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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욱의 윤리 화흠의 윤리2006-11-23 22:21:25
 희지재


 1 저수(沮授), 전풍(田豊) 등이 모두 용렬한 주군(州君: 그것도 원가의 고리故吏인 기주자사 한복韓福) 아래서 별가 따위 벼슬로 있거나 아예 쓰임을 얻지 못 하고 불우히 있던 서생들이었다. 기주를 얻은 원소(袁紹)가 이들의 재능을 들어 쓰면서 점차 권력의 중심부에 올랐다.
 관도(官度)에서 조조(曹操)의 승리를 이끌어낸 원소진영의 ‘약한 고리’ 허유(許攸)와 순우경(淳于瓊). 허유는 남양태수, 순우경은 우교위(右校尉: 서원에 설치한 여덟 교위의 하나. 같은 때 원소는 중군교위中軍校尉, 조조는 전군교위典軍校尉로 있었으며 중상시 건석이 상군교위로서 이들을 통솔했다. 상군교위 바로 다음이 중군교위라 원소의 지체가 조조와 순우경보다 조금 높았지만, 대체로 같은 반열이었다.)를 지낸 뒤에 비슷한 반열이던 원소에게 찾아들었으므로 이들의 위신은 원래 원소의 다른 신하들보다 높다. 허유는 탐학을 부리다 원소의 신용을 잃자 조조에게 투항하여 군량고의 소재를 누설했고, 오소를 지키던 순우경은 홀대를 원망하듯 술만 마시다가 기병(奇兵)에 당해 코 베이고 목잘렸다. 문생(門生) 고리(故吏)가 천하에 퍼져있었던 원소는 반대로 모든 신하의 그늘까지 살피지 못 했다. 그에게 인재는 언제나 쉽게 대신할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일까.
 백마에서 안량(顔良)을 단신으로 기용한 것, 허유 같은 모리배를 통찰하지 못 한 것이나 순우경에게 군수(軍需)를 맡긴 것들은 모두 원소가 인재를 잘못 쓴 예였다. 인물을 감식하고 선용할 줄 아는 조조의 눈을 만나 원소의 이같은 약점은 감춰질 수 없었다. 관도의 패전은 이런 인물들이 원소의 구심력을 이탈하는 과정이다.
 
 1.1 조조는 오소를 태우고 장합(張郃)을 얻었다. 곽도(郭圖)의 참언으로 투항한 이 명장은 전황을 밝히는 안목이 때로 곽도나 마속(馬謖), 사마의(司馬懿)를 넘어섰던 지용겸비의 인걸이었다. 장비(張飛)가 장합을 깨뜨린 파서(巴西) 싸움은 역전(歷戰)의 의미를 되새기게 함과 동시에 당시 유비(劉備)진영의 강성함을 드러내고 있다.
 장합과 곽도의 갈등을 ‘그 시대의 지역감정이었다’고 쓴 리동혁의 의견을 인용한 적이 있다. (게시판의 <곽도와 남만 동굴> 참조) 원소의 가문은 여남(汝南) 땅의 명문이고, 곽도는 곽가와 함께 영천(潁川) 출신이다. 예부터 ‘여영(汝潁)’이라 하여 이 두 곳은 호족 명문이 많았고, 재사들을 배출해왔다. 조조의 제1·제2공신인 순욱·순유 숙질도 영천의 명문 태생이다.


 2 <연의>는 그 초반에 십상시(十常侍)의 세도와 함께 용렬한 하진(何進)의 모습도 그려내고 있다. 당고(黨錮)의 두무(竇武)는 그에 비하면 멀리 있다. 서한에는 외척이, 동한에는 환관이 나라의 큰 병폐였다는 도식화는 지나친 데가 있다. 어차피 환관세력이 발호하는 힘은 황제에게서 나오는 것이고, 외척이나 권신(權臣)이 빼앗아간 권한에 대한 반동으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동한의 황제는 처음 몇 세대를 빼고 모두 어린 나이에 즉위해, 수렴청정하는 태후(太后)를 낀 외척의 위세는 마찬가지로 컸다. 가와카스 요시오는 청류의 우두머리였던 진번(陳蕃)이 외척 두무와 합세한 당고사건에도 불구하고 내정(內廷)의 외척과 환관은 모두 탁류로 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한다. 청탁(淸濁)의 구분에는 경제적 관점과 이념적 관점을 모두 적용해야 할 텐데, 그럴 경우 외척의 지위는 다소 애매해지는 데가 있다.


 3 <세설신어>의 어떤 편을 보니 진군(陳群)과 순욱(荀彧)이 어려서 만난 셈이었다. 순욱이라 하면 언제나 사마의가 그를 회상하며 내린 평가가 떠오른다.
 “나는 책에 쓰여진 것이나 먼 곳에서 일어난 일을 눈과 귀로 견문해왔으나, 백수십여년에 걸쳐서 순령군(荀令君: 순욱. 순욱이 한나라의 상서령을 지냈기에 일컫는 말. 순유는 위나라의 상서령을 지내 두 사람을 이순령二荀令으로 꼽아 부르기도 한다.)에 미치는 현재(賢才)를 발견하지 못 했다.”
 나는 순욱을 한신(漢臣)으로 분류하는 것이 옳다고 믿는다.


 3.1 화흠(華歆)은 역사와 소설 사이의 간격 때문에 흥미로워진 인물인데, <연의>에서는 복황후를 힘으로 끌어내고(<통감>에도 나오지만, 신뢰성은 다소 떨어진다.) 헌제의 선양을 강요하는 역적으로 그려졌지만, <세설신어>는 화흠이 문제(文帝: 위문제 조비曹丕)의 즉위를 맞아 외려 안색이 좋지 않았음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이때 문제는 공경(公卿)들을 모두 열후에 올렸지만, 화흠만은 사공(司空)으로 좌천되었으며 작위를 받지 못 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후일 진군에게 “어째서 그때 그대와 화흠은 표정이 좋지 않았소?” 하고 물었다가, 그 대답을 듣고 한참동안 묵묵히 있다가 한숨을 쉬며 두 사람에게 감탄했다고 적혀 있다. 화흠은 풍모가 위엄있었고 조정의 대신으로 천하의 사대부가 앙모하던 인물이었다. (당시에는 인물의 외모도 마치 도덕의 일종인 듯이 품평의 대상이었다.) 비슷한 지위에 올랐던 왕랑(王朗)도 명망에서는 화흠에 미치지 못 했다. 화흠은 그처럼 존경받고 있었던 까닭에 선양의 의식을 거들어야 했고, 후일의 유자(儒者)들은 화흠을 미워해 간신의 전형으로 그려냈지만 <세설신어>에는 동시대 그가 받았던 성망이 반영되어 있다. (반대로 은일隱逸의 기풍을 숭상하면서 화흠보다 관녕管寧을 높이 치는 평가도 생겨났다. <세설신어>는 관녕에 대한 세론도 반영하고 있다. 화흠은 관녕에게 사도직을 양보하려 했는데, 그 소식을 듣자 관녕은 “자어子魚는 본래 늙은 벼슬아치가 되고자 했기 때문에 그까짓 사도 벼슬을 영광스럽게 여기고 있다.”고 비웃었다. 화흠, 관녕과 함께 한 마리 용龍으로 칭송받은 병원邴原의 행적은 <정사>가 잘 기록하고 있다.)


 3.2 화흠은 이미 188년 기주자사 왕분(王芬)의 폐립 모의를 반대한 일이 있었다. (조정의 의랑議郞 벼슬로 있었던 조조가 반대하자 공모자들이 화흠의 힘을 얻으러 갔는데, 화흠 또한 반대하자 모의가 지리멸렬하게 되었다. 왕분은 모사가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황제의 의심을 받자 마침내 자결했다. 이 모의에는 또한 허유가 참여했다.)
 그러나 화흠은 조조의 위공 취임을 반대해 자결한 순욱과는 길을 달리 했다. 위문제의 즉위를 진정으로 반대했다고 여기기는 어렵다. <정사>는 조비가 즉위 후 화흠을 사도(司徒)로 임명했다고 적고 있다. 다만 화흠이 이때 받은 하사품들을 모두 주변에 나누어주고, 내려받은 관노(官奴)들도 풀어주어 시집보냈을 뿐이다. <세설신어>에서도 진군이 이르길, “저희 두 사람은 일찍이 한나라를 섬겼습니다. 지금 비록 마음으로는 성은의 감화를 기뻐하고 있으나, 오히려 의(義)가 안색에 나타남은 어쩔 수 없습니다.”라 하였다.
 <정사>를 보면 유비가 죽었다는 잘못된 풍문이 중원에 전해져 위신(魏臣)들이 모두 경하했는데, 원환(袁渙)만이 홀로 그러지 않았다. 원환은 비록 조조의 신하였으나, 유비의 천거로 벼슬에 나아간 은의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흠과 원환이 보여준 행동은 모순으로만 단정할 수 없는 특이한 도덕적 층위에 있다.


덧글 3개
 희지재 나는 허유가 남양태수를 지냈다는 글을 어디선가 읽었는데, 천공(그는 저의 주요한 레퍼런스인데)도 정확히 알지 못 한다고 하니 조금 자신이 없어집니다. 그나저나 앞으로는 한글2002에서 작업해서 글을 올리지 말아야겠군요. 로그인한 채로 글을 오래 쓰면 자동로그아웃기능으로 인해 쓴 글을 모두 망실할 걱정이 있어서 한글2002로 써보았는데, 가뜩이나 긴 글이 옮겨붙이기까지 하자 이처럼 난독증을 유발하네요. 2006/11/23 10:11 
 장료문원 충분히 잘 읽을 수 있는데요..^^ 제 글 실력은 언제쯤이나 이렇게 되려는지.. 2007/01/18 03:01 
 희지재 2002에서 붙여넣었던 글을 대대적으로 수정한 덕택이지요^^ 정말 고생했습니다. 2007/06/29 0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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