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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달빛이 흐르는 시오르강에서2002-09-27 23:47:05
 천공하후패


사랑하는 나의 사촌여동생들을 위한 동화

슬픈 달빛이 흐르는 시오르강에서

옛날 아주 먼 옛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눈을 가진 공주가 있었어요.

피부가 눈처럼 하얗고 붉은 빛이 감도는 아름다운 머리결을 가진 공주였답니다. 세상의 모든 요정들이 질투가 날 만큼 아름답고 신비로운 공주였어요. 그 공주의 이름은 뮤라이. 뮤라이공주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철이 든 이후에는 늘 눈을 감고 다녔죠. 그래서 귀족들 사이에선 '늘 잠자는 뮤라이공주님'으로 불린답니다.    

뮤라이공주가 16세가 되던 날, 뮤라이공주의 아버지인 오텔왕국의 에틴국왕은 뮤라이공주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서 초상화를 그려줄 화가를 불러왔답니다. 화가의 이름은 챠밍. 왕국에서 제일 유명한 화가인 세리오의 수석제자였어요. 에틴국왕은 본래 세리오를 불러와 뮤라이공주의 초상화를 그리게 할 생각이었지만 세리오는 너무 늙었기에 제대로 된 그림을 그릴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의 제자들 중 실력이 가장 뛰어나다는 챠밍을 불러온 것이랍니다.

에틴국왕의 부름을 받고 온 챠밍은 에틴국왕과 뮤라이공주에게 공손히 인사를 했답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모자를 가슴으로 당겨서 예의를 갖추었죠.

"전 챠밍이라고 합니다. 시오르강에 살고 있는 이름 없는 화가랍니다. 제 스승은 위대한 화가인 세리오라고 합니다. 전 그분의 제자이구요. 최선을 다하여 부름에 보답하겠습니다."

에틴국왕은 챠밍을 천천히 훑어보았어요. 단정한 용모에 진실한 눈을 가진 청년인 챠밍은 곧 에틴국왕의 마음에 들었답니다. 에틴국왕은 좌우의 신하들에게 명하여 그를 극진하게 대접하라고 했습니다. 곧 챠밍은 왕족들의 점심식사에 초대되었죠. 거기서 즐겁게 이야기를 나누었어요. 그리고 그림을 그려야될 시간이 다가왔어요. 챠밍은 은근히 기대를 했습니다. 왕국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공주인 뮤라이공주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었거든요.

뮤라이공주는 시종의 도움을 받아 천천히 자리에 앉았어요. 햇살에 비친 뮤라이공주의 모습은 너무나도 아름다웠어요. 챠밍은 그만 한눈에 반하고 말았답니다. 챠밍은 속으로 생각했어요.

'저토록 아름다운 여인이 세상에 또 있을까..'

아름다운 뮤라이공주의 모습을 보고 있던 챠밍의 눈에 한가지 걸리는 게 있었어요. 바로 뮤라이공주의 눈이었죠. 뮤라이공주가 계속 눈을 감고있었거든요. 챠밍은 옆에 서있던 에틴국왕에게 물어봤어요.

"전하. 뮤라이공주님은 왜 눈을 감고 계시죠? 계속 저렇게 있으시면 그림을 그리기가.."

에틴국왕은 침울한 얼굴로 말했어요.

"우리 딸애는 태어날 때부터 눈이 보이지 않았어. 그래서 늘 눈을 감고있는 거라네. 그냥 상상해서 그려주면 안되겠나?"

챠밍은 생각했어요. 저 감겨있는 눈은 어떤 모습일까. 아름다운 공주님의 눈은 어떻게 생겼을까 하구요. 그래서 챠밍은 뮤라이공주에게 조심스레 물었답니다.

"뮤라이공주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주님. 공주님의 눈을 보여주세요. 아무도 보지 못한 그 아름다움을 제 그림에 담고싶어요. 공주님의 진실 된 모습을 담고싶어요."

뮤라이공주는 잠시 망설였어요. 철이 든 이후로는 한번도 눈을 뜨지 않았거든요. 보이지 않는 눈은 뮤라이공주에게는 콤플렉스였어요. 뮤라이공주가 망설이자 챠밍이 그녀에게 다시 말했답니다.

"전 화가랍니다.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을 이 하얀 도화지에 담는 재주를 지닌 사람이죠. 전 공주님의 아름다움을 이곳에 담아야한답니다. 어서 눈을 보여주세요. 공주님의 눈을요."

뮤라이공주는 결심을 했어요. 서서히 눈을 떴답니다. 철이 든 이후로 남에게는 한번도 보여주지 않은 그 눈을요.

뮤라이공주가 눈을 뜬 순간, 챠밍은 얼어붙고 말았답니다. 눈을 뜬 공주의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다웠거든요. 세상 그 어느 보석보다 투명하고 빛이 났으며 그 어느 요정보다 신비로운 뮤라이공주의 눈은 그 어떤 것에 비할 바가 아니었어요. 그곳엔 밤하늘의 모든 반짝임과 달빛의 부드러움이 담겨져 있었어요. 그 순간 챠밍의 가슴엔 뮤라이공주에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찼답니다.

챠밍은 최선을 다해 뮤라이공주의 초상화를 그렸답니다. 그림을 그린 지 한 달이 되던 날, 너무나도 아름다운 초상화가 완성되었어요. 햇살에 비친 초록색 드레스가 무척 인상적인 그림이었답니다. 챠밍은 만족스러웠답니다. 자신의 재능으로 뮤라이공주의 아름다움을 표현했으니까요.

그러나 곧 슬퍼졌어요. 세상 모든 사람들이 뮤라이공주의 아름다움을 볼 기회가 생겼지만 정작 뮤라이공주는 그 그림을 볼 수 없으니까요.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한 이 울었답니다. 한참을 울고 난 후 챠밍은 마음을 추슬러 왕궁으로 갔어요. 에틴국왕에게 완성된 그림을 전달하기 위해서요. 에틴국왕은 완성된 그림을 보고 매우 만족해하며 어마어마한 상을 내렸답니다.

하지만 챠밍은 기쁘지 않았어요. 그를 위해 내려진 온갖 금은보화를 봐도 기쁘지 않았고, 그에게 내려진 큰 저택과 노예들을 봐도 그는 기쁘지 않았어요. 뮤라이공주가 자신의 그림을 볼 수 없으니까요. 그 후로 챠밍은 그림을 그릴 수 없었어요. 자꾸 뮤라이공주가 생각났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챠밍이 우울함에 빠져 있던 어느 날, 왕국에 전쟁이 일어났어요. 이웃왕국인 페릴왕국의 포악한 국왕이 공주를 자신의 아들에게 달라고 요청을 했는데 에틴국왕이 그것을 거부했거든요. 그래서 그 포악한 국왕은 뮤라이공주를 잡아갈 심산으로 전쟁을 일으킨 것이에요.

스승님을 따라 다른 나라에 가있던 챠밍은 자신의 노예로부터 왕국이 다른 나라로부터 침입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답니다. 그 순간 챠밍의 눈앞은 깜깜해졌어요. 뮤라이공주가 걱정이 되었거든요. 그래서 챠밍은 곧바로 사람들을 모아 오텔왕국으로 갔답니다.      

신하들로부터 뮤라이공주가 에틴국왕과 10명 남짓한 호위병들과 함께 남쪽으로 대피하고 있는 소식을 들은 챠밍은 곧바로 뮤라이공주를 찾아 나섰답니다. 곧 찾을 수 있었어요. 공주가 있는 그곳은 참으로 참혹했답니다. 급히 도망쳐 나온 탓에 옷가지 하나  변변히 챙기지 못한 시종들 때문에 뮤라이공주는 초라한 차림으로 지냈어요. 그것은 에틴국왕도 마찬가지였답니다. 호위병들의 상태도 말이 아니었어요. 국왕을 적군들에게 지키기 위해서 싸웠거든요. 이곳 저곳에 상처를 입어 그들의 상태는 매우 안 좋았답니다. 에틴국왕은 챠밍을 보고 매우 반가워했어요. 도움을 준 이는 챠밍하나뿐이었거든요. 에틴국왕은 챠밍에게 말했어요.

"날 구해준 그대에게 감사를 표한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 동맹국인 포프디왕국에 가기만 하면 너에게 공주를 주겠다. 그대를 내 사위로 삼겠어."

챠밍은 너무나도 행복했답니다. 한번도 잊은 적 없던 뮤라이공주를 아내로 삼을 수 있다니.. 챠밍은 자신의 꿈이 이루어진 것 같았어요. 그래서 최선을 다해서 뮤라이공주와 에틴국왕을 구했어요.

하지만 에틴국왕은 포프디왕국으로 건너가자마자 그 약속을 취소해버리고 그 나라 왕자에게 뮤라이공주를 주었답니다. 우호의 증거로요. 챠밍은 절망했답니다. 그토록 사랑한 공주였는데 에틴국왕의 배신으로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져버렸으니까요.

챠밍은 슬픔을 이기지 못했어요. 그래서 늘 술에만 의지했답니다. 공주를 잊기 위해서요.

그렇게 1년이 지났어요.
뮤라이공주가 시집간 이웃나라는 매우 위험해졌어요. 1년 전 뮤라이공주를 노리고 침략한 페릴왕국의 포악한 왕이 매우 화가 나 공주를 도와준 모든 나라를 공격했거든요. 결국 포르디왕국은 패하고 말았어요. 뮤라이공주는 포로로 잡혔답니다. 처음에는 그의 아름다운 미모를 탐내던 왕자도 이내 그녀의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되자 흥미를 잃었거든요. 그래서 지하감옥에서 평생을 보내게 하려고 한 것이랍니다.

그 소식을 들은 챠밍은 미칠 듯 화가 났어요. 사랑하는 마음은 그대로였거든요. 그래서 뮤라이공주를 구하기 위해서 여행을 떠났답니다. 여행길에서 그는 밤마다 기도했어요 제발 사랑하는 뮤라이공주가 무사하기를 하고 말이에요. 빌고 또 빌었어요. 그런 챠밍이 기특했는지 그의 가슴속에 잠들어있던 사랑의 요정 '러브'가 그에게 축복을 내렸답니다. 그의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축복을 말이에요. 다만 그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경우에만요. 챠밍을 그 신비로운 경험을 한 이후 힘을 내 길을 재촉했답니다.

뮤라이공주는 이웃나라의 지하감옥에 가둬져있었어요. 뮤라이공주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배려해주는 감옥지기 덕분에 뮤라이공주는 그럭저럭 편히 지낼 수 있었어요. 챠밍은 몰래 감옥으로 숨어들었어요 감옥으로 통하는 지하수로에 몰래 잠입했거든요. 물론 이때 사랑의 요정이 도와준 것은 말할 것 두 없구요. 챠밍은 뮤라이공주가 가둬져있는 곳으로 몰래 다가갔어요 그리고는 속삭였답니다.

"저에요, 공주님. 그대를 사랑하는 어리석은 화가 챠밍이랍니다."

그의 목소리를 들은 뮤라이공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 소리가 나는 곳으로 고개를 들었어요.

"챠밍..? 혹시 제가 16살 되던 날 저의 초상화를 그려주신 화가님인가요? 늘 자상한 말로 저를 위로해주던 그 화가님말이에요. 제가 페릴왕국의 적병들을 피해 도망갔을 때 전 구하러 오신 그 화가님이세요? 그런가요? 한번도 잊은 적 없던 그 따스한 손길을 지닌 맘씨 고운 나의 왕자님이신가요?"

그 말을 들은 챠밍을 매우 기뻤어요. 뮤라이공주가 날 생각하고 있었다니 이런 아름다운 공주님이 자신을 생각하고 있었다니.. 챠밍은 뛸 듯이 기뻤답니다. 챠밍은 뮤라이공주의 손을 잡고 도망을 갔어요. 하지만 곧 경비병들에게 들키고 말았답니다. 챠밍은 뮤라이공주를 등에 엎고 미친 듯이 달렸어요. 뮤라이공주를 탈출시키기 위해서요.

그때 챠밍과 뮤라이공주는 동시에 이런 생각을 했답니다. '더 이상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떨어질 수 없어.. 난 저 사람과 영원히 함께 하고 싶어..' 하구요. 처음 축복을 내려준 요정 러브가 그들에게 나타났어요. 그리고는 웃으며 말했답니다.

"그대들의 사랑이 변하지 않기에 난 다시 그대들에게 축복을 내립니다. 영원한 사랑을 위해서."

그 순간 세상에서 가장 신비롭다는 시오르강으로 그들은 날라 갔어요. 둘은 어리둥절했죠. 그때였어요. 요정왕국의 여왕님이 그들 앞에 나타난 것이에요. 사랑의 요정들과 행복의 요정들을 거느리고 나타난 여왕님은 그들에게 이런 말을 했답니다.

"그대들에게 내려진 시련은 모두 그대들의 사랑을 위한 것이었어요. 힘내세요. 그대들의 앞날은 이제부터 시작이랍니다. 저와 함께 요정의 나라로 가지 않겠어요? 신비와 환상이 가득한 곳으로 그대들을 초대합니다."

챠밍과 뮤라이공주는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어요. 아무도 없는 둘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었거든요. 챠밍은 요정의 나라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자신의 붓을 잡고 그림을 그렸답니다. 여왕에게 선물받은 마법의 붓으로요.

그 그림에는 시오르강에 달빛이 비춰 요정의 나라로 가는 길이 열려있답니다. 그 길을 한걸음씩 걷고 있는 뮤라이 공주가 보이구요. 쏟아지는 듯한 별빛들과 환한 달빛이 어울려져 춤추고 있었구요. 초록 풀잎에 매달려있는 반딧불도 보였어요. 챠밍이 그린 세상에 단 하나뿐인 그림이랍니다.

그 후 둘은 행복하게 잘 살았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 것인지 그들은 잘 알고 있었거든요. 지금 그대에게도 이런 사랑이 있겠죠? 부디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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