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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형과 가후2007-04-04 22:06:04
 희지재


 허도에 인물이 있냐고 묻자 “큰 아이는 공문거(孔文擧: 공융), 작은 아이는 양덕조(楊德祖: 양수)”뿐이라던 예형은 시대와 냉소적인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의 파멸을 가져왔던 불운한 재사입니다. 조조가 미워하여 유표에게 보내자 청류로서 명성 높고 학자를 우대하던 유표는 예형을 환영하며 받아들이죠. 유표가 그 밑의 이름난 학자들과 쓴 문장을 예형에게 보여주자 반도 읽기 전에 비웃으며 찢어버리더니 붓을 들어 일필휘지로 써준 문장에는 고칠 곳이 단 한 자도 없었다고 합니다. 황조 아래에 있을 때에는 황조의 아들이 대단히 공경해 모셨을 정도로 명성 있고 재망이 있었으나, 그 아들 황역(黃射)이 구름같이 달려왔음에도 아버지의 명령에서 예형을 구해내기엔 목이 떨어지는 시간이 너무 짧았을 테지요. 아름답다던 그의 문장은 앵무부 하나가 남아 있을 따름입니다. 정원기 교수님께서 <삼국지 시가 감상>을 내신다는데 그곳에 실려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삼국지 오서 장소전 주석에서 예형은 장소를 빛내기 위하여 등장합니다. 내용상의 유형주는 물론 유표로서, 중국인들은 관직을 성 뒤에 붙여 그 인물을 존대하곤 합니다. 예주자사를 제수한 유비도 유예주로 불린 때가 많았지요.

 <전략>에 이르길, [내가 예전에 듣기로 유형주가 일찍이 직접 글을 써서 손백부에게 주려고 하여 예정평에게 보여주었더니, 정평이 이를 얕보며 말하기를 “이같은 글이면 손책 막하의 어린아이에게 읽게 하려는 것이지, 장차 장자포에게 보여주려고 하십니까?”라 했다.]
 예형은 공융이나 장소 같은 대학자이자 문장가들에 대해서는 열렬한 애호를 보여주었으나, 유표는 불행히 그와 같은 자질을 갖추지 못 했습니다. 학자들을 존숭한 유표라도 그를 진심으로 좋아하기는 어려웠을 테지요.
 조조는 한실을 독단으로 전횡하는 인물이었으니 예형의 마음에 들기 어려웠을 듯 합니다. 조조가 불어온 새로운 문풍(文風)이 공융이나 예형 같은 전통적 지식인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도 의문입니다.  


 위서 순욱순유가후전에 배송지가 주석을 달아, 이순(二荀)은 장량 같은 무리이고 가후는 진평 같은 무리인데 진수가 세 사람을 한 전에 실은 것은 부당하다고 했습니다. 가후는 곽가나 정욱 등과 함께 실렸어야 한다고 했지요. 계책을 세우는 데에는 차이가 없어도 장자의 품격에서는 이순과 가후 사이에 차이가 존재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가후는 조정의 대신으로 위나라의 기틀을 세우는 데 기여한 사람이라서, 유교적 해석틀에 동의할 수 없는 제가 보기에는 가후는 곽가나 정욱 등과는 차등이 있습니다. 소설에서 곽가의 귀신 같은 지모에 반한 분들이 많으시겠지요. 글쎄, 유성 정벌 후 곽가가 죽고 순욱에게 조조가 술회한 “곽가에게 훗날을 부탁하려 했다”는 한탄과 적벽에서 패전한 후 “곽가만 살아 있었더라면…”이라 탄식한 조조의 식지 않은 애정 때문일까요. 병귀신속(兵貴神速)이라는 성어를 사전에 남긴 곽가의 병략적 재능은 분명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진군과 대립할 정도로 행실에는 문제가 있어 오래 살았더라도 대신의 지위에 어울렸을지는 의문입니다. 순자의 후손인 명문 출신의 순욱 순유와 비하기는 어려운 배경을 지닌 가후이지만, 평생 몸을 사리며 흠이 날 행동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곽가나 정욱 같은 무리와 가후가 구별되는 지점일 것입니다. 가후나 예형 가운데 어떤 인물상을 더 아끼시는지. 유자들의 선별은 언제나 예형이었습니다.

덧글 2개
 희지재 진군이나 사마랑을 만나 벼슬이라도 얻어보라는 주변의 권유에 “푸줏간에서 고기나 써는 사람들을 찾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했던 예형. “그러면 순욱은 어떻습니까?” “순욱은 남의 문상 가기나 어울립니다.” 예형과 가후보다는 예형과 순욱을 대조해보는 것이 어울렸을 지도 모릅니다.
남의 문상 가기나 어울린다는 순욱은 이미 죽어서 조조의 발상을 할 수 없었습니다. 조조라는 거인이 돌아가자 조야가 모두 당황해 있을 때 이를 수습해 상을 치른 사람이 사마랑의 동생, 유학적 조예가 깊었던 사마의지요. 제게 위진남북조 시대를 관망하는 가장 흥미로운 시각은 장군들의 군담을 듣는 것이기보다는 이제는 당대 상황에 대한 지식인들의 대처를 구경하는 것입니다.
 2007/05/16 08:05 
 희지재 제가 이전에 황사(黃射)라고 적었던 이 이름은 사료 주석에 황역으로 읽어야 한다고 쓰여 있답니다. 인터넷에서 다른 분의 질정을 받고, 신동준씨의 <자치통감 삼국지>도 황역으로 옮기셨기에 늦게나마 고칠 기회를 얻었습니다. 질정을 주신 그분 말씀으로는 장의도 마땅히 장억으로 읽어야 한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뛰어나다는 의미의 기억(岐嶷)이라는 옛말이 있는데, 장억의 자가 백기(伯岐)이기에 억으로 읽어야 짝이 맞는다는 거지요. 장의로 읽을 때 뫼산 대신 풀초 부수를 갖기도 하는데 그런 부분까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2007/07/19 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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