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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삼국시대와 긴 삼국시대2007-03-30 22:49:31
 희지재


 오나라의 다섯 대장을 뽑으라면 천공은 누구를 꼽을까요?
 여러 조건을 내세울 수 있습니다. 사실 오나라는 삼국 중 국체의 설립이 가장 늦어서, 손권이 제위를 칭한 황룡 원년(229)에는 이미 유비와 조조 모두 죽고 없었습니다. 언제를 기점으로 하여 오대장을 뽑는지에 따라서 인적 구성은 상당히 달라질 겁니다. 정보, 황개, 한당 등 손견의 숙장이 이때는 이미 모두 별세했고, 주유, 노숙, 여몽 등 대전마다 강동의 대군을 지휘한 명장들도 모두 병으로(오나라는 정말 불운하군요T-T) 세상을 등진 시기였습니다.
 위나라의 첫 연호는 황초(黃初), 오나라의 첫 연호는 황룡(黃龍)인데, 왜 그런지 아시겠지요? 아시다시피 한나라가 화덕(火德)으로 일어선 나라였고 고조 유방이 적제(赤帝)의 아들이라는 설화도 퍼져 있었기에, 국체를 바꾸기 위한 황건 농민혁명은 누런 두건을 쓰고 토덕(土德 : 오행에서 불은 흙을 만듭니다.)을 자칭했습니다. 오나라와 위나라의 연호에 공통으로 황(黃)자가 들어가는 것도 그런 의미입니다.
 촉나라는 한나라를 계승하고 있었으므로(국명은 촉이 아닙니다, 엄연히. 유비는 한소열제로 죽었지, 촉소열제로 죽지 않았죠.) 제도도 대개 한나라의 옛 제도를 본받았으며, 망할 당시의 연호인 염흥(炎興)은 불꽃이 일어난다는 뜻으로서 그 도참설적 의미가 분명합니다. (맹자가 주창한 선양과 방벌에 따라 도참설적인 오행의 순환도 달라지는데, 음흉한 조비는 위선적인 선양을 통해 제위를 이어받은 중국사의 첫 번째 위정자입니다. 어쨌건 형식적으로 선양의 조건을 갖추었기 때문에, 위나라는 한나라를 평화롭게 계승한 것으로 스스로 규정한 뒤 토덕의 황색을 연호에 사용했습니다.)
 조비, 유선 등이 즉위한 시기를 후삼국으로 부르자는 간웅의 제안이 있었는데, 저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조비와 유선이 즉위한 이후에야 비로소 오나라가 제위를 칭했고, 그로써 비로소 삼국이 갖춰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168년부터 280년을 ‘긴 삼국시대’로, 229년부터 263년을 ‘짧은 삼국시대’로 부르는 것이 차라리 낫겠군요. (에릭 홉스봄의 역사학적 개념인 ‘긴 19세기’와 ‘짧은 20세기’에서 얻은 아이디어입니다.) 진나라 무제는 오나라를 멸망시킨 직후 전국의 군대를 해산하는데, 이때 비로소 통일국가가 나타났다는 인식이었기에(물론 이건 오산이었습니다. 이 개혁으로 인한 급격한 군사적 약화는 이어진 남북조시대의 직접적 조건이 된 것 같습니다.) 짧은 삼국시대의 시한을 오나라가 항복한 280년으로 늘리는 것은 가능할 것 같기는 하나, 엄밀히 말하면 삼국이 공정하게 존속한 시기는 촉한이 망하는 263년까지입니다.
 

덧글 4개
 천공 첫 문장부터 저의 대답을 요구하는 문장이라. 부담스럽군요. ^^; 2007/03/31 01:03 
 희지재 저런 건 유치한 강요일 뿐이라, 대답할 필요는 없습니다^^; 원래 <능통과 동습>의 답글로 달려고 썼던 글입니다. 2007/03/31 10:03 
 희지재 손권은 아주 오래 살아서 태자가 먼저 죽을 지경이었죠. 어떤 초기 공신도 손권보다 오래 살지 못 했습니다. 장소가 늙어서까지 손권과 앙숙이었고, 정봉 같은 젊은 공신들은 손권과 의견을 다투기 어려웠습니다. 손권 자신이 술자리에서 취하면 우번 같은 대학자를 술 안 받는다는 정도의 이유로 죽이려 들고, 사냥터에서 호랑이와 맨손 격투할 정도로 격한 기질의 인물이었으니, 그가 간신에게 귀를 기울일 때는 조정의 대신들이 모두 몸을 사릴 뿐이었습니다. <한진춘추>를 쓴 습착치는 황제와 정견이 다르다고 집을 불태워가며 싸운 장소의 행동은 불충이라고 꾸짖었지만, 오히려 장소 같은 신하가 있었기에 손권이 함부로 망령된 행동을 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해보입니다. “나는 장공(張公)과 말할 때는 감히 망언하지 못 하오.” 장소와 장굉만이 손권이 자를 부르지 않고 공(公)이나 벼슬로 높여 불렀던 단 두 사람입니다. (자를 부르는 것은 대체로 친숙함을 표시하는 일인데, 벼슬을 붙여 부르는 것은 좀더 공식적인 존중의 뜻을 나타냅니다.)
장소는 적벽대전을 앞두고 주유 노숙의 주전론과 맞서 주화론을 주창했던 이유로 손권이 후에 그 일을 추궁할 때는 그저 땀만 뻘뻘 흘릴 뿐이었습니다. 손권의 입장에서 잡은 유일한 약점이었을 겝니다. 육손조차 후에 손권의 행동을 막지 못 하고 울병이 들어 죽었는데, 손책의 친우였으며 적벽의 대군을 이끈 주유가 장소처럼 오래 살았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요.
오늘 장소전의 배송지주를 처음 보았는데, 배송지 자신의 견해를 펼친 대목이 이제까지의 제 생각과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들더군요.
 2007/03/31 10:03 
 희지재 저는 짧은 삼국시대를 229년으로 시작하자고 적었는데, 그건 229년이 손권이 스스로 황제를 칭한 해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220년에 위가 세워지고 221년에 촉한이 나타나자 222년에 이미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조비의 오왕 책봉을 받아들여 대국에 대한 공손한 태도를 취했으면서도 독자적인 연호를 사용함으로써 결코 단순한 속국이 아님을 드러내었기 때문에, 실제 많은 역사서들은 222년을 오나라의 시작점으로 칩니다. 제가 말한 짧은 삼국시대를 222-263으로 잡는 것이 더 나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한편 222년 오나라의 연호는 황무(黃武)입니다. 2007/08/01 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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