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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의 베트남 : 손권의 불교신앙의 유래2007-04-09 17:45:53
 희지재


 베트남은 인도문화와 중국문화의 영향을 두루 받으면서 자생적인 문화를 키웠습니다. 합포, 남해, 교지, 창오 등을 포함하는 교주(203년까지 교주라는 명칭 없이 자사 자체가 교지자사로 불렸습니다만)의 역사가 베트남의 역사에 포함됩니다. 한나라가 한반도의 강역에 한사군을 설치했지만 실질적인 지배가 미약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베트남에서도 민족적, 문화적으로 다른 베트남인들에 대한 지배가 형식적인 것에 지나지 않았거든요. 후한 말 교주의 실력자였던 사섭은 이미 6대째 조상부터 교주에 정착한 중국인이었는데, 그런 점에서 미루어볼때 베트남 민족의 피도 섞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베트남에 오랫동안 살아온 사섭은 낙양에서 유학한 이후로도 베트남인들과 공통의 이익을 가지고 이 지방에서 그들을 잘 이해하는 선정을 펼쳐 베트남인들은 그를 사왕(士王)이라는 별칭으로 기억합니다.
 
 사섭은 낙양 유학의 경력이 있어 유교적 소양을 갖춘 사람이었지만 늘 호승(胡僧) 수십명을 대동하고 다닐만큼 불교도 장려했습니다. 베트남의 지리적 특성상 중국문화와 인도문화, 자생적 문화의 혼융이 이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적벽에서 조조를 몰아낸 이후 손권은 차츰 이 지방에 손을 뻗쳐 보즐이나 여대 같은 인물이 오나라에서 임명한 자사가 되었고, 사섭은 손권의 이익을 위해 촉나라에 내부공작을 펼쳐주는 등 공훈을 세워주었으므로 손권에게 작위도 받았습니다. 오나라는 이 지방을 교주로 편제하고 때로 이 지방을 둘로 분리해내 광주(廣州)를 설치하기도 했는데, 지금 이 지방의 광저우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온 게 아닌가 싶습니다. 오나라의 정치는 대체로 베트남인들을 억압하는 정책이어서(오나라의 학자 설종이 ‘이 지방 사람들의 천성은 금수와 같아서 벼슬아치를 두는 것이 의미가 없을 정도’라고 했다더군요. 흥. 장소가 그를 보고 비루한 학자라고 하더니…) 베트남인들의 지지를 얻기는 어려웠지만, 어쨌거나 동남아 무역에서 발생하는 이 지방의 특산물과 문화는 오나라로 거꾸로 흘러들어갔습니다. 그래서 손권은 교주로부터 전파된 불교에 심취해 후에 불교도가 되었다고 하더군요.


 위진시대에는 이렇게 남방에서는 인도에서 건너온 불교가 흥성하고, 북방에서는 죽림칠현이나 왕필, 하안 등을 필두로 하는 도교적 청담이 시작됐습니다. 그 결과 위진남북조시대는 ‘예전에는 사민(四民)이 있던 것이 지금은 육민(六民)이 되었고, 예전에는 일교(一敎)가 있었는데 지금은 삼교(三敎)가 있다.’는 말을 할 만큼 종교적 풍토가 다양해졌습니다. 육민이란 유교전통의 사농공상에 도사와 승려를 더한 것이고, 삼교란 유교 도교 불교를 가리킵니다. 물론 이러한 남북의 성격은 서진이 동진으로 천도하면서 크게 일변하게 됩니다. (북조에서 오히려 도교, 불교가 융성해지며, 남조에서 현학이 유교의 한 변형태로서 발달합니다.)
 
 어쨌거나 이 시기 이 지방의 역사에 관심 있으신 분들은 <새로 쓴 베트남의 역사>라는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 글의 참고도서입니다. 아마 이산에서 나왔을 겁니다. 이산은 훌륭한 역사관련서적들을 많이 내주는 출판사죠. 베트남에는 한국이 지은 죄도 있어, 그 부채감으로도 한 번은 반드시 공부해야 할 역사를 가진 나라라고 봅니다. <베트남 10000일의 전쟁>도 추천하는 도서입니다.

덧글 2개
 희지재 저는 그런데 이때의 베트남 즉 남월(南越: Nam Viet)이 오나라 정권의 고질적인 충치였던 산월족(山越族)과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지금의 베트남이라는 이름 자체가 월남(越南: Vietnam)이죠.

칠종칠금의 고사에 등장하는 맹획은 당시의 베트남과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우리 대학 정치교수님들마저 그런 말씀을 하시는데, 한국에 왜 이런 신화가 널리 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월남전 하더니 유래 모를 일들에 한동안 ‘월남-’이라는 ‘접두어’를 사용한 한국인 걸 보면, 베트콩에 대한 무의식적 공포가 이런 이야기에 반영된 것이 아닌지요. 양민 학살, 강간 후 살인 등등 나쁜 짓은 남의 전쟁에 돈 벌러 끼어든 따이한들이 훨씬 더 많이 했는데… 쯧쯧… 지금도 베트남에는 제 아비를 모르는 라이따이한(한-베트남 혼혈)들이 많이 있고 많은 베트남인들이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에게 강간당하거나 살해당했습니다. 애당초 박정희가 베트남에 위안부를 함께 파견할 것을 고려했다는 기록이 있으니 말 다 했죠. 한홍구 교수가 이런 발표를 하면서 “네 배때기에는 총알 안 박힐 것 같냐”는 등의 폭언을 베트남참전전우회로부터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은 무섭고, 슬픈 일입니다. 역사에 대한 무반성이 일본 정계만의 문제는 아닌 성 싶습니다.
 2007/04/09 06:04 
 희지재 *덧*
장소가 비루한 서생이라고 부른 것은 설종이 아니라 엄준입니다. 제가 잘못 기억했군요. 그런데 엄준은 장소가 추천한 인물이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적어도 같은 지역 출신은 맞을 겁니다.)
 2007/11/19 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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