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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영삼국지 저본이 과연 최선본이란 말인가?2003-07-14 21:16:01
 좌자


  올 여름 장마에 찌든 한국 서점가를 뜨거운 열기로 달구고 있는 신간서적이 있다면, 그야말로 단연 황석영삼국지가 아닌가 한다. 유력 일간지의 광고란에는 연일 대문짝만한 전면 광고가 나붙고 이름 석자만 내걸어도 그 지명도가 훤한 저명인사들이 저마다 앞을 다투어가며 극찬들을 내뿜고 있다. 출간 전 예약 주문량이 2,000세트가 넘었고 출간하자마자 날개 돋친 듯 팔려 나간 량이 이미 15,000질을 넘겼으니, 30만부가 매진되는 건 거저 시간문제일 따름이라고 한다. 이로써 삼국지는 과연 중국만의 고전이 아니라 한국인의 베스트셀러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지 않을 수 없고, 황석영이야말로 대형 국민작가임을 새삼 실감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다.
  내로라하는 말발 서는 명사들이며 위세 등등한 언론매체들의 화려한 찬사 가운데 특별히 내세우는 자랑이 있으니, 그건  바로 황석영삼국지가 저본으로 삼은 판본이야말로 현존 최선본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그 말이 믿을만한 정보인지 어디 한 번 냉정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1. 인민문학출판사본은 삼민서국출판본과 다른 종류의 판본인가?
  요란한 광고문안에 의하건대 황석영본 최고의 장점은 인민문학출판사본을 저본으로 삼았으며, 라이벌이 될만한 기존 유명 삼국지들은 죄다 믿을 수 없는 대만 삼민서국출판본을 저본으로 삼았노라고 깎아내리고 있다. 내세우는 이유로는 삼민서국본이 모본이기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그렇다면 인민문학본은 어느 계통이란 말인가? 그토록 훌륭하다고 내세우는 나본이란 말인가? 그건 결코 아니다. 확언컨대 인문문학본 역시 삼민서국본과 동일한 모본일 따름이다.

2. 그러면 인민문학본이 (모본 중에서) 과연 최선의 수정본인가?
  물론 인민문학본이 수정 작업을 거친 판본임은 사실이며, 기존의 다른 모본들에 비해서는 상당히 우수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광고에서 떠드는 것처럼 그토록 훌륭한 판본은 아니라는 데 문제가 있다. 거기다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수정작업이란 게 상당히 미흡하다는 데 더욱 큰 문제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황씨본 말미의 해제를 살펴보면 기존 모본들에서 엄준이란 인명의 한자가 잘못 되었다느니 하며 왈가왈부 하고 있는데, 사실상 그건 약과일 뿐이다. 인민문학본에서는 그보다 더욱 기초적인 오류조차 수정되지 않고 있으니, 이것은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식이 아닌가? 그럼 여기서 정삼연 회원이라면 삼척동자도 이미 알고 있는 몇 가지 예를 아주 간단하게 들어보겠다.
  
  (1) 초두의 도원결의 편에 “유주태수 유언”이란 말이 나오는데, 당시의 관직으로 볼 때, 유주자사라 유언이라고 해야 한다.(황석영본 1권-26쪽 참조)
  (2) 장비의 자를 翼德이라 했는데, 사실은 益德이다.(황본 1-28쪽)
  (3) 관우의 고향-하동 해량인이 아니라, 하동 해인이다.(황본 1-29쪽)
  (4) 조조의 고향-패국 초군인이 아니라 패국 초인이다.(위 1-36)
  (5) 낭중 장균-시중 장균이다.(위 1-50)

  까놓고 말하자면 위와 같은 예가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수십 곳 정도라면 모르되, 수백 곳이 넘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본 중에서 인민문학본이야말로 자타가 공인하는 최선의 수정본이라고 그토록 자신 있게 선포한단 말인가? 위와 같은 예는 정삼연 회원이라면 모두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내용들이다. 그런데도 그러한 주장을 하는 건 삼국지를 너무나 가볍게 보고 지나치게 쉽게 다루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대로 지적하자면 더 많은 할말과 더욱 예리한 바늘로 찌를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황석영씨와 전혀 원한이 없고 그의 저서 자체를 폄하하려는 의도 또한 추호도 없으므로 이쯤에서 그쳐야겠다.  
  
3. 국내 정역본들의 실태
  국내에선 지금 삼국지 정역본 또는 완역본을 자칭하는 번역본들이 범람하고 있다. 가히 정역본의 시대라 단언해도 과언이 아닐 지경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역 또는 완역을 감행한 어느 누구도 아직 진정으로 삼국지를 공부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번역 기간이 3년이 넘었느니, 4년이니 어쩌고들 하고 있지만, 가만히 살피고 자세히 뜯어보면 가장 기초적인 판본 분류에서조차 잠자다 헛소리 하는 것 같은 깜깜한 말들을 늘어놓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그러고서도 삼국지 전문가가 손을 봤다는 둥 운운하는데, 도대체 한국에 삼국지 전문가가 몇 명이나 있단 말인가? 삼국지 관계 논문 한두 편 읽고 서구적 문예이론만 적당히 들이대면 전문가란 말인가? 이런 경박한 처사들로서는 도저히 옳은 번역을 할 수가 없다. 삼국지가 어떤 책이던가? 서구문예사조에 전도된 편견으로야 뭐라고들 폄하를 하건 그건 게인적 자유일 것이다. 수백 년 동안이나 동아시아 문화를 총체적으로 지배한 고전이 아니던가? 가치란 평가 기준에 따라 다르고 논리란 아무리 강하게 떠들어도 개인적으로 축적된 지식의 한도를 넘지 못하는 법이다. 가장 많은 사람이 가장 오랜 세월을 두고 가장 깊은 감동을 받았다는데 더 이상 무슨 시비가 필요하단 말인가?

  이토록 위대한 고전을 두고 물욕과 명예욕에 사로잡혀 너무나 가볍게 다루고들 있으니 이 어찌 통탄할 노릇이 아닌가? 불후의 명작이니까 너도나도 자신들의 문명만 내걸고 단시간에 적당히 꾸며 출판하면 이득을 볼 것이라는 탐욕이 앞선 탓이리라. 생각건대 삼국지 공부는 최소한 10년에서 20년 정도, 그것도 대충이 아니라 꼼꼼하게 공부를 한 후라야 어느 정도 바람직한 번역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그러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문학가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새로운 해석이나 문체를 창안하거나 패러디 쪽으로 방향키를 잡는 게 성공적이 될 것이다. 그게 또한 작가로서 해야 할 떳떳한 일이 될 것이다. 단언컨대, 그렇게 하지 않고는 결코 기존의 이문열삼국지 아성을 넘지 못할 것이다. 어찌하여 총체적으로 부득부득 전문가나 학자가 해야 할 무미건조한 정역이나 완역을 고집하고들 있단 말인가? 독창적 해석이나 패러디로는 도저히 이문열삼국지를 넘어설 수 없단 말인가?  
  
4. 정소문본 삼국지
  그러면 한국에는 여태껏 바람직한 정역본이 전혀 없단 말인가? 아니다. 있다. 분명 시중서점에 버젓이 나와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명인사들이나 유력 언론매체들이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이 모르고 있는 것이다. 그럼 여기서 그 정역본을 한 번 살펴보자.
  도서출판 원경에서 나온 책으로, 현존 국내 번역본 중 가장 충실하다. 역사적 오류에서부터 관명, 인명, 지명의 오류를 수정했을 뿐만 아니라, 모종강의 평까지 번역했다. 한학자인 역자의 말을 빌리자면 10년 가까이 공을 들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화려하지는 않지만 갈피마다 소박한 정성이 깃들어 있는 것 같다. 정역이나 완역을 원하는 독자들은 이 책을 구하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이 책에도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다. 역시 수정이 완전하지 못하다거나-인민문학본 보단 좀 더 치밀하지만-종종 눈에 띄는 번역상의 오류, 그리고 유려하지 못한 한글 번역문 등은 한학자로서의 태생적 한계를 보이고 있다.

* 정삼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0-07 15:45)

덧글 3개
 천공하후패 제가 가지고 있는 연의가 정소문의 것입니다. 정말 깔끔하고 좋은 책이죠. 2003/07/15 12:07 
 천공하후패 그나마 국내에서는 가장 나은 책일 것입니다. 2003/07/15 12:07 
 神醫화타 정소문삼국지, 문장이 수려하지는 않지만 삼국지 제대로 보려면 가장 좋은 책인것 같습니다. 2003/07/17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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