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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동탁동맹군은 하나가 아니었다.2003-05-27 02:06:30
 서량의금마초


   * 반동탁동맹군은 하나가 아니었다.


1. 반동탁동맹이란 ?

삼국지는 수 많은 영웅호걸들이 존재하던 시기를 다룬 소설이다. 배경이 되
는 후한시대는 세상이 극심하게 어지러웠다. 하지만 이들중에서 남들을 제치
고 권력을 차지하여 실력자가 되는 인물은 극히 드물었다. 그중에 최초로 중
앙권력을 독점한 인물이 바로 동탁일것이다.

동탁은 양주와 병주지방에서 벼슬을 지내면서 원소가 주도한 환관 몰살때
별다른 공적이 없었다. 하지만 시기를 잘 맞추어 3~4천의 병력으로 천자를 옹
립하는데 성공하여 단숨에 중원의 실력자로 급부상했다. 후에 권력을 좌지우
지 하였는데  수많은 살육과 약탈을 일삼았고 자신에게 거스르거나 마음에
들지 않는 대신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마구 죽였다. 결국에는 황제를 폐
위시키기에 이른다. 그야말로 동탁의 폭정은 은(殷)나라의 주왕(紂王), 하(夏)
나라의 걸왕(桀王)의 그것에까지 이르렀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동부의 제후들이 진류에서 군사를 일으킨 조조의 격문
에 일제히 봉기하여 반동탁동맹군을 결성하게 된다. 이에 동탁은 두려워 수
도를 장안으로 옮긴다. 시간이 지나자 18명의 제후들의 서릿발 같았던 기세는
온데간데 없고 서서히 와해되기 시작하여 무의로 끝을 맺는다. 이것이 우리
가 아는 삼국지의 반동탁동맹에 관한 간략한 줄거리다.


2. '반동탁동맹' 사건이 주는 의미?

삼국지에서 '반동탁 동맹군' 은 비록 목표였던 동탁 타도에는 실패했지만 이
것이 주는 의미는 상당히 크다. 먼저 삼국지의 시발점을 꼽는다면 대부분이
괴수 장각이 주도한 '황건란 발발' 을 들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시기나 규모,
참전한 영웅들의 숫자와 등장한 영웅들이 삼국지에서 차지하는 비중등을 놓
고 볼때 내용상으로 ' 반동탁 동맹사건' 에 비해서 양과 질적으로 모두 뒤떨어
진다. 더구나 '황건란' 이 제후들과 민중의 대결이었던 반면에 '반동탁 동맹'
이야말로 삼국지의 서곡이 되는 각지에서 웅거하던 군웅들에 힘겨루기가 되
는 촉발제가 되는 의미가 있는 사건이다.

즉, 삼국지에서 '황건란 발발' 이 형식적인 시발점이라고 본다면 '반동탁동맹
사건' 은 실질적인 시발점인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삼국지에서 큰 의미를 지
니고 있는 반동탁동맹은 어떻게 이루어 진것일까? 당시에 악정을 펼치고 전횡
을 일삼던 동탁을 제거하기 위해서 많은 이들이 노력했다. 그들에 대한 기록
을 한번 살펴보자.

" (전략) 하내태수 왕광은 태산군의 군대를 하양진에 주둔시키고, 동탁을 제
거하려고 했다.(후략)"
                                                                         - 정사 위서 동탁전 -

"(전략) 조조는 진류에 도착하여 가산을 처분하고 군사들을 소집하여 동탁을
토벌할 준비를 했다. (후략)                                              
                                                                         - 정사 위서 무제기 -

"(전략)  원소는 결국 군사를 일으켜 동탁을 정벌하려고 했다. (후략) "
                      
                                                                         - 정사 위서 원소전 -

여기까지 기록된 이들은 후에 하나의 군사연합을 이루어 동탁토벌에 참가했
던 제후들 이라는것을 모두가 잘 알것이다. 이렇듯 반동탁 동맹군은 한번에
급조 되다시피해서 결성된것이 아니라 많은 준비와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소설을 통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18로제후의 반동탁연합군이다.
그리고 연의에서는 정사의 기록들을 취해 삼국지의 주인공이 되는 조조(魏),
유비(蜀), 손견(吳)을 데뷔시켜 훗날에 삼국이 대치하게 되는 상황의 복선을
깔아놓기도 하였다. 이것이 우리가 아는 반동탁동맹의 전부이다.


3. 또 다른 반동탁 동맹군?

하지만 - 위서 정사 장홍전 - 에 보면 이것과 다른 또 하나의 반동탁 동맹군
이 존재했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있다.

"(전략) 동탁이 황제를 살해하고 국가를 위기에 빠뜨리려고 획책하니 장홍은
장초에게 말했다. (후략)"

장홍은 진류태수 장막의 동생이자 광릉태수인 장초의 공조였다. 당대의 명사
로 많은 군웅들이 장홍과 교류하였다.동탁의 폭정이 하늘을 찌르자 장홍은 장
초를 설득해서 군사를 일으킬것을 간언했다.

"(전략) 장초는 그의 말이 옳다고 여겨, 장홍과 함께 서쪽으로 향하여 진류에
도착, 형 장막을 만나서 이 문제를 은밀히 상의했다.(후략) "

이에 장초는 형인 진류태수 장막과 예주자사 공주, 연주자사 유대등과 논의
하여 반동탁동맹을 결성하게 된다.

"(전략) 제단을 쌓고, 바햐으로 함께 맹서하려는데 여러 주와 군의 자사와 태
수는 서로 양보하고 아무도 그 맹주의 역할을 감당하려고 하지 않고 모두들
장홍을 추천했다.(후략)

반동탁 동맹에 참전한 제후들이 맹주의 자리를 서로 양보하다가 결국 장홍
이 추대되었다. 그리하여 제단을 쌓고 하늘에 충성의 맹세를 하였다. 이때 반
동탁 동맹군에 가담한 제후로는 연주자사 유대, 예주자사 공주, 진류태수 장
막, 동군태수 교모, 광릉태수 장초 등이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아무런 공적과 진전이 없고 군량마저 떨어져 자진해산
하였다. 비록 연의에도 나오지 않고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것이 바로 원
소가 이끌었던 18로 제후의 반동탁동맹군보다 먼저 형성되었던 장홍의 ' 제 1
차 반동탁동맹군' 이다.


4. 반동탁동맹군의 진위

  장홍을 위시하여 소수의 군웅들이 모여 논의를 하고 장막, 유대등 몇몇의 제
후들이 장홍을 맹주로 하여 동맹을 결성한다. 이것이 최초의 ' 반동탁동맹군'
이며 이것이 ' 제 1차 반동탁 동맹군' 이 되는것이다.

  동군태수 교모가 천자의 이름을 거짓으로 빌어 전국 각지에 격문을 띄우자
이에 각각 독자적으로 동탁 정벌을 준비하고 있던 하내태수 왕광, 발해태수
원소, 진류의 조조등과 제1차 반동탁 동맹군에 참전했던 제후등 많은 제후들
이 이에 응한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18로 제후들의 반동탁 동맹군이며
'제2차 반동탁 동맹군' 이 되는것이다.  

분명히 원소가 이끌었던 18로 제후의 ' 반동탁 동맹군 ' 과는 다르다. 즉, 본
래 '제 1차반동탁동맹' 을 생각하고 제안한 이는 장홍이며 맹주 역시 장홍이
다. 이것은 교모가 제안하고 원소가 맹주가 된 18로 제후의 반동탁 동맹
즉, '제 2차 반동탁 동맹' 과는 엄연히 구분된다.

당시 동탁의 폭정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었던것 같다. 저렇듯 한번도 아니
고 두번이나 제후들이 동맹을 결성하여 동탁을 타도하려고 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강력한 동탁의 저항과 각자의 이해에 따라서 너무도 허무하게 와해되
어 버렸다. 각각 맹주와 규모 그리고 구성원도 달랐지만 결국 제1차동맹군이
나 제 2차동맹군이나 그 끝은 매일반이었다. 과연 그들에게 강력한 황실에 대
한 부흥 염원과 충성심이 있었는지 매우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 사족

  처음에는 장홍이 이끈 제1차 반동탁 동맹군이 원소가 이끈 제2차 동맹군과
다른것이 아니고 같은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즉, 장홍의 1차 동맹군이 결성이
되었느나 별다른 진전도 없고 규모도 생각보다 크지 않자 교모가 격문을 띄
웠다. 이에 따라 독립적으로 동탁 정벌을 준비하던 원소, 조조등의 제후들이
참전하여 규모가 커짐에 따라서 명망이 있는 원소가 맹주로 재추대가 되지
않았나 생각했다.

하지만 정사의 기록상으로 비교해 볼때 위와 같은 추론에 부합하는 부분이
너무나 많았다. 먼저 각 동맹군의 맹주와 참가한 제후들의 명단과 규모가 전
혀 다르다. 또 장홍전에 기록된 동맹군의 행적과 무제기에 기록된 동맹군의
행적이 전혀 다르다.

장홍의 제1차 동맹군은 교모의 격문이 없이 장홍의 제안에 제후들이 한자리
에 모여 상의끝에 결성이 되었다. 하지만 원소의 제2차 동맹군은 교모가 격문
을 띄웠고 이에 제후들이 응했다. 그리고 동맹군에 가담한 제후들은 한자리
에 모인적이 없었고 각자의 근거지에서 군사를 일으켰다.

장홍이 이끈 제1차 동맹군은 동탁군과 전혀 군사적 충돌이 없이 그냥 해산됐
다. 그리고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하기 이전에 해산이 되었다. 이에 반해서 원
소의 제2차 동맹군은 동탁군과 교전을 하고 장안천도 후에 해산이 되었다. 여
러모로 따져봐도 둘은 다른 시기에 결성된 군사연합체라는 결론이 나온다.

* 정삼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0-07 15:45)

덧글 1개
 희지재 장홍이 성에 포위되어 첩을 죽여 장사들과 나눠먹은 것은 정말 엽기적입니다. 이후 진수의 기록은 "장수와 선비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고개를 들고 바라보지 못 했다. 결국 남녀 칠팔천명이 서로 베고 죽었으며, 성을 떠나거나 배반한 자가 아무도 없었다."인데, 주장인 장홍이 첩을 죽여 음식으로 나누었으니 남녀 칠팔천명이 서로 베고 죽었다는 기록은 그 의미가 몹시 의심스럽습니다. 이 성 안의 여성들은 대체 어떻게 된 걸까……. 진수가 신의를 저버린 여포와 비교하여 장홍을 대장부로 함께 기록했는데, 오히려 이 대목을 읽을 때마다 어지럽고 구역질이 날 것 같습니다. 2006/10/22 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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