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연 :: 동호회


정삼연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아이디, 비밀번호 찾기
 회원가입
자유게시판
 치기 어린 시절에 남겨...
 sbs 야구병법
 EBS 세계견문록 삼국지...
  EBS 세계견문록 아틀...
 정원기 소장와 함께 떠...
공지사항
 중화TV 삼국지 덕후 콘...
 sbs 야구병법
 EBS 세계견문록 삼국지...
  EBS 세계견문록 아틀...
 정원기 소장과 함께 떠...


  천공하후패(2001-01-20 20:17:10, Hit : 3957, Vote : 285
 <공명의 선택> 24장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
공명의 선택 (272)…제24장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1)


그 해 7월, 유비 군과 조조 군 사이에 한중 쟁탈전이 시작되었다.

전면전은 아니었다. 서로간 조심스러워했다. 유비 진영에서는 장비와 마초를 앞에 내세웠고, 조조 진영에서는 조홍과 하후연, 장합을 포진시켰다.

양측이 전면전을 꺼린 데에는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동오의 손권에 대한 경계가 그것이었다.

―손권의 장강 이북 진출을 막아야 한다.

합비성이 그 길목이었다. 주력부대를 한중으로 빼돌렸다가는 언제 동오가 합비성을 공격할지 몰랐다. 한중과 합비는 너무 멀다. 위왕 조조는 조홍을 총사령관에 임명할 수밖에 없었다.

유비 진영에서도 무작정 한중에 대한 욕심을 부릴 수만은 없는 처지였다. 한때 전 병력을 한중 공략에 투입하자는 안도 제기되었다. 법정이 그 주창자였다.

―단숨에 들이칩시다.

그러나 공명은 모험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반대 의견을 내세웠다.

―노숙의 뒤를 이어 대도독에 오른 여몽은 싸움을 즐기는 자요. 비록 지금은 동맹 관계를 맺고 있다고 하지만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형국이오. 경계하지 않을 수 없소. 야금야금 먹어들어가다가 때가 되면 일거에 격파하는 것이 상책이외다.

출병 직전에 공명은 장비를 불러 은밀히 영을 내렸다.

“와구관(瓦口關)은 험한 산중에 있는 요새입니다. 그 곳만 취하면 장군은 임무를 완수하는 것입니다.”

“군사께서는 아무 염려 마시오. 조홍과 장합쯤은 한주먹감이오.”
장비는 자신감에 넘쳐흘렀다.

“장합은 병법을 아는 장수입니다. 만일 그가 싸움에 응하지 않고 지키기만 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 때는 적장을 격동시켜 나오게 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좋습니다. 제가 이 주머니를 드릴 터이니 싸움이 여의치 않거든 이것을 열어보시오. 이대로만 하면 큰 공을 세우실 수 있습니다.”

마초는 오란을 부장으로 삼아 하판(下辦) 방면으로 나가 조조 군의 역습에 대비했고, 장비는 뇌동을 데리고 남정(南鄭) 방면으로 진격했다. 조조 군의 장수 장합은 암거산(岩渠山) 험준한 곳에다 진채를 차리고 장비의 진격로를 차단했다.

첫 싸움에서는 장비가 이겼다. 그러자 장합은 더 이상 싸울 의욕을 잃었는지 진문을 닫고 험한 산기슭에 의지해 굳게 지키기만 했다. 아무리 싸움을 돋우어도 장합은 싸움에 응하지 않았다. 입담 좋은 군사를 동원하여 욕설을 퍼부어도 요지부동이었다. 부장 뇌동이 참지 못하고 산 위로 돌격했으나 산 위에서 굴러떨어지는 통나무와 바위들에 깔려 군사들만 잃었다.

어느덧 한 달이 넘게 지났다. 장비는 답답했다. 그 때 출병하기 전 공명이 내준 주머니가 생각났다. 얼른 열어보았다. 봉투가 하나 나왔다. 그것을 열어 읽어본 장비는 얼굴을 활짝 폈다.

“술을 가져오너라!”

그 날부터 장비는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술을 마셔대기 시작했다. 싸우러 나온 장수가 아니라 놀러 나온 장수 같았다.

이 소식이 성도에 있는 유비의 귀에 들어갔다. 유비는 깜짝 놀라 공명을 불러 의논했다.

“장비의 술버릇은 내가 잘 아오. 싸움은 하지 않고 술만 마셔대고 있다니 여간 큰일이 아니오.”

공명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주공께서는 아무 염려 마십시오. 오히려 성도의 잘 익은 술을 수레에 가득 실어 보내주십시오. 장익덕께서 무척 좋아하실 겁니다.”

그러고는 그것이 자신의 계책에 의한 것임을 밝혀주었다. 그제야 유비는 굳었던 표정을 풀며 환하게 웃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소.”

곧 위연을 불렀다. 장비에게 갖다 줄 술을 수레에 실어가기 위해서였다.
얼마 후, 이상한 행렬이 장비의 진채를 향해 들어갔다. ‘군전공용미주(軍前公用美酒)’라는 깃발이 높이 내걸렸다. 장합을 격동시키기 위한 공명의 기지였다.

장합은 산 위에서 장비의 진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가관이 아니었다. 장비는 군막 안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고, 그 앞에서는 군사들이 편을 갈라 씨름판을 벌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장합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장비란 놈이 나를 업신여겨도 너무 업신여기는구나!”

도저히 참고 넘어갈 수가 없었다.

그 날 밤은 달빛이 희미했다. 그는 전 군사를 거느리고 산을 내려와 장비의 진채를 급습했다.


공명의 선택 (273)…제24장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2)


진채의 방비는 허술했다. 장비의 군막을 살피니 장비는 여전히 술상 앞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장합은 기회다 싶어 희미한 달빛 아래 장창을 비껴들고 장비의 군막으로 뛰어들었다. 번쩍 창을 들어 장비를 향해 찔렀다.

그런데 이상했다. 창 끝에 와 닿는 맛이 달랐다. 장비가 뒤로 나자빠졌다.

“앗!”

이게 웬일인가. 그것은 장비가 아니라 장비 형상을 한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였다.

―속았다!

라는 생각을 채 하기도 전에, 홀연 군막 뒤에서 연주포 터지는 소리가 들리더니 일원대장 하나가 달려나왔다. 부릅뜬 고리눈, 호랑이 수염―장비였다. 장합은 정신이 어찔했다.

“이놈, 장합아. 잘 만났구나!”

장합은 싸울 마음을 잃었다. 말머리를 돌려 무작정 도망치기 시작했다. 군사들은 상관하지 않았다. 오로지 제 한 몸 빼내기에 급급했다.

날이 밝을 무렵, 겨우 와구관에 당도하여 긴 숨을 내쉬었다.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악몽 같은 하룻밤이었다.

한 달여 만에 암거산의 방어선을 돌파한 장비는 여세를 몰아 와구관 앞까지 진격했다. 와구관 역시 험한 산세에 둘러싸여 있었다. 산은 기암괴석이요, 숲은 하늘을 가릴 듯 울창했다. 장합이 싸움에 응하지 않는 한 도저히 깨뜨릴 방법이 없었다.

“소장이 나가 장합을 유인해보겠습니다.”

뇌동이 군사를 몰고 와구관으로 돌진했다. 그러나 역시 장합도 만만치 않은 장수였다. 그는 이미 와구관 입구에 복병을 숨겨두었다.

―전멸당했습니다. 뇌동 장군도 전사했습니다.

이 같은 보고가 장비에게 날아들었다. 첫 손실이었다. 승리감에 도취되어 있던 장비는 주춤했다.

“군사께 알리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보다 못한 위연이 안을 내었다. 그러나 장비는 고개를 저었다.

“이만한 일로 군사의 도움을 받는다면 어찌 장수라 할 수 있겠는가?”

강주성에서 엄안과의 싸움으로 병법 수준이 한 단계 오른 장비였다. 전략을 바꾸었다. 그는 몸소 수십 기를 거느리고 와구관 주변의 산 속을 뒤지며 샛길을 찾기 시작했다.

어느 날, 장비는 산 속을 수색하던 중 등짐을 진 사람들을 서너 명 발견하였다. 행색으로 보아 장사꾼이 분명했다. 장비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위연을 돌아보며 말했다.

“와구관을 뺏고 못 뺏고는 저 사람들에게 달려 있소.”

그러고는 곧 그들이 놀라지 않도록 조심해서 다가갔다. 부드럽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 사람들인가?”

“저희들은 한중에 사는 장사꾼들입니다. 물건을 팔러 나갔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에 전쟁이 나 낭중 큰 길이 막혔다고 하기에 산길을 취해 한중으로 들어가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너희들은 와구관으로 향하는 샛길도 알겠구나.”

“와구관이야 바로 지척이지요. 재동산(梓潼山) 소로를 넘으면 와구관 뒤편이 나옵니다.”

장비가 기다리고 있던 대답이었다. 즉시 위연에게 지시했다.

“그대는 와구관 정면을 들이치시오. 나는 별동대를 거느리고 이 산길로 돌아가 와구관 뒤편을 기습하겠소.”

기막힌 양동 작전이었다.

과연 장합은 와구관의 정면만을 굳게 지키며 적의 침공에 대비하고 있었다. 위연이 와구관 정면 가까이 진격하여 장합에게 싸움을 걸고 있는 사이, 장비는 별동대를 이끌고 와구관 뒤편으로 돌아갔다. 어찌 자기네 지역인 뒤편에서 적이 나타날 것을 예상했겠는가. 아무런 방비도 없었다.

장비는 당황하는 장합의 소부대들을 거침 없이 밀어붙이며 와구관 뒤편에 당도했다. 먼저 여기저기 불을 질렀다. 불길이 높이 솟았다.

―장비가 기습해오고 있습니다!

위연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던 장합은 경악했다. 싸울 의욕을 잃었다. 관을 지키려다가 공연히 목숨만 잃을 것 같았다. 재빨리 관을 빠져나가 반대편 산길을 통해 달아났다. 한참 달린 끝에 뒤를 돌아보니 와구관에는 이미 유비 군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공명의 선택 (274)…제24장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3)


―이번에는 천탕산이오.

장비가 예상대로 와구관을 빼앗아주자 공명은 즉시 황충과 엄안을 불러 다음 작전을 지시했다.

천탕산은 미창산(米倉山)·정군산(定軍山)과 더불어 한중의 세 요새로 군량과 마초(馬草)를 쌓아둔 곳이었다. 그 곳을 점거한다는 것은 한중에 주둔하고 있는 조조 군의 밥줄을 끊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충과 엄안은 나이가 많은 장수들이었다. 특히 황충은 나이 칠십에 이른 노장 중의 노장이었다. 유비와 법정이 염려했다. 공명도 짐짓 황충을 자극했다.

“천탕산은 하후덕과 한호가 지키고 있습니다. 둘 모두 조조의 명장이외다. 더욱이 장비에게 쫓긴 장합이 천탕산으로 달아나 합세했다고 합니다. 장군께서 자신이 없으시면 장익덕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공명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황충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찌나 화가 났던지 하얀 수염이 고슴도치 털처럼 뻗쳤다.

“내 나이 비록 칠십이라고는 하지만 석 섬 무게의 큰 활을 당길 수 있고, 온몸의 힘은 천 근 돌을 들 수가 있소이다. 하후덕이나 장합쯤은 한주먹에 콩가루처럼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고는 벽에 걸려 있는 큰 칼을 뽑아 칼춤을 추기 시작했다. 웬만한 장정들은 두 손으로 들어도 감당하기 힘들 만큼 크고 무거운 칼이었다. 그런데도 황충은 마치 젓가락을 휘두르듯 날렵하고 가볍게 칼을 휘두르고 있었다. 유비도, 법정도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명은 그제야 빙긋 웃으며 황충에게 말했다.

“노당익장(老當益壯)이란 말은 정녕 장군을 두고 하는 말인 듯싶소. 부디 천탕산을 점령해주시오. 다만, 적장도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 분명하니 교병계(驕兵計)를 사용하면 그들을 쉽게 격파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병계―상대를 교만하게 만드는 계책이다. 황충은 금방 공명의 말뜻을 알아들었다.

황충은 엄안과 함께 천탕산으로 향했다. 아니나다를까. 천탕산의 수비대장 하후덕은 황충과 엄안의 나이 많은 것을 깔보았다. 황충은 공명의 지시대로 연일 패하여 물러났다. 연전연승에 기세가 오른 하후덕과 한호는 천탕산을 내려와 가맹관 가까이까지 황충을 추격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황충이 밤의 어둠을 이용해 기습해왔다. 지금까지와는 달리 엄청난 기세였다. 하후덕과 한호는 이제까지 빼앗은 진채를 버리고 급히 천탕산으로 달아났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천탕산 요새 위에는 이미 유비 군의 깃발이 꽂혀 있는 것이 아닌가. 그들이 신바람이 나서 황충의 뒤를 쫓고 있는 사이, 엄안이 천탕산을 냉큼 점령해버린 것이었다.

어이가 없어 멍하니 서 있는 사이, 성벽 위로 엄안이 나타났다. 활에 화살을 먹여 힘껏 날렸다. 화살은 정확히 하후덕의 얼굴에 가서 맞았다. 외마디 비명을 내지르며 하후덕은 말에서 떨어져 죽었다.

한호는 기겁을 하여 얼른 군사를 돌려 정군산을 지키고 있는 하후연에게로 달아났다.

“와구관에 이어 천탕산마저 빼앗겼습니다.”

이 같은 보고에 남정에 머물러 있던 총사령관 조홍은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국지전을 벌여 하나하나 한중 땅을 먹어들어오는 유비 군의 전략을 눈치챈 것이다.

―유비가 한중 땅을 침공했습니다. 구원군이 필요합니다.

이 같은 조홍의 급보에 조조는 깜짝 놀랐다. 유엽이 먼저 의견을 내었다.

“한중을 잃으면 중원이 놀랍니다. 전하께서 친히 나가셔야 할 것입니다.”

조조는 지난날 내친김에 서천을 평정하자는 사마의의 말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눈길을 사마의에게로 돌리며 물었다.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전하께서 가신다 해도 어려운 싸움이 될 것입니다.”

사마의의 대답은 간단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가?”

“유비는 이미 내정을 안정시키고 물자를 충분히 확보해두었을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는 군량 수송에 애를 먹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3년 전의 유비와는 다릅니다.”

그 대답이 조조의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조조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마의를 노려보았다.

“내 친히 한중으로 가리라. 그대는 오지 않아도 좋다.”

사마의는 말없이 물러갔다. 그런 그의 입가에 냉소가 스쳐가고 있었다.

조조는 군대를 세 대(隊)로 편성했다. 전군은 하후돈에게 맡겼고, 중군은 자신이 직접 거느렸으며, 후대는 조휴를 임명했다. 40만 대군이었다.


공명의 선택 (275)…제24장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4)


‘그렇다면 우리도…….’

공명은 입술을 깨물며 결의를 다졌다. 조조는 이미 관중(關中)에 들어섰다고 했다. 정군산을 지키는 하후연을 굳게 믿고 있음인가. 혹은 동오의 손권을 경계하고 있음인가. 더 이상 진군할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는 보고였다.

―위협용 군대다.

공명은 이렇게 판단했다.

하지만 마음을 놓을 수는 없었다. 관중에서 한중의 남정까지는 지척이다. 여차하면 군대를 출격시킬 수가 있는 것이다. 그에 대한 대비가 필요했다.

“일륜거는 완성되었소?”

잠자리에서 공명은 아내 황용에게 물었다.

“아직…… 또 다른 결함이 발견되었습니다.”

“이번 싸움의 승패는 군량 수송에 달려 있겠군.”

공명은 어둠에 잠긴 천장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조조가 동관(潼關)에 머물고 있다지요?”

“동오의 손권을 경계함이겠지요.”

“만일 손권이 움직이지 않는다면요?”

“사실은 그 때문에 출전을 미루고 있는 것이오.”

공명의 입에서는 짧은 한숨이 나왔다.

“관운장께서는 요즘 어디 계시지요?”

황용이 엉뚱한 물음을 던졌다. 공명은 고개를 돌려 황용을 바라보았다. 어둠 속에서 그녀의 얼굴이 희미하게 보였다. 표정은 살필 수가 없었다.

“양양성에 머물고 있는 모양이오. 갑자기 그건…….”

여기까지 말하다가 공명은 퍼뜩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머릿속이 환하게 밝아왔다.

“그렇군. 관운장에게 번성(樊城)을 치게 하면 조조는 쉽사리 군사를 남정으로 내려보내지 못하겠군.”

“번성도 꽤 중요한 곳이라고 들었습니다.”

“고맙소.”

공명은 몸을 돌려 황용의 몸을 세차게 껴안았다.
다음 날이었다. 공명은 즉시 관우에게 밀사를 보냈다.

―번성을 공격하시오.

그러고는 유비를 찾아가 말했다.

“지금부터는 전면전입니다.”

유비는 즉시 군대를 이끌고 친히 가맹관으로 출진했다. 그 곳에다 지휘 사령부를 차렸다. 공명과 법정도 대동했다. 총병력은 10만.

나이 예순을 넘기면서부터 조조는 상당히 느긋했다. 불 같은 성격이 많이 죽었다고나 할까, 여유로운 마음이 생겨났다고나 할까. 좀처럼 속마음을 드러내지 않았다. 위왕(魏王)이라는 지위가 그러한 관록을 더해준 것인지도 몰랐다.

―유비의 10만 대병이 가맹관으로 진격해왔습니다.

이러한 보고를 받았지만 조조는 그저 빙긋 웃기만 했다. 긴장감이라든가 경계심 따위는 전혀 엿볼 수가 없었다.

―조급하군.

유비가 조급하다는 것인가, 아니면 이러한 보고를 올리는 모사 유엽이 조급하다는 것인가.

“공명을 만만히 보아서는 안 됩니다. 하루속히 남정으로 들어가 유비의 한중 진출을 막으십시오.”

유엽은 여유로운 웃음을 짓고 있는 조조가 불안했다. 적벽대전 때 화용가도를 따라 패주하던 조조의 모습이 떠올랐던 것이다.

“미숙하군.”

조조는 그러한 유엽을 보며 냉소를 지었다.

“예?”

“내가 동관에서 더 이상 나가지 않는 것은 바로 공명 때문인 것을 그대는 진정 모르는가?”

“무슨 말씀이신지?”

“그대는 유비가 공명과 더불어 가맹관으로 나온 까닭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그야 당연히 한중을 공략하려는 의도가 아니겠습니까?”

“틀렸네. 공명이란 자는 그대 말대로 여간내기가 아니지. 그 자는 나를 한중에다 붙잡아두려는 속셈이네. 우리의 주력부대가 한중 깊숙이 들어가 있는 동안 손권이나 양양의 관우가 중원을 넘본다면 그 때는 어찌할 텐가?”

“아―!”

유엽은 비로소 조조가 염려하는 바를 깨달았다.

“이제야 알겠는가? 아마도 조만간 번성이나 합비에서 구원 요청이 올 것일세. 그 때는 발빠르게 움직일 필요가 있지. 공명이 속임수를 잘 쓴다고는 하지만 두 번은 당할 수가 없지 않은가? 유비의 이번 가맹관 진격은 허장성세일 뿐이네. 그는 결코 한중 공략에 적극적이지 않을 것이네. 허장성세에는 허장성세로 맞대응하는 수밖에.”

조조는 빙긋 웃었다. 조심도 지나치면 병이 된다고 하던가. 오판이라면 오판이었으나 조조는 자신의 판단을 굳게 믿었다.

“전하의 묘산(妙算)은 실로 따를 수가 없습니다.”

유엽은 유엽대로 조조의 말을 그럴 듯하게 여겼다. 더 이상 한중 진주를 권하지 않았다.

조조는 남정으로 내려가는 대신 정군산을 지키고 있는 하후연에게 독려 편지를 써서 보냈다.

나는 지금 대군과 더불어 동관에 머물러 있다. 여기서 먼저 그대의 묘한 재주를 구경하겠노라.


공명의 선택 (276)…제24장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5)


‘이제 됐다.’

조조가 동관에서 더 이상 남하하지 않는다는 첩보에 공명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는 신속히 움직였다.

먼저 법정과 황충을 불러 영을 내렸다.

―효직은 황 장군과 더불어 정군산을 취하십시오. 그 곳만 점령한다면 한중은 이미 우리 손에 들어온 것이나 다름없소.

다음에는 조운을 불러 명했다.

―장군은 일지군마를 거느리고 샛길로 나가 황충 장군을 도우시오. 황 장군이 이기면 출전할 필요가 없고, 위급에 빠지거든 즉시 도와주시오.

공명은 다시 유봉, 맹달을 불렀다.

―그대들은 산 속 험한 곳에 매복하여 기치창검을 많이 세우시오. 되도록 우리 군사가 많은 것처럼 꾸미기만 하면 되오.

마지막으로 유비에게 말했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풀리면 주공께서는 장비, 위연을 거느리고 즉시 남정으로 진격하여 그 곳을 손에 넣으십시오.

모든 장수들이 공명이 지시한 대로 제각기 군사를 이끌고 가맹관을 떠났다.

법정과 황충은 정군산 어귀에 당도했다. 법정은 우선 주변 지형을 살폈다. 산 속으로 드는 길이 험하고 거칠어 보통 방법으로는 적을 물리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더욱이 상대는 조조가 자랑하는 맹장 하후연이 아닌가.

법정은 황충을 불러 한 곳을 가리키며 자신의 계획을 밝혔다.

“정군산 서편에 높은 산 하나가 있습니다. 저 산만 빼앗는다면 하후연의 진채를 내려다볼 수 있어 그 허실을 훤히 살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제가 별동대를 뽑아 저 산을 취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 날이었다. 황충은 군사 1천 명을 뽑아 북과 징을 울리며 정군산 서편의 산꼭대기를 향해 돌격했다.

그 산의 수비대장은 하후연의 부장 두습(杜襲)이었다. 그는 황충을 맞아 싸우려고 나가다가 문득 골짜기 숲과 바위마다 꽂혀 있는 기치창검을 발견하였다. 어마어마한 수였다. 공명의 지시를 받은 유봉과 맹달의 허병(虛兵)이었으나 두습이 그러한 사실을 알 리 없었다. 자신의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퇴각하라!”

이렇게 명하고는 앞장서서 하후연이 있는 정군산 진채를 향해 달아났다.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서편 산을 차지하자 법정은 크게 기뻐했다. 즉시 다음 계책을 내었다.

“하후연은 반드시 이 산을 빼앗으러 올 것입니다. 장군께서는 산중턱을 지키십시오. 나는 산꼭대기에서 기다리다가 흰 기와 붉은 기로 신호를 하겠습니다. 제가 흰 기를 흔들면 하후연이 공격을 해와도 절대로 나가 싸우지 마십시오. 반대로 붉은 기를 흔들면 하후연이 공격하지 않더라도 곧장 산 아래로 달려나가 적병을 무찌르십시오. 이른바 이일대로(以逸待勞=편히 쉬면서 적이 지치기를 기다림)의 계책입니다.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습니다.”

황충은 법정이 시키는 대로 산중턱에 군사를 배치했다.

아니나다를까. 하후연은 적병이 높은 산에 올라 자신의 진채를 내려다보자 마음이 급해졌다. 즉시 군사를 몰고 서편 산을 향해 돌진해나갔다.
그러나 아무리 하후연이 싸움을 걸어와도 황충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법정이 산마루에 흰 기를 꽂아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한나절이 지났다. 하후연의 군사들은 차츰 마음이 풀어지기 시작했다. 하후연 자신도 맥이 빠졌다. 모두들 말에서 내려 휴식을 취했다.
그것을 본 법정이 흰 기를 내리고 붉은 기를 흔들어대었다. 황충은 기다렸다는 듯이 군사를 휘몰아 산 아래로 달려내려갔다. 북소리, 피리소리, 함성소리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듯하였다.

황충이 맨 앞에서 달렸다. 흰 수염이 바람에 휘날렸다. 질풍노도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인가.

“어―!”

하는 사이에 황충은 하후연의 눈앞에까지 당도해 있었다.

어떻게 손을 써볼 틈도 없었다. 하후연은 하얀 빛줄기 하나를 보았다. 그것이 자신을 향해 뿌려진다고 생각하는 순간, 그의 몸은 이미 두 동강이 나 있었다. 30년을 넘게 조조를 따라다니며 수없이 전쟁터를 누빈 역전의 명장치고는 어이없는 최후였다.

  
공명의 선택 (277)…제24장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6)


―하후연 장군이 전사하셨습니다.

―정군산이 촉병에게 함락되었습니다.

잇단 급보가 동관의 조조에게 전해졌다. 조조는 대경실색했다. 보고가 믿어지지 않는 모양이었다.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목을 놓아 울기 시작했다.

“내가 하후연을 죽였구나!”

최소한 한두 달은 하후연이 버텨줄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만한 능력이 있는 장수였다. 그래서 40만 대군을 몰고 와놓고도 정군산에 원군을 보내지 않았다. 그런데 그것이 하후연을 잃는 계기가 될 줄이야.

“맹세코 하후연의 원수를 갚아주리라!”

조조는 전군에 동원령을 내렸다. 그 때 또 하나의 급보가 날아들었다.

―양양성의 관우가 번성을 공격하기 시작했답니다.

예상했던 일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자신이 동관에 주둔하고 있지 않았던가. 여느 때 같았으면 회심의 미소를 지을 조조였으나 지금은 때가 좋지 않았다. 당장 한중의 일이 급박했다.

“이놈……!”

유비를 향한 것인지 공명을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욕설이 조조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최근 들어 보기 드문 분노였다.

그러나 어쩌랴. 조조는 10만 군사를 떼어 급히 번성으로 보냈다. 10만은 동관에 그대로 남겨두었다. 손권의 합비성 침공에 대비해서였다.

40만 대병 중 20만 군사만 이끌고 남정 부근의 한수로 향했다. 그 곳이 떨어지면 한중은 끝장이다. 선봉에는 서황을 내세웠다.

한수 가에 진을 친 조조는 패잔병을 거느리고 나타난 장합과 두습에게 물었다.

“군량은 얼마나 있는가?”

장합이 대답했다.

“천탕산·정군산·미창산 등에 나누어 보관하고 있었는데, 천탕산·정군산을 빼앗기는 바람에 지금은 미창산에 쌓아둔 것밖에 남아 있지 않습니다.”

“미창산은 정군산과 접해 있는 산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황충이 미창산의 양곡을 그대로 놓아둘 리 없다. 당장 미창산 주변에 복병을 숨겨두고 그 곳의 군량과 마초를 북산으로 옮기도록!”

분노한 가운데서도 조조는 냉정함을 잃지 않고 지시했다.

정군산을 점령한 유비 군은 사기가 하늘을 찌를 듯 높았다. 법정과 황충은 며칠간 그 곳에 머물며 군사들을 쉬게 했다. 그 때 부장 장저가 달려와 보고했다.

“조조가 하후연의 원수를 갚는다며 20만 대병을 거느리고 한수에 당도했습니다. 또한 장합이 지금 미창산에 있는 군량을 북산 기슭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그 같은 보고를 들은 법정이 눈을 빛내며 황충에게 말했다.

“조조가 20만 대병을 거느리고 왔으나 더 이상 남하하지 않는 것은 군량이 충분치가 못하기 때문일 것이오. 만일 장군께서 미창산의 양곡을 모조리 불살라버린다면 조조는 더 싸울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좋소이다. 이 기회에 조조의 예기를 완전히 꺾어버리겠소.”

하후연의 목을 벤 이후 황충은 기세가 높았다. 조조 군을 깔보는 마음까지 생겼다. 그는 곧 장저와 함께 군사를 이끌고 미창산으로 향했다.

그들이 양곡 창고 가까이 접근했을 때였다. 별안간 양 옆 산기슭에서 함성소리가 터져나오더니 조조의 군사들이 벌떼처럼 달려나왔다.

“이놈, 황충은 목을 내놓아라!”

한 장수가 눈에 불을 켜고 덤벼들었다. 여러 차례 패한 바 있는 장합이었다. 예기치 않은 복병에 황충은 크게 당황했으나 장합을 보자 이내 자신감을 되찾았다. 곧 그와 어울려 싸움을 벌였다.

그런데 그것이 실책이었다. 이미 조조는 그 주변에 많은 복병을 숨겨두고 있었다. 장합에 이어 나타난 장수는 서황이었다. 전세는 금방 황충에게 불리해졌다. 이미 달아나기에는 너무 늦었다. 겨우 한 몸 보존하기에 급급해 있는 중에 또 문빙이 나타나 황충의 군사들을 겹겹이 에워쌌다.

‘아, 이제는 글렀구나.’

황충은 더 이상 빠져나갈 수 없음을 깨닫고 모든 것을 포기했다. 오로지 치욕스런 죽음을 당하지 않으려는 결의만이 그를 버티게 해주고 있을 뿐이었다.


공명의 선택 (278)…제24장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7)


이번 싸움에서의 조운의 역할은 황충의 뒤를 봐주는 일이었다.

―황 장군이 이기면 출전할 필요가 없고, 어려움에 빠지거든 도와주시오.

가맹관을 떠나오기 전 그는 이런 밀명을 공명에게서 받았다. 마음이 별로 탐탁지 않았다. 중요한 싸움에서 자신만이 보잘것없는 역할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군령은 군령이었다. 줄곧 황충의 뒤를 따르며 그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이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미창산에서 30여 리 떨어진 곳에 진채를 세우고 양곡을 불태우러 가는 황충의 뒤를 지켜보았다. 그런데 그가 산 속으로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어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싸움은 점점 더 치열해지는 듯했다.

‘황 장군이 위험하다.’

이런 직감이 들었다. 부장 장익(張翼)을 불러 영을 내렸다.

“그대는 진채를 단단히 지키고 있으시오. 만약에 대비하여 궁노수들을 진채 벽 뒤에 숨겨두도록! 나는 황 장군을 도와주러 가겠소.”

조운은 말에 올라타자마자 장창을 비껴들고 바람처럼 달려가기 시작했다. 3천 군마가 그 뒤를 따랐다.

과연 미창산 골짜기에서는 큰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보이는 것은 모두 조조의 군사들뿐 황충과 그 군사들의 모습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마음이 급해졌다.

그 때 옆 숲 속에서 한떼의 군마가 쏟아져 나오며 조운에게로 덤벼들었다. 조조 군의 장수 모용렬(慕容烈)이었다. 조운은 창을 번쩍 쳐들었다. 창끝에서 하얀빛이 뿜어져 나왔다. 덤벼들던 모용렬은 영문도 모르고 창에 꿰어 말에서 떨어져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 복병들은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

조운은 계속해서 적진 깊숙이 들어갔다. 또 한 장수가 앞을 가로막았다.

“황충을 구하러 온 모양이다만, 어림도 없다. 네놈도 미창산에다 묻어주마!”

초병(焦炳)이라는 장수였다.

“황 장군은 어디 계시냐?”

“아마도 지금쯤 황천길을 가고 있을 게다.”

초병이 이죽거렸다. 조운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다시 한 번 창끝이 번쩍했다. 초병은 허깨비처럼 떨어져 죽었다.

계속해서 달렸다. 산은 점점 깊어졌다. 창칼 부딪치는 소리가 가깝게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숲 저편에서 장합·서황·문빙의 군사들이 겹겹이 에워싸고 황충을 공격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황충은 이미 지친 듯 칼을 제대로 놀리지 못하고 있었다.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었다.

“여기 조운이 왔도다!”

조운은 산이 떠나갈 듯 고함을 질렀다. 피가 끓었다. 눈에서는 퍼런빛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황충을 향해 일직선으로 달렸다.

“비켜라!”

앞을 가로막는 적병들이 가랑잎처럼 흩어져 날렸다. 그의 창법은 사람의 솜씨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신묘했다. 조운의 몸은 보이지 않고 은색의 찬란한 빛덩어리만이 한줄기 선을 그으며 내달았다. 몸이 창이요, 창이 몸인 듯했다. 겨울산 골짜기로 떨어지는 눈꽃 같기도 했다.

조운의 이 같은 공격에 조조 군은 크게 어지러워졌다. 장합과 서황은 조운의 솜씨에 간담이 서늘해졌다. 감히 맞서 싸울 생각을 못 하고 주춤했다.

조운은 마침내 포위망을 뚫었다. 황충 곁으로 다가갔다.

“저의 뒤를 따르십시오.”

“아, 자룡!”

놀란 황충은 자신도 모르게 조운을 불렀다. 전혀 뜻밖의 구원이었다. 눈에
눈물이 글썽일 정도였다.

황충을 구한 조운은 방향을 틀었다. 지금까지 달려왔던 길을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적병들이 겹겹이 에워쌌지만 그가 달리는 곳에는 모두 허수아비뿐이었다. 이미 혼이 나간 조조의 군사들이었다. 감히 앞을 가로막을 생각을 하지 못했다. 저절로 길이 뚫렸다. 그 사이를 조운은 황충과 함께 경주하듯 달려나갔다.



공명의 선택 (279)…제24장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8)


그 때 조조는 높은 언덕에 올라 미창산 골짜기를 내려다보며 싸움을 지휘하고 있었다. 황충의 급급해하는 모습이 통쾌했다.

‘이제야 하후연의 원수를 갚는구나.’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는데 골짜기 입구가 크게 어지러워졌다. 한줄기 은빛이 무인지경 달리듯 황충을 향해 내닫고 있는 게 보였다.

“저 장수가 누구냐?”

곁에 있는 부하에게 물었다.

“유비의 수하 장수 조운인 듯싶습니다.”

“조운?”

뇌리를 스치는 게 있었다. 당양의 장판벌이었다. 그 때도 조운은 그 넓은 들판을 무인지경으로 달려 유비의 아들 아두를 구해냈다. 분노보다는 탄복하는 마음이 일었었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 때의 그 기상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조조는 잠시 조운의 귀신 같은 무용에 넋을 빼앗겼다.

“적장이지만 참으로 훌륭하구나.”

그 무렵, 조운은 황충을 구해 완전히 미창산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조운은 무사히 진채에 다다랐다. 그러나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황충과 더불어 긴 숨을 내쉬는데 저 멀리로 먼지가 까맣게 일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조조의 추격군이 분명했다. 모두들 놀라는 중에 조운이 부장 장익에게 영을 내렸다.

“진채 문을 활짝 열어놓아라. 지난날 장판에서는 혼자몸으로 조조의 80만 대군을 상대했는데, 지금은 장수도 있고 군사도 있다. 두려울 게 무엇이 있단 말이냐?”

그러고는 궁노수를 진채 밖 참호 속에 숨겨두고 영문 안의 기치창검을 모두 숨겨 텅 빈 듯하게 한 후, 혼자 말을 타고 진문 앞에 나가 섰다.
그 곳에 맨 먼저 당도한 추격군은 서황과 장합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날은 저물고 있는데 진채 안은 기치창검 하나 없이 조용했고, 다만 진문 앞에 조운만이 창 한 자루를 비껴든 채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모습이 여간 늠름하지 않았다. 퍼뜩 의심이 일었다.

―유인계인가, 허장성세인가.

서황과 장합은 의심하는 마음이 들어 감히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 때 조조의 본대가 그 곳에 도착했다. 조조도 진채 앞에 서 있는 필마단기의 조운을 보았다. 조조는 차갑게 웃으며 단정했다.

“저것은 허장성세다. 조운의 무용은 뛰어나지만 지략은 그렇지가 못하구나. 어찌 그런 얕은 수로 나의 눈을 속일 수 있겠는가?”

그러고는 전군에 공격 명령을 내렸다.

군사들이 크게 함성을 지르며 조운을 향해 덮쳐들었다. 점점 거리가 가까워졌다. 그런데도 조운은 꿈쩍도 않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두 눈을 부릅뜬 모습이었다.

앞장서서 달려가던 서황과 장합은 자신도 모르게 주춤했다.

그 때였다. 창을 든 조운의 손이 번쩍 올라갔다. 그것을 신호로 참호 속에 매복해 있던 궁노수들이 일제히 화살과 쇠뇌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두려움에 떨고 있던 조조 군이었다. 허장성세인 줄만 알았는데 난데없이 화살과 쇠뇌가 쏟아지자 기겁을 하였다. 게다가 날까지 어두웠다. 촉병의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서황과 장합은 혼비백산하였다.

놀란 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가장 기겁한 사람은 조조였다. 자신의 판단이 틀릴 줄은 몰랐다.

“퇴각하라!”

조조는 앞뒤 생각할 것 없다는 듯 말머리를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등뒤에서 북과 함성소리가 요란하게 일었다. 갑작스런 퇴각 명령에 조조의 군사들은 더욱 겁을 먹었다. 어둠 속에서 자기네들끼리 서로 밟고 차고 쓰러뜨리며 목숨을 구하여 달아나기에 바빴다.

조조는 미창산을 바라보고 달렸다. 막 초입으로 들어서려 하는데, 골짜기 안에서 한떼의 군마가 쏟아져 나왔다.

“조조는 달아나지 마라!”

이미 미창산을 점령한 유봉과 맹달이었다.

조조는 하는 수 없이 미창산을 버리고 조홍이 진을 치고 있는 남정을 향해 달아났다.


공명의 선택 (280)…제24장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9)


―천탕산·정군산·미창산을 모두 점령했습니다.

이 같은 보고에 유비와 공명은 가맹관을 떠나 정군산으로 사령부를 옮겼다. 대승이었다. 소와 돼지를 잡아 군사들을 배불리 먹였다. 휴식이었다.

유비 군의 사기는 높았다.

반면 조조는 남정에 머물며 전열을 가다듬었다. 패배의 원인을 생각해보았다.

‘의심이 너무 많았다.’

지나치게 공명을 의식한 것이 장수와 군사들의 예기를 꺾어놓았다. 유비의 한중 공략은 허세일 뿐이다,라고 판단했었다.

―주력은 중원일 것이다.

공명이라면 능히 그럴 만한 자다,라고 단정한 것이 가장 큰 실책이었다.

‘사마중달을 데리고 왔더라면……?’

이런 생각이 언뜻 스쳤다. 그러나 이내 고개를 저었다.

이상하게 마음에 들지 않는 자였다. 예전의 조조 같았으면 사마의를 데리고 왔을 것이다. 출신 가문이나 명성보다는 능력 위주의 인사 정책을 편 조조였다. 출신이 미미하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자라도 뛰어난 재능을 보이면 과감하게 발탁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조조의 인재 등용관이 바뀌었다. 싫으면 곁에 두기가 싫었다.

‘나이가 들었음인가.’

위왕이라는 지위와 위엄이 조조를 그렇게 변화시켰는지도 몰랐다.

한동안 소강 상태가 이어졌다. 유비는 점령 지역에 대한 민심 수습이 필요했고, 조조는 군량을 확보해두어야 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조조였다. 남정에서 나와 야곡(斜谷) 방면으로 진출한 것이다. 야곡은 무공수(武功水)를 따라 형성된 긴 계곡으로 한중에서 장안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길이었다.

“한수 일대를 차지하여 정군산을 고립시키자는 속셈이 분명합니다.”

공명은 이렇게 단정했다. 빙긋 웃고 있었다. 이미 대응책을 마련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유비였다. 그런데도 그는 물었다.

“좋은 계책이라도 있습니까?”

불안해서가 아니라 여유에서였다. 즐기고 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예전의 궁색하던 시절의 조급함이라든가 초조함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연륜인가, 관록인가. 아니면 기반을 다진 자의 느긋함인가.

“천성은 좀처럼 변하지 않는 법이지요.”

“무슨 소리요?”

“조조는 본시 의심을 잘 하는 사람입니다. 이번에도 또 한 번 조조의 의심을 건드려볼 작정입니다.”

그러고는 곧 전군에 영을 내려 한수 서편으로 나갔다.

군사들이 진채를 세우는 동안 공명은 주변 지형을 둘러보았다. 한수 상류에 작은 토산이 하나 있었다. 공명은 그 토산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조운을 불러 은밀히 지시했다.

“군사 5백을 거느리고 저 토산에 매복해 있으시오. 그러다가 내가 진채 안에서 방포(放砲)하면 북과 징을 쳐서 적을 놀라게 하되, 나가 싸우지는 마십시오.”

다음 날 밤이었다. 공명은 조조 군의 영채에 불이 꺼지는 것을 기다렸다가 크게 포소리를 내었다. 이와 때를 맞추어 토산에 숨어 있던 조운은 북과 징을 치고 피리를 요란하게 불어댔다.




공명의 선택 (281)…제24장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10)


놀란 것은 조조의 군사들이었다. 촉병이 기습해오는 줄 알고 싸움 태세를 갖추고 뛰쳐나왔다. 그러나 촉병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제야 속은 줄 안 그들은 다시 들어가 갑옷과 투구를 벗었다. 막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또다시 포소리에 이어 북과 징과 피리소리가 산골을 진동했다. 또 싸움 태세를 갖추고 뛰쳐나왔다.

이런 일이 연 사흘이나 계속되었다. 피곤도 피곤이려니와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장수와 군사들만이 아니었다. 조조도 공명의 뜻을 알 수가 없었다.

‘무슨 수작일까?’

더 이상 산골짜기에 진을 칠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진채를 뽑아 한수 동편 30리 밖 넓은 평야로 옮겼다.

이를 본 공명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유비에게 말했다.

“조조가 병법을 자신한다고는 하지만 휼계(譎計)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하는 모양입니다.”

휼계가 무엇인가. 속임수가 아닌가. 유비 군은 싸움 한 번 하지 않고 30리를 진격하였다. 한수를 건너 진을 쳤다. 배수진(背水陣)이었다.

유비가 의아해했다.

“배수진은 병법에서 금하는 것 아니오?”

“그렇지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배수진은 금물이지요. 주공께서도 의아하게 여기고 있으니, 조조 또한 우리의 배수진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겠지요.”

이렇게 말하고 공명은 유비의 귀에다 대고 낮은 목소리로 무슨 말인가를 속삭였다. 듣고 난 유비는 무릎을 치며 기뻐했다.

다음 날, 유비는 조조에게 편지를 보내 싸움을 청했다. 조조는 공명의 속임수가 있을까 두려웠으나 무작정 피할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조심스런 마음으로 싸움에 응했다.

유비 측에서는 유봉이 나왔고, 조조는 서황을 내보냈다. 두 장수는 한데 어우러져 싸웠다.

그러나 유봉은 애초부터 서황의 적수로는 부족했음인가. 10합을 넘기면서부터 손발이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유비가 징을 쳐 유봉을 불러들였다.

그 기회를 어찌 서황이 놓칠 것인가. 그는 달아나는 유봉을 쫓았다.
유비 군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조조도 그것을 보았다. 거짓 패배가 아닌 것 같았다. 재빨리 북을 쳐 영을 내렸다.

“유비를 사로잡는 자는 계급을 막론하고 서천왕으로 삼으리라!”

이 소리에 조조 군의 장졸들은 함성을 지르며 유비 군을 향해 성난 파도처럼 덮쳐갔다. 반대로 유비 군은 양곡이며 말과 병장기 등을 길에 버리고 한수를 바라보고 달아났다.

그 때 조조는 높은 언덕 위에 올라 그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수상쩍다!”

조조가 고개를 갸웃 흔들었다. 눈에 의심의 빛이 가득했다. 의자에서 일어나 친히 징채를 잡았다. 군사들을 돌리기 위해서였다. 하후돈이 옆에 있다가 물었다.

“우리 군사들이 유비를 잡아들일 판인데, 어찌하여 군사를 거두시려 하십니까?”

“어리석구나. 유비를 잡으려다 오히려 공명의 꾀에 빠지고 말 것이다.”

“어찌하여 그렇습니까?”

“두 가지 점이 수상하다. 하나는 유비가 강을 등지고 진을 쳤다는 것이다. 뭔가 노림수가 있음에 틀림없다. 다른 하나는 싸워보지도 않고 말과 병장기를 버리고 달아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대답하고는 징을 치며 크게 외쳤다.

“길가에 떨어진 것을 줍는 자는 목을 베리라! 어서 빨리 물러나라.”
그러나 어찌 알았으랴. 그러한 명령 자체가 공명이 노리고 있던 것일 줄이야.

조조의 군사들이 방향을 틀어 물러나려 할 때였다. 유비의 진채에 있던 공명이 기를 번쩍 들어올렸다.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유비가 친히 군사를 거느린 채 가운데로 치고 나갔고, 왼편에서는 황충이, 오른편에서는 조운이 조조의 군사들을 덮쳐갔다.

여느 때 같았으면 침착하게 대응할 조조였겠으나, 그 때는 이미 공명의 꾀에 휘말려들었다고 지레 판단했다. 곧장 말에 올라 남정을 바라보고 달아나기 시작했다. 하후돈이 바싹 그 뒤를 따르며 호위했다. 대장이 이러하니 그 장졸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서로들 목숨을 구해 달아나기에 바빴다.

조조는 남정으로 향하는 도중 조홍과 그 군사들을 만났다. 깜짝 놀라 물었다.

“네가 여기 웬일이냐?”

“장비와 위연이 쳐들어오는 바람에 남정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조홍이 울며 대답했다.

조조는 넋이 나간 듯했다. 남정을 빼앗겼다는 것은 한중을 모두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우, 우!”

울음인가, 탄식인가. 조조의 입에서는 의미를 알 수 없는 괴성이 터져나왔다.

“양평관으로 가시지요.”

하후돈이 말했다. 마지막 방어선이었다.


공명의 선택 (282)…제24장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11)


양평관은 양주(凉州)·옹주(雍州=지금의 섬서성, 감숙성 일대)로 통하는 관문이다. 한중의 끝인 셈이었다. 교통상으로 요충지일 뿐 아니라 군사상으로도 가히 경계를 이룰 만한 곳이었다.

‘이제 한 곳만 남았다.’

공명의 얼굴은 상기되어 있었다. 양평관이 요새라고는 하지만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산악지대와 마찬가지로 양평관도 자체적으로 군량을 조달할 수가 없
었다.

―그 수송로를 끊으면……?

공명의 머릿속은 바삐 움직였다. 곧 장비와 위연을 불렀다.

“두 분께서는 두 길로 군사를 나누어 양평관 뒤편의 길목에 숨어 있다가 조조에게로 군량이 가지 못하도록 방해하십시오.”

황충과 조운에게도 영을 내렸다.

“두 분은 양평관을 에워싸고 있는 사방 산에다 불을 지르십시오.”

연전연패―.

조조는 약이 바싹 올라 있었다. 공명에게 농락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버릴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기어코 조조의 저력을 보여주리라.’

세작들을 풀어 유비 군의 동태를 세밀히 살폈다.

―촉병들이 산 속의 샛길을 막고 나무를 모조리 불지르고 있습니다.

조조는 그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고개를 외로 틀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 때 또 다른 보고가 들어왔다.

―장비와 위연이 우리의 양곡 수레를 탈취해가려고 합니다.

조조는 비로소 공명이 노리는 바를 알았다. 그는 곧 용맹이 뛰어난 허저를 불러 양곡을 싣고 오는 수레를 호위하게 했다. 그런데 일이 잘못되려고 했음인가. 양곡 수레를 호위하며 돌아오던 도중 허저가 술을 잔뜩 마시게 되었다. 호기롭게 밤길을 갔다. 취한 기분에 두려울 것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것을 장비와 위연이 그냥 보낼 리 없었다. 허저 일행이 험한 산길에 이르렀을 때 군사를 몰고 쳐내려갔다.

달 밝은 밤이었다. 그 달빛 아래 장비와 허저는 한바탕 어우러져 싸움을 벌였다. 그러나 허저는 워낙 취해 있었다. 손발이 어지러웠다. 헛손질을 하다가 장비의 창에 어깨를 찔렸다.

겨우 목숨을 구해 달아나기는 했으나, 양곡을 실은 수레를 몽땅 빼앗기고 말았다.

조조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허저의 실수에 대해서가 아니었다. 자신의 앞길을 끈질기게 가로막으며 조롱과 냉소를 보내고 있는 유비에 대한 분노였다.

“이놈……!”

상처 입은 맹수의 낮은 울부짖음 같은 소리가 조조의 입에서 새어나오고 있었다.

다음 날, 조조는 친히 대군을 몰고 양평관을 나섰다. 유비도 기다렸다는 듯이 마주 쳐왔다.

한중 쟁탈전 이후 유비와 조조 간의 두 번째 맞대결이었다.

조조는 이미 마음의 평정을 잃고 있었다. 그는 유비를 보자 진문 앞으로 나가 큰 소리로 욕을 퍼부었다.

“짚신 팔던 유비야, 네가 나에게 이럴 수가 있단 말이냐?”

그러나 유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를 젖혀 통쾌하다는 듯 웃어대기만 했다.

“하하하하……!”

그것이 조조의 울화에 더욱 불을 질렀다.

“서황은 어디 있는가? 어서 저 자의 목을 가져오너라!”

조조의 영이 채 떨어지기도 전에 서황이 칼을 휘두르며 유비를 향해 달려나갔다.

유비 진영에서는 유비의 양아들 유봉이 말에 박차를 가했다. 두 장수는 한데 어우러져 싸웠다. 그러나 유봉은 이미 진문을 나서기 전 공명에게서 들은 말이 있었다. 서너 차례 칼을 부딪치더니 이내 말머리를 돌려 도망치기 시작했다.

서황은 그러한 유봉의 뒤를 쫓았다. 조조가 대군을 몰아 그 뒤를 따랐다. 어마어마한 기세였다.

그런데 유비의 진채 앞까지 거의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사면팔방에서 일성포향이 나더니 북소리와 피리소리가 천지를 진동할 듯하였다. 순간 조조는 냉정을 되찾았다.

‘공명의 속임수에 또 빠졌구나.’

이렇게 생각했다. 급하게 영을 내렸다.

“말머리를 돌려라!”

하지만 조조는 알지 못했다. 속임수에 빠졌다고 생각한 그 순간이 바로 공명의 계략에 빠져드는 순간이었음을 말이다.

기세 좋게 밀고 내려가던 조조의 군사들이었다. 갑작스런 퇴각 명령에 선두는 돌아섰지만, 후대는 그대로 밀고 나갔다. 같은 편끼리 앞뒤가 충돌했다. 대혼란이 일었다. 소리만 요란할 뿐 사방에서는 개미새-끼 한 마리 보이지 않는데도 그들은 적으로부터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서로가 서로를 짓밟고 밀고 죽이고 하였다.

거기에다 유비 군의 진문이 활짝 열리며 촉병이 새카맣게 덮쳐왔다. 조조는 제 몸 하나 돌보기에 급급했다. 겨우 양평관으로 쫓겨와 숨을 돌리려고 하는데, 별안간 동문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공명의 선택 (283)…제24장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12)


“동문으로 조운이 쳐들어오고 있습니다.”

조조는 황급했다. 급보는 잇따르고 있었다.

―서문 쪽에서 함성소리가 크게 일고 있습니다!

―북문에서 북소리가 요란합니다.

조조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미 사방에 촉병이 가득하다고 생각했다. 잘못하면 산 채로 붙들리는 욕을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스쳐갔다.

“야곡을 따라 퇴각하라!”

결국 조조는 양평관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하후돈을 호위 장수로 삼아 북으로 달렸다.

―한중은 이제 빼앗겼다.

중국의 서북 지역은 험한 산악지대였지만 강도 많았다. 농서(  西)에서 동쪽을 따라 장안 쪽으로 흐르는 강을 위수(渭水)라고 했다. 그 위수가 오장원(五丈原) 부근에서 무공수(武功水)와 합류한다. 무공수는 정군산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물줄기이다. 양 옆으로 길고 긴 계곡을 형성하고 있다. 그 계곡이 야곡이다.

그 야곡 북쪽에다 조조는 진채를 내렸다. 그 곳에서 전력을 가다듬어 지금까지의 패배를 단숨에 만회할 작정이었다. 군사는 아직 10여 만이 남아 있다. 유비 군과 능히 싸울 만한 군세였다. 장안으로부터 부족한 군량이 수송되었다.

그런데 때가 나빴다. 여름철이었다.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진채를 높은 지대로 옮겼다. 비가 그치자 전염병이 돌았다. 군사들은 쓰러지고 사기는 떨어져갔다. 탈영병이 속출했다. 그러는 사이 또 한 달이 지나갔다.

―유비가 마초를 내세워 양평관을 지키고 있답니다.

조조 자신 맥이 빠졌다. 더 이상 싸울 마음이 일지 않았다.

업성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한 얼굴이 자꾸 그의 눈앞에 어른거렸다. 비웃음을 머금고 있는 유비의 얼굴이었다.

조조는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닭국이 나왔다. 그 국 속에 계륵(鷄肋=닭의 갈비) 한 덩어리가 떠 있었다. 무심코 들어서 먹으려 했으나 먹을 것이 없었다. 빈 그릇에 버리려 하니 덩어리가 컸다. 버리기가 아까웠다.

―버릴까, 먹을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조조는 쓴웃음을 지었다.

‘이번 한중 싸움이 꼭 이 계륵과 같구나.’

그 때 하후돈이 들어왔다.

“오늘 밤 군호(軍號)를 무어라 정하면 좋겠습니까?”

조조의 머릿속은 계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계륵, 계륵.”

손에 들고 있는 닭갈비를 보고 중얼거린 말이었으나 하후돈이 어찌 그것을 알랴. 자신의 군막으로 돌아가 아장들을 불러놓고 군호를 전달했다.

“오늘 밤 군호는 계륵이다.”

여기까지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행군 주부(行軍主簿) 양수(楊修)가 일을 저질렀다.

하후돈에게서 군호를 전달받은 양수는 자기 처소로 돌아가 아장들과 군사들에게 철군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지쳐 있던 군사들은 신이 나서 짐을 싸기 시작했다.

―고향으로 돌아간다.

이러한 소문이 삽시간에 전 군사들에게 퍼졌다. 이 소식을 들은 하후돈이 깜짝 놀라 양수를 불러 물었다.

“그대는 어찌하여 짐을 싸라고 지시했소?”

양수가 소리 없이 웃으며 대답했다.

“위왕께서 오늘 밤 군호를 ‘계륵’으로 정한 것은 곧 철군할 뜻을 품고 계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계륵이 무엇입니까? 먹자니 먹을 것이 없고, 버리자니 아깝습니다. 지금의 한중 싸움이 바로 그러합니다. 앞으로 나가자니 이길 가망이 없고, 물러가자니 촉병의 비웃음을 살까 두렵습니다. 위왕께서는 내일 회군 명령을 내리실 게 틀림없습니다. 미리 행장을 싸두면 혼란스럽지 않고 질서정연할 터이므로 그 같은 영을 내린 것입니다.”

그럴 듯한 해석이었다. 더욱이 양수는 당대 제일의 재사라고 불릴 만큼 학식과 기지가 뛰어난 사람이었다. 하후돈도 자신의 부하들에게 짐을 싸도록 명했다.

조조는 잠자리에 들기 전 습관대로 군영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한결같이 행장을 꾸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조조는 깜짝 놀라 하후돈을 불러 꾸짖듯 물었다.

“군사들이 짐을 싸고 있으니, 이게 웬일이냐? 누가 그러한 지시를 내렸는가?”

“주부 양수가 전하의 뜻을 짐작하고 저에게도 그렇게 하라고 일러주었습니다.”

조조는 다시 양수를 불러 추궁했다.

“너는 무슨 까닭으로 하후돈에게 그같이 터무니없는 소리를 하였느냐?”
양수가 태연히 대답했다.

“전하께서 계륵을 군호로 하라 하셨기에 그리한 것입니다.”

자신의 속마음을 읽힌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이 아니다. 더욱이 한중을 빼앗긴 직후의 조조로서는 신경이 극도로 예민해져 있었을 것이다. 양수의 해석을 들은 조조는 자신의 치부를 그대로 드러낸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철군하고 싶어도 철군할 수가 없게 되었다.

불 같은 화가 치밀었다.

“네 어찌 요망한 말을 지어내어 군사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느냐? 군법대로 시행함이 마땅하다.”

그러고는 양수를 끌어내 참수형에 처해버렸다. 이 때 양수의 나이 34세.



공명의 선택 (284)…제24장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13)


그러나 결국 조조는 얼마 후 한중을 포기하기로 결심했다.

―업성으로 돌아간다!

유비가 한중을 평정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건안 24년(219년) 5월의 일이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유비는 왕위에 올랐다.

예정된 순서였다. 유비의 왕위 추대는 공명과 법정에 의해 추진되었다. 유비는 세 번 사양했다. 그런 후 못 이기는 체 왕호를 받았다.
―한중왕(漢中王).

유비의 왕호였다. 서천왕(西川王)으로 하지 않고 한중왕으로 정한 것은 다분히 조조를 의식한 행위였다.

일찍이 한고조 유방은 항우를 격파하기 전에 한중왕에 올랐다. 그 근거지도 한중이었다. 그것을 인연으로 지금의 국호를 ‘한(漢)’으로 정한 것이 아니던가.

―같은 왕호, 같은 땅.

정통 후계자임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었다.

추대 의식 또한 한중의 면양(沔陽)에서 치렀다. 성대한 추대식이었다. 면류관과 옥새도 바쳤다. 유비는 문무관원의 하례를 받았다.

왕실의 격식도 갖췄다. 아들 유선(劉禪=아두)을 왕세자로 책봉했다. 익주 평정 후 새 아내로 맞아들인 오씨 부인을 한중왕후로 삼았다. 오씨 부인은 오일(吳壹)의 여동생이자, 전 익주목 유장의 동생인 유모(劉瑁)의 부인이었다. 일찍 남편을 잃고 미망인으로 지내던 중 법정의 중매로 유비의 새 부인이 되었던 것이다.

유비의 정청이던 좌장군부(府=막부)는 해체되고 조정(朝廷)으로 승격되었다. 서열에 따라 관직도 정해졌다.

왕의 스승격인 태부(太傅)에는 허정을 임명했고, 행정장관이라 할 수 있는 상서령(尙書令)에는 법정을 임명했다.

관우는 전장군(前將軍), 장비는 우장군(右將軍)에 임명되었다. 아울러 마초를 좌장군(左將軍)에 임명했고, 황충을 후장군(後將軍)에 올렸다. 조운에게는 익군장군(翊軍將軍)의 직위를 내렸다. 이들을 총칭할 때는 오호장군(五虎將軍)이라고 불렀다.

한중군의 태수에는 위연을 임명했다. 최전방 사령관의 임무도 부여했다.
공명은 여전히 군사장군. 그 스스로 새로운 직위를 사양했을 것이다. 그가 승상(丞相)의 지위에 오른 것은 2년 후의 일이다. 그러나 그의 임무는 변함 없이 군국의 모든 일을 총괄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유비는 조조와 더불어 한 왕국의 체제를 갖추었다.

수도는 성도―.

한중을 평정했다고는 하나 역시 그의 기반은 촉땅이었다. 그리하여 이 때부터 사가(史家)들은 유비의 왕국을 촉한(蜀漢), 혹은 촉(蜀)이라고 불렀다.

면양에서 즉위식을 마친 유비는 곧 수도인 성도로 돌아왔다. 떠날 때는 좌장군 겸 익주목이었으나 돌아올 때는 한중왕의 신분이었다. 성도의 백성들은 환호했다.

공명도 성도의 집으로 돌아왔다. 오랜만의 귀가였다. 아내 황용이 환한 얼굴로 맞아주었다.

긴장감이 풀어지고 마음이 편안해졌다.

동오의 건업으로 떠나갔던 황풍도 돌아와 있었다.

“자유 어르신께서 양자를 허락하셨습니다.”

이렇게 보고하는 황풍 곁에 한 젊은이가 서 있었다. 키가 크고 생김새도 훤칠했다. 그 젊은이가 공명에게 큰절을 올렸다.

“제갈교라 합니다.”
제갈근의 둘째아들이었다. 공명에게는 조카가 되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조카가 아니라 아들이었다.

“잘 자랐구나. 몇 살이냐?”

“열여섯 살입니다.”

눈에 총기가 흘렀다. 언행도 올발랐다. 공명은 흡족했다.

“열여섯이면 관례를 치렀겠구나. 자(字)가 무엇이냐?”

“중신(仲愼)입니다.”

“너는 이제 나의 맏아들이다. 중신이라는 자는 맞지 않다. 오늘부터는 백송(伯松)으로 부르겠다.”

“아버님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부족한 점이 있더라도 잘 가르쳐주십시오.”

“내가 한 가지만 너에게 당부하겠다.”

“삼가 귀를 씻고 듣겠습니다.”

“무릇 군자(君子)란 고요함으로 수신(修身)해야 하고, 검소함으로 덕을
쌓아야 한다. 맑고 깨끗하지 못하면 밝은 뜻을 세울 수 없고, 고요하고 안정되지 못하면 원대한 뜻을 이룰 수가 없느니라.”

“…….”

“모름지기 사람이란 끊임없이 배우고 끊임없이 실천해야 한다. 그것이 인생 아니겠느냐. 배울 때는 고요해야 한다. 사람의 모든 능력은 그 배움에서 얻어지는 것이다. 배움 없이는 결코 재능을 넓힐 수 없으며, 뜻한 바가 없이는 배움을 이룰 수가 없는 법이다. 이 점만 명심하고 잘 행하도록 하여라.”

“아버님의 말씀을 평생의 교훈으로 삼겠습니다.”

다음 날 공명의 집에서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 아들이 생긴 것을 축하하는 잔치였다.

  





三國志 張楊傳(퍼옴...) [2]
<공명의 선택> 23장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지고

Copyright 1999-2021 Zeroboard / skin by sigi
연구소 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이메일 무단수집 거부  |  고객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