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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삼연(2009-08-06 22:32:48, Hit : 5604, Vote : 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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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갈량은 걸출한 군사 전문가가 못되는가?


6. 제갈량은 걸출한 군사 전문가가 못되는가?


이중텐의 <품삼국>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실제로 제갈량은 걸출한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지만 걸출한 군사 전문가라고 하긴 어렵습니다. 그의 군사적 성과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며 그의 군사적 재능 또한 후세의 전설처럼 그렇게 심오한 것 같지 않습니다. …… 제갈량은 문학 작품과 민간 전설 속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여러 차례 기막힌 계책을 낸 것 같지도 않습니다. 기막힌 계책을 잘 냈던 사람은 곽가입니다. 제갈량의 특징은 -역사학자는 물론이고 그 자신의 평가도 모두- ‘삼가고 조심했다’는 것입니다. 진수는 그가 ‘군대를 다스리는 데는 뛰어났지만 기묘한 전략을 세우는 점에서는 부족했으며 백성을 다스리는 능력이 장수로서의 지략보다 뛰어났다’고 말하고 있는데, 진실에 접근한 평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제갈량은 소하 같은 인물이었지 장량이나 한신 같은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품삼국>7쪽, <삼국지 강의>45-46쪽)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에 관해서는 역사적으로 논란이 적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오늘날에 와서 이 문제는 하나의 보편적 관점에 도달했기 때문에 전문가 사이의 견해 차이가 크지 않다. 이를 4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소설이나 민간 전설에 나오는 제갈량은 대부분 신격화 되어 있다. 그래서 이중텐도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은 후세의 전설처럼 그렇게 심오한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이 말은 옳은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실제로 제갈량에게 군사적 재능이 없다거나 역사적으로 걸출한 군사가 전문가가 못된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것이다.

(2)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에 관해서 맨 처음으로 이의를 제기한 사람은 진수인데, 그는 <삼국지 제갈량전>에서 두 가지 문제를 제기했다. 하나는 ‘군대를 양성하고 관리하는 데는 뛰어났지만 기묘한 전략을 세우는 점에서는 부족했으며 백성을 다스리는 능력이 장수로서의 지략보다 뛰어났다’는 것이며, 또 다른 하나는 ‘장수로서 임기응변하는 지략이 그의 장점이 아니기 때문이 아닌가?’라고 한 말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 많은 학자들은 진수가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었던 처지를 더욱 중시한다. 즉 진수는 진晉나라의 대신이었다는 점이다. 제갈량의 호적수였던 사마의는 바로 진 황제 사마염의 조부였던 마당에 진수가 어찌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을 찬양할 수 있었겠는가 하는 말이다. 제갈량의 재능을 높이 살 경우 상대적으로 사마의의 재능은 낮추어야 할 판이니 사마염의 신하였던 진수가 무슨 배짱으로 제갈량의 장점을 있는 그대로 늘어놓을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진수는 어쩔 수없이 목소리를 한껏 낮춘 자세로 제갈량을 칭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3) 제갈량의 업적에 관해 비교적 공정한 평가를 내린 문장 두 가지를 보기로 하자.

하나는 삼국시대 오나라 사람 장엄張儼이 <묵기黙記 술좌편述佐篇>에서 제갈량의 능력에 관해 평가한 내용이다.

공명은 파촉에서 일어나 하나의 주州를 차지하고 위라는 엄청난 대국과 겨루었는데 군사와 백성들이라곤 위나라의 9분의 1밖에 되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 오나라에 조공을 바치고
(이는 글을 쓴 사람이 오나라 사람이기 때문에 자국 중심으로 표현한 과장법임) 북방의 적에게 대항했다. 공명은 농업과 군사 일, 그리고 형법 등을 잘 정비했기 때문에 수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파죽지세로 기산까지 쳐 들어가 황하와 낙수의 물로 말의 목을 축일 뜻을 품을 수 있었다. 중달(사마의)은 10배나 되는 땅과 거기 있는 수많은 군졸을 기반으로 견고한 성지와 강대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자기 자신의 보전에만 급급할 뿐 적을 깨뜨리지 못하고 제갈량이 제멋대로 날뛰도록 내버려 두었다. 그러니 제갈량이 만약 일찍 죽지 않았더라면 뛰어난 전술로 재빠른 진격이 감행되었을 것이다. 그리되면 량주와 옹주는 물론 중원 지역의 군사들까지 전쟁의 고통을 피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승부 또한 일찌감치 결정되었을 것이다. 옛날 춘추시대 정鄭나라의 자산子産은 국가를 잘 다스려 감히 이웃 나라들이 자기 나라를 넘볼 수 없도록 하였거니와 촉나라 재상인 제갈량이야말로 그와 비슷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청나라 학자 황은동黃恩彤이 <삼국지 방증>에서 제갈량의 군사적 재능에 관해 논한 글이다.

진수가 <삼국지>에서 제갈량은 용병술에 능하지 못하다고 했는데, 이는 그가 <제갈량전>을 제대로 읽지 않았기 때문이다
(잠깐: <제갈량전>은 바로 진수가 지은 책이다. 그런데도 진수가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한 것은 <삼국지>를 집필할 당시의 진수가 처한 입장을 고려한 표현이다). 건흥 6년(228년) 제갈량은 기산으로 진격했는데 마속이 지시를 어기고 실패한 가운데서도 기회를 타고 서현 백성 1,000여 가구를 한중으로 이주시켰다. 같은 해 겨울 다시 산관으로 나갔는데 군량이 떨어져 퇴각하는 가운데서도 적장 왕쌍을 죽였다. 건흥 9년(231년) 또 기산으로 진격했는데 군량이 떨어져 퇴각하는 가운데서도 적장 장합을 쏘아 죽였다. 이상의 내용만 살펴보아도 제갈량은 출사 이래 군량 부족 문제로 여러 차례 좌절한 경우가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매번 퇴각할 때마다 적군의 상장을 죽여 군대의 사기를 진작시켰다는 점이다. 이를 두고 볼 때 어찌 제갈량에게 용병술이 부족하다고 할 수 있는가?

(4) 제갈량의 행동은 평생토록 ‘삼가고 조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군사일 역시 이 행동 범주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래서 준비가 없는 전투는 하지 않았고, 무리수를 두지 않았으며, 위험한 짓은 결코 자초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기회가 포착되면 기습작전을 감행하거나 전혀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상대를 제압한 경우도 적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삼가고 조심했다’는 말은 제갈량의 용병 습성을 설명하는 말이지 용병술이 훌륭하지 못했다는 말은 아닌 것이다. 이러한 제갈량의 용병 습성은 다음 두 가지 원인으로 분석할 수 있다. 즉 하나는 제갈량이 타고난 성격이 주도면밀하고 신중했기 때문이며, 다른 하나는 그가 처한 당시의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촉나라처럼 백성이 적고 국토가 작은 약소국이 강대한 위나라를 대항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했을까? 그것은 무엇보다 실수의 최소화와 필사적인 대항 자세였을 것이다.

자, 이상의 내용을 알고도 여전히 제갈량은 군사적 재능이 없다거나 걸출한 군사 전문가가 아니라고 할 것인가? 이중텐의 논리는 역사 전문가의 견해라기 보다는 진수가 한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는데 불과하다.                    



                              





하진은 재야 지식인 단체의 대표였는가?
적벽의 화공에서 제갈량은 과연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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