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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2004-02-04 21:52:53
 곽가


제  목 :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
부  제 :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은 위작(僞作)
글쓴이 : 일지매(전주열)
날  짜 : 甲申年 2004年 2月 4日


목  차 :


㈠ 머리말
㈡ 본  문
    ㈡-㊀ 제갈량(諸葛亮)은 누구인가?
    ㈡-㊁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이란?
              ㈡-㊁-㊤ 장원(將苑)에 대해서
              ㈡-㊁-㊥ 편의십육책(便宜十六策)에 대해서
              ㈡-㊁-㊦ 삼국전례(三國戰例)에 대해서
              ㈡-㊂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 사상(思想)
   ㈡-㊃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은 위작(僞作)일까?
㈢ 맺은말
㈣ 참  고
㈤ 필자말




㈠ 머리말 :


  예부터 병법서라 하면 흔히들 전쟁할 때에 사용하는 기술을 집성하고, 전장에서 적병을 살상하는 전투지식을 전하는 책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러한 사람들의 인식은 병법서를 전혀 읽어보지 못한 무지(無知)에서 단지 병법(兵法)이란 문자자체를 직설적으로 해석하여 전쟁을 하는 책이라고 자신이 유추해석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손자병법(孫子兵法)만 보더라도 그 속에는 전쟁은 물론이고 정치사상, 철학, 지도자의 길, 조직운영, 처세술 등 현대인들이 지도자가 되기 위한 많은 지식과 사상이 내포되어 있어 하나의 사상집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본 필자도 처음 병법서를 접하면서 병서란 단지 삼국지와 같은 전장에서 싸움에 쓰이는 전투기술, 권모술수, 모략 등 적대적인 술수에 지나지 않으리라 생각을 하였으나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을 읽고부터는 이러한 생각들이 병서에 대한 나 자신만의 비판적 시각임을 알게 되었다.


  현재 병법서로는 주(周)나라 손무(孫武)가 작하고 조조(曹操)가 해석하고 재 집필한《손자병법(孫子兵法)》, 한(漢)나라 황석공(黃石公)이 쓴 《삼략병법(三略兵法)》, 전국시대 오기(吳起)가 쓴 《오자병법(吳子兵法)》, 제(齊)나라 사마양저(司馬穰名)가 쓴 《사마법(司馬法)》, 주나라 위료(尉쫍)가 쓴 《위료자(尉쫍子)》, 주나라 여망(呂望)이 쓴 《육도병법(六韜兵法)》, 당(唐)나라 이정(李靖)이 쓴 《이위공병법(李衛公兵法)》, 촉나라 제갈량(諸葛亮)이 쓴 《제갈량집(諸葛亮集)》등 2000여 권의 병서가 있다.


  본 필자는 이 많은 병서 가운데에서 신출귀몰(神出鬼沒)한 병법의 귀재(鬼才) 제갈량(諸葛亮)이 쓴 《제갈량집(諸葛亮集)》을 소개하고, 필자 자신만의 생각과 비판을 곁들여 본 글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병서와 제갈량집에 대한 이해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까한다.

  


㈡ 본  문 :


㈡-㊀ 제갈량(諸葛亮)은 누구인가?


  제갈량이 활동한 시기는 서기 3세기 중반인 후한(後漢)이 멸망하고 있는 군웅할거의 시대였다.


  제갈량은 서기 181년 낭야군 양도현의 제갈규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제갈량의 집안은 선조 제갈풍이 사예교위(司隸校尉)를 지내었고, 부친 제갈규는 태산군의 승(丞)을 지내어 비교적 좋은 환경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제갈량은 황건적의 난과 부모가 일찍 세상을 떠나고 숙부 제갈현(諸葛玄)의 밑에서 성장해야 했기 때문에 어린 시절이 그다지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숙부 제갈현이 사망한 후 제갈량은 융중(隆中)에 초려(草廬)를 짓고 청빈한 생활을 하였다. 그는 한 때 서서(徐庶), 맹건(孟建) 등의 무리와 함께 공부하였으며, 후에 서서는 유비에게 제갈량을 천거한다. 제갈량은 사관(仕官)하지는 않았으나 학식이 높고 청빈하기로 소문이나 와룡선생(臥龍先生)이라 불리었다.


  위(魏)의 조조(曹操)에게 쫓겨 형주에 와 있던 유비(劉備)는 친구 서서로부터 제갈량을 소개 받아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예로써 제갈량을 대접하니 그는 감복하여 유비에게 천하삼분지계(天下三分之計)을 진언(進言)하고, 유비의 군사참모인 군사(軍師)가 된다. 당시 유비의 나이는 47세였고 제갈량의 나이는 27세였다.


  서기 208년 위(魏)의 조조(曹操)는 북방을 평정하고 승상(丞相)이 되었다. 그는 천하를 통일하기 위해 백만대군을 이끌고 남정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제갈량의 계교로 손권과 연합한 유비군에 의하여 적벽에서 황개의 화공술에 의해 대패하여 천하통일의 꿈은 무산되었다. 조조를 격파한 유비는 형주를 얻었고 후에 익주를 얻어 221년(章武 1) 한(漢)의 멸망을 계기로 유비가 제위에 오르게 되고 제갈량은 재상이 되었다.


  서기 223년 육손의 화공에 당한 유비는 백제성으로 피신한 후 병사하였고 제갈량은 후주(後主) 유선(劉禪)을 보필하여 촉을 다스리게 된다. 제갈량은 오(吳)와 연합하여 위(魏)와 항쟁하였으며, 민치(民治)를 꾀하고, 남만을 평정하는 등 촉(蜀)의 경영에 힘썼다. 그는 후주 유선에게《전출사표(前出師表)》와 《후출사표(後出師表)》를 올려 재차 북벌을 감행하였으나 위의 국력에 밀려 실패하였고, 위의 천재군사 사마의(司馬懿)와 오장원(五丈原)에서 접전 중 병사하였다.


  그 해가 서기 234년 8월, 그의 나이 54세였다.


㈡-㊁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이란?


  중국 후한 말 삼국시대 촉한의 승상 제갈량의 저서로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 《제갈충무후문집(諸葛忠武侯文集)》, 《제갈승상집(諸葛丞相集)》, 《제갈량집(諸葛亮集)》이라고도 한다. 이 책은 총 4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책은 진수가 편정(編定)한 것은 없어지고 남송시대 《수초당서목(遂初堂書目)》에 처음으로 책이름이 등장하였고, 후에 명(明)나라 때 왕사기(王士騏)가 편찬한 《제갈량집(諸葛亮集)》에 전문이 실리어 다시 편집되었다.


㈡-㊁-㊤ 장원(將苑)에 대해서


  장원(將苑)은 원래 신서(新書)라 불리던 것이 명나라 때 이몽양(李夢陽)이 심서(心書)라고 불렀고, 청나라 때 장주(張澍)가 장원(將苑)이라 칭하였다. 장원(將苑)은 고대의 장수론을 집대성하였다. 이 책은 1권 50편으로 되어 있으며, 약 5,000자 분량이다.


㈡-㊁-㊥ 편의십육책(便宜十六策)에 대해서


  이 책은 정사의 집필자 진수(陳壽)가 제갈량의 병서를 기록할 때 책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다. 단지 이 책은 전체를 16개의 책문으로 나누었으므로 편의상 편의십육책(便宜十六策)이라 부르게 되었다. 분량은 약 6,000자 정도이다. 편의십육책(便宜十六策)에 정치사상(政治思想)과 군사사상(軍事思想)이 담겨져 있어 치국철학(治國哲學)을 제시하였다.


㈡-㊁-㊦ 삼국전례(三國戰例)에 대해서


  삼국전례(三國戰例)는 나관중이 자작한 역사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라는 책에서 제갈량과 관련된 중요 전투만을 간추려 정리한 책으로 역사보다는 소설에 가까운 허구작이다. 제갈량집과는 별개이나 제갈량집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㈡-㊂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 사상(思想)


  이 책의 사상은 크게 정치사상(政治思想)과 군사사상(軍事思想)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제갈량은 하나의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한 가족을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그 근본을 세워야 한다고 하였다.


  정치사상(政治思想)으로는 첫째 기강을 세우고 상하 화합해야 하며, 둘째 널리 보고 들으며 충간(忠肝)을 받아들여야 하며, 셋째 현재(賢才)를 천거하고 백성을 안정시켜야 하며, 넷째 법령(法令)을 명백히 하고 상벌(賞罰)을 엄격히 하여야 한다.


  군사사상(軍事思想)으로는 첫째 군대의 기초는 사병에 있고, 둘째 군기를 엄격히 해야 하며, 셋째 훈련을 엄격히 해야 하며, 넷째 힘을 헤아려 병사를 사용하고 유비무환해야 하며, 다섯째 실(實)을 피하고 허(虛)를 공격해야 한다.


㈡-㊃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은 위작(僞作)일까?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 위작(僞作)론이 나오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다. 이 책은 삼국시대와 멀지 않은 역사서인 수서(隋書)와 당서(唐書)에서 그 기록을 찾아 볼 수 없으므로 역사가들 사이에서 이 책이 정말로 제갈량이 집필한 것일까란 의문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청나라 때 요제항(姚際恒)은 그의 저서 고금위서고(古今僞書考)에서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이 제갈량이 지었다고 전하나 이는 거짓이다.”라고 이 책이 위작임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장주라는 사람은 이 책은 그의 사상을 담고 있으므로 제갈량의 저작이라 하였다.


  내용면에 있어서 《손자병법(孫子兵法)》, 《삼략병법(三略兵法)》, 《육도병법(六韜兵法)》, 《오자병법(吳子兵法)》등과 유사하여 이 책이 후대의 유생들이 재미로 편집하여 제갈량이 집필한 제갈량집이라 칭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현재까지 확실한 근거는 없다.




㈢ 맺은말 :


  현 시대에도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 위작(僞作)론은 학계에서 분분한 논쟁이 일고 있다. 비록 이 책이 사실임을 입증할 어떠한 근거나 문헌이 없지만, 당시 제갈량의 생각과 사상, 군사, 정치 등이 책 속에 잘 반영되어 있는 점을 감안하여, 그 진위를 떠나서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은 제갈량이 저작한 책이라 주장하여도 좋을 듯 싶다.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은 군대(軍隊)만을 다룬 유럽의 병서와는 달리 정치사상(政治思想)과 군사사상(軍事思想)이 책 속에 담겨져 있어 사상(思想)서나 철학(哲學)서와 같다고 할 수 있다.


  “하나의 나라를 다스리는 것을 한 가족을 다스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그 근본을 세워야 한다.”란 제갈량의 주장처럼, 이 책을 인간중심의 총체적 경영전략(經營戰略) 지침서(指針書)나 치국철학(治國哲學)으로 여겨도 좋을 것이라 필자는 확신하는 바이다.




㈣ 참  고 :


・ 제갈무후문집(諸葛武侯文集)
・ 육도삼략(六韜三略)
・ 손자병법(孫子兵法)
・ 삼국지사전(三國志事典)
・ 삼국지인물사전(三國志人物事典)
・ 두산세계대백과사전
・ 삼국지넷(http://www.samgugji.net)



㈤ 필자말 :


본 글은 한글 번역된 책을 참고로 개인적으로 작성하였으므로 원본이나, 기타 역본서와 내용이 틀릴 수도 있으며, 전문적 해석의 미흡으로 오역된 곳도 있습니다. 따라서 본 글은 사료(史料)의 증빙 자료로 사용하기에는 부적합 합니다.




삼국지넷 강태공 甲申年 2004年 2月 4日 씀.




% 여러 회원님들이 읽어 보시고 잘 못된 곳이 있으면 지적해 주세요.

덧글 3개
 천공하후패 고증을 위해서 쓴 글이라면 성격을 명확하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고금위서고에 장원이 위서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 점 등을 참고하면 어떨까합니다만은. 2004/02/04 10:02 
 절감혜소 제갈량집이라는 책은.. 제가 소장하고 있는데

한때 그걸 적어서 정삼연에 올리기두 했거든요

ㅎㅎ 올만에 읽어 봐야 겐네
 2004/02/04 10:02 
 조조 제갈량집은 제갈량 자신이 쓴책으로 일종의 자서전이라 해도 될정도이죠.. 2006/03/25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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