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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공하후패(2001-01-11 22:55:24, Hit : 3601, Vote : 322
 <공명의 선택> 10장 마침내 세상속으로
공명의 선택 (132)…제10장 마침내 세상속으로 (1)
“아―!”

초당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유비는 깜짝 놀랐다. 키가 8척이 넘는 장신이었다. 얼굴은 관옥같이 희고, 머리에는 윤건을 썼다. 의복은 학창의 (鶴敞衣)다. 구름 위를 표표히 거니는 신선의 자태였다. 그러나 유비가 놀란 것은 공명의 그러한 자태 때문만은 아니었다. 공명의 얼굴―두어 해 전, 방모를 엮으며 시름을 달래고 있던 자신을 찾아와 천하 다툼의 야망을 일깨워주고 형주의 힘을 키울 비책까지 일러주고 홀연히 떠나갔던 바로 그 젊은 선비였음을 알아보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품안으로 날아들었던 용을 놓쳤구나.’

유비의 마음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것일까. 공명은 빙그레 웃고 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귀하신 분께서 이렇듯 궁벽한 곳까지 찾아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소생 제갈량이라 합니다.”

분명 처음이라고 했다. 유비는 대뜸 공명의 마음을 읽었다.

“유비입니다. 탁군의 어리석은 촌부가 선생의 크신 이름을 우레처럼 들어온 지 오래입니다. 이제야 뵙게 되니 그 감격을 뭐라 형언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러고는 느닷없이 큰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이쯤 되면 당황하는 것은 오히려 공명 쪽일 수밖에 없었다.

“양양 땅의 한낱 야인(野人)으로 살다 보니 무례하고 게으른 것이 버릇이 되었습니다. 여러번 장군께서 찾아주셨음에도 스스로 찾아가 뵙지 못하고 다시 이렇게 오시게 하니 실로 큰 죄를 지었습니다.”

공명 역시 황망하게 마주 절하며 지난날의 일을 사죄했다. 유비로서는 그간의 고생이 말끔히 씻겨나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이렇게 수인사가 끝났다. 황용이 차를 끓여 내왔다. 이제 두 사람은 본격적으로 마주 앉았다. 대화의 결론은 이미 정해져 있다.

―세상 속으로 나와 나를 도와주시오.

―좋습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장군을 위해 일하겠습니다.

유비는 공명의 출사를 권하기 위해 여기에 온 것이고, 공명은 유비의 권유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기에 초당 안으로 맞이한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이러한 상대의 마음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도 그들은 긴장해 있었다. 결론을 향하여 어떻게 말문을 풀어나갈 것인가. 대뜸 권하 고, 대뜸 응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유비에게도, 공명에게도 마지막 관문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지금까지의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도 있는, 지극히 위험한 관문이기도 했다. 시험은 아니었다. 각기 다른 악기를 들고 조화롭게 화음을 맞춰야 하는 2인 합주라고나 해야 할까. 그 첫 음을 낸 사람은 유비였다.

“사마휘 선생과 서원직에게서 선생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천하를 능히 다스릴 만한 능력을 지니신 분이라고.”

먼저 상대를 높인다. 무난한 출발이었다.

“수경 선생이나 서원직 같은 이는 실로 일세(一世)의 높은 선비입니다만, 저 같은 사람은 한낱 밭 가는 농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천하 운운할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겸양의 음(音)을 내었다. 멋진 화음이었다.

“두 분의 말씀이 어찌 허담(虛談)이겠습니까. 선생께서는 어리석은 이 유비를 위해 크신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먼저 장군의 뜻을 듣고 싶습니다.”

“한왕실은 기울어지고 간신들은 제각기 나라를 빼앗으려 하고 있습니다. 이에 유비는 스스로의 힘도 헤아리지 못하고 대의(大義)를 천하에 펴보려 하였으나, 지혜와 재주가 없어서 지금까지 이룩해놓은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선생께서는 이 같은 저의 어리석음을 깨우쳐주시고, 앞으로 닥쳐올 환란을 막아주시면 그보다 더한 다행이 없겠습니다.”

두 사람은 이제 긴장을 풀고 본격적인 연주로 들어갔다.

“장군께서는 조조를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강합니다.”

“옳게 보셨습니다. 조조는 원소에 비해 모든 면에서 부족했음에도 불구하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운도 따랐겠지만, 무엇보다도 지략이 뛰어난 사람들을 잘 썼기 때문입니다. 조조는 이제 자타가 인정하는 천하 제일인자의 형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런 조조와 정면으로 싸워서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요?”

“막히면 찰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기다린다 함은……?”

“힘을 기른다는 것이겠지요.”

“방법을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상, 중, 하, 세 가지 계책이 있습니다.”

“그 세 가지 계책이라는 것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상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장군께서는 먼저 이 곳 형주를 손에 넣으셔야 합니다. 형주는 군사상의 요충지입니다. 북으로는 한수(漢水)와 면수(沔水)를 껴안고 있고, 남으로는 남해(南海)와 교역을 하여 이득을 취할 수가 있습니다. 또한 동쪽으로는 장강을 따라 오군(吳郡)과 회계(會稽)까지 길이 열려 있으며, 서쪽으로는 파촉과 땅이 통하고 있습니다. 가히 군사를 한 번 길러볼 만한 땅입니다. 그런 후에 강동의 손권과 동맹을 맺고, 나아가 파촉의 땅을 손에 넣으면 천하는 조조와 손권과 장군께서 솥발처럼 받드는 형세를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이처럼만 되면 조조인들 두려울 것이 무에 있으며, 오히려 기회를 보아 낙양과 장안으로 진출하면 가히 천하를 손에 넣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말만 들어도 가슴이 탁 트일 만큼 호쾌하고 시원스런 계책이었다.

공명의 선택 (133)…제10장 마침내 세상속으로 (2)
유비는 넋이 나간 듯 가을 물결같이 맑고 수려한 공명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다만, 한 가지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공명은 그런 유비를 일깨우듯 음성을 높였다.

“무엇이오, 어려운 점이?”

“장군께서 형주를 취할 자신이 있으신지요?”

비로소 유비는 현실로 돌아왔다. 군사력을 묻고 있는 게 아님을 어찌 그가 모르랴. 유비의 얼굴에 그늘이 서렸다. 합주를 시작한 후 첫번째 맞는 고비였다. 화음이 깨질 수도 있었다. 어떤 대답이 나올까. 공명도 긴장했다. 이윽고 유비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유경승은 나를 두터이 대해주었소.”

“하지만 유표의 가신들은 장군을 눈엣가시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공명은 즉각적으로 말을 받았다. 유표가 자주 병석에 눕게 된 뒤로 채모, 괴월, 한숭 등은 노골적으로 유표의 뜻에 반하고 있었다. 심지어는 유표의 주변에 첩자까지 심어놓았다. 그들은 유표의 안전을 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안전을 도모하고 있었다. 어쩌면 조조에게 형주를 바칠지도 모를 일이었다. 공명은 그 점을 깨우쳐주고 있었으나, 유비는 여전히 고개를 흔들었다.

“나는 여포가 되고 싶지 않소.”

웃었다. 웃지 않아야 할 대목에서 유비는 웃음을 흘린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공명에게는 매우 아름다운 웃음으로 비쳤다.

‘절묘한 대답이다.’

이제야 유비의 실체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는 공명이 넋을 잃고 유비의 웃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중책은 어떤 것이오?”

유비의 재촉에 공명은 정신을 차렸다.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나서 다음 말을 이었다.

“손권입니다.”

“강동의 손권?”

“그 곳에 뿌리를 내린 지 이미 3대째입니다. 손씨의 본고장이기도 합니다. 손견, 손책이 다져놓은 세력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을 뿐 아니라 사방으로 수로(水路)가 복잡하여 수비하기에 적합한 곳이지요. 조조만큼 강하지는 않습니다만, 백성들이 명령에 잘 따르고, 군사들은 물에 익숙합니다. 지모가 뛰어난 막료들도 상당한 모양입니다.”

“선생의 가형께서도 그 곳에서 활약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제갈근을 말함이었다. 유비의 말에 공명은 잠시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었다.

“손권과는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그를 적으로 삼아서는 장군께서는 결코 중원으로 진출할 수가 없습니다.”

“조조와는 맞서고, 손권과는 동맹이라…….”

“그런 후에 형주를 취하고, 그 다음 역시 파촉을 손에 넣어 물자를 비축하여 낙양으로 향하는 것이 중책입니다.”

“좋군요.”

유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 무엇이 좋다는 것인가. 귓불이 흔들리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하책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공명은 찻잔을 들어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유비도 목을 축였다.

“일단 형주를 버리고 익주로 가는 것입니다. 익주는 험준하지만 옥토가 천 리나 뻗어 있는 천부(天府)의 땅입니다. 한고조께서도 그 땅에서 일어나 천하를 이룩하였습니다. 제업(帝業)과 인연이 깊은 곳이지요. 군사와 물자를 비축해 힘을 기르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맞춤한 땅입니다. 그럼에도 그 곳의 주인인 유장은 어둡고 나약하여 잘 다스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을 귀하게 여기지 않아 많은 선비들의 불만을 사고 있는 모양입니다. 밝은 주인을 원하고 있습니다. 장군께서는 황실의 후손인데다가, 신의와 덕망이 사해(四海)에 널리 떨쳐 있습니다. 뭇 영웅들 가운데 으뜸이십니다. 파촉 사람들이 바라고 기다리는 밝은 주인이 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보아주시니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 곳에서 여러 해 지내면서 군사를 기르고 식량을 비축합니다. 그런 후에 손권과 동맹을 맺고 형주를 차지합니다. 그리하면 역시 조조, 손권과 더불어 솥발 같은 형세를 이루게 되고, 기회를 보아 낙양으로 향하면 천하 대업은 쉽게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것들이 제가 장군을 위해 꾀할 수 있는 세 가지 계책입니다.”

공명은 말을 마치고 유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눈길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유비의 가슴은 격동하고 있었다. 공명의 수려한 얼굴을 보고 있자니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세 가지로 말씀하셨지만, 결국 하나이군요?”

유비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옳게 보셨습니다.”

상책이든 중책이든 하책이든 요체는 하나였다.

―조조와 손권과 유비!

천하의 형세를 이러한 삼각 구도로 이루어가자는 것이 공명이 말하고자 하는 바였다. 이른바 ‘천하삼분(天下三分)의 계(計)’이다. 스물 대여섯의 나이로 몸을 일으켜 고향을 떠난 지 30년. 갈 길은 까마득한데 아직 변변한 근거지조차 마련하지 못한 유비였다. 더욱 서글프고 안타까웠던 것은 지나간 세월보다 아무런 대책도 없는 앞날이었다.

―천하삼분의 계.

그런데 이제 공명의 한마디로 자신이 가야 할 길을 훤히 보게 된 것이었다. 어찌 피가 끓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두 사람의 합주는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었다. 유비도, 공명도 자신이 내야 할 음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다.

“선생의 말씀을 들으니, 구름과 안개를 헤치고 푸른 하늘을 바라보는 듯한 느낌입니다. 제가 비록 미미하고 덕이 엷으나 선생께서 비천하다 버리지 마시고 산을 내려와주신다면, 이 유비 마땅히 선생의 밝은 가르치심을 따르겠습니다.”

“양(亮)은 오랫동안 호미 들고 밭 가는 것을 낙으로 삼아왔습니다. 세상 일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유비의 청에 공명은 빙그레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유비는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말을 기다리고 있었기라도 한 듯, 즉각 눈에서 굵은 눈물방울을 떨어뜨렸다.

“선생께서 나오지 않으시면 억조창생은 어찌하란 말씀입니까?”

순간, 공명은 굉음을 들은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어마어마한 음향이요, 감동적인 대단원이 아닐 수 없었다.

―억조창생은 어찌하란 말씀입니까?

이 한마디에 공명은 합주가 끝났음을 알았다. 더 이상의 말은 군더더기였다. 생각했던 것보다 유비는 더 큰 사람이었다.

‘막을 내릴 차례이다.’

공명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장군께서 끝내 저를 버리지 않으신다니, 이 제갈량 견마(犬馬)의 수고로움을 다하겠습니다.”

용이 구름을 타는 순간이었다.

공명의 선택 (134)…제10장 마침내 세상속으로 (3)
공명이 유비의 막하로 들어와 받은 직함은 군사중랑장(軍師中郞將). 서서와 같은 직위였다. 상당한 파격이었다. 요즘으로 치면 ‘깜짝 등용’이었다. 서서 때도 그랬다. 그러나 서서만 하더라도 조인을 물리치고 번성을 함락시킨 공을 세운 뒤 군사(軍師)의 지위에 올랐었다. 그런데 공명은 융중에서 나오자마자 군사의 반열에 올랐다.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했고, 능력도 검증받지 못했다.

공명이 ‘와룡’이라 불릴 정도로 뛰어난 재능을 지녔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알아본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나의 지모와 식견은 관중에 뒤지지 않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명의 이 말을 듣고 코웃음쳤다. 허풍쟁이라고 단정했다. 어떤 이는 ‘건방진 놈’이라고 욕을 해댔다.

관중이 누구이던가. 춘추시대 때 제나라 환공을 도와 어지러움을 종식하고 천하패업을 이룬 명재상이 아닌가. 한때는 제환공을 죽이기 위해 활을 쏜 적도 있었다. 제환공이 공자 시절 때의 일이었다. 그러나 제환공은 임금에 오르자 그 관중을 과감하게 발탁했다. 물론 포숙의 천거에 의해서였다.

―관중은 기재입니다. 그가 지난날 자신의 공자를 위해 주공에게 활을 쏘았지만, 그를 쓰게 되면 그는 이번에는 주공을 위하여 천하를 향해 활을 쏠 것입니다.

이리하여 제나라 재상에 오른 관중은 포숙의 말대로 놀라운 식견과 지략을 발휘하여 제나라를 다스렸고, 주변의 오랑캐를 모두 평정함은 물론 여러 나라를 굴복시켜 제환공에게 ‘패공’이라는 영광스런 칭호를 안겨주었던 것이다. 그런데 감히 융중의 촌뜨기 공명이 자신을 이러한 관중에 비유하고 있으니, 어찌 가소롭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장인인 황승언이 동서이자 의형인 형주목 유표에게 공명을 천거했으나 유표가 거절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공명의 허풍은 더욱 사실로 받아들여졌다. 극소수를 제외하곤 어느 누구도 공명의 재능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유비의 군사가 되었으니 시끄러울 만도 하였다. 별별 억측이 나돌았다. 양양 인사들은 심심치 않은 화젯거리가 생겨서 좋았다.

―공명의 허풍에 좌장군이 당했군.

―좌장군이 먼저 공명에게 손을 내민 모양이네. 세 번이나 공명의 집을 찾아갔다더군.

―나도 삼고초려에 대한 소문을 들었네.

―좌장군의 안목도 알 만하군. 얼마나 사람 보는 눈이 없으면 그런 허풍선이를 세 번씩이나 찾아갈까.

―궁색하면 그렇게 되게 마련일세. 아까운 사람 하나 버렸군.

양양 일대 곳곳에서 이런 대화들이 오가고 있을 때, 유비는 눈만 뜨면 공명을 옆에다 붙들어놓고 천하의 일을 의논하는 데 빠져 있었다. 밥을 먹을 때도 공명과 한 탁자에서 먹었고, 나들이할 때도 언제나 공명과 말머리를 나란히 하였다. 내부에서도 반발이 일었다. 그 주동 세력이 관우와 장비였다. 그들은 유비가 공명의 초려를 세 번씩이나 찾아갈 때부터 공명을 몹시 못마땅하게 여겼었다. 더욱이 공명이 나타나기 전까지만 해도 그 두 사람은 유비의 가장 가까운 측근이요, 실세였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새파란 애송이가 끼여들어 유비를 차지해버리니, 여간 고깝고 눈꼴이 신 게 아니었다.

유비에 대한 섭섭한 마음도 뭉게구름처럼 일었다. 그러던 어느 날, 관우와 장비는 기어코 유비를 찾아가 불만을 터뜨렸다.

“우리는 아직 공명의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도 형님께서는 너무나 그를 우대하십니다. 냉정을 찾으십시오.”

유비는 그들의 마음을 짐작했다. 그러나 이미 공명의 능력에 대해 굳게 확신이 서 있었다. 이 기회에 공명의 지위를 분명히 해두고 싶었다.

“나는 공명을 얻은 후에 마치 고기가 물을 얻은 것 같은 느낌을 받았네. 고기는 물을 떠나서는 살 수가 없지. 자네들은 두 번 다시 공명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지 말게.”

‘수어지교(水魚之交)’란 말은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관우와 장비는 유비의 단호한 말에 더 이상 입을 열지 않고 물러났으나, 공명에 대한 불만은 여전히 가슴 속에 응어리져 남았다.

공명의 선택 (135)…제10장 마침내 세상속으로 (4)
북쪽을 염려했으나 동쪽이 오히려 소란했다. 손권이 군대를 일으켜 형주 땅의 하나인 강하를 공격해온 것이다. 유비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일이었으나, 공명과 서서는 머리를 맞댔다.

“역시 황조(黃祖)를 노린 복수전이겠지?”

서서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나도 그렇게 보네. 이번이 벌써 다섯 번째인가?”

“아마도 그럴 걸세.”

“집요하군.”

“당연하지 않겠는가? 아버지를 죽인 원수이니 말일세.”

벌써 언제의 일이었던가. 십여 년 전, 손견은 형주의 유표를 공격하다가 양양성 밖 현산 골짜기에서 황조에 의해 돌무더기에 깔려 죽었다. 그 뒤 그 아들 손책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 호시탐탐 황조를 노렸다. 두 번에 걸쳐 황조를 싸움터로 끌어냈으나, 두 번 모두 군대만 풍비박산시켰을 뿐 황조를 사로잡는 데는 실패했다.

손책이 암살당하고 그 동생 손권이 강동 땅의 주인이 되었다. 그 역시 아버지의 원수 황조를 그냥 놔두지 않았다. 건안 8년(203년), 형에 이어 세 번째로 강하성을 들이쳤다. 황조의 수군을 격파하고 강하성 함락을 눈앞에 둔 상태에서 후방에 반란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군사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다.

3년 후 다시 서정군(西征軍)을 발진시켰으나, 이번에는 어머니 오씨가 위독하다는 급보를 받았다. 싸움다운 싸움도 해보지 못하고 강동으로 돌아갔다.

“이번에야말로 쉽게 돌아가지 않겠군.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기 전, 손중모(仲謀=손권의 자)는 맹세했다더군. 아버지의 원수를 반드시 갚겠다고.”

유비가 두 번째로 공명을 방문했을 때, 공명은 강동 땅에 가 있었다. 제갈근의 부름을 받고서였다. 제갈근은 공명에게 양자(養子) 얘기를 꺼냈다. 나이 스물일곱이면 적은 나이가 아니었다. 그런데 공명은 아직 아들을 두지 못했다. 제갈근은 자신의 둘째아들 교(喬)를 양자로 내주겠다고 제안했다.

―다음에 다시 얘기하지요.

공명은 쓸쓸히 웃으며 대답했었다.

제갈근은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형주 땅은 불안하다. 아버지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라도 손중모는 결코 형주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에게 맹세를 했을 정도로 황조를 미워하고 있다. 이 곳으로 건너오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 그 때 공명은 어쩌면 지금쯤 유비가 자신의 초려를 방문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황조가 위험하군. 차라리 양양으로 불러들이는 것이 낫지 않을까?”

서서가 대안을 제시했다. 그 말에 공명은 회상에서 깨어났다.

“그렇게 해서는 이 곳 양양까지 소란해질 걸세. 유표의 가신들은 황조를 내버려둘 것이네.”

“황조만 죽이고 돌아간다. 그렇게 보는 것이로군.”

공명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강하성 전투는 그들이 예상했던 대로 돌아가고 있었다. 손권의 군사는 10만 대군이었다. 주유(周瑜)를 대도독에 임명했고, 선봉에는 여몽(呂蒙)을, 부장(副將)에는 동습(董襲), 감녕(甘寧)을 세웠다. 황조도 손권의 침공을 예상하고 있었다. 만반의 태세를 갖추어놓았다.

전투는 면구(沔口)에서 벌어졌다. 하구(夏口)라고도 부른다. 장강과 한수가 만나는 곳―수전(水戰)이었다.

황조가 거느린 배는 ‘몽충(蒙衝)’이라는 배였다. 선체 전체가 가죽으로 덮여 있고, 좌우 측면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활과 노를 쏘는 구멍이었다. 전형적인 전투함이었다. 여차하면 적선을 들이받기도 한다. ‘몽충’이라는 이름도 그래서 붙여진 것이다. 반면, 동습·감녕 등이 거느린 배들은 쾌속선이었다. 커다란 몽충과 작은 쾌속선의 싸움이었다. 아무래도 몽충이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전개되어나갔다.

그런데 쾌속선들이 몽충 사이를 돌아다니며 불화살을 날리면서부터 전세는 역전되었다. 면구 전투는 손권 군의 승리였다. 이제 싸움은 육상전으로 변했다. 손권 군은 손견의 원수를 갚기 위해 집중적으로 황조에게로만 달려들었다. 그 점을 잘 이용할 수도 있었으나, 황조는 전술에 그다지 밝지 못했다.

그는 결국 손권 군의 공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강하성을 탈출하여 형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채 20리도 못 가서 감녕의 군사들에게 앞길이 가로막혔다. 있는 힘을 다해 포위를 뚫으려 하였으나 결국 감녕이 쏜 화살에 등을 맞고 죽었다.

복수는 끝났다. 손권은 황조의 목을 높이 매달고 강하성으로 들어갔다. 정세 분석에 뛰어난 장소(張昭)가 그런 손권에게 권했다.

―강하는 외로운 성입니다. 지키기 어려우니 버리고 강동으로 돌아가는 것이 낫겠습니다. 기껏 빼앗은 땅을 다시 내놓고 돌아가기가 아까웠으나 손권은 과감히 군사를 돌려 강동으로 향했다.

공명의 선택 (136)…제10장 마침내 세상속으로 (5)
“남풍도 만만치가 않군.”

“주유는 꽤 호전적일세. 지모도 뛰어나고.”

그 날도 공명과 서서는 주변 정세에 대해 자신들의 생각을 교환하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은 그다지 밝은 편이 아니었다.

“손권은 결코 형주를 포기하지 않을 걸세.”

“워낙 중요한 땅이니까.”

“북풍은?”

“아직은 아니라고 보네. 하지만 대비는 해놔야 하겠지.”

“복안이라도 있는가?”

서서는 공명의 얼굴에 눈을 고정시켰다. 조조가 대군을 몰고 남하할 경우 공명은 과연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그에 대한 해결책을 서서는 아직 구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주공의 성품으로 보아 형주를 취하지는 않으실 테고…….”

공명의 눈길이 허공을 향했다.

“형주만 취할 수 있다면 그렇게 고민할 일도 아니지.”

“달아나는 수밖에 없겠군.”

공명이 중얼거렸다.

“달아난다?”

서서는 놀랐다. 공명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올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문제는…… 어디로 달아날 것인가?”

“자네도 역시 달아날 궁리를 했었군.”

서서는 웃었다. 쓴웃음이었다. 그 때였다. 심부름하는 군사 하나가 달려와 유비의 말을 전했다.

“주공께서 군사를 찾으십니다.”

공명과 서서는 동시에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느 군사?”

“대(大)군사님입니다.”

공명의 키는 8척 장신, 서서는 5척 단신이었다. ‘대군사’라 함은 공명을 호칭하는 말이었다. 당연히 서서는 ‘소(小)군사’라 불리었다. 두 사람 모두 입가에 웃음을 담았다.

“헷갈리는군.”

“가보게. 나는 번성을 다녀와야겠네.”

막사를 나온 서서는 번성으로, 공명은 유비에게로 갔다. 유비가 공명을 보자마자 말했다.

“유경승에게서 급히 와달라는 전갈이 왔는데, 무슨 일 때문이겠소?”

공명이 지체 없이 대답했다.

“아마도 강동의 군사가 황조를 죽인 일 때문일 겁니다. 주공을 청해 강동을 칠 계책을 의논하려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제가 함께 모시고 가서 방책을 일러드리겠습니다.”

유비는 곧 양양성을 향해 떠났다. 유표의 가신들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몰라 특별히 장비에게 5백 군사를 주어 뒤따르게 했다. 가는 도중에 유비가 다시 물었다.

“나보고 강동을 치라고 하면 뭐라 대답하는 것이 좋겠소?”

“손권과는 결코 원수를 맺어서는 안 됩니다. 신야로 돌아가 군마를 정돈해보아야겠다는 정도로만 대답하셔도 충분합니다.”

양양성이 보이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공명이 느닷없이 유비를 돌아보며 물었다.

“만일 유경승이 주공에게 형주를 내어주겠다고 말한다면 주공께서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유경승이 내게 그런 말을 할 리가 있겠소?”

“만일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런다면…… 형주를 취하실 수 있겠습니까?”

“…….”

유비는 대답 대신 물끄러미 공명을 바라보았다. 공명은 그 눈길의 의미를 이내 알아챘다.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양양성에 당도했다. 유비와 공명은 객관에 짐을 풀고 곧 유표를 보러 들어갔다. 자리에 앉아 있었으나 얼굴에는 병색이 더욱 짙었다.

유표는 처조카사위인 공명을 보자 묘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자네가 유공에게 출사했다는 소식은 들었네.”

공명이 고개를 숙이며 조용히 대답했다.

“재주가 부족하여 잘 모실지 두려울 따름입니다.”

유표는 공명의 대답을 듣는 둥 마는 둥 고개를 끄덕이다가 유비를 돌아보며 말했다.

“황조가 손권의 수하 장수들에게 죽임을 당하고, 강하성과 하구 일대는 쑥대밭이 되었다고 하오. 그 어린 놈이 나를 우습게 본 게 틀림없소. 마음 같아서는 당장에라도 강동으로 쳐들어가고 싶으나, 유공도 알다시피 나는 병이 몸에서 떠나질 않고 있소. 바라건대, 유공께서 나 대신 원수를 갚아주시오. 군사와 배는 충분히 빌려드리겠소.”

공명이 짐작한 대로 강동의 일이었다. 유비는 곰곰이 생각하는 척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군사를 일으켜 강동을 치는 것은 어렵지 않으나, 그 틈을 타 조조가 내려온다면 그 일을 어떻게 감당하시겠습니까?”

유비는 거절하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유표를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옆에 앉아 있던 공명조차 깜짝 놀랄 정도로 절묘한 대답이었다. 유표는 잠시 그런 유비를 바라보다가 길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유공의 말이 맞소. 나는 이제 늙고 병들어 형주를 다스릴 힘도 없구려. 강동 치는 일은 그만두고 아예 이 곳으로 옮겨와 나를 도와주는 것이 어떻소? 내가 죽은 뒤에도 유공이 이 땅을 맡아 주인이 되는 것이 좋겠소. 그것이 형주를 위해서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전부터 해보았소.”

마치 이 곳으로 오는 도중 나누었던 공명와 유비의 대화를 듣기라도 한 듯한 말이었다. 유비는 깜짝 놀라 두 손을 내저었다.

“형님께서는 어찌하여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형님은 아직 건재하십니다. 두 번 다시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공명은 한편으로는 유표를 살피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유비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러나 유비는 그런 공명을 못 본 척 서둘러 유표에게 작별인사를 던지고 관사를 나왔다. 객관으로 돌아온 공명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혼자 탄식했다.

“쉬운 길을 놔두고 먼 길을 돌아가게 생겼구나.”

공명의 선택 (137)…제10장 마침내 세상속으로 (6)
―먼저 형주를 취하고, 손권과 동맹을 맺은 후에 파촉으로 들어간다.

공명이 유비에게 설파한 바 있는 ‘천하삼분의 계’ 중 상책의 순서였다. 그러나 그 상책은 유비의 어짊으로 인해 이루어지기가 힘들게 되었다.

‘그렇다면 중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손권과의 동맹, 그런 후에 형주와 파촉이다.

손권과 동맹을 맺기 위해서는 몇 가지 사전 준비가 필요하다. 그 첫번째로, 형주를 떠나야 했다. 유표에게 의지한 채로 동맹을 맺는다는 것은 배신이나 다름없었다. 배신은 천하의 인심을 잃는다. 인심을 잃은 군웅은 결코 천하를 손에 잡을 수 없다. 여포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형주를 떠나면 어디로 갈 것인가?’

공명은 고심하고 있었다. 서서에게는 ‘달아난다’는 말로 표현했었다. 조조는 강하다. 그의 대군이 남하하면 어쩔 수 없이 형주를 떠나야 한다. 달아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유비가 형주를 취할 마음이 없는 한, 어찌됐든 그들은 형주를 버려야만 했다. 밖에 인기척이 일었다. 시동의 발소리다.

“무슨 일이냐?”

“유 공자(公子)께서 오셨으니 잠시 건너오라는 분부이십니다.”

유 공자라면 유표의 장남 유기(劉琦)가 분명했다. 천성이 어질고 부지런하였으나 강건하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몸도 마음도 약했다. 어려서 생모를 잃고 계모 채씨의 손에서 자랐다. 공명과 성장 과정이 비슷하다. 공명은 아버지까지 여의었다.

계모 채씨 부인에게서 동생 유종(劉琮)이 태어나면서부터 유기는 따돌림을 받기 시작했다. 유표의 가신들은 어느 새 두 파로 갈라져 있었다.

―유기파(派)와 유종파.

유기파는 대부분 타지(他地) 출신들이었고, 반대로 유종파는 형주 출신들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향토 출신들이 실권을 장악해갔다. 채씨 부인과 그 동생 채모의 입김이 많이 작용했다. 후계자 문제가 본격적으로 거론되면서부터 유기는 더욱 곤경에 처했다. 계모 채씨의 눈에 유기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였다. 유기가 없다면 자신의 아들 유종이 유표에 이어 자연스럽게 형주의 주인이 될 것이다. 그를 제거할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고립무원―.

유기의 처지가 그러했다. 심지어는 생명의 위협마저 느끼고 있었다. 보호자가 필요했다. 유비는 타지 출신이었다. 객장(客將)이라고는 하지만 인망도 두터웠다.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일었으리라. 유비를 찾는 일이 잦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쳤을 때, 공명의 머릿속으로 섬광 같은 빛이 스쳐갔다.

‘강하 정도라면 적당하지 않을까.’

공명은 방을 나서 유비의 처소로 향했다. 짐작대로였다. 유기의 눈은 젖어 있었다. 그는 엎드려 울며 유비에게 하소연했을 것이다.

―계모가 이 몸을 용납하지 않으니 목숨이 조석간에 달려 있습니다. 숙부께서는 이 조카를 불쌍히 여기시어 구해주십시오.

유비는 뭐라 대답했을까. 딴전을 피우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렇게 대답했음에 틀림없다.

―그 일은 조카의 집안일이네. 내게 물어본들 무슨 대답을 해주겠나?

그래도 유기가 소매를 놓아주지 않자 공명을 부른 것이 분명했다. 골치 아픈 일을 떠맡기려는 유비의 능청스러운 속셈이 공명은 오히려 우습게 생각되었다. 웃음이 터져나오려 했으나 유기의 젖은 눈을 보고 겨우 참았다. 아니나다를까. 유비는 공명을 보자마자 반가운 기색으로 맞았다.

“여기 조카가 몹시 어려운 처지에 빠져 있소. 군사께서는 조카를 위해 계책을 마련해주실 수 있겠지요?”

그러나 공명은 이미 마음에 작정해둔 게 있었다. 고개를 내저으며 대답했다.

“이것은 집안일입니다. 제가 참견할 일이 아닌 듯합니다.”

유기는 풀이 죽어 방을 나갔다. 유비가 바래다 주러 나가며 유기에게 귓속말로 일러주었다.

“공명은 반드시 묘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내일 공명을 보낼 터이니 붙잡고 졸라보아라.”

유기는 유비에게 여러 차례 감사의 뜻을 표하고 돌아갔다.

공명의 선택 (138)…제10장 마침내 세상속으로 (7)
다음 날이었다. 유비는 공명을 불러 전날 방문한 답례로 유기에게 술 한 병을 갖다 주라고 부탁했다. 모든 것이 바라는 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공명은 빙그레 웃으며 술병을 받아 유기가 거처하는 곳으로 갔다.

유기는 반갑게 맞이하며 공명을 후원 정자로 인도했다. 사다리를 타고 오르내려야 할 정도로 높은 누각이었다. 누각에는 주안상이 차려져 있었다. 공명이 올 것을 예상하고 차려놓은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공명은 모르는 척 유기와 마주 앉아 술을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중 어느 때인가 유기가 별안간 닭똥 같은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공명의 손을 잡았다.

“평소 선생의 높으신 학식과 지략에 대해 많이 들어 한 번 뵙기를 소원하고 있었습니다. 이 기는 계모에게 미움을 받아 조만간 죽을 목숨입니다. 선생께서는 부디 저를 위해 좋은 계책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손[客]으로 온 사람입니다. 어찌 골육간의 일을 간섭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이 일이 밖으로 새어나간다면 오히려 해가 더 클 것입니다. 경솔히 행동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말하고 공명은 손을 떨치고 일어나 정자 아래로 내려가려고 했다. 그런데 어느 틈에 치워놓았는지 사다리가 보이질 않았다.

‘이건 지나치군.’

공명은 이런 계교를 낸 유비의 얼굴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 때 유기가 다시 공명의 옷자락에 매달리며 애원했다.

“지금 이 곳은 하늘로 오를 수도 없고, 땅으로 내려갈 수도 없습니다. 천지 사이에 선생과 저 둘뿐입니다. 선생의 말소리는 오로지 제 귀로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내려 주십시오.”

공명은 그런 유기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얼굴빛을 고치며 입을 열었다.

“알겠소. 일단 자리에 앉읍시다.”

유기는 자리로 돌아가 공명의 입만 쳐다보았다.

“부탁드립니다.”

공명은 정자 아래 후원의 뜰을 둘러보며 지나가는 말처럼 중얼거렸다.

“옛날 신생(申生)은 안에 있어 목숨을 잃었고, 중이(重耳)는 밖에 있어 안전했지요.”

그것뿐이었다. 이것이 무슨 말인가. 유기는 재빠르게 머릿속으로 생각을 움직였다. 신생은 춘추 시대 진(晋)나라 헌공(獻公)의 아들이다. 중이 역시 진헌공의 아들로서, 신생의 동생이기도 하다. 신생은 세자였고, 중이는 공자 신분이었다. 진헌공은 말년에 여희(驪姬)라는 여자에게 빠져 아들 해제(奚齊)를 낳았다. 여희는 자신의 소생인 해제를 세자로 세우기 위해 여러 가신들과 짜고 신생과 중이를 제거할 모략을 꾸몄다. 역모의 누명을 씌워 두 공자에게 사약을 보냈다.

‘여기까지는 나와 똑같은 상황이다.’

세자 신생의 측근들은 그에게 다른 나라로 망명하여 후일을 도모할 것을 권했다. 그러나 신생은 망명을 거절했다.

―아버님을 버리고 어찌 나라 밖으로 도망갈 수가 있겠는가. 나의 억울함은 언젠가 풀릴 것이다. 깨끗하게 죽겠다. 그러곤 여희가 보낸 약을 먹고 죽었다. 반면에 중이는 여희가 보낸 사자의 눈을 피해 담장 밖으로 달아났다. 사자는 칼을 휘둘렀지

만 중이의 옷소매만 잘랐다. 중이의 방랑 생활 20년. 떠돌아다니기도 참 많이 떠돌아다녔다. 그러곤 고국으로 돌아와 왕위에 올랐다. 그의 나이 62세. 그가 바로, 제환공(齊桓公)에 이어 두 번째 패업(覇業)을 달성한 진문공(晉文公)이다.

‘안에 머물러 있던 신생은 죽었고, 밖으로 나간 중이는 살았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유기의 눈은 반짝였다. 얼굴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다.

“공명 선생!”

기쁨에 겨워 절을 하려는데 공명이 제지하며 물었다.

“어디로 가실 작정이오?”

“차차 생각해보겠습니다.”

강동의 손권이나 파촉의 유장 정도가 적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언뜻 했다.

“강하가…… 아마도 비어 있지요?”

역시 지나가는 말투였으나 유기는 심상히 흘려듣지 않았다.

“강하는 형주 땅입니다.”

“중이 때와는 사정이 다르겠지요. 밖은 밖이되, 양양성 밖 정도면 충분합니다. 그래야…….”

언제든지 후일을 도모할 수 있을 게 아니냐는 공명의 말이었다. 유기의 눈이 번쩍 빛났다. 공명은 단순히 망명의 지혜를 가르쳐주려는 것이 아니라 그 다음 순서까지 일러주고 있었다. 강하는 군사 요충지이다. 강동을 경계하려면 군사를 길러야 했다. 군사를 모집하고 군량을 비축하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일 것이다. 명분도 있다. 힘을 기른 후에 기회를 보아 양양성으로 입성하면…… 영락없는 진문공의 귀환이었다. 유기는 이제야 살 길이 보이는 것 같았다.

“황조의 후임으로 강하 태수를 자청한다면 채모도 반대하지 않을 것입니다. 채모는 채모대로 공자가 험지로 나가기를 바라고 있을 테니까요.”

공명이 마지막으로 누르듯 한마디했다.

“선생의 가르치심은 절대로 잊지 않겠습니다.”

유기는 몇 번이고 절을 올린 후 사다리를 가져오게 했다. 며칠 후, 공명은 유기가 강하 태수에 임명되어 양양성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제 남은 것은 북풍뿐이로군.’

공명의 선택 (139)…제10장 마침내 세상속으로 (8)
조조는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그 동안 내려온 삼공 제도를 폐지하고 모든 권한을 승상으로 일원화하였다. 새로운 인물들

을 두루 등용하여 좌우에 거느렸다. 모개(毛价), 최염(崔琰), 사마의(司馬懿) 같은 이가 바로 그들이었다. 그 중 특히 사마의는 장래에 크게 쓸 신진 재목이었다. 사마의의 자는 중달(仲達). 하내 온(溫) 땅 사람이었다. 그의 할아버지 사마전(司馬鐫)은 영천 태수를 지냈고, 아버지 사마방(司馬防)은 경조윤을 역임한 바 있다. 그의 형 사마랑(司馬朗) 역시 주부 벼슬을 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를 따라 허도로 올라왔다가 조조의 눈에 들었다. 학식을 높이 사서라기보다는 임기응변에 뛰어난 그의 재주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순욱의 뒤를 이을 재목이다.’

그러나 아직 중책을 맡기지는 않았다. 문학연(文學椽)이라는 한직에 두었다. 내정도 내정이려니와 조조는 바깥일에 더 관심을 쏟았다.

―손권이 황조를 공격해 죽였답니다.

―유표는 아들 유기를 강하 태수에 임명하여 경계를 강화한 모양입니다.

남쪽의 일들이 속속 보고되었다.

“강동과 형주의 싸움인가?”

조조는 가는 눈을 반짝 빛내며 물었다. 기대에 찬 듯한 표정이었다.

“그렇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손권은 곧 강하에서 철수했고, 유표 또한 군사를 내지 않았다고 합니다.”

순욱이 조용히 대답했다.

“약은 놈들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들은 승상의 남정(南征)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조조가 턱수염을 쓸어 만지다가 문득 생각난 듯이 물었다.

“유비는?”

순욱이 그런 조조를 바라보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또 유비 병이 도지셨군.’

조조가 경계해야 할 군웅들은 아직 도처에 산재해 있었다. 강동의 손권과 형주의 유표는 물론 서량의 마등, 한중 땅의 장로, 파촉의 유장 등은 모두 언젠가 담판을 지어야 할 당세의 실력자들이었다. 그런데도 조조는 유독 가장 보잘것없는 유비에 대해 언제나 신경을 곤두세우곤 하였다. 그것을 순욱은 조조의 ‘유비 병’이라고 표현했다.

“최근 제갈량이라는 선비를 새로 영입하여 군사로 등용한 모양입니다.”

“제갈량?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군. 어떤 사람이오?”

서서에게 한 번 당한 적이 있는 조조였다. 그를 빼내려다 실패한 조조는 아직 서서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서서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유비에게 서서 같은 인재가 있는 것을 참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또 다른 인재를 거두어 군사로 삼았다고 하니 궁금함이 일지 않을 수 없었다. 순욱은 잠시 망설이는 듯하다가 자신이 알아본 공명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제갈량의 자는 공명, 도호(道號)는 와룡 선생이라고 합니다. 낭야국 양도 사람인데 어려서 부모를 잃고 예장 태수 제갈현에 의해 자라난 모양입니다. 양양의 융중에 숨어 살며 학문을 닦았는데, 그 재주가 하늘을 주름잡고 땅을 뒤엎을 만하다 하여 와룡이라는 도호를 얻었다 합니다.”

“누가 천거했소?”

“서원직이 천거한 모양입니다. 세 번씩이나 그의 초려를 방문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조조가 별안간 껄껄껄 웃었다.

“그렇다면 공명에 대한 소문은 허풍이오. 과히 근심할 바가 못 되오.”

“무슨 근거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서서가 말하기를, ‘나는 반딧불이요, 공명은 보름달이다.’라고 극찬했을 정도의 인물이라면 상당히 뛰어난 지략을 지닌 기재가 아니겠습니까?”

순욱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조조가 웃음을 머금고 대답했다.

“사람이란 말이오, 내 마음이나 다른 사람의 마음이나 똑같게 마련이오. 나보다 뛰어난 사람을 천거하기란 말처럼 그리 쉬운 일이 아니오. 서서는 유비의 군사(軍師)가 아니오? 그런 그가 자신의 지위를 위태롭게 하면서까지 자기보다 뛰어난 사람을 천거할 리가 있겠소? 나라도 그렇게는 하지 않을 것이오. 그래서 공명에 대한 소문이 허풍이라고 단정한 것이오.”

“과연…….”

공명에 대해서는 순욱 자신도 잘 알지 못했다. 조조의 말을 듣고 보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역시 공명의 능력에 대해서는 일말의 의심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군사를 내실 작정이신지요?”

“당연한 일 아니오? 30만 대군으로 일거에 쓸어버리겠소.”

“친히 나가시렵니까?”

“유비가 무릎 꿇는 모습을 직접 보고 싶소.”

“하후돈을 보내십시오. 군사는 10만이 적당합니다.”

“어째서?”

“승상께서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면 강동의 손권과 형주의 유표가 불안해합니다. 연합하여 대항하면 어려운 싸움이 됩니다.”

“수군이 있질 않소?”

“수군의 훈련이 아직 덜 진행되었습니다. 이번 싸움은 신야까지만입니다. 그래야 유표와 손권이 끼여들지 않습니다. 유비를 잡은 후에 형주, 그 다음에 강동을 취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조조는 비로소 순욱의 말을 알아들었다. 무릎을 치며 탄복했다.

“과연 그대는 나의 장자방이오.”

공명의 선택 (140)…제10장 마침내 세상속으로 (9)
하후돈의 10만 대군 출병 소식은 곧장 신야성으로 날아들었다. 유비는 급히 공명을 찾았으나 전날 서서가 있는 번성으로 건너갔다는 심부름꾼의 대답이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

사람을 번성으로 보내는 한편, 대책을 의논하기 위해 관우와 장비를 불렀다. 그런데 그들의 태도가 전과 달랐다.

“공명에게 가서 막으라고 하면 될 것을 무에 그리 걱정하십니까?”

‘수어지교’에까지 비유하며 공명만 싸고돌던 유비에 대한 비꼼이었다. 내분이라면 내분이었다. 그 때 공명은 서서와 함께 술잔을 나누고 있었다. 서서의 집에서였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술잔만 만지작거리고 있을 뿐 좀처럼 입으로 가져가지 않았다.

“자네, 나를 신경쓰는 것인가?”

“신경이 아니라 의논일세.”

공명은 이틀 전에 이미 황풍으로부터 하후돈의 출병 소식을 들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서서의 얼굴이었다. 번성으로 달려와 서서에게 조조의 남침을 알렸다. 그런 공명의 행동에 담긴 속마음을 서서가 어찌 눈치채지 못할 리 있겠는가.

“자네 말을 믿기로 하지. 하지만 다음부터는 이러지 말게. 내가 자네를 천거한 것은 진심이었네.”

“내 어찌 자네 마음을 모르겠나? 나로서는 자네의 도움이 필요할 뿐이네.”

“좋아. 무엇인가? 자네가 어려워하는 것이.”

“상대는 조조 군일세. 그것도 10만 대군이네.”

“수군(水軍)은?”

“수군은 출병하지 않았네.”

“그렇다면 유 사군만을 노린 출병이로군. 손권과 유표에게는 도움을 기대하기가 어렵겠군.”

서서가 중얼거렸다.

“10만 대 2만일세. 매복계(埋伏計)를 쓸 수밖에 없겠지.”

“화공(火功)까지 곁들이면 더욱 효과적일 테지.”

“과연 원직답군.”

“그 정도라면 자네도 이미 다 생각해놓은 것일 테고……, 문제는?”

“관우와 장비일세.”

공명의 말에 서서는 뜻밖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들이 어째서?”

“아까도 말했지만 상대는 조조의 10만 대군일세. 아무리 작전이 치밀해도 그것을 이행하는 장수의 마음이 흐트러져 있으면 패배하게 마련이네. 그런데 관우와 장비는 지금 나를 신뢰하지 않고 있네.”

서서는 비로소 공명이 자신을 찾아온 까닭을 알아챘다.

“그래서 나보고 총지휘를 하라는 것인가?”

“바로 그거네. 자네 말이라면 관우와 장비도 군소리 없이 따를 게 아니겠나.”

“언젠가는 부닥쳐야 할 일 아닐까?”

“이번 싸움은 유 사군에게 매우 중요하네.”

“그러니까 더욱 자네가 전면에 나서야 할 것이 아닌가?”

“내가 나서면 패배할 걸세.”

“내게 좋은 생각이 있네. 이대로만 하면 관우와 장비도 자네 지휘를 따르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네.”

그러고는 공명의 귓전에 대고 잠시 속삭였다. 다 듣고 난 공명은 활짝 웃으며 무릎을 쳤다.

“좋은 계교일세.”

말발굽 소리가 요란하게 들리더니 서서의 집 앞에서 멈췄다. 서서가 공명을 돌아보며 말했다.

“대군사를 부르러 온 모양일세.”

“소군사도 함께.”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웃었다.

“하후돈이 대군을 이끌고 신야성을 향해 쳐들어온다고 하는데, 이를 어찌하면 좋겠소이까?”

유비는 공명과 서서를 보자마자 매달리듯 물었다.

“주공께서는 아무 염려 하지 마십시오. 공명이 이미 다 대책을 마련해놓았습니다.”

서서가 유비를 안심시켰다.

“그게 사실이오?”

유비는 공명을 돌아보며 확인하듯 물었다.

“그렇습니다. 주공께서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공명은 말하다가 말꼬리를 흐렸다. 유비가 얼른 물었다.

“다만, 무엇이 문제요?”

“관우와 장비가 제 영을 잘 따르지 않을까 두렵습니다. 대저 병권이란 삼군의 지휘권이요, 최고 책임자의 위세입니다. 만일 지휘권자가 그 권한을 잃고 위세를 지니지 못한다면, 이는 물고기와 용이 강호(江湖)를 벗어나 헤엄치려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어찌 파도를 헤치며 강물을 가로지를 수가 있겠습니까? 주공께서 만약 이 양(亮)을 믿으신다면 주공의 보검(寶劍)과 패인(牌印)을 잠시 제게 내려주십시오.”

유비는 공명이 말하려는 바를 금방 알아챘다. 지체 없이 병권의 상징인 보검과 패인을 끌러 공명에게 내주었다. 공명은 곧 사람을 보내 모든 장수를 장청(將廳)에 불러모았다. 관우와 장비는 못마땅한 얼굴로 장청으로 들어왔다. 공명이 주변 지도를 펼쳐놓고 각 장수들에게 준엄한 목소리로 영을 내렸다.

“박망파(博望坡) 왼편으로 산이 하나 있는데 이름을 예산(豫山)이라 하오. 그 오른편으로는 숲이 있는데 이름하여 안림(安林)이라 하오. 두 곳 모두 군사를 숨겨둘 만한 곳이오. 관운장은 1천 군마를 거느리고 예산에 매복해 있으시오. 적병이 지나가더라도 공격하지 말고 그대로 통과시켜야 하오. 그러면 얼마 안 있어 남쪽 산에서 불이 일 것이오. 그 때 산을 나와 적의 병량과 무기를 빼앗아 몽땅 태워버리시오. 아시겠소?”

관우는 가타부타 대답 없이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런 관우를 못 본 체 공명은 계속 영을 내렸다.

“관평(關平)과 유봉(劉封)은 마른 나무와 풀을 준비해 박망파 뒤편으로 돌아가 숨어 있다가 초경 때 적병이 당도하거든 얼른 사방에 불을 놓으시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장익덕은 1천 군마를 거느리고 안림 속에 매복해 있다가 남쪽에 화광이 일거든 일거에 뛰쳐나가 적의 병량을 모조리 태우시오.”

장비 역시 냉소를 머금은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공명 또한 그런 그를 무시하고 조운에게로 눈길을 돌렸다.

“조자룡은 선봉장을 맡아주시오. 단 명심해야 할 것이 있소. 절대로 이기려 하지 마시오. 아시겠소?”

“예.”

대답은 했지만, 조운의 얼굴에도 미심쩍어하는 기색이 역력히 드러났다. 각 장수들에게 임무를 부여한 공명은 비로소 유비를 돌아보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주공께서는 서원직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뒤에 계시면서 후원만 해주시면 됩니다.”

이것이 관우의 심사를 뒤틀리게 한 것일까. 묵묵히 앉아 있던 관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비꼬듯 물었다.

“우리들이 싸우는 동안 군사는 무엇을 하오?”

“나는 그저 여기 앉아 성을 지키겠소.”

공명이 태연히 대답했다. 그러자 장비가 큰 소리로 웃으며 빈정거렸다.

“하하하. 그것 참 편하겠소이다. 나도 성이나 지킬까 하오.”

순간 기다렸다는 듯이 공명이 얼굴빛을 바꾸며 준엄히 외쳤다.

“여기 주공에게서 받은 보검과 패인이 있소. 영을 어기는 자가 있다면 가차없이 목을 베겠소!”

삽시간에 장청의 분위기는 살벌하게 변했다. 관우와 장비는 예기치 않은 공명의 호령에 일단 입을 다물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여전히 공명을 깔보는 생각을 품었다.

‘제까짓 게 무슨 관중(管仲)이라고 앉아서 싸움 지시를 한단 말이냐. 계책이 맞는지 안 맞는지 어디 한 번 지켜보자.’




죽림칠현과 유령(퍼온 글입니다) [3]
<공명의 선택> 9장 삼고초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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