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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공하후패(2001-01-07 22:32:45, Hit : 4091, Vote : 316
 <공명의 선택> 1장 난세의 아들


소설 제갈공명 (1)…제1장 난세의 아들 (1)
어둠이 짙은 밤이었다. 공명은 군막을 나와 천천히 걸었다.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 길게 숨을 들이마셨으나 가슴 속에는 여전히 무거운 돌덩어리가 들어 있는 듯했다. 그 뒤를 두어 걸음 처져서 강유가 따르고 있다.
“바람이 찹니다.” 강유의 음성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공명은 걸음을 멈췄다. 뒤를 돌아보는 대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맑은 밤이었다. 별들이 총총히 박혀 바람에 쓸리고 있었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공 명의 모습은 몹시 외로워보였다.

‘불운하신 분’ 강유는 속으로 안타깝게 소리쳤다. 요즘의 공명을 보고 있자면 가슴이 찢어지는 듯 아프다. 병색이 완연했다. 낮에도 곧잘 침상에 누웠다. 아프다는 소리는 하지 않았지만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제6차 북벌―.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위나라 도독 사마의와 대치한 지도 어느 새 두 달이 넘었다.‘이대로는…… 승산이 없다.' 촉군의 장수들은 대부분 회군을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그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날 밤 강유가 공명을 따라 산책을 나선 것은 바로 그 말을 꺼내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좀처럼 입이 떨어지질 않는 것이었다.

"어느 새 가을이군." 공명은 강유의 말에 화답이라도 하듯 이렇게 중얼거리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강유도 따라 걸었다. 얼마나 걸었을까. 문득 공명이 강유를 불렀다. "백약." 여전히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예." "강 장군에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겠지요?" 엉뚱한 물음이었다. "예?" "요즘 와서 나는 자주 어린 시절을 떠올리곤 하오." "마음과 몸을 편히 다스리십시오."

강유는 공명의 건강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명은 이러한 강유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자신의 말만 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어릴 적의 난 꿈을 자주 바꾸었소. 내 아버님은 태산군 승을 지내셨는데, 그 때 나는 군의 관리가 되고 싶어했던 것 같소. 그런데 아버님이 관직에서 물러나신 뒤에는 무엇을 꿈꾸었는지 아오?"

"밤바람이 찹니다. 그만 들어가시지요." "완전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소. 단 하나의 허점도 없는 가장 완전한 사람." "이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습니다." 강유는 공명이 제6차 북벌의 실패를 자책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생각하오?" "가장 완전한 것은 우주뿐입니다."

강유는 공명을 위로해주고 싶었다. "그럴까?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난 좀 다르오." 공명은 다시 걸음을 멈추고 밤하늘의 별들을 쳐다보았다. "……." "강 장군, 가장 완전한 것이 무엇인 줄 아시오?" "……." "가장 완전한 사람은 바로 가장 완전한 것을 추구하려는 사람이오. 버들처럼 꺾이지 않고, 별처럼 꿈을 잃지 않고 계속해서 움직이는 사람―. 그 사람이야말로 가장 완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오." "……." "저 별은 내게 꿈을 심어주었고, 또한 꿈을 키워주었소. 그리고 이제……"

공명은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그것이 어떤 조짐인 줄을 잘 알고 있었다. 간신히 눌러 참았다.

"백약." "예." "나는 내 꿈을 이루고 싶소. 가장 완전한 사람이 되고 싶소. 그대가 도와주시오." "……?" "회군은 안 되오." "예?" "회군은…… 내가 죽은 뒤에 해도 늦지 않소."

뜨거운 것이 목구멍을 타고 올라왔다. 그런 공명의 눈앞으로 자신의 지난 날들이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설 제갈공명 (2)…제1장 난세의 아들(2)
난세는 사람을 버리기도 하고, 부르기도 한다. 후한의 광화 4년이면 서력으로 181년이다. 이 해 윤 9월 1일, 오늘날 산동성 임기현에 해당하는 낭야국 양도현의 한 마을에 작은 경사가 있었다. 그 곳에서 대대로 살아온 명문 가문 중 하나인 제갈(諸葛) 가(家)의 주인 규(珪)에게 모처럼만에 아들이 태어났던 것이다. 처음 얻은 아들은 아니었지만, 맏아들인 근(瑾)이 여덟 살이고 보면 7년 만에 보는 사내자식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제갈규의 집을 찾아가 그의 두 번째 득남을 축하했다.

"아드님의 이름은 지으셨습니까?" "생각해둔 것이 있긴 하네만, 어떨지 모르겠네." "어르신께서 어련하시겠습니까. 무어라고 지으셨는데요?" "이 어지럽고 어두운 세상을 밝고 환하게 비추라는 뜻에서 양(亮)이라고 지어보았는데, 아직 마음을 정한 것은 아닐세."

"양이라…… 제갈량. 아주 좋은 이름입니다. 생각할 것도 없이 제갈량이라고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래? 여러 사람들이 좋다면 그것은 좋은 이름일세. 자네들의 말대로 이 아이의 이름을 양이라고 정하겠네."

"어르신의 바람대로 제갈량 도련님께서는 높은 자리에 올라 어두운 세상을 밝게 비출 것입니다." "고맙네."

경사는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제갈량이 태어난 지 한 달쯤 지났을 무렵, 두 통의 서신이 제갈규의 집에 연달아 날아들었다. 하나는 낙양에서 좌중랑장부(左中郞將府)의 시랑(侍郞) 벼슬을 하고 있는 동생 제갈현(玄)에게서 온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태산군(泰山郡) 태수의 직인이 찍혀 있는 공문서였다.

제갈규는 먼저 동생인 제갈현이 보내온 서찰부터 열어보았다. 내용을 읽고 나서 그는 뛸듯이 기뻐했다. 제갈현은 낙양의 중앙 관직에 부임한 후 줄곧 여러 고관들과 인연을 맺으면서 제갈규의 출사를 위해 노력했는데, 이번에 그 노력이 빛을 보아 제갈규를 태산군의 승(丞) 자리에 발령나게 하였던 것이다.

두 번째 서찰은 언제까지 부임하라는 태산군 태수가 보낸 부임장이었다. ‘마침내 다시 출사를 하게 되었구나.'

손에 부임장을 움켜쥔 제갈규는 벅찬 감격을 느꼈다. 그럴 만도 했다. 그는 10여 년 전인 청년 시절에 잠시 낙양에서 벼슬살이를 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환관들의 횡포와 음모에 휘말려 관직에서 물러나 쫓겨나다시피 고향인 양도현으로 내려오고 말았다.

그러나 자존심이 강하고 고지식한 성품을 지닌 그는 자신의 낙향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분노와 울분이 화산의 불덩어리처럼 가슴 밑바닥에서 늘 끓고 있었다. 그것은 제갈씨 집안 대대로 이어 내려오는 핏줄 탓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제갈씨는 본래 갈씨로서, 낭야국의 제현(諸縣)에 살고 있었다. 한나라 초 갈씨 성을 가진 사람이 고향을 떠나 양도현으로 이사해 왔는데, 그곳에는 이미 갈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었다. 그래서 양도 사람들은 새로 이사온 갈씨와 토박이 갈씨와 구별을 하기 위하여 ‘제갈씨', 즉 ‘제현에서 온 갈씨'라고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그것이 그대로 성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제갈씨 일문이 세상에 널리 이름을 떨치게 된 것은 제갈규로부터 8대조인 제갈풍(豊)의 덕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제갈풍은 전한 말에 사예교위(司隸校尉)라는 벼슬을 지냈는데, 오늘날의 경찰청장에 해당하는 직위이다. 당연히 사람들의 두려움을 사는 존재였는데, 성품까지 강직하다보니 그 명성이 낙양성 안에 드높았다.

그 무렵, 황제의 외척으로 시중 벼슬을 하고 있는 허장(許章)이라는 자가 있었다. 그는 자신의 뒷배경을 믿고 국정을 마구 휘둘러댔다. 모두들 그를 꺼려하고 마주치기를 피하는 중에, 어느 날 제갈풍이 순찰 도중 도성 한가운데서 그와 마주쳤다.제갈풍은 기회다 싶어 허장의 수레 앞을 가로막았다.

―황제의 명령으로 당신을 체포하겠소. 당장 수레에서 내려 포박을 받으시오. 제갈풍의 호통소리에 기절초풍한 허장은 허둥지둥 수레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제갈풍이 쫓아갔지만, 허장은 쥐새-끼처럼 거리를 빠져나가 궁궐 안으로 달아나버렸다. 궁궐 안은 사예교위의 관할 밖이었다. 그러나 제갈풍은 포기하지 않고 즉시 관청으로 돌아와 허장을 탄핵하는 글을 써서 황제에게 올렸다.

한편 궁궐 안으로 도망쳐 들어간 허장은 그 길로 황제의 처소로 가서 눈물을 뿌리며 애원했다. ―폐하, 사예교위 제갈풍이 남이 모함하는 말만 듣고 신을 죽이려 하고 있습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그 때 제갈풍이 올린 허장 탄핵상서가 황제에게 전달되었다. 이미 허장의 말을 그대로 믿어버린 황제는 오히려 제갈풍의 관직을 삭탈하고 서인으로 강등시켜버렸다.

이에 제갈풍은 나라의 어지러운 꼴을 한탄하며 미련 없이 고향인 양도현으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조용히 지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제갈씨는 일약 청렴강직의 대명사가 되었고, 대대로 벼슬이 없으면서도 명문가의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제갈규와 제갈현 형제도 이러한 명문가의 자존심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할 수 있었다. 나이 차이가 두 살밖에 나지 않는 두 형제는 청년 시절 대망의 뜻을 품고 낙양에 올라가 공부하였고, 마침내 중앙 고위 인사들의 눈에 띄어 벼슬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제갈규는 환관과 말다툼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관직에서 쫓겨났고, 고향으로 내려와 10여 년 간을 울분과 탄식으로 지내왔던 것이다. ‘제갈풍 할아버지도 나와 같은 심정이셨을까?'

그 사이, 그는 장씨 성을 가진 여자와 결혼하여 가정을 이뤘으며, 맏아들인 제갈근에 이어 7년 만에 다시 둘째아들 제갈량을 낳게 되었다.

소설 제갈공명 (3)…제1장 난세의 아들(3)
제갈규도 이제 나이를 먹어가고 있음인가. 동생 제갈현이 낙양에서 자신의 복직을 위해 애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그는 사실 재출사를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청춘 시절의 세상을 향한 뜨거운 야망은 어느덧 식어버렸고, 이제는 맏아들 제갈근의 성장과 둘째아들 제갈량의 태어남에 위안과 기쁨을 얻는 평범한 가장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재출사라니….' 이제 막 눈을 맞추며 방긋방긋 웃음을 짓는 갓난 제갈량을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어쩐지 이 아이가 자신에게 행운을 안겨다주는 복덩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는 제갈규였다.

"아이가 숨막히겠습니다." 이불째로 들어안아 제갈량을 껴안는 제갈규를 향해 아내 장씨는 질겁을 하였지만, 제갈규로서는 언제까지고 이 복덩어리의 볼을 마냥 비벼대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이 아이를 위해서라도 내 반드시 가문의 옛영화를 되찾을 것이오."

아내 장씨에게 갓난 제갈량을 건네주는 제갈규의 가슴은 젊은 시절의 뜨거운 피가 다시금 자신의 심장에서 용솟음쳐 나오는 것 같은 감격과 의욕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자리가 잡히는 대로 사람을 보낼 것이니, 그 동안 아이를 잘 부탁하오." 대문 앞에서 제갈규는 갓난 제갈량을 품에 안고 있는 아내 장씨를 향해 몇 번이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여기 걱정은 마시고, 나리께서나 객지에서 몸조심하십시오."

산후 조리를 잘 한 탓인지 장씨 부인은 예전의 혈색을 완전히 되찾았다. 남편의 재출사를 자랑스러워하는 표정이 역력히 드러나 보였다. "근이도 어머니를 모시고 잘 지내야 한다." "염려마십시오. 소자가 어머니와 양을 잘 돌보아 드리겠습니다."

여덟 살 난 맏아들 제갈근은 의젓했다. "아무렴, 그래야지. 근이도 이제 어른이 다 되었구나. 네가 있어서 이 아버지는 마음이 한결 놓이는구나." 제갈규는 몸을 돌리려다 말고 다시 한 번 아내 장씨에게서 갓난 제갈량을 받아들어 수염난 얼굴을 아이의 볼에 갖다대었다. 그 바람에 잠자고 있던 제갈량이 깨어나 세찬 울음소리를 터뜨렸다.

부임장을 받은 지 닷새 후, 제갈규는 임지를 향해 길을 떠났다. 단신이었다. 태산군의 관소는 봉고(奉高)에 있다. 양도에서 봉고까지는 약 400리. 산악지대답게 가는 길이 험하고 거칠었다."가족을 남겨두고 오길 잘했군."

기수(沂水)를 건너는 뱃전에 서서 제갈규는 중얼거렸다. 여행길이 고단해서가 아니었다. 양도현 경계를 벗어나면서부터 제갈규는 이상한 조짐을 느꼈다. 그것은 몹시 기분 나쁘고 섬뜩한 기운이었다. 그 정체를 그는 태산군 관내로 접어들면서 감지하기 시작했다. 밭에서 일하는 농민들은 물론이거니와 시장을 오가는 상인들의 두건이 한결같이 누런색이라는 사실과, 집집마다 대문에 ‘갑자(甲子)'라는 글씨가 씌어 있다는 사실에서 그는 정체 모를 큰 덩어리가 비밀리에 꿈틀거리고 있음을 직감했던 것이다.

"태평도교(太平道敎)가 농민들 사이에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나간다더니 저것이 바로 그것인가?" 비록 벼슬에서 쫓겨나 멀리 시골에서 지내온 몸이었지만 제갈규는 세상 돌아가는 흐름을 잘 알고 있었다. 황실도, 조정도, 도성 안의 거리도 무법천지나 다름없습니다. 작금의 상황이야말로 환관들의 전횡만이 판을 치고 있습니다.…

동생 제갈현이 보내온 편지가 아니더라도 제갈규는 도성 안의 일을 손바닥 보듯 훤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자신 이미 10여 년 전에 겪지 않았던가. ‘그래도 환제(桓帝)께서는 성군의 자질을 지니고 계셨는데…….'

기수의 뱃전에 서서 끝간데없이 펼쳐진 누런 물결을 바라보며 제갈규는 회한의 한숨을 내쉬지 않을 수 없었다.

소설 제갈공명 (4)…제1장 난세의 아들(4)
황실이 어지럽고 정치가 부재하다 보면 나라는 백성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자연 백성들은 자기를 보호할 힘을 스스로 키우는 수밖에 없다. 재산 있고 땅 있는 호족들이 말과 무기를 사들이고 사병(私兵)을 모집해 자위군을 조직하기 시작한 것은 벌써 수년 전부터의 일이다. 그러나 돈도 없고 땅도 없으며 호족들의 사병에 뽑히지도 못한 가난한 농민들은 어찌할 것인가. 모름지기 사람이란 희망을 먹고 사는 존재이다. 희망이 없어진다는 것은 곧 죽음 을 의미한다. 그렇다고 스스로 죽을 수도 없다. "장각(張角)이라고 했던가, 태평도교의 교주가……?" 사실인지 꾸며낸 얘긴지는 알 수 없지만, 장각에 관한 소문은 자못 신비스러웠다. 아마도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동안 부풀려진 것이 태반이리라. 그러나 그 신비스 러움은 희망을 갈구하는 백성들에게는 오히려 더 좋은 의지처였다.
장각은 거록(鉅鹿) 땅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원래 벼슬자리에 오르기 위해 학업 에 힘썼으나 관직을 얻는 데 실패한 불운한 사람이었다. 그는 관직에 오르는 것을 포기하고 산으로 들어가 약초 캐는 것을 주업으로 삼았다. 그러던 어느 날, 장각은 산 속에서 약초를 캐던 중에 노인 한 분을 만났다. 눈에 서 푸른빛이 뿜어져 나오고 홍조를 띤 얼굴은 동자처럼 맑아 첫눈에 보아도 예사 노인이 아니었다. 장각은 몸을 바로 하며 공손히 절을 올렸다. 그러자 노인은 장각을 어느 동굴 속 으로 데리고 들어가 책 세 권을 건네주었다. ―이 책은 {태평경(太平經)}이라는 천서(天書)이니라. 네가 이 책을 얻게 된 것은 하늘의 뜻이니, 잘 익혀서 고통에 빠진 세상을 구하도록 하여라. 만일 악한 마음을 품고 욕심을 낸다면 네 몸이 먼저 망할 것이니라. 장각은 기쁨을 이기지 못했다. ―선생님의 존성대명을 알고 싶습니다. ―남화노선(南華老仙)이라고만 기억해라. 장각은 다시 절을 올렸다. 허리를 들어 보니, 방금까지 눈앞에 있던 노인은 어느 새 사라지고 없었다. 장각은 천서『태평경』을 얻고 나서 밤낮으로 공부하였다. 거기에는 부적으로 사 람의 병을 고치는 방법과 바람을 부르고 비를 오게 하는 술법이 자세히 적혀 있었 다. 장각은 책을 읽고 또 읽은 끝에 3년 만에 그 안의 술법을 모두 깨우쳤다. 때마침 전염병이 청주(靑州)를 비롯한 제북(齊北) 일대를 휩쓸었다. 장각은 도인 복장을 하고 거리로 나가 스스로 '태평도인'이라 칭하며 병에 걸린 사람들에게 부적과 약수를 주었다. 병에 걸린 사람들은 부적과 약수를 먹자마자 신 기하게도 씻은 듯 병이 나았다. 삽시간에 그의 인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다. 장각은 자신을 따르는 자 중 영리한 자 5백여 명을 골라 {태평경}의 술법을 가르친 후 고을마다 돌아다니며 병을 고쳐 주게 하니, 그를 따르는 사람만도 1만여 명이 넘게 되었다.

"이것은 혹세무민이다. 하지만 어쩌랴, 황실과 조정은 저들에게 희망을 주기는커 녕 핍박과 착취만 일삼는 것을." 제갈규는 장각을 따르는 사람들에 대해 안타까움보다는 동정과 연민의 정을 느꼈 다. 사람은 정치에서 희망을 얻지 못하면 신앙에서 그것을 갈구한다. "최근 들어 불교라는 종교가 주목받게 된 것도 그러한 이유 때문이겠지." 하지만 장각이 이끄는 태평도교는 수상쩍은 냄새가 너무 짙었다. 장각은 이미 전 국에 36방(方)을 두고 조직적으로 교도들을 조종하고 있었다. 큰 방은 하나에 1만여 명의 교도가 속해 있다고 하니 어머어마한 세력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 사이에 나도는 노래라는 것 또한 여간 의심스럽지 않았다.

창천(蒼天)은 이미 죽었으니 바야흐로 황천(黃天)이 일어서려 한다. 때는 바로 갑자년(甲子年) 천하가 크게 길하리라.

소설 제갈공명 (5)…제1장 난세의 아들(5)
곳곳에서 이런 노래가 불리우고 있었다. 창천은 무엇이고, 황천은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갑자년이라면 앞으로 3년 뒤이다.
사뭇 반란의 냄새가 나는 이 노래가 공공연히 삼척동자들 사이에서 불리고 있다 는 것이 제갈규로서는 여간 께름하지 않았다. 양도에 머물러 있을 때까지만 해도 이러한 실상을 실감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막상 밖으로 나와 직접 눈으로 보니 태 평도교로 인한 요사스런 기운은 이미 그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난세를 알리는 서막인가……?'

더더욱 제갈규의 마음을 무겁게 하는 것은 그가 지금 부임해가는 태산군이 태평 도교의 세력권 중심부에 속해 있다는 점이었다. 제갈규의 가슴을 벅차게 했던, 양도현을 떠나올 때의 재출사에 대한 감격과 포부 는 여행 도중 씻은 듯이 사라지고, 어느 새 그의 뇌리에는 앞날에 대한 불안과 두 려움과 불길한 예감만이 끊임없이 떠오르고 있었다.

양도현을 떠난 지 3일 만에 제갈규는 봉고에 당도하였다. 그를 가장 먼저 맞아준 것은 눈앞을 가로막듯 우뚝 솟아 있는 태산이었다. 태산은 산동성뿐만 아니라 중국이 자랑하는 명산이다. 해발 1,545미터이니 그다지 높다고는 할 수 없으나, 요순 시절 이래 태평성대를 구가한 성군만이 거행할 수 있 다는 '봉선(封禪)' 의식이 바로 이 곳에서 치러지고 있었기 때문에 중국 사람들은 이 태산을 신령스러운 산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저 태산처럼……'

그 날은 안개비가 뿌리고 있었다. 비록 동악 태산의 선명한 형체를 볼 수는 없었 지만 제갈규는 태산이 뿜어내고 있는 그 어떤 위압감의 기운을 분명히 느낄 수 있 었다.

'우뚝 서리라!'

그는 옷이 젖는 것에도 아랑곳 없이 한참 동안 태산 밑에 서서 자신의 마음을 다 지고 또 다졌다. 임지에 도착한 제갈규는 바빴다. 그는 행정 실무책임자로서 군의 어지러운 행정 기강을 확립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흉년은 계속되고 민심은 흉흉했다. 태평도교의 교세가 날로 확산되어 항간 에는 직제마저 군대식으로 바꾸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었다. "태평교도들의 행동이 심상치 않습니다. 조정에 상주문을 올리고 만반의 태세를 갖추는 것이 좋을 듯싶소이다."

제갈규는 틈만 나면 태산군 태수와 군대를 담당하고 있는 장사(長史)에게 건의했 다. "미욱한 자들이 벌이는 우스꽝스러운 짓이오. 제갈공께서는 너무 소심해서 탈이 오." 태산군 토박이인 장사 왕기(王棄)는 냉소를 머금으며 타처에서 온 제갈규의 건의 를 노골적으로 무시했다.

승(丞)은 군의 행정을 담당하는 실무 책임자이다. 오늘날의 부지사에 해당하는 직 위이다. 정치가 어지러우면 사람들이 고단하다. 비록 태산군에서 제2인자의 권한을 가진 제갈규였지만 그것은 명목상뿐이었다. 그 어떤 일이고 자신이 뜻하는 바대로 이루 어지는 일은 거의 없었다. 이미 부패와 혼란은 극에 달하고 있음인가. 도대체 기준 이란 것이 없었다.

'이런 것은 아니었는데……'

제갈규는 외로웠다. 관리들의 부정한 사고 방식과 무능함을 통탄했고, 자신의 힘 이 모자람을 아쉬워했다. 매사가 그를 지치게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세상을 향한 그의 각오와 의욕은 허탈과 절망으로 변해갔다.


소설 제갈공명 (6)…제1장 난세의 아들(6)
하루 일을 끝내고 관사로 돌아온 제갈규에게는 어느덧 저녁 식사를 하면서 술 한 잔을 청해 마시는 습관이 생겨났다. ‘양은 잘 자라고 있을까.' 외롭고 힘이 부칠 때면 제갈규는 뒤늦게 본 아들 제갈량의 해맑은 얼굴을 떠올리곤 했다. 그러면 모든 시름과 우려를 잠시나마 잊을 수가 있었다. 맏아들 제갈근이 말상인 것에 비해 둘째인 제갈량은 귀공자 상이었다.
태산군 승으로 부임한 이래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탓에 2년 여가 지나도록 한번밖에 고향에 다녀오지 못했다. 그 때 본 제갈량의 귀여운 얼굴이 눈앞에 선하게 떠올랐다. 허공 속에 그려진 그 얼굴을 보고 있노라면 도무지 지루한 줄을 몰랐다.

‘잘 자라야 할 텐데….' 세상이 워낙 어지럽고 민심마저 흉흉하니 기대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대대로 제갈씨 가문의 가복(家僕)으로 일하는 장충(張忠)은 주인 제갈규의 이러한 마음을 짐작한 듯, "마님과 도련님들을 이 곳으로 모셔오는 것이 어떨런지요?" 하고 의향을 떠보았다.

제갈규는 대답 대신 막 태산 위로 떠오르는 달을 향해 눈길을 돌렸다. 그라고 어찌 가족들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없으랴. ‘가족들을 데려오기엔 이 곳은 너무 위험하다.' 제갈규는 시국을 보는 자신의 통찰력이 남보다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는 사람이었다. 그 점은 남을 쉽게 인정하지 않는 버릇을 지닌 동생 제갈현도 인정하고 있는 바였다. 제갈규 형제는 같은 뱃속에서 나왔지만 성격이 판이했다. 형인 규가 섬세하고 예리한 성품을 지닌 반면, 동생 현은 깊게 생각하기보다는 행동으로 먼저 옮기는 편이었다. 이러한 두 형제의 성품을 두고 양도현 사람들은 이렇게 아쉬워하곤 했다.

―두 형제를 하나로 합해놓으면 제갈풍 같은 영예로움을 다시 얻을 수 있었을 텐데.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제갈규의 눈에는 조만간에 큰 난리가 터질 것처럼 보였다. ‘이곳 태평도교 신도들의 눈빛이 너무 매섭다. 그러나 양도는 안전할 것이다. 그냥 그 곳에 남아 있는 것이 가족들에게도 나에게도 낫다.'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에는 이미 취기가 얼굴까지 올라 있었다. 급기야 우려하던 바가 현실로 닥쳐왔다. 태평도교의 교주 장각이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다. 그가 거느린 군사들은 자신을 신봉하는 교도들이자 농민들이었다. 주동세력이 농민들이었던 탓에 오늘날 일부 역사가들은 이 난을 농민혁명군의 봉기로 해석하는 이도 있다.

장각은 자신의 교세가 청주·유주(幽州)·예주(豫州)·서주(徐州)·기주(冀州)·연주 등 제북 일대의 고을은 물론 형주(荊州)·양주(揚州) 등 전국으로 확산되자 크게 자신감을 가졌다.

―천자(天子)가 무엇이냐. 민심을 얻은 자가 곧 천자 아니겠는가. 이제 세상 사람들은 나를 따르고 있다. 장각은 동생 장보(張寶)·장량(張梁)과 의논한 끝에 심복부하 마원의(馬元義)에게 금과 비단을 내주어 낙양으로 들어가게 했다. 재물에 약한 환관들을 매수하여 안에서 호응케 하려는 작정이었다. 마원의는 십상시 중 한 사람인 환관 봉서(封壻)를 매수하는 데 성공했다.

장각은 이어 수제자 당주(唐州)를 불러 거사 계획을 담은 밀서를 내주었다. ―지금 곧 낙양성 안으로 들어가 이것을 환관 봉서에게 전해주어라. 이것이 봉서의 손에 들어가는 날 천하는 우리들의 것이 된다.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수제자 당주가 장각을 배신하고 거사 계획을 금부에 고해 바칠 줄이야. 놀란 것은 황제와 조정 대신들이었다. 곧 대장군 직을 맡고 있는 하진(何進)을 불러 마원의를 생포하여 목 베게 하고, 봉서 등 내통한 환관들을 잡아 옥에 가두었다.

이 소식은 즉각 장각에게 전해졌다. 장각은 계획을 앞당겨 그 날로 군사를 일으켰다. 이것이 후한의 몰락과 군웅할거 시대를 가져온 ‘황건의 난'으로, 제갈규가 태산군 승으로 부임한 지 3년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소설 제갈공명 (7)…제1장 난세의 아들(7)
태산군은 장각의 본거지인 거록과 불과 5백여 리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황건군의 기세는 해일과도 같았다. 썩어빠진 조정에 불만을 품은 농민들이 대거 호응하였다. 삽시간에 유주를 비롯하여 기주·연주 땅을 휩쓸었다. 머리에 누런 수 건을 두른 그들은 제 세상을 만난 양 물밀 듯 태산군으로 밀려들었다.
황건 적도들이 난을 일으켰다는 파발이 날아들었을 때도 태산군 태수와 장사 왕기는 코웃음을 쳤다. "며칠 날뛰다가 제풀에 사그러들겠지요." 그런 태수와 장사 왕기는 조정에서 내려온 유씨(劉氏) 성을 가진 고관을 접대하느라 관사에서 연회를 베풀다 황건군의 급습을 받았다. 술에 취해 뒷간으로 숨어들 다가 황건 적도들의 창날에 찔려 순식간에 목숨을 잃었다. 죽는 순간까지 그들은 자신들의 이러한 종말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는 표정들이었다.

뒤늦게 출동한 관군들도 어줍지 않게 덤벼들다가 몰살당했다. 다행히 제갈규는 제례 준비차 태산에 나갔다가 화를 면했다. 자신의 힘으로는 사태를 수습하기 힘들다고 판단한 제갈규는 이웃 고을인 청주로 몸을 피했다. 황건군의 주력부대는 아직 청주까지는 침범하지 않았지만 들려오는 소식마다 급박한 것들뿐이었다.

"더 늦기 전에 낙양으로 사람을 보내십시오." 제갈규는 그 곳 관리들을 다그쳐 급히 구원병을 요청하는 장계를 조정에 올리도 록 했다. 황건군의 기세가 천하를 집어삼킬 듯 거세지자 조정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들끓었다. 그 동안 세상이 자기들 손에 있기라도 한 듯 온갖 권세와 만행을 저질러오던 환관들은 언제 그랬느냐 싶게 내궁 속으로 숨어들었고, 문무백관들은 조정에 나와 대응책을 강구하느라 연일 머리를 짜내었다.

이 때 그들을 주도한 사람은 황후 하(何)씨의 오라비인 대장군 하진이었다. "방금 전에도 태산군 일대가 황건적의 수중에 떨어졌고, 청주마저 위협을 받고 있다는 장계가 올라왔소. 공들은 언제까지 탁상공론만 하고 있을 작정이오?"

누이동생이 황후로 발탁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도살업을 하던 하진이었다. 그는 관청에 앉아 입으로만 떠들어대는 문관들이 여간 못마땅하지 않았다. 하진은 한바탕 문관들을 야단친 후 황제에게 상주문을 올려 도적을 내치라는 조명(詔命)을 받아냈다.

"아직 적도들의 침입을 받지 않은 각 고을의 자사들은 주군(州郡)의 성들을 수리하여 만반의 방어 태세를 갖추도록 하라." "노식(盧植)·황보숭(皇甫嵩)·주전(朱鐫) 등을 중랑장에 제수하노니, 각기 정병을 이끌고 나가 적도들을 물리치도록 하라."

이들은 모두 문무를 겸비한 당대의 손꼽히는 장재들이었다.며칠 후, 노식·황보숭·주전 등은 각기 정병을 거느리고 제북 일대의 위험에 빠진 성들을 구원하기 위해 낙양성을 떠났다.

소설 제갈공명 (8)…제1장 난세의 아들(8)
제갈규가 피신해 있는 청주성에도 황건의 도당이 밀어닥쳤다. 그 때 청주 자사는 공경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군사를 내어 싸우려 하다가 산야를 뒤덮은 채 새까맣게 밀려오는 황건군을 보고는 성문을 굳게 닫아걸었다.
"어째서 나가 싸우지 않으시는 겁니까?" 의아하게 여긴 제갈규가 공경에게 물었다. "제갈공의 눈에는 저 모습이 보이지 않소? 마치 메뚜기떼가 몰려오는 것 같소이다. 우리 청주성 안에는 고작 1만여 병사가 있을 뿐이오. 공연히 나가 싸웠다가 패하기라도 하면 재기할 기회마저 잃어버릴 것이외다." ‘재기?'

제갈규는 고개를 갸웃했다. "달리 묘책이라도 지니고 계신지요?" "이 상황에서 어찌 묘책이 있을 수 있겠소? 이대로 지키면서 저들이 스스로 물러가기만을 바라는 수밖에."

청주 자사 공경 역시 태산군 태수와 다를 바 없는 사람이었다. 제갈규는 피신해 있는 처지에 그들과 입씨름할 면목이 없어 다른 의견을 내었다.

"이 곳으로 오는 도중 들으니 유주 자사께서 황건 도당의 공격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사람을 보내 유주의 유언(劉焉) 자사에게 구원병을 청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가만히 앉아 저들이 물러나기를 기다리는 것보다 낫지 않겠습니까?"

"좋은 생각이오만… 목숨을 걸고 유주까지 다녀올 사람이 있을지 걱정이구려." 말하는 투에서 제갈규는 공경의 속마음을 읽었다. "그 점이라면 염려하지 마십시오. 제가 가서 구원병을 데리고 오겠습니다." "위험하지 않겠소?"

말은 이렇게 하고 있었지만, 공경은 반색하는 표정이었다. "제가 몸담고 있던 태산군은 이미 황건 도당에 의해 도륙이 난 상태입니다. 더 이상 피해가 없기만 한다면 이 한 몸 죽는 것이야 무엇이 아깝겠습니까?" "고맙소. 과연 제갈풍의 후예답소이다."

청주성을 에워싼 황건군의 포위망은 완전하지 않았다. 그 날 밤, 제갈규는 어둠을 틈타 포위망을 뚫고 유주를 향해 나는 듯이 달렸다. 몇 차례 적당들을 만났으나 위험한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다. 유주에 도착하자 그는 곧장 자사 유언을 찾았다.

"무슨 일이오?" "청주가 위태롭습니다. 황건적 수만 명이 성을 에워싸고 있는 바람에 언제 함락될지 모를 지경입니다. 청컨대 자사께서는 군사를 보내시어 청주성을 도와주십시오." "우리도 군사가 넉넉지 못한데 참으로 난감하구려."

유언의 반응에 제갈규는 실망했다. 그 때 접견실의 문이 열리며 한 장수가 들어왔다. 귀가 유난히 크고 팔이 무릎까지 내려올 정도로 긴 그 장수는 유언에게 예를 올린 후 제갈규를 눈짓해 가리키며 물었다. "청주에서 사람이 왔다더니, 이 분이신 모양이군요?"

나이는 스물다섯 살쯤 되었을까. 서글서글한 눈매와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그 젊은 장수를 보는 순간, 제갈규는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이제껏 수많은 사람을 만나왔지만 이렇듯 초면에 마음을 끄는 사람은 처음이었다.

"그렇소. 제가 바로 청주에서 구원병을 요청하러 온 제갈규라는 사람이외다. 지금 청주성은 황건 도당에게 포위당한 채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습니다. 밖에서 구원병이 오지 않으면 청주성은 이내 함락되고 말 것입니다."

제갈규는 그 젊은 장수를 향해 다시 한 번 청주성의 급박한 상황을 설명해 주었다. "저는 탁현에 사는 유비(劉備)라고 합니다. 황건 도당으로 인해 어려움에 빠진 나라를 구하고자 의군(義軍)을 일으켜 자사 어른께 달려왔습니다. 청주성이 위급지경에 처해 있다니 당연히 달려가 도와드려야지요."

유비라고 이름을 밝힌 그 젊은 장수의 말에 제갈규는 막힌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것 같았다. "말씀만 들어도 고맙소이다. 하지만 이 곳도 군사가 충분치 않은 모양이니, 저는 다른 곳으로 가서 구원을 요청하겠습니다."

그러자 유비가 제갈규와 유언을 번갈아보며 호방하게 말했다. "공께서는 청주성의 사정이 급박하다면서 언제 또 다른 곳으로 갈 여유가 있습니까? 태수 어른, 허락하신다면 소장이 청주성을 구하러 달려가겠습니다."

유비의 자원에 유주 자사 유언은 생각에 잠기더니 이윽고 결단을 내린 듯 입을 열었다. "알겠네. 일단 자네 먼저 의용군 5백을 거느리고 청주로 달려가게. 내 곧바로 교위 추정(鄒靖)에게 병마 5천을 주어 뒤따르게 하겠네."

명이 떨어지자 제갈규와 유비가 거느린 의군 5백 용사는 청주를 향해 떠났다. 구원병의 수가 적은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제갈규는 그런 유비가 여간 고맙지 않았다. 청주로 가는 동안 그는 유비와 말머리를 나란히 하며 여러 가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비록 나이가 젊고 이름이 알려져 있지 않은 무명의 의군 대장이었지만, 제갈규는 유비에게서 깊은 인상을 받았다.

‘보기드문 인걸이다.'

소설 제갈공명 (9)…제1장 난세의 아들(9)
유비가 지휘하는 의군이 청주성 밖에 이르렀을 때까지도 황건군은 성을 함락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늦지 않아 다행입니다." 유비는 제갈규를 돌아보며 미소를 던진 후 곧장 황건군을 향해 짓쳐들어갔다. 유비와 그 부하들은 용감히 싸웠으나, 워낙 이쪽의 수는 적고 적병의 수는 많았다. 그들은 첫싸움에서 패하고 30리나 물려 진채를 세웠다.
그 날 밤, 유비는 결의형제를 맺었다는 두 아우 관우(關羽)와 장비(張飛)를 불러 의논했다. "도적들의 수는 많고 우리 군사는 적으니 계교를 쓰지 않으면 이길 수가 없을 것 같다. 내일이면 추정이 이끄는 5천 병마가 이 곳에 당도할 것이다. 관우와 장비는 저쪽 산 좌우에 매복해 있다가 징 치는 소리가 나면 일제히 나와 도적들을 치도록 해라."

다음 날 새벽, 추정이 이끄는 유주 병마 5천이 유비의 진채에 도착하였다. 관우와 장비는 날이 밝기 전에 추정에게 군사 1천씩을 빌려 산 좌우편에 숨었다. 날이 완전히 밝자 유비와 추정은 남은 3천 군사를 거느리고 황건군을 향해 쳐들어갔다. 전날에 이어 다시 혼전이 벌어졌다. 그러나 유비는 계략을 세워둔 바 있었기 때문에 싸우는 시늉만 하다가 이내 군사를 돌려 산길을 향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전날의 승리로 기세가 오를 대로 오른 황건군은 신바람이 나서 유비군을 뒤쫓았다. 그들이 산허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별안간 징소리가 울리는가 싶더니 산 좌우에서 한 떼의 군마가 함성을 지르며 달려나와 황건군의 뒤를 치기 시작했다. 관우와 장비가 이끄는 복병이었다. 동시에 앞쪽의 유비와 추정마저 말머리를 돌려 공격하니 황건군은 눈 깜짝할 새에 산허리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눈앞이 아득해진 그들은 싸울 마음이 사라졌다. 서로들 도망가기에 바빠 엉키고, 밟고, 넘어지고, 비명을 지르는 것이 마치 아수라장 같았다. 살아남은 자들은 겨우 청주성을 바라보고 도망쳐갔다. 성 위에서 이를 바라보고 있던 청주 자사 공경이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즉시 성문을 열고 1만여의 관군과 민병들을 거느리고 나와 싸움을 도왔다.

앞뒤로 적을 맞은 황건군은 도저히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앞을 다투어 병기를 버리고 달아나니, 이로써 청주성은 포위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었다. 청주 자사 공경은 유비와 추정 등을 불러 그 공을 치하하고 소와 돼지를 잡아 군사들을 배불리 먹였다. 위험을 무릅쓰고 유주까지 달려가 구원병을 데리고 온 제갈규에 대해서도 치하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다음 날 유비와 추정은 군사를 거느리고 유주로 돌아갔다. 제갈규는 비록 잠깐의 만남이었지만, 유비에대해 깊은 인상을 받았으며 그를 쉽게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제갈규는 계속 청주성에 머물며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곳곳에서 관군의 움직임과 황건군의 동태가 전해졌다. 처음에는 금방이라도 천하를 삼킬 듯하던 황건 도당의 기세도 조정에서 토벌군이 파견되고 곳곳에서 의군들이 일어나면서부터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여러 장수들의 활약상도 바람을 타고 여기저기서 날아들었다. 중랑장 노식과 황보숭의 활약이 눈부시다고 했다. 신진 장수들의 무용담은 이야기책을 읽고 있기라도 한 듯 통쾌무비했다. 그 중에서도 특히 패국 출신의 조조(曹操), 오군(五郡) 출신의 손견(孫堅), 요서의 공손찬(公孫瓚), 하남 출신의 기린아 원소(袁紹) 등의 이름이 연일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세상이 어지러우면 그 어지러움을 다스릴 인물도 태어나는 것인가.' 하지만 고대하던 태산군의 회복 소식은 좀처럼 해서 들려오지 않았다. 제갈규는 사람을 놓아 태산군의 소식을 알아보았다. 양도에 남겨두고 온 가족들도 여간 걱정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자네가 한 번 다녀오는 것이 좋겠네." 제갈규는 가복 장충을 양도로 보내는 한편, 낙양에 있는 동생 제갈현에게도 편지를 보냈다. 보다 종합적이고 구체적인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낙양으로부터 답신이 먼저 도착했다. 제갈현이 보내온 소식은 제갈규가 알고 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한 가지 새로 알게 된 사실은 황건군 토벌에 공이 큰 중랑장 노식이 파면되고, 동탁(董卓)이란 사람이 새로이 중랑장에 올랐다는 것이었다.

이런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황제와 환관들은 계속 딴 수작만 부리고 있으니, 앞으로의 일이 걱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제갈현의 격앙된 문장이 아니더라도 제갈규는 그간의 과정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양도로 떠났던 가복 장충이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닷새 후였다. 그는 제갈규를 보자마자 놀랍고도 반가운 소식을 전했다. "황건적의 괴수 장각이 병들어 죽었다는 소문이 파다합니다. 이미 광종(廣宗) 땅에 주둔하고 있던 황건 도당의 본대는 토벌되었고, 나머지 두 동생이 이끄는 도적들도 곡양(曲陽)과 양성(陽城)에서 고전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제갈규는 사람을 풀어 소문의 진위를 확인하였다. 장충이 오는 도중 들었다는 소문은 모두 사실이었다. 황건 도당으로 들끓던 태산군 일대도 모두 수복했고, 지금은 일부 잔당들만 산 속으로 들어가 저항하고 있다고 했다. "마님과 도련님들도 안전하십니다." 장충은 뒤늦게 양도의 가족들에 대해 소식을 전했으나 제갈규는, "다행이군." 한마디 뱉고는 태산군으로 돌아갈 채비를 하기 시작했다.





장비전(퍼왔습니다.)
소설 대삼국지 제 1부 <헌제의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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