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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삼연(2009-03-19 00:14:40, Hit : 6229, Vote : 825
 http://www.samgookji.com
 조조 측 사료를 근거로 한 적벽대전 분석


3. 조조 측 사료를 근거로 한 적벽대전 분석

* 조공이 적벽에 이르러 유비와 싸움을 벌였지만
불리했다. 이에 큰 역질이 돌아 많은 관리와 군사들이 죽자 하는 수 없이 군대를 이끌고 돌아왔다. 유비는 마침내 형주의 강남 여러 군을 얻게 되었다. <무제기1>
* 후에 태조께서 형주를 정벌하고 돌아왔는데, 파구에서 역질을 만나 선박을 불태우고 탄식하기를, ‘봉효만 살아 있었다면 나를 이 지경까지 만들지 않았을 텐데!’라고 했다. <곽가전2>
* 태조가 다시 소리쳤다. ‘슬퍼구나 봉효여! 아프구나 봉효여! 아깝구나 봉효여!’ <부자3>
* 공은 유비가 선박을 불태우자 군사를 이끌고 화용도를 통해 걸어서 돌아오는데, 진흙탕을 만나 길이 통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풍까지 몰아쳤다. 모든 이병(羸兵: 노약병)들을 시켜 풀을 짊어지고 다니며 진흙탕을 메우도록 하니 기병들이 그곳을 지날 수 있었다. 군사들이 그곳을 빠져나오자 공은 크게 기뻐했다. 장수들이 그 까닭을 묻자 공이 대답하기를, ‘유비는 나의 적수이지만 계책이 조금 늦다. 만약 일찍 불을 놓았더라면 우리 무리는 하나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유비 역시 뒤미처 불을 놓았으나 미치지 못했다. <산양공재기4>
* 건안 13년(208), 손권이 군사를 이끌고 합비를 포위했다. 당시 (조공의) 대군은 마침 형주를 치러 갔는데, 역질을 만났다. (그래서) 장군 장희 한 사람만 파견하여 혼자서 1천명의 기병을 인솔토록 함과 아울러 여남군의 병력까지 인솔하여 합비의 포위를 풀도록 했는데, 다시 많은 사람이 역질에 걸렸다. <장제전5>
* 태조께서 형주를 정벌하자 유비가 동오로 달아났다. 모사들은 손권이 반드시 유비를 죽일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정욱이 추측하기를 ‘손권은 이제 막 즉위하여 아직 천하에서 두려워 할 대상이 못됩니다. 조공께선 천하무적인데 지금 막 형주마저 탈취하여 그 위엄이 강남을 진동시켰습니다. 그러니 손권에게 비록 모략이 있다고는 하나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비에게는 영웅의 명성이 있는데다 관우와 장비는 만 명이라도 대적할 용장들이니 손권은 틀림없이 유비를 도와 우리의 진격을 막으려 할 것입니다. 이 환난이 끝나면 그들 세력은 반드시 분리될 것입니다. 그러나 유비는 도움을 얻어 이미 자신의 목적을 이룬 마당이니, 손권은 더 이상 유비를 죽일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손권은 과연 유비에게 병력을 많이 주었고, 이로써 태조의 공격을 막았다. <정욱전6>
* 건안 13년, 태조께서는 형주를 깨뜨리자 장강을 따라 동으로 내려가려고 했다. 가후가 간하기를 ‘명공께서는 예전에 원소를 격파했고 지금은 한남(漢南)마저 손에 넣으셨으니 위엄스런 명성은 멀리까지 퍼지고 군대의 세력은 막강해졌습니다. 만약 형주의 부유한 물자로 관리와 병사들에게 상을 내리시고, 이곳 백성들을 어루만지고 안정시켜서 그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생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한다면 구차히 군사들을 수고롭게 하지 않고도 강동을 귀순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러나 태조는 이 말을 듣지 않았고, 진군하다가 마침내 이익을 얻지 못했다. <가후전7>
* 신 배송지가 보건대 가후의 계책은 당시의 상황에 합당하지 않은 것으로 생각됩니다. 당시 한수와 마초의 무리가 여전히 관서(關西)에서 이리처럼 돌아보고 있었으니, 위 무제는 영도(郢都: 강릉)에 안주할 것이 아니라 위엄으로 오회(吳會)를 회유해야 함이 명백했던 것입니다. 형주라는 곳은 손권과 유비가 반드시 뺏으려고 할 땅입니다. (그러나) 형주 사람들은 유비의 영웅다운 자태에 감복하고 손권의 무략을 두려워한 지가 오래되었으니, 실로 조조의 장수들이 제어할 수 있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그 때문에 조인을 남겨 강릉을 지키게 했지만 얼마 되지 않아 패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마당에) 어찌 그들을 편안하게 하여 어루만지고 귀순하기를 기대한단 말입니까? 이미 새로 평정한 강한(江漢: 형주)을 근거로 동오를 위협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유표의 수중 전투기구와 형주 수군들의 능력을 바탕으로 (적을) 깡그리 소탕하고 완전히 평정할 절호의 기회였던 것입니다. 이 기회를 타고 오를 취하지 않는다면 장차 어느 때를 기다리겠습니까? 적벽의 패전은 아마도 운수인 것 같습니다. 역질이 크게 일어나는 바람에 맹렬하던 창끝이 무디어지고, 남쪽에서 남풍이 불어오자 그것을 이용하여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형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늘이 돕지 않고서야 어찌 사람의 힘으로 가능한 일이겠습니까? 그러니 위 무제가 동으로 내려간 일은 실책이 아닌 것입니다. 가후의 계획은 타당한 게 아닙니다. <배송지의 견해8>


[이상의 자료에서 유추 가능한 점]
-<무제기1><정욱전6>을 살펴보면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된다. 즉 조조가 싸운 상대는 손권이 아니라 유비라는 것이다. 더욱이 <정욱전6>에는 유비의 세력을 확실하게 인정하고 있다. 이는 일부 작가들이 유비의 세력을 전혀 쓸모없는 집단으로 평가 절하한 것과는 정 반대의 기록이 아닐 수 없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손권이 연합군의 주동자가 아니라 유비가 주동자이고, 손권은 보조 역할만 하고 있는 내용이다(<정욱전6> 참조).
-<장제전5>의 기록에는 장희가 합비로 끌고 간 1천명의 기병 중에서 다시 역질이 발생했다고 한다. 그것도 자못 많은 숫자가 발생했다고 하니, 무언가 이상한 기록이 아닐 수 없다. 1천 명이란 숫자 자체가 (조조군 전체 병력으로 볼 때) 그리 많은 숫자가 아니지 않은가? 이는 결국 <삼국지> 저자인 진수가 위나라 사관의 과장된 기록을 여과 없이 반영한 증거가 아닐 수 없다.
-배송지의 말에서 조조의 패인을 찾아보면 첫째 역질, 둘째 남풍(즉 화공), 셋째 하늘이 정한 운수이다. 여기서 ‘하늘이 정한 운수’란 결국 조조의 참패를 반증한 표현이 아닐 수 없다. 배송지 주의 출현이 진수 <삼국지>와 불과 140년 정도의 시차를 가진 점을 감안하면 그의 말에 마땅히 신뢰성을 부여해야할 것이다.
-조조군 내에 역질이 있었던 점만은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주의할 점은 조조군이 동오로 진격할 시점에는 역질이 그토록 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만약 그 당시에 이미 역질이 창궐했다면 조조군이 어찌 병든 군사들을 이끌고 무모한 동진을 감행할 수 있었겠는가? 그렇다면 역질은 언제 발생했을까? 그 시기는 조조군이 전투에 패한 후일 것으로 판단된다. 처참한 패전을 당한 처지에 추위와 굶주림까지 엄습하자 서서히 감염되고 있던 역질이 갑자기 크게 번진 것으로 판단하지 않을 수 없다. 사정이 그렇다면 패전의 주 요인은 역질이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역질에 관한 자료는 이후에 촉과 오의 사료에서 좀 더 살펴보기로 한다).
-<정욱전6>과 <가후전7>의 내용을 분석해보면, 첫째, 조조가 이미 형주를 차지했으나 형주의 민심은 아직 따르지 않은 상태였고, 둘째, 유비는 힘이 미약해 달아나는 형편이었으며, 셋째, 손권도 조조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조건에서 조조는 너무 조급하게 동오를 향해 진격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결국 각개 격파할 경우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할 손권과 유비가 똘똘 뭉친 연합군을 결성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만약 조조가 형주를 얻고 그 자리에 그대로 눌러앉아 있었다면 열세의 병력인 손권이 어찌 감히 운명을 건 공격을 펼칠 수 있었겠는가? 적벽의 참패로 말미암아 강릉을 지키고 있던 조인도 얼마가지 못해 철수하고 마침내 강릉까지 빼앗기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정욱과 가후도 이미 이러한 사실을 예측하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조조의 근본적인 패인이 아닐 수 없다.
-조조측 사료에서 나타난 적벽대전의 결과는 매우 모호하여 결코 패배했다는 표현을 찾아볼 수가 없다. 조조 측의 표현은 주로 ‘불리했다’, ‘군사를 이끌고 돌아왔다’, ‘역질을 만났다’, ‘(스스로) 선박을 불태웠다’, ‘(손유 연합군이) 태조의 공격을 막았다’, ‘이익이 없었다’ 등이다. 그러나 <산양공재기4>에서는 ‘유비가 조조군의 선박을 불태웠다’는 내용이 그대로 나온다. 이것은 위나라 사관의 사료를 근거로 작성한 기타 자료들과는 달리, <산양공재기4>가 제후국인 산양공(山陽公: 즉 폐위된 헌제) 수하의 사관이 쓴 기록이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즉 위나라 사관들의 사료가 자국보호주의 관점을 유지한 곡필인 반면, 비교적 자유로운 위치에 있었던 제후국의 사관은 좀 더 객관적인 시각으로 사실을 기록할 수 있었던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계속>




모그울프송 (2009-11-25 13:54:06)
안녕하세요.
모 삼국지 커뮤니티에서 적벽 가후에 대한 배송지주의 내용중에

(2) 신 배송지는, 가후의 이 전략은 시의를 따르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한수나 마초등의 무리는 관우(관서)지방에서 승냥이같이 (중원을) 노리고 있었고 위의 무제가 영주(형주)에 느긋하게 앉아, 위광으로 오지방을 다룰 여유가 없던게 명백한 상황이었다. 형주는 손권, 유비 쟁탈의 목표였던 지방이다. 형주의 주민은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유주(유비)의 웅세를 흠모하고 손권의 무략을 두려워 했다. 실제로 조씨의 제장이 방어해낼만한 곳이 아니다. 그래서 조인은 강릉을 수비한 때, 곧바로 패배를 겪고말았다. 어째서 '위애'하는것이 가능하며, '머리를 숙이고 귀순'시키는걸 기대한단 말인가. 장강과 한수에 끼인 지역(형주)를 새롭게 평정하고, 양주와 월주(오 지방)를 떨게 만드는 이 때에. 유표의 수전용 무기를 이용해 형초의 지방에 수오의 손을 빌리는 것은 말그대로 강남을 제압할 호기, 천하를 넓게 평정할 큰 기회였다. 이 기회를 타고 오를 빼앗지 않고서, 언제 찾아올 기회를 노릴 것인가. 적벽의 패배에 있어서는, 아마 그렇게 될 운명이어서였을 것이다. 실제로 역병이 대유행해 예리한 창끝을 잃어버리고, 남풍이 불어와서 불의 기세를 타버렸다. 하늘이 이렇게 만든것이다. 이것이 인간의 책임인가. 그렇다면 위무제의 동진은 실책이 아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가후의 이 계략은, 타당성이 떨어진다. 위무제가 후년(215년) 장로를 평정한 때 촉 내부에서는 하루에 수십번이나 패닉상태가 일어나 유비는 그들을 억누르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때 무제는) 유엽의 계략을 채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촉을 취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계획에서 벗어난 뒤에 나중에 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이것도 마치 여기서 논한 일과 같은 실패와 같다. 세간의 사람들이 모두 유엽의 계략이 옳았다고 인정하는 이상, 결국 가후의 의견에 잘못이 있는게 확실하게 드러난 것이 아닐까.
이런 내용이 있다는데
여기서는 뒤의 유엽 부분이 없습니다.
배송지주에 유엽부분까지 있는게 맞습니까?

이중텐의 <삼국지강의>에 나타난 오류
<삼국지 강의>에 나타난 적벽대전 분석(정원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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