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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과 원담2006-11-05 10:16:34
 희지재


 공손찬이 쳐들어오자 한복은 기주를 원소에게 넘겨줍니다. 한복이 원씨 가문의 고리(故吏) 즉 원씨의 도움으로 출사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국의가 본래 한복의 부장이었고, 신평 순심 곽도가 한복의 심복이었으며, 저수도 한복 밑에서 별가 벼슬을 지냈습니다. 심배와 전풍은 강직한 탓에 한복 밑에서 쓰임을 얻지 못 하다가 원소가 기주를 차지하자 비로소 귀부했지요. 허유를 쓰게 된 것도 이 때입니다. 반대로 한복에게는 병사도 넉넉했고(맹진에 주둔한 그의 종사 조부와 정환이, 한복이 원소에게 항복한다는 말을 듣고 급히 기주로 돌아왔는데 전선이 수백척, 병사가 1만이었습니다. 전열을 엄정하게 하여 밤에 북을 치며 원소의 영채를 지나니 원소에게 시위를 한 셈이지요. ‘북을 치면 나아가고 징을 치면 물러난다’고 하는데, 밤새 그처럼 북을 울렸으니 원소군은 잠을 잘 수 없었겠지요. 원소의 기분이 어땠을까요? 자치통감에 쓰이기를, ‘원소가 이를 매우 증오하였다’고 하네요.) 군량도 충분했으나 원소는 그렇지 못 했습니다. 외려 한복에게 군량을 얻어 쓰고 있었죠. 한나라에서는 문생이나 고리의 관계가 몹시 중요해 죄인이 되면 서로 숨겨주거나 사사로이 원수를 대신 보복해주는 일이 잦았고, 그러면서 나라법을 어겼음에도 도리어 칭송받았습니다. 후일 조조가 이러한 사적 복수를 엄금했지요. 본디 대장군, 삼공, 태수, 자사와 같은 높은 벼슬은 ‘벽소’라고 하여 휘하의 연속을 직접 뽑아 쓸 수 있습니다. 후한말에는 오히려 효렴보다도 벽소 같은 사적 유대가 당상(堂上)에 오르는 지름길이었습니다. 원소의 가문이 천하에 위력을 떨치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메디치가문의 흥성의 비밀을 밝혀주는 사회연결망Link 연구를 여기에 대입해보는 것도 즐겁겠군요. 호족사회 최대의 허브Hub였던 셈입니다. 조조도 196년 이래 대장군, 사공, 승상 등을 역임하면서 연속을 벽소해 뽑아쓰며 관계에 자신의 세력을 만듭니다. 하북의 원씨가문을 완전히 제압한 207년에는 그의 권력이 이미 그의 공신 20여명을 열후로 봉할 정도에 오르지요. 순욱을 삼공으로 올리고자 해 조조가 포기할 때까지 순욱이 열차례나 사양합니다. 후일 위풍(魏諷)(창천항로에서 제갈량이 어린 위풍의 이름을 파자해 “이 아이의 말(言)은 바람(風)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하게 하는 부분은 탁월했습니다.)이 반란하자 상국 종요가 면직된 것은 위풍이 종요가 뽑아 쓴 서조연(승상의 연속)이었기 때문입니다.


 원소가 청주자사로 쓴 맏아들 원담은 정현을 공경하는 등 학문을 존숭한 인재인데, 유비가 청주에서 평원상으로 재직할 때 효렴으로 천거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199년에 유비가 조조에게 서주를 재차 빼앗기고 관우와 이별하여 원소에게 의탁할 때, 청주의 원담이 평소에 유비를 존경했으므로 급히 맞아들였다는 대목에서 의아할 수 있는데요, 그 뒤엔 후한의 이런 사적 은의관계가 바탕이 된 것입니다. ‘원소가 유비가 왔다는 얘기를 듣고 업성에서 3백 리까지 나아가 영접했다. 1개월여가 지나자 도망쳤던 병사들이 점차 유비의 주위로 모여들었다.’고 자치통감은 기록하고 있는데, 아들과의 사적 은의도 무관하지 않겠으나 이때 이미 유비는 천하에 이름을 날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덧글 2개
 희지재 고리(故吏)를 번역할 때 <자치통감 삼국지>는 옛 관리라고 했는데, 그보다는 정원기 교수님처럼 연고(緣故) 있는 관리로 번역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 2006/11/06 08:11 
 천공 한나라에서는 문생이나 고리의 관계가 몹시 중요해 죄인이 되면 서로 숨겨주거나 사사로이 원수를 대신 보복해주는 일이 잦았고, 그러면서 나라법을 어겼음에도 도리어 칭송받았습니다. 후일 조조가 이러한 사적 복수를 엄금했지요. - 협이지. 유비가 협에 의거해서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요러한 협에 의거한 것이지. 오히려 관우나 장비와의 관계보다 조운과의 관계에서 요게 더 잘 나타나니 내 한번 논지를 정리해주지. 2006/11/12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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