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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원기(2003-10-12 17:31:26, Hit : 8879, Vote : 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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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세술의 달인, 사마의
                   처세술의 달인, 사마의
                                                                                         --<강원랜드>  03년 10월호에 실린 글 원문

  한세상 살아가노라면 여러 가지 상황을 만나게 마련이다. 성공과 실패에 환호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고난과 역경 속에 괴로워하는 사람이 있다. 특히 최근에는 툭하면 고층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살하거나 인터넷 사이트의 동호회를 통한 동반자살이 부쩍 늘어났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이러한 행위는 각기 성격과 주관이 다른 인간 군상과 저마다 존재 이유가 다른 만물 사이에서 원만한 조화를 이루어내지 못함으로서 발생한 결과라 할 수 있다. 결코 독자적으로는 존립할 수 없는 우주의 보편적 원리를 체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누구나 어떠한 경우에 처하든 주어진 여건에다 노력으로 조화를 이룸으로써 자기 인생 항로의 키를 바람직한 방향으로 전환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바로 "처세술"이라 할 수 있다. 삼국지 속에는 다양한 인물들의 다양한 처세술이 펼쳐진다. 바로 "처세술의 보고"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삼국지 무대가 되는 후한 말 약 100년간은 중국역사상 공전절후의 혼란기인 위진남북조의 서막이 오른 시기이다. 400년 동안이나 한 제국의 틀을 지탱해오던 유가와 법가의 통치 규범은 무너지고 약육강식이 판치는 현실 앞에 수많은 민초들은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와중에서도 벌떼처럼 일어나 제각기 자신의 야망을 실현시키려는 영웅호걸들의 각축 속에 전쟁은 끊일 날 없이 계속 되었다. 수없이 나타났다 사라져간 영웅들, 그들 역시 적자생존의 냉엄한 법칙 앞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이러한 역사적 혼란이 심하면 심할수록 더욱 고도의 처세술이 발견되는 법이다.


  삼국지에는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이 많이 등장하기로 유명하지만 그 중에서도 일세를 호령한 영웅 조조, 유비, 손권을 단연 처세의 달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결국 이들을 중심으로 충성과 반역, 의리와 배신이 난무하며 이합집산을 거듭한 인간군상이 명멸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천하 영웅인 그들 역시 치명적인 실책이 없을 수가 없었다. 조조의 일생일대 실책은 장송을 받아들이지 못한 일이다. 서촉 지도를 품고 제 발로 찾아온 장송을 군말 없이 받아들이기만 했더라면 일찌감치 유비집단은 발붙일 땅조차 없었을 것이고, 조조 생전에 천하통일이 이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능력보단 외모를 중시하는 바람에 얻은 실책이라고 할 수 있다. 유비의 최대 실책은 이릉대전의 패배에 있다. 그는 사적인 의리와 공적인 의를 혼동했다. 의형제 관우의 피살에 대한 개인적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고 총체적 국가 역량을 기울여 동오 정벌에 나선 게 실패의 원인이었다. 결국 참담한 패배를 당하고 그 실패에서 얻은 병으로 인하여 백제성에서 쓸쓸히 눈을 감고 말았다. 이는 유비의 인간적인 결점이자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젊은 시절의 손권은 군주적 자질이 빼어났던가 보다. 그래서 조조마저 "자식을 얻으려면 손중모 같은 아들을 낳아야 된다"고 공언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그 역시 문제가 많았다. 만년에는 젊은 시절의 진취성과 총명이 어디로 달아나버렸는지, 치매와 허욕에 빠져 허덕이는 혼군으로 전락하고 만다. 죄 없는 충신을 죽이는가 하면, 자식간의 불화를 조장시킴으로써 종국에는 자신이 세운 동오를 패망으로 이끄는 발단을 마련하게 된다.


  이처럼 나름대로 자신의 뜻을 이룬 처세의 달인들도 때로는 치명적인 실수가 있는 법이다. 그러니 세상살이에서 뭐니뭐니 해도 중요한 건 뒷마무리를 잘해야 될 일이다. 손권의 경우를 보면서 최근 국내 굴지의 재벌가 자살 사건이 뇌리에 떠오르는 건 웬일일까?


  그러면 삼국지 인물 가운데 가장 완벽한 처세의 달인은 누구일까? 그런 인물은 단 한 사람, 바로 사마중달, 즉 진조의 기틀을 마련한 사마의라고 할 수 있겠다.


  서기 239년의 일이다. 위나라 명제인 조예가 세상을 하직할 때였다. 임종을 맞이한 조예는 유비가 제갈량에게 부탁했던 것처럼, 태위 사마의와 대장군 조상을 불러, 당시 겨우 여덟 살에 불과한 황태자 조방의 앞날을 부탁한다. 나이 어린 조방이 황위를 계승하자, 사마의와 조상이 공동으로 보좌하게 된다. 그러나 절대강자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법, 두 사람 사이에는 상대를 제거하려는 암투가 불꽃을 튀기게 된다. 이때 황가의 종친이요 국가 원로대신의 자제였던 조상이 먼저 선수를 치게 된다. 그는 3명의 아우를 장군으로 승격시킨 뒤 어림군을 통솔하여 황궁과 수도 경비를 맡도록 하고, 그와 동시에 수하에 있던 5명의 심복에게도 중책을 맡긴다. 하안·등양·정밀 등에게는 전체 관리의 인사권을 장악하게 하고, 필궤란 자는 경찰총수로 수도의 치안과 문무백관에 대한 감시를 주관하였으며, 이승이란 인물은 수도의 외곽인 경기지역 전체를 다스리는 장관으로 삼는다. 그 외에도 컴퓨터 두뇌를 가진 「꾀주머니」환범을 특별보좌관으로 삼아 항상 곁에 두었다. 그야말로 조상집단이 국가의 모든 실권을 독차지하게 된 것이다.


  절체절명에 처한 사마의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할 지경이었다. 손가락이라도 까닥 잘못 움직이거나 입이라도 언뜻 잘못 떼다간 언제 어떤 죄목으로 제거될지 알 수가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백전노장이었다. 조상을 비롯한 그의 추종자들은 하나같이 귀족 출신 자제들이었다. 그들은 타고난 두뇌는 뛰어났을지 몰라도 인생이나 전투에 대한 실전 경험이라곤 털끝만치도 없는 위인들이었다. 이들이 어찌 산전수전 다 겪은 처세의 달인에게 상대가 될 수 있었겠는가? 수없이 계산을 거듭한 사마의는 결단을 내렸다. 관직에 있던 두 아들마저 사표를 내게 한 뒤, 자신은 말기 암 환자가 된 것처럼 기막힌 연극을 꾸몄다.  


  비록 향락 속에 깊숙이 빠져 있었던 조상이었지만 유일한 라이벌인 사마의의 존재만큼은 잊지 않고 있었다. 때마침 형주자사로 임명된 이승이 하직인사를 올리러 가는 기회에 사마의의 와병이 사실인지 아닌지 진실 탐지를 지시한다. 교활하기 짝이 없는 사마의였다. 이승이 방문한 뜻을 훤히 꿰뚫어 본 그는 상대방의 계책을 역이용하기로 한다. 관을 벗어버리고 머리를 산발한 채, 두꺼운 이불을 덮고 침상에 누웠다. 시비 두 명을 양쪽에 두고 부축을 받아야만 겨우 거동할 수 있을 만큼 위중한 것처럼 행동한다. 대화를 나눌 때도 귀가 먹어 잘 듣지 못하는 것처럼 가장을 하는가 하면 물을 마실 때도 일부러 옷자락에 질질 흘려버린다. 뿐만 아니었다. 겨우 이어지는 목멘 소리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미 몸이 노쇠한데다…… 중병까지 들었으니…… 곧 죽을 게요. 자식이 둘 있으나 모두 용렬하니……, 대장군께 제발 잘 좀 거두어달라고 전해 주구려…….」


  이승은 이와 같은 사마의의 연극에 감쪽같이 속아넘어갔다. 부리나케 조상에게 달려가 보고를 한다. 조상에게는 너무나 기쁜 소식이었다. 백면서생에 불과했던 그는 더 이상 사마의 따위는 안중에 없었다.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사마의는 마침내 기회를 포착하고 쿠데타를 일으킨다. 정변에 성공한 그는 조상과 그 아우들 그리고 5명의 심복은 물론이요, 그에 따른 삼족까지 몰살시켜버린다. 봉건왕조시대의 정치 행태란 이토록 잔혹했던 것이다. 어쨌든 이런 완벽한 처세술의 결과로 사마의의 손자 대에 가서는 마침내 사마 씨 천하가 되고 만다.


  그런데 《진서·선제기》에는 진 명제가 자신의 조상들이 나라를 찬탈하기 위해 지나치게 잔혹한 짓을 저질렀다고 탄식하는 기록이 보인다. 참으로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를 두고 보자면 이 세상에는 모든 대상을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처세술이란 존재할 수 없는가 보다.


  세상에 태어나 평온한 일생을 마치고 자신의 안방에서 조용히 천수를 다할 수 있다면 행복한 삶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적지 않은 사람들이 파란만장한 역경 속에서 그나마 불행히도 요절하거나 질병과 비명에 가는 사람이 있다. 그 장례식 또한 온 국민의 애도 속에 비장하게 치러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죽은 사체에 침이나 욕설이 난무하는 경우도 있다. 인지가 발달하고 역사적 교훈이 축적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현상은 반복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여전히 자신의 욕망을 이루지 못해 괴로워하거나 남들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안달하는 사람들이 있다.




장합준애 (2003-10-18 21:15:18)
복잡한 현 시대를 살아가려면 적절한 처세술이 필요하죠. 복잡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는 저에게 좋은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평소 몸가짐에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하고., ㅎㅎ
난세간웅 (2003-10-19 15:02:39)
처세술이라면 가후도 빼놓을 수 없지요.., 수차례나 주인을 바꾸고도 품위를 잃지 않는 난세의 모사... 그런데 그 와중에도 자기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이 여느 무리에 비할 때 단연 돋보입니다.
백마의종 (2003-10-26 16:54:11)
조운도 주인을 수차례나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있지요. 물론 연의에서 나관중의 묘사가 힘을 많이 보탰기는 하지만요..
백년지계 (2003-11-06 23:34:52)
진궁같은 이는 이런 처세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요...저는 진궁이 여포에게가서 그의 의중을 몰라주는 여포를 보고 몇번이나 안타까웠는지 모릅니다
그의 말만 들었어도 여포는 조조를 잡고 역사가 어떻게 바뀌었을지 모르는데,
그런걸 알며서도 끝까지 여포에게 충성을 다하고 죽은 진궁은 과연 처세술이
모자랐던걸까요? 글을 읽다가 갑자기 의문이 들어서 적어봤습니다 ^^;(앞뒤가 맞나 모르겠네 ㅡㅡ;)
神醫화타 (2003-11-23 14:16:40)
요즘이나 옛날이나 어찌보면 교활할수도 있는 처세술의 달인이 주도권을 움켜지고 있습니다... 안타깝지만 우리도 그에 어쩔수 없이 동화되어가게 되구요.
안화영 (2005-04-13 21:47:37)
처세술이라니... 그참 어리석구료?
그건 모두 다 운이오.
사마의가 삼부자와 함께 협곡에서 죽지 않은 것을 포함해서 말이오!

우리 사회의 삼국지현상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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