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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암(2001-10-26 20:34:34, Hit : 2515, Vote : 172
 [RE] 유영은요..
유영(劉伶)
자(字)는 백륜(伯倫), 패국(沛國 ; 현 안휘성 숙현 서북쪽) 출신으로 죽림칠현의 1인.

저는 이정도밖에 모르겠네요..^^;;
죽림칠현에 대해서는 토론방에 이무기님(전 건인 희지재님)이 쓰셨던 글이 있으니 재인용해 드리지요. 제가 촌필로 죽림칠현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보다 훨씬 나으리라 생각합니다.

---

죽림칠현




   황제, 귀족, 상인으로부터 역사의 블랙홀에 이르는 중국 사치향락사에서 지식인 집단인 사대부를 빼 놓을 수는 없는 일이다.
동서고금을 불문하고 대개 지식인은 빈곤한 계층이기때문에(꼭 그렇지만은 않았지만) 사대부의 사치는 죽림칠현 이래 대개 정신의 사치, 정신의 방탕이 중심을 이룬다.
죽림칠현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완적(210년~263년), 혜강(223년~262년), 산도(205년~283년), 유영(연대미상), 완함(연대미상), 상수(연대미상), 왕융(234년~305년) 등 일곱 사람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는 3세기 중반, 조씨의 위에서 사마씨의 진으로 왕조가 교체되는 격동의 전환기였다. 이 위험한 시대에 죽림칠현은, 새로이 등장한 정권의 반대파를 색출하는 데 혈안이 된 사마씨의 첩보망을 피하기위해 노장사상의 '무위자연' 이념에 기반한 독특한 생활방식을 창조했다. 그들은 쓸모없는 존재가 되기를 자처하여 그 생을 마치고자 했다.
죽림칠현의 일원인 왕융이 명문귀족 '낭사 왕씨'의 일족인 데서도 알 수 있듯이 모두 귀족층이었다. 육조시대를 거치면서 귀족층과 사대부층은 거의 일치하였다. 이 점이 근세 이후의 사대부층과는 크게 다른 점이다. 또한 죽림칠현이 후세에 알려진 모습처럼, 정치적 세계에서 떨어져 나가 죽림에 모여 다 함께 술에 취하고 음악을 즐기는 식으로, 하나의 그룹을 형성하고 있었는지도 확실치 않다.
그러나 죽림칠현 전설이, 기성 정치체제 속에서 살기를 강요하는 유교적 가치관을 배척하고, 자유롭고 다양한 삶의 방식을 추구하는 후세의 사대부에게 이상형이 된 것은 틀림없다.

    몽환적 인생관

죽림칠현이라 해도 생활방식은 저마다 달랐다. 리더격인 완적이나 혜강의 일견 자유분방한 생활방식도 실제로는 권력기구와의 숨막히는 긴장관계 속에서 신변의 안전을 꾀하면서도 반항적 태도를 관철하기 위한 고육책의 성격이 강하다.
이에 반해 주량을 알 수 없는 대주가로 알려진 유영은 이 세상의 굴레에서 해방되어 정신을 통째로 탕진한 것처럼 보인다. 그는 완적이나 혜강처럼 영향력 있는 거물도 아니었다. 또한 문학자로서도 초일류급에 속했던 완적이나 혜강과는 달리 겨우 한 편의 산문(술의 효용을 칭송한 '주덕송(酒德頌)'이라는 작품)만을 남겼을 뿐이다. 어떤 면에서는 그가 매우 홀가분한 처지였기 때문에 더욱 돋보였다고도 할 수 있다. 유영은 '주덕송'서두에 이렇게 말한다.

    대인(大人) 선생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천지개벽 애래 이후를,
   하루, 일만 년을 한 순간, 태양과 달을 자기 집 대문, 전 세계를 자기 집 뜰로
   생각한다. 어디로 갈 때는 수레 바퀴자국 흔적이나 족적을 남기지 않고, 일정한
   주거조차 없다. 하늘을 지붕 삼고 땅을 이불 삼아서 생각하는 대로 행동한다.
   멈출 때는 술잔을 손에 들고 움직일 때는 술잔과 호리병을 매달고 간다.
   오로지 술을 마시는 데만 정신을 쓰고 그 밖의 일에는 일체 관심을 갖지 않는다.

유영의 이러한 유유자적한 술 찬가의 근본은 번거로운 현실세계에서 빠져나와 천지자연과 일체가 되고자 함이다. 넉넉한 생성과 소멸의 섭리에 몸을 맡기는 것이야말로 참된 인간존재의 모습이라는 노장사상의 이념을 보고 있는 듯하다. 그리고 이 장대한 몽상을 자신의 몸속에 끌어들이기 위한 필수품이 바로 술이라는 것이다.
유영의 삶은 '술에 젖은 것'이라는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그가 외출할 때는 항상 한 병의 술을 걸친 후 작은 수레에 타고는 시종에게 가래(흙을 퍼 담는 기구)를 지니고 뒤따라오게 하여 "죽으면 즉시 묻으라"고 말했다. 죽는 그 순간까지 꿈을 꾸듯이 살려고 한 것이다.

이 확신범적 알코올 중독자에게는 이 밖에도 술에 얽힌 일화가 많다. 예를 들면 눈물을 흘리면서 술을 끊으라고 애원하는 처에게, 신에게 기도하고 금주 서원을 세울테니 신주(神酒)를 가져오라고 해놓고는, 술을 가져오자, "하늘은 유영을 낳고, 술로써 이름을 날리게 하신다"며 기도를 하는가 싶더니 신주를 단숨에 들이키고 금세 곤드레 만드레 취해 버렸다는 이야기가 있다.
게다가 그는 취하면 집 안에서 옷을 홀딱 벗곤 했는데 그 모습을 본 사람이 비난하자, 숙련된 노장철학의 과장법을 방패 삼아 정색을 하고 나섰다. "나는 천지를 집으로 생각하고 집안을 잠방이라고 생각한다. 자네들은 왜 내 잠방이 속으로 들어오는가"라고 응수해 상대를 머쓱하게 만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유영이 언제나 그렇게 전투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아무리 술에 취해 있어도 쓸데없는 싸움은 멀리하려는 매우 유연한 면도 있었다.
어느 날 유영이 성질 급한 사람과 술을 마시게 되었다. 두 사람 모두 대취한 상태에서 싸움이 벌어졌다. 상대방이 주먹을 치켜들고 때리려고 하자 유영은 유들유들한 말투로 이렇게 받아넘겼다. "나는 계륵(닭의 갈비뼈. 버리기는 아깝지만 그다지 쓸모도 없다는 것의 비유)이기 때문에 자네의 주먹을 받을 만한 인물이 못되네." 상대방은 웃어넘기고 긴장은 그 자리에서 풀렸다.
유영은 평범한 사람이 아니다. 장대한 우주적 환상속에서 정신의 해방을 꿈꾸면서도 우주와 인간을 대비하며 현세의 부질없음을 내보였다. 그는 이렇게 몸을 굽힘으로써 밀려오는 외부의 압력을 비켜가려 한 것이다. 술독에 빠져 산 유영은 위험하다 싶을 때 몸을 굽히는 방법을 완전히 체득하면서 정신적 방탕을 다하여 위진교체기를 큰 실수없이 살다가 유유히 천수를 다하려 했던 것이다.
이후 서진 동진을 통해 이러한 유영의 정신적 쾌락을 앞세우는 nonsharam(적극적인 관심이 없어 행동에 열의가 없는 모양)한 생활방식을 추종하여 술없이 무슨 인생이 있으랴, 하고 기절할 때까지 취하는 것을 즐기는 모방자가 속출하기에 이른다.
위진 시대는 지식인 귀족을이 쾌락 추구에 모든 것을 내맡긴 시대였다. '지식인은 곧 정치적 인간' 이라는 중국 전통의 공식이 깨끗이 없어진, 역사상 드문 시대였다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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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지재 (2006-10-19 17:56:53)
아마 제가 직접 쓴 글은 아닐 겁니다. 마지막 문장에 대해서는, 죽림칠현의 한 사람인 산도의 예에서 보듯 그들 은일한 선비들도 정치적인 영향력이 대단했음을 지적하고 지나가야 하지 싶군요. 또한 위나라에서 최고의 요직을 지낸 화흠과 왕랑은 청주 출신의 청류 인사인 등, 청류의 이름으로 은일하는 경우가 많기는 했으나 은일사라 해서 정치적인 연계가 끊어지지는 않았습니다. 진나라를 세운 사마염의 할아비 사마의만 해도 젊을 적에 조조의 명을 몇 번이나 거스르며 은일하려 했던 인물이지요.

신삼국지32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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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덕송酒德頌 [1]  정암  2001/10/26 3837 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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