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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긴(2003-05-24 10:50:21, Hit : 4602, Vote : 500
 황건난과 유현덕- 정사소설 삼국지
정사소설 삼국지

                     1. 황건난(黃巾亂)과 영웅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이, 힘으로는 산을 뽑고 기세는 세상을 덮는다는 초패왕 항우(項羽)와 오년 전쟁 끝에 승리하여 한(漢)을 건국 한지 사백년 년이 흐르자, 한 제국은 말기에 들어서 조정은 부패하고 백성은 도탄(塗炭)에 신음하였다.

후한(後漢) 십일 대 임금이 죽자 그를 이을 아들이 없어, 막 열두 살이 된 가난한 황족 유굉을 불러들여 황제로 세웠으니 그가 바로 영제(靈帝)이었다. 영제는 용렬한 인간으로서 노새를 끌고 다니며 개하고 노는 것만을 좋아했으며, 궁녀들과 자신은 봇짐 지고 장사하는 놀음에만 탐닉하였다. 영제(靈帝)는 성장하여 국고는 텅텅 비었으며 재정이 말이 아니 것을 보고는, 매관매직하여 돈벌이만 몰두하였으니 조정(朝廷)은 완전히 황제 주위에 환관(宦官)들의 손으로 넘어가 버리게 되었다. 이에 장양(張讓) 등 열 명의 환관 중상시(中常侍)들은 영제 주위에 사람의 장막을 치고 마음껏 권세를 떨쳤다. 사람들은 이들 열 명의 환관(宦官) 중상시를 십상시라 부르고 이들을 마치 전갈 보듯이 하며 두려워하였다. 영제(靈帝)는 환관의 손아귀에서 놀아났으며, 나이 많은 장양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조충을 어머니라고 불렀다.

조정(朝廷)이 이렇게 문란하게 되니 세상은 어지럽고 도적의 무리가 날뛰게 되었다. 이것은 또한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는 역사 발전의 전조(前兆)이기도 하였다.

이런 중에 거록 군(群)에 장각, 장보, 장량 삼 형제가 살고 있었다. 이들은 평민으로 산에서 약초를 캐면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어느 날 장각(長角)이 산에서 약초를 캐다가 눈에서 광채가 나고 얼굴은 동안이고 손에는 지팡이를 든 한 노인을 만났다. 그 노인은 장각을 불러 어떤 동굴로 데려가더니 그에게 책 세 권을 주면서 말했다.

“이 것은  태평 요술이라는 책이다. 네가 이 책을 얻게 된 것은 하늘의 뜻이다. 이 책을 열심히 읽어 널리 세상 사람들을 구하도록 하라.”

장각이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절하고 물었다.

“선생님께서는 누구십니까?”

“나는 남화 산의 늙은 신선이니라.”

말을 마치자 노인은 홀연히 사라졌다.

장각은 집에 돌아온 뒤로 태평 요술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읽었다. 마침내 도를 깨우치게 되자, 황제(黃帝), 노자(老子)를 숭상하는 도교(道敎)를 창설하고, 스스로 태평 도인이라 칭하며 사람들에게 태평한 세상을 이루는 길을 설파하였다.

중평(中平) 원년, 갑자년 일월에 때마침 온 나라에 전염병이 퍼졌다. 장각은 부적과 약물을 주어 병을 고쳐 주며, 대현양사(大賢良士)라고 자칭했다. 이리하여 그를 따르는 자가 오백 명이나 되었다. 그가 무리들을 데리고 집집마다 다니면서 병을 고쳐 주자, 그의 추종자는 점점 늘어나 수만 명에 이르게 되었다. 장각은 삼십육 방을 세우고 큰 방엔 일만여 명, 작은 방엔 육칠천 명으로 제자들을 나누고, 각방에는 우두머리를 두어 자신을 대신하여 통솔하도록 했다.


  푸른 세상이 망했으니
  마땅히 누런 세상이 서리
  갑자년에 이르면
  천하는 크게 길하리


장각의 집단은 집집마다 다니면서 ‘갑자’라는 두 글자를 문설주에 쓰니, 청주 서주 유주 기주 형주 양주 연주 예주 여덟 주가 온통 갑자라는 글자 투성이었다. 팔 주 백성들은 집집마다 대현양사 장각이라는 명패를 모시고 장각을 신처럼 여겼다.

마침내 조정에서도 장각의 존재에 두려움을 느껴 체포하였으나,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기운은 조정에까지도 이미 번져 있었으며 백성들의 절대적 존재가 된 장각을 부패하고 무능한 조정으로서는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석방하고 말았다.

조정의 무력함을 보고 장각은 천하를 집어삼킬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그는 심복 마원의를 수도 낙양으로 보내어 환관들과 몰래 통하도록 했다. 환관은 황제 측근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산다고 하나 그들은 불알 없는 존재로서 사회에서 소외된 계층이며 그 중에는 새로운 세상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게다가 그들은 황제 측근에 있으면서 제국의 기운이 다 한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환관 중상시(中常侍) 봉서 등이 은밀히 장각과 내응하였다.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사람은 환관뿐만이 아니었으며 사대부 관리 중에도 장각에게 공감하는 사람이 많았다.

장각은 마침내 아우와 심복들을 불렀다.

“무릇 얻기 힘든 것은 인심이다. 한(漢) 왕실은 썩어 저절로 무너질 형편이고, 민심은 이미 우리 쪽으로 완전히 돌아섰다. 때는 한번 놓치면 다시 오지 않는 법이다. 나는 하늘의 뜻에 따라 새로운 세상을 만들 것이다.”

장각은 부하들에게 황색 깃발을 무수히 만들어 거사에 만반의 준비를 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심복 당주를 보내어 내통한 중상시(中常侍)에게 거사 계획을 알리도록 하였다. 그러나 당주가 도중에 마음이 변하여 금부에 가서 장각 일당의 거사 내용을 밀고하였고, 황제는 대장군 하진(何進)을 보내어 그에 가담한 중상시(中常侍)와 마원의 등을 붙잡아 처형하도록 하였다. 이때 처형된 사람은 중상시(中常侍) 봉서 등 천여 명에 달했다.

장각(張角)은 거사가 탄로 나자, 부랴부랴 서둘러 그 날 밤으로 군사를 일으켰다. 스스로 천공 장군이라 일컫고 아우 장보는 지공 장군 또 다른 아우 장량은 인공장군이라 칭하게 하고, 곳곳에 방문을 부쳐 백성들에게 고하였다.


     이제 한(漢)나라의 국운은 꺼질 날이 다가왔다. 큰 성인이 나타날 테니, 너희들은
     그에게 순종하여 태평한 세상에서 살도록 하라.


이러한 방이 방방 곳곳에 나붙으니 장각의 황색 깃발 아래 황건(黃巾)을 머리에 두르고 모이는 자가 사오 십만이었다. 이들 중에는 장각을 신봉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갈망하는 사대부와 관리 등도 있었다. 이에 그들의 세력이 태풍 같았으니 그들에게 대항하는 관군은 바람에 날리는 티끌과 먼지 격이었다.

대장군 하진은 화급한 사정을 황제(皇帝)에게 보고하고. 각처에 조서를 내려 반군이 공격해 오는 길을 막도록 하였다. 다시 중랑장(中郞將) 노식, 황보숭, 주전 등을 파견하여 장각(張角)의 반군을 토벌하게 하였다.

황건 민중군은 초반에는 우세하였으나, 시간이 흐르자 노련한 관군의 장군들의 작전에 말려들어 결국 괴멸하고 말았다. 이에 장각 형제는 죽고 황건난(黃巾亂)은 진압되었다.

황건 민중봉기는 실패로 끝났지만, 성공하였다면 세계 역사를 천년을 앞 당겼을 수도 있었을 세계사적 사건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황건 봉기가 실패로 끝난 이유로는 모의가 사전에 누설되었고, 진압에 나선 장군들이 너무나 뛰어난 인물들이었다는 점 등이 들어지고 있다.

한(漢) 제국은 황건 민중봉기의 진압에 성공하였지만, 타격이 너무 커서 이후 회생 불능의 길로 들어서고 말았다. 철옹성 같은 한 제국의 관료제를 붕괴시켰다는 점에서 황건 민중봉기는 실패한 혁명이 아니라 성공한 혁명이었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황건난(黃巾亂)에 이어서 전국 도처에서 반란은 계속되었다. 조정에서는 이를 막을 힘이 없게 되자, 자연히 지방 유력자들이 사병(私兵)을 모아 자위(自衛)를 하게 되었다. 이에 역사는 지방 군벌 영웅시대로 들어서게 되었다.


          유현덕(劉玄德)


중평(中平) 사년, 중산의 재상 장순이 반란을 일으키자, 청주 자사(刺史)는 조서를 받고 종사(從事)를 파견하여 군사를 모집하게 하였다. 종사(從事)가 평원을 지나가는데, 토호(土豪) 유자평이 종사에게 한 인물을 추천하였다. 성이 유(劉)이고 이름이 비(備)이고 자(字)를 현덕(玄德)이라고 하는 인물이었다. 탁 군(群) 사람으로 전한(前漢) 임금의 아들인 중산정 왕(王) 유승의 후예이었다. 그러나 중산정왕은 아들이 백이십 명이었고 또 그의 아들 중 몰락한 사람이 유비(劉備)의 선조이니, 유비(劉備) 대는 가난한 촌부에 지나지 않았다. 그의 부친은 현의 하급관리를 하였으나 그나마 일찍 죽자, 유비(劉備)는 어머니와 함께 짚신과 돗자리를 짜서 시장에 내다 파는 걸로 생계를 삼았다.

그의 집은 탁 현(懸)의 누상촌에 있었다. 집 앞 동남쪽에는 다섯 길이나 되는 뽕나무가 높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어서 멀리서 보면 마치 천자의 수레 덮개모양 장관이었다. 언제인가 그 앞을 지나던 점쟁이가 현덕(玄德)의 집과 뽕나무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이 집에는 필시 귀인이 태어나리라.”
하고 예언한 일이 있었다.

현덕이 어릴 때 이 뽕나무 밑에서 동네의 아이들과 놀다가 말했다.

“나는 이 나라 황제가 되어서 깃털을 장식한 수레를 탈거야.”

마침 숙부 유원기가 지나가다가 이 말을 듣고 놀라, 현덕을 나무랐다.

“너는 허튼 소리를 하지 마라. 우리가문을 멸망시키겠구나.”

숙부 유원기는 현덕의 집이 가난하여, 항상 양식거리를 대주곤 하였다. 유비의 나이가 들자, 유원기는 그를 자신의 아들과 같이 같은 군 출신의 명사 노식(盧植)에게  보내어 공부를 하게 하였다. 유비는 이에 같은 문하생인 요서 군의 공손찬(公孫瓚) 등과 우정을 쌓았다. 공손찬이 연장자였으므로 유비는 그를 형으로 대우하였다.

숙부 유원기가 항상 유비에게 학비를 지급해 주고, 자신의 아들과 똑같이 대하자, 그의 부인이 불평했다.

“우리 집도 넉넉지 않은데 어찌 이럴 수 있습니까?”

“우리 집안에서 이 아이는 평범한 사람이 아니오.”

유비는 학문에는 이렇다 할 재능을 보여주지 못하고, 말 타고 사냥하고 멋진 옷 입고 노래하고 노는 것만 좋아했다. 유비가 글도 모르는 건달신세로부터 벗어난 것은 순전히 숙부의 덕택이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유비는 성장하자, 늠름한 용모에 손을 내리면 무릎까지 닿았고 귀가 커서 스스로 자기 귀를 볼 수 있었다. 평소 말수가 적고 천성이 착하여 아랫사람에게 잘 대해 주었으며 기쁨이나 노여움을 얼굴에 나타내지 않았다. 의를 지닌 사람과 사귀기를 좋아했으므로 젊은 사람들로 유비 주위에는 항상 북적거렸다. 유비는 자연스레 무리의 우두머리가 되었다. 유비는 무리들을 데리고 그 지역을 드나드는 상인을 보호하여 주고 돈을 얻어 썼다. 중산 땅의 대상인 장세평과 소쌍 등이 천금의 자본을 갖고 탁군 일대에서 말을 사려다가 유비가 비상한 인물임을 알고 그에게 많은 돈을 주었다. 유비는 이로부터 큰 무리를 모을 수가 있었고, 그는 자신의 명성을 탁군에 널리 떨치게 되었다.

유비는 종사(從事)의 부름을 받자, 무리를 데리고 종사(從事)를 따라 장순의 반군(叛軍)의 토벌에 나섰다. 들판에서 적병을 만나 한바탕 싸움 중에 유비는 부상을 입어 거의 죽게 되었다. 적병이 물러난 뒤 친구들이 그를 부축해 돌아와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길 수 있었다. 공이 있음이 인정되어 중산국 안휘 현위로 임용되었다.

이때 조정에서 군공이 있어 관리로 임용된 사람들 중에서 부적당한 사람을 조사하라는 조서를 각 주군(州郡)에 내려 보냈다. 명을 받은 독우(督郵)가 안휘 현(縣)에 이르러 유비를 면직시키려고 준비하였다. 유비는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여 오던 사람으로 이런 관리생활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 같아서는 바로 떠나고 싶었으나, 자신이 현위로 임용되자 동네잔치를 하여주던 동네 사람들, 춤을 덩실덩실 추며 좋아하시던 어머니, 숙부를 생각하니 도저히 그냥 갈 수 없었다. 마침 독우가 과거에 면식이 있는 사람이라 사정하여 보기로 작정하고, 가서 만나 볼 것을 청하였다. 그러나 독우(督郵)는 몸이 불편하다고 하고 유비를 만나는 것조차 거절하였다. 유비는 크게 노(怒)하여, 병졸들을 이끌고 독우의 객사로 뛰어들었다.

“내가 태수의 밀령을 받아 독우를 체포 하로 왔다!”

유비는 독우를 묶어 동구 밖으로 끌고 나갔다. 그리고 느티나무에 그를 묶어 놓고는 일 백 번의 매질을 하였다.

유비는 생각하였다.

‘이놈을 살려두면 앞으로 나와 친지들에게 해를 끼칠 것이다. 없애 버리니 보다 못하다.’

유비는 칼을 뽑아 들었다. 그런 유비에게 독우가 울면서 사정했다.

“현덕, 안면을 보아서라도 목숨만은 살려주겠나. 내가 죽으면 노모와 가족이 살 길이 없다네.”

“이놈아! 네놈이야말로 안면을 보아서라도 어찌 그럴 수 있었단 말이냐? 좋다. 네 가족을 보아서 목숨만은 살려주겠다. 자- 인수는 여기 있다. 이까짓 현위 자리에 내가 연연해하는 인간인 줄 알았느냐?”

유비는 현위 인수를 독우 목에다 걸어 놓고는 그 길로 달아나 버렸다.

연의(演義)에서는 이때 독우를 매질한 사람이 장비로 나와 있으나 그것은 후세의 창작일 뿐이다. 이 때 독우를 매질한 사람은 유비였음이 정사에 기록되어 있다.


* 정삼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0-07 15:53)




조조와 원소- 정사소설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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