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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공하후패(2001-01-12 18:55:16, Hit : 3041, Vote : 323
 <공명의 선택> 14장 폭풍전야
공명의 선택 (166)…제14장 폭풍전야 (1)
―출전이다!

시상 부둣가는 부산했다. 3만 군사가 배에 올랐다. 동오 군 총사령관인 좌도독 주유는 부둣가의 높은 망루로 올랐다.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높이 쳐든 후 병사들에게 외쳤다.

“장강의 아들들이여! 모두 힘을 합해 우리 땅을 침범하는 조조 군을 무찌르자!”

“무찌르자!”

군사들의 함성소리가 하늘을 진동시켰다. 이윽고 출전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3만 군사를 태운 동오 군의 함대는 시상을 떠

나 하구로 향했다. 우연인가. 조조 군단이 수륙 양면으로 강릉을 출발한 때와 같은 시각이었다. 주유는 전대(前隊)를 맡았고, 후대(後隊)는 우도독 정보가 이끌었다. 하구 근처를 통과할 무렵, 주유는 유비와 대면하게 되었다. 대면을 요청한 쪽은 유비였다. 미축을 보내 동오 군을 위로하고 싶다는 뜻을 전달했다. 술과 음식을 비롯한 여러 가지 예물도 함께 보냈다. 그러나 미축은 쫓겨오다시피 하구성으로 되돌아왔다.

―군무가 바빠 사절단을 만나볼 여유가 없습니다. 유황숙께서 직접 오신다면 혹시 시간을 낼 수도 있습니다만.

미축을 통해 이런 전갈을 보내왔다. 주유의 오만함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는 한마디였다. 물론 주유 나름대로 목적도 있었다. 이번 싸움의 주도권을 명백히 하자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 유비는 분명 주유와는 격이 다른 인물이다. 동맹군의 주군인 것이다. 당연히 자신이 유비를 찾아가야 했다. 그런데도 주유는 유비가 보낸 사절단을 쫓아보낸 것으로도 부족하여 유비가 직접 찾아올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유비는 입술을 일그러뜨렸다.

‘건방지다.’

이런 생각이 들었으나 곧 평상시의 온화한 표정을 되찾았다. 조조 군과 싸우기도 전에 동맹군끼리의 알력은 바람직스럽지 못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가지 마십시오.”

관우가 만류했으나 유비는 배에 올랐다. 수행원이라고는 고작 20여 명. 동맹군의 사령관을 내방하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위험이 따를 수도 있었다.

“굳이 가시겠다면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관우가 자원했다. 유비는 그것까지는 말리지 않았다. 유비와 대면하는 자리에서도 주유는 한껏 오만함을 발휘했다. 같은 주전파라고는 하지만 노숙과는 행동 강령이 달랐다.

―선동맹 후전쟁. 이것이 노숙이 추진하는 방향이라면 주유는,

―단독 항전. 이었다. 아마도 노숙이 유비와의 동맹을 성사시킨 것에 대한 무의식적 반발일 수도 있었다.

“싸움은 우리 동오 군이 합니다. 유황숙께서는 높은 곳에 올라가 구경만 하고 계십시오.”

동맹군의 주군에게 할 말이 아니었다. 굴욕을 줌으로써 유비를 자극하자는 의도가 분명했다. 하지만 유비는 굴욕에 익숙해 있는 사람이었다.

“구경이라…… 좋은 일입니다. 그런데 동오 군의 수는 얼마나 되오?”

“3만입니다.”

“3만? 그것으로 되겠소?”

“충분합니다.”

자신만만한 대답이었다. 어쩌면 주유는 전쟁 후의 지분을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공을 많이 세운 쪽이 많은 이득을 취하는 것은 상식이다.

‘형주를 탐내고 있구나.’

유비는 이렇게 직감했다.

“좌도독이 충분하다면 충분한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나는 육상에서 조조의 뒤를 끊겠소.”

유비는 껄껄껄 웃었다. 아무리 이번 싸움에서 수전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역시 전쟁의 마지막 승부는 육상전일 수밖에 없었다. 주유가 단독으로 수전을 이끌어감으로써 많은 지분을 요구한다면 유비는 육상전에서 공을 세움으로써 자신의 지분을 차지하겠다는 뜻을 명백히 밝히고 있는 것이었다. 주유가 어찌 유비의 이런 마음을 눈치채지 못할 리 있겠는가.

‘구걸하는 주제에……!’

이런 생각이 없지도 않았을 것이다. 눈을 번뜩이며 유비를 위협주려는 순간, 유비 뒤에 서 있는 장수와 눈이 마주쳤다. 봉의 눈에 가슴까지 늘어진 삼각수, 얼굴은 잘 익은 대춧빛이었다.

‘관우!’

주유는 자신도 모르게 등골이 서늘해졌다. 이마에 땀이 흘러내렸다. 그만큼 관우의 위엄과 기상은 위협적이었다. 두려움에 앞서 맥이 빠졌다.

“어차피 조조의 뒤는 유황숙께서 끊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한 발 물러서는 주유는 분해서 못 견디겠다는 표정이었다.

―손권 군은 수전(水戰).

―유비 군은 육상전(陸上戰).

동맹군의 역할은 자연스럽게 정해졌다.

“그럼 잘 부탁하오.”

유비는 배를 옮겨타며 손까지 흔드는 여유를 보였다. 주유의 입술이 뒤틀리는 것은 보지도 못한 듯했다. 동오 군의 선단은 다시 돛을 올리고 장강을 거슬러 서진(西進)했다. 주유가 손을 들어 뒤따르는 배들을 멈추게 한 것은 그들이 강하와 강릉의 중간 지점에 이르렀을 때였다. 수평선 저편으로 조조의 군단이 새카맣게 몰려오고 있었다.

적벽(赤壁)―. 붉은색의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라는 뜻이다. 호남·호북 일대를 가로지르는 장강(長江) 연안에는 적벽이 유난히 많았다. 그 때문에 적벽이라는 지명이 붙은 곳도 여러 곳 되었다. 그 탓일까. 훗날 사람들은 유비·손권의 동맹군과 조조 간에 벌어진 ‘적벽대전’의 장소를 정확하게 지적해내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북송 시대의 대시인 소동파(蘇東坡)도 그런 오류랄까 착각을 일으킨 사람 중의 하나였다. 그는 번구의 맞은편 강안인 호북성 황강현(黃岡縣) 바깥에 있는 적벽이 전쟁터인 줄 알았다. 그 곳에 배를 띄우고 술잔을 기울이며 삼국의 영웅들을 노래했다.

……‘달은 밝고 별은 성긴데, 까막까치 남으로 나네.’ 이것은 조맹덕의 시가 아니던가. 서쪽 하구를 바라보고 동쪽 무창(武昌)을 올려다보면 산천이 서로 얽혀 무성하고도 창창하도다. 이 곳이 조맹덕이 주랑에게 곤욕을 당한 곳이 아니던가. 일거에 형주를 격파하고 강릉을 떠나 강물을 따라 동진(東進)할 때, 전함은 천 리에 이어졌고 깃발은 하늘을 덮었도다. 술을 따르어 장강을 바라보며 창을 옆으로 비끼고 시를 지었으니 그는 가히 일세의 영웅이었도다. 그 영웅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하물며 강가에서 고기 잡고 나무하며, 물고기와 새우를 벗하고 고라니와 사슴을 동무로 하고, 일엽편주를 띄우고 술잔을 들어 서로 권하는 너와 나 같은 사람들이랴. 이 넓은 천지의 한 마리 하루살이이고, 창해(滄海)의 조그만 곡식 한 알갱이일 뿐이 아니겠는가. 나의 인생이 잠깐 사이에 지나감을 슬퍼하며 장강의 끝없는 흘러감을 선망하노라…….

이것이 그 유명한 「적벽부(赤壁賦)」이다. 멈춤 없이 흐르는 천지 자연의 시간 속에서 잠깐 왔다가 사라져가는 인간 존재의 덧없음을

잘 표현해주고 있는 노래가 아닌가. 영웅도 시간의 흐름에는 어쩔 수 없었거늘, 고기 잡고 나무하는 촌부들의 삶이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그러나 실제로 삼국의 옛 전쟁터인 적벽은 지금의 호북성 가어현(嘉魚縣) 동북쪽의 장강 남쪽 기슭에 위치해 있었다. 유비가 머물러 있던 하구에서 서남쪽으로 4백 리 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호북과 호남의 접경 지역이다.

동진하는 정벌군―.

서진하는 연합군―.

제각기 강릉과 하구를 출발한 두 군대가 조우한 곳은 적벽 땅이었다. 두 군대 모두 멈칫했다. 조조 군은 수전이 처음이었다. 반면, 강동 군사들은 장강을 가득 메운 조조의 대함대에 기가 질렸다. 조조는 일단 장강 북쪽 기슭의 오림(烏林)에 함대를 집결시켰고, 주유는 남서쪽 강안의 적벽 부근에 함선을 정박시키고 진채를 세웠다. 당장에라도 맞붙을 것같이 호호탕탕 진군하던 양쪽 군은 막상 상대와 마주치게 되자 의외로 소극전을 폈다. 먼저 전함을 낸 것은 주유 쪽이었다. 소군단이었다. 탐색전이라 할 수 있었다. 조조도 조심스럽게 몽충과 투함을 내었다. 양 군은 삼강(三江)에서 부딪쳤다. 동오 측의 장수는 감녕과 장흠·한당이었고, 북군 측의 장수는 형주의 항장(降將)인 채모·채훈·장윤이었다. 동오 군은 확실히 수전에 능했다. 조조 군의 배가 가까이 오자 그들은 재빨리 좌우로 진을

벌리며 화살과 쇠뇌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채모가 영을 내릴 사이도 없이 조조 군의 선단은 어지러움에 빠졌다. 한당과 장흠이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똑바로 조조 군을 향해 미끄러져 들어갔다. 조조 군의 태반은 청주병이었다. 배가 흔들리기만 해도 몸을 가누지 못했다. 화살이 제대로 날아갈 리 없었다. 공연히 아까운 화살만 허비했다. 그런 조조 군의 배 사이를 감녕과 장흠·한당이 이끄는 동오의 전함들이 종횡무진으로 휘젓고 다녔다. 싸움은 저녁때까지 계속되다가 날이 저물어서야 끝났다. 주유 쪽에서 먼저 징을 쳐서 군사

를 물렸다. 싸움은 유리했지만 조조 군이 워낙 대군이라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할까 두려웠던 것이다. 동오의 배들이 뱃머리를 돌리자 조조 군도 자기 진영으로 철수했다.

공명의 선택 (167)…제14장 폭풍전야 (2)
탐색전이 끝났다.

―역시 동오 군은 수전에 강하다.

반면에 북군은 맥을 못 추었다. 현무지에서의 수군 조련은 아무 소용도 없었다. 세숫대야에 물을 받아놓고 수영 연습을 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대군단이라고는 하지만 이 상태로는 더 이상 동진할 수가 없다.

―변화가 필요하다!

조조가 내린 결론이었다. 수군 도독 채모를 불렀다.

“무엇이 문제인가?”

여차하면 목이라도 벨 기세였다. 채모는 자신도 모르게 목을 움츠렸다. 형주 땅을 바친 유종을 가차없이 청주로 내쫓은 조조가 아니던가.

―휴식 시간이 필요합니다.

채모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 채모뿐 아니라 모든 막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군사들이 너무 지쳐 있는 것이다. 허도를 떠나온 이래 쉴 틈이 없었다. 유비를 쫓느라 기운이 다 빠졌다. 이런 군사로 이기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무리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휴식이었다. 강릉 출병시 순유는 조조에게 직언까지 했었다. 그러나 조조는 그 직언을 무시했다. 이제 와서 그 점을 깨달았다고는 하지만 군사를 물릴 조조가 아니었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채모가 바른 말을 할 리 없었다. 그는 겨우 입을 열었다.

“훈련 부족입니다.”

상당히 돌려서 한 말이었으나 틀린 말도 아니었다. 북쪽에서 내려온 군사들은 배만 탔다 하면 병든 병아리처럼 맥을 못 췄다. 채모는 이 점을 지적하며 휴식 시간을 벌고 싶었던 것이다. 조조가 채모를 쏘아보았다. 채모의 심장을 꿰뚫기라도 할 듯한 차갑고 날카로운 빛이 그의 눈에서 뿜어져 나왔다.

“싸움은 시작되었다.”

싸움 중에는 훈련을 할 수 없다는 조조의 단호함이었다. 채모는 안간힘을 다해 조조의 말을 받았다.

“수채(水寨)를 세우면 싸움을 하면서도 훈련을 할 수 있습니다.”

“수채?”

조조의 눈이 빛났다.

“그렇습니다. 먼저 큰 배들을 밖에 세워 성곽을 대신하게 하고 작은 배들을 그 안에 두어 훈련을 시키는 것입니다. 동오의 배들이 쳐들어와도 큰 배들에 의해 가로막혀 있기 때문에 혼란에 빠지지도 않을 것이며, 수문(水門)을 통해 훈련받은 배들을 내보내면 효과적으로 싸움에 임할 수가 있습니다.”

“그대는 수군을 맡은 도독이다. 어째서 그런 계책을 지금까지 실행하지 않았는가?”

조조는 비로소 기색을 누그러뜨렸다.

그 날로 채모는 장윤과 더불어 거대한 수채를 엮고 군사들에게 교대로 수전에 대한 훈련을 시키기 시작했다.

동맹이 성립되었지만 공명은 유비에게로 돌아가지 않았다.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이 곳에 남아 나를 도와주시오.

첫번째는 주유가 공명을 놓아주지 않았다. 억류나 다름없었다. 유비에게 공명은 절대적인 존재였다. 그의 지략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결코 유비는 육상전에 서 조조 군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다. 동맹 관계라고는 했지만 공이 없으면 지분을 내세울 수가 없다.

‘우리 주공에게 공을 세우지 못하게 하여 형주를 차지하려는 의도로군.’

공명은 주유의 속셈을 간파했으나 내색하지 않았다. 그에 대한 대응책은 이미 세워두었다. 두 번째로는 조조와의 수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공명 스스로의 의지 때문이었다. 주력부대가 몰려 있는 수전을 승리로 이끌지 않는 한 조조는 쉽게 허도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주유를 도와야 한다.’

수전에서의 승리의 모든 공이 주유에게 돌아간다 하더라도 하는 수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 라도 수전에서 조조를 격파해야만 유비 군이 살아남는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3만 병력 대 80만의 싸움이었다. 하늘이 돕지 않는 한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싸움이 었다.

하늘―. 그랬다. 공명은 하늘의 도움을 받기 위해 주유 군의 진영에 남아 있는 것이었다.

공명의 선택 (168)…제14장 폭풍전야 (3)
조조가 수채를 세우면서 싸움은 지구전으로 접어드는 국면을 보였다. 주유는 한결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장기전이라면…… 불리할 것이 없다.’

이렇게 판단했다. 싸움이 길어질수록 원정군은 그만큼 손해일 것이다. 더욱이 북방에서 온 군사들은 풍토병에 걸려 태반이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는 정보였다. 시일이 지나갈수록 환자는 늘어날 것이다. 여유가 생기게 되면서부터 주유는 다시 공명을 의식하기 시작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키만 멀대같이 큰 양양의 촌뜨기에게 천하를 다스릴 만한 지략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내가 너무 과민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다시 한 번 공명이란 자의 지모를 시험해보자.’

해치울 것인가, 그냥 놔둘 것인가는 그 후에 판단을 내리리라 생각했다. 주유는 조조를 깨칠 전략을 의논하자는 핑계로 작은 배 안에 머물고 있는 공명을 불렀다.

“싸움에서 군량은 매우 중요하오. 나는 조조 군의 양식과 마초가 모두 취철산(聚鐵山)에 저장되어 있음을 알아냈소이다. 번거롭겠지만 공명 선생께서 취철산의 군량 창고를 기습하여 조조의 양도(糧道)를 끊어주시기 바라오. 내 특별히 1천 군사를 내어주겠소.”

의논이 아니라 군령(軍令)이었다. 공명은 잠시 주유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무슨 생각을 했음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조조 군의 양식을 빼앗아오지요.”

주유는 공명이 쉽게 자기 꾀에 걸려드는 것을 보고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공명이 돌아가자 옆에서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던 노숙이 주유에게 타박하듯 말했다.

“아무리 공명이 기재라고는 하지만 철통같이 방비하고 있을 취철산의 군량 창고를 어찌 1천 군사로 불사를 수 있겠는가?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한 것 같네.”

그러자 주유가 깔깔깔 웃으며 대답했다.

“너무 염려하지 말게. 내 어찌 그것을 모르겠는가. 다만 공명의 재주를 시험해보자는 것뿐일세. 자네가 말한 것처럼 나는 공명이 그렇게 뛰어난 지략과 재주를 지녔다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네. 만일 공명이 양도(糧道)를 끊는다면 나는 기꺼이 공명이 천하 제일의 기재임을 인정하겠네. 하지만 끊지 못하고 돌아온다면 그에 관한 소문은 과장된 것이 틀림없네. 그 때는 짐짓 군령을 빙자하여 기를 꺾어주면 그만일세.”

요즘으로 치면 텃세를 부리는 것이다. 노숙 또한 손권을 섬기는 강동 사람이었다. 공명의 병법술이 얼마나 뛰어난지를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없는 노숙은 좋은 기회라 생각하며 호기심을 품고 가만히 공명의 거동을 살펴보았다. 자기 배로 돌아간 공명은 아무 고심하는 흔적 없이 군사와 말을 점검하며 떠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비책(秘策)을 마련해둔 것이 분명했다. 노숙은 그 비책이 무엇인지 궁금했다. 어차피 공명의 지모를 시험해보자는 것 아닌가. 그는 공명에게로 가서 물었다.

“조조 군의 양곡을 탈취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인데, 선생께서는 묘책이라도 있습니까?”

그러자 공명이 빙긋 웃으며 자신만만한 어조로 대답했다.

“나는 수전뿐만 아니라 보병전·기마전·병차전(兵車戰) 등 그 어느 싸움에도 묘리를 터득하지 않은 게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아무 걱정도 하지 마시오. 주랑이나 자경 선생같이 한 가지 싸움에만 능한 것과 비교하면 잘못된 생각입니다.”

노숙은 자신과 주유를 깔보는 듯한 공명의 말에 은근히 아니꼬운 마음이 일었다.

“나와 주공근이 어째서 한 가지 싸움밖에 모른다고 단정하는 게요?”

노숙의 반박에 공명은 더욱 거드름을 피우며 대답했다.

“내가 시상의 객관에 머물 때 거리에서 이런 노래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성을 지키는 데 뛰어난 것은 자경이요, 강에서 수전 잘 하기로는 주랑이 있네.’ 철없는 아이들의 노래라고는 하지만 터무니없이 지어낸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노숙은 속으로 불쾌한 마음이 일었지만 할 말이 없어 더 따지고 들지 않았다. 그는 주유에게로 돌아가 기분이 상한 듯 말했다.

“공명이 조금 재주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너무 거만하네. 강동 사람들을 너무 우습게 보고 있어.”

그러고는 공명에게서 들은 말을 그대로 들려주었다. 주유는 자존심이 강한데다가 다혈질의 사내였다. 금방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 자가 나를 깔보아도 너무 깔보는구나. 내가 어째서 수전밖에 모른다고 단정한단 말이냐. 좋다. 내 직접 1만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조조 군의 양도를 끊어보이겠다. 자네는 가서 공명에게 군사 내는 것을 그만두라고 전하게.”

노숙은 다시 공명에게로 달려가 출병을 중지하라며 주유가 직접 나서기로 했다는 말을 전했다. 그러자 공명이 껄껄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주공근의 성질이 불 같은 줄은 알았지만 그렇게 급할 줄은 몰랐습니다. 공근이 나를 시켜서 취철산의 양도를 끊으라고 한 것은 실상 나를 시험해보려고 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나도 한 번 주공근을 놀려준 것뿐인데, 그가 진짜로 알아듣고 군사를 내어 양도를 끊으러 간다고 하니 딱한 노릇입니다. 지금은 손 장군과 유황숙이 서로 한마음이 되어 힘을 합해야 할 때입니다. 서로 모해만 한다면 조조를 물리치기는 애당초 그른 일입니다. 자경 선생은 이 점을 주랑에게 잘 일깨워주면 고맙겠습니다.”

주유를 손바닥 안에 쥐고 노는 듯한 공명의 헤아림이었다. 노숙은 놀라다 못해 진땀을 흘렸다. 주유의 장난에 동조한 자신의 마음까지도 꿰뚫어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도저히 공명과 눈길을 마주칠 수가 없었다.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혜안이다.’

주유의 처소로 돌아온 노숙은 풀이 죽었다.

“왜 그런가?”

“공명은 귀신일세. 자네의 마음을 훤히 꿰뚫어보고 있었네.”

노숙에게서 자세한 말을 듣고서야 주유는 오히려 자신이 공명에게 놀아났음을 알았다. 분을 이기지 못하고 발을 동동 굴렀다.

“나는 아직 그 자의 재주를 인정하지 못하겠네. 기껏 남의 마음이나 훔쳐보는 재주를 지녔다고 해서 기재인 것은 아닐 테니까 말일세.”

“그런 시험은 이제 그만두는 게 낫겠네. 그가 천하의 기재라 한들 자네의 재능이 깎이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공명 말대로 지금은 조조를 깨뜨릴 계책을 세우는 것이 급선무 아니겠는가.”

노숙이 말렸지만, 그럴수록 주유의 오기는 더욱 치솟기만 했다.

공명의 선택 (169)…제14장 폭풍전야 (4)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뒤였다. 주유는 참모와 장수급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열었다. 그 자리에 공명도 참석했다. 회의가 끝날 무렵, 주유가 공명에게 눈길을 돌리며 엉뚱한 질문을 했다.

“물 위에서 싸우는 데는 어떤 무기가 가장 효과적이겠습니까?”

모두들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중에 공명이 서슴없이 대답했다.

“그야 활과 화살이 가장 좋겠지요.”

“과연 공명 선생다운 말씀입니다. 제 생각도 그러합니다만, 아쉽게도 우리 군중에는 화살이 매우 부족합니다. 부탁하건대, 공명 선생께서는 10만 개의 화살을 만들어 조조 군과 싸우는 데 차질이 없도록 하여 주십시오. 기간은 열흘을 주겠습니다.”

정중한 부탁 같았지만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그 자리에 있던 장수들과 참모들은 눈을 휘둥그레 뜨며 주유와 공명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 보았다. 화살 10만 개라면 어마어마한 물량이었다. 화살을 만드는 공방의 군사들을 총동원한 다 해도 몇 달이 걸릴 양이었다. 그것을 주유는 공명에게 열흘 동안에 만들어내라고 명하고 있는 것이다. 장수들은 당연히 공명이 거절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런데 공명의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다.

“도독께서 명하시는 일이니 힘을 다해 만들어보겠습니다. 하온데, 조조 군이 언제 싸움을 걸어올지 모르는 판국에 열흘은 너무 긴 듯합니다. 사흘 안에 10만 개의 화살을 도독께 갖다 바치겠습니다.”

가장 놀란 사람은 주유였다. 이 자가 미쳤나, 하는 눈길로 공명을 쳐다보다가 확인하듯 다시 말했다.

“군사(軍事)에는 공언(空言)이 없는 법입니다. 잘 헤아려서 대답해 주셔야 합니다.”

“제가 어찌 도독께 빈 소리를 하겠습니까? 정히 못 믿으시겠다면 군령장을 써서 바치겠습니다. 만약 사흘 안에 10만 개의 화살을 바치지 못하면 이 목을 내놓겠습니다.”

다른 장수들이 모두 경악하는 중에 노숙만이 주유가 또 공명을 시험하려 한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는 놀라기보다는 공명이 무슨 수를 써서 10만 개의 화살을 만들어낼 것인가에 궁금증이 쏠렸다. 이제까지 노숙은 공명의 지모와 재능을 여러 차례 보아왔다. 그런데 그 재능이라는 것이 모두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헤아리거나, 혹은 격동시키는 것들뿐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지략·지모라기보다는 말장난에 가까웠다. 주유가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시험은 그런 유가 아니었다. 어찌되었건 물품을 내보여야 했다.

‘만일 나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다. 회의가 끝난 후 노숙은 주유에게 물어보았다.

“자네라면 사흘 안에 10만 개의 화살을 만들 수 있겠는가?”

“사흘이 아니라 30일을 줘도 불가능할 걸세.”

“이번에도 자네를 격동시켜 모면하려는 것이 아닐까?”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네. 나는 오늘부터 아예 공명을 만나지도 않을 걸세. 자네 또한 내게 공명의 말이나 행동을 일체 전하지 말게. 그러면 그의 혓바닥에 놀아나는 일은 없을 게 아닌가?”

“그렇겠군. 그런데 여러 장수들이 보는 앞에서 군령장까지 받을 필요는 없지 않았는가. 설마 정말로 공명의 목을 베려는 것은 아닐 테지?”

그래도 노숙은 공명을 염려하는 마음이 컸다.

“군령장은 그가 스스로 원해서 쓴 것일세. 안 받을 까닭이 무엇인가? 죽이고 죽이지 않는 것은 그 때 가서 생각해볼 일이네.”

이렇게 말하는 주유의 입가에 싸늘한 웃음이 번져갔다. 노숙은 주유의 그러한 시기와 오기가 이해되지 않는 바 아니었으나 이번 일은 너무 심하다고 생각했다.

‘공명도 마찬가지다. 어찌 그리 잘난체를 하는가.’

노숙은 한편으로는 궁지에 몰린 공명을 고소해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염려가 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강동을 위해서라도 공명은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지만 노숙의 발걸음은 어느 새 공명이 머물고 있는 배로 향하고 있었다.

“어서 오십시오.”

공명이 선실 한가운데 앉아 있다가 반가운 표정으로 맞이했다.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한 듯한 표정이었다.

“거절하면 될 일을 어째서 그런 약속을 하였소?”

노숙이 타박하듯 물었다.

“주공근이 나를 시험하려고 마음먹고 있는데, 거절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화살을 정말로 만들 작정이오?”

“한 달 기한을 줘도 10만 개의 화살을 만들어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노숙의 물음에 공명은 어림도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리 공명이 하늘이 낸 기재라고 해도 사흘 만에 어찌 10만 개의 화살을 만들어낼 수가 있겠는가?’

노숙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며 동정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주랑에게 가서 못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공명은 그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잔잔한 눈길로 노숙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무엇이오?”

방법이 있다는 공명의 말에 노숙은 의심 반 기대 반의 눈빛으로 물었다.

“자경 선생께서 도와주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말씀해보시오. 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소. 단, 지난 번처럼 주랑을 격동시키거나 하는 따위의 방법은 통하지 않을 것입니다.”

공명은 빙긋 웃었다.

“그 점은 염려하지 마십시오. 다만 자경 선생께서는 제게 풀단을 가득 실은 빠른 배 20척과 노젓는 군사 50명만 빌려주시면 됩니다. 잘 익은 술 한 병이 있으면 더욱 좋구요.”

“그뿐이오?”

“그것이면 충분합니다. 나중에 선생께서는 저와 술만 마시면 됩니다.”

기대감에 차 있던 노숙은 완전히 의심하는 표정으로 변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만…… 속임수를 쓰시면 안 됩니다.”

“제가 어찌 자경 선생을 속이겠습니까?”

다음 날로 노숙은 풀단을 가득 실은 쾌속선 20척과 노젓는 군사 50명을 뽑아 공명에게 보내주었다. 그런데도 공명은 배에 마련한 자기 방에서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다. 아침저녁으로 황풍만이 그의 배를 들락거릴 뿐이었다. 운조의 일원이었던 황풍은 공명이 융중을 나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그의 심복이 되어 따라다니고 있었다. 황풍은 밤고양이 같은 사나이였다. 곁에 있는가 싶으면 어느 새 사라져버렸고, 사라졌는가 싶으면 어느 틈엔지 돌아와 곁에 서 있었다. 그 행동이 어찌나 은밀한지 감시의 눈길을 번득이고 있는 주유나 노숙조차 황풍을 단순히 시중드는 가복인 줄로 여기고 있을 정도였다.

공명의 선택 (170)…제14장 폭풍전야 (5)
이틀이 지났는데도 공명의 여유작작한 태도는 변함이 없었다. 노숙은 더욱 의심과 궁금증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도대체 무엇을 하자는 것일까?’

그런데 사흘째 되는 날 새벽 무렵이었다. 별안간 공명이 황풍을 보내 노숙을 청했다.

“무슨 일이오?”

노숙이 잠이 덜 깬 눈으로 달려와 물었다.

“이제 화살을 가지러 가야겠기에 자경 선생을 청한 것입니다.”

“어디로 화살을 가지러 간단 말이오?”

그러나 공명은 빙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강가에 대놓은 20척의 배를 둘러본 후 노젓는 군사들에게 영을 내렸다.

“동아줄로 20척의 배를 연결시켜 북편을 바라보고 저어라!”

노숙은 공명의 손에 이끌려 배에 오르긴 하였으나 마치 꿈을 꾸는 듯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강심에서 안개가 연기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본래 장강 일대는 안개로 유명했다. 많은 시인들이 이 곳 안개를 소재로 시를 짓기도 했다. 그런데 이 날 새벽의 안개는 특히 대단했다. 하늘과 강을 자욱하게 덮어 맞은편 사람의 얼굴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그 안개 속을 헤치고 20척의 배가 조조의 수채 가까이 이르렀다. 아스라이 조조의 전함들이 보이는 곳까지 이르렀을 때 공명이 별안간 영을 내렸다.

“뱃머리를 서쪽으로 두고 북을 쳐라!”

노숙이 기겁을 하는 중에 공명은 술병과 잔을 내었다. 북소리에 놀란 조조 군이 황급히 전선을 출동시켰다. 그러나 짙은 안개 뒤에 숨어 있을 복병을 경계하고 있음인가. 가까이 접근할 생각을 못 하고 적당한 거리에서 화살과 쇠뇌만 퍼붓기 시작했다. 그러나 공명의 배들은 모두 풀단으로 덮여 있었다. 날아온 화살들은 모두 풀단에 꽂힐 뿐 공명이나 군사들은 일체 상하지 않았다. 비로소 노숙은 공명의 생각을 알아챘다. 상상을 초월하는 기묘한 계책에 벌린 입을 다물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이 사람이야말로 정녕 신인(神人)이다!’

풀더미로 덮인 배 안에서 공명과 노숙은 주거니받거니 술잔을 나누었다. 밖에서는 여전히 화살과 쇠뇌가 빗발치듯 쏟아지고 있었지만 두 사람은 태평했다. 2만 명이 넘는 군사가 동원되어 쏘는 화살이었다. 공명이 이끄는 20척의 배는 삽시간에 화살로 뒤덮여 고슴도치가 되었다. 한 사람당 다섯 개의 화살만 쏘았을까. 짚단에 꽂힌 화살은 눈 깜짝할 사이에 10만 개가 넘었다.

“이제 슬슬 돌아가볼까요?”

안개가 걷히고 있었다. 북소리가 울렸다. 동아줄로 엮은 20척의 배들은 빠른 속도로 서쪽 강안을 향해 미끄러져 나갔다. 진채로 돌아온 노숙은 그 때까지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놀라움과 찬탄과 존경의 말이 절로 쏟아져나왔다.

“선생께서는 어떻게 오늘 아침 이처럼 짙은 안개가 낄 것을 짐작하셨습니까?”

노숙의 물음에 공명은 그림자처럼 서 있는 황풍을 흘깃 돌아본 뒤 태연하게 말했다.

“장수 된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천문, 지리, 기후, 기문(奇門), 음양, 진도(陣圖), 병세(兵勢) 정도는 두루 통달하고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미 며칠 전에 오늘 이 장강에 안개가 짙게 낄 것을 알았습니다. 다만, 하늘의 일을 속단할 수 없어 은근히 염려하고 있었는데, 이제 하늘이 도와 안개를 내었으니 아직은 이 양(亮)의 명이 다한 것 같지 않습니다.”

공명이 10만 개의 화살을 가져온 것에 경악하고 있던 주유는 노숙이 들려주는 말을 듣고 비로소 얼굴빛을 바꾸며 탄식했다.

“공명은 실로 하늘이 낸 기재임에 틀림없구나. 그의 빼어난 재주와 지략을 내 어찌 따를 수 있겠는가!”

그러고는 찾아온 공명의 두 손을 잡으며 감복한 얼굴로 말했다.

“선생의 신기막측한 헤아림은 실로 탄복할 만한 일입니다. 그 동안 선생을 시험한 것을 용서해주십시오.”

“안개를 이용해 사람의 눈을 속인 계책이 어찌 놀랍다 할 수 있겠습니까?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공명은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공명의 선택 (171)…제14장 폭풍전야 (6)
‘첫 관문을 넘었을 뿐이다.’

공명은 주유의 시험을 관문이라고 생각했다. 조조라는 적을 깨뜨리기에 앞서 주유라는 적을 승복시켜야 했다.

―단합. 동맹군의 첫 조건이었다. 그런데 강동 제일의 기재인 주유의 자존심은 쉽게 공명의 재능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계책을 내어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이대로 가면 조조를 깨뜨릴 수 없다.’

공명은 하는 수 없이 노숙을 이용해 주유의 오기와 시기심을 자극했다. 과연 주유는 수 차례에 걸쳐 공명의 재능을 시험해보려 들었다. 그 때마다 공명은 아는 듯 모르는 듯 그 시험을 받아주었다. 결국 주유는 두 손을 들었다.

‘이제는 조조 차례다.’

공명은 뱃전에 서서 멀리 장강 건너편을 바라보았다.

“주랑께서 찾으십니다.”

황풍이 서 있었다. 그를 만난 지 어느덧 10여 년이 흘렀다. 공명은 15세의 소년에서 28세의 장년이 되었다. 지나간 세월은 늘 꿈처럼 여겨지는 것인가. 예장의 시절은 아득한 추억이 되었다. 그런데도 황풍은 그 때의 모습과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었다.

“세월은…… 그대를 비껴가는 것 같군.”

“무슨 말씀이신지?”

“아닐세. 혼자 해본 소리네. 그보다도 방사원(龐士元)의 소식은……?”

“계속 탐문하는 중입니다. 강동 땅에 머물러 계시는 것만은 확실한 모양입니다.”

“꼭 찾아야 하네.”

“염려하지 마십시오.”

“바람은……?”

“어부들을 통해 계속 조사하고 있습니다.”

“나이 많은 어부일수록 바람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걸세.”

“명심하겠습니다.”

공명의 눈길이 잠시 강변의 갈대숲을 향하는 사이 황풍은 소리 없이 사라져갔다.

화공(火功)―. 공명이 주유에게 내놓은 계책이었다. 적병은 80만 대군이다. 적은 군사로 많은 군사를 당해내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불이었다.

“좋소이다.”

주유는 기뻐했다. 화공의 계책이 기발해서가 아니라 자기 생각과 같았다는 것이 기뻤다.

“조조는 불이라면 신물이 나 있는 사람이오. 화공에 대한 만반의 방비를 갖추어놓고 있을 것입니다. 배 한 척이라면 모를까, 7천 척이 넘는 배를 한꺼번에 불을 지를 수는 없는 일입니다.”

노숙이 반대하고 나섰다. 일리 있는 지적이었다. 화공은 공명이 즐겨 쓰는 수법이었다. 박망파 전투에서도, 신야성 전투에서도 공명은 불을 이용해 조조 군을 질겁하게 한 바 있었다. 조조 정도 되는 전략가가 또 화공에 당할 리 없었다.

“그렇군.”

주유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공명은 오히려 빙긋 웃었다.

“여건을 만들어야겠지요.”

“여건을 만든다?”

주유와 노숙이 동시에 공명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우리가 화공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두 가지 계책을 성사시켜놓아야 합니다.”

“……?”

“첫번째는 연환계(連環計)입니다.”

“그것이 무엇이오?”

“자경 선생의 말씀대로 넓은 강 위에서 불을 지른다고 해봤자 나머지 배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따라서 먼저 배들을 쇠고리로 서로 연결하여 흩어지지 못하게 해놓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연환계입니다.”

“화공에 대비하고 있을 조조가 우리를 돕기 위해 배들을 서로 연결시켜놓을 리가 만무하지 않습니까?”

노숙이 고개를 갸웃 흔들며 물었다.

“맞는 말씀입니다만, 조조 군의 태반은 북쪽에서 내려온 병사들입니다. 물에 익숙지 않아 배만 타면 멀미를 일으켜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입니다. 그러나 배를 쇠고리로 서로 연결해놓으면 요동이 거의 없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멀미도 하지 않을 겁니다. 이 점을 조조에게 깨우쳐주면 조조는 좋아라 하고 배들을 서로 엮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렇게만 된다면 오죽이나 좋겠습니까만, 누가 그 점을 조조에게 일깨워준단 말입니까?”

이번에는 주유가 물었다.

“그 점은 이 양(亮)이 생각해둔 바가 있으니 과히 염려하지 마십시오. 틀림없이 연환계를 성사시켜놓겠습니다. 문제는 두 번째 계책입니다.”

작전회의였으나 주유와 노숙은 어느 때부터인가 완전히 공명의 말에 빨려들고 있었다.

“두 번째 계책은 무엇이오?”

“사항계(詐降計)입니다.”

“사항계라면 거짓항복을 말함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이쪽 편 장수 중의 한 사람이 조조에게 거짓항복을 하여 조조 군 수채 안으로 들어간 후 고리로 연결해놓은 배에 불을 붙이자는 계책입니다.”

“말은 쉽습니다만, 조조가 사항계에 넘어갈 정도로 어리석지는 않질 않소?”

주유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공명의 말에 수긍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공명은 계속 말을 이었다.

“저도 사항계가 쉽게 성사될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습니다. 하지만 철저하게 일을 꾸민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생각해둔 묘계라도 있습니까?”

“동오 군의 알력다툼을 이용하면 조조도 반쯤은 믿을지 모릅니다.”

“동오 군의 알력?”

공명의 선택 (172)…제14장 폭풍전야 (7)
손권 진영의 장수들은 크게 두 세력으로 나뉘어 있었다. 하나는 정보, 황개, 한당 등 손견 시대부터 내려온 나이 많은 장수들이었고, 다른 하나는 주유, 노숙, 감녕 등 손책·손권 시대에 이르러 등장한 젊은 장수들이었다. 문제는 손권대에 이르러 소장파들의 활약이 눈에 띄게 두드러진 반면, 노장들은 뒷전에 서서 병참 일 따위와 같은 시시한 역할만 수행하는 데 있었다.

―주공이 우리를 너무 무시한다.

이런 불만이 노장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일었다. 이번 출전을 앞두고도 눈에 보이지 않는 알력이 있었다. 총사령관 격인 좌도독에 30대의 주유가 임명되고, 부사령관 격인 우도독에 50대의 정보가 임명되자 일부 노장들은 승복할 수 없다는 행동을 취한 바 있었다. 그 중 특히 우도독 정보는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냈다. 주유가 전 군사를 모아놓고 군령을 내리던 날에도 정보는 병을 핑계로 아들을 대신 내보냈다. 정보의 이러한 행동에 주유는 모르는 척 군령을 시달했으나 불쾌한 마음이 가슴 한구석에 새겨졌다. 적벽에 이르러서 두 장수가 진채를 각기 따로 세운 것도 이러한 앙금이 남아 있어서였다.

“우리도 조조 측에 첩자를 심어놓았듯이 조조도 우리 쪽에 첩자를 들여보냈다고 보아야 합니다. 어쩌면 조조는 이러한 동오의 내부 상황을 이미 상세히 파악해놓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강직하면서도 불만이 높은 노장 중의 한 사람을 선정하여 거짓 항서(降書)를 보내면, 조조를 온전히 속일 수는 없겠지만 반쯤은 속일 수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주유는 경악했다. 몸을 떨며 공명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가 제시한 사항계에 탄복해서가 아니었다. 손권 진영의 전체 분위기는 물론 극히 예민한 사항까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는 공명의 정보력과 식견에 두려움을 느껴서였기 때문이었다.

‘무서운 자다!’

그것은 공포였다. 주유는 자신의 꿈을, 야망을, 일생을 가로막을 자는 공명이다,라고 이 순간 단정했는지도 몰랐다.

―천하통일을 향하여!

허도를 출발할 때 조조가 전 군사를 모아놓고 외친 연설이었다. 그만큼 조조는 자신감에 차 있었고 마음은 고양되어 있었다. 그의 남진(南進)은 폭풍과도 같았다. 싸우지도 않고 형주를 떨어뜨리자 그는 더욱 상기되었다. 이제 궁지에 몰린 유비와 강동 땅의 손권만 굴복시키면 꿈에 그리던 패업 달성은 현실이 되는 것이다. 강릉에 입성할 때만 해도 그는 손권이 자신에게 항복할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동오에 잠입해 있는 첩자들의 보고는 정확할 것이었다.

―손만 뻗으면 온다.

그런데 느닷없이 그의 앞을 가로막는 자가 생겨났다.

―제갈공명!

처음에는 대단치 않게 여겼다. 박망파 전투도, 신야성 전투의 패배도 아군이 소홀히 한 탓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 공명을 달리 보기 시작한 것은 장판벌 전투에서였다. 잡았다고 미소를 지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어쩌면…….

이러한 일말의 불안감이 급기야 현실로 드러났다. 공명이란 자의 외교적 수완에 놀아나 손에 들어올 듯하던 손권이 푸르르 날아가 유비와 동맹을 맺었다. 눈앞에 바짝 다가왔던 천하통일의 야망이 주춤하는 순간이었다.

―예사로운 자가 아니다!

조조는 입술을 깨물었다. 80만 대군을 발진시켰다. 주변 상황은 조조에게 유리하지 않았다. 처음 치르는 수전(水戰)―배에 약했다. 풍토병에 군사들이 맥없이 쓰러져갔다…….

작은 배를 타고 수채 안을 순시하는 조조의 마음은 몹시 우울했다. 이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공명이란 자의 얼굴이 자꾸 눈앞에 어른거렸다.

공명의 선택 (173)…제14장 폭풍전야 (8)
‘돌아갈까……?’

그러나 조조는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그러기에는 평생의 야망인 패업 달성이 눈앞에 너무나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이번 싸움만 넘긴다면…….’

마지막 고비였다. 배에서 내리자 순유가 기다리고 있었다. 형 순욱과 달리 박력이 없어보이는 것이 흠이다. 말없이 그 곁을 지나 막사로 향했다. 순유가 조용한 발놀림으로 그 뒤를 따랐다.

“강 건너에서 사람이 왔습니다.”

들릴 듯 말 듯한 목소리였다.

“말해보게.”

역시 낮은 음성이었다. 남들이 보면 그저 말없이 걷는 모습일 뿐이었다.

“여전히 전대와 후대 사이에 보이지 않는 다툼이 일고 있는 모양입니다.”

전대라면 좌도독 주유가 이끄는 군사들을 말함이요, 후대란 우도독 정보의 군대를 말한다.

“총지휘권이 주유에게 있는 만큼 노장들이 홀대를 받고 있겠군.”

“그렇습니다.”

“성과는?”

“아직은 뚜렷이 드러난 것이 없습니다만…….”

얼마 전 조조는 첩자들을 강 건너로 대거 침투시켰다. 군사상 여러 가지 불리한 조건을 지니고 있다는 것은 조조 자신도 잘 알고 있었다. 속전속결이 첩경이었다. 그렇다고 전 전함을 거느리고 돌진하는 것은 너무 위험했다. 조조는 모험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승률이 8할은 넘어야 했다. 원정군과 지키는 자의 차이점이다. 허를 찔러 당황하게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자중지란(自中之亂).

동오 군의 내부를 어지럽히라는 밀명이 떨어지자 첩자들은 다각적으로 공작을 펴나갔으나 아직까지 별 성과를 거두지는 못한 모양이었다.

“계속 시도해보도록.”

“예.”

막사 앞에 이르렀다.

“그만 가보게.”

“예.”

그러나 순유는 막사 앞을 떠나지 않았다. 까마귀떼가 오림 숲 속을 날고 있었다.

“아직 남아 있는가?”

“예. 동오 군에 작은 사고가 일어난 모양입니다.”

문고리를 잡으려던 조조의 손이 멈췄다. 처음으로 뒤를 돌아다보았다. 순유의 눈길은 여전히 땅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은밀을 요할 때의 순유의 버릇이다.

“들어오게.”

조조가 문을 열었다.

“고맙습니다.”

탁자에 마주 앉아서도 순유는 입을 열지 않았다. 나름대로 신중을 기하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무엇인가, 사고란?”

“황공복(黃公覆)이…….”

공복은 동오 장수 황개의 자이다. 손견 시대부터 손씨를 섬겨온 노장이었다. 영릉군 천릉(泉陵) 출신이다. 주인을 위해 목숨을 돌보지 않고 싸움터를 누벼온 지 20년이 넘었다. 손견이 죽은 뒤에는 손책을 도와 강동의 기반을 닦았고, 다시 손책이 죽자 손권을 위해 충성을 아끼지 않았다. 그만큼 성품도 강직했다. 한때는 어린 손책과 주유에게 격검을 가르쳐주기도 했다. 검술 스승인 셈이다.

“주유에게 모욕을 당했다고 합니다.”

며칠 전이었다. 주유가 전·후대의 모든 장수를 불러놓고 엄한 명을 내렸다.

―원정군은 백만 대군이다. 하루 싸움으로 깰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모든 장수들은 각기 석 달치 마초(馬草)와 군량을 확보하도록 하라!

속전속결의 방침에서 지구전의 명이 내려지자 여기저기서 다른 의견이 쏟아져나왔다. 그 중 노장 황개가 가장 강경했다.

―조조 군은 지금 지쳐 있는데다가 풍토병에 걸려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소. 하루라도 빨리 결전을 벌이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외다. 이 달 안으로 격파하지 못하면 우리가 당할 것이오. 나는 주도독의 명에 따를 수가 없소!

맞는 말이었으나 그것을 따질 주유가 아니었다. 전 장수들이 보는 앞에서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했다. 치미는 성을 이기지 못하고 호령했다.

―나는 주공의 명을 받은 총지휘관이다. 내 명을 거역하는 것은 곧 주공의 명을 거역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군사들은 어서 저 자를 끌어내 목을 베도록 하라!

황개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네놈이 내게 검술을 배운 지 엊그제인데, 배은망덕도 유분수로구나. 네가 어찌 이리 나를 작게 보느냐!

주유는 더욱 펄펄 뛰며 참수형에 처할 것을 거듭 명했다.

놀라고 당황한 것은 그 자리에 있던 장수들이었다. 주유가 좌도독에 임명될 때부터 내심 지휘 계통을 불안히 여기긴 했지만 이렇듯 정면으로 붙을 줄은 몰랐다. 모두들 주유에게 달려들어 황개를 대신해 빌었다.

―황공복은 동오의 3대째 신하입니다. 도독께서는 그 점을 헤아려 너그러이 용서하십시오.

모든 장수들이 한결같이 말하자 주유도 마지못해 한 걸음 물러나며 외쳤다.

―여러 장수들의 체면을 생각해 목 베는 것은 잠시 뒤로 미루어두겠다. 그러나 명을 어긴 죄는 용서할 수 없다. 척장(脊杖) 1백 대를 때려 쫓아보내라!

척장이란 등을 때리는 형벌이다. 비록 참수형은 면했지만 늙은 황개에게 척장 1백 대는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장수들이 다시 나서서 말렸지만 주유는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끝내 형벌을 시행했다. 매를 다 맞고 난 황개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울 만큼 처참했다. 살가죽은 찢어지고 상처 부위에서는 붉은 피가 샘솟듯 솟아났다.

“매를 맞는 도중에는 몇 번이나 정신을 잃었다고 합니다.”

순유는 차분히 동오 진영의 일을 보고했다.

“황개가…… 그랬단 말이지?”

조조의 눈이 송골매처럼 빛났다.

“아직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있답니다.”

“그 황개에게 접근하자는 말인가?”

“해봄직한 일이라고 여겨집니다.”

“현재 그의 직위는?”

“무봉중랑장(武鋒中郞將)입니다.”

조조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순유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고육지책(苦肉之策)에 대한 가능성은?”

순유는 멈칫했다. 조조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고 있을 줄은 몰랐다는 표정이었다. 순유가 보고를 머뭇거린 것도 바로 그 점 때문이 아니었던가.

“반반입니다.”

“투항을 해온다 하더라도 반밖에 믿을 수 없다는 얘기로군.”

“현재로서는 그렇습니다.”

“그대 생각은 어떤가?”

“좀더 지켜보는 것이 나을 성싶습니다.”

순유는 신중했다. 승부를 거는 싸움에서 반의 확률은 모험일 수밖에 없었다. 조조는 다시 한참 동안 침묵했다. 깊은 생각에 잠기고 있음이었다. 이윽고 그의 눈에 섬광 같은 빛이 스쳐갔다.

“손을 내밀게!”

공명의 선택 (174)…제14장 폭풍전야 (9)
책을 읽고 있던 공명이 고개를 들자 앞에 그림자 하나가 서 있었다. 황풍이었다. 이틀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아 은근히 걱정하고 있던 참이었다.

“어디 갔다 오는 것인가?”

“봉추 선생을 찾았습니다.”

공명의 얼굴에 기쁜 빛이 돌았다.

“지금 어디에 있는가?”

“서산(西山) 암자에 와 계십니다. 이리로 모셔올까요?”

“아니. 내가 그리로 가는 것이 낫겠네.”

별이 총총히 박힌 밤이었다. 흐르는 장강 물결에 달이 떠 있었다. 갈대숲 사이로 작은 조각배 하나가 미끄러져 나왔다. 공명과 황풍이 탄 배였다. 조각배는 갈대숲을 이리저리 헤치더니 작은 구릉 아래에 닿았다. 황풍은 밤길에 익숙했다. 숲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잠시 걷자 산 속 바위 언덕에서 불빛이 하나 보였다. 암자는 작고 아담했다.

“저 방입니다.”

황풍은 불빛이 새어나오는 방 하나를 가리킨 후 어디론가 조용히 사라져갔다. 공명이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때 방통은 등불 앞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보는 지우(知友)의 모습이었다.

“공명!”

“사원!”

방통은 맹건이 조조를 찾아 허도로 간 직후 양양을 떠나 강동 땅으로 건너갔다. 손권에게 몸을 맡기고 자신의 뜻을 펴보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그의 기묘하게 생긴 외모 때문에 아무도 그를 천거하려 들지 않았다. 노숙만이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손권에게 천거했으나, 손권 역시 들창코에 짝눈인 방통의 못생긴 얼굴을 보고 고개를 돌렸다. 겨우 남군(南郡)의 승(丞) 자리를 내주었을 뿐이었다.

방통은 허허허 웃으며 남군으로 부임하여 일하다가 두 달 만에 훌쩍 사라졌다. 그 후 이곳 저곳 강남 땅을 떠돌아다녔다. 장강의 한 어부 집에서 여러 달 동안 묵기도 했다. 그런 중에 서서와 공명이 잇달아 유비에게 출사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침내 와룡이 세상 속으로 나왔구나.

그는 공명을 찾아갈까도 생각해보았지만 이제 와서 도로 양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내키지 않았다. 영릉의 한 주점에서 술에 취해 이리저리 뒹굴고 있는데 생각지도 않은 황풍이 찾아왔다.

―공명 선생께서 꼭 모셔오라고 했습니다.

―허허허, 와룡이 봉추를 부르는데 아니 갈 수 있겠는가.

대나무로 엮은 관에 낡은 도포 차림의 방통은 예전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3년 만의 해후였다. 방통이 공명보다 두 살 위였으나, 그들 사이에 나이는 별 의미가 없었다. 두 사람은 얼싸안다시피 재회의 기쁨을 나누었다.

“서원직의 일은 안 되었네.”

유비의 열렬한 호응자였던 서서가 노모 때문에 조조 진영으로 간 일도 방통은 이미 알고 있었다. 세상사에 대한 관심과 시국을 보는 안목은 양양 시절 못지않게 여전히 날카로웠다.

“조조의 안목이 뛰어나다고 봐야 하겠지.”

“그러나 원직은 결코 조조를 위해 일을 하지 않을 걸세.”

“나도 그렇게 생각하네. 지금쯤 원직도 강 건너 저편에서 우리를 생각하고 있겠지?”

공명은 서서에 대한 그리움에 젖은 듯 낮게 중얼거렸다. 방통도 옛 시절을 생각하고 있음인지 감상에 빠져 말했다.

“보고 싶군.”

순간, 공명의 두 눈이 반짝 하고 빛났다.

“자네 원직을 만나보고 오지 않으려나?”

방통의 눈매도 예리하게 빛났다.

“자네, 내게 무슨 부탁을 하려는 모양이로군.”

공명은 멋쩍었다. 껄껄껄 웃었다.

“과연 봉추 선생다운 안목일세. 사실은 자네가 나를 도와주어야 할 일이 있네.”

“나는 야인일세.”

“이제 주인을 찾아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는가?”

“유현덕 공 말인가?”

“보기 드문 영웅이시네. 조조나 손권과는 격이 다른 인물일세.”

“…….”

손권에게 이미 거절당한 방통이었다. 그는 침묵했다.

“유 사군에게 가져갈 선물을 내가 마련해주겠네.”

방통의 흔들림을 눈치챈 공명의 어조는 뜨거워져 있었다.

“무엇인가, 그 선물이라는 것이?”

마침내 방통의 입이 열렸다. 공명은 속으로 안도의 숨을 내쉬며 짤막하게 한마디 내뱉었다.

“연환계! 조조의 배들을 하나로 엮어주게.”

방통의 얼굴에 놀라움의 빛이 스쳐갔다.

“자네, 많이 대담해졌군.”

“유 사군의 모든 것이 달려 있는 싸움이네.”

“그것이 조조에게 먹혀들까?”

“자네라면 해낼 수 있을 것이네.”

방통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알겠네. 자네 말대로 서원직을 만나보고 오지. 하지만 아직 유현덕 공에게 마음을 정한 것은 아닐세.”

“고맙네. 어찌되었건 유 사군에게는 좋은 선물이 될 걸세.”

공명과 방통이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을 때 하늘 저편에서 별똥별 하나가 길게 흐르고 있었다.

공명의 선택 (175)…제14장 폭풍전야 (10)
‘걸려들었다!’

주유는 속으로 외쳤다. 공명과 노숙이 맞은편 의자에 앉아 있었고, 그 오른편으로 황개가 고통을 참느라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네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밀담이었다. 처음 주유는 공명도 부르지 않을까 하다가 노숙의 채근에 어쩔 수 없이 사람을 보냈다. 그만큼 비밀을 요하는 극비사항이었다.

―조조가 손을 뻗어왔소이다.

척장 1백 대를 맞고 누워 있는 황개의 막사에 낯선 군사 하나가 들어온 것은 불과 두 시간 전이었다. 눈동자가 수시로 움직이고 있었다. 황개는 대번에 조조 군의 첩자임을 직감했다. 아니나다를까. 그 병사는 방 안을 청소하는 척하면서 황개의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새는 나뭇가지를 잘 골라 앉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슨 뜻인가?

―주랑은 큰 새가 앉기에 너무 약합니다.

―부러지지 않는 가지도 있는가?

―있습니다.

―어떤 가지인가?

―조 승상입니다.

―생각해보겠네.

첩자가 방을 나가자 황개는 즉시 이 사실을 주유에게 알렸던 것이다.

“수고하셨습니다. 장군의 이 충정은 길이 강동 사람들의 뇌리에 기억될 것입니다.”

주유는 황개를 향하여 눈물을 뿌렸다. 곧 투항하겠다는 편지문이 작성되었다. 가지고 갈 선물은 군량(軍糧)으로 정했다.

“공명 선생께서 다시 한 번 읽어보시오. 의심을 살 만한 점이 있어서는 안 될 테니까 말이오.”

공명은 주유가 작성한 거짓항복 편지를 읽어보았다. 치밀하고 빈틈없는 계획이었다. 고육책을 생각해낸 사람은 주유였다. 황개가 자원했다. 모든 것이 극비리에 이루어졌고, 이제 마침내 투항 편지까지 작성하기에 이른 것이다.

“어떻소?”

주유가 자랑하듯 공명을 향해 물었다. 그런데 공명의 표정이 이상했다.

“조조는 양항(佯降=거짓항복)임을 알아챌 것이 분명합니다.”

찬물을 끼얹는 듯한 소리였다. 주유도, 노숙도, 황개도 모두 놀랐다.

“그게 무슨 소리요? 편지 내용이 잘못되기라도 했단 말이오?”

“아닙니다. 편지에는 아무 이상이 없습니다. 다만, 이대로 편지를 전달하면 조조는 황개 장군의 투항을 믿지 않을 것입니다.”

“자세히 말씀해보시오.”

노숙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채근했다. 공명이 세 사람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편지를 보내기 전에 황개 장군에게 접근한 첩자부터 죽여야 합니다. 쥐도 새도 모르게.”

황개는 3대째 내려오는 동오의 충성스런 신하다. 그런 그를 주유가 뭇 장수들이 보는 앞에서 형벌을 내리고 모욕을 주었다. 불만을 품을 것은 당연한 일이고, 어쩌면 조조 군에게 투항할지도 모른다는 염려를 주유는 가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황개가 조조에게 투항하면 동오 군은 무너진다. 그리하여 주유는 황개의 마음을 엿보기 위해 군사 하나를 보내 투항 운운하며 슬쩍 염탐해본다. 황개가 정말로 조조에게 투항할 마음을 지녔다면 한 번쯤 의심해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겠는가.

“첩자의 접근에 응해서가 아니라 황개 스스로 투항할 마음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 않는 한 조조의 눈을 속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황 장군은 조조의 첩자를 죽인 게 아니라 내가 보낸 첩자를 죽인 것이다, 이렇게 하자는 말씀이오?”

주유가 물었다.

“그렇습니다. 황개 장군은 이미 투항을 결심했다. 그런데 주유가 첩자를 보내 자신의 마음을 염탐하려 들었다. 당연히 그 첩자를 죽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유는 또 한 번 공명의 묘계에 아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으음…….”

의미를 알 수 없는 신음소리가 주유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공명의 선택 (176)…제14장 폭풍전야 (11)
“황개는 투항할 마음이 없는 모양입니다.”

순유는 어두운 표정으로 조조에게 보고하였다.

“응하지 않았다는 말인가?”

조조가 눈을 치켜뜨며 물었다.

“응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우리 편 첩자까지 죽여버렸습니다.”

그러자 조조가 별안간 고개를 젖히며 웃어댔다.

“이제야 강동이 내 손에 들어오게 되었구나.”

“그것이 무슨 말씀이십니까?”

순유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주유는 강동에서 제일가는 꾀주머니다. 만일 황개가 우리 측 제안에 선뜻 승낙을 했다면 그것은 주유가 시킨 사항계가 틀림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황개가 투항을 권한 사람을 죽였다는 것은 그가 정말로 우리 측에 마음을 두고 있다는 뜻이다. 이제 두고 보아라. 조만간 황개로부터 항복해오겠다는 편지가 올 것이다.”

조조의 말에 순유는 비로소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우리 승상이야말로 신인(神人)이나 다름없는 사람이다.’

조조 군의 수채와 잇닿은 오림 언덕의 한 막사―. 서서와 방통이 재회의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

“봉추 선생이 무슨 바람이 불어 여기까지 찾아왔는가?”

“나는 구름처럼 여기저기 돌아다닌다는 떠돌이 신세. 마침 이 근처를 지나다가 자네가 여기 머물러 있다는 소식을 듣고 불현듯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밥이나 몇 술 얻어먹으려고 이렇듯 찾아왔네.”

이렇게 말하고 방통은 무엇이 유쾌한지 껄껄껄 웃음을 터뜨렸다.

서서는 그런 방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목소리를 낮추며 물었다.

“자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작정인가?”

“내가 어때서?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즐거움을 자네가 알기나 하는가?”

“그만 주인을 정해 정착할 때도 되지 않았는가?”

서서는 진심어린 표정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러나 방통은 손가락으로 연방 콧구멍을 후비면서 큰 소리로 대답했다.

“이 넓은 천지에 영웅호걸을 자칭하는 자들이 많다고는 하지만 아직 이 봉추를 알아보는 영웅은 보지 못했네. 이 어찌 가소로운 일이 아닐 수 있겠는가?”

“목소리가 너무 크네.”

다른 할 말을 마음 속에 품고 있던 서서는 눈을 끔벅이며 턱으로 바깥을 가리켜보였다. 감시의 눈길이 있음을 알려주는 신호였다. 그러나 방통은 그러한 서서의 신호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전히 목소리를 크게 하여 떠들어대고 있었다.

“손권이라는 자는 정말 몹쓸 자네. 그 밑의 막료들도 모두 한심한 자들뿐이더군.”

서서도 방통이 손권을 찾아갔다가 거절당했다는 소문을 듣고 있었다. 손권의 사람 보는 눈을 알 수 있는 일이었으나, 서서와는 하등 관계가 없었다. 오히려 그는 잘 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방통의 재능을 잘 알고 있는 그로서는 진작부터 유비를 권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방통의 음성이 너무 크다. 서서는 초조한 눈길로 다시 한 번 방통을 일깨워주었다.

“우리의 대화는 모두 조조의 귀에 들아가네.”

한껏 목소리를 낮춘 말이었다. 그런데도 방통은 더욱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떠들어대었다.

“방금 강 건너에서 오는 길일세. 하지만 유황숙은 너무 궁하네. 역시 영웅의 자질은 없다고 보아야 하네.”

게다가 이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서서는 잠시 방통의 기묘하게 생긴 얼굴을 바라보다가 퍼뜩 방통이 일부러 큰 소리로 떠들어대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강 건너에서 오는 길……?’

공명을 만나고 오는 길임에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공명의 선택 (177)…제14장 폭풍전야 (12)
서서는 빠르게 머릿속을 굴렸다. 방통의 짝눈이 싱긋 웃고 있었다.

‘공명이 일을 꾸미고 있구나.’

비로소 그는 방통의 방문이 우연이 아님을 알아챘다.

“손권도, 유비도 아니라면 조 승상은 어떤가?”

이제 서서의 목소리도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방통의 짝눈이 다시 한 번 싱긋 웃었다. 두 사람의 눈길이 뜨겁게 허공에서 부딪쳤다.

“조맹덕은 어리석은 인물이네. 나를 탐낼지언정 역시 받아주지는 않을 걸세.”

막사 밖의 그림자는 바싹 긴장하고 있으리라. 이번에는 서서가 소리 없이 웃었다.

“조 승상이 어리석다니? 조 승상은 신인이나 다름없는 사람일세.”

“하하하. 자네 눈에는 신인으로 보일지 모르겠으나, 내 눈에는 삼척동자보다도 못한 위인으로 보이네.”

“자네는 무슨 근거로 그렇게 말하는가?”

“이번 일만 보아도 알 수 있네. 조맹덕은 이번 싸움에 임하면서 두 가지 큰 잘못을 범하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어찌 어리석다고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두 사람의 호흡은 잘 맞아떨어지고 있었다.

“두 가지 잘못이라니? 나는 자네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네. 이보다 더 치밀한 배치는 있을 수 없네.”

“나는 그런 따위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닐세. 자네는 서량(西凉) 소식을 듣지도 못했는가?

지금 서량 땅의 마등과 한수가 조맹덕이 없는 틈을 타 허도를 치기 위해 군사를 일으킨다는 소문이 파다하네. 그런데도 조맹덕은 1만 리 밖에 나와 주유 하나 처치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고 있으니, 이 어찌 어리석다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서는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자네 말이 사실이라면 그야말로 큰일 아닌가?”

“큰일은 무슨 큰일? 지금이라도 곧 자네 같은 모사에게 군사 3천을 내주어 산관(散關)으로 내보내면 마등과 한수는 찔끔하여 몸을 움츠릴 것을.”

방통의 말에 서서는 속으로 몹시 기뻐했다. 유비의 진영을 떠난 이래 그는 어떻게 하면 이 곳에서 몸을 빼낼까 고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방통의 말대로 한다면 조금도 조조의 의심을 사지 않고 강남 땅에서 몸을 빼낼 수가 있을 것이었다.

“고맙네. 내 곧 조 승상께 말씀드려 북쪽의 일을 해결하겠네.”

“어리석은 조조가 자네 말을 들을지 모르겠군.”

다분히 바깥의 그림자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서서가 어찌 그것을 모르겠는가.

“조 승상은 잘못된 것을 알면 곧 수습할 줄 아는 사람이네. 그건 그렇고 두 번째 잘못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서서의 물음에 방통은 신바람이 나서 입에 침을 튀기며 대답했다.

“조맹덕의 군사는 태반이 북방군일세. 수전에 약할 뿐 아니라 뱃멀미 때문에 활도 제대로 쏘지 못할 지경일 것일세. 그런데도 아무런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으니, 이야말로 어리석은 자의 소행이 아닐 수 없네. 조조는 이번 싸움에서 질 것이 분명하네. 나는 야인으로 살면 살았지, 이런 조맹덕을 위하여 일생을 바칠 생각은 추호도 없네.”

“그것은 자네가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일세. 조 승상도 그 점을 가장 근심하고 계시는 중이네.”

“하하하…… 알고만 있으면 뭘 하는가? 그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지.”

“그렇다면 자네는 멀미를 예방할 수 있는 묘책이라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자네는 내가 조조 같은 사람인 줄 아는가?”

“무엇인가, 그 예방책이라는 것이?”

서서는 한껏 은밀을 가장하여 물었다.

“말해줄 수 없네.”

방통이 고개를 저었다.

“어째서?”

“나는 조조를 위해 계책을 내주지 않겠네.”

“그렇다면 나를 위해서라도 말해주게나.”

“어린아이들도 다 아는 일인데, 자네 정말 알지 못하는가?”

“모르겠네.”

“하는 수 없군. 자네이니까 말해주겠네. “

“고맙네.”

“배가 흔들리는 것은 장강의 물결에 비해 배가 작기 때문일세. 따라서 크고 작은 배를 30척이나 50척씩 쇠고리로 연결하여 널빤지를 깔아두면 배도 흔들리지 않을 뿐 아니라, 배와 배 사이를 군사들이 땅 위를 달리듯 다닐 수가 있을 게 아닌가. 아마도 풍랑이 몰아쳐온다 해도 끄덕없을 것일세.”

그 말을 듣는 순간 서서는 정말로 깜짝 놀랐다.

‘화공이로구나.’

이토록 무시무시한 계책이 있을까. 서서는 공명의 얼굴을 눈앞에 떠올리며 탄복하듯 중얼거렸다.

“놀랍군!”

그러나 막사 밖의 그림자는 그 탄성을 다르게 해석했음이 분명했다. 미세하게 인기척을 일으키더니 재빠르게 사라져갔다. 방통의 짝눈이 씨익 웃고 있었다.

“이제 그만 가보아야겠군. 조조가 나를 찾기 전에 말일세. 나머지 일은 자네가 알아서 처리해주게. 구름처럼 떠도는 사람이라고 얘기하면 더 찾지 않을 걸세.”

그러고는 낡은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표표히 언덕 너머 숲 속으로 사라져갔다.






<공명의 선택> 15장 적벽의 풍운
<공명의 선택> 13장 강동으로 건너간 공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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