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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세간웅(2002-08-21 01:11:12, Hit : 4092, Vote : 460
 부산 일기 (1)
<8월 18일. 일요일>


부산가는 차를 놓치는 꿈을 세번씩이나 연달아 꾸는 바람에 한숨도 못자 팅팅 부은 눈으로 나는 6시에 일어났다.
오늘이 드디어 손꼽아 기다리던 재균형네 집에 가는 날.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이 날을 위해 껌을 팔아 돈을 마련하고, 온갖 계획을 사전에 세워두는 등 그야말로 이 날만을 위해 8월을 살아왔다.

7시 반차 부산행 고속버스에 올랐다. 싸구려 일반고속인지라 남는 자리는 단 한 자리도 없었다. 내 옆에는 어떤 후질근한 아저씨 하나가 탔는데, 이도 안 닦았는지 냄새가 장난이 아니었다. 애써 고개를 돌려가면서 잠에 빠져들었다.
한참을 맛있게 자고 일어나보니 아직도 2시간을 더 가야 하는 상태... 아, 그 지루함이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를 것이다. 휴게소에서는 그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풍기는 음식 - 호도과자, 통감자구이 - 냄새때문에 속이 울렁거렸다. 권태스럽고 불편한 자리에서 혼자 조용히 요동을 쳐가면서 결국 부산 고속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터미널에 도착하기 전까지 재균형과 계속 핸드폰 문자로 연락을 하였다.

"지금 어디고?"
"나 이제 터미널 도착했어. 입구에 있어."
"알았다-"

오렌지색 모자를 푹 눌러쓰고 초조함을 달래기 위해 주머니 속에서 핸드폰만 만지작거렸다. 과연, 그 오랜 시간을 알고 지내온 재균형은 어떠한 사람일까 긴장하면서.

그때였다. 어떤 안경쓴 인간 하나가 두리번 두리번 옆을 지나가더니 탁 멈추면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이었다. 나는 Feel 이 콱 꽂히는 걸 알 수 있었다. '바로 이 인간이 재균형이다' 하면서.
아니나다를까. 그가 더듬거리면서 입을 열었다.
"혹시... 정훈이 아이가?"
나는 입가에 미소를 띄면서 형의 팔을 잡고 같이 길을 재촉했다. 내가 평소 생각했던 형의 모습과는 영 딴판이었다. 가면서도 형은 몇번씩이나 내 얼굴을 살피는 눈치였다.
"니, 어려보이네?"
난 피식 웃으면서 같이 지하철을 탔다.

처음엔 좀 어색했다. 지하철에 나란히 앉아 가면서도 서로 쭈뼛쭈뼛하다가 역시 삼국지 얘기로 어색한 분위기를 깼다. 형이 자신이 어떤 자료를 가지고 있고, 어떻게 활용하고 하는 얘기를 하다보니 금세 분위기가 전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얘기가 길어지다보니까 그만 우리가 내려야 할 정거장보다 한 정거장을 더 지나버렸다. 우리는 그때서야 허둥지둥 뛰어내려서 지하도를 걸어 우리 목적지까지 가야했다.

영도대교 앞 옆까지 걸어와 버스를 탔다. 재균형이 사는 영도는 '도(島)' 하길래 일전에 내가 "배 타고 가야돼?" 하고 물었다가 된통 무안당한 적이 있는 곳이다. 큰 대교가 두개 놓여있는, 여의도 같은 곳이었다. -_-;;
영도대교를 지나면서 처음으로 부산 바다를 보았다. 난 탄성을 질렀다. 갈매기들 날아다니는 넓은 항구, 출렁이는 물살을 보니 가슴이 쏴 해지는것 같았기 때문이다.

"좋제?"
"응. 진짜 좋다."
"내는 여기 계속 살아서, 이기 좋은지 모르겄다."

버스는 달리고 달려 재균형이 사는 함지그린 아파트에 도착하였다.
나는 태어나서 이렇게 좋은 입지조건을 갖춘 아파트는 보지 못하였다. 뒤에는 기암절벽의 산에다가, 아파트 바로 앞은 드넓은 푸른 바다가 출렁인다. TV에서만 보던 거대한 화물선에서부터 작은 고깃배까지 수십척이 떠다니는 광경은 정말 장관이었다. 나머지는 모두 녹지대. 나무와 풀이 우거진 아파트 단지였다. 하늘, 바다, 산, 녹지대. 온통 푸른 색으로 물든 그런 아파트였다. 그야말로 완벽한 배산임수가 아닌가!
형네 집으로 올라가서 내 짐을 내려놓기가 무섭게 우리는 또다시 버스를 타고 남포동으로 향해야 했다. 윤이를 만나기로 약속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남포문고로 향했다. 남포동 시가는 부산에서 가장 번화한 곳중 하나답게 역시나 활기차고 번화한 곳이었다. 남포문고에서 우리는 윤이를 만날 수 있었다. 재균형과 마찬가지로 역시나 내가 평소 상상해오던 모습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역시 마찬가지로 놀라움도 실망도 아닌, 그저 "다름" 뿐, 워낙 둘다 내가 좋아하던 사람들이고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기에 그것만은 변함이 없었다.
윤이는 연신 덥다면서 볼이 짙은 분홍색이 되어서 부채질을 하면서 얼음을 찾았다. -_-;; 우리는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가까운 분식집으로 들어갔다.
처음엔 역시나 좀 어색했다. 아니면 내가 숫기가 없어서 그랬나보다. 밥도 되게 깨작깨작 먹고, (실은 속이 좀 안 좋았었지만) 하여튼 그랬다. 하지만 밥을 먹고 나서 공원으로 산책을 나갔을 때부터 역시나 자연스러워지기 시작하였다. 노인네들이 모여앉은 벤치 한쪽에 셋이 앉아서 -_-;; 이것저것 얘기를 하였다. 많이 웃기도 하고, 장난도 쳤다. 역시 원래 인연이 깊은 사람들이라 친해지는 건 순식간이다. 윤이가 내 몸 여기저기를 만져보더니 살좀 찌라고 했다. 나도 먹는다고 먹는데 안 찌는걸 어떡하나.

공원에서 한동안 놀고 얘기하다가 다시 시가로 나왔다. 난 그때 처음으로 여자애와 손을 잡고 걸어보았다. 마찬가지로 처음으로 여자애와 그렇게 가까이 붙어보았고. 못 믿을 사람 혹시 있나? 진짜다. 한 번도 경험 없는 놈이 스킨쉽이 자연스러웠던 것은 그만큼 원래 친했던 탓이 아닐까. 앞서가는 재균형 따라잡느라 힘들었다.
이미지 사진을 찍으러 갔는데 엉망으로 나와서 나와 윤이는 비명을 질렀다. 재균형은 덤덤했다. "뭐 어떠나" 하면서.
악세사리 가게에 들어가서 우리들은 서로에게 사줄 선물을 골랐다. 재균형은 윤이에게 멋진 치렁치렁 목걸이를 사주었다. 윤이는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면서 나에게도 계속 뭐 갖고 싶냐면서 사주겠다고 물었다. 하지만 나는 별다른거 갖고 싶은게 없어서 결국은 말을 못 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윤이에게 미안하다고 하고싶다. ^ㅡ^ 난 원래 물질욕이 없어, 윤아.)

여기저기를 띵까띵까 돌아다니면서 우리 셋은 더욱 가까워졌다. 전처럼 영도대교 정거장까지 지하도를 따라 걸어와서 버스를 기다렸다. 나와 윤이는 제 2의 롯데월드와 동양에서 가장 높은 빌딩이 건설된다는 공사현장 벽에 찰싹 붙어서 사진 모델 포즈를 잡으면서 깔깔댔다. 재균형이 가끔씩 우리둘이 뭐하나 살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 버스를 타면서 나와 윤이는 노래를 불러주었다. 나는 BSB와 브리트니의 노래를, 윤이는 자기 노래를. 윤이가 갈 시간이 되어서 나와 재균형은 윤이를 부산역까지 바래다 주었다. 매우 아쉬웠지만 훗날 다시 만날 것을 기억하면서.

나와 재균형은 다시 지하도를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부산의 지하도는 마치 서울같았다. 그냥 어두컴컴한 지하도가 아니라 양쪽에 상가가 죽 나있는 밝은 지하도였다. 우리는 지하도를 걸으며 또다시 삼국지 얘기를 했다. 내가 쓴 글에서 노숙의 정책의 옳고 그름을 논했고, 조인과 장료의 무예 얘기도 하였다. 역시 우리 매니아들은 삼국지 얘기만 나오면 정신을 못 차린다. 그러다가 갑자기 나는 걸음을 딱 멈추었다.

"관운장이다."

재균형이 말했다.
오른편 상가에 관우의 모형이 전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구리로 만든 동상인것 같았다. 크기는 한 내 가슴만한 것. 적토마 위에 올라서 수염을 휘날리며 청룡도를 높이 휘두르는 모습. 아, 바로 그 사람. 관공이었다. 너무 멋있어서 사고 싶었으나 경제적 여유가 없었기에 아쉽게 돌아와야 했다.
지하도에서 올라와 계속 길을 걸었다. 마찬가지로 삼국지 얘기를 하면서. 재균형의 말투가 되게 구수하고 정겨워서 얘기는 참 재미있었다. "노숙은 있다 아이가", "그라모, 글마가 손책을..." 하는 말투. 역시 부산 바닷내음이 물씬 풍기는 말투였다.

영도대교까지 걸어왔다. 갑자기 재균형이 "아빠!" 하고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다. 재균형 아버지가 탄 봉고차가 우리를 지나쳐 가는 것이었다. 재균형은 전화로 아빠에게 연락을 하여 다리 건너편에서 기다리라고 하고 우리는 그 해상위의 대교 영도대교를 열나게 뛰어 건넜다. 정말 좋은 기억이었다. 우리 발 바로 밑에서 수심 몇백미터의 바다가 출렁이고, 우리는 그 위를 뛰어가는 것. 재미가 솔찬했다.
재균형이 막 뛰다가 갑자기 멈추더니 다리 밑을 가리키면서 나에게 말했다.

"바라, 바라. 해파리다 아이가."

나도 내려다보았다. 앗! 약간 노르스름하고 둥글게 생긴 물체가 바다 위를 둥둥 떠다니고 있었다. 난 해파리를 처음 보았다. 되게 신기해서 어린애처럼 좋아했다.

"해파리는 촉수를 움직이면서 헤엄친다 아이가. 글마한테 쏘이면 억수로 아프대이."

우리는 해파리 구경을 마치고 또 뛰어가 마침내 재균형 아빠 차를 타고 집으로 갔다.

재균형은 정말 좋은 친구 한 명이 있다. 그의 이름은 정효준. '적토마' 라는 닉네임으로 한때 정삼연에도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재균형은 8층, 효준형은 19층에 사는데, 가족보다도 더 가까운 친구이다. 아니, 가족 이상으로 말이다. 같이 먹고, 같이 자고는 물론이거니와 아주 같이 사는 수준이다. 효준형도 되게 착하고 재미있어서 나와도 빨리 친해졌다.
정말 재균형 의외였다. 정삼연에서는 항상 냉혈인을 방불케 할 정도로 냉정한 그였지만, 효준형이랑 장난치고 농담하는게 너무 귀여웠다. 또 재균형 되게 착하고 순하다. 안 믿는 사람이 상당히 있었다. (버디로 말했더니) 하지만 진짜이다. 역시 사람이란 직접 만나서 느껴봐야 하는가보다.
나는 수시로 엘리베이터 가의 창문으로 나가서 바다를 구경했다. 볼수록 신비스럽고 멋있는 바다였다. 재균형도 나와서 같이 감상하다가, 내가 물었다.

"저기 멀리 있는 큰 배들은 왜 안 움직이고 가만히 있지?"
"안 움직이는게 아이다."
"그럼?"
"배 뒤에 물살 보이제? 지금 가고 있는데 거리가 너무 멀어서 안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거라 아이가."

신비로웠다.

저녁이 되어서 효준형도 또 놀러왔다. (놀러오는게 아니라 아주 산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우리는 나가서 만화책을 왕창 빌려다가 실컷 보고, 또 컴퓨터도 하였다. 맘씨 좋은 재균형 부모님들은 나를 열렬히 환영해 주셨다. 푸짐하게 차린 저녁상을 맘껏 들었는데, 특히 회가 맛있었다. 재균형네 개 뽀삐도 옆에서 재롱을 부렸고, 재균형 여동생 중3 수진이라는 아이도 있었다. (여동생이 있는 줄 몰랐다) 컴퓨터 중독 말기환자 재균형과 그 동생 수진양이 얼마나 싸웠으면, 재균형 부모님이 아예 컴퓨터를 한대 더 사주셔서 하나씩 차지하고 쓴다고 한다. 정말 특이한 가족이다. -_-;;

새벽이 되어도 우리는 잠이 들 줄을 몰랐다. 나와 재균형은 삼국지 8 게임을 하였다. 나는 당연히 "난세간웅" 이니까 조조를 하고, 재균형은 자기가 좋아한다는 손책을 선택하였다. 재균형은 강동을 제패한 후에, 자기가 쓴 "손책의 경영시스템" 내용 그대로 인재를 배치하였다. 꼭 그렇게 하고 싶다면서.... 역시 못말리는 사람이다.

3시가 넘었다. 재균형은 내가 가르쳐 준 삼국지 8게임에 심취해서 혼자서 히죽거리면서 게임에 열중하고, 나는 졸리기 시작했다. 좁은 방에 세명이 들어가 있으나 잠은 당해낼 수 없는 법. 갠 이불을 베고 그대로 스르르 잠이 들었다.




천공하후패 (2002-08-21 01:51:58)
^^ 이젠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제 가슴 속에 작은 앨범에 담아두어야죠..
백마의종 (2002-08-21 11:16:03)
손책의 전법쓰기.... 나두 그런데......
백마의종 (2002-08-21 11:18:00)
껌두 파셨다구요???
난세간웅 (2002-08-21 14:15:19)
네.. 친구들한테. ^^ 낱개 한개에 천원으로 팔았지요. 엄청 남는 장사... ㅋㅋ
간옹[헌화] (2002-08-21 18:52:33)
저도 부산에 사는데예
백마의종 (2002-08-21 21:56:08)
많이 보충 하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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