 품을 들여 관련 자료들을 찾아보았더라면 세상에 없는 말을 만들어내는 이런 오류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워낙 수국은 적국(敵國)이라는 뜻이었고, 정사 《삼국지》의 <초주전>에 수국론ꡑ의 전문이 분명히 기재되다시피, 초주는 적대적인 두 나라에서 사는 두 사람의 대화를 꾸며냈던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한 글자 한 글자 뜯어보다가 잘 모르겠으면 과감하게 빼버리거나 어림짐작으로 바꾸는 것도 한글판 《삼국지》들의 고질이다. 주창이 배원소의 입을 거쳐 관우에게 소개될 때, 그 특징으로 반레이츄우란[板肋?髥]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문열씨는 얼굴이 검고 규룡(?龍)과 같이 꾸불꾸불한 수염ꡑ(4권 151쪽)이라 했고, 황석영씨는 기골이 장대하며 메기 같은 수염을 길렀는데ꡑ(3권 79쪽)라고 썼다. 사실 츄우란ꡑ은 곱슬곱슬한 수염이고, 반레이ꡑ는 가슴과 등에 울퉁불퉁 튀어나온 근육을 가리키니 연변에서 나온 《삼국지》의 가슴은 쩍 벌어지고 곱실수염이 났는데ꡑ가 더 나은 셈이다.
이 정도는 넘어가도 괜찮겠지만 말마디를 명사만 보고 동사는 내버려두어 말뜻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조조의 장수 장요가 원소의 장수 문추를 쫓아가는데 문추가 활을 쏜다.
장요는 급히 고개를 숙여 화살을 피했는데, 날아든 화살은 장요의 투구를 맞추어, 투구 끈이 끊어지고 말았다.(황석영판 3권 34쪽)
장요가 얼른 고개를 숙여 날아오는 화살을 피했다. 그러나 화살은 장요의 투구를 맞추고 투구 끈을 끊어놓았다.(이문열판 4권 91쪽)
장요는 더욱 분발하여 쫓아간다. 투구 끈이 끊어지면 투구가 비뚤어지거나 벗겨지는데 죽고 싶어 쫓아갔을까? 또 화살이 투구에 부딪치는 진동에 투구 끈이 끊어진다면 끈이 너무 허술하고, 화살이 직접 투구 끈을 끊었다면 장요가 머리를 숙인 상태에서 화살은 투구 끈과 거의 평행선을 이루는데 도저히 끊을 수 없다.
원문은 화살이 투구에 맞으면서 쟝잔잉써취[將簪纓射去], 그대로 옮겨보면 잠영(簪纓)을 쏘아 보내버렸다ꡑ이다. 잠영은 괜찮은 한글사전들에 해석이 나와 있다시피 워낙 옛날의 급 높은 사람들이 관을 쓸 때 사용하던 비녀와 갓끈이고, 또 귀족들의 별칭도 된다. 몇 십 년 전에 나온 한글 《삼국지》들에서부터 같은 오류가 되풀이되는 걸 보면, 썩 이전에 우리 글로 《삼국지》를 옮긴이가 잠영의 원 뜻만 알았는데, 투구에 비녀는 있을 수 없다고 여겨 비녀라는 잠(簪)은 빼버리고 영(纓)을 끈으로 본 모양이다. 그런데 쏘아서 보내버렸다는 말을 잘 모르겠으니, 아예 끊어버렸다ꡑ로 풀었다.
이 정도는 넘어가도 괜찮겠지만 말마디("글자"를 "말마디"로 바꿨는데, 좋은지요?)를 명사만 보고 동사는 내버려두어 말뜻이 바뀌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중국어를 볼 때 이처럼 보어가 되는 명사의 뜻이 조금 이상한 경우에는 우선 동사에 근거하여 뜻을 파악해야 한다. 필자가 본 어느 명나라 판본 《삼국지》에는 그 보어가 쿠이잉(?纓), 즉 투구 끝에 단 장식용 술이 되어 오해의 소지가 없었다. 그러나 유행판본에서는 보다 점잖은 낱말을 골라 잠영ꡑ이라 하다보니 한글판들에서 부자연스러운 오류를 수없이 되풀이하게 만들었다. 사실은 장요가 머리를 숙이니 화살이 그 투구에 맞으면서 투구 정수리에 달아맨 장식용 술을 맞혀 떨어트린 것이다 이제 이 다섯 부류의 오류에 해당되지 않는 흠들을 살펴보자.
황석영씨의 《삼국지》 25회의 제목은 사로잡힌 관운장ꡑ이다. 원래 제목이 붙어있으니 대조할 수 있지만 맛이 너무나도 다르다. 이처럼 원서와 뜻이 달라지는 제목들이 많고, 매회 제목들의 두 구절이 대칭을 이루지 못해 들쭉날쭉한 것도 원작의 맛을 제대로 살렸다고 할 수 없다.
또 조조가 원소의 아들들을 추격하다가 일부러 요동까지 쫓아가지 않는 이야기는 33회에 나오는데, 106회에서 조조가 요동에 가지 않았더니ꡑ라고 해야 할 대목을 조조가 미처 요동에 이르기 전에ꡑ(9권 217쪽)로 틀린 것은 소설의 이야기를 바로 파악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시의 번역은 매우 어려워 완벽함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하지만 황충의 죽음에 이어 다시 금쇄갑을 걸치고(重披金鎖甲)라고 해야 할 말을 무거운 금쇄갑 떨쳐입고ꡑ(7권 203쪽)라고 틀린 따위는 범하지 말아야 할 오류들이다. 중국어의 구조로 보아 동사 앞에 붙은 글자 중(重)이 동사 뒤에 오는 명사의 규정어가 될 수 없거니와, 이때에는 중ꡑ을 무겁다ꡑ는 뜻의 쭝ꡑ으로 읽지 않고 다시라는 뜻의 충ꡑ으로 읽어야 함을 몰랐던 것이다. 소리 내어 읽는데 약하고 속으로만 뜻을 해독하는 한국식 중국어의 폐단이다.
그렇다면 중국에서 나온 우리 글 《삼국지》가 만족할만한 번역이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3. 연변의 한글 《삼국지》출판 상황

필자 수중에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출판된 두 가지 판본의 조선문《삼국지》가 있다. 모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인민문학출판사의 중국어 판본에 의해 옮긴 것이라고 밝혔는데, 옮긴이의 이름은 없다. 당시 여러 사람이 합쳐 옮기는 것이 상례였기에 누가 옮겼노라고 할 수 없었던 것이다.
1962년 8월부터 연변인민출판사에서 펴낸 《삼국지》(전4권)는 인민문학출판사 1957년 2판 《삼국지》에 의해 옮겼다고 설명했다. 한자어가 대량 들어가고 세로줄로 조판하였기에 지금 독자들은 읽기가 무척 힘들다. 필자는 어린 시절에 이 판본을 통해 《삼국지》와의 인연을 맺었으나, 훗날 중국어에 익숙해진 다음에는 너무 틀린 데가 많아 호감을 잃고 말았다.
잘 읽어보면 주해 부분은 중국어 판본에 따랐지만, 본문에 한국 고대소설의 말투가 대량 들어가고, 또 이 판본에 있는 오류들이 이문열판이나 황석영판에서 적잖게 나타나는 현상을 보면, 광복 전에 나온 한글 《삼국지》에 상당히 많이 의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조표의 말 천계ꡑ가 하늘에 맹세를 한적 있다ꡑ고 번역된 따위의 오류들이 엄청 많다.
아래에 한글 《삼국지》들에서 예외 없이 틀리는 말 한 마디를 살펴보기로 하자.
주유가 유비를 손권의 누이에게 장가들게 하여 유비를 장악하려 했는데 결국 실패한다. 제갈량 수하의 군사들이 주유를 풍자하는 말이 있다.
원문은 페이러푸런유우저빙(陪了夫人又折兵)이다. 그 뜻은 부인을 잃고 군사마저 손해 보았다ꡑ인데, 장사에서 밑천마저 잃었다는 식으로 톡톡히 밑졌다고 풍자하는 맛이 강하게 풍긴다. 그런데 연변의 《삼국지》에서는 그런 맛이 사라졌다.
ꡒ부인을 모셔다드리고 군사마저 패했구나.ꡓ(1960년대 연변 《삼국지》 2권 881쪽)
페이러푸런(陪了夫人)의 페이(陪)가 워낙 모시다, 동반하다ꡑ는 뜻이 있기는 하지만, 고대 중국어에서는 이 경우에 페이(陪)가 페이(賠)와 같이 밑지다, 손해 보다ꡑ는 뜻을 가진다. 또 중국 현대 작품에서나 속어에서도 이중으로 손실을 보았다는 뜻으로 페이러푸런유우저빙ꡑ이 심심찮게 나오는데 이럴 때에는 반드시 손해를 본다는 페이(賠)를 쓴다. 그런 말을 한 번이라도 듣거나 보았더라도 바로 옮길 수 있었는데, 엉뚱하게 틀려버렸다.
그 후 연변인민출판사에서는 1970년대에 가로줄로 조판한 《삼국지》(전3권)를 출판했다. 1978년 8월에 1권, 1978년 11월에 2권, 1979년 7월에 3권, 전후 근 1년의 사이를 두고 펴낸 판본을 끝까지 보느라고 필자도 상당히 속이 달았었다.
설명에는 인민문학출판사 1973년 12월 3판 《삼국지》에 근거해 번역했다고 하지만, 두 가지 판본을 대조해보면 새로 번역했거나 큰 수정이 이뤄진 것은 아니었다. 사실 당시 그 출판사에서 근무하시던 필자의 어머님이 1960년대의 《삼국지》를 펼쳐놓고 적벽의 싸움ꡑ 부분을 원고지에 베껴 옮기시던 모습을 본 기억이 있다. 세로줄로 된 옛 판본은 조판하기 불편하기에 글씨를 곱게 쓰는 사람들로 하여금 가로줄 원고지에 다시 옮기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쳤고, 또 그런 원고의 기초 위에서 조금씩 다듬었으니, 1960년대의 판본과 비교해 볼 때 말마디는 약간 다르지만 오류는 거의 다 바로잡히지 않았다. 앞에서 든 부인을 모셔다드리고ꡑ도 버젓이 살아있다. 연변대학의 장의원(張義源), 김일(金日) 두 선생이 《중한번역교정(中韓飜譯敎程)》이라는 책에서 중국어?한국어 번역에서 나타나는 대표적인 오류로 꼽았을 정도다. 두 분의 견해가 한글 《삼국지》들에서 나타나는 고질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지적했다 싶어 아래에 옮긴다.
문제는 번역문의 앞 구절과 뒤 구절이 무슨 의미를 연계시켜 말했는가? 누가 누구의 부인을 무슨 사연으로 어디에 모셔다 드렸으며 그것이 군사마저 패하게 된 것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등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데 있다. 글 뒤의 사실을 생각하고 밝혀보려 했다면 번역자는 이런 정도의 미미한 번역문을 내놓지는 않았을 것이다. 원래의 뜻은 「부인도 잃어버리고 군사마저 패했도다」이다. 너무도 경솔한 번역이었다.(《중한번역교정(中韓飜譯敎程)》25쪽, 연변대학출판사 2003년 1월 초판 1쇄)
그러면 이문열씨의 《삼국지》에는 이 말이 어떻게 나왔을까?
부인을 바치고 군사까지 꺾였구나! (이문열판 6권 303페이지)
황석영씨의 《삼국지》도 시원치 않기는 마찬가지다.
이제 손부인도 보내고 군사마저 잃었구나! (황석영판 5권 158쪽)
바치고ꡑ나 보내고ꡑ는 원 글자에도 없는 뜻이거니와 비꼬는 냄새도 싹 가셨다. 역시 너무 경솔하다는 평가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금년 4월에 연길 서점에서 1996년 7월에 연변인민출판사에서 내놓은 1978~79판본 《삼국지》의 제2판(전4권) 을 보았는데,  한자어가 꽤나 줄어들고,  "모셔다드리고"는 그래도 "잃고"로 바로잡혔으나, "하늘에 맹세한 적 있다" 따위 대다수 오류는 여전히 원상 유지하였다.
연변에서 나온《삼국지》들을 살펴보면 고대소설의 말투를 버리지 못했고 한자어가 대량 나타나 새 세대들이 보기에는 부담스럽다. 그러나 원문에 충실해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기에 몰라서 틀린 부분은 많아도 아는 척 하며 뜯어고친 곳은 없어 엉뚱한 오류는 적고, 주해부분은 현대 중국어판에 의거했기에 거의 다 정확하다. 이 책을 읽을 때에는 이야기꾼이 보는 사람 앞에 마주앉아 이야기하는 듯한 구수한 맛이 있어 알쏭달쏭한 말들을 건너뛰면서 줄거리를 보기에는 참 좋다. 그러나 중국어 원본을 본 다음에는 오류들이 눈에 뜨여 더 읽어볼 흥미가 없어진다.
그런데 왜 한국이나 중국이나를 막론하고 오류투성이 책들이 나왔을까? 한글 《삼국지》들이 시원치 않은 현상의 뿌리를 찾아보고 싶다.


4. 《삼국지》번역의 어려운 점과 한글판에 오류가 거듭 생겨나는 원인

한국에 진정한 《삼국지》가 없다는 말을 꽤나 들었다. 또 인터넷에서 《삼국지》 관련 자료들을 검색해보면 황당한 견해들이 수두룩하다. 별로 팔리지 않은 《삼국지》들은 논할 가치도 없겠지만, 잘 팔린 《삼국지》들에서도 수많은 오류들이 생겨난 원인을 나름대로 밝혀본다.
우선 옮긴이들이나 교열한 이들의 중국어 실력에 문제가 많다. 글자의 뜻은 한 글자 한 글자 그럭저럭 짐작해가면서 이해하더라도 한 마디의 의미는 전혀 왜곡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중국어 실력이 부족한 데서 기인한다. 때문에 앞에 썼듯이 합성어나 명사들마저 해석이 틀릴 때가 많고 한마디 말이 전혀 다른 뜻으로 변해 전체가 불합리한 인상을 준다.
다음으로는 《삼국지》를 만만하게 보고 너무 쉽게 달라붙으면서 소설만 한 두 권 쥐고 옮겼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러므로 더 깊이 들어가면 중국 고대역사와 문화에 대한 지식의 부족이 근본 원인이라고 해야겠다.
한글 《삼국지》를 보면 별로 어렵지 않은 듯 하고, 중국어 원본도 대충 읽어보면 쉬운 듯 하다. 시장성만 내다보고 손을 대다가는 웃으면서 시작해 울면서 끝내기 쉬운 것이 《삼국지》 같은 중국 고전작품들의 번역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면 여기서 《삼국지》를 이해하고 옮기는데 있어서 어려운 점을 찾아보기로 하자.
우선 글이나 사람들의 말에 옛날 일이 자꾸 등장한다. 중국 역사에 밝지 못하면 자칫 뜻을 뒤집어버리기 쉽다. 예양의 말이 바로 그런 경우 가운데 하나다.
다음에는 고대에 유행되던 속어가 많다. 현대에도 쓰이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데 원나라, 명나라시대에 퍼졌다가 사라진 속어들은 뜻풀이가 틀리기 쉽다. 방통이 조조와 손권을 손금 보듯 한다ꡑ고 말한 장쌍관원[掌上觀文]이 한글 《삼국지》들에서는 손바닥에 있는 글 읽듯 볼 수 있는데ꡑ(이문열)나 손바닥에 적힌 글 보듯 하는 터에ꡑ(황석영)로 되어 모사 방통이 커닝하는 학생 꼴이 되는 식이다. 일본어 《삼국지》를 보지는 못했으나 일본어판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한글판들의 사정이 이러하니 일본어판의 수준도 그 정확성은 믿기 어렵겠다.
셋째로 원작에는 끼워 넣은 시(詩)와 고문(古文)이 많다. 사실 《삼국지》에 나오는 시들은 수준이 별로 높지 않은 것이 대부분이다. 워낙 어느 일을 논하기 위해 간신히 시의 규율에 맞춘 정도의 시들이 많다. 그 때문에 모종강은 나관중본에 나오는 시골선비 수준의 엉터리 시들을 많이 잘랐지만, 일단 조조 일파를 욕하는 시나 유비 집단을 칭찬하는 시는 보류하거나 약간 다듬었고, 또 당나라 송나라 명시인들의 작품을 조금 바꿔 넣었다.
시는 약간 잘못 옮기더라도 본문을 이해하는 데에 큰 문제는 되지 않으나, 고문은 워낙 내용을 더 잘 설명하기 위하여 들어갔는데 틀린 데가 많으면 이야기의 흐름이 이상해진다. 유비가 한중왕으로 올라가면서 황제에게 바치는 글에 저우잰얼다이, 삥잰주지[周監二代, 幷建諸姬]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을 바로 옮기면 이러하다.
주나라는 전대의 두 왕조인 하(夏)나라, 은(殷)나라의 교훈을 받아들여 왕의 일가족인 희(姬)씨들을 제후로 많이 봉하였으니ꡑ 이 글이 한글 《삼국지》들에서는 어떻게 되었을까?
주나라를 살피건대 주실(周室)은 종친 외에 희씨(姬氏)도 왕으로 세웠으나ꡑ(이문열판 8권 107쪽)
주(周)가 2대(은, 하 殷夏)에 걸쳐 제희(諸姬, 주나라 왕족들)를 나란히 세움은 (황석영판 7권 12쪽)
어느 누가 조선을 살피건대 조선 왕실은 종친 외에 이씨(李氏)도 대군(大君)으로 세웠으나ꡑ라고 쓰거나 혹은 이성계의 조선이 신라와 고려에 걸쳐 여러 이씨들을 나란히 세움은ꡑ이라고 쓴다면 진짜 웃기는 글이 아니겠는가?
시나 고문을 제외하고 사람들이 말에서 이야기하는 고서의 글들은 한글 《삼국지》들에서 절대다수가 틀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 오나라가 망한 다음 손씨 가문의 한 사람이 옛날 손책은 기업을 세웠는데, 오나라의 마지막 임금 손호는 나라를 버렸다고 한탄한다. 그 다음 황석영씨의 《삼국지》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ꡒ유유한 푸른 하늘이여, 어찌 이런 사람을 내었단 말인가!ꡓ(10권 238쪽)
원문의 유우유우창톈, 츠허런자이(悠悠蒼天, 此何人哉)!는 중국어를 좀 아는 사람들이 글자 그대로 옮기면 확실히 이런 말이 나온다. 그런데, 이 말은 워낙 《시경(詩經)》의 왕풍 서리(王風 黍離)에 나오는 시구(詩句)였으니, 이때 사람 인(人)은 어질 인(仁)과 같은 뜻을 갖는다. 하늘이 너무나도 어질지 못하다는 뜻이다. 우리 말 식으로 하면 하늘도 무심하구나!쯤 되겠다.
이런 점에서는 이문열씨의 《삼국지》가 보다 나은 셈이다.
ꡒ넓고 넓은 푸른 하늘아, 이 어찌된 일이냐!ꡓ(이문열판 10권 423쪽)
넷째로 원서에도 틀린 곳들이 있다. 인민문학출판사 판본이 가장 좋다고 알려지기는 하였으나, 주로 본문과 인명, 지명 그리고 뜻은 엇비슷하지만 청나라 시대의 말로 된 것을 원나라, 명나라 시대의 말로 되돌려놓는데 신경을 쓰면서도 고문 부분은 별로 살펴보지 않았다. 때문에 위에서 말한 유비가 한중왕이 되어 올린 글에도 틀린 글자들이 있는데, 한글판들에서는 틀린 말을 억지로 풀려고 시도하여 말이 괴상하기 짝이 없게 되었다. 사실 정사 《삼국지》에 실린 원문을 한번이라도 대조했더라면 틀릴 리 없었을 것이다.
다섯째로 어떤 글자나 낱말이 고대 중국어와 현대 중국어에서 다른 뜻을 갖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찬쿠이[慙愧]가 지금은 부끄럽다ꡑ는 뜻만 가지지만 고전소설에서 찬쿠이ꡑ라고 하면 요행이구나!라는 말이 된다. 한글 《삼국지》들에는 현대 중국어 식으로 고대 중국어를 풀이하여 뜻이 달라진 경우가 너무 많다. 이와 같이 분석해보면 알 수 있듯이 좋은 판본 하나를 손에 넣었다 하여 반드시 좋은 번역 작품이 나온다고 보장할 수는 없다. 반드시 여러 가지 판본과 관련 자료들을 두루 갖춰야 한다.
하나만 예를 들어보자. 이문열씨의 《삼국지》에서 조조를 평가한 허소(許邵)가 관상쟁이 수준으로 나타나 필자가 그 오류를 책에서 지적했는데, 후에 인터넷에서 보니 어떤 한국인들은 한 술 더 떠서 관상쟁이 허소가 조조를 대인ꡑ이라고 부르면서 굽실거린다고 되어 있었다. 사실 조조보다 다섯 살 이상(150~195)인 허소는 후한 말년에 사람을 잘 알아보기로 이름난 명사(名士)였지 관상쟁이가 아니었다.
고대 중국의 인간관계를 몰라 사람들이 함부로 반말을 하는 따위의 오류는 일일이 지적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때문에 한글 《삼국지》를 보면 중국원본과는 달리 교만한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옛날 중국에서 대화할 때 상대방의 벼슬을 들어 말하면 아주 존경하는 것이고, 상대방의 자(字)를 부르면 상당히 존경하는 것이니 반드시 아주 높임체나 두루 높임체로 옮겨야 한다. 또 자기 이름을 대면서 말하면 자신을 상대보다 좀 낮은 지위에 놓기에 역시 적어도 하오ꡑ 정도로 옮겨야 하는데 한글 《삼국지》에서는 낮춤체가 되어 이래라 저래라ꡑ식으로 나온다.
인간관계를 하나 예로 들어보면 소설에서 형양 태수 왕식과 낙양 태수 한복을 황석영씨는 집안끼리 절친한 사이였다ꡑ(3권 63쪽)라고 썼고, 이문열씨는 집안끼리 매우 가까운 사이였다ꡑ(4권 132쪽)고 썼다. 원문은 친가(親家)인데 고대에 친척집이라고 할 때에는 친쟈ꡑ로 읽지만, 워낙 그 말은 글에서나 나타날 뿐  현실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고대부터(이 네글자를 새로 보탰습니다) 평소에 늘 쓰이는 말로는 칭쟈ꡑ라고 읽는 사돈ꡑ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왕식과 한복은 그저 친하거나 가까운 사이가 아니라 사돈 사이였던 것이다. 이쯤하면 《삼국지》에 달려들기 전에 알아두어야 할 것이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가지 않을까?


5. 올바른 한글 《삼국지》를 만들려면

진정한 한글 《삼국지》가 나오려면 한글 문장력과 중국어 실력을 내놓고도 중국 자료들을 두루 갖춰야 한다. 우선 소설 원본으로는 적어도 인민문학출판사본, 나관중본, 모종강본 등 서너 가지는 있어야 대조하면서 최선을 기대할 수 있다.
다음 관련 역사책으로 필수적인 것으로는 진수(陳壽)의 정사 《삼국지》-배송지(裴松之)의 주해가 있는 판본이어야 함, 범엽(範曄)의 《후한서(後漢書)》, 사마광(司馬光)의 《자치통감(資治通鑑)》이 있어야 한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와 반고(班固)의 《한서(漢書)》그리고 방현령(房玄齡) 등이 편찬한 《진서(晉書)》도 보는 편이 좋다. 간체자를 잘 알면 중국 현대 학자들의 저서도 참고로 하면 좋다.
또 참고서적으로는 《사서오경(四書五經)》과 《손자병법(孫子兵法)》, 《시경(詩經)》, 《전국책(戰國策)》 따위 선진(先秦) 시대의 고서들과 고대 문화, 군사제도 따위를 연구한 책들도 보아야 한다. 《삼국지》를 연구한 책들도 많이 볼수록 좋다. 사전도 질 좋은 <고대한어사전>, <성어사전(成語辭典)>이 있어야 웃기는 해석을 날조하지 않는다.

이처럼 자료들을 다 갖춘 다음, 없어서는 안 되는 것은 옮긴이의 안목이다. 원본이 틀렸으면 그 틀린 데를 바로잡아야지 엉터리로 합리화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중국어 원본에 하자가 있어 이야기에 악영향을 미친 예가 하나 있다. 황석영씨와 이문열씨는 틀려도 여간 심하게 틀리지 않았다. (다른 곳을 자르더라도 이 대목만은 보존해주시길 바랍니다.)
조조가 여포와 싸우다가 포위를 뚫지 못해 애타할 때, 장수 전위가 나선다. 전위의 손에는 철극 한 쌍이 쥐여져 있다. 그는 몸을 날려 말에서 뛰어내리더니, 쌍철극은 옆구리에 끼고 단극(短戟) 10여 개를 두 손에 나눠 쥐고서, 수하 군사들에게 명한다.
ꡒ내 뒤로 적들이 10보 안에 들어오거든 알려다오.ꡓ
그리고는 화살을 뚫고 뛰기 시작한다. 여포의 기병 수십 명이 말을 몰아 급히 뒤를 쫓는다.(황석영판 1권 268쪽)
군사들이 ꡒ10보요!ꡓ 소리치니 전위가 다시 5보에 들어오면 알리라 하고, 5보가 되었다는 말을 듣자 전위가 싸우기 시작한다. 전위는 번개같이 몸을 돌려 손에 쥐고 있던 단극을 한 자루씩 날린다. 하나에 적을 하나씩 죽여 10여 명을 거꾸러뜨리니 남은 무리들은 더 이상 뒤쫓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일제히 흩어져 달아난다. 전위는 다시 말에 뛰어올라 한 쌍의 철극을 휘두르며 적군 속으로 뛰어들었다.(위와 같은 쪽)
대부대가 앞으로 내달려 포위를 뚫어야 하는데 적들이 앞장선 장수를 뒤쫓느니 뭐니 하는 것이 상당히 우습다. 말에서 내려 앞으로 뛰어가는 전위를 적군이 뒤로 바싹 달려들었으면 전위가 탔던 말은 어디에 있고 그에게 거리를 보고하는 군사는 어디에 섰는가? 또 조조는 어디에 있는가? 이문열씨는 이런 문제점을 발견하고 합리적인 해석을 가하려 애썼다.
전위는… 한 쌍의 쇠창(쌍철극)을 들고 말에서 몸을 날려 땅에 내려서며 크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쌍철극을 말안장에 걸고 던질 수 있는 짧은 창 십여 개를 모아 쥐면서 따르는 군사에게 말했다.
ꡒ만일 적이 등 뒤 열 발자국 안으로 들어오거든 나를 불러라.ꡓ
전위는 그 말과 함께 조조 앞에 서서 화살을 무릅쓰고 성큼성큼 걷기 시작했다. 그걸 본 여포의 군사 수십 기가 말을 달려 쫓아왔다. 말 탄 사람과 걷는 사람의 경주이니 사이가 금세 가까워질 것은 뻔한 이치였다. 곧 몇 기가 전위의 등 뒤 열 발자국 안으로 들어왔다. 뒤따르던 군사가 알리니 전위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다섯 발자국 안으로 들어오면 알리라 한다. 어지러이 날아드는 화살을 짧은 창으로 쳐내느라 뒤를 돌아볼 틈이 없었던 것이다. 조조 부근에는 아직도 지키는 군사가 많았으나 다시 오래잖아 여포의 기마 몇 기가 전위의 등 뒤 다섯 발자국쯤 되는 곳까지 이르렀다. 군사가 급히 다시 소리친다. 그러자 전위는 힐끗 돌아서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짧은 창을 연달아 날렸다. 구슬픈 비명과 함께 다섯 발자국 안으로 들어왔던 여포의 군사들은 모두 말 위에서 자취를 감추었다.(이문열판 2권 309~310쪽)
유감스럽게도 틀린 데가 너무 많다. 우선 보(步)는 시대에 따라 그 길이가 변하기는 했지만 간단한 발자국이 아니다. 철극도 옆구리에 끼거나 안장에 걸지 않았다. 황석영씨와 이문열씨는 다 마찬가지로 합리한 번역문을 만들려고 원문에는 없는 등뒤ꡑ와 뒤쫓는다ꡑ, 돌아선다ꡑ는 말을 숱하게 보탰지만 역시 그래도 스쳐지나가기에는 석연치 못하다. 원본에 여포의 기병들이 쭈이쯔[追至] 즉 쫓아왔다ꡑ고 썼기에 합리화하려고 덧붙인 것이다.
그런데 지금 중국의 유행판본들에서 모두 쭈이쯔ꡑ라고 했지만, 사실은 오류다. 워낙 나관중본에는 그 기병들이 찐챈[近前], 즉 앞으로 가까이 다가왔다고 썼다. 모종강본에서는 보다 점잖은 말로 바꾸려고 바싹 박근(迫近)하였다는 뜻으로 바꾸려고 했으나, 그만 퍼쯔(迫至)가 잘못 찍혀 쭈이쯔(追至)로 되었음이 분명하다는 것은 필자의 연구결과다. 모종강본과 나관중본을 종합하여 줄거리를 옮겨보면 다음과 같은 글이 나온다.
전위는 말에서 뛰어내려 쌍철극을 땅에 꽂고, 짧은 단극 십여 개를 손에 끼더니 종자를 돌아보며 말했다.
ꡒ적이 십 보 거리에 들어오면 불러라!
그리고는 머리를 숙이고 화살을 무릅쓰며 성큼성큼 나아갔다. 여포군의 화살을 잘 쏘는 기병 수십 명이 가까이 다가왔다. 종자가 십 보라 알리니, 전위는 또 다섯 보에 들어오면 알리라 한다. 종자가 소리친다.
ꡒ적이 이르렀습니다!ꡓ
전위가 화극을 날려 찌르는데 하나에 적군 하나씩 어김없이 말에서 떨어진다. 잠깐 사이에 십여 명을 죽이자 남은 무리들은 다 도망갔다. 전위는 되돌아와 몸을 날려 말에 올라 쌍철극을 끼고 적진으로 달려 들어갔다. 여포의 장수들은 막아내지 못하여 다 달아났다.
조조와 다른 사람들은 그 자리에 멈춰서고, 전위만 홀로 먼저 나아갔다. 그는 머리를 숙여 투구와 갑옷으로 화살을 받으면서 전진하였기에 적을 볼 수 없어 뒤에 있는 종자로 하여금 거리를 알리게 한 것이다. 그러다가 적이 코앞에 닥쳐왔다고 하자 구부렸던 허리를 펴면서 짧은 단극을 날려 적군을 찔렀다. 훨씬 합리적이지 않은가?
이처럼 똑같지 않은 여러 판본들을 비교하고 연구해야 바른 글이 나온다.
어떤 중국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ꡒ현존하는 2, 30종 《삼국지》를 전부 컴퓨터에 입력하여 디지털화한 다음, 가장 완벽한 《삼국지》를 만들어내자.ꡓ
헌데 그런 것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어느 말을 고르는가 하는 맨 마지막의 선택은 역시 어느 한 두 사람이 정하지 않겠는가? 모든 사람들을 다 만족시키기는 부족할 것이다.
완벽이란 천사의 꿈이어야지, 인간의 바람이어서는 아니 된다ꡑ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그렇지만 완벽함을 바라지는 않더라도 유치하게 틀린 오류들을 싹쓸이해버리기는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충분한 원본, 풍부한 자료, 높은 안목을 갖추면 완벽하지는 못하더라도 제대로 된 한글 《삼국지》를 번역해낼 수 있지 않겠는가? 그러자면 우선 기존 한글판에 매달리는 악습부터 버리고, 철저히 원저와 관련 자료에 근거하여 재조명을 시도해야겠다.
2003년 9월 베이징에서
<끝>





주연 (2004-04-30 07:45:33)
리동혁 선생에게 한 가지 질문하겠습니다. 나관중(모종강) 삼국지에는 자체적으로 불합리한 내용, 구절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것을 완벽히 번역해도 불합리한 내용이 되고 맙니다. 그래서 이문열 등 한국의 작가들이 자의적으로 번역하여 처리하곤 합니다. 당연히 독자의 환영을 받고요. 그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요?
주연 (2004-04-30 07:58:07)
위의 전위의 경우에는 리동혁 선생의 추리가 그런대로 맞을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추리해도 도저히 말이 안되는 내용이 수없이 있는 것입니니다. 따라서 위의 리선생의 주장은 공허하게만 들리고 마는 것입니다. 물론 이문열과 황석영의 경우에는 리선생의 충고에 주의를 기울여야 겠지만요.
리동혁 (2004-05-03 07:00:48)
긴 글을 다 읽어보시고 견해까지 내놓으셔서 대단히 고맙게 생각합니다. 저는 <삼국지가 울고 있네>에서도 주로 중국어 원문의 원뜻과 많이 다른 부분을 지적햇지요. 상식이하의 오역과 잘못 된 풀이 때문에 한글판 삼국지들에 중국어본보다 훨씬 많은 불합리한 부분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원본의 문제는 제가 글에서 어느 연구자의 말을 인용했듯이 여러 종의 삼국지를 참조해 불합리한 부분을 최소한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고 봅니다. 자의 해석이나 번역은 우선 내용을 정확히 파악한 기초에서 이뤄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틀리게 옮겼거나 풀이한 삼국지는 나름대로의 재미가 있더라도 원작과는 너무 거리가 멀다고 봅니다.
리동혁 (2004-05-03 07:16:43)
그리고 삼국지 원본에 불합리한 내용, 구절이 수없이 많다고 하셨는데, 만약 미신이나 도술, 따위 논리적으로 불합리한 내용까지 포함한다면 그럴지 몰라도(그런 것을 빼면 고전 삼국지가 아니지요. ^^) 구절들은 틀린 말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자세히 따지면 이야기를 엮다보니 전투 이야기 따위가 실제와 다르게도 되었지만요. 한글판의 문제는 우리 글로 읽기는 좋은데 사실은 원래 의미와 차이난다는 것입니다. 잘못 된 삼국지를 통해 중국과 중국인을 어림짐작하다가 골탕 먹은 사실들을 제가 잘 알기에 원래 뜻과 차이가 많이 나는 한글판을 싫어하는 것입니다. 글에서 지적한 다섯 가지 부류의 오류들을 판본마다에서 매 부류마다 몇 백 개씩 골라낼 수 있으니 문제가 심각하지 않습니까? 오늘 이상입니다. 이후에도 좋은 견해 알려주시기 바랍니다.
주연 (2004-05-04 09:36:04)
왕랑은 전형적인 문관입니다. 제갈양이 격분시켜 말에서 떨어져 죽게 만듭니다. 이런 내용, 미신이나 도술 따위를 불합리하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전형적인 문관 왕랑이 큰칼을 들고 말을 달려 싸우는 장면을 불합리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유주태수는 잘못된 관직명이지만 불합리한 구절을 만든다고 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관우가 허도에서 황하로 가는데 지명들이 꺼꾸로 가게 나온다든지, 서주성 형주성 잘못된 지명들이 불합리한 구절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연의에 수없이 있습니다. 그래서 김운회교수는 번역으로 해결한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하였습니다.

바른 번역의 연의가 학술적으로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일반독자에게는 그보다 작가가 자의로 번역한 연의가 더 필요합니다. 이문열 삼국지가 대성공을 한 이유는 그런 탓입니다. 이것은 출판 선진국인 일본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에서도 크게 성공한 삼국지는 어느정도 작가가 자의적으로 번역한 삼국지였습니다. 이에 대해 리동혁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합니다.
*리선생과 인터넷상에서나 대화를 나누게 되어 기쁩니다.
주연 (2004-05-04 16:36:47)
연의에 수없이 있는 불합리한 내용에 비하면 전위가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하는 내용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황석영은 번역본을 밝혔습니다. 그의 그른 번역을 지적한 리선생이나 정원기 선생의 지적은 옳고 정당한 것입니다. 리선생은 이문열의 그른 번역을 조목조목 지적하였습니다. 모두가 옳은 내용들입니다. 그런데 이문열은 번역본을 밝히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리선생의 지적의 큰 맥락은 공허하게도 보이는 것입니다.
주연 (2004-05-05 10:25:36)
삼국지 원본에 불합리한 내용이 거의 없다고 하였는데 고대소설 삼국지의 경우에는 확실히 그러합니다. 그러나 현대의 초베스트셀러 이문열 삼국지의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집니다. 원본 삼국지에는 현대의 아마추어 독자에게 불합리한 내용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이문열이 그러한 불합리한 점을 친절히 해설해주어 그의 삼국지가 이와 같이 대성공을 한 것입니다. 물론 이문열의 해설의 태반은 그른 것이지만 아마추어 독자들은 그것을 바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삼국지가 대환영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원본 삼국지에는 불합리한 점이 거의 없다고 전제를 하면서 이문열 삼국지를 비판하는 것은 논리적 오류에 빠지게 되고 말지 않겠습니까. 이문열은 리선생의 비판 중 20%만 받아들일 가치가 있다고 했다고 합니다. 번역상이라면 당연히 100%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나 논리상 오류를 지적하는 것이라면...

삼국지연의의 판본과 지은이를 둘러싼 문제(민경욱)
희망과 한계 남긴 ‘삼국지 논쟁’ (국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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