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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세간웅(2002-08-22 11:34:15, Hit : 3749, Vote : 452
 부산 일기 (3)
<8월 20일. 화요일>


우리는 진짜로 그렇게 밤을 새버렸다. 잠 많기로 소문난 나. 책을 붙들면 12시만 되어도 눈꺼풀에 고구마 하나씩을 매달아 놓은 듯 꾸벅꾸벅 하기 십상인 내가, 재균형과 함께 있으니 그렇게 생동생동할 수가 없었다.
부산에 있으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가장 기억나는 것이 첫번째가 바다라면, 두번째는 바로 이 재균형과 함께 지샌 새벽이다. 천공하후패로서의 이재균을 마음껏 느꼈기 때문이다.

재균형네 집에는 역시 삼국지가 매우 많다. 김원중 정사 7권 다 있고, 연의도 한 질 있고, 정원기 교수님이 주신 책들 - 매니아를 위한 삼국지, 삼국지 평화 등등 - 도 있다. 내 책꽂이도 삼국지 창고지만, 나보다 많았으면 많았지 적지는 않은 것 같다.
나와 재균형은 의자 하나에 둘이 앉아서, 나는 재균형 등에 찰싹 붙어서 허리를 안고, 턱을 재균형 등에 살짝 올려놓고 컴퓨터를 같이 하였다. 재균형은 먼저 내가 백지 상태인 이민족에 대한 자료를 보여주고, 이민족의 개념과 역사를 간단하게 알려주었다. 이민족이라고 해서 오랑캐 라고 단순히 알고 있던 나였지만, 재균형 말에 의하면 중국의 본래 민족이 아닌 민족은 모조리 다 이민족이라는 것이었다. 중국의 관점에서 볼때 말이다. 뿐만 아니라, 홍산문명과, 재균형이 제일 좋아하는 인물인 연개소문에 대한 방대한 자료를 보여주었다. 연개소문은 병법뿐만 아니라 무예에도 탁월했다. 칼 다섯 개를 한꺼번에 쓰는 무술을 썼다 하니, 얼마나 그정도가 대단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냥 단순한 독재자로만 볼게 아니었다.

원래 느낀 것이지만, 다시 보니, 재균형은 정말 자료 활용을 잘한다. 먼저 초고속 용어사전인 Myquickfind 를 항상 옆에 끼고 산다. 삼국지를 읽으면서 아리까리한 용어가 있으면 즉시 찾아서 무슨 개념인가 확인을 한다. 또한 엠파스를 매우 잘 활용한다. Myquickfind 에도 없는 것은 엠파스로 즉시 들어가 검색하고 자료를 확보한다. 게다가 병법집도 많아서, 제갈량의 병법에 관한 얘기가 나온다면, 즉시 제갈량병법집을 펼치고 그 대목을 찾아서 글을 쓴다.
뿐만 아니라, 알고 있는 유용한 사이트는 또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다. 역사 홈페이지도 엄청 많이 알고 있어서 어떤 사이트가 좋고 나쁜지를 훤히 알고 있고, 전쟁 홈페이지 또한 상당히 많이 안다. 하나씩 형이 나에게 그 사이트들을 보여주면서 설명을 친절히 해줬는데, 나는 한번도 듣도 보도 못한 곳들이었다. 이러니까 재균형이 역사는 물론이거니와 병법, 전쟁, 사상 전반에 걸쳐 박식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균형이 자료 활용하는 것을 직접 보면서 나는 혀를 내둘렀다. '이래서 천공하후패다' 하면서..

나는 나를 속으로 비교해보았다. 나는 삼국지만 안다. 삼국지에 관해서는 재균형보다 내가 확실히 많이 안다. 그건 재균형도 항상 하는 말이다. 하지만 나는 재균형보다 노는 물이 좁다. 삼국지 안에서만 삼국지를 논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재균형은 다르다. 재균형은 삼국지가 아닌 다른 것에서 삼국지를 본다. 따라서 그것들의 삼국지 내부 개입이 능수능란한 것이다. 부러웠다. 나는 그 방면에 대해서는 관심이 별로 없기에 재균형처럼 이민족설이나 병법을 인용하지 못한다. 또한 나는 자료 활용에 재균형보다 능하지 못한다. 나는 글을 쓸 때, 내가 알고 있는 알량한 지식으로만 글을 썼다. 항상 그랬다. 자료가 얼마나 힘 있는 것인가를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재균형이 나에게 보여준 것이 또 있다. 바로 재균형이 구상하고 있는 많은 판타지 소설이다. 여러 부족들을 설정하고, 인물들의 성격과 배경을 설정한 프롤로그를 보여줬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를테면 엘프의 숲, 무슨무슨 족의 호수 이런 것은 바로 재균형 짚 앞의 풍경을 보고 구상했다는 것이다. 진짜로 그렇다. 바로 앞이 바다고 나머지는 숲이니까. 창의성이 참 뛰어난 사람이다. 판타지에 대해 아는 것도 굉장히 많다. 하여간 다방면으로 박식한 사람이 재균형이다. (그 관심을 학과목에만 돌렸다면 전교 1등은 식은죽먹기였을 것이다. 재균형이 꽁꽁 숨겨놓은 성적표를 보여줬는데, 충격이었다. -_-;;)

또한 재균형은 정사를 작업하고 있다. 김원중 정사는 나도 느낀 것이지만 오류가 한두 개가 아니다. 재균형은 전반적으로 대규모 정사 보완작업을 하고 있다. 나도 도와줄 참이다. 선주전 하나를 보완하는데 꼬박 5일이나 걸렸다고 하니, 얼마나 힘들고 긴 작업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컴퓨터를 하면서 나와 재균형은 농담도 하고 쉴새없이 장난도 쳤다. 그 장난을 다 받아주고 씨익 웃는 재균형. 역시 착하다.

또 재균형은 나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주었다. 3단이라는 재균형. 몸에 살이 붙어서 그렇지 그 속은 다 단단한 근육이다. 재균형은 온몸이 완전히 강철이다. 태권도도 되게 잘한다. 자기 말로는 계속 못한다고 하는데, 내가 보면 확실히 잘한다. 차는 기술, 막는 기술 동작을 배웠는데, 어려웠다. 태권도는 단순히 발로 차는 것인줄만 알았는데, 알고보니 앞차기에도 발을 지르는 타이밍과 자세가 하나하나 다 다르다.

새벽이 깊자 재균형과 나는 베란다로 나와서 또다시 바다를 감상했다. 아직 해는 뜨지 않았다. 한 5시쯤 되었었나 보다. 바다가 검정색이고, 달도 들어가서 있는 거라곤 물결 소리와 바닷가 포장마차의 불빛이었다.

"춥제?"
"응. 춥다."
"추워도 바다는 창문 닫아놓고 감상하면 안된다 아이가. 창문을 열어놓고 감상해야제."

맞는 말이다. 재균형은 또 바다를 사랑한다.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이 바닷가에서 고기 구워먹고 막 버리고 가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한평생을 영도에서 살고 싶다는 재균형. 매우 부러웠다. 이해가 간다.

날이 밝았다. 재균형 어머니께서 차려주시는 아침밥을 먹었다. 재균형 어머님은 너무너무 친절하시고 자상하시다. 마치 나를 친아들처럼 챙겨주셨다.

"많이 많이 묵으라. 버스타고 가제? 도중에 배고프면 안되는기라."
"네~"

푸짐하게 차린 음식을 먹고, 재균형 어머님은 또 귀한 아카시아 꿀단지를 수건을 하나 둘러서 봉지에 넣어주시면서 말했다.

"내가 회사를 나가서는, 니한테 참말로 뭐 해준게 없어서 미안하다카이. 그래서 이 꿀좀 어머니한테 전해드리고, 잘 가라. 담에 꼭 동생이랑 놀러오고. 알겄제?"
"예, 예. 감사합니다."
"아줌마가.. 두장밖에 안되지만 용돈 줄게. 어여 받어."

그렇게 극진한 대우를 받고, 꿀까지 받고 또 2만원이나 받을 수가 없어서 한사코 안 받으려 했으나, 빨리 받으라는 재균형의 눈치에 할 수 없이 거듭 감사하면서 받았다.

이제 갈 시간이다. 효준형도 내려와 같이 나갈 차비를 하였다.
재균형과 효준형은 아르바이트를 한다. 차 광내는 약 같은 것을 파는 아르바이트라고 한다. 따라서 그것들을 한 가방씩 짊어지고, 나를 배웅해주고 아르바이트 나갈 계획이라고 한다. 힘들겠다.
현관 앞까지 배웅해주시는 재균형 어머님께 인사드리고, 우리 셋은 집을 나왔다. 엘리베이터가 올라올 동안, 그렇게 수시로 나와서 보았던 엘리베이터 가 창문에 기대어 바다를 보았다. 변함없이 넓고 맑았다. 보이는 배들은 다 바뀌었지만 여전히 배들도 많았다. "아, 이게 마지막이구나." 하고 생각하니, 빨리 타라는 재균형 목소리가 원망스러웠다.

집을 나서 버스를 타고 지하철 역까지 가서, 부산 종합버스터미널까지 지하철을 타고 갔다. 난 꾸벅꾸벅 졸았다. 재균형과 효준형은 날 샌 사람같지 않게 쌩쌩해서 둘이 장난치고.

터미널에 도착하여 지하철에서 내렸다. 전주행 버스를 끊었는데, 19000원이나 하는 것이었다. '어째 비싸다...' 생각하면서 옆을 보니, 세상에 일반고속 전주행은 저기 있는데 내가 방금 끊은것은 우등고속이었던 것이다.

"으악!"
"왜그나?"
"모르고 우등 끊었다!"
"괘안타. 우리 엄마가 주신 돈으로 차표했다고 생각하면 되는기라."

재균형이 말했다. 아깝지만 그냥 편히 간다 생각할 수밖에..

10시 반 차였는데,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아르바이트니 뭐니 해서 할 일도 많은 두 형을 할일없이 잡아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형.. 그냥 가. 이제 괜찮아."

재균형도 거절할 수는 입장이었음을 이해한다. 그래도 먼저 가는게 내심 미안했던지 효준형이랑 터미널 내 편의점에 들어가서 먹을 것을 바리바리 사와서 나에게 주면서 말했다.

"이거 속 좀 좋아지면 묵으라. 진짜 가도 괜찮겠나-?"
"괜찮대도."

재균형은 눈웃음을 지으며 나랑 악수를 굳게 했다. 효준형이랑도 했다. 재균형과 효준형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다음에 또 꼭 놀러와라. 잘 가고."
"응, 잘가!"
"어야. 간다!"

난 재균형과 효준형의 모습이 안 보일때까지 계속 그들을 보고 있다가 안 보이자 의자에 앉아서 1시간을 기다려 버스를 탔다.

버스에 올라 전주로 출발함을 느끼자, 2박 3일간의 여정이 눈앞에 필름처럼 촤르륵 지나갔다. 장장 5시간이나 버스를 타고 와서 처음으로 재균형을 만난 일이며, 처음 본 부산 바다의 절경, 윤이를 처음 만나서 재미있게 논 일, 재균형과 같이 걸어온 지하도, 시가, 나눈 얘기들... 효준형과 같이 태종대에 가서 좋은 경험 한 일.. 집으로 걸어온 그 먼 길.. 같이 걸었던 바닷가, 밤에 본 반짝이는 부산바다.. 새벽을 지새우면서 한 컴퓨터와 나눈 수많은 얘기.. 그 행복한 기억들이 숨가쁘게 지나가면서 저절로 스스르 졸리웠다. 이런 경험 해본 사람 있을 것이다. 여행을 끝내고 그간 추억을 살며시 상상하면 얼마나 잠이 포근하고 부드럽게 오는지를... 그 잠은 제일 행복한 잠이었다.





그렇게 2박 3일간의 난세간웅 이정훈의 천공하후패 이재균이 사는 부산여행은 종결을 짓는다. 처음으로 만난 동호인, 재균형, 윤이. 얼굴 한번 안 보고 인터넷으로 만난 사람들이지만 친분은 누구에 못지 않았던 이유는, 그들과 나는 외형이 아닌 마음으로 사귀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부산에 사는 깨끗한 바닷마을 청년, 이재균. 다시 꼭 만날 것이다. 한가지 아쉬운 것은 남포동이다 태종대다 뭐다 해서 많이 돌아다녔지만 그 유명한 해운대를 못 가봤다는 것. 2시간동안 가서 1시간 놀고 다시 2시간동안 돌아오는 낭비를 할 수 없는 노릇이지만. 혹시 비가 올까 노심초사했었는데 화창한 날씨만 2박 3일간을 준 하늘에 감사할 따름이다.
부산은 참 좋은 곳이다. 바다는 또 얼마나 신비롭고 넓었던가........ 이미 벌써 이틀 전이지만 나는 마치 아직도 함지그린 아파트 8층 엘리베이터 창가에 앉아 재균형과 바다를 보고 있는것만 같다.



<여담>
집에 와서 약속대로 재균형에게 야동을 두개 받았다. -_-;  하나는 너무 심해서 삭제했고, 하나는 재밌어서 고이 감춰놓았다. 심심할때마다 볼 참이다. ㅎㅎ





간옹[헌화] (2002-08-22 12:11:16)
나도 부산에 사는디 큭큭
神醫화타 (2002-08-22 19:42:07)
잘 읽었어. 세사람 만난것 정말 부럽다^^
이리스 (2002-08-23 10:08:13)
정훈이 너무 부럽네..^^
초선 (2002-09-04 17:38:07)
재밌는 여행기였습니다.

臥龍昇天<3>-사마의의 농락에 넘어간 오의 육손 [3]
부산 일기 (2)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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