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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삼연(2009-06-01 02:00:40, Hit : 5918, Vote : 778
 http://www.samgookji.com
 ‘박망파의 화공’에 대한 진실

5. ‘박망파의 화공’에 대한 진실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박망파를 불태운’ 전역은 제갈량이 기획하고 연출한 화공계로 그가 산을 나온 후 조조군을 깨뜨린 첫 번째 공이라 묘사되어 있다. 그래서 이중텐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박망파를 불태운 일은
(역사상) 실재했던 일이지만 그 불은 유비가 놓은 것으로(선주는 복병을 설치하고선 어느 날 아침 스스로 주둔지에 불을 놓고 달아나는 척했다. 하후돈이 추격하지만 복병에게 격파 당한다), 제갈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일이었다.(<품삼국>6쪽, <삼국지 강의>44쪽: 이 역문은 <삼국지 강의> 역문과 조금 다름)

사서의 기록을 살펴보면 이 전투가 제갈량이 산을 나오기 전에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확실한 연대가 명기되어 있지 않다. <선주전>에 의하면 건안 5년(200년)에서 건안 12년(207년) 사이에 있었던 것으로 되어 있다. <자치통감>에 의하면 이 전역은 건안 7년(202년), 즉 유비가 유표에게 의탁한 지 2년째 되던 해에 발생한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제갈량이 산에서 나오기 5년 전의 일이었다. 이 전역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삼국지 선주전>과 <이전전>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대략 다음과 같다.

유표가 유비를 시켜 박망에서 하후돈과 이전 등의 공격을 막게 했다. 오래 지나 선주가 복병을 설치하고선 어느 날 아침 스스로 주둔지를 불태우고 거짓으로 도망치는 척했다. 하후돈의 무리가 추격했지만 복병에게 격파 당했다.(<삼국지 ․ 선주전>)

유표가 유비에게 북침을 하게 하여 엽(葉)현에 이르렀다. 태조(조조)는 이전에게 하후돈을 따라서 유비를 막게 했다. 유비가 어느 날 아침 자기 진영을 불태우고 달아나자 하후돈이 각 부서의 군사를 인솔하여 추격하려 했다.
이전이 말했다.
“적이 까닭 없이 퇴각했으니 틀림없이 복병이 있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남쪽 길은 좁고 수목이 무성하므로 추격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하후돈은 그 말을 듣지 않고 우금과 함께 추격에 나서면서 이전을 남겨 그곳을 지키게 했다. 하후돈의 무리는 과연 적군이 친 매복 속으로 들어갔고 전세는 불리했다. 이전이 구원하러 가자 이를 본 유비는 곧 철수했다.(<삼국지 ․ 이전전>)

그렇다면 박망파를 불태웠다는 이 사건은 대체 어떻게 돌아가는 일일까?
우선 위의 기록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유비가 스스로 불을 질렀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만큼은 두 사람의 전기 내용이 동일하다. 즉 유비가 스스로 자기 영채를 불태우고 남쪽으로 도망치는 척하며 조조군을 좁고 초목이 무성한 길로 유인한 다음 숨겨두었던 복병으로 크게 깨뜨렸다는 것이다. 이렇게 자기 진영을 불태우는 행위는 퇴각 후 적군이 아군의 진지를 활용하지 못하게 하는 작전으로 고대 전쟁 때 흔히 사용하던 방법이었다.

그러나 영채를 불태운 지점은 두 전기의 내용이 서로 다르다. <선주전>에선 박망이라 하지만 <이전전>에서는 엽현이라 기록 되어 있다. 즉 엽현 경내에 주둔하던 유비가 자신의 영채를 불사르고 남쪽 박망현 경내의 초목이 무성한 곳으로 물러났다가 조조군이 추격하자 복병을 출격시켜 깨뜨렸다는 것이다. 이것이 전후 상황으로 살펴볼 때 합리적인 해석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상의 내용을 종합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릴 수 있다.

(1) 불을 지른 지점은 박망이 아닌 엽현이다.
(2) 불을 지른 대상은 유비 자신의 영채이다.
(3) 이 전쟁은 화공이 아니라 매복을 통한 한바탕의 기습전이다.

즉 영채를 불태운 지점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엽현이다. 설사 한 발 물러서서 박망이라 인정할지라도 <삼국지연의>에서 말하는 ‘박망파’와는 전혀 다른 개념이 된다. 따라서 이중텐이 이해하고 있는 박망파의 화공이란 역사 기록을 제대로 살피지도 않고 지껄인 말임을 알 수 있다.





적벽의 화공에서 제갈량은 과연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았는가?
촉한에는 과연 사관(史官)이 없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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