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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삼연(2009-05-05 15:35:23, Hit : 4608, Vote : 7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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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촉한에는 과연 사관(史官)이 없었는가?
4. 촉한에는 과연 사관(史官)이 없었는가?

촉한에 사관이 없었다는 말은 종종 들어보는 말이다. 이 말은 특히 자신의 역사적 지식을 상당히 자부하는 사람들의 입에서 튀어나온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일이다. 청산유수와 같은 달변을 쏟아낸 이중텐 역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더구나 유비의 촉한에는 그때까지 역사서를 편찬하는 사관이 없었습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촉한 관련 기록들은 결국 ‘눈으로 보거나 귀로 들은 것’에다 ‘길거리에서 주워들은 말’들을 보탠 것일 뿐입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우리는 후대 역사학자들의 고증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후대 역사학자들의 견해 역시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촉한 정권이 ‘나라에 사관을 두지 않아 천자의 언행을 기록하는 사람도 없었다’라고 한 진수의 평을 두고 당대(唐代)의 사학가 유지기(劉知機)는 ‘제갈량을 심하게 모함한’ 터무니없고 모욕적인 말이라고 보았습니다. 그야말로 갈수록 아리송한 말이지요(원본 5쪽, 한국어 역본 37쪽 -단, 이 역문은 한국어 역본과 조금 다름).

촉한에 사관이 없었다는 말의 출처는 <삼국지 후주전> 말미에 나오는 진수의 평어이다. 즉 진수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나라에 사관을 두지 않아 천자의 언행을 기록하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지나간 일들이 많이 유실되었고 자연재해나 이변들도 기록되지 않았다. 제갈량이 나라를 다스리는 데에는 능했지만 이러한 일에는 주도면밀하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러면 촉한에는 사관이 있었단 말인가 없었단 말인가?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내용을 근거로 알아보기로 하자.

(1) 유지기는 <사통(史通) 곡필(曲筆)편>에서 이렇게 말했다. <삼국지> 촉한 기록에 자연재해나 이변에 관한 기록이 없다고 하는데, ‘자귀에서 누런 기운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다(<선주전 장무 2년>)’거나 ‘새떼가 장강 물에 추락했다(<후주전>에 인용된 <한진춘추>)’는 등의 기록들은 무엇인가? 만약 사관이 없었다면 어느 기록을 근거로 나온 말이란 말인가? 또 ‘<삼국지 촉서>에는 왕숭(王崇)을 동관랑(東觀郞: 동관랑이 바로 사관임)의 자리에 넣고, 허자(許慈)에게 예의를 관장하게 했다. 또 극정(郤正)은 비서랑이 되어 익주에 있는 서적들을 널리 찾았는데, 이는 참고자료를 충분히 준비하여 사적을 기록하는 근거로 삼은 것이다. 그런데도 진수가 촉한에 사관을 두지 않았다고 하다니, 이 어찌 제갈량을 심하게 모욕한 말이 아니란 말인가?’

(2) <삼국지 후주전>에 ‘경요(景耀) 원년(258). 사관이 경성(景星)이 나타났다고 아뢰자 대사령을 내리고 연호를 바꾸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경성이란 옛 사람들이 서성(瑞星) 또는 덕성(德星)이라고 부른 혜성을 말한다. 경성이 나타나면 크게 상서로운 징조라 여기고 감옥에 갇힌 죄수들을 대대적으로 석방하거나 연호를 바꾸었다. 이 기록은 촉한에 사관이 있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아닐 수 없다.

(3) 현재 우리가 볼 수 있는 촉한 역사에 대한 기록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초주(삼국시대 촉나라 사람)의 <촉본기>, 진술(陳術: 삼국시대 촉나라 사람)의 <익부기구전잡기>, 왕은(王隱: 삼국을 통일한 진나라시대 사람)의 <촉기>, 진수(삼국을 통일한 진나라시대 사람)의 <익부기구전>, 왕숭(王崇: 삼국을 통일한 진나라시대 사람)의 <촉서>, 손성(孫盛: 삼국을 통일한 진나라시대 사람)의 <촉세보>, 습착치(삼국을 통일한 진나라시대 사람)의 <한진춘추>, 상거(삼국을 통일한 진나라시대 사람)의 <화양국지> 등이다. 이상의 기록들은 바로 촉한의 역사자료가 일반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 형편없이 부족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다.

자, 이렇게 되면 독자들은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아직도 이중텐처럼 <사통>의 작가 유지기의 말이 ‘갈수록 아리송해'진단 말인가? 어느 누가 감히 촉한에는 사관이 없었다고 단정할 수 있단 말인가?(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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