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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시대의 서로 다른 채색 스케치2007-03-15 17:23:42
 희지재


 1.1 조인을 포위하고 우금을 사로잡아 위력을 보이는 관우. 만총, 여상, 여건, 서상, 누굴 보내봐도 백전노장 관우의 상대가 될리 만무합니다. 드디어 조조가 오나라와의 배후외교에 들어가 대오전선에 있던 장료와 하후돈을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대군에 앞세워 명장 서황을 보내고 은서, 주개 등 12군영을 더 파견하지요.
 연의에는 관우와 장료가 비록 적진에 있어도 서로를 극진히 대하는 사이로 나오는데, 사서에서는 그에 관한 근거를 알기는 어렵습니다. 장료는 동해 땅의 창희를 항복시킬 때 교마어를 나누며 외교적 수완을 보이는데, 이 장면은 연의의 관우와의 고사와 비슷하네요. 창희라는 인물은 장패와 달리 끊임없이 항복과 배신을 거듭하는데, 결국 친우 우금의 손에 죽었습니다. 창희도 전란 속에 흥미로운 삶을 산 인물입니다. 소설에서든 사서에서든 관우와 우의가 깊었던 조조측의 장수로는 서황이 있습니다. 관우의 말년에 형주에서 일어났던 전장에서 관우와 서황은 마지막으로 마주칩니다. 그간 안녕했느냐며 인사가 오간 것도 잠시. 서황은 말에서 내려 외치기를, “누구든 저 관우의 목을 베어오는 자에게는 천금의 상을 주겠다!” 관우는 물론 무척 놀랐죠. “서형, 그게 무슨 말이오!” 그런데 서황은 정색하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나라의 일입니다.” 가만 보면 조조의 장군들은 주인에 대한 충성으로 친우와 생과 사를 갈라서는 경우가 있습니다. 창희와 우금이 그렇듯, 지금 보는 서황과 관우도 그렇군요. 결국 용감하면서도 잘 정리된 전술을 구사하는 서황의 군대에 의해 관우는 패퇴하고, 포위는 풀리게 됩니다. 조조도 더이상 형주까지 갈 필요가 없어졌고, 서황도 마피까지 남하한 위왕(魏王)을 만나러 갑니다. 패주하는 관우에게는 동오의 명장 여몽과 육손, 오주(吳主)의 종제 손교, 그들의 군대에 포함된 주연, 장흠, 반장 휘하의 아직 지치지 않은 병사들과의 전쟁이 남아 있습니다.



 1.2 손씨 집안은 다들 수명이 짧아서, 손정의 아들 손유, 손교, 손환 등도 저마다 손씨의 원정대장 역할을 했지만 곧 죽는 모습을 보입니다. 손교는 219년 관우를 침공할 때 손가의 혈연으로서 군대를 인솔했습니다. 원래 손권은 여몽과 손교를 좌우독으로 임명하고 싶어합니다. 손강(손견의 형. 자는 성대)의 아들 손분이나 손보가 다소 독립적인 태도를 취할 때가 있었던 것과 달리, 손정이 손강이나 손견에 비해 나이가 어린 막내였기 때문인지, 손정의 아들들은 그 아버지처럼 손견-손권 집안을 흔들기보다는 보조하는 역할을 해주는데요. 적벽대전에서 젊은 주유와 노장 정보가 좌우독에 임명되면서 사사건건 충돌한 예를 들어(물론 정보는 후에 주유를 만나는 것은 향기로운 술을 마시는 것과 같다고 늘 주위에 말할 정도로 주유를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주유는 그런 사람입니다.) 여몽이 “저 아니면 손교, 한 사람에게만 맡기십시오.” 하고 나오자 그제서야 여몽을 정독, 손교를 부독으로 임명했습니다. 손교는 금새 죽었으므로 별 기록이 남아있지 않고, 그저 감녕과 술자리에서 다툰 적이 있었기 때문에 감녕전의 주석에는 이름을 올렸습니다.

 위에 열거한 손환과는 다른 인물이지만, 손하의 집안에서 나온 손환이 한 사람 더 있습니다. 손하의 아들이며 손소와 종형제간이던가요. (손하는 원래 유씨였고, 총애를 입어 손씨 성을 하사받았습니다.) 이 인물은 손권이 이릉에 주연과 함께 좌우독으로 내보낸 것 같은데(노장 정보, 한 핏줄인 손교, 피는 이어지지 않았어도 직접 성씨를 내려준 손환 등 손씨집안은 대규모 전쟁을 앞두고 제 장수들이 배신하지 않도록 이런 방식의 배려를 합니다. 혈연보다는 유능한 인재에게 군사를 맡기는 것이 전쟁의 효율성에서는 유리하겠지만, 장군들이 죄다 자신들의 사병으로 전쟁을 하는 동오의 구조상 어쩔 수 없이 나타나는 특징이죠. 그런데 이릉에서 손권이 군권을 위임한 방식은 저로서도 잘 정리가 안 됩니다. 219년에 관우가 죽자 220년에 유비가 정벌군을 일으켰고, 이를 방어하기 위해 파견한 주연과 손환이 유비측의 군세에 밀리게 되자 다시 육손에게 군권을 맡겨 221년에야 승기를 잡은 것이 아닌가… 일단 그렇게 정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동장군 벼슬이 있어 손안동으로도 불리는 것을 보면, 실질적 지위가 도독이었는지 장군이었는지 헷갈립니다.) 사실 유비와 모르는 얼굴이 아니였거든요. 조조 밑에서 편장군을 지내고 정후 벼슬까지 얻은 관우가 조조 막하의 장수들과 모르는 사이일 수 없었듯이, 유비 역시 손견의 딸과 결혼한 엄연한 손권의 매부이고(비록 아내와의 사이는 매우 나빴고 아내에게 살해당할 것을 두려워해 신혼 직후 거소를 따로 뒀습니다만), 결혼을 위해 동오까지 직접 찾아가기도 했으니까요. 유비는 손환을 포위하는데, 육손은 손환을 구원하러 가야 한다는 제장들의 요청을 물리치고 유비 본군을 깨뜨려 간접적으로 손환의 포위를 풀어줍니다. 유비는 패주하면서 손환의 추격에 가파르게 쫓겼는데, 이때 이렇게 말했다고 하지요. “내가 처음 경성에 갔을 때 손환은 그저 어린 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나를 핍박하여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이때 손환은 25세였습니다.

 
 2.1 조비가 당대에 대단한 명성을 날리던 죽림칠현의 거성 혜강을 만나 물어봅니다. “한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약이 있는데, 네 부모와 내가 아프다. 누굴 살릴 테냐?” 혜강은 짜증을 내며 대답합니다. “부모.” 하여간에 이 이세황제, 정신세계의 유치함은 못 봐줄 정돕니다. (전 조비 이 음흉한 인간만큼은 정말 싫더라고요. 권력의 어두운 면만 본달까, 그런 느낌.)
 황제 체면 다 구긴 조비지만 감히 혜강을 죽이지 못 합니다. 청류사회에서 이 청담가의 명망이 워낙 대단해서, 자칫 죽였다간 득보다 실이 클 테니까요. 조비는 음흉한 인간으로, 후계자 분쟁에서 승리할 때를 보듯이 이런 정치적 계산에서는 바보가 아닙니다. (왜 이럴 때 ‘밤의 대통령’이 떠오르죠-_-;) 그런데 조비 못지 않은 프라이드와 조비보다 더 좋은 지능, 그러나 역시 조비 수준의 유치한 내면세계와 조비보다 못한 정치감각을 가진 귀공자 한 명이 사고 칩니다. 바로 종회. 삼공의 아들에다 미남이었던 이 공자님이 추종자들을 데리고 유명한 혜강을 찾아가죠. 혜강과 제자들은 열심히 풀무질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공자가 왔다면 얼굴이라도 한 번 들여다봐야 할 혜강이 웬걸 종일 풀무질만 하고, 이 귀공자 성질이 끝까지 나죠. 반나절을 기다리다 체면 구기고 돌아서는데 혜강이 처음으로 물어봅니다. “무엇을 듣고 와서, 무엇을 보고 가나.” 종회, 아주 이를 갈면서 내뱉습니다. “들은 것을 듣고 와서, 본 것을 보고 가오.” 결국 얼마 뒤 혜강을 비방해 죽이고 맙니다. 종회는 역시 죽림칠현의 거성이던 완적에게도 트집을 잡기 위해 종종 시사적인 질문을 던졌으나, 완적은 늘 취해 있었으므로 이런 질문들을 피해갔다고 하는군요.


 2.2 종회는 <세설신어>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종회와 그 형 종육이 어릴 때의 고사가 조금 나오는데, 아주 재미있는 대비를 이루죠.
 아버지 종요가 벽장 속에 꿀을 숨겨뒀는데, 이 어린 형제가 그 달콤한 유혹을 그냥 넘어가지 못 합니다. 그런데 소심하고 근엄한 형 종육은 꿀을 꺼내면서도 아버지의 물건이라 거기에 배례를 하죠. 종회. “훔쳐먹으면서 절은 무슨 절입니까?”
 이 형제가 명색이 위나라 삼공의 자제들이라 어린 나이에 황제 조비를 뵙게 됩니다. 형 종육, 아주 땀을 뻘뻘 흘립니다. 남의 눈에 띌 정도로 심하게 흘렸던 모양이죠. 결국 황제의 인사는 기괴한 내용이 되고 맙니다. “그대는 왜 그렇게 땀을 흘리느냐?” 소심하고 근엄한 요 형은 가슴이 두방망이질 치고, 손바닥은 이미 흥건했죠. “황송하고 창망해서 땀이 멈추질 않습니다.” 웃음이 난 조비가 이번엔 동생 종회를 돌아보고 물었습니다. “그대는 왜 땀을 흘리지 않느냐?” 그러자 요 작은 원숭이, 종회가 한 대답이 걸작입니다. “황송하고 창망해서 감히 땀이 나질 않사옵니다.”


 3 이 두 시대는 기질적으로 다르지요. 종회와 같은 귀족적 인간형은 앞선 전란의 시대의 결과물로 비로소 나온 것입니다. (후한 말엽의 전란기를 길게 잡으면 168년부터 280년이 되는데, 이 기간동안 결국 한대의 사회와 다른 성질의 문벌귀족사회가 탄생했습니다.) 말더듬는 늙은 장수 등애의 근엄과 순진이 이전 세대의 성질에 속한다면, 섬세하고 교활한 종회는 분명 이후의 시대를 보여주는 듯합니다. 촉한을 정통으로 하는 연의가 쇠락해가는 나라의 암군과 간신, 비의와 강유의 지루한 노선분쟁(그나마 재상은 간첩에게 살해당하며, 군사지도자는 변변한 공적도 없이 자원만 소모합니다) 등의 이미지를 보여주면서 독자들의 애정을 상실하기는 하지만, 당시의 주류 사회였던 위진 왕조의 새로운 인간형을 관찰하는 것은 의외로 흥미를 끕니다. 게다가 자신의 자부심에 걸맞는 공적을 얻기가 무섭게 자신의 왕조를 선언하는 종회의 희극, 반대로 이 희극에 제 왕조의 쇠미해가는 명운을 걸어야 했던 강유의 비극. 이것은 한 소설의 끝을 알리기에 적절합니다. (유선과 극정이 등장하는 에피소드도 마찬가지로 적절하지만, 유심을 등장시켜 굳이 유선과 대비시킨 것은 사족이 아닌가 합니다.)

덧글 1개
 희지재 제가 잘못 쓴 부분이 있어서 정정 각주로 이 글을 답니다: 조비에게 부모를 살리겠다고 답변한 사람은 혜강이 아니라 병원입니다. 2009/04/24 0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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