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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이름 문제2007-02-10 14:45:33
 희지재


 당양에서 조자룡이 어린 아두를 구출해 왔을 때, 유비가 아들을 바닥에 내던진 <연의>의 장면은 극적이고 그만큼 유명합니다. “형제는 수족과 같고 처자는 의복과 같다”고 말한 유비는 전장에서 자주 처자를 잃어버립니다. 그나마 여포는 그때마다 유비의 식솔을 잘 보호해준 것 같지만, 행방이 묘연한 경우도 있습니다.
 
 옛 중국의 예법은 “어미는 그 자식으로 인해 귀해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요, 유선이 제위에 오름으로써 감부인도 황후로 추존되었지만 본래는 미천한 지위에 있던 여성입니다. 유비가 정실을 여러 번 잃어버리면서 결국 곁에서 모시던 감부인이 후일의 후주를 낳은 것입니다. 감부인은 죽은 뒤에도 오랫동안 형주에 묻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유비의 대단한 사랑을 받았던 것 같지는 않습니다.
 
 젊어서 처자를 여러 번 잃어 유비는 중늙은이가 될 무렵까지 자식 다운 자식을 갖지 못 했습니다. 이례적인 정착생활을 했던 형주에서 갖게 된 자식이 후주 유선(劉禪)이죠. 이때 유비는 이미 대를 잇기 위한 양아들 유봉(劉封)을 두고 있었습니다. <연의>에는 잘 묘사되지 못 했지만 상당한 가문의 출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유비는 후사를 다른 집안에서 온 이 양자에게 넘겨줄 생각은 없었고, 그래서 후에 기업이 세워지자 그를 정치적으로 제거한 것으로 보입니다. 불운한 젊은이죠.
 
 유봉은 본디 구씨(寇氏) 집안 출신인데, 유비가 성을 주면서 봉(封)이라는 이름도 함께 주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유비는 친자가 태어나자 이름을 선(禪)이라고 지어주었는데, 두 이름을 합치면 천자가 남북에서 지내는 제사 이름인 봉선(封禪)이 되지요. 그래서 유비의 야망이 이때부터─즉, 조비가 헌제로부터 제위를 선양받고, 헌제가 죽었다고 촉한에 잘못 알려지기 전에─ 은연중에 드러나고 있다고 보는 논자들도 있습니다. 만일 헌제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민제(愍帝)라는 시호까지 지어 올린─그래서 헌제에게 올려진 시호는 두 개입니다. 왕조의 말년을 상징하는 인물 다운 부분이죠─ 것이 모두 정치적인 제스쳐였다면, 소문의 근원이 외려 촉한의 중추였다고 한다면, 역사 속의 효웅 유비는 <연의>의 유비와는 전혀 다른 성격이 되겠군요.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유비가 봉선(封禪)의 짝을 맞춰 자신의 야망을 후주의 이름에 감춰두었다고 할 때, 동시에 촉한의 쇠망도 이름에 심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촉한의 학자 초주는 선주와 후주의 이름이 대단히 불길하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선주의 이름이 유비(劉備), 후주의 이름이 유선(劉禪)이라서 결국 ‘유(劉)씨의 나라를 준비(備)해서 넘겨준다(禪)’는 뜻이 된다는 거지요.

덧글 4개
 미주랑 유비는 원래 한 황실의 직계 자손이 아니라 단지 허술했던 족보를 비집고 들어가 경제의 후손임을 자처했다는 설이 있는데 유비의 야심을 강조했다는 측면에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해도 무리가 없을 듯 싶네요~ 유비와 유선의 이름이 그러한 깊은 뜻을 내포하고 있었다니 사실 무척 뜻밖입니다^ ^; 2007/02/13 03:02 
 천공 유봉은 귀족가문 출신이야. 2007/02/13 09:02 
 희지재 나후(羅侯) 구씨 출신인 유봉의 정체에 대해서는 바로 위의 천공이 후한서를 찾아보며 논지를 전개한 적이 있습니다. 후한서는 국내에 제대로 번역된 자료가 없습니다만, 천공이 후한서 군국지 남군편에서 ‘지강후국은 본디 나국이다.’라는 대목을 찾아냈더군요. 관내후와 달리 열후는 세습되므로, 나후가 나국의 열후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천공의 말처럼 유봉은 형주 남군의 호족이 되는 셈입니다. 정사에서 맹달이 유봉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신빙성 있는 추론입니다. 나아가 천공은 유봉의 외가인 장사 유씨를 추적하면서 일전부터 유반과의 인척설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 쪽은 조금 더 논란의 여지가 있지요.
인터넷에서 읽은 다른 글은 나후가 형주의 이민족이라고 하는데, 구(寇)라는 성씨의 뜻을 생각해보고 마냥 제껴듣지 못하여, 나후 구씨라는 것이 당시 형주에서 어느 정도의 실력을 가진 집단이었는지, 그 명확한 정체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판단을 보류하고 있습니다.
경제는 서한의 황제고 헌제는 동한의 황제인데, 서한과 동한은 황실부터가 직계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그 사이에 왕망의 정권이 있었으니까요. 이문열은 경제가 자식이 몹시 많았다고 했는데, 사실 경제는 자식이 별로 많지 않았지만 중산정왕 유승은 자식이 많았습니다. 당시에 유언 유장 부자, 유대 유요 형제, 유표, 유우, 유엽 등 황계에 대한 정통성을 말하자면 유비보다 훨씬 더 분명한 혈통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늘 생뚱맞은 소리를 늘어놓는 인상을 주는 초주는 저기 인용한 부분에서도 역시 실망시키지 않네요. :-) 촉한의 경학에 관심을 기울이는 천공이 초주에게도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2007/02/13 09:02 
 천공 촉한의 경학에 있어서 초주가 미친 영향은 그다지 높지 않으니 초주란 인물을 촉한의 경학사에 굳이 포함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되지만 나름대로 생각하는게 재미있는 인물이나 눈여겨 볼 뿐이지.

그리고 유봉을 양자로 삼는 과정을 살펴 볼 때 나후 구씨를 이민족으로 포함시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보여져. 이유인 즉 유비가 내건 슬로건은 한 황실의 혈통의 계승이자 부활이자나? 그런데 나후 구씨가 형주의 이민족이라고 한다면 실리적인 측면을 잠시 보류하고서라도 명분이 맞지가 않아. 유봉의 경우 외가의 성을 취해 유비의 양자가 된 경우라서 당시 사회적인 풍토에 의거하여 바라볼 때 만일 유봉의 친가가 형주의 이민족(즉 한족이 아니라면)이라면 유비로서는 논란의 소지를 스스로 품에 안은 것이 되기 때문에 '유비'라는 인물의 특성상 매우 무리한 이야기라고 볼 수 있지.
 2007/02/14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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