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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공하후패(2001-01-08 00:24:02, Hit : 2384, Vote : 257
 장비전(퍼왔습니다.)
장비전입네당!


장비전(張飛傳)

장비는 자가 익덕(益德)이며, 탁군(啄郡) 사람이다.
젊어서 관우와 함께 유비를 섬겼다.
관우가 연장자였으므로 장비는 그를 형처럼 대우했다.
유비는 조조를 따라 여포를 공격하고,
함께 허도로 돌아왔다. 이때 조조가 장비를 중랑장으로 임명했다.

유비는 조조를 등지고 원소, 유표에게 의지했다.
유표가 죽자,조조가 형주로 들어왔으므로 유비는 강남으로 달아났다.
조조는 그를 추격하여 하루 낫, 하루 밤이 지나 당양현 장판까지 이르렀다.
유비는 조조가 곧바로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처자식을 버린 채 달아나며,
장비에게 기병 20명으로 뒤를 차단하도록 했다.
장비는 냇물을 점거하여 교량을 끊고, 눈을 부릅뜨고 창을 비껴잡으며 말했다.

"나는 장익덕이다. 나와 함께 죽음을 결정지으며 싸울 수 있는가!"

적군들은 모두 감히 접근하는 자가 없었고,
이 때문에 유비는 위기를 모면하게 되었다.
유비는 강만을 평정하고 장비를 의도태수(宜都太守) 정로장군으로
임명하고 신정후(新亭侯)에 봉했으며, 후에 남군(南郡)으로 전임시켰다.
유비는 익주로 들어와 군사를 돌려 유장을 공격하려고 했으므로 장비와
제갈양 등은 물을 거슬러 올라가며 나누어 각 군과 현을 평정시켰다.
장비는 강주(江州)에 도착해 유장의 부자인 파군태수(巴郡太守) 엄안(嚴顔)을
무찔러 생포했다. 장비가 엄안을 꾸짖어 말했다.

"대군이 이르렀는데, 어찌하여 항복하지 않고 감히 저항하며 싸웠는냐?"

엄안이 대답했다.

"당신들은 예의도 없고, 우리 주를 침략했소. 우리 주에서는 오직 머리를
잘리는 장군은 있지만 항복하는 장군은 없소."

장비는 분노하여 측근들에게 끌고가서 머리를 베도록 했지만,
엄안은 안색도 바꾸지 않은 채 말했다.

"머리를 자르면 머리를 자르는 것이지, 어찌하여 분노를 하시오!"

장비는 용감함에 감복하여 풀어주고 불러서 빈객으로 삼았다.
장비는 지나는 곳마다 모두 승리하고 성도에서 유비와 만났다.
익주가 평정된후 제갈양, 법정, 장비 및 관우에게 각각 금 5백 근,
은 1천 근, 동전 5천만 개, 비단 1천 필을 내리고,
그밖의 사람들에게는 각각 격차를 두어 하사했다.
장비를 파서태수(巴西太守)로 임명했다.

조조는 장로를 무찌르고 하후연과 장합을 머물게 하여 한천을 지키도록 했다.
옮기려고 탕거(宕渠) 몽두(蒙頭) 탕석(湯石)까지 진군하여 장비와 50여 일간 서로 대치했다.
장비는 정예병사 만여 명을 이끌고 다른 길로부터 장합의 군대를 맞아 싸웠는데
장합의 군대는 길이 좁아 앞뒤가 서로 구원할 수 없었다.
장비는 그래서 장합을 무찔렀다.
장합은 말을 버리고 단지 부하 10여 명과 산을 따라서 사잇길로 물러나와
남정으로 돌아갔고, 파서 지역은 평정을 되찾았다.
유비는 한중왕이 되었고, 장비를 우장군 가절에 임명했다.

장무(章武) 원년(221) 거기장군으로 승진하고, 사예교위를 겸임하였으며,
승진하여 서향후(西鄕侯)에 봉해졌다. 책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짐은 황통을 계승하고, 대업을 이어 받들어 흉포한 무리를 제거하고
동란을 진압했지만, 아직 그 이치를 밝히지는 못했다. 현재 역적과 강도는
해악을 만들고, 백성들은 도탄의 고통을 받고 있으며, 한왕실을 생각하는
선비들은 학처럼 목을 빼고 바라고 있다. 짐은 이 때문에 슬프며, 자리에
앉아 있어도 불안하고, 음식을 먹어도 단맛을 느끼지 못한다. 군대를 정돈
하기로 맹세하고 하늘의 뜻에 따라 적을 토벌했다. 그대의 충성과 강인함은
주선왕(周宣王) 때, 회이(淮夷)를 토벌한 소호(召虎)와 비교되며, 그 이름은
가까운 곳이든 먼 곳이든 펴졌기 때문에 특별히 명령을 나타내어 작위를
높이고, 경도 및 그부근을 겸하여 다스리도록 하겠다. 하늘의 위엄을 조장하고,
덕행으로 복종하는 자들을 위로하녀, 형벌로 반항하는 자를 제압하여 짐의 뜻에
따라. <<시경>>에서 '백성을 해롭게 하지 마라, 완성을 구함에 급급하지 마라.
모든 것이 바르려면 주왕조를 본받아야 한다. 큰 공업을 신속하게 세우면
너에게 북을 내리리' 라고 하지 않았던가.면려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당초 장비의 웅장함 위풍 용맹함은 관우에 버금갔는데, 위나라의 모신(謨臣)
정욱 등은 관우와 장비에게는 1만 명을 상대할 만한 힘이 있다고 칭찬했다.
관우는 병사들에게는 잘 대해주었지만 사대부들에게는 오만하였고, 장비는
군자는 아끼고 존경했지만 소인은 보살피지 않았다.

유비는 항상 이것을 경계하여 말했다.

"그대는 형벌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이 벌써 지나치고, 또 매일 병사들에게
채찍질을 하면서 그들을 측근에 임용하고 있으니, 이것은 화를 초래하는 길이오."

그러나 장비는 깨우치지 못했다. 유비가 오나라를 토벌할 때, 장비는 만 명의
병사들을 인솔하여 낭중으로부터 나와 강중에서 유비와 만나기로 했다.
출발하려고 할 때, 그의 막하의 장수 장달(張達) 범강(范疆)이 장비를
살해하고, 그의 머리를 갖고 장강을 따라 손권에게로 달려갔다.
장비 군영의 도독의 표를 올려 유비에게 보고했다. 유비는 장비도독의 표가
있음을 듣고 말했다.

"아! 장비가 죽었구나."

장비의 시호를 환후(桓侯)로 추증했다. 맏아들 장포(張苞)는 요절했으므로
차남 장소(張紹)가 후사를 이었는데, 관직이 시중상서복야까지 이르렀다.
장포의 아들 장준(張遵)은 상서가 되어 제갈첨을 수행하여 면죽에서
등애와 싸우다가 전사했다.






제갈량전(퍼왔습니다.) [2]
<공명의 선택> 1장 난세의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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