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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자료1-삼국지 병법의 총집합(12001-05-29 20:54:07
 [용장]한신


가도벌괵:약자의 심리를 찌른다.

'가도벌괵'이란 길을 빌려서 괵나라를 친다는 뜻인데, 춘추 시대 우와 괵 두 나라는 서로 이웃 나라로서, 모두 진(晋)나라와 접경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 진나라는 일찍부터 이 두 나라를 정복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진왕은 순식(荀息)의 전략을 이용하여 먼저 우공(虞公)에게 좋은 말과 보옥을 보내서 우나라를 매수하고 진나라가 길을 빌려 괵나라를 칠 것이라는 것을 믿게 하였다. 이렇게 해서 괵나라가 망하게 되자, 우나라도 곧 이어 멸망하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적과 자기 나라 사이에 낀 약소국이 만약 적의 침공을 받게 되면 이쪽에서 곧 군사를 동원, 위력을 보이며 구원해 주지 않으면 안된다. 곤란에 직면한 약소국에 대해서는 입으로만 말하고 실제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신뢰를 얻을 수 없다.

어느 날 진(秦)나라의 사신이 조나라에 와서 말했다.

"우리 두 나라가 협동하여 이웃 연나라를 칩시다. 성공하기만 하면 당장 연나라 영토의 반을 떼어 주겠습니다."

이 제의를 기꺼이 받아들인 조나라 왕이 군사를 동원하려 하자 한 신하가 나서서 간했다.

"연나라를 치게 되면 미처 식사도 끝나기 전에 진나라의 군사가 우리 나라를 덮치게 될 것입니다."

이웃 나라끼리인 조나라와 연나라가 협동하여 견제하고 있으므로 강대국인 진나라도 함부로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것인데, 만약 한쪽 나라가 힘을 잃게 되면 나머지 나라도 쉽게 진나라의 밥이 되고 말 것이다.

어떠한 책략도 상대가 먼저 그것을 간파해 버리면 쓰지 않는 것만 같지 못하다. 따라서 책략이란 고도의 '머리 싸움'이라고 할 수 있다. 다음은 '가도벌괵'의 책략이 실패한 경우이다.

삼국 시대 오나라의 주유는 남군(南郡)을 총령하게 되자, 더욱 마음에 유비를 칠 일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형주를 차지할 욕심으로, 유비에게 서천을 치러 갈 테니 형주에 길을 내 달라고 했다. 그러나 이 계략을 눈치챈 제갈량에 의해 무산되고 말았다.


관문착적:퇴로를 차단하고 잡는다.

'관문착적'이란 문을 닫고 도적을 잡는다는 것으로, 약한 적에게는 포위 섬멸의 계략을 쓴다. 원뜻은 도적이 물건을 훔치러 들어오면 문을 잠가야 잡히게 된다는 뜻이다.

약한 적은 포위해서 완전 섬멸시키지 않으면 안된다. 만약에 최후의 발악을 하는 적을 놓쳐 이를 너무 깊숙히 쫓아갔다가는 오히려 역습을 당할 수 있다.

'오자(吳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최후의 발악을 하는 적 한 사람이 넓은 들판에 숨었다고 하자. 여기에 비록 천명이 쫓아간다 해도 조마조마한 쪽은 쫓는 쪽이다. 왜냐하면 숨어 있는 적이 언제 어디서 나타나서 덮쳐올지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에 죽음을 각오한 자가 한 사람이라도 있으면 그는 천 명의 군사까지도 두려움에 떨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공성계:성을 비우는 계략

방비가 허술할 때는 차라리 무방비한 것처럼 보여라. 그렇게 하면 적은 더욱 갈피를 잡을 수 없게 된다. 적은 대군이고, 이쪽은 아주 적은 병력일 때 이 계략을 쓰면 이쪽 전술을 적이 알지 못하게 된다.

'삼국지' 촉지(蜀志) '제갈량전'에 이렇게 쓰여 있다.

양평관에 주둔하고 있던 제갈량은 위연(魏延)에게 군사를 지휘하여 동쪽으로 향하도록 하였다. 양평관 수비 병력은 불과 1만이었다.

한편 사마의는 20만 대군을 이끌고 위연과는 다른 방향에서 양평관을 공략해 왔다. 60리 상거에서 척후를 놓아 정찰케 하였더니, 제갈량은 성안에 있고 수비 병력은 얼마 안된다는 보고였다.

제갈량 쪽에서도 사마의의 대군이 접근해 오고 있음을 알고 위연의 군사와 합류하려 했으나 떠난 지 오래되어 때는 이미 늦었다. 장병들은 모두 대경실색하여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그러나 제갈량은 홀로 태연하게 전군에 명하여 깃발과 장막을 거두고 자기 위치를 떠나지 말고 엄명했다. 이러서 거기에 사방의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깨끗이 청소까지 시켜 놓았다.

사마의는 제갈량이 지략에 뛰어남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것은 틀림없이 어딘가에 복병이 있을 것이라 믿고, 군사를 근방에 있는 산속으로 일단 후퇴시켰다.

다음 날 제갈량은 박장대소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사마의는 나를 아주 주의깊은 사람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복병이 있는 줄 알고 산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사마의는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고 땅을 치며 분통해 했다.

공심위상:마음을 공격한다.

'공심위상'이라는 말은 '양양기'에서 처음 볼 수 있다. 건흥 3년(기원 225년), 제갈량이 남정(南征)하려 떠날 때, 마속이 몇십 리를 전송하였다. 제갈량이 말했다.

"우리가 여러 해를 함께 일을 해 왔는데 오늘 더욱 좋은 가르침이 없겠소?"

이에 마속이 대답했다.

"남쪽의 소수 민족이 멀고 험한 것을 믿고 불복한 지 이미 오랩니다. 비록 오늘 격파한다 하여도 내일이면 또 불복할 것입니다. 그 동안 공께서 북벌에 온 힘을 다하니 그들은 관리들의 속이 허하고 겁이 많은 줄 알고 이렇게 빨리 반란하는 것입니다. 만약 그 무리를 몽땅 죽여 후환을 없애자면 어질지 못한 일이고, 또 창졸히 해낼 수도 없는 일입니다. 대저 군사를 쓰는 법에 마음을 치는 것이 상책이고 성을 치는 것이 하책이며, 마음으로 싸우는 것이 상책이고 군사로 싸우는 것이 하책인가 합니다. 그러니 공께서는 그 마음을 정복하는 것이 옳을까 합니다."

마속의 말을 들은 제갈량은 찬탄을 금치 못하면서 말했다.

"유상(마속)은 내 폐부를 아는구나."

이러한 분석은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본 것으로서, 높이 서서 멀리 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촉나라에 의한 천하통일 전략면에서 볼 때도 서남을 평정하는 것은 한 차례의 군사적인 승리를 거두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서남을 하나의 안정된 후방으로 만듬으로써 앞으로 전 병력을 중원에 집중시킬 수 있는 것이었다. 바로 마속이 지적한 바와 같이 군사력에만 의거하여 서남의 맹획을 이긴다면 중원의 전쟁이 불리하여지기만 하면 서남은 다시 반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 분명했다. 제갈량은 이러한 방침을 세우고 그것을 굳게 믿었기에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 번 놓아주는 이른바 칠금칠종의 귀신같은 용병을 연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금적금왕:장수를 잡으려면 먼저 그말을 한다.


'금적금왕'이란 원래 적을 잡으려면 먼저 임금을 잡으라는 뜻으로, 두보(杜甫)의 시 '전출새'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을 쏘려거든 먼저 그말을 쏘고, 적을 잡으려거든 먼저 그 왕을 잡으라."

적의 주력을 격파하고 그 근거나 두목을 잡아 버리면 적의 전체 병력을 와해시킬 수 있다. 이것은 용이 바다를 벗어나 육지에서 싸우면 고전하게 되는 이치와도 같다.

당나라 숙종 때, 장순(張巡)은 윤자기(尹子奇)와 싸워 적진으로 쳐들어가 바로 적장의 깃발이 있는 데까지 이르렀다. 적진은 혼란에 빠져 장순은 적장 50여 명과 군졸 5천여 명을 베어 죽였다.

그런데 정작 윤자기를 죽이려 했으나 도무지 눈에 뛰지 않았다. 그는 군사들에게 화살 대신 볏짚으로 만든 화살을 쏘게 했다. 그런 화살에 맞은 적들은 장순 쪽 군사들이 이미 화살이 떨어진 줄 알고, 이 사실을 알리러 급히 윤자기에게로 달려갔다.

이렇게 해서 윤자기가 있는 곳을 알게 된 장순은 남제운(南齊雲)으로 하여금 활을 쏘도록 명령했다. 그가 쏜 화살은 어김없이 윤자기의 왼쪽 눈에 꽂혀 자칫하면 사로잡힐 뻔했다. 윤자기는 참패하여 퇴각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공격하여 승리를 거두려면 오직 한 군데에다 전력을 집중해야 하는데 그 지향점은 적의 요점이나 약점이라야 한다. 요점이란 그곳을 뺏으면 적에게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곳이며, 약점이란 공격하기 쉬운 곳을 말한다.

미인계:미인을 쓰는 계략법.

병력이 강대하고 그 지휘자가 뛰어난 장수라면 싸워서는 안된다. 오히려 이쪽에서 일시적이나마 순응하는 태도를 취해야 한다.

적에게 순응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전국 시대의 6개국처럼 진나라에 국토를 진상하는 방법은 적의 세력만 강대하게 해 주기 때문에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다.

또 송나라가 요·금나라에게 그랬듯이 돈이나 비단을 헌납하면 적의 재력이 불어나므로 이것도 또한 좋지 않은 방법이다.

그러나 미인계에는 이러한 약점이 없다. 월왕 구천(勾踐)이 오왕 부차에게 그랬듯이 미인계를 써서 부하들의 불만을 자극함으로써 질 것을 이기게, 약한 것을 강하게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삼국지에 유명한 일화가 있다. 후한 말엽 한나라의 실권을 장악한 동탁에게, 사도 왕윤(王允)은 가기(歌妓) 초선을 보내어 여포(呂布)와 동탁을 이간질시켜, 여포로 하여금 동탁을 죽이게 하는데 성공했다.

진(秦)나라 목공(穆公) 때의 일이다. 서쪽의 이민족인 융(戎)이 강대해지자, 위협을 느낀 목공은 융 왕실에 아름다운 무희(舞姬) 16명과 함께 솜씨 좋은 요리사를 보냈다.

융왕은 이를 기뻐하여,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춤과 좋은 음식을 즐기며 주색에 빠져 들어갔다. 좌우의 신하가 진나라의 침략을 염려하여 충간하면 융왕은 대노하여 활로 쏘아 죽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얼마 후 진나라가 쳐들어 왔을 때 융왕은 술통 옆에 취하여 곯아 떨어져 있다가 생포되고 말았다.

그는 생포될 때까지도 진나라의 침략이 있으리라는 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생포가 된 뒤에도 취하여 그것을 눈치채지 못했다고 한다.

'한비자'에 이런 기록이 있다.

"진(晋)나라 헌공(獻公)은 우·괵 두 나라를 치기 위해 먼저 명마와 보석과 미녀 16명을 보내,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아 국정을 혼란케 했다."


반간계:반목시키고 이간질 시키는 계략법.

'간(間)'이란 적이 서로 의심하여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반간(反間)이란 우리 쪽을 이간시키려는 적의 음모를 이용하여 거꾸로 적을 이간시키는 것을 말한다.

전국 시대 연나라의 소왕(昭王)이 죽은 뒤에 왕위를 이어받은 혜왕(惠王)은 태자 때부터 장군 악의와 뜻이 맞지 않았었다.

제나라의 명장 전단(田單)은 이러한 갈등 관계를 이용하여 첩자를 연나라로 잠입시켜 이런 유언비어를 퍼뜨리게 했다.

"악의는 혜왕의 미움을 받아 혹시나 죽음을 당할까 두려워 제나라를 공략한다는 구실로 제나라 군사와 연합하여 연나라의 왕이 되려고 노리고 있다. 그런대 아직까지 그 뜻이 이루어지지 않아 즉묵(卽墨) 공략을 지금까지 늦추고 있는 것이다. 지금 제나라가 가장 염려하고 있는 것은 연나라가 다른 장군을 파견시켜 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즉묵은 당장 함락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이 유언비어를 그대로 믿은 연나라 혜왕은 악의를 파면시키고 후임에 장군 기겁을 파견했다. 이렇게 해서 악의는 조나라로 망명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그 후 기겁(騎劫)은 제나라 군에 대패하여 연나라 멸망의 원인이 되었다.

이 밖에 삼국시대에도 오나라 장군 주유(周瑜)는 조조가 보낸 첩자를 이용하여 조조측 장군을 이간시킨 일이 있다.

제갈공명도 "적이 이쪽을 속이려 들면 이쪽에서 계략을 쓰기가 쉽다"고 말하고 있다.

반객위주:


'반객위주(反客爲主)'란 손님이 주인으로 바뀐다는 뜻으로, 때를 보아 실력을 강화하고 남의 군대를 겸병하여 객군을 주군으로 바꾸는 계략을 말한다.

'삼국지'에 다음과 같은 얘기가 있다. 촉나라의 전략가 법정(法正)이 황충(黃忠)에게 작전 계획을 설명했다.

"하후연(夏侯淵)은 경박한 사나이입니다. 무용뿐이지 계략이 없습니다. 군사를 격려하여 진지를 구축해 가면서 한 걸음씩 전진하여 그를 유인하면 반드시 포로로 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객을 바꾸어 주가 되는 계략입니다."

황충은 이 반객위주의 계략에 따라 진지를 구축해 가면서 며칠 동안 쉬었다가 또 전진하고 했다.

하후연은 이 소식을 듣고 황충을 공격하려 했다.

"이건 반객위주의 계략입니다. 지금 공격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싸우면 반드시 패하게 될 것입니다."

장합이 한사코 말렸으나 하후연은 끝내 듣지 않았다.

과연 하후연은 황충에게 유인되어 마침내 함정에 빠져 죽음을 당하고 말았다.

반객위주라는 말의 본뜻은 주인의 대접이 서툴러 오히려 손님이 대접을 한다는 뜻이다.

방압득봉:

'방압득봉'이란 오리를 풀어 봉을 당겨온다는 뜻으로, 보잘것없는 미끼로 큰 잉어를 낚는 것을 말한다.

삼국 시대 촉나라와 위나라가 싸울 때였다. 위나라의 태수 마준은 하후무가 남안성에서 촉나라의 제갈량에게 포위되어 곤경에 빠져 있다는 보고를 들었다. 그는 문무 제관을 모으고 말했다.

"하후 부마로 말하면 곧 금지옥엽의 몸인데, 만일에 소우한 바 있으면 대죄를 면치 못할 터라, 대체 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소?"

모두들 어찌할 바를 몰라 망설이고 있는데,

"하후 부마께서 심복 장수 배서를 보내왔습니다."

하고 보한다.

이윽고 배서가 부중(府中)으로 들어와, 공문을 마준에게 전한 다음,

"태수께서는 지체없이 군사를 거느리고 남안성의 포위를 풀어주십시오."

하며, 총총히 말을 마치고 돌아갔다.

마준은 더 지체할 수 없어, 서둘러 기병(起兵)하려고 할 때 갑자기 한 사람이 밖에서 나타나며,

"태수께서는 제갈량의 계교에 빠졌습니다."

하고 소리쳤다.

사람들이 바라보니, 성은 강(姜)이고, 이름은 유(維), 자는 백약(伯約)이었다.

"요사이 듣건대, 제갈량이 하후무를 깨트리고 남안성을 물샐 틈 없이 포위하고 있다는데, 또 배서로 말하자면 한낱 무명 하장(無名下將)이라 일찍이 본 적조차 없는 사람입니다. 이로써 미루어보면, 이 사람은 바로 촉장이 거짓으로 배서라 일컫고 태수를 속여 성밖으로 나오게 한 후, 그 빈틈을 타서 근방에 매복했던 일군으로 우리 천수성을 빼앗으려는 계책임이 틀림없습니다."

듣고 나자 마준은 무릎을 치며 크게 깨달았다.

"백약이 일러주지 않았더라면 간계(奸計)에 빠질 뻔하였구려!"

강유는 웃으며,

"태수께서는 안심하십시오. 저에게 일계(一計)가 있으니, 가히 제갈량을 사로잡고, 남안의 위태로움을 건질 수 있을 것입니다."

이윽고 강유는 계교를 말하였다.

"제갈량이 반드시 성의 뒤에다 군사를 매복시켰다가 우리 군사가 속아서 성밖으로 나가면 그 빈틈을 타서 엄습할 것입니다. 태수께서 저에게 정병 3천만 주시면 요로에 매복하고, 태수께서는 뒤따라 발병(發兵)하되 성을 멀리 나가지 않고, 한 30리쯤 갔다가 돌아오십시오. 제가 불을 올려 신호할 것이오니, 그때에 전후로 협공한다면 대승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제갈량의 계교는 과연 강유가 짐작한 바와 다름이 없었다. 원래 제갈량은 일군을 산벽 속에 매복케 하였다가 천수성의 인마가 비울 때를 노리어 치게 했던 것이다.

이렇게 상대방의 책략이 간파된 이상, 승패는 이미 정해진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싸움에 패한 제가량은 군사를 거두어 영채로 돌아와서도 그의 머리에는 강유 생각밖에 없었다. 얼마 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제갈량이 물었다.

"강유의 어미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기현(冀縣)에 살고 있습니다."

듣고 나자 제갈량은 한 장수를 불러,

"그대는 일군을 이끌고 허장성세(虛張聲勢)하며 기현을 빼앗을 듯이 하다가, 만약에 강유가 오고든 성으로 들어가게 놓아 두라."

하고 명령했다.

위나라의 첩자가 이 사실을 천수성으로 전하되, 촉병(蜀兵)이 기현을 치러 떠났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들은 강유의 두 눈으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뭇 사람들이 강유의 심중을 헤아리지 못하여 의아해 하자, 강유는 울음섞인 목소리로 마준에게 고하였다.

"용서하십시오. 저의 어미가 지금 기현에 있기 때문에 걱정이 되어, 눈물이 나왔습니다. 바라건대 저에게 일지군을 빌리시면, 기성도 구할 겸 노모를 모실까 합니다."

워낙 효성이 지극하기로 이름난 강유인지라, 아무도 그의 말에 두 말이 없었다. 마준은 강유로 하여금 3천병을 거느리고 기현으로 가게 하였다.

강유는 군사를 재촉하여 노모가 살고 있는 기현을 향해 쉬지 않고 달렸다. 도중에 촉군이 나타나 싸움이 벌어지는가 했더니 곧 달아나고 말았다.

강유는 그대로 군사를 몰고 성으로 들어가자, 성문을 굳게 닫고 군사를 시켜 엄히 지키게 한 후 자기는 노모가 거처하는 집으로 달려갔다.

그 사이에 제갈량은 사람을 남안군으로 보내어, 사로잡아 둔 하후무를 데려오게 하여 한 마디 물었다.

"네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

하후무는 황급히 절하며, 목숨만 살려 달라고 엎드려 빌었다. 제갈량은 소리를 부드럽게 하여,

"지금 강유가 기성을 지키고 있는데, 글을 보내 말하기를, 오직 그대만 놓아준다면, 나와서 항복하겠다고 한다. 그대 생각은 어떤가? 내 이제 그대의 목숨을 살려 보낼 것이니 강유를 항복하게 하겠는가?"

하고 물었다. 이것은 물론 제갈량이 꾸며낸 거짓말이엇다. 그러나 하후무는 놓아준다는 말에,

"네, 틀림없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제갈량은 사람을 시켜 새 옷 한 벌을 가져오게 하여 하후무에게 입히며, 다시 말에 안장까지 얹어 주어, 혼자서 돌아가게 하였다.

이리하여 제갈량의 계략에 빠져 진퇴양난이 된 강유가 마침내 항복을 하게 되자, 제갈량은 강유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다정하게 말했다.

"내가 모려를 나온 이래로 널리 현자(賢者)를 구하여, 평생 배운 바를 전하고자 하였으되, 오늘에 이르기까지 그 사람을 얻지 못하여 자못 초조함을 느꼈더니, 이제 그대를 만났으니, 소원이 이루어지려나 보오."

그러자 뭇 장수들이 말했다.

"그러면 이제 하후무를 뒤쫓아가 사로잡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는 위왕의 부마가 아닙니까."

제갈량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하후무 하나쯤 놓아주는 것을 마치 오리 한 마리 놓아주는 거나 다름없게 여기는데, 항차 이번에 우리가 강백약(姜伯約)을 얻었으니, 어찌 봉(鳳)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고 거듭 껄껄 웃었다.

사면초가:

'사면초가'란 사면에서 모두 초나라 노래를 부른다는 뜻으로, 세인이 다 아는 공성계(攻城計)의 하나이다. 전거는 초·한이 서로 다투던 해하 싸움에서 나왔다.

'사기·항우 본기'에 의하면 항왕의 군대는 해하에 둔치고 있었는데, 병사는 적고 양식이 다한 데다 한군과 제후들의 군사들이 여러 겹으로 포위하고 있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한군은 사면에서 초나라 노래를 불렀다. 항왕은 크게 놀라 "한나라가 벌써 초나라를 다 점령했는가? 무슨 초나라 사람이 이렇게 많은가?"하고 탄식하였다.

한신은 '사면초가'의 방법으로 초나라 군사들로 하여금 싸움을 싫어하고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계략을 썼던 것이다.

그리하여 군심이 흩어져 뿔뿔이 도망치고 항왕이 아끼는 심복 정예 부대인 8천 자제도 애간장이 다 끊어지는 돗하여 싸울 생각이 사라졌다. 몇 년 동안이나 항우를 따르던 장군들도 슬그머니 떠났고 항우의 숙부 항백도 가만히 달아나고 말았다.

항우는 사면초가 속에서 오희와 이별하고 오강(烏江) 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으니 초나라도 따라서 망하고 말았다. 이것은 한신이 채용한 심리전이 성공한 예라고 할 수 있다.

'삼국지 연의'에는 오나라의 여몽(呂蒙)이 형양 전투에서 사면초가의 계책을 써서 관우(關羽) 군중의 장수와 병사의 가속들로 하여금 산 위에서 높이 외치게 하여 군심을 동요시킨 사실을 서술하였다.

"형주 사병들의 형제가 서로 부르고 부자가 서로 찾아 외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군심이 변하여 모두 그 소리에 따라 달려갔다. 관우가 호통쳐도 불러 세우지 못하니 부하는 겨우 300여 명이 남았다."

위풍이 천하에 떨친 관우도 항우와 마찬가지로 무리가 배반하고 친인들이 떠나는 외롭고 구슬픈 사람이 되고 말았다.

상루추제:

'상옥추제(上屋抽梯)'와 같은 말로서, 상대를 이익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약 작은 이익으로 유도만 하고 수단을 쓰지 않는다면 적은 주저하여 움직여 주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다락 위에 올려놓고 사다리를 치워 버리는 계략을 쓰려면 먼저 사다리를 단단히 걸쳐놓고 그것을 상대에게 똑똑히 보여 상대가 완전히 믿도록 해야 한다.

'상루추제'에는 세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는 적군을 유인한 다음 그 퇴로를 차단하여 격멸한다. 둘째는 스스로 퇴로를 끊고 배수진을 친 다음 필사적인 각오로 분전케 한다. 셋째는 자기쪽만 유리한 데로 가고 상대방은 오지 못하게 한다.

상옥추제:

'손자·구지편'에는 "군사를 일으켰을 때 이미 높은 데 올랐으면 사다리를 치워 버려야 한다"고 하였다.

'삼국지·촉서·제갈량전'에 이런 이야기가 나온다. 후한 말엽 유표는 후실 자식인 유종을 사랑하고 장자 유기를 좋아하지 않았다. 위험을 느낀 유기는 제갈량에게 자기의 안전을 기할 방법을 가르쳐 줄 것을 요구했지만, 제갈량은 남의 가사(家事) 문제라 하여 이를 거절하였다.

하루는 유기가 제갈량을 청하여 후원에서 산책하며 구경하다가 함께 높은 다락에 올라 연석을 차려 놓고 먹는 사이에 유기는 가만히 사람을 시켜 사다리를 치워 버리게 한다음 제갈량을 향해 말했다.

"이제 위로는 하늘에 오를 수없고 아래로는 땅에 내릴 수 없습니다. 선생님께서 입으로 하신 말씀은 내 귀로 들어올 뿐입니다."

진퇴양난이 된 제갈량은 더 이상 피하지 못하고 춘추 시대 진헌공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공자께서는 신생(申生)과 중이(重耳)의 이야기도 듣지 못했습니까. 신생은 안에 있다가 죽고 중이는 밖에 나가 있어서 화를 면하였으니, 공자는 하루 바삐 형주에서 떠날 방법을 찾으십시오."

유기는 문득 깨닫고 곧 아버지에게로 가서 자기를 강하로 파견하여 줄 것을 간청하여 지방의 수비군 사령관으로 나가게 되었다. 이리하여 권력 내부의 암투를 피하고 재앙을 면할 수 있었다.

사람을 얼러 높은 곳에 오르게 한 다음에 사다리를 옮겨 버리면 물러날 길이 없게 되어 하는 수 없이 토실(吐實)하게 마련이다.

선발제인:

'사기·항우 본기'에 의하면 기원전 209년 9월에 진승과 오광이 기의(起義) 하였다. 회계의 수장 은통도 승세하여 군사를 일으켜 탈권해 보려고 항우의 숙부 항량을 찾아가 말하였다.

"지금 진조(秦朝)의 기력이 다하여 장강 북안에서는 이미 힘있는 세력들이 분분히 일어났다고 하오. 내가 듣자니 앞서면 남을 제어하고 뒤떨어지면 남의 제재를 받게 된다고 하오."

항량과 하우도 언젠가 기의하려고 생각했지만 은통의 부하가 되기는 싫었다. 그들은 밀모하여 은통을 죽인 다음 은통의 대인(大印)을 가지고 회계군 8천여 인을 휘하에 장악하였다. 그리고는 "진나라를 뒤엎고 초나라를 복구하자"는 기치를 높이 들고 기의하였다.

'한서·항적전'에도 "선수를 쓰면 남을 제압하고 후수를 쓰면 남의 제재를 받는다"는 말이 있다.

'좌전·선공 12년'에 이렇게 적혀 있다.

"내가 먼저 손을 써 적을 타격 할지언정 적이 앞서 손을 써서 나를 치게 해서는 안된다. 먼저 손을 써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은 적의 기도를 타파할 수 있다. 그러므로 먼저 손을 써야한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전승(戰勝) 경험을 총결산할 대 득의양양하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남들이 미처 깨닫지도 방비할 수도 없을 때 나는 무엇을 말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선성탈인:

'사기·항우 본기'에 의하면 기원전 209년 9월에 진승과 오광이 기의(起義) 하였다. 회계의 수장 은통도 승세하여 군사를 일으켜 탈권해 보려고 항우의 숙부 항량을 찾아가 말하였다.

"지금 진조(秦朝)의 기력이 다하여 장강 북안에서는 이미 힘있는 세력들이 분분히 일어났다고 하오. 내가 듣자니 앞서면 남을 제어하고 뒤떨어지면 남의 제재를 받게 된다고 하오."

항량과 하우도 언젠가 기의하려고 생각했지만 은통의 부하가 되기는 싫었다. 그들은 밀모하여 은통을 죽인 다음 은통의 대인(大印)을 가지고 회계군 8천여 인을 휘하에 장악하였다. 그리고는 "진나라를 뒤엎고 초나라를 복구하자"는 기치를 높이 들고 기의하였다.

'한서·항적전'에도 "선수를 쓰면 남을 제압하고 후수를 쓰면 남의 제재를 받는다"는 말이 있다.

'좌전·선공 12년'에 이렇게 적혀 있다.

"내가 먼저 손을 써 적을 타격 할지언정 적이 앞서 손을 써서 나를 치게 해서는 안된다. 먼저 손을 써서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은 적의 기도를 타파할 수 있다. 그러므로 먼저 손을 써야한다."

나폴레옹이 자신의 전승(戰勝) 경험을 총결산할 대 득의양양하게 이렇게 말한 바 있다.

"나는 남들이 미처 깨닫지도 방비할 수도 없을 때 나는 무엇을 말하고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었다.


성동격서:

전한(前漢) 경제 때 오·초 등 분봉된 왕족 7국이 영합하여 반란을 일으켰는데, 한나라 장군 주아부(周亞夫)는 성루를 고수하여 결코 밖으로 쳐 나가지 않았다.

오나라 군사가 성의 동남쪽을 공격할 움직임을 보이자, 그는 곧 성의 서북쪽 수비를 단단히 하라고 명령했다. 이를 보고 수행 군사가 의아하여 물었다.

"적이 동남쪽을 치려는데 장군께서는 어찌하여 서북쪽의 수비를 명령하십니까?"

그러나 주아부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얼마 후에 과연 오왕은 주력 군사로 서북쪽을 공격해 왔는데 미리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공격은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다. 이것은 지휘자가 침착 냉정하여 적에게 속지 않은 하나의 예이다.

또 후한 말기, 주준(朱寯)이 완성(宛城)에 있는 황건군(黃巾軍)이 공격했을 때의 일인데, 그는 적정을 살필 수 있도록 우선 성밖에 작은 동산을 쌓았다.

그리고는 북을 치며 군사들이 성의 서남쪽을 공격하는 것처럼 보이게 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황건군이 당황하여 우루루 서남쪽 수비로 몰렸다. 이것을 바라보고 있던 주준은 친히 주력군 5천을 이쓸고 성의 북쪽을 불의에 공격하여 완성을 빼앗았다. 이것을遁 황건군의 지휘자가 혼란하여 급변하는 상황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한 예이다.

이상의 두가지 예로 보아 "동쪽에서 소리지르고 서쪽을 치는"계략을 운용하려면 먼저 적측 지휘자의 머리가 혼란에 빠져 있는지의 여부를 알고 난 후에 결정해야 한다.

적의 의지가 혼란되어 있지 않다면 오히려 패배를 맛볼 수 있다. 이것은 모험적인 계략이다.


수상계화:

'수상개화(樹上開花)'란 나무 위에 꽃을 피운다는 뜻으로, 남의 병력을 빌려 적을 굴복시키는 책략을 말한다. 원래의 뜻은 그 동안 피지 않던 나무에 뜻밖에도 꽃이 피었다는 뜻인데 "쇠나무에서 꽃이 핀다"에서 나온 말이다.

부대의 다른 국면을 뻗쳐 유리한 진형을 만들면 비록 병력이 약하다 하더라도 진용을 강대한 것처럼 보이게 할 수 있다.

옛날 싸움에서는 선봉(先鋒)이라는 것이 있는데, 여기서 봉이란 창끝, 즉 무기의 끝에 붙어 있는 뾰족한 금속 부분을 말한다.

중국 군대에는 전통적으로 선봉이라고 하는 특별 정예 부대가 있다. 이것은 우수한 자들만 골라 특별 훈련을 실시하고 또 우수한 장비로 무장시킨 호랑이 부대이다.

주장(主將)은 기회를 엿보아 이를 결전장에 투입하여 적의 진지를 돌파한다. 그렇게 하면 이제까지 기가 죽어 있던 일반 부대도 갑자기 의기가 충천하여 선봉이 뚫어 놓은 곳으로 돌입해 간다.

이 선봉을 일반 부대의 선두에 세움으로써 전군의 전력을 폭발시키는 것--이것이 재를 뿌려 고목나무에 꽃을 피우는 수상개화이다. 그런데 주장이 무모하면 뜻밖의 피해를 보는 경우도 없지 않다.


삼국지 자료2-삼국지 병법의 총집합(2 를
보여 드리것습니다.저기.....
한곳에다가 썼는데...혹시 삭제하지는 않겠져??

제발....이상 입니다....

덧글 7개
 순욱문약 '가도벌괵'이 아니고 아마 '가도멸괵'일겁니다. 둘이 비슷할지도 모르겠지만 2001/05/29 09:05 
 수경선생 허거거 제가 본 글중 가장 긴글 같습니다만... ㅠ.ㅠ 2001/05/29 11:05 
 난세간웅 가도멸괵이 맞습니다. 2001/05/29 11:05 
 조운자룡 아이참, 운장. 니가쓴거 아니지? 퍼옴이라고 해.. 2001/05/30 02:05 
 난세간웅 손자병법... 강동맹호놈은 읽었는데 나는 못 읽었다.... 우우욱.. 2001/05/30 06:05 
 건인 희지재 조운자룡님, 시비 걸지 마세요 2001/05/31 12:05 
 [용장]한신 손자병법은 손빈하궁 방연 나오는건데...그거 읽었는데....손빈은 수족이 잘리구... 2001/05/31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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