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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공하후패(2001-01-08 23:08:19, Hit : 3903, Vote : 442
 <공명의 선택> 2장 이상한 소년
소설 제갈공명 (10)…제2장 이상한 소년(1)
황건의 난이 일어난 다음다음 해, 태산군 승 제갈규는 양도에 있던 가족들을 모두 태산으로 데려왔다. 나이 마흔이 가까워 객지에서 혼자 생활을 한데다가 눈코 뜰 새 없는 관청 업무에 몸이 극도로 쇠약해진 것을 염려한 가복 장충이 우기다시피하여 이루어진 일이었다. 이 때 맏아들 제갈근은 13세, 둘째아들 제갈량은 6세였다.
제갈근은 아버지를 기억하고 곧잘 따랐지만, 제갈량은 아버지에 대해 몹시 낯설어 하였다. 제갈규가 제갈량의 양쪽 겨드랑이를 받쳐들고 높이 들어올리기라도 하면 제갈량은 자지러질 듯 울며 몸부림쳐 대는 것이었다. 그런 제갈량의 반응이 제갈규로서는 이만저만 서운한 것이 아니었다.

"아무래도 너무 떨어져 있었던 듯싶소." "이제 곧 친숙함을 느낄 것입니다." 아내 장씨가 조심스럽게 위로했다. 그 해 겨울에 아내 장씨는 딸 하나를 낳았다. 이름을 정(貞)이라고 지었다. 그 무렵, 제갈규는 맏아들 제갈근을 낙양의 태학에 입학시키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었다. 그는 사람을 보내 낙양에 있는 동생 제갈현과 이 문제에 대해 의논했다. ―넓은 세상을 견문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지요.

제갈현의 응답은 긍정적이었다. 제갈규는 곧 제갈근의 낙양 유학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제갈근은 철이 들면서부터 자신에 대해 매우 엄격했다. 어떤 때는 도가 지나쳐 10여 세의 소년다운 천진함과 발랄함을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자신이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오해를 한 아버지가 벌을 내리면, 그는 자신의 억울함을 변명하거나 항변하지 않고 고스란히 벌을 받곤 하였다. 이러한 제갈근의 진중함이랄까 소년답지 않은 행동 때문에 제갈규는 무안함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저 아이는 남에게 미움은 사지 않겠구나." 제갈근은 자신의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거나 직선적으로 말하지도 않았다. 한번은 제갈량이 장난을 치다가 아버지가 아끼는 책을 찢은 적이 있었다. 제갈규가 화가 나서 제갈량을 벌주려 하자, 제갈근은 장문의 편지를 써서 아버지에게 건네주었다. 편지에는 단 한 줄도 제갈량을 용서해 달라는 말이 없었다. 대신 양도에서의 제갈량의 갓난 시절부터 지금까지 자라온 과정이 상세히 적혀 있었다.

그 글을 읽는 동안 제갈규는 제갈량에 대한 부정(父情)이 용솟음쳐 올라와 자연스레 그의 잘못을 용서해주었다. 반면에 제갈량은 성격이 직선적이고 강한 편이었다. 책읽기를 좋아하고 말이 많지는 않았지만 한 번 뱉은 말은 웬만해서는 꺾지 않았다. 자신의 의사를 내세울 때도 곧이곧대로 말했다. 두 형제를 보고 있노라면 마치 제갈규와 제갈현의 어릴 때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제갈규는 혼자 쓴웃음을 짓곤 하였다.

제갈근이 낙양으로 유학을 떠나기 얼마 전, 제갈규는 두 아들을 데리고 태산 기슭으로 소풍을 나갔다. 그 날은 날씨가 화창했다. 태산 기슭의 작은 봉우리에서도 멀리 옛 제나라 도성인 임치(臨淄)가 보였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은 곳은 양보(梁父)라고 하는 언덕이었다. 그 곳은 지신(地神)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기도 했다. 황실에서는 일 년에 두 번 이 곳에 와서 지신에게 제례를 올린다. 그 때마다 제갈규는 군(郡)의 행정관으로서 그 일을 관장해왔다.

소설 제갈공명 (11)…제2장 이상한 소년(2)
집에서 가지고 온 음식을 먹고 나자 제갈규가 손을 들어 건너편 구릉 하나를 가리키며 제갈근에게 물었다. "저기 보이는 저 언덕이 무엇인지 아느냐?" 열네 살의 숙성한 제갈근이었지만, 태산군으로 옮겨온 지 이제 일 년이 넘었을 뿐이었다. 성내를 벗어난 적이 없는데 태산 기슭에 있는 조그만 구릉을 알 리 없었다.
"소자가 견문이 부족하여 알지 못하겠습니다." "이 곳이 옛날에는 제나라 땅이었다는 것은 알고 있겠지?" "예, 저 멀리 아득하게 보이는 성이 제나라 도성인 임치성 아닌지요?"

"맞다. 이 곳이 지금은 양보라는 지명으로 불리지만 옛날 제나라 시절에는 탕음(蕩陰)이라는 조그만 촌락이었다. 그 때 당시 이 곳에는 제나라 때의 유명한 장수들 무덤이 많이 있었는데, 그 중 공손접(公孫接)과 전개강(田開彊), 그리고 고야자(古冶子)란 세 장수의 무덤이 유명하였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건너편에 솟아 있는 구릉이 바로 그 공손접과 전개강, 고야자 장군의 무덤이라고 하는데, 저 무덤이 생겨난 유래 때문에 이 곳 탕음 마을이 꽤 유명해졌지."

"제나라 경공(景公) 때의 호걸인 공손접과 전개강, 고야자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은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만, 정확히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양보음(梁父吟)이라는 노래는 들어본 적이 있느냐?" "양보음? 처음 듣는 노래입니다. 양아, 너는 양보음이라는 노래를 알고 있니?"

제갈근이 옆에서 풀을 엮으며 장난을 치고 있던 동생 제갈량에게 물었다. 그 때 제갈량은 일곱 살의 어린 나이였지만 노래를 무척 좋아하여 당시에 유행하던 노래는 거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돌아보며 물었던 것이다.

"양보음이오? 알지요. 형님은 아직 양보음도 모릅니까? 제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제갈량의 입에서 ‘양보음'을 안다는 대답이 나오자 제갈규까지 놀란 눈으로 바라보았다. "네가 그 노래를 어찌 아느냐?" "동네 아이들에게서 배웠습니다. 글방 선생님도 이따금씩 거문고를 타면서 양보음을 부르십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 노래 가사에 담긴 뜻도 알겠구나." "글방 선생님이 한 번 가르쳐주신 적이 있긴 합니다만, 지금은 잊어버렸습니다." "한 번 불러볼 수 있겠느냐?" 제갈규는 어리다고만 생각해온 제갈량의 입에서 이 지역 전통 민요인 ‘양보음'을 부를 줄 안다는 대답이 나오자 여간 대견하고 기특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아버님과 형님께서 원하신다면 불러보겠습니다." 노래라면 언제든 자신이 있었다. 글방에서도 그는 스승이건 동무들이건 시키기만 하면 사양하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 제갈량은 자리에서 일어나 높고 맑음 음성으로 양보음을 부르기 시작했다.

제나라 성문을 걸어나오니

아득히 탕음 마을이 바라다보이네.

마을에 무덤 셋이 있는데

이것이 저것 같고, 저것이 이것 같구나.

묻노니 이것이 누구의 무덤인가,

전강과 고야자의 무덤이로다.

힘은 능히 남산을 밀어낼 만하고

또한 땅마저 끊어버릴 수가 있었도다.

그런데도 하루아침에 참언을 당해

복숭아 두 개로 세 용사가 죽음을 당했네.

누가 그런 꾀를 내었는가,

제나라 재상 안자(晏子)이어라.

소설 제갈공명 (12)…제2장 이상한 소년 (3)
아버지 제갈규도, 형 제갈근도 제갈량이 그토록 노래를 잘 부를 줄은 전혀 몰랐 다. 그들은 마치 자신이 제나라 때의 장수 전개강과 고야자가 되어 비운의 죽음을 맞이하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잠시 후, 제갈규는 두 아들에게 양보음 노래에 얽힌 제나라 시절의 일화를 들려주 었다.
제나라 경공 때 공손접과 전개강, 그리고 고야자라는 세 명의 뛰어난 장수가 있었 다. 그들은 일기당천의 무용을 지녔을 뿐 아니라 자부심 또한 하늘을 찌를 듯 높았 다. 이러한 그들의 자긍심은 자주 방약무인의 행동으로 표출되었고, 급기야는 임금 인 경공의 마음을 불안하게 했다.

당시 제나라 국정을 책임지고 있던 재상은 안영(晏瓔)이었다. 안영은 안자(晏子) 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그 역시 세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제나라 사 직이 위태로울 것이라 여기고 은밀히 경공에게 아뢰었다.

―지금 공손접과 전개강, 고야자 세 장수의 기세가 하늘을 찌를 듯하고 땅을 뒤흔 들 정도입니다. 만일 저들이 합세하여 불충한 일이라도 꾸민다면 주공은 매우 위태 로운 지경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시절이 평안할 때 하루속히 제거하도록 하십시오.

―나도 그러한 생각을 하지 않은 바 아니나, 저들을 무슨 방도로 없앨 수 있단 말 이오?

―제게 좋은 계책이 있습니다. 주공께서는 잘 익은 복숭아 두 개만 준비해 두십시 오.

다음 날, 경공은 세 장수에게 사자(使者)를 보냈다. 사자는 그들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복숭아 두 개를 내놓으며 경공의 명을 전했다.

―그대들 중 가장 용맹스럽고 나라에 기여한 공이 크다고 생각하는 사람만 이 복 숭아를 먹으시오.

그들 세 사람은 평소 자신이 제나라 제일의 장수요, 공신이라고 자부해 왔었다. 사실 누가 뛰어난지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는 복숭아가 두 개밖에 없다. 어떻게 해서든 우열을 가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공손접은 일찍이 커다란 멧돼지와 호랑이를 한꺼번에 때려잡은 적이 있었다. 고금 을 막론하고 이러한 용맹을 발휘한 장사가 없다고 자부하던 그는 가장 먼저 복숭아 를 집어들며 말했다.

―어느 누가 나를 천하제일이라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자 이번에는 전개강이 남은 복숭아 하나를 집어들며 외쳤다. ―나는 국운이 달려 있는 큰 싸움에서 두 번씩이나 복병을 내어 승리를 거두었으 며, 크고 작은 전쟁에 나가 단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어찌 나의 공이 남에게 뒤 질소냐.

결국 두 사람은 복숭아를 하나씩 차지했고, 고야자만이 빈 손이 되어 아무 것도 없는 쟁반을 노려보았다. 단순한 복숭아라면 아무 문제가 생겨날 리 없다. 그러나 이 복숭아는 의미가 달랐 다. 천하 제일의 호걸을 상징하는 복숭아가 아닌가. 고야자는 두 사람의 행동이 괘씸하기도 하고 가소롭기도 하였다. 이 사실이 세상 에 알려지면 그는 세상 사람들 앞에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다는 치욕감에 사로 잡혔다.

그는 얼굴이 벌게져서 두 사람을 향해 외쳤다. ―일찍이 주공께서 황하를 건너실 때 커다란 거북이 나타나 주공의 말을 물고 물 속으로 끌고 들어간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헤엄을 칠 줄도 모르면서 강물로 뛰어 들어가 거북과 싸우며 물길을 거슬러 올라간 것이 1백 보요, 물길을 따라 내려간 것이 9리였다. 그리하여 거북을 잡아죽이고 주공의 말을 빼앗아왔다. 이 때 사람들 은 나를 일러 하백(河伯=황하의 신)이라고 칭송하기를 아끼지 않았다. 내 어찌 그대 들에게 힘이나 용맹스러움이 뒤진다 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은 어서 복숭아를 돌려 다오.

그러면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사람을 노려보는 것이 당장에라도 칼을 뽑아 들 기세였다. 분위기가 살벌해진 가운데서도 공손접과 전개강은 고야자의 말에 부끄러움을 느 꼈다. 자신들은 도저히 고야자의 용맹에 미치지 못함을 깨달았던 것이다. 두 사람은 얼른 가져갔던 복숭아를 고야자에게 건네주고는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 했다.

―우리들의 용맹과 공이 고야자에 비길 바가 못 되었는데도 복숭아를 차지한 것 은 탐욕 때문이다. 아아, 부끄럽구나. 어찌 이대로 세상 사람들을 대할 수 있겠는가. 그러고는 칼을 빼어 각자 제 목을 찔러 자결하고 말았다. 이 모습을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고야자는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그는 자신 때문 에 두 사람이 죽은 것을 깨닫고 역시 칼을 빼어들며 하늘을 향해 외쳤다.

―부끄럽고 부끄럽구나. 남을 부끄럽게 하면서까지 나의 이름을 높이려 했던 것 또한 불의(不義)임을 어찌 몰랐던가. 이제 두 용사는 죽었다. 나 혼자 살아 있는 것 역시 불인(不仁)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러고는 고야자도 칼로 자신의 목을 깊이 찔렀다. 이렇게 해서 제경공은 화근을 미연에 방지하기는 했지만, 세 용사의 용맹과 공적 을 생각하여 후하게 장사지냈다고 한다.

"그 장소가 바로 이 양보의 언덕이다." 제갈규는 이야기를 마치고 소감이라도 묻듯 두 아들을 내려다보았다. 제갈근은 조용히 건너편 구릉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세 호걸의 죽음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어째서 제경공은 안자의 꾀를 받아들여 그들을 죽였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뿐이냐?" "아울러 그들의 죽음에서 고결하고 깨끗함을 느꼈습니다. 인(仁)과 의(義)가 무엇 인지 알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갈근의 대답에 제갈규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갈량에게도 물었다.

"너는 이 이야기에서 어떤 것을 느꼈느냐?" "저는 안자라는 사람이 대단히 지모가 뛰어났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무리 힘 이 세고 용맹스러워도 꾀에는 당해내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는 커서 안자 같은 사람이 되겠습니다."

제갈량의 이 같은 대답에 제갈규는 깜짝 놀랐다. 일곱 살짜리 아이 입에서 어찌 이런 해석과 포부가 나올 줄을 짐작이나 했겠는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고 있던 후한 왕조였다. 당연히 충효와 인의예지가 가르침 의 핵심으로 자리잡을 수밖에 없었다. 제갈규가 두 아들에게 양보음에 얽힌 일화를 들려준 것도 인의의 아름다움에 대해 가르쳐주려는 의도에서였다. 그런데 어린 제 갈량의 입에서 그 자신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시각의 해석이 나온 것이었다. 제갈규는 당황했다.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자란 탓이 아닐까.' 아버지의 당혹해하는 마음을 눈치챘음인가. 제갈근이 멀리 하늘 저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아버님, 저것은 먹구름이 아닌지요?" "그렇구나. 그만 돌아가도록 하자." 세 부자는 펼쳐놓은 음식을 싸서 산기슭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신이 나서 앞서가 는 제갈량의 입에서 흥얼흥얼 양보음의 노랫가락이 흘러나왔다.

복숭아 두 개로 세 용사가 죽음을 당했네.

누가 그런 꾀를 내었는가,

제나라 재상 안자이어라.

제갈규는 제갈량이 마지막 구절을 유달리 힘주어 부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며칠 후, 제갈근은 낙양으로 유학을 떠났다.

소설 제갈공명 (13)…제2장 이상한 소년 (4)
"이런…쯧쯧." 바둑판에 돌을 놓은 순간, 제갈규는 자신의 착점이 잘못된 것임을 이내 직감하고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찼다. 바둑의 상대는 태산군 일대에서 고수라고 불리우는 채(蔡) 노인이었다. 채 노인의 본래 직업은 창고지기. 그러나 지금은 나이가 들어 은퇴하고 바둑을 좋아하는 명사 들에게 불리어다니며 상대를 해주는 것이 직업처럼 되어버렸다. 세상 돌아가는 일 에 밝아 이런저런 얘기를 들려주는 것 또한 즐거움 중의 하나인 듯, 바둑을 두는 동안 좀처럼 입을 다물지 않는 것이 채 노인의 버릇이라면 버릇이었다.
제갈규가 채 노인을 알게 된 것은 황건의 난이 일어나기 전이었다. 태산군의 행정 책임자인 그는 창고를 담당하고 있는 채 노인과 업무상 몇 번 마주친 일이 있었다. 그 때 채노인이 바둑을 잘 둔다는 사실을 알았다. 재미삼아 둔 두어 차례의 대국에 서 제갈규는, ―과연…! 하며 감탄했다. 소문보다 훨씬 뛰어난 고수였다. 그 뒤로 제갈규는 종종 채 노인 을 초청하여 바둑돌을 교환하곤 하였다.

제갈규의 바둑 솜씨는 제법 수준급이었으나 그다지 즐기는 편은 아니었다. 바둑은 바둑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채 노인을 알게 된 뒤부터는 바둑이 즐거웠다. 아니, 좀더 엄밀히 말한다면 바둑이 즐거운 것이 아니라 채 노인으로부터 듣는 재 담이 즐겁다고 해야 할 것이다.

―노인장은 모르는 일이 없군요. 한 번은 제갈규가 이렇게 칭찬하자 채 노인은 누런 이를 드러내며 혼잣말인 듯 중얼거렸다. ―세상사의 일이나 바둑이나 종내는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바둑의 정진을 위하여 일부러 세상사의 일을 귀담아 듣는다는 뜻이리라. 그때 제 갈규는 새삼스런 눈길로 채 노인을 바라보며 오호, 하고 탄성을 내질렀다. 지금의 바둑 형세는 단연 제갈규에게 불리했다. 물론 처음에는 그런 대로 잘 두어 나갔다. 그러던 것이 중반으로 접어들면서 반상의 대세는 눈에 띄게 채 노인 쪽으 로 기울어져갔다.

"한 수 물릴 수는 없을까?" 채 노인이 잘 두어서 그런 것이라면 그렇게까지 아쉽지는 않았으리라. 지금의 불 리한 국면은 오로지 제갈규가 악수(惡手)를 거듭한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해야 옳았 다.

"이미 세 번이 지났음을 잊지는 않으셨겠지요?" 채 노인이 고수임을 감안하여 제갈규는 세 번까지 돌을 물릴 수 있는 조건으로 바둑을 두곤 하였다. 그 세 번의 기회를 그는 이미 모두 사용하였다. "으음…!" 더 이상 조를 수도 없는 형편이었다. 제갈규는 자신도 모르게 신음 같은 탄식을 토해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언제부터 그곳에 있었던가. 둘째아들 제갈량이 그림처럼 앉아 두 사람이 둔 바둑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바둑에 흥미라도 두고 있는 것일 까. 여덟 살 소년 제갈량은 고개까지 갸웃거리며 제법 심각한 표정으로 바둑판의 돌에 눈길을 고정시키고 있는 것이다.

"내가 졌소이다." 제갈규는 깨끗하게 패배를 시인했다. "오늘의 이 바둑을 굳이 평가하자면…" 채 노인은 흘깃 제갈량을 돌아다본 후 바둑돌을 거두는 제갈규를 향해 조용히 입 을 열었다. "작금의 낙양을 보는 듯합니다."

제갈규의 손 움직임이 멎었다. "그것이 무슨 뜻이오?" "연전에 일어난 황건 도당의 반란은 부패하고 무능한 지금의 황실에 대한 징벌이 요, 경고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황실에 대한 경고?" "그렇습니다. 당연히 지금의 정치 현실에 반성하고 정치권을 비롯한 모든 분야에 걸쳐 개혁에 착수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어떻습니까? 나으리처럼 똑같은 우를 범하 고 있지 않습니까?"

제갈규는 비로소 채 노인이 말하려는 바를 알아들었다. 황건의 난이 진정되면서부터 나라의 앞날을 염려하는 사람들은 천자인 영제(靈帝)가 변할 것을 기대했었다. 그런데 영제는 어떠했는가. 어처구니 없게도 난이 진 정되자마자 그는 다시 환관들을 총애하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다락으로 숨어들 었던 환관들은 기회를 놓칠세라 정치 일선에 나섰고, 급기야는 모든 일을 좌지우지 하기 시작했다.

"그렇군." 제갈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표적인 예가 황건군 토벌에 공이 큰 장수나 관리들에 대한 불공정한 처사였다. 환관들은 아무리 큰 공을 세운 장수라 하여도 자신들에게 뇌물을 바치지 않은 자들 은 영제에게 공적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공이 없거나 오히려 벌을 내려야 할 자들 이라도 뇌물을 갖다 바치면 그럴 듯하게 공적서를 꾸며 영제에게 올렸다.

그 결과 유비 같은 이는 의군을 일으켜 유언, 노식, 주전 등의 막하에서 많은 공 을 세웠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포상을 받지 못했고, 싸울 때마다 패전을 거듭해 관 군의 사기를 떨어뜨린 동탁 같은 자는 오히려 공신 대열에 올라 오향후(鰲鄕侯)라 는 작위를 받았다.

소설 제갈공명 (14)…제2장 이상한 소년(5)
"아시겠습니까, 오늘 바둑의 패인을?" 채 노인은 다시 바둑으로 화제를 돌렸으나, 제갈규의 눈길은 이미 정자 밖의 먼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럼 오늘은 이만……"
채 노인은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다 문득 그때까지 바둑판 옆에 앉아 꼼짝 도 하지 않고 있는 제갈량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작은 도련님께서도 바둑에 관심이 있으시오?" 제갈량은 대답 대신 얼굴을 붉혔다. 자신의 속마음을 들여다보인 듯해서였다. "바둑을 배우시겠다면 제가 가르쳐드리지요." 무심히 한 말이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제갈량의 되물음이 채 노인을 움칠하게 했 다.

"바둑을 배우면 뭐가 좋지요?" 순간, 채 노인은 대답이 궁했다. 이제까지 이런 질문을 받아본 적이 없었다. 바둑 을 두는 사람은 이런 물음을 던지지 않는다. 그저 즐기기 위해서 둘 뿐이다. 그 자 신 바둑의 어떤 점이 이득이 된다고 해서 바둑을 두어왔던 것은 아니다.

"오, 어려운 물음이군요. 바둑의 세계를 알게 되면…… 에, 세상 돌아가는 일을 알 게 된다고나 할까요." "바둑을 잘 두게 되면 세상 일을 잘 알게 된다는 그런 뜻인가요?" 채 노인은 지금까지 그 반대의 생각으로 지내왔다. 그가 세상 일에 흥미를 갖고 그것을 바둑에 적용시킨 것은 어디까지나 바둑을 잘 두기 위한 방편에서였다. 그런 데 이 여덟 살짜리 소년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역으로도 생각해 볼 수 있는 일이 아 닌가.

"굳이 말하자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둑은 꽤나 유익한 놀이이군요." "그렇습니다."

의외로 당돌한 소년이라고 채 노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제갈량의 물음은 계속되었다. "에, 바둑에서 가장 중요한 요체는…… 바둑돌을 어디에다 두는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요, 어디에다 둘 것인가?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채 노인은 이렇게 대답해놓고 자신이 제대로 대답을 해주었나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다. 그러나 염려할 필요는 없었다. 제갈량은 채 노인의 그 대답에 상당히 흥미 를 느낀 표정이었다.

"어디에다가 둘 것인가가 중요하단 말이지요? 그렇다면 바둑은 별로 어려운 놀이 가 아니군요. 좋습니다. 저는 바둑을 배우기로 결심했습니다. 제게 바둑을 가르쳐주 실 거지요?"

채 노인은 제갈량의 어린 소년다운 발상과 당돌함이 마음에 들었다. 어쩌면 훌륭 한 제자로 키울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기대감도 들었다. "작은 도련님께서 배우시겠다는데 제가 모른 척 할 수야 없지요. 내일부터라도 당 장 가르쳐드리겠습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소설 제갈공명 (15)…제2장 이상한 소년(6)
황건군의 토벌로 인한 평온함은 잠시뿐이었다. 중원 곳곳에서는 다시 반란이 일어 나기 시작했다. 국경 밖의 오랑캐들도 때를 놓치지 않고 침입했다. 먼저 남쪽 무릉만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북쪽에서는 선비(鮮卑)족이 유주와 병주 일대를 휩쓸었다. 또한 형주의 장사(長沙) 땅에서는 구성(區星)이란 자가 난을 일으 켰으며, 유주의 어양(漁陽)에서는 장순(張純)·장거(張擧) 형제가 백성들을 선동하여 반기를 들고 나왔다.
이렇듯 여러 곳에서 반란과 외침이 끊임없이 일고 있었으나, 정작 낙양성 안의 장 락궁은 태평스럽기만 했다. 십상시를 중심으로 한 모든 환관들이 서로 짜고 조정 신하들이 올리는 모든 장계를 중간에서 가로채 영제의 손에는 들어가지 못하게 했 던 것이다.

이를 보다 못한 간의대부 유도(劉陶)가 하루는 영제가 잔치를 벌이고 있는 후원 으로 숨어들어가 영제 앞에 엎드려 통곡하였다. 영제가 의아하게 여기고 물었다. "경은 어인 일로 예까지 와서 그리 슬피 우는가?" "나라의 위태로움이 조석을 다투고 있는 이 때에 폐하께서는 내시들과 어울려 잔 치만 베풀고 있으니, 어찌 통곡하지 않을 수가 있겠습니까?" 유도가 눈물을 훔치며 대답했다.

"그것이 무슨 소리오? 요즘 같은 태평세월에 나라가 위태롭다니 짐은 경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소." "지금 나라 안은 온통 도적의 무리가 들끓고 있고, 국경지대는 오랑캐들이 침범하 여 폐허와 다름없습니다. 이는 모두가 십상시들을 비롯한 내시들이 관작을 팔고 백 성들을 착취하였을 뿐 아니라, 성총을 가리어 바른 말을 하는 사람들을 조정에서 내쫓았기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런데도 폐하께서는 태평세월이라 노래 부르시 니 절로 통곡이 터져나올 뿐입니다."

그러한 유도의 행동에 당황한 것은 곁에 있던 환관들이었다. 그들은 재빨리 영제 앞에 엎드려 눈물을 뿌리며 호소했다. "조정의 대신들이 저희들을 이처럼 구박하고 모함하니 저희들은 도저히 목숨을 유지할 수가 없습니다. 차라리 폐하의 손에 죽기를 원합니다. 청컨대 저희들의 목을 베어주십시오."

영제는 처음에는 유도의 말에 귀를 기울였으나, 내시들의 눈물을 보는 순간 유도 가 여간 가증스럽게 여겨지지 않았다. "너는 조정에 출사한 자로서 어찌하여 내관들을 모함하는 말을 하느냐? 당장 저 놈을 끌어내 목을 베라." 무사들이 달려와 간의대부 유도를 잡아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 때 대신 하나가 무사들 앞을 가로막으며 외쳤다.

"너희들은 유 대부에게 손대지 말라. 내가 폐하께 간해 보리라." 모든 사람이 돌아보니 사도 벼슬을 하고 있는 진탐(陳耽)이었다. 진탐은 빠른 걸 음으로 영제 앞으로 나가 아뢰었다. "유 대부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목을 베려는 것입니까?" "내관들을 모함하고 비방했으며, 짐을 모독한 죄이니라." 영제가 아직 화가 풀리지 않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천하 백성들이 한결같이 십상시의 고기를 씹어먹기를 소원하고 있는데, 폐하께서 만은 오직 저 자들을 부모처럼 공경하며 벼슬을 높이는 까닭이 무엇입니까? 더구나 봉서라는 자는 황건적과 내통하여 난을 일으켰던 자입니다. 그런데도 십상시들의 말만 들으시니 참으로 답답하지 않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봉서가 도적과 내통했다는 것은 뚜렷이 드러난 일이 아니다. 경은 짐이 십상시의 말만 듣는다고 했는데, 저들 중에 어찌 한두 사람의 충신이 없겠는가." 영제가 끝내 십상시를 두둔하자 원통함을 이기지 못한 진탐은 자신의 머리를 돌 계단에 마구 찧었다. 삽시간에 붉은 피가 옷과 계단을 적셨다. 그것을 본 영제는 불같이 노했다.

"저런 발칙한 놈을…! 저놈도 끌어내어 유도와 함께 옥에 가두어라." 이런 일이 있고 난 그 날 저녁, 십상시는 빈 방에 모여 머리를 맞대었다. "조정 신하들이 유도와 진탐을 구하려고 나설 것은 분명하오. 그러면 일이 시끄러 워질 터이니 아예 오늘밤 죽여버리는 게 낫겠소." "폐하께서도 조용한 것을 좋아하실 것이오."

다음 날 아침, 옥에 갇혀 있던 유도와 진탐이 싸늘한 시체로 발견되었으나 아무도 그 일에 대해 아는 척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소설 제갈공명 (16)…제2장 이상한 소년(7)
제갈근이 낙양으로 올라온 지 어느덧 반 년이 넘었다. 그는 거처를 숙부인 제갈현의 집에다 정하고 태학에 나가 공부를 하였다. 하지만 그 무렵의 태학생들은 학문에 대한 정진보다는 황실과 조정의 움직임에 더 많은 관 심을 기울였다. 간의대부 유도와 사도 진탐이 옥에서 살해되었다는 소문은 태학생 들의 젊은 혈기를 자극하는 데 충분했다.
어느 날, 제갈근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제갈현의 방을 찾았다. "지낼 만하느냐?" 그 무렵 제갈현은 북군중후(北軍中侯) 유표(劉表)의 막하에서 지방 수령들이 보내 오는 장계를 정리하고 분석하는 일을 맡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 빴다. 그는 장조카인 제갈근에 대해 세심한 배려를 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다.

"조금씩 낙양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습니다. 그보다도 숙부님께 여쭐 말씀이 있습 니다." 제갈현은 조카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대화를 피하고 싶었 으나 제갈근의 진지한 눈빛을 보고는 입을 열었다. "말해 보아라." "유 대부와 진 사도의 죽음에 대한 정확한 진상을 알고 싶습니다." "오늘 태학생들의 집회가 있었구나?" "그렇습니다."

"황제 폐하께 상주문을 올리기로 결의했겠지?"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너도 서명을 할 작정이냐?" "조정 관리들이 하지 않으니 태학생들이라도 나서야 되지 않겠습니까?" 제갈현은 제갈근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제갈근의 두 눈은 뜨거운 불꽃으로 타오르고 있었다. 그것이 정의와 진실을 향한 열망이라는 것을 제갈현이 어찌 알지 못하랴. 바로 자기 자신의 가슴 속이 그러하 질 않는가. 하지만 제갈현은 현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현실처럼 무섭고 두려운 상대는 없다.

"조정 관리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태학생들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조정 관리들은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너는 두렵지 않으냐?" "두렵지 않습니다." "무엇이 두렵지 않다는 것이냐?"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성인께서 가르치시기를, 불인과 불의 앞에서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얻어지는 것이 무엇이냐?"

제갈근은 여기서 말문이 막혔다. 가슴 속에서는 무엇인가 하고 싶은 말이 가득한 데, 막상 입 밖으로 내뱉으려 하니 할 말이 없었다. "근아, 진정한 행동이란 결코 열망을 앞세우는 것이 아니다. 너희들은 내일 또 집 회를 열고 성토문과 결의문을 쓰겠지. 하지만 너희들이 쓴 상주문은 결코 황제께서 보지 못할 것이다. 왜냐 하면 지금쯤 저 궁궐 안의 십상시도 우리와 같은 대화를 나누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환관들을 가벼이 보지 마라. 낙양성 어디에고 저들의 첩자가 없는 곳이 없다. 오늘 모인 태학생들 중에도 역시 환관들의 첩자가 끼어 있 었을 것이다."

"설마…?" "그것이 현실이다. 움직이지 말아야 할 때 움직이는 자는 군자(君子)가 아니다. 마 찬가지로 움직여야 할 때 움직이지 않는 것도 군자의 도가 아니다. 다만 어려운 것 은 언제 움직여야 하고, 언제 움직이지 말아야 하는가를 정확히 판단하는 일이다. 내가 너에게 자신있게 말하고 싶는 것은 지금은 움직이지 말아야 할 때라는 것이 다."

"하지만…" "내가 너를 낙양으로 오게 한 것도 그러한 능력을 길러주기 위해서이지, 지금 움 직이라고 부른 것은 아니다. 조만간 때가 올 것이다. 그 때까지 현실을 보는 눈을 길러두어라. 미래는 미래를 준비한 자에게만 오는 법이다."

"도성 소식 들으셨습니까?" 당연하다는 듯 채 노인은 바둑판 앞에 앉아마자 말문부터 열었다. 제갈규 또한 채 노인을 통해 여러 가지 유익한 정보를 얻어듣고 있던 터이라 굳이 그의 수다섞인 재담을 만류할 생각은 없었다.

"무슨 새로운 소식이라도 들은 모양이지요?" 하수인 제갈규가 먼저 바둑판 위에 흑돌을 놓으며 물었다. "얼마 전에 낙양의 태학생들이 환관들을 성토하는 글을 올렸으나 황제의 손에 들 어가기도 전에 십상시에 의해 불쏘시개가 되어버렸다는군요."

소설 제갈공명 (17)…제2장 이상한 소년(8)
채 노인은 최신 소식을 전해준다는 흥분감 탓인지 다소 들뜬 음성이었지만, 그 이 야기라면 제갈규도 이미 동생 제갈현의 편지를 통해 어느 정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 다.
주동자 두 명이 퇴학을 당해 고향으로 쫓겨내려가고, 나머지 가담 학생들은 근신 처분을 받았다고 합니다. 제가 극구 만류를 했지만, 제갈근 또한 근신 처 분을 받고 집안에서 칩거중입니다.

이런 편지를 받았을 때 제갈규는 의젓하기만 한 제갈근이 환관 성토 집회에 참여 한 모습을 선뜻 상상할 수가 없었다. ‘젊은 혈기로서 있을 수 있는 일이겠지만…… 제갈근의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었으나 그래도 불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는 것은 역시 아들의 앞날을 염려하는 아버지의 마음 탓이 아닐까.

"그 얘기라면 나도 들어서 알고 있소. 장차 이 나라의 앞날이 어떻게 될지 근심일 따름이오." "하지만 태학생들의 이러한 움직임이 아주 허망했던 것은 아니었던 모양입니다." 채 노인은 제갈규의 착점에 응수하는 백돌을 비로소 놓았다. "허망했던 것만은 아니라니?" "역시 십상시의 우두머리 장양은 정치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는, 노회한 자임에 틀림없습니다."

환관들의 대부격인 장양은 태학생을 비롯한 청류(淸流)들의 불만이 각 지방에서 일고 있는 반란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조정 관리들이 올리는 상주문 중 반란군 토벌 에 관한 글만 골라 영제에게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천자인 영제는 백관들을 불러 다음과 같이 명했다고 했다. ―종정 유우를 유주 자사에 제수하노니, 유우는 어양 땅을 어지럽히는 장순과 장 거 무리를 토벌하여 백성들의 안녕을 도모하시오. 또한 의랑 손견을 장사 태수에 제수하노니, 도적 구성을 잡아 목베도록 하라.

그런데 그 뒷조치가 사뭇 술수적이었다는 것이 채 노인이 말하려는 바였다. "이번 조치의 특징은, 황건적의 난 때처럼 토벌군 대장에게 군사를 내준 것이 아 니라, 토벌군 대장을 반란이 일어난 고을의 수령에 임명함으로써 도성의 군사를 단 한 명도 지방으로 빼가지 못하게 하였다는 점이지요. 이것이야말로 대신들에게 도 성의 군사권을 넘기지 않겠다는 십상시의 교묘한 술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도적을 토벌하라면서 군사 한 명 내주지 않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군." 제갈규는 이렇게 중얼거리면서 다음 돌을 어디에 둘 것인가 바둑판을 유심히 들 여다 보았다. "아무래도 앞날이 순탄치가 않을 것 같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

제갈규는 또 하나의 돌을 바둑판 위에 놓았다. "이러다가 낙양과 지방의 연계가 완전히 끊어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이 를 테면 지방 군벌이 생겨난다거나 하는 그런 현상도 생각해볼 수 있는 일이 아닐 까요?" "지방 군벌?" "예." 바둑의 달인은 정말로 세상사를 통달하고 있는 것일까. 채 노인의 이 농담 같은 한마디가 그 순간 실제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을 줄을 그 두 사람이 어찌 상상이 나 하였겠는가.

그렇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유우는 장순·장거 형제를 토벌한 후 그 일대에서 강 력한 권한을 행사하게 되었고, 손견은 손견대로 강남 일대에 자신만의 군대 조직을 갖출 수 있게 된 것이다. 이것을 시작으로 전국 각 지역에서는 속속 강력한 지방 군벌이 출현하게 되니, 요동의 공손찬, 기주의 한복(韓馥), 예주의 공주(孔紬), 하내 일대의 왕광(王匡), 연주의 유대(劉岱)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 과정은 이러하다. 신임 유주 자사 유우는 군사 한 명 거느리지 못하고 임지를 향해 떠나갔다. 현지 사정은 생각보다 훨씬 심각했다. 장순·장거의 무리는 그 사이에 10만 명 이상으로 불어나 유주는 물론 청주와 기주까지 세력을 뻗치고 있었다. 유우는 명색이 토벌대 장일 뿐 당장 발붙일 곳조차 없었다.

그는 먼저 자신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하여 계성에다 군영을 설치했다. 군사를 모 으고 성곽을 수리하는 중에 도적의 수령 장거와 장순이 계성을 공격해왔다. 유우는 급히 대주 자사 유회(劉恢)에게 구원을 청했다. 그 무렵 대주에는 유비가 관우, 장비와 함께 몸을 숨기고 있었다. 유비는 한때 안 희현의 위(尉)라는 관작을 받았으나, 장비가 중앙에서 내려온 감찰관을 두들겨패는 바람에 도망쳐 이 곳 대주의 유회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던 것이다.

대주 자사 유회는 유우에게서 구원 요청이 있자 유비의 죄를 씻게 할 좋은 기회 라 생각하고 그를 불렀다. ―그대에게 군사 3천을 내줄 테니, 현덕은 가서 유백안(劉伯安=유우의 자)을 구하 여 공을 세우도록 하게. 유비는 유회가 내준 3천 군사를 이끌고 바람처럼 달려갔다. 그러나 그가 달려간 곳은 계성이 아니라 장순·장거의 본거지인 어양이었다. 그 때 장순 무리는 온 힘을 다해 계성을 공격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양은 텅 빈 상태나 다름없었다. 유비는 눈깜짝할 새에 어양을 점령하고 백성들을 선동하여 그 소문을 퍼뜨렸다.

"곤마(困馬)를 살리는 방법으로 상대의 대마(大馬)를 공격하다니……기막힌 착점 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유비라는 그 사람, 바둑의 달인인지도 모르겠습니 다." 유비라면 제갈규도 일찍이 만나본 적이 있는 인물이다. 병법보다는 인품을 더 높 이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라는 인상을 받은 젊은 장수가 아니던가.

"유비가 상대의 허를 찔러 어양성을 공격했단 말이지?" 제갈규는 잠시 수 년 전에 만나보았던 유비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어양성이 함락되었다는 소문은 장순·장거의 귀에도 들어갔다. 근거지를 잃어 버린 장순·장거는 계성의 포위를 풀고 어양으로 향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유 우가 군사를 몰고 나와 뒤를 쳤다. 혼전을 벌이는 중에 유비가 다시 3천 군마를 거 느리고 가세하자 적병은 더 이상 싸울 의욕을 잃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유비 덕분 에 계성을 비롯한 유주 일대를 수복한 유우는 민심 수습에 들어갔다.

이 난의 평정을 계기로 유우는 유주 일대에서 일약 명성을 떨치게 되었으며, 조정 에서도 그 공을 인정하여 유우를 태위로 삼는 한편 열후의 반열에 오르게 하였다. 유비 또한 난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하여 지난날의 죄를 사면받고 별부사마 겸 평원현령에 제수되었다.

한편, 구성 토벌의 명을 받고 장사 태수가 되어 내려간 손견 역시 흐트러진 민심 을 수습하는 한편, 오래 전부터의 동지이자 심복부하인 황개(黃蓋), 한당(韓當) 등을 선봉으로 내세워 구성의 무리를 공격했다. 그 무렵 손견의 위명은 전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높았다. 황건의 난 때 워낙 발군의 공을 세웠던 데다가, 연전 양주(凉州) 지역에서 변장(邊章)·한수 (韓遂)가 난을 일으켰을 때도 그가 파견되었다는 말만 듣고 스스로 무너져 항복해 왔기 때문이었다.

반란군의 우두머리인 구성은 그런 손견이 장사 태수가 되어 자신을 치러 왔다는 소문을 듣고 잔뜩 겁을 먹었다. 우두머리가 그러하니 그 졸개들이야 어떠하겠는가. 그들은 예전과는 정반대로 관병만 나타났다 하면 달아나기 바빴다. 그 동안 구성을 따르던 백성들 또한 손견이 선정을 베푼다는 소문을 듣고는 삽시간에 구성에게서 등을 돌렸다.

구성의 무리는 더 이상 버틸 재간이 없었다. 손견이 장사 태수로 부임한 지 한달 이 채 못 돼 반란군을 따르던 무리는 제각기 흩어지고, 구성은 손견의 부하 장수들 에게 사로잡혀 목을 베이고 말았다.

뿐만 아니라 손견은 구성과 내통하여 반란을 꾀하던 주조(周朝)·곽석(郭石)의 무 리까지 소탕하였다. 이로써 장사를 비롯한 이웃의 세 군은 일시에 쥐죽은 듯 조용 해졌다. 조정은 그런 손견에게 오정후(烏程侯)의 작위를 내렸다고 했다.……

"또 지셨습니다." 채 노인의 말에 제갈규는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나야 늘 지지 않는가. 그건 그렇고 둘째아이의 바둑 진전은 좀 있소?" "둘째 도련님이요? 아주 훌륭합니다."

소설 제갈공명 (18)…제2장 이상한 소년(9)
당시의 중국 바둑은 가로줄이 17개, 세로줄이 17개. 모두 해서 289개의 목(目)이 있다. 오늘날의 바둑에 비해 종횡으로 2개씩의 줄이 적었으나, 규칙상에는 큰 차이가 없 는 듯하다. 다만, 중국 바둑은 시작할 때 흑과 백의 돌을 화점에다 미리 두 개씩 대 각선으로 두어놓고 대국에 임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때로는 천원(天元)에다 흑돌을 두는 경우도 있는데, 이는 따라두기 바둑을 금하기 위해서였다.
소년 제갈량의 바둑 솜씨는 채 노인이 경악할 만큼 빠른 속도로 늘어갔다. 불과 일 년이 채 안돼 가르친다는 생각보다는 승부를 겨룬다는 마음으로 두어야 할 정도 였다. ‘이 아이는 천재인가?' 감탄을 넘어서 지지 말아야겠다는 각오가 급기야는 채 노인의 바둑 두는 마음을 최고조로 긴장시키곤 했다. 평생 바둑을 즐겨온 채 노인이었지만, 이처럼 승부에 대 한 집착에 빠져드는 것은 참으로 오래간만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한 집념 덕분인지 아니면 아직 제갈량의 솜씨가 채 노인을 넘어서지 못함인 지, 두 사제간의 대결은 언제나 채 노인의 승리로 끝이 났다. 그러나 그 승리라는 것이 불과 한두 집 차이였다. "제가 졌습니다. 역시 선생님의 솜씨에는 미칠 수가 없습니다." 그 때마다 제갈량은 시원하게 머리를 숙이며 채 노인의 가르침에 감사를 표했으 나, 채 노인은 영 마음이 개운칠 않았다. 제자, 그것도 여덟 살 난 소년을 상대로 전심전력해야 하는 자신의 바둑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그에 따른 솜씨가 못마땅해서 가 아니었다.

바둑을 마치고 계가를 할 무렵쯤 되면 매번 자신이 졌다는 느낌에 사 로잡히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괄목상대란 바로 도련님을 두고 하는 말인 듯 싶습니다." "과찬이십니다." "바둑의 세계는 참으로 깊고 오묘한 것인데, 작은 도련님께서는 어찌하여 그토록 빠른 성취를 이룰 수가 있는지 제가 다 궁금할 뿐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별 것을 다 궁금해 하십니다. 그것은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신 것이 아닙니까?" "저는 바둑 두는 방법을 가르쳐주었을 뿐, 깊은 수에 대해서는 가르쳐준 적이 없 습니다." "바둑이란 돌을 어디에다 둘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고 예전에 말씀하시지 않았 습니까? 모든 사물의 이치란 그 근본이 가장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선생님의 그 말씀을 듣고 바둑의 근본을 이해했습니다. 바둑은 어찌되었든 집짓기입니다. 싸 움에서 이기는 사람보다 땅을 많이 차지하는 사람이 이기게 되어 있는 놀이가 아닙 니까. 그래서 저는 바둑을 둘 때 싸움에서 이기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집을 늘릴까 생각하며 바둑돌을 둘 뿐입니다. 그런데도 아직 선생님을 이기지 못하는 것 을 보면 제 돌 두는 길이 많이 부족한 모양입니다."

"아―!" 제갈량의 말을 듣고서야 채 노인은 비로소 어째서 자신이 이겼음에도 불구하고 졌다는 느낌에 사로잡히게 되는가를 깨달았다. 채 노인의 바둑은 전형적인 싸움바둑이다. 아니 채 노인 뿐만 아니라 당시의 모든 사람들의 바둑이 그러했다. 현대 바둑처럼 포석이라든가 정석 따위는 존재하지 않 았다. 오로지 싸움을 하여 이기는 형태의 바둑이었다. 그것은 당연했고, 또 그것이 바둑의 진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제갈량은 그간의 상식을 완전히 깨버리고 있었 다.

―바둑은 싸움이 아니라 집짓기이다. 이런 식의 바둑 개념을 듣고 어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싸우지 않는 바둑이 있을 수 있다니?'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의 바둑을 돌이켜보면 제갈량은 거의 싸움을 하지 않았다. 반면 채 노인 자신은 온 정력을 기울여 싸움에 몰입해왔다. 그러고도 겨우 한두 집 차이의 아슬아슬한 승리를 거뒀을 뿐이었다. 상대도 없이 혼자 싸움을 한 셈이었다. 당연히 채 노인의 힘만 소모될 수밖에.

‘바둑의 세계가 오묘한 것인가, 이 아이가 특이한 것인가.'

소설 제갈공명 (19)…제2장 이상한 소년(10)
중평 6년(189년) 4월, 천자인 영제가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었다. 영제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하나는 하 황후 태생의 변(辯)이었고, 다른 하나는 왕 미인(美人=내명부의 하나로 품계는 정4품)이 낳은 협(協)이었다. 이 때 황태자 변은 열네 살이었고, 둘째 황자 협은 아홉 살의 어린 나이였다.
왕 미인은 황자 협을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투기심이 많은 하 황후에 의해 독 살되었다. 이에 황자 협은 할머니인 영제의 어머니 동 태후(董太后)의 손에 의해 자 라났다.

영제와 동 태후는 황태자 변보다는 둘째 황자인 협에게 더 많은 정을 쏟았다. 이 러한 마음을 눈치챈 십상시는 틈만 나면 영제와 동 태후에게 태자 변을 폐하고 협 을 태자로 봉하도록 권유했다. 영제 또한 그럴 마음이 없지 않아 기회만 엿보고 있 었다. 그러던 차에 영제의 병환이 깊어진 것이다.

다급해진 것은 십상시를 비롯한 환관들이었다. 가만히 놔두었다가는 황태자 변이 황제에 오를 것이 뻔했다. 그것은 환관들에게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왜냐 하면 황태자 변의 외숙인 대장군 하진은 환관들을 원수처럼 미워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 다.

영제의 병세가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자 환관 건석(蹇碩)이 영제에게 아뢰었다. "폐하, 황자 협으로 뒤를 잇게 하시려면 먼저 대장군 하진을 죽여 후환을 없애야 합니다." 병석에 누운 영제는 건석이 권하는 대로 하진에게 입궐하라는 명을 내렸다.

대장군 하진이 막 대궐로 들어가려 할 때였다. 심복부하인 반은(潘隱)이 어디선가 나타나 하진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대장군께서는 환관들의 손에 목숨을 잃고 싶으십니까?" "그것이 무슨 말이냐?" "내시 건석이란 자가 대장군을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 말에 놀란 하진은 급히 집으로 돌아와 대신 및 자신의 막료들을 불러들였다. 하진이 그들과 함께 십상시들을 처치할 방도를 의논하고 있는데, 궁궐에 남아 형세 를 살피던 반은이 황급히 뛰어들어왔다.

"방금 전 황제께서 붕어하셨습니다. 건석 등 십상시들은 이 사실을 숨기고 있습니 다. 아마도 황자 협으로 뒤를 잇게 하라는 거짓 조서를 꾸미고 있음에 틀림없습니 다." 하진은 급했다. 신속히 사예교위 원소에게 어림군 5천 명을 내주어 궁문을 깨뜨리 게 하고, 그는 여러 대신들과 함께 그 뒤를 따랐다.

원소가 지휘하는 어림군의 난데없는 침입에 십상시들이 어쩔 줄 몰라하는 사이, 하진은 동궁으로 가 황태자 변을 부축하여 천자의 위(位)에 오르게 하였다. 이 황제 가 곧 소제(少帝)이다. 이 때 하진을 죽이려던 주범 건석은 궁궐의 화원 속으로 몸을 피해 달아났다. 그 런데 같은 십상시인 곽승(郭勝)이란 자가 대세가 기울어진 것을 알고 꽃그늘 속에 숨어 있는 건석을 재빨리 찔러 죽이고는 대장군 하진에게 갖다 바치며 충성을 맹세 했다.

그런데 여기서 하진은 한 가지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르고 말았다. 십상시를 비롯 한 모든 환관들을 없애버리겠다는 처음의 결심과는 달리 건석의 목을 갖다 바친 곽 승의 충성 맹세에 금방 마음이 변하여 다른 환관들을 고스란히 살려준 것이었다.

"오늘 이 기회를 놓치면 대장군께서는 반드시 후회하실 날이 올 것입니다." 사예교위 원소가 옆에서 일깨워주었지만 제 기분에 취한 하진은 그 말을 못 들은 척했다.

영제가 죽고 소제가 즉위함으로써 조정과 황실의 모든 권력은 대장군 하진과 하 태후의 손에 들어갔다. ‘환관의 시대'가 끝나고 바야흐로 ‘외척의 시대'가 도래하는 듯했다.

그러나 원소의 예견대로 십상시들을 살려준 것이 화근이었다. 십상시의 우두머리 장양은 평생을 궁궐에서 살아온 내시답게 재빨리 내궁의 실권자인 하 태후에게 뇌 물을 갖다 바치며 온갖 충성과 아첨의 말을 해대는 한편, 은밀히 하진을 주살할 계 획을 꾸몄다.

수십 년 동안 환관들에게 억눌린 채 지내온 조정 대신들은 매일 십상시의 제거를 하진에게 주청했다. 그러한 인물 중 가장 적극적이고 과격한 사람이 원소였다. 원소는 자를 본초(本初)라 했다. 4대에 걸쳐 5공(公)을 배출한 명문 중의 명문 자 손이었다.

황건의 난 때에는 노식의 휘하에서 활동하며 청년 장수로서 혁혁한 공을 세웠다. 명문 출신에다 젊은 혈기인 탓에 환관에 대한 적개심이 남달랐다. 원소는 틈만 나면 대장군 하진을 붙잡고 환관들을 주살하리고 청했다. 그러나 하 진은 원소 앞에서는, "그렇게 하겠소." 하고 대답을 해놓고 하 태후 궁에만 다녀오면 딴소리를 했다.

"태후께서 좀처럼 허락하시질 않으니, 난들 어쩌겠는가. 좀더 두고 보세." 답답해하며 가슴을 치던 원소는 한 가지 꾀를 생각해내고 하진을 찾아갔다. "대장군께서 몸소 내시들을 제거하기가 불편하시다면 외방의 장수들을 도성으로 불러들여 그들로 하여금 내시들을 베어죽이게 하면 어떻겠습니까?" "남의 칼을 빌려 도적을 잡자는 얘기로군. 그거 좋은 계책일세."

원소가 제안해낸 이 계책에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주부 진림(陳琳)이 적극적으로 하진을 만류했다. "대장군께서 환관들을 없애버리는 일은 화로에다 머리카락을 태우는 일만큼이나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무슨 까닭으로 바깥에 있는 영웅들에게 격문을 띄워 도성 안으로 불러들이시는 겁니까? 만일 그들이 도성 안으로 들어와 창자루를 거꾸로 잡 는 일이 벌어지면 그 때는 어떻게 수습하려고 그러시는 겁니까. 잘못하다간 공을 이루기는커녕 혼란만 초래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진은 그 말을 듣지 않고 각 고을의 태수들에게 격문을 띄워 속히 달려 와 도성 안의 십상시를 제거하라는 뜻을 전했다. 병주 자사 정원(丁原)이 여포(呂布) 등을 거느리고 가장 먼저 달려왔고, 이어 서 량 자사 동탁이 군대를 거느리고 달려왔다. 하진은 곧 그들을 맞이하여 정원을 집 금오(執金吾)에 임명하여 환관 주살 계획을 진행시켜 나갔다.

그러나 동탁만은 낙양성 밖 50여 리 떨어진 곳에 군대를 주둔시켜놓고 성 안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소설 제갈공명 (20)…제2장 이상한 소년(11)
외방의 군사들까지 속속 도성 안으로 들어오자 십상시들은 급했다. 장양은 즉시 하진의 주살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들은 장락궁 가덕문 안에 무장한 군사 50명 을 숨겨둔 뒤 하 태후를 찾아가 눈물을 뿌리며 호소했다.
"지금 대장군께서 저희들을 죽이려고 외방의 군대까지 불러들였습니다. 바라옵건 대 태후마마께서는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목숨만이라도 부지하게 해주십시오." "그럴 리가 있소? 내 직접 대장군에게 물어보겠소."

하 태후는 전지를 내려 하진을 궁 안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하진은 조복으로 갈아입고 궁궐로 들어갔다. 그것이 주변 사람들이 하진을 본 마 지막 모습이었다. 하진은 아무 의심 없이 하 태후 궁으로 통하는 가덕문으로 들어 갔다가 장양과 조충이 지휘하는 매복 군사들에 의해 목이 베어지고 말았던 것이다. 어리석고도 허망하기 짝이 없는 죽음이었다.

한편 사예교위 원소는 도성 안을 순찰하다가 하진이 혼잣몸으로 궁 안으로 들어 갔다는 소식을 듣고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는 곧 무장 군사 5백 명을 거느리고 궁으로 달려갔다. 궁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더욱 불안감이 엄습했다.

"문을 열라!" 그 때 담 너머로 하진의 머리가 날아와 원소 앞에 떨어졌다. 담 안에서 소제의 고 유문(告諭文)을 읽는 장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장군 하진은 모반을 꾀하다가 탄로나 사형에 처해졌다. 그 밖에 하진을 따르던 무리가 있으나 특별히 용서하노니 차후로는 경솔히 행동하지 마라.

기막힌 일이었다. 원소는 격분했다. 그는 데리고 온 군사들을 향해 외쳤다. "환관들이 대신을 주살했다. 모든 군사들은 궁궐 안으로 들어가 내시들을 모조리 목 베어라." 원소는 앞장 서서 궁문을 깨고 안으로 들어갔다. 십상시의 우두머리를 찾았으나, 장양은 어느 새 몸을 빼내고 없었다. 달아나는 조충과 곽승이 눈에 들어왔다. 원소 는 쫓아가 단칼에 그들의 목을 후려쳤다. 그 때부터 궁궐 안에서는 환관들에 대한 처참한 살육이 시작되었다.

누군가가 궁궐 전각에 불을 지르면서 사태는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불길은 삽시간에 장락궁 전체를 휘감았다. 원소가 지휘하는 군사들은 피맛을 보았다. 그들은 내시만 보면 늙고 젊음을 가리 지 않고 닥치는 대로 칼을 휘둘렀다. 그 바람에 환관이 아닌 수염없는 자들도 무수 히 죽임을 당했다. 장락궁은 삽시간에 피바다가 되었다. 그러나 대장군 하진을 주살 한 주모자 장양의 모습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원소의 마음 속에 한가닥 불안감이 스쳤다. 그는 다시 군사들에게 명했다. "십상시의 가솔들을 모조리 잡아 처단하라!" 십상시들이 대장군 하진을 주살하고, 원소가 궁으로 들어가 환관들을 참살하고 있 다는 소식은 곧 도성 전체로 퍼져나갔다.

평소 환관들에게 원한이 많았던 장수들은 앞을 다투어 십상시 집으로 몰려갔다. 원소의 사촌동생인 원술(袁術)이 가장 먼저 달려왔다. 이번에는 도성 안이 불바다와 피바다가 되었다. 궁궐 안의 내시들과 궁궐 밖의 가족들을 거의 처단했을 때 원술이 원소를 일깨웠 다.

"형님, 황제 폐하께서는 어디 계십니까?" 원소는 아차, 싶었다. 내시들을 잡아죽이는 데 정신이 쏠려 소제의 신변 보호를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내시들이나 다른 자들이 소제를 납치하여 끼고 돈다면 지금까지의 수고는 모두 헛것이 되고 만다. 대장군 하진은 죽었다. 십상시들 도 거의 처단했다. 이제 소제의 신변만 확보하면 바야흐로 원소의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원소는 다급해졌다.

"황제 폐하를 보호하고 있거나 행방을 알고 있는 자에게는 큰 상을 내리리라!" 그 때 한 궁인이 찾아와 말했다. "내시 장양과 단규(段珪), 조절, 후람 등이 폐하와 진류왕(陳留王=둘째 황자 협)을 협박하여 궁궐을 나가 황하 쪽으로 달아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소설 제갈공명 (21)…제2장 이상한 소년(12)
원소는 모든 장졸을 풀어 천자를 끼고 달아난 장양의 무리를 뒤쫓기 시작했다. 그 무렵, 소제와 진류왕은 장양, 단규 등에게 이끌려 어둠 속을 걸어서 소평진(小平津)이라는 곳에 이르렀다.
밤이 깊어 삼경쯤 되었을 때였다. 별안간 뒤에서 함성이 일며 한떼의 인마가 달려 왔다. 중부연리(中部椽吏) 벼슬을 하고 있는 민공(閔貢)이었다. "역적 장양은 달아나지 마라." 민공의 호령소리에 장양은 기겁하여 급한 김에 몸을 날려 강물로 뛰어들었다. 단 규도 소제를 팽개쳐두고 숲의 어둠 속으로 도망쳤다.

어린 소제와 진류왕은 나타난 무리가 자기를 구하러 온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 할 수가 없었다. 일단 숨을 죽이고 강가의 우거진 갈대밭 바닥에 엎드렸다. 민공과 그 군사들이 주변을 뒤졌으나 끝내 소제와 진류왕을 찾지 못하고 그 곳을 떠났다.

갈대밭에서 일어나 다시 숲길로 나온 소제와 진류왕은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길 을 잃고 헤매다가 겨우 한 장원을 발견하고 그 곳으로 들어갔다. 더러운 옷을 입긴 하였으나 어딘지 기품이 서려 보이는 두 소년에게 장원 주인이 물었다.

"두 분은 뉘집 자제이신가?" 소제가 망설이는 사이 진류왕이 소제를 가리키며 신분을 밝혔다. "이분은 황제 폐하이시오. 십상시의 난리를 만나 끌려가던 중 겨우 벗어나 이 곳 까지 오게 되었소. 나는 폐하의 아우인 진류왕이오."

장원 주인은 깜짝 놀라 황망히 절을 올리고는 안으로 모셔 고기와 밥을 차려 올 렸다. 다음 날 아침, 밤새 소제와 진류왕을 찾아 숲 속을 뒤지며 돌아다녔던 중부연리 민공이 우연히 그 장원으로 찾아들었다. 말발굽 소리에 놀란 장원 주인이 얼른 뛰 어나가 물었다.

"그대는 누구시오?" "나는 민공이라는 사람이오. 지금 십상시의 난리를 맞아 내시들에게 끌려가신 황 제 폐하를 찾고 있는 중이오." 장원 주인이 민공의 안색을 살피니 소제를 해칠 역적 같지는 않았다. "황제 폐하께서는 여기 계시오." 그는 사실대로 밝히고 민공을 소제 앞으로 인도했다. 민공은 소제 앞에 엎드려 통 곡한 후 아뢰었다.

"이제 십상시의 무리는 깨끗이 제거되었습니다. 나라에는 하루라도 임금이 없어서 는 안 됩니다. 서둘러 도성으로 돌아가시옵소서." 소제와 진류왕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민공을 따라 장원을 나섰다. 그들이 북망판(北芒阪) 아래에 도착했을 때 한떼의 인마가 그들을 맞이했다. 사도 왕윤(王允)과 태사 양표(楊彪) 등의 대신들과 어가를 호위할 원소의 5백여 군사들이 었다.

소제와 진류왕은 사도 왕윤 등의 얼굴을 보자 비로소 완전히 마음을 놓았다. 백여 년 동안 후한의 황실을 주물러왔던 외척 세력도, 환관들의 세력도 모두 소멸되었다. 이제는 궁궐로 돌아가 경륜 높은 조정의 원로 대신들에 의지하여 밝은 정치를 펴는 일만 남았다. 소제의 눈에는 이 날 아침의 햇살이 다른 날과 전혀 다르게 비쳤다.

그러나 하늘은 후한 왕조를 버렸음인가. 난데없이 소제 앞에 나타난 한 무리로 인 해 천하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게 되었다. 소제의 어가가 다시 도성을 향해 나갈 때, 문득 앞쪽에서 누런 먼지가 일며 일대 군마가 달려왔다. 소제도 놀라고, 백관들의 얼굴도 모두 하얗게 질렸다. 원소가 앞 으로 나가 물었다.

"너희들은 누가 이끄는 군사들이냐?" 저편에서 한 장수가 오색기를 펄럭이며 앞으로 나왔다. "천자는 지금 어디 계신가?" 거만하고 다분히 위협이 깃든 말투였다. 소제와 대신들은 더욱 불안감에 휩싸였 다. 그 때 소제 곁에 앉아 있던 진류왕 협이 앞으로 나서며 꾸짖듯 외쳤다. "감히 어가를 범하려는 자가 누구냐?"

아홉 살 소년치고는 여간 당차고 매서운 반박이 아니었다. 그제야 저편 장수도 움 칠하고 이름을 밝혔다. "소장은 서량 자사 동탁이라 합니다." 동탁이라는 말에 대신들은 일단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는 했지만, 얼굴이 그다지 밝 지는 않았다. 승냥이보다 속이 더 시커멓고, 멧돼지보다 더 포악한 성품의 동탁을 어찌 조정에서 오랫동안 지내온 대신들이 알지 못하겠는가.

지금은 십상시에게 주 살되어 죽고 없는 대장군 하진이 저지른 실수 중 가장 큰 실수가 바로 이 동탁을 도성으로 끌어들인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동탁은 조정 대신들에게 있어 서 요주의 인물이었다.


소설 제갈공명 (22)…제2장 이상한 소년(13)
‘결국 올 것이 왔는가….' 그러나 아홉 살 소년 진류왕 협은 동탁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다. 다시 한 번 소리 높여 동탁을 꾸짖었다. "장군은 천자를 보호하러 왔는가, 아니면 힘으로 빼앗으러 왔는가?"
진류왕의 이런 행동에 동탁은 적어도 겉으로는 수그러드는 모습을 보였다. "어가를 호위하고자 일부러 달려오는 길입니다." 하지만 속으로는 여간 맹랑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제법 영특하구나.' 그 날 소제는 동탁이 이끄는 서량병(西凉兵)들의 호위를 받으며 궁궐로 돌아왔다.

불탄 궁궐은 스산하고 어지럽기 짝이 없었다. 모두들 궁궐을 보수하고 성내를 정돈하는 중에 동탁은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도성 안의 치안을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연일 철갑 기마병을 거느린 채 성 안을 누비고 다녔다. 누가 보아도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행동이었다. 백성들 은 두려움과 불안에 떨었다. 하지만 도성 안에는 아무도 그러한 동탁의 행동을 저 지할 만한 힘을 가진 사람이 없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려했던 일은 현실로 드러났다. 자신의 행동을 아무도 제지하 는 사람이 없음을 확인한 동탁은 더욱 자신감을 가졌다. 그는 이제 궁중을 출입하 는 데도 전혀 꺼리거나 조심스러워하지 않았다. 대장군 하진이 거느렸던 군대도 모 두 자신의 부하로 만들었다. 어느덧 동탁은 조정의 대소사를 자기 뜻대로 주무르는 최고의 실력자가 되어 있었다.

이러한 동탁의 행동에 가장 먼저 반발한 사람은 후군교위 포신(鮑信)이었다. 그는 중군교위로 관직을 옮긴 원소를 찾아가 의논했다. "동탁은 틀림없이 딴마음을 품은 자외다. 하는 행동이 여간 수상쩍질 않소이다. 그 자는 십상시를 없앤 원본초의 공을 몽땅 가로채간 것이나 다름없소. 일이 더 커 지기 전에 빨리 제거해야 할 것이외다."

원소 역시 포신의 생각과 같았다. 동탁만 나타나지 않았어도 지금쯤 원소는 조정 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을 것이다. 그것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그 때까지만 하더라도 원소는 유교 사상으로 무장된 한왕조의 충성스런 신하였다. 야심이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상적인 체제를 전제로 한 야심이었다. 정변을 일으킬 만큼 진보적인 사고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조정이 겨우 안정을 되찾았는데, 섣불리 소요를 일으켜서는 곤란하오. 좀더 그자 의 작태를 지켜봅시다." 원소는 조심스럽게 발을 빼었다. 포신은 다시 사도 왕윤을 찾아가 같은 말을 했다. 그러나 왕윤 역시 원소의 대답 과 별반 다를 바가 없었다.

"차차 의논해 봅시다." 포신은 자신의 의견이 받아들여질 분위기가 아니자 더 이상 조정에 희망을 걸지 않았다. 며칠 후, 그는 자신의 수하 군사들을 거느리고 고향인 태산으로 내려갔다. 그리고는 스스로 제북의 상(相=태수와 동격의 관직)이 되어 군사적 기반을 다지니, 중앙에 있다가 지방으로 내려가 군벌을 이룬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포신의 판단은 정확했다. 원소를 비롯한 조정의 중신들이 동탁의 흑심을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동탁이 돌연 소제를 폐위시키고 진류왕을 황제로 삼은 것이었다. 이 황제가 바로 후한의 마지막 황제인 헌제(獻帝)이다.

소제의 폐위에 대해 원소를 비롯한 몇몇 지사들은 눈에 불을 켜고 반대했지만 동 탁의 위세를 꺾을 수는 없었다. 병주 자사 정원은 동탁에게 대항하다가 목숨까지 잃었다. 원소는 포신의 말이 옳았음을 깨달았다.

"내가 하진에게 외방의 군대를 끌어들이자고 제안한 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구 나." 후회에 후회를 거듭하며 원소는 그 길로 기주를 향해 떠났다. 그의 사촌동생 원술 도 더 이상 낙양에 머무를 의욕이 나지 않아 남양 땅으로 내려갔다. 그 외에도 많 은 인사들이 동탁의 횡포를 피해 고향으로 발길을 돌렸음은 두말할 나위없다.

원소, 원술과 함께 신진 장교로서 용맹을 떨치던 효기교위 조조가 낙양을 떠나 진 류(陳留) 땅으로 내려간 것도 바로 그 무렵의 일이었다.




<공명의 선택> 3장 슬픈기억
육손전(퍼왔습니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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