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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륭 소론2003-09-20 22:04:48
 장굉자강


고당륭-사관의 정신으로...
고당륭은 태산 평양현 사람이며 고당생의 후예이다.고당륭은 학문이 넓고 임금을 바로모시려고 하였다고 한다.
실제 고당륭전을 살펴보자면 그가 왕에게 사사건건 일을 말하였다고 한다.
또 놀라운 정보로는 고려사절요에도 명제와 그와의 대화가 나타나 있을 정도인데
『문부에서 이르길 "위 명제(魏明帝) 청룡(靑龍) 2년 4월에 화재가 있자 명제가 고당륭(高堂隆)에게, '이것은 무슨 잘못인가. 예(禮)에도 빌어서 재앙을
소멸시키는 뜻이 있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대개 재변이 발생하는 것은 하늘이 경고하여 가르치는 것이니, 오직 예(禮)에 따르고 덕을 닦아야만 재앙을
이길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이다.
고당륭은 타국까지 영향을 미칠수 있었던 그런 위대한 언론인이였다.



1.고당륭의 출사
고당륭은 조조의 밑으로 가기전 고향 태산태수 설제밑에서 독우로 일하기도 하였으나 독관과 사이좋지 않은 일을 벌였기 때문에.
관직을 버리고 제남으로 가게 되었는데. 특이한 점은 제남으로 "피난"하였다는 용어를 쓴 것이다.
결국 이 말은 고당륭이 독관과의 싸움에서 진것이거나 쫒기는 것일 것이다. 간단하게 말하자면 조조에게 간 것은 신변보호적인 요소도 가미되어 있을 것
이다.
어찌되었든 그는 승상군의연 (_)에 임명되었으며 역성후 조휘의 문학 즉 선생으로 임명되어 가르치다가 상(相)으로 전임되었다고 한다.
고당륭은 조휘가 조조의 상을 당하였는데도 사냥을 나가자 도의로써 정면으로 간하여 도와서 인도하는 "보도"의 절의가 있었다고 한다.
자신의 가르친 제자가 손가락질 받아도 좋으니 진실을 봐야 한다는 그의 정신은 지금의 정치인들이 본받아야 한다.
후일 그는 평원왕의 부(傅)가 되어 그를 가르치게 되었는데 그가 바로 명제(조예)였던 것이다. 고당륭은 학식과 인품으로 평원왕이였던 명제를 가르쳤으
니 명제는 그에 대해 잊지않고 박사가 되고 부마도위까지 자리가 올랐다고 한다.

2.학식이 충언으로
명제는 고당륭의 제자이기 이전에 한 나라의 통치권자인 국왕이였다.  군주중심정치는 국왕의 연령이 어리더라도 그의 의견을 절대적으로 채용한다.
고당륭은 그런 상황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으나. 그를 위해서. 또는 위국(魏國)를 위해서 충심어린 간언을 정확하게 하게 된다.
그의 말은 유교로써만 치우치지 않고 점성술.(점성술이라 하기 그렇지만 어떤 일에 대해서 해석하는 것..) 역법,음악에 까지 다양한 정보를 습득하여 다양
하게 이용하게 된다.
당시의 사대부들이 유학으로 치우쳐 그에 대한 정보로만 문제를 풀려고만 한것에 반해 고당륭은 다양한 정보를 함으로써 백성들과의 폭을 더더욱 좁힐
수가 있었으며.
백성이란 존재에 대해 지배층이기 보다는 다양한 장르로써의 접근으로 통한 그의 접근방식은 정치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것이다.
간단하게 예를 들어보겠다.
명제가 상방감에 행차하였는데 명제는 고당륭의 상소를 변란에게 주어 고당륭을 비난하게 하였다고 한다.
( 어떠한 의도였는지는 알수 없으나 말이다.)
변란은 고당륭에게 "흥망은 정치에 있는데 음악이 무슨 관계가 있는가?"라고 했으나
고당륭은
"예악이란 것이 정치의 중대한 근본이며. 소소 (순왕의 음악)가 아홉가지곡조로 연주되면 봉황도 춤추고 뇌고(타악기의 한종류)가 여섯가지 변주료 연주
되면 천신이 강림하는 것이다. 정치는 이 때문에 공평하고 형벌은 이 때문에 시행되지 않는 것은 조화의  극치라고 하며.군왕의 행위가 규범에 부합되지
않는데 도대체 후세인에게 무얼 보이겠냐고 하며. 충신은 절개를 다하길 원하기 때문에 사사로운 이익은 계획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위와 같이 변란은 (공부를 하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음악과 정치는 무관한 것으로 논지를 이글어 간데 비해 고당륭은 고대의 이치를 설명하며 정치의 중
대한 근본으로 못박았다.
고당륭의 충심어린 이런 말은 다양한 책으로부터 얻은 학식이 기본 바탕이 된 것이라 말할수 있다.


총평:고당륭은 많은 상소로 인해 명제의 그릇됨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였으며 고금의 예와 책으로써 잘못을 잡으려한 학자적인 인물이였다.
명제가 고당륭이 죽지 이런말을 하였다고 한다
"하늘이 나의 사업을 성취시키지 않으려 하는구나! 고당생(고당륭의 선조 되는 전한시대의 유학자)은 나를 버리고 죽었구나!"라고 말이다.



* 정삼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0-07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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