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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가패왕(2005-03-04 22:40:21, Hit : 6317, Vote : 1084
 교룡-프롤로그
칠흑같이 어두운 밤, 한적한 숲 속을 두 장수와 열댓명의 병사가 달리고 있었다. 붉은 망토를 두른 장수는 단정한 수염을 기르고 있는 중년의 사내였고 그 옆에 백마에 몸을 싣고 창을 쥔 장수는 아직 얼굴에 수염이 나지 않은 젊은 장수였다. 붉은 망토의 사내는 유비 현덕이요,그 옆에 있는 젊은 장수는 조운 자룡이었다.군대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초라한 그들은 차림새를 보아 패잔병 같았다. 유비는 풀이 죽었는지 고개를 푹 숙이고 한숨만 내쉬고 있었다.

'다가닥!다가닥!'

"조조군이 다시 나타났다!!"

뒤에서 쫓아오던 한 병사가 소리쳤다. 이에 선두에서 군사들을 인솔하던 두 장수는 놀라며 앞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잠시 뒤 두 장수의 얼굴에는 희색이 띄었다.

"주공, 놀라지 마십시오!"

앞에서 달려오는 군대들은 손건과 미축,미방 형제가 이끌던 군대였다. 가까이 다가온 그들은 말에서 일제히 내려 유비 앞에 무릎을 군례를 취했다.

"주공."

"손 종사! 용케 목숨을 부지하셨구려. 정말이지 다행이오. 미축, 미방. 그대들도 무사했구려."

모두들 꼴이 말이 아니었다. 머리도 모두 헝클어지고 꾀죄죄한 것이 영락없는 거지꼴이었다. 잠시나마 기쁜 순간을 누리고 있을 때였다. 후방에서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유비군이다! 한 놈도 놓치지 말라!"

"주공, 어서 말에 오르시지요."

유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신의 갈마에 뛰어올랐다.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얼마 쯤 달렸을까? 대략 2,30리 정도는 달린 것 같았다. 뒤에서 추격해오던 조조군도 추격을 포기한 모양이었다. 유비는 넓직한 바위가 널린 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다. 탁현에서 돗자리 장수를 하다가 황건의 난 때 큰 공을 세우면서 천하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순탄치 못한 그의 젊은 시절은 거의 방황하다시피 하면서 이리저리 몸을 의탁하며 떠돌다가 관도대전이 일어나자 여남에서 세력을 키우던 유비가 조조를 공격한 것이었다. 조조는 용병술의 천재요, 당대 최고의 군주였다. 쓰러져가는 후한(候漢)에 실망한 그는 자신의 야심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하여 황제를 업신여기고 출전할 때마다 황제의 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제후들의 미움을 사고 있었다. 그런 그가 유비의 공격을 간단히 막아내고 또 다시 유비를 곤경에 빠뜨린 것이다. 유비가 자신이 살아온 인생을 더듬으며 눈을 감고 있을 때 파수를 서던 병사 하나가 외쳤다.

"전방에 군대가 출현했습니다!"

이에 유비는 조운과 함께 서둘러 파수병이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잠시 뒤 은빛 갑옷과 녹색 도포를 걸친 수염이 긴 장수와 깔끔한 수염에 눈이 부리부리한 미남의 장수가 말머리를 나란히 하여 다가오고 있었다.

"아우들이다!"

아우들이라함은 관우와 장비를 이르는 말이었다. 그들은 일찍이 탁현에서 유비와 의형제를 맺고 여태껏 생사를 쭉 해온 사이였다. 유비는 기쁨의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관우와 장비는 유비의 군대라는 것을 확신했는지 힘차게 달려왔다.

"형님, 무사하셨군요."

"하늘이 아직 나를 버리지 않았구나. 아우들 모습을 다시 보니 기쁘기 그지없네. 내가 조조의 계략에 속아 화를 불러들였어."

유비가 힘없이 말하자 관우가 뭔가 위로의 말을 꺼내려고 했다. 그러나 파수병이 한 발 먼저 입을 열었다.

"조조의 대군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유비는 손건에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손 종사는 내 가족을 데리고 먼저 길을 떠나시오."

유비는 자신이 직접 관우,장비 그리고 조운과 함께 후방을 맡아 도망쳤다. 다시 2,30리를 쫓겼다. 가까스로 조조의 추격에서 벗어났으나 그 동안 애써서 길렀던 수만 병사는 산산조각이 나 3천도 채 되지 않았다.

"남은 병사가 이것 뿐인가?"

"너무 상심마십시오. 한 고조께선 옛날 항우에게 번번이 패하셨습니다. 그러나 해하결전에서 승리를 거두어 400년 대업을 열지 않으셨습니까?승패는 병가상사, 마음에 담아두고 있으면 어떤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선은 유표에게로 가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손건이 입을 열었다.

"그가 나를 받아들여 주겠소?"

"같은 한실의 종친입니다. 제가 달래볼테니 천천히 오십시오."

[형주]

"우리 주공께선 기울어진 나라를 바로잡으려 하십니다. 하지만 역적 조조에게 그 뜻이 가로막혀 있어 어려움에 처해 있습니다. 공(公)께서 우리 주공을 도와 주신다면 우리 주공도 공을 힘껏 도와 나라를 바로잡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유표는 군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유비는 내 아우와 다름없는 사람이오. 오래전 부터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리로 온다니 기쁘기 그지없구려."

"주공, 유비는 일찍이 여포를 따랐다가 조조를 섬겼고, 조조를 다시 배반하고 원소에게 의지했으나 원소마저도 저버렸습니다. 믿을 만한 사람이 못됩니다."

채모였다. 유표의 후실인 채부인의 오빠되는 사람으로 수군에 일가견이 있어 형주 수군 도독을 맡고 있는 자였다.

"처남은 아무 소리 말게. 내 뜻은 이미 정해졌네. 내 마중을 나갈 것이니 부담갖지 말고 가벼운 마음으로 오라고 전하시오."

"그 말씀, 하나도 빠짐없이 전하겠습니다."

이리하여 유비는 유표에게 몸을 의지하게 되니 건안 6년의 일이었다.





순수했던 과거로... [1]
군웅삼국지 (1) 군웅할거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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