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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긴(2003-05-24 11:13:53, Hit : 4897, Vote : 486
 조조와 원소- 정사소설 삼국지
정사소설 삼국지


                    조조(曹操)와 원소(袁紹)
  

조정은 완전히 힘을 잃었고 도처에서 반란이 들끓어, 수도 낙양은 어두운 구름에 싸여 있었다. 그런 중에도 수도 낙양에 촉망받는 두 젊은이가 있었으니, 조조(曹操)와 원소(袁紹)가 그들이었다.

조조(曹操)는 패 국(國) 초 현(縣) 사람으로 자(字)를 맹덕(孟德)이라고 하였다. 전한(前漢) 때 상국(相國)을 지낸 조참의 후예로, 그의 할아버지 조등은 환관(宦官) 중상시(中常侍)로 높은 벼슬에까지 올라갔다. 조등의 양자 조숭(曹嵩)은 원래 하후(夏侯)씨로 태위의 관직에까지 이르렀으니, 그것은 조숭(曹嵩)이 일억 만전의 돈을 주고 영제(靈帝)로부터 산 것이었다. 조숭의 아들이 바로 조조이었다.

조조는 키가 작고 얼굴이 거무튀한 꾀죄죄한 인물이었다. 단지 가느다란 눈에 반짝이는 눈매만이 그가 예사 사람이 아님을 나타낼 뿐이었다. 불행이 조조는 유아시기에 어머니를 잃었다. 막강한 세력의 대부호 집안이었으나 왜소한 체구와 환관의 손자라는 것은, 어머니가 없는 조조의 성격형성에 영향을 미쳤다. 사람들은 겉으로는 그에게 공대했으나 돌아서면 경멸하였으며, 조조는 이것을 못 느끼기에는 너무나 예민한 감각을 소유하고 있었다. 조조는 어려서부터 매 날리기와 말을 달려 사냥하기를 좋아하였고, 나이가 들어가도 덕행과 학업은 등한히 하고 그저 끝도 없이 놀기만 하였다.

조조는 나쁜 짓거리를 자주하고 돌아다니는 불량아이었다. 이에 조조의 숙부가 조조의 나쁜 짓거리를 아비인 조숭에게 모두 일러바쳐, 조조가 꾸지람 듣도록 하였다. 그러자 조조는 한 꾀를 내었다.

어느 날 조조가 동네 앞에서 숙부가 오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조조는 입에서 거품을 흘리며 데굴데굴 굴렸다. 숙부는 깜짝 놀라서 달려가 이 사실을 조조의 아비 조숭에게 알렸다. 조숭은 아들이 간질병을 일으켰다는 말을 듣고 뛰어나오다, 마주 오는 조조와 마주쳤다. 조조는 어느 틈엔가 옷을 단정히 하고 멀쩡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조숭이 의아해 하며 물었다.

“아니, 너 간질병이 다 나았느냐?”

조조는 시치미를 뚝 떼고 의아한 표정으로 아비를 바라보았다.

“간질병이라뇨?”

“너의 숙부가 그러는데 네가 길에서 간질병을 일으켰다고 하였는데…….”

“피이, 숙부님이 또 저를 모함했군요. 숙부님은 조카가 간질병이라고 걸렸으면 좋겠나 보죠.”

조조와 동생의 말이 맞지 않아 조숭은 동생의 말에 의혹을 품었다. 이후 조숭은 동생이 와서 조조의 나쁜 짓 이야기를 하여도 반신 반신하였고, 조조는 더욱 자유롭게 놀 수 있었다.

조조는 방탕하고 무뢰배의 생활만 한 것은 아니었다. 그 일에 싫증이 나면 때로는 무예와 학문을 닦았다. 그는 가히 천재로서 무예는 겨눌 자가 없을 만큼 출중하게 되었고, 학문에도 수십 년을 닦은 사람보다 월등함을 보였다. 병법에 관한 책을 읽을 때는 특히 열의를 보여, 식음을 전폐 할 정도로 몰두하였다. 나중에 병가의 병법을 모아 ‘집요’라는 병서를 저술하였고, 열국 시대의 병법가 손자의 병서에 주석을 달아 열세 권의 책을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손자병법은 바로 그 책인 것이다.

영제(靈帝) 때 태위 벼슬까지 지낸 대학자 교현은 사람 보는 눈이 정확하기로 당대에 유명하였다.

교현이 조조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지금까지 천하의 명사와 이재를 많이 보아 왔으나, 너 만한 인물을 아직 만나 본 적이 없다. 부디 신중하여 천하가 너를 필요로 할 때까지 노력하여라. 나는 이제 늙었다. 나의 후손을 부탁한다.”

교현의 이 말  때문에 조조의 명성은 높아지게 되었다.

여남 땅에 허소라는 사람이 인물 잘 보기로 천하에 알려져 있었다. 어느 날 조조가 찾아가 물었다.

“나는 어떤 인물이 될 것 같소?”

허소는 조조를 유심히 보더니 입을 다물었다.

조조가 재삼 간청하자 허소가 말했다.

“그대는 태평시대에는 능한 신하가 되겠고 어지러운 시대에는 교활하고 음험한 영웅이 될 것이요.”

조조는 껄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조는 이십 세에 낙양 북 도위가 되었다. 이 때는 법규라는 것은 힘없고 가난 한 사람만 옭아매는 것이지 세력 있는 사람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다. 세력의 사람들은 그들 마음 내키는 대로 행동하여 수도 낙양은 문란하기 그지없었다. 법령은 밤중 열두 시가 되면 성문출입이 금지되어 있는데도 그들이 지키지를 않아, 수도치안의 불안을 부채질하였다.

조조는 부임하자마자, 즉시 성문을 개수하고 성문 좌우편에 열 개의 오색 방망이를 걸어 놓고, 명령했다.

“성문출입의 법규를 범한 자는 그 자리에서 이 몽둥이로 쳐 죽여라.”

당시 십상시(十常侍) 건석의 삼촌 되는 자가 있었는데, 이 자의 귀에 이 새파란 초임관리의 말이 들어올 리가 없었다. 어느 날 이 자가 밤늦게 성문을 지나 가다가 잡혀 왔다. 조조는 당장 쳐 죽여라고 명령했다. 좌우에서 부하가 놀래 말렸으나 조조가 듣지 않았다.

“건석의 숙부라 해도 법을 어긴 것은 틀림없지 않느냐? 당장 쳐 죽여라.”

조조가 권세에 굴하지 않고 단호하게 법을 시행하니, 건석도 법령을 어겨 죽은 숙부를 위해 아무런 조치도 할 수 없었다. 이후로부터 성문 출입의 법규는 완벽하게 시행되었다.

황건난(黃巾亂)이 일어나자 조조는 기도위로 출정하여 황건 군을 토벌하였다. 큰 공을 세워 제남의 상이 되었다. 당시 산하의 현의 관리들은 조정의 세도가들에게 뇌물을 바치면서 관직을 유지하였고, 그들을 등에 업고 백성들로부터 고혈을 짜내어 치부의 수단으로 삼아서,  백성들의 참상은 극심하였다. 조조는 부임하자마자, 그들 탐관오리들을 모조리 파면하였다.

이 때 전한(前漢) 이래의 국가의 공신들의 사당에 관(官)에서 제사를 지냈는데, 변질되어 관리들이 백성들의 곡식을 빼앗아 사치생활을 하는 수단이 되어 있었다. 사당에의 제사는 백성들의 생활을 궁핍하게 하는 요인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백성들 사이에 미신이 성행하게 하는 요인이 되기도 하였다. 역대 관리들 중에도 이것을 한탄하는 사람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수백 년 간 지속된 국가의 관례를 폐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조조는 과감하게 이 제사를 폐지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사당을 모조리 때려 부숴 백성들 사이에 귀신을 섬기는 풍습을 근절시켰다.

제남을 다스리는 동안 조조의 정책은 준엄하여 사악한 무리는 자취를 감추었고, 제남 일대는 평온을 유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호족들은 조조의 과감한 개혁에 두려움을 느끼고 조조에게 한을 품었고, 십상시(十常侍)들은 조조를 처치하려고 벼리었다. 이에 조조도 두려웠다.

‘이러다 내가 멸문지화(滅門之禍)를 당할지도 모르겠구나.’

중평 사년, 그의 나이 서른 세 살 되던 때 그의 아비 조숭이 일억 만전으로 태위 관직을 사자, 조조는 생각했다.

‘사람은 물러날 때를 알아야 한다. 오십 세에 관직을 시작하는 사람도 있다. 천하가 안정되기를 이십 년 동안 기다린 다음 관직을 다시 시작해도 나는 그들의 나이가 될 뿐이다.’

조조는 마침내 병을 칭하고 직위를 내놓고 향리로 돌아갔다. 향리로 돌아온 조조는 봄과 여름에는 독서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사냥을 하면서 초연하게 은둔생활을 하였다.

향리로 돌아온 지 일년 뒤 애비 조숭(曹嵩)이 태위 자리를 물러나고 얼마 되지 않아, 조조는 조정의 부름을 받아 전군교위가 되어 수도 낙양으로 들어왔다. 이 직책은 예전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었고 황건난(黃巾亂)에 위협을 느낀 조정(朝廷)이 새로이 팔 명의 교위(校尉)의 근위무관제도를 설치한 것이었다.

이 때 여남 땅의 귀공자 원소(袁紹)도 중군교위직을 맡았다. 원소는 자(字)를 본초(本初)라 하였다. 그의 고조부부터 부친까지 사대가 모두 삼공(三公)을 지냈기 때문에 원씨 집안의 세력은 전국에서 가장 컸다. 원소(袁紹)는 훤칠한 키에 시원한 미남 자였고 넓은 도량을 갖은 인물이었다. 조정의 대신들의 귀여움을 받았으며, 넓은 도량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호감을 주었다. 일찍 벼슬길에 올랐다가 보모의 상을 당하자 육 년 간 부모의 묘를 지킨 뒤 낙양 교외에 은거하였다. 그러면서 이름이 있으면 귀천을 가리지 않고 교제하니, 뜻있는 사람들은 다투어 원소의 집으로 모여들었다.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불렸으나 나가지 않자, 중상시(中常侍) 조충이 동료들에게 말했다.

“본초는 집에 있으면서 그를 위해서는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는 식객을 수없이 기르고 있다. 장차 이 놈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 누가 알겠는가?”

원소의 숙부 원외가 이 말을 듣고 원소에게 여러 차례 타일렀다.

“세상이 하도 뒤숭숭하니 조심하여라. 조정의 대신이라 자들은 자기 지위에 항상 필요이상으로 신경을 써서 남을 모함하여 죽이기를 밥 먹듯 한단다.”

원소가 이에 인연이 있는 대장군 하진(何進)의 부름을 받아 시어사가 되었다가, 중군교위가 된 것이었다.

조조와 원소가 처음 만난 것은 아직 관직에 들어서기 전 낙양에서 유학할 때였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서로에게 공감하였다. 그래서 둘이는 항상 같이 다녔다. 원소는 훤칠한 미남자요 조조는 왜소한 추남이었으니, 둘이 같이 다니면 귀공자가 하인을 데리고 다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기실 손아귀에 넣고 주물럭거리는 사람은 원소가 아니라 조조였다.

둘이는 짓궂은 장난도 잘 하였다. 어느 날 길을 가다가 시집갈 준비를 하는 신부의 가마와 마주쳤다. 이 신부는 빼어난 미모의 여인이었는데 집안의 강권에 의해서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하는 것 같았다. 신부는 준수한 미남 자 원소를 보자 추파를 보내며 한숨을 쉬었다. 이것에 젊은 원소가 어찌 무심할 수 있으랴! 원소는 온몸이 녹아 버린 듯 입을 떡 벌리고 여인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이 것을 지켜본 조조는 이 귀공자를 구겨 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여보게 본초(本初)! 저 여인이 자네에게 마음이 있는 모양이네. 어떤가. 오늘밤 저 여인을 즐겁게 할 마음이 없는가?”

조조가 원소를 그렇게 꼬드겼다.

원소는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느냐는 듯 침을 꿀꺽 삼키며 조조를 바라보았다.

조조가 더욱 꼬드겼다.

“오늘밤 저 신부 집에 들어가 내가 망을 볼 테니, 자네가 신부 방으로 들어가게나. 저 여자는 필시 양다리를 딱 벌이고 자네를 맞이할 것이네.”

그날 밤 둘이는 담을 넘어 신부 집으로 들어갔다. 조조가 망을 보는 사이에 원소가 살며시 신부의 방문을 열고 들어갔다.

“으악!”

아뿔싸! 원소가 들어가면 두 다리를 딱 벌리고 맞이할 줄 알았던 신부가 놀라 비명을 지른 것이었다. 비명소리에 집안사람들이 불을 켜 들고 몽둥이를 들고 달려 나왔다. 원소와 조조는 담을 넘어 달아났다.

경황 중에 원소가 가시덤불 물웅덩이에 빠지고 말았다.

“맹덕(孟德)! 맹덕! 나 좀 살려주게!”

원소는 두 손을 들고 허우적거리며 비명을 질러 댔다. 뒤에서는 몽둥이를 들고 추격하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조조는 혼자 달아날 까도 생각했으나 번뜩 다음일이 떠올랐다.

원소는 잡혀 늘씬 얻어맞고 사실대로 불게 되리라. 그리고 내일 장안의 사대부들은 입방아를 찧으리라.

‘그렇다니까. 그 환관 놈의 손자새끼가 점잖은 본초(本初)를 꼬드겨 가지고 일이 이렇게 된 것이라니까.’

조조는 생각했다.

‘죽어도 같이 살고 죽어도 같이 죽어야 한다.’

그러나 추격하는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가 이미 지척에서 들려왔다. 조조는 당황하여  물웅덩이로 뛰어들려다가, 문득 뒷걸음질하며 숨을 크게 내 쉬었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려다가 같이 죽기 십상이다. 이럴 때일수록 침착하여야 한다.’

조조는 가까스로 마음을 진정시키며 상황을 살펴보았다. 보아하니, 웅덩이는 그렇게 깊지도 않았다. 조금만 힘을 쓰면 빠져나올 수도 있는데, 원소가 두 손을 들고 허우적거리고 있는 것이 손에는 흙도 안 뭍이고 살려고 하는 귀공자의 바로 그것이었다.

조조는 분통이 터졌다.

“도둑놈이 여기 빠져 있다!”

조조가 다가오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렇게 크게 소리쳤다.

원소는 기겁을 하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웅덩이를 헤치고 나왔고, 둘이는 같이 도망쳤다.



        천하명장 황보숭(皇甫嵩)

황건난(黃巾亂)은 진압되었지만 한(漢) 조정(朝廷)이 타격을 받아 비틀거리자, 그동안 한족(漢族)에게 억압을 받아 온 서방의 이민족(異民族)과, 괄시를 받아 온 변방의 사람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변방민 괄시에 한을 품었던 서량의 인물인 송건과 왕국도 반란군에 가담하였다.


* 정삼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0-07 15:53)




천하명장 황보숭-정사소설 삼국지
황건난과 유현덕- 정사소설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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