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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삼연(2009-04-15 13:34:19, Hit : 7130, Vote : 771
 http://www.samgookji.com
  이중텐의 <삼국지강의>에 나타난 오류

이중텐은 중국 CCTV의 ‘백가강단’이란 프로그램에서 삼국지 강의를 하여 일약 스타가 된 인물이다. 그는 이 강의를 통해 삼국지 열풍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강의 내용을 담은 책을 판매하여 벼락부자가 된 사람이기도 하다. 그의 강의 내용을 엮은 <품삼국>은 2백만 부가 넘게 팔려나갔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발 빠른 번역을 통해 <삼국지강의>란 제목으로 소개 되었다. 그러나 밝은 면에는 항상 어두운 면이 동반하는 법이다. 이중텐의 화려한 말솜씨와 폭발적인 인기 이면에도 전혀 예기치 못한 오류들이 숨어 있었던 것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들 오류란 게 ‘석학’이라 불리는 그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 기초적인 문제들이란 점이다. 그래서 그런지 한때 중국내 인터넷 까페에서 이러한 오류들이 공공연히 나돌자, 이중텐 지지자들은 ‘털을 불어 헤쳐 결점을 찾는 행위’라거나 ‘계란 속에서 뼈다귀를 찾는 행위’라며 강력히 비난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 진실은 결국 세상에 알려지게 되어 있는 법이다. 여기서는 그 중 몇 가지를 골라 소개하기로 한다.

1. 손권은 언제 황제가 되었는가?





위촉오 삼국 중에 제일 먼저 황제의 자리에 오른 사람은 조조의 아들 조비란 것은 삼국지 마니아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서기 220년 정월, 일세를 호령하던 영웅 조조가 세상을 떠나자 그 아들 조비가 그 해 10월에 수선대를 쌓고 헌제의 선양을 받아 황제의 자리에 오르니, 이가 바로 사서에 기재된 위 문제이다.
그 다음은 유비인데, 유비는 조비가 황제가 된 이듬해, 그러니까 서기 221년 4월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유비는 성도 무담산 남쪽에서 황제로 등극하여 국호를 한(漢), 연호를 장무라 하니, 이가 곧 사서에 기재된 촉한의 소열제이다.
그런데 손권은 언제 황제의 자리에 올랐을까? 일반 사람들은 대체로 222년으로 알고 있다. 이것은 추측이다. 조비가 220년, 유비가 221년에 올랐으니 손권은 그 뒤를 따라 222년일 것으로 추측하는 것이다.
그러나 손권의 경우는 달랐다. 당시 손권은 좀 곤란한 처지에 있었다. 219년에 형주를 습격하면서 관우를 잡아 죽였기 때문에 촉의 원수가 된 상태였다. 언제 촉의 공격을 받을지 모를 불안한 입장에 처한 손권은 위의 지원을 얻을 궁리에 골몰했다. 그래서 유비가 황제의 자리에 오른 221년에 위나라의 속국이 되기를 자청하여 그 해 11월에 위 문제 조비로부터 오왕(吳王)이란 작호를 받는다. 그야말로 조비의 신하가 된 셈이다. 손권이라고 어찌 황제가 되고 싶은 욕망이 없었겠는가? 하지만 그는 국가의 안위를 우선적으로 고려했던 것으로 보인다. 서기 223년 4월에는 여러 신하들이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를 간했지만 끝내 거절했다는 기록도 보인다. 굴욕적인 오왕의 신분으로 장기간 참고 견딘 그는 서기 229년에 가서야 드디어 황제의 자리에 올라 연호를 황무로 고치니, 이가 곧 사서에서 부르는 오나라 대제(大帝)이다. 조비보다는 9년, 유비보다는 8년이나 늦은 시기에 황제의 자리에 올랐으니, 손권이란 인물의 범상치 않은 면을 알 수 있다.
이 문제에 있어 이중텐은 일반인들의 지식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다. 그는 CCTV의 강의에서는 물론, 강의 내용을 책으로 정리한 <품삼국>에서도 222년이라고 버젓이 적어놓고 있다(상권 본문 1쪽, 한국어 역본에서도 동일함). 문학가라면 몰라도 역사학자 입장에서는 결코 실수해서는 안 될 지극히 기초적인 문제이다. 이 때문에 중국내 사학가들은 이중텐을 사학의 문외한이라고 부른다.

2. 유비도 주유를 칭찬했단 말인가?




<삼국지연의>에 나오는 주유란 인물은 속이 좁아터지고 질투심이 너무 강해 두 차례나 제갈량의 충동질에 화를 참지 못하다가 결국엔 화병으로 죽고 만다. 그러나 이는 역사 사실과는 크게 다른 이야기이다. 그러고 보면 주유는 삼국연의의 왜곡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인물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이중텐도 <품삼국>에서 사서의 기록을 인용하며 주유는 ‘성격이 쾌활하고 도량이 넓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그리고 동시대 사람들의 평가도 높아 유비는 ‘기상과 도량이 자못 크다’며 찬양했고, 장간 역시 ‘아량이 넓고 고상한 취미를 갖추었다’는 말로 주유를 추켜세웠다고 한다(원본 3쪽, 한국어 역본 36쪽).
그러나 이중텐은 여기서 한 가지 중대한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 즉 장간이 한 말은 몰라도 유비가 한 말은 완전한 오해라는 점이다.
그와 관련된 일은 이렇다. 서기 210년(건안 15년), 유비가 남군을 빌릴 목적으로 동오의 경성으로 가서 손권을 만난다. 주유가 이 사실을 알고 손권에게 글을 올리기를, 유비는 효웅이니 절대로 땅을 빌려주지 마시라. 그보다는 차라리 유비를 동오에다 붙잡아 두고 미녀들을 붙이고 유락시설을 제공하는 등 여러 방법으로 환대를 하여 그가 품은 야심을 소멸시키도록 하는 편이 훨씬 득이 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손권은 유비를 붙잡아 두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남군도 빌려주지 않는 방향으로 이 일을 마무리한다. 목적 달성을 이루지 못한 유비는 상당히 섭섭했을 것이다. 마침내 그가 귀로에 오르자, 손권이 그의 마음을 위로할 목적으로 호화 유람선 위에다 큰 잔치를 베풀고, 장소, 진송, 노숙 등 10여 명의 부하들과 함께 송별의 자리를 마련한다. 이때 손권과 유비는 단 둘이서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 주유에 관한 말이 나왔다. 유비가 탄식하며 이르기를 “공근(주유의 자)은 문무와 책략이 만인 중에 빼어나고 ‘기량(器量)’이 너무 큰 것 같으니 남의 신하 노릇을 오래하지는 않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이는 중간에서 훼방을 놓은 주유를 헐뜯는 말이었다. 즉 이때 유비가 표현한 ‘기량(器量)’이란 의미는 ‘기상과 도량’이 아닌 ‘야심’이란 뜻으로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손권은 주유를 깊이 신임하고 있던 터라 유비의 말을 듣지 않았고, 주유에게 피해를 입히려던 유비는 결국 헛소리를 한 셈이 되고 말았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원래 비방하는 뜻으로 쓰인 말을 이중텐은 찬양하는 말로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사람이라면 눈감아 줄 수 있는 일이지만 사서를 자세히 살펴야 할 사학자로서는 있을 수 없는 오류를 범한 경우이다.(계속)





‘주랑’이란 말이 과연 ‘멋쟁이 주유 선생’이란 뜻인가?
조조 측 사료를 근거로 한 적벽대전 분석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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