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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공하후패(2001-01-20 20:12:52, Hit : 3871, Vote : 308
 <공명의 선택> 23장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지고
공명의 선택 (263)…제23장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지고(1)


성도의 성문이 활짝 열렸다.

유비가 맨 앞에 서서 성문을 통과했다. 그 뒤로 공명과 법정이 따랐다. 장비, 조운, 황충, 위연, 마초 등의 장수들도 모습을 드러냈다. 위풍당당한 모습들이었다. 백성들이 거리로 나와 환호했다. 무혈입성이었다.

―마침내 해냈다.

공명은 뿌듯했다. 가슴 속이 뜨거워지고 있었다. 눈앞이 흐릿했다.

‘숙부님……!’

제갈현의 얼굴이 스쳐갔다. 그에게 꿈을 심어주고, 이상과 현실의 차이를 가르쳐준 최초의 스승이었다. 양도 시절, 예장 시절, 융중 시절―어릴 적 일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사라져가고 있었다.

“감격입니까?”

공명의 눈에 맺힌 이슬방울을 보았는가. 수레 위에 나란히 앉아 있는 법정이 속삭이듯 물었다.

“꿈의 실현입니다.”

공명은 중얼거렸다.

‘천하삼분의 계’―융중 초려를 세 번씩이나 찾아왔던 유비에게 공명은 무릎을 꿇고 열심히 말했었다. 꿈을 먹고 살던 시절이었다. 그 꿈 하나가 이제 막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는 것이다.

“제게는 또 하나의 현실 변화일 뿐입니다.”

법정은 웃었다. 차가웠다.

차가운 웃음을 냉소라고 하던가. 공명을 향한 냉소는 아니었다. 거리로 나와 환호하는 서천 백성들을 향한 냉랭함이었다. 공명과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두고 있었다.

“또 하나의 시작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군사께서는 행복하신 분입니다.”

“…….”

“꿈이란 좋은 것이지요. 하지만 제게는 꿈이 없습니다. 언제나 현실만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꿈은 곧 희망입니다. 희망을 버리지 않는 한 사람은 늘 시작할 수 있습니다.”

“끝없는 욕심일 수도 있지 않을까요?”

“누구를 위한 것이냐에 따라 달라지겠지요.”

“군사께서는 서천 백성을 사랑할 자신이 있습니까?”

“사랑할 것입니다. 서천 백성뿐 아니라 천하의 모든 백성들을 사랑하려고 합니다.”

“천하의?”

“그렇습니다. 서천은 그 발판일 뿐입니다. 나의 가슴 속에는 또 하나의 꿈이 자라고 있습니다. 또 다른 시작이지요.”

법정은 고개를 갸웃했으나, 공명의 그 말은 진심이었다. 그는 어느 사이엔가 복받치는 환희를 억누르면서 서천 경영의 계획을 수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입성해서 공명이 가장 먼저 처리한 것은 유장에 관한 일이었다.

―한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습니다.

유장을 성도에서 떠나보내기로 했다. 반유비파에게 반란의 빌미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공명의 의지였다. 유장의 개인 재산과 진위장군(振威將軍)의 인수는 그대로 보장한다는 조건이었다.

유장도 순순히 응했다. 이송지는 형주의 공안(公安). 관우라면 그를 잘 감시하리라. 유장은 쓸쓸히 공안으로 떠나갔다.

다음으로 장수들과 병사들을 위로하는 잔치를 크게 베풀었다. 서천은 풍요로운 땅이었다. 금과 은, 그리고 비단과 곡물이 많았다. 주연을 베풀고 성 안에 있는 금과 은을 모두 병사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특히 공명·관우·장비·법정 등 네 명에게는 황금 5백 근, 은 1천 근, 동전 5천만 개, 비단 1천 필을 각기 내려주었다. 성대한 잔치였다.

그런 후에 유비를 좌장군 겸 익주목으로 추대했다. 그간 유비를 따르며 공을 세운 장수와 참모들에 대해 일일이 포상을 내렸고, 이어 형주와 파촉을 경영해나갈 새 정권의 막료들도 구성했다.

그 주요 얼굴을 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공명 군사장군(軍師將軍)

관우 탕구장군(蕩寇將軍) 겸 독형 주사(督荊州事)

장비 정원장군(征遠將軍) 겸 파서 태수(巴西太守)

조운 익군장군(翊軍將軍)

황충 토로장군(討虜將軍)

마초 평서장군(平西將軍)

위연 아문장군(牙門將軍)

미축 안한장군(安漢將軍)

손건 병충장군(秉忠將軍)

간옹 소덕장군(昭德將軍)

이적 좌장군 종사중랑

마량 좌장군 속관

유봉 부군중랑장(副軍中郞將)

요립 장사 태수

법정 양무장군 겸 촉군 태수

허정 좌장군 장사(長史)

엄안 전장군(前將軍)

진복 사우좨주(師友祭酒)

동화 장군중랑장(掌軍中郞將)

이엄 건위 태수(楗爲太守)

이회 공조서좌주부(功曹書佐主簿)

황권 편장군

팽양 익주 치중종사

비시 독군종사 겸 장가 태수


공명의 선택 (264)…제23장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지고(2)


공명은 약속대로 유장 정권의 막료들을 그대로 흡수했다. 그 중에는 반유비파로서 끝까지 항전을 주장하던 사람도 많았다.

유비와 공명은 오히려 그 사람들을 더 중시하여 관직을 내렸다. 절개를 높이 산 것이다. 황권, 동화 등이 바로 그런 인물들이었다.

가장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사람은 허정이었다. 나이 70이 넘은 명망 높은 선비였다. 인물비평가 허소의 사촌형이기도 한 허정은 유장이 항복하기 직전 유비가 보낸 사자와 공모하여 성도 탈출을 시도하다가 발각되어 감옥에 갇힌 바 있었다.

이 점이 오히려 유비와 공명에게는 탐탁지 않게 여겨졌다.

―이름만큼 내실이 없습니다. 허명만 높은 사람입니다.

공명은 허정에 이르러서 처음으로 고개를 내저었다.

공명의 사람 보는 눈은 거의 정확했다. 그는 나름대로 사람을 감별하는 방법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융중 시절부터 대체로 일곱 가지 방법으로 상대의 사람됨을 파악하곤 했다.

첫째, 옳고 그름을 물어 그 사람의 뜻을 살핀다.

둘째, 말로써 몰아붙여 그 변하는 모습을 살펴본다.

셋째, 계책을 물어 상대의 어리석음과 현명함을 파악한다.

넷째, 어려운 상황을 알리고 그 용감성을 살핀다.

다섯째, 술에 취하게 하여 그 품성을 알아본다.

여섯째, 이익을 제시하여 그 청렴성을 파악한다.

일곱째, 어떤 일을 기약하여 그 신용도를 알아본다.

이 중 허정은 네 번째 방법에 의하여 파악된 인물로서, 공명은 그의 명성이 헛된 것이었음을 직감했던 것이다.

―차라리 항전을 주장했더라면 명성이나 유지했을 것을……. 적합지 않은 사람이오.

유비도 공명의 의견에 동조했다. 누구보다도 헛된 명성을 싫어하는 그가 아니던가. 경박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법정의 의견은 조금 달랐다.

―확실히 허정은 헛된 이름만 높을 뿐 실질이 없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주공께서는 반드시 그를 써야 합니다.

―그것은 왜 그렇소?

유비가 물었다.

―허명도 명성입니다.

―허명도 명성이라……?

공명이 중얼거렸다.

―주공께서는 지금 막 대업을 세웠습니다. 천하 사람들에게 일일이 자세한 경위를 설명할 틈이 없습니다. 허정의 명성은 전국에 널리 퍼져 있습니다. 물론 헛된 명성입니다만, 그를 등용하지 않는다면 천하 사람들은 주공께서 어질고 현명한 선비를 쓰지 않는다고 비웃을 것입니다.

―그것은 억울한 일이지요.

유비가 대답했다.

―억울한 일일 뿐 아니라 인물이 모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허정은 그런 의미에서 꼭 필요한 인물입니다.

―그래서 허명도 명성이라고 한 것이오?
공명이 일그러지는 웃음을 삼키며 물었다.

―그렇소. 이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소.
법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철저한 현실론자다운 견해였다.

―알겠소이다. 그를 좌장군부(府)의 장사(長史)직에 임명하도록 하지요.

유비도 끝내 법정의 말을 따랐다. 쓴웃음을 짓고 있었다.

익주 평정 후 가장 시급한 문제는 내정 안정이었다. 그 중 법령 제정은 서천 백성들에게 가장 큰 관심거리였다.

공명과 법정이 그 일을 맡았다. 한 사람은 신정권의 대표요, 또 한 사람은 구정권의 대변자인 셈이었다. 두 사람은 성격과 사고에 많은 차이점을 보여주었다. 법정은 관대함을 기조로 한 덕치론(德治論)을 펼친 반면, 공명은 엄한 법치론(法治論)을 주장했다.

―지난날 한고조 유방은 법 3장으로 민심을 얻었습니다. 이제 주공께서는 외부에서 촉으로 들어와 나라를 다스리려 하고 있습니다. 당연히 법률을 간소하게 하고 엄한 형벌을 풀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법정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공명은 고개를 내저었다.

―한고조가 법을 간소화했던 것은 진시황이 워낙 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오히려 그 때와는 반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유장은 어둡고 나약해 덕으로 다스리기는커녕 법률의 위엄마저 세우지 못했습니다. 법은 공정해야 합니다. 죄를 지은 자는 벌하고, 공적이 있는 자에게는 상을 내려야 합니다. 이것이 정치의 기본입니다. 법률의 위엄을 세우지 않으면 나라가 어지러워집니다. 법을 세운 후 덕입니다.

공명의 법사상이었다. 법정은 법치론에 수긍했다.


공명의 선택 (265)…제23장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지고(3)


공명의 직위는 군사장군이었다. 군사중랑장에서 한 단계 승진했다.

서열로는 관우, 장비, 조운, 미축 등보다 아래였다. 녹봉은 여전히 2천 석. 공식적인 임무는 군사에 관한 자문 및 지휘였다.

그러나 그가 하는 일은 군사(軍事)에 관한 것만이 아니었다.

―국방보다는 내정!

익주를 다스리는 데에 더 많은 힘을 쏟았다.

그 무렵, 공명은 확실히 병법가로서의 재능뿐만 아니라 정치·법률·행정가로서의 능력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모든 권한을 장악했다,라기보다는 유비가 모든 것을 그에게 맡겼다. 부(府=삼공육경의 집무소. 여기서는 유비를 말함)의 대리인 자격을 부여한 것이다. 오늘날의 국무총리 역할이라고나 할까. 서열은 낮았지만 명실공히 유비 정권의 핵심이요 실세였다.

아직은 내부가 안정되지 않았다. 각 분야에서 알게 모르게 암투가 벌어졌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일이 터지기도 했다.

법정이 그런 사람 중의 한 사람이었다. 덕치론을 주장한 법정이었지만 그 자신은 그다지 덕스럽지가 못했다.

그는 유장 밑에서 벼슬하던 시절, 여러 사람에게서 무척 냉대를 받았다. 자문역인 군의교위(軍議校尉)에 임명되었으나 아무도 그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았다. 법정 자신이 불평분자였다. 행동도 바르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편협했다.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는 것은 당연했다. 장송·맹달 등 몇몇 사람만이 법정의 재능을 높이 샀을 뿐이었다.

유장 정권을 물리치고 새 정권을 수립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사람은 누가 뭐래도 법정이었다. 최고의 수훈자였다. 유비도, 공명도 그것을 인정했다. 법정을 양무장군 겸 촉군 태수로 임명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촉군 태수는 파군 태수와 더불어 서천의 노른자라 할 수 있는 요직이었다.

촉군 태수로 부임한 법정은 옛날 자신을 냉대하고 모멸한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렸다.

―나에게는 또 하나의 현실 변화일 뿐입니다.

성도 입성시 공명에게 밝혔던 법정의 소감이었다. 그만큼 그는 현실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그 사람들을 찾아내 일일이 보복하기 시작했다. 하찮은 원한도 잊지 않고 철저하게 따졌다. 손가락질한 사람, 욕설을 퍼부은 사람, 눈을 흘긴 사람조차 기억해내어 벌을 가했다. 심지어 자신을 모략하고 헐뜯은 사람은 아예 죽이기까지 했다. 법정의 보복 정치로 인해 촉군 일대는 삽시간에 살벌해졌다. 법정과 안면이 있는 사람들은 몸을 떨었다.

이러한 소문이 어찌 공명의 귀에 들어가지 않겠는가. 어떤 사람이 공명에게 진언했다.

“법정의 작태가 너무 심합니다. 불러서 꾸짖어주십시오.”

그런데 공명의 반응이 뜻밖이었다.

“내버려둡시다. 법정의 공을 생각하면 그만한 일쯤은 조족지혈(鳥足之血=새 발의 피)에 불과합니다. 북으로는 조조가 버티고 있고, 남으로는 손권이 노려보고 있던 때에 법정은 우리에게 밝은 등대불처럼 신천지를 인도해주었소. 우리가 오늘 천하를 셋으로 나누어 한 땅을 차지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법정의 수훈이외다. 이런 점을 생각하면 법정의 그런 행동은 눈감아주는 것이 도리요.”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엄한 법사상론을 펼쳤던 공명이었다. 이 말이 과연 공명의 진심일까. 아니다. 그는 정치가로서의 유연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었던 것이다.

―구막료와 신막료들 간의 화합!

이것을 법보다 우선으로 두었다. 구정권과 신정권의 알력을 해소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것도 이룩해낼 수 없다고 공명은 판단했던 것임에 틀림없었다. 공명의 이러한 판단은 옳았다.

―눈감아줍시다.

공명의 이 말을 법정이 들었다. 그는 감격했다. 공명이 말하던 꿈이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서천 백성뿐 아니라 천하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렵니다.

공명이 했던 그 말이 새삼스레 하늘을 울리는 듯한 굉음으로 들려왔다. 부끄러움을 느꼈다. 법정은 보복 정치를 중단했다.


공명의 선택 (266)…제23장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지고(4)


또 한 사람의 행동이 공명의 신경을 자극했다. 관우였다.

익주 평정 후, 관우의 직함은 탕구장군 겸 독형주사(督荊州事). 이를테면 형주의 총독이었다. 서열상으로는 유비 정권의 제2인자였다.

유비에게는 아끼는 장수 다섯이 있었다. 관우, 장비, 조운, 황충, 마초 등이 바로 그들이었다. 유비는 이들을 일컬어 ‘오호장군(五虎將軍)’이라고 부르기를 좋아했다.

그런데 이것이 관우의 자부심에 손상을 준 것이다.

―마초가 대체 어떤 작자이기에 감히 나와 반열을 같이하려는 것인가. 내 친히 성도로 가서 마초와 한 번 겨루어보리라.

공명이 이 소식을 들었다. 별것 아닌 일로 넘길 수도 있었으나, 내부가 안정되지 않은 때였다. 불협화음을 일으킬 소지가 있다. 직접 겨루게 되면 둘 중 하나는 마음의 상처를 입게 된다.

‘별것에 다 신경을 써야 하는군.’

고개를 내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즉시 붓을 들어 관우에게 보내는 편지를 썼다.

대개 장군은 그 재목에 따라 아홉 가지로 나누어 구별할 수가 있습니다.

인장(仁將)―덕(德)의 길을 가고, 예(禮)로써 다스리며, 병사들의 굶주림과 추위 등 어려움을 보살필 줄 아는 장수를 ‘어진 장수’라 합니다. 덕장(德將)이라고도 부릅니다.

의장(義將)―구차한 일을 피하지 않고, 이익에 흔들리지 않으며, 영예롭게 죽고 굴욕 속에 살지 않는 장수를 ‘의로운 장수’라고 합니다.

예장(禮將)―신분이 높으나 교만하지 않고, 승리하고도 뽐내지 않으며, 현명하면서도 겸손하고, 강직하면서도 참을성 있는 장수를 일러 ‘예절바른 장수’라고 합니다.

지장(智將)―변화무쌍하며 임기응변에 능하고, 화를 복으로 돌리며 위기에서도 승리를 이끌어내는 장수를 가리켜 ‘지혜로운 장수’라고 합니다.

신장(信將)―칭찬할 땐 후한 상을 내리고 물리칠 땐 엄한 벌을 가하며, 때를 놓치지 않고 상을 내리며 신분을 가리지 않고 벌을 내리는 장수를 일러 ‘믿음 있는 장수’라고 합니다.

보장(步將)―발은 군마보다 가벼우며 기세는 백 사람을 억누르며, 짧은 무기를 잘 쓰고 창칼을 잘 다루는 장수를 가리켜 ‘보병의 장수’라고 합니다.

기장(騎將)―높고 험한 곳이라도 나는 듯이 말을 타고 달리며 활을 쏘아대는 장수, 전진시에는 앞장서고 후퇴할 때에는 뒤에 서는 장수를 ‘기병의 장수’라고 합니다.

맹장(猛將)―강적이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세는 대군을 능가하며, 작은 싸움에서는 겁을 내어도 큰 전투에서는 용감무쌍한 장수를 ‘용맹한 장수’라고 합니다.

대장(大將)―현인(賢人)을 보면 자신이 미치지 못한다 여기고, 간언을 따라 물 흐르듯 하고, 관대하면서도 강직하고, 간략한 가운데 계책이 많은 ‘큰 장수’입니다. 아랫사람에게는 인애심이 가득하고, 신의로써 사람을 다스리고, 위로는 천문을 살피고 아래로는 지리를 살피며 가운데로는 사람 일에 통달하여 천하를 자기 집처럼 가까이 여기기도 합니다. 웅장(雄將)이라고도 하는데, 천하에 으뜸가는 장수로서 대적할 자가 감히 없습니다.

이어 공명은 다음과 같이 덧붙였다.

……마초가 비록 문무를 겸비한 호걸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일반 사람들을 넘을 만한 수준일 뿐입니다. 옛날 한(漢)나라의 경포(鯨布)나 팽월(彭越) 같은 정도입니다. 장익덕과 우열을 겨룬다 해도 한 손 접을까 말까 한 사람인데, 항차 웅장에 해당하시는 미염공(美髥公)의 걸출한 용맹과 지혜에 어찌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오호장군이라고 하지만 다 같을 수는 없습니다. 더욱이 미염공께서는 형주의 총독이십니다. 서촉까지 먼 길을 행차하셨다가 형주에 틈이라도 생기면 장군께서는 이를 어찌 감당하시렵니까. 부디 밝게 살피십시오.

한껏 관우의 자부심을 부추기는 내용이었다.

공명의 편지를 받은 관우는 금세 마음이 풀리며 유쾌해졌다.

가슴까지 내려온 길고 아름다운 수염을 쓰다듬으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공명은 내 마음을 잘 아는군.

그러고는 편지를 여러 사람에게 돌리며 몇 날 며칠을 자랑했다.

공명의 사람 다루는 솜씨는 가히 이와 같았다.

유비의 익주 평정은 외부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속았다!

동오의 손권은 이렇게 일성(一聲)을 내질렀다.

―유비 때문에 나의 천하 대업이 20년은 늦어지는구나!

조조는 책상을 치며 통탄했다.

두 사람 모두 눈에서 퍼런 불이 뿜어져나왔다. 불과 몇 해 전까지만 해도 발 뻗을 땅 하나 없는 떠돌이 객장이었던 유비가 아니던가.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만여 리에 걸친 광활한 땅을 소유한 어엿한 실력자가 되어 있는 것이었다. 통탄한들 이미 때는 늦었다.

두 사람 모두 분노와 우려 속에서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먼저 움직인 것은 조조 쪽이었다.

한 사나이가 승상부의 조조를 찾았다.

“무슨 일인가?”

“조용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사나이는 독대(獨對)를 원했다. 독대가 무엇인가. 단독 면담이다. 조조는 이미 천하 제일의 실력자였다. 한(漢)나라의 승상에다 위공(魏公)이라는 직위까지 더해져 있었다. 천자를 능가하는 권력과 권위였다. 독대를 허용할 만큼 경호가 허술치 않다. 그런데 그 사나이는 감히 독대를 요구했다.

조조는 눈을 들어 사나이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대는?”

“사마의(司馬懿)입니다.”

자는 중달(仲達). 벼슬은 승상부 주부에 불과했다. 조조는 감히……,라는 눈길로 사마의를 노려보았다.

“천하 대업을 이루고 싶지 않으십니까?”

엄청난 말이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다. 일순, 조조의 눈동자에 변화가 일었다. 눈을 가늘게 떴다.

“모두들 나가 있어라.”

방 안에는 조조와 사마의 둘뿐이다. 잠시 무거운 침묵이 이어졌다.

“말하라.”

“한중(漢中)을 취하십시오.”

사마의의 대답은 간단했다. 유비라는 이름은 거론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조는 이내 그 뜻을 알았다. 형주를 쳐들어갈까, 익주를 공략할까 내심 고민하고 있던 조조였다. 그런데 사마의는 한중이라고 했다.

―중원으로 통하는 길을 차단하십시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상 밖의 묘수였다. 한중은 유비의 다음 순서일 것이다.

‘요충지를 미리 선점한다.’

조조는 무릎을 쳤다.

“그대도 동행하라!”

조조의 대답 역시 간단명료했다.

건안 20년(215년) 3월, 조조는 한중 정벌을 감행했다. 하후연과 장합을 선봉으로 삼고, 조조는 스스로 중군이 되었으며, 후대는 하후돈과 조인에게 맡겼다.


공명의 선택 (267)…제23장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지고(5)


조조의 이 같은 행동에 한중 땅의 주인인 장로도 놀랐지만 성도의 공명도 어지간히 놀랐다.

―과연 조조다운 행보이다.

형주를 염려했었다. 그래서 관우의 서천행도 극구 만류한 공명이었다.

‘그런데 한중일 줄이야!’

한중은 서천의 관문이나 다름없는 땅이었다.

“장로를 도와야 합니다.”

유비에게 진언했다. 유비도 그러한 흐름쯤은 읽을 줄 알았다.

“먼저 사절을 보내야 하지 않겠소?”

한창 의논하고 있는 중에 동오에서 사절단이 왔다.

사절단의 대표는 제갈근(諸葛瑾)이었다. 그가 누구인가. 공명의 형이다. 벼슬은 중사마(中司馬)에 올랐다. 꽤 높은 관직이다. 손권의 신임이 대단한 모양이었다.

“곤란하게 되었군요.”

공명은 제갈근이 온 이유를 짐작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동오에서 갑자기 웬일일까요?”

유비는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형주 땅 때문일 것입니다.”

여느 때와 달리 공명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상대가 꼭 제갈근이라서만은 아니었다.

‘때가 좋지 않다.’

공명의 짐작은 맞았다. 공명과 제갈근의 재회는 7년 만이었다. 당연히 감격과 기쁨으로 만났어야 했다. 그런데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공과 사는 구분해야 한다.

제갈근은 일체 공명의 집을 찾지 않았다. 적벽대전 직전 공명이 동맹사절로 시상에 갔을 때 일부러 제갈근의 집을 찾지 않은 것과 똑같았다. 회담장에서도 무표정이었다. 손권의 지시를 받았으리라.

“형주 이북 땅을 수복하면 장강 이남의 호남 사군을 돌려주기로 약속하지 않았소? 이제 유황숙께서는 형주 이북 땅뿐 아니라 익주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당연히 호남 사군을 동오에 넘겨주셔야 하지 않습니까?”

제갈근은 무미건조한 어조로 용건을 밝혔다. 외교 사절답지 않게 딱딱한 언행이었다.

―거절하면 군사 행동도 서슴지 않겠소.

제갈근은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그의 차가운 눈길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조조의 주병력이 한중을 공략하고 있는 때였다. 후방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마음놓고 군대를 출병시킬 수 있었다. 손권은 이 점을 노린 것이 분명했다. 굳이 제갈근을 사절단 대표로 뽑은 것은 이러한 자신의 각오를 표출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양주(凉州)를 평정한 후 반환하겠소.”

유비는 고심 끝에 이렇게 대답했다.

―미룰 때까지 미루어보자.

공명과 고심 끝에 짜낸 궁여지책이었다. 그러나 제갈근은 단호했다.

“우리 주공께서는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실 겁니다.”

제갈근은 미련 없이 성도성을 떠나갔다. 그것은 동맹이 깨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제갈근이 성도를 떠나자마자 또 다른 급보가 유비 진영에 날아들었다.

―동오 군이 호남 사군을 침공했습니다.

마치 회담이 깨지기를 기다리고 있기라도 한 듯한 발빠른 군사 행동이었다. 선봉장은 여몽(呂蒙)이라고 했다. 죽은 주유 못지않게 유비를 싫어하는 반유비파의 한 사람이었다. 그가 거느린 군사는 2만.

‘이것으로 동맹은 깨졌는가?’

공명이 채 생각할 틈도 없이 여몽은 호남 사군 중 장사·영릉·계양 3군을 점령해버렸다. 5천여 수비군만을 거느리고 있던 장사 태수 요립은 간신히 성을 빠져나와 성도로 퇴각해왔다.

“관운장에게 구원을 요청할 틈도 없는, 느닷없는 공격이었습니다.”

요립은 유비 앞에 무릎을 꿇고 보고했다.

―하필이면 이럴 때…….

유비와 공명은 놀랐다기보다 고민에 빠졌다.

‘북이냐, 동이냐?’

어차피 군사를 일으켜야 했다. 문제는 한중의 장로를 도와 조조의 침공을 막아낼 것이냐, 아니면 형주로 나가 동오 군과 일전을 벌일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한중은 남의 땅이고, 형주는 우리 땅입니다.”

법정이 조언했다. 핵심을 일깨워주는 말이었다.
공명은 고개를 끄덕였다. 입술을 깨물며 유비에게 말했다.

“먼저 형주의 일부터 해결하십시오. 아직은 동맹을 깰 때가 아닙니다.”

이에 유비는 친히 군사 3만을 거느리고 공안으로 건너갔다. 싸우려는 의도는 없었다. 어차피 빼앗긴 땅인데다가 이미 익주를 확보하고 있었다. 경제 부흥과 군세 확장에 필요한 물자들은 파촉에서 충분히 확보할 수가 있었다.

―굳이 변방이랄 수 있는 호남 사군 때문에 힘을 소모할 필요는 없겠지요.

공명의 판단이었다.

―땅을 떼어주는 한이 있더라도 다시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공명은 떠나는 유비에게 간곡히 진언했다.

공안에 당도한 유비는 관우부터 찾았다. 관우는 형주 총독의 임무를 맡고 있던 사람이었다. 여몽에게 장사·영릉·계양 3군을 빼앗긴 것은 그에게 뼈아픈 실책이었다.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런 관우를 향해 유비는 조용히 말했다.

“익양(益陽)으로 가라.”

지금의 호남성 익양시이다. 그 무렵, 손권도 노숙을 총사령관에 임명하여 추가로 군사를 파견했다. 노숙이 진주하여 주둔한 곳이 바로 익양이었다. 유비의 공안행에 대응하는 포진인 셈이었다.

“목숨을 걸고서라도 빼앗긴 3개 군을 탈환하겠습니다.”

관우는 비장한 결의를 보였다. 그러나 유비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싸움이 아니다. 동맹을 성사시켜라.”

“동맹을……?”

관우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그렇다. 약속은 약속이다. 빼앗긴 땅은 내주어도 좋다. 반드시 노숙과 얘기하도록.”


공명의 선택 (268)…제23장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지고(6)


노숙은 친유비파였다. 어차피 내주기로 약속했던 호남 사군이었다. 그럴 바에는 노숙의 입지를 높여주는 것이 유비측으로서는 최선의 끝내기 수가 아니겠는가. 익양에서 관우와 노숙은 만났다. 잘 아는 사이였다. 두 사람은 곧 회담에 들어갔다.

이 때의 회담 장면을 역사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다.

노숙과 관우는 각기 군사를 백 보 밖으로 물려 주둔시키고 장수들만이 단도를 지닌 채 만났다. 노숙은 관우에게 질책하듯 말했다.

―우리 주공이 유황숙에게 형주 땅을 빌려준 것은 유황숙이 조조에게 패하여 멀리서 왔고, 또 의지할 곳이 없어서였기 때문이었소. 그런데 유황숙은 이미 익주 땅을 얻었으면서 어찌하여 형주 땅을 돌려주지 않는 것이오? 이번 우리 동오의 군사 행동은 당연한 것이오.

노숙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관우 옆에 있던 어떤 사람이 말했다.

―영토란 덕이 있는 사람이 차지하는 것이거늘, 어찌하여 그대들은 영원히 그 땅을 소유하려 하는 것인가?

노숙이 그 사람을 향해 벽력같이 소리질러 질타했는데, 그 말과 얼굴빛이 매우 분노에 가득 찼다.

관우가 일어나며 말했다.

―이것은 국가의 일인데 이 사람이 무엇을 알겠소?

그러고는 그 사람에게 떠나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래서 유비는 상수(湘水)를 경계로 땅을 나누었으며, 쌍방의 군대는 싸움 없이 헤어졌다.

동맹은 다시 성사되었다.

상수는 호남 지역 한가운데를 흐르는 장강의 지류이다. 유비는 그 강의 동쪽 땅인 장사·강하·계양을 손권에게 넘겨주었고, 상수 서쪽인 남군·영릉·무릉은 계속 자신의 영토로 영유하게 되었다.

회담 결과를 보면 유비 측의 판정패로 볼 수도 있겠으나, 사실은 절묘한 끝내기 수라 아니할 수 없다. 호남 사군의 일부를 내어주고 남군 등 주요 지역은 온전히 유비의 땅으로 굳힌다―바둑으로 치면 사석작전이었다.

회담 직후, 유비는 서둘러 성도로 귀환했다. 육구에 머물고 있던 손권 또한 급히 건업으로 돌아갔다. 유비는 조조의 한중 토벌에 대한 방비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고, 손권은 조조가 한중 토벌에 열을 올리는 사이 그간의 숙원이었던 합비성을 공략하기 위해서였다.

두 사람 모두 조조의 움직임에 따른 자기 진영의 이득을 의식한 행보인 셈이었다.

그러나 조조의 행보 또한 이들 못지않게 빨랐다.

그 해 3월에 업을 출발한 조조는 7월에 한중의 입구인 양평관(陽平關)에 도착하였고, 11월에는 장로의 항복을 받아낸 것이었다.

“좋군.”

조조는 흡족했다. 처음 한중 토벌을 입안한 사람은 승상 주부 사마의였다. 그의 계획은 멋지게 성공하였다. 조조는 사마의를 새삼스런 눈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 사마의가 다시 조조를 찾았다. 눈이 유난히 반짝거리고 있었다.

“무엇인가?”

조조가 기대하는 눈길로 물었다.

“유비는 속임수로 촉땅을 빼앗았습니다. 서천 사람들은 아직 마음 속으로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이제 승상께서는 한중을 평정하셨습니다. 내친김에 서천까지 진격하시어 유비의 기업을 부수어버리십시오. 슬기로운 사람은 때를 놓치지 않는 법입니다.”

“서천의 유비를?”

조조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습니다. 절호의 기회입니다.”
사마의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러한 사마의를 보며 조조는 문득 탄식했다.

“사람이란 참으로 만족을 모르는 모양이구나. 한중 얻은 것으로 부족하여 서천까지 바란단 말인가?”

그러나 사마의는 더욱 두 눈을 빛냈다.

“옳게 보셨습니다. 사람은 본래 그렇게 타고났습니다. 망설일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조조는 사마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히려 회군 명령을 내렸다.

참모 유엽(劉曄)이 그런 조조에게 물었다.

“사마중달의 말이 옳은데, 승상께서는 어찌하여 회군하시려는 겁니까?”
조조가 웃으며 대답했다.

“유비와 손권이 서둘러 동맹을 맺고 형주를 분할한 까닭이 무엇인지 아는가? 유비는 우리가 서천을 칠 것을 예상하고 대비하기 위함이요, 손권은 우리가 이 곳에 머물고 있는 틈을 타 장강 이북의 합비성을 공격할 마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서천을 공격하면 상당한 시일이 소요되는데, 그대들은 이에 대한 대비책을 강구해놓았는가?”

이 말에 유엽은 무릎을 치며 탄복했다.

“내 안목이 아직도 승상을 따라가지 못하는구나.”


공명의 선택 (269)…제23장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지고(7)


조조는 조홍과 하후연, 장합을 그 곳에 남겨두고 미련 없이 업성으로 향했다.

그러나 사마의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았다. 돌아가는 길에 다시 한 번 조조에게 권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좋은 기회입니다. 지금이라도 군사를 돌려 서천으로 향하십시오.”

“그대는 유비가 두려운가?”

조조의 눈꼬리가 날카롭게 치켜졌다. 기분이 상한 듯한 표정이었다. 이미 위공(魏公)으로서의 권위와 관록이 몸에 밴 조조였다. 예전과 달리 자신의 뜻에 반하는 의견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의 유비는 두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래의 유비는 두렵습니다.”
그래도 사마의는 물러나지 않았다.

“어째서 그런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지금 유비는 서촉 사람들에게 인망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에게는 정치·행정에 밝은 제갈량이 재상으로 있고, 관우·장비·조운 같은 명장들이 수두룩하게 있습니다. 수년 안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내정을 안정시켜 군수 물자를 확보할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 때는 유비를 치고 싶어도 치기가 힘듭니다. 유비를 치기에는 지금이 호기입니다.”

“흐흠. 일리가 있는 말이군.”

조조는 말 위에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군사를 돌리시는 겁니까?”

“하지만…… 나는 그대 생각과 조금 다르다.”

“옛? 다르시다면……?”

“첫째, 지금 우리 군대는 지쳐 있다. 병참로를 길게 늘어뜨리고 싶지 않다. 더욱이 서천으로 들어가려면 잔도를 지나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아는가? 우리는 그에 대한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질 않다.”

“…….”

“둘째로는, 적벽의 아픔을 두 번 다시 맛보고 싶지 않다. 내친김에,라는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 오판을 낳게 하는지 나는 적벽에서 철저하게 깨달았지. 이번 우리의 원정 목표는 어디까지나 한중이었다. 목표 이상의 것을 바라는 것은 욕심일 뿐이다. 적벽은 나에게 그러한 교훈을 가르쳐주었지. 그대는 미래의 유비가 두렵다고 했지만,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유비가 아니다. 바로 나 자신일 뿐이다. 내가 적벽에서 패한 것은 유비에게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에게였다는 것을 나는 깨닫게 된 것이지. 알겠는가, 내 말을?”

이 같은 조조의 말에 사마의는 더 이상 입을 열지 않았다. 아무 소용이 없음을 안 것이다. 하지만 마음으로 승복한 것은 아니었다.

‘승상께서도 이제 나이를 드셨구나.’

사마의는 안타까운 눈길로 앞서 달리기 시작한 조조의 등을 바라보았다.
손권이 합비성을 칠 것이라는 조조의 예상은 맞아떨어졌다. 그들이 허도를 지날 무렵, 과연 손권은 10만 대군을 몰아 장강을 건너 북상했던 것이다.

그 때 합비성을 지키고 있던 조조 군의 장수는 장료와 이전이었다. 그들이 거느린 군사는 2만도 채 안 되었다. 그들은 급히 파발을 업성으로 보내 구원병을 청해놓고 악전고투하며 버티었다.

조조는 업에 도착하자마자 곧바로 합비 구원에 나섰다. 40만 대군을 출병시켰다. 이로써 합비성 전투는 팽팽한 국면으로 접어들었고, 단기간에 승리하기가 힘들다고 판단한 손권은 군사를 돌려 건업으로 돌아갔다.
예상을 뛰어넘는 조조의 발빠른 움직임이 또 한 번 손권의 합비성 공략을 실패로 돌아가게 한 것이었다.


공명의 선택 (270)…제23장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지고(8)


건안 23년(218년)이 되었다. 서천을 평정한 지 어느덧 4년의 세월이 흘렀다.

공명의 나이 38세. 불혹을 바라보는 중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이 무렵은 공명이 정치·행정가로서 많은 재능과 능력을 발휘한 시기였다. 법을 시행함에 있어서는 공정·엄중했고, 상벌도 반드시 타당성에 의해 시행하였으며, 각종 사무에도 정통하였다.

서촉 사람들은 한결같이 제갈량을 존경하고 아꼈으며, 형법과 정치는 엄격하였지만 원망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것은 마음을 공평하게 쓰고 상벌을 분명히 했기 때문이다. 제갈량은 세상 다스리는 이치를 터득한 걸출한 인재로서 관중과 소하에 비교할 만하였다.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는 공명에 대한 평이다.

이 같은 공명의 노력에 의해 익주는 내정이 안정되었고, 물자가 풍부해졌으며 군세가 크게 확장되었다.

조조와 손권 진영에도 다소간 변화가 있었다.

―조조가 위왕(魏王)에 오르고, 그 아들 조비(曹丕)를 후계자로 세우다.

―동오의 노숙이 49세의 나이로 죽다.

두 사건 모두 유비 진영으로서는 민감한 사안들이었다.

특히 노숙의 죽음 소식은 유비와 공명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유비에게는 우호적인 노숙이 아니었던가. 유비가 조조에게 쫓겨 갈 곳이 없었던 시절, 노숙은 구원의 사자처럼 찾아들어 동오와의 동맹을 먼저 제안했었다. 그 때의 그 안도감과 기쁨을 공명은 결코 잊을 수가 없었다. 적벽대전의 승리는 공명과 노숙의 합작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 뒤로도 그는 얼마나 유비와의 화친에 힘을 쏟았던가. 이제 그가 죽음으로써 동오와의 관계에 큰 변화가 생길 것이 뻔했다.

“형주가 위험하군.”

공명은 침통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 후계자로 여몽이 거론되고 있다는 뒷소식이 들려왔던 것이다.

유비는 조문 사절을 보내 노숙의 죽음을 애도했다.

공명이 노숙의 죽음에 민감한 반응을 보인 것에 반해 법정은 조조의 위왕 봉작 사건에 많은 관심을 쏟았다.

“조조는 과연 앞서가는 자로군요.”

이렇게 감상을 밝히는 법정의 두 눈은 유난히 반짝거렸다.

“앞서는 자가 있으면 뒤따르는 사람도 있게 마련이지요.”

공명이 말을 받았다. 법정의 마음을 알아챈 것이다.

“군사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제 천하는 삼분이 되었소이다. 최소한 격을 맞추어야 하지 않겠소?”

“말이 나온 김에 추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법정은 한 걸음 공명 앞으로 다가앉았다. 외방 소식에 대한 대화가 어느 새 밀담으로 변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명은 잠시 침묵했다. 고개를 외로 틀었다.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마음에 걸리는 일이라도 있습니까?”

법정이 물었다. 은밀한 어조였다.

“효직께서는 한중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오?”

공명이 눈을 들었다. 법정은 공명의 고민을 알아챘다.

“그렇군요. 한중은 서천의 목에 해당합니다. 한중을 이대로 놓아두고서는 결코 서천은 안심할 수 없지요.”

“무엇보다도 한중 출신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지 않겠소?”

공명의 지적은 정확한 것이었다. 또한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었다. 그 당시 한중 출신의 막료들은 알게 모르게 한중 정벌론을 주장하고 있었던 것이다.

―한중이 조조 손에 있는 한 삼파(三巴)는 안심할 수 없습니다.

삼파란 파동, 파서, 파군 3개 군을 일컬음이었다. 익주의 노른자라 할 수 있었다. 장비를 파서 태수로 임명하고, 마초를 파동에 파견하여 지키게 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 아니었던가.

“이 곳 사람들은 유독 종족 보존 본능이 강합니다.”

법정은 관중 출신이었다. 많은 막료들이 한중이나 한중 이북에서 내려왔다. 장로가 통치할 때만 해도 언제든지 고향을 오갈 수 있었다. 그런데 조조가 한중을 평정하고 난 이후에는 그렇지가 못했다.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는 땅이 되었다.

―한중에 조조가 있다는 것은 목에 칼이 들어와 있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공명도, 법정도 이것을 잘 알고 있었다.

“목을 겨냥하고 있는 칼부터 제거해놓고 격을 맞추는 것이 순서 아닐까요?”

마침내 공명의 입에서는 분명한 대답이 나왔다.

“옳으신 지적입니다.”

“주공께는 효직께서 말씀드리십시오. 나는 군량과 마초를 확보해두겠습니다.”

“좋지요.”

‘한중 공략’이라는 정책이 입안되는 순간이었다. 서천 평정 후 첫 군사 정책이기도 했다.

공명의 선택 (271)…제23장 천하는 셋으로 나누어지고(9)


공명의 자택은 성도성 안에 있었다. 부(府)의 관소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작은 집은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호화 저택도 아니었다. 아담하고 깔끔하다고나 할까. 성내 사람들은 그 곳이 공명의 집인 줄 잘 알지 못했다. 그만큼 평범했다.

집 안으로 들어가면 유독 방이 많았다. 사람들이 지내는 방이 아니었다. 방마다 이상한 도구들로 가득 찼다. 어떤 방에는 수십 개의 수레 모형이 즐비했고, 또 어떤 방에는 소 형상의 목각품이 전시되어 있기도 했다. 모두가 공명의 아내 황용이 만든 작품들이다. 즉, 그 방들은 그녀가 작업실로 사용하는 공방(工房)이었다.

“어디 계시느냐?”

퇴청하여 집으로 돌아온 공명은 마당에서 하녀에게 물었다. 들어오자마자 아내부터 찾는 일은 드물었다.
하녀가 의아한 눈빛으로 공명을 쳐다보며 대답했다.

“수레 공방에 계시옵니다.”

수레 공방이란 수레 모형이 가득 차 있는 방이다. 집 뒤편의 창고처럼 지어진 곳이었다. 공명은 즉시 그 곳으로 향했다.

“잘 진행되고 있소?”

황용이 고개를 들며 허리를 폈다. 그녀는 키가 무척 크다. 8척의 공명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다.

황용은 대답 대신 웃음을 머금었다. 머리카락이 흘러내려 이마를 덮고 있었다. 땀에 젖은 채였다. 하루 종일 일했음이 분명했다.

“그것은……?”

공명의 시선은 황용 앞에 놓여 있는 이상한 물건에 고정되었다.

“일륜거(一輪車)입니다.”

“바퀴가 하나인 수레라?”

공명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좁은 길을 갈 때 편리하지 않겠습니까?”

처녀 시절부터 유독 손재주가 뛰어난 황용이었다. 나무 인형을 조작하여 국수까지 끓여내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결혼 이후에도 황용의 그러한 별난 취미는 변함이 없었다. 집안 가득 이상한 조립품들이 즐비했다.

―공명의 집은 만물상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소문이 나돌 정도로 별별 물건들이 많았다.
공명은 그런 황용을 만류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려했다.

―당신은 특출난 사람이오. 재능을 썩히는 것은 아까운 일이지요.
어떤 때는 공명 자신이 물품을 주문하기도 했다. 이연발 화살은 그렇게 해서 만들어졌다.

―열 개, 스무 개를 연속해서 쏠 수 있는 활은 힘들겠소?

―한 번 만들어보지요.

성도로 와서는 또 다른 주문을 내었다.

―군량을 수송할 수 있는 수레가 필요하오.

―치중 수레가 있질 않습니까?

―그 수레로는 잔도를 통과하질 못하오. 좁은 길도 빠르게 갈 수 있는 수레를 제작해보시오.

공명도 바빴지만 황용도 눈코 뜰 새 없었다.

“균형을 잡는 데 어려움이 있겠지만, 조금 더 보완하면 잔도쯤은 문제없습니다.”

황용은 실제 크기보다 축소하여 만든 모형 일륜거를 직접 운전해보이며 장단점을 일일이 설명해주고 있었다. 그 모습이 공명의 눈에는 아름답게 비쳤다.

“언제쯤이면 부족한 점들을 보완할 수 있겠소?”

“글쎄요.”

황용이 눈을 들어 공명을 바라보았다. 맑았다.

“한중은 길이 좁고 험하오. 군량을 수송하려면 지금의 수레로는 애를 먹을 것이오.”

“전쟁인가요?”

“한중은 주공에게 필요한 땅이오.”

그 때 공방 문이 열리며 한 하녀가 들어왔다.

“저녁식사가 준비되었습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얼굴이 작고 피부가 깨끗했다. 나이는 스무 살이 채 안 되어보였다. 예쁘장한 얼굴이었다. 눈에서는 총기가 넘쳐흘렀다.

“누구요?”

내실을 향하면서 공명이 물었다.

“새로 들인 하녀입니다.”

황용의 음성이 어딘지 모르게 가라앉아 있었다. 어색한 어조였다. 공명은 고개를 돌려 황용을 돌아보았다.

“일손이 부족하오?”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황용은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피하는 기색이 완연했다. 평소의 황용답지 않은 태도였다.

“말투가 이 곳 태생이 아닌 것 같은데, 누가 천거했소?”

“사실은…… 아버님께서 보내신 아이입니다.”

“장인께서?”

“곁에 두고 부리라고.”

“장인께서 오셨소?”

“아닙니다. 사람을 통해 저 아이만 보내셨습니다.”

“저 아이만?”

공명은 걸음을 멈추었다. 황용도 따라 멈췄다. 댓돌 아래서였다. 공명의 눈길이 황용의 얼굴에 가 멎었다. 황용은 고개를 숙였다.

공명은 비로소 알았다. 황용의 나이 서른이 넘었다. 결혼한 지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런데 그녀에게는 아직도 아이가 없었다. 임신조차 하지 못했다.

대가 끊기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유교 사회였다.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을 죄인 취급하던 시대였다. 여인네들 스스로 그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황용이라고 해서 어찌 예외이겠는가. 아마도 남모르게 고민했을 것이다. 양양의 아버지 황승언(黃承彦)에게도 수시로 편지를 보내 상의했을 것이 틀림없다. 그리하여 생각해낸 것이 첩이었을지 모른다. 공명에게 여자가 있었다면 황용은 그렇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간의 마음 고생이 얼마나 심했을까?’

그래서 더욱 공방 일에 전념했는지도 몰랐다. 이런 생각이 들자 공명은 가슴이 아려 견딜 수가 없었다.

“당신은…….”

공명이 입을 열었다. 황용이 고개를 들었다.

“아직 젊소.”

“하지만…….”

“당신 말대로 곁에 두고 부리시오.”

그 날 저녁, 공명은 동오의 제갈근에게 편지를 썼다.

제 나이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후사 문제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형님의 둘째아들 교(喬)의 성품이 바르다고 들었습니다. 예전부터 형님께서 염려하신 바 있는 양자 문제를 의논드리고 싶습니다.

일찍이 제갈근은 공명에게 자신의 아들 중 하나를 양자로 들이라고 권한 바 있었다.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때마다 공명은 웃으면서 그 일을 미루어왔다.

‘형님이 옳으셨다.’

아내 황용의 입에서 첩 얘기가 나올 줄은 전혀 생각지 못했다. 마음에 상처를 안겨준 것이다.

“형님께서 수락하시면 아예 데리고 오도록.”

건업의 제갈근에게는 황풍을 보내기로 했다.







<공명의 선택> 24장 유비, 한중왕에 오르다
<공명의 선택> 22장 서천에 뜨는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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