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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유비 손권의 리더쉽의 차이점2004-12-04 16:23:13
 강화정


월드컵 이후 히딩크의 리더쉽을 배우려는 노력들이 있었다.
삼국지를 읽으며 위, 촉, 오 나라를 이끄는 자들의 리더쉽에 매우 뚜렷한 차이가 있어서 그 차이를 한번 적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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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
위나라의 황제인 조조. 그는 어렸을때부터 유복한 집에서 많은 하인들을 부리던 사람이였다.
그의 아버지는 돈으로 관직을 산 환관 출신으로 조조는 어렸을때부터 자신의 배경이 큰 약점으로 작용했다.
그의 아버지의 돈이 얼마나 많은지는 그가 집안의 재산으로 군대를 만들었다는 부분에서 상상이 되고도 남는 부분이다.
그의 성격은 매우 독선적이고 이기적이며 타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의 생애는 수많은 실수들로 이어지는데, 그는 한번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한적이 없다..진궁이라는 뛰어난 인물이 탐이 났음에도 그를 잡기위해 자존심을 꺽지 않았다.
사실 그 자신의 능력은 매우 뛰어난 것으로 임기응변과 결단력이 대단하고, 스스로 전장에 나가서 용맹하게 싸웠다.
그의 리더쉽은 사실 우리 주변에서도 종종 보게되는데, 회사내에, 혹은 어떤 집단에든 이런 인물은 하나씩 있게 마련인것 같다.. 물론 그 정도에서 조조만큼은 못할테지만..
이런스타일의 리더쉽은 추진력이 대단하며 부하들도 맹장으로 그의 하고자하는 부분을 이루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하지만 모사들은 경우가 약간 달랐다. 그의 수하로 있는 모사들은 그의 일벌이기 좋아하는 성격에 내조를 하는 일이 대부분의 가장 큰 일이였다.
그에게 계책을 간언할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그뿐이였다. 그것을 주장할수는 없었다.
삼국지를 읽다보면 유비밑의 제갈량, 손권의 주유등은 모사로써 대단한 역량을 발휘하지만, 조조밑의 순욱, 곽가 등은 전혀 그렇질 못하다..사마의는 조조사후의 인물이니 제외한다면 말이다..
조조는 스스로의 능력을 최대화 하여 무리를 이끄는 반면 부하들의 역량을 최대화 시키진 못했다.
삼국지 전반부에 걸쳐 조조는 유비를 자신과 비교할수 있는 유일한 영웅으로 생각하고 있는 장면이 여러번 나온다..
아마 유비가 가지고 있는 자신과의 정 반대되는 리더쉽에 많은 느낌을 받았을것이다.
조조의 수하들은 조조에게 아부하고 복종하는데 최우선시 해야했고, 튀어난 돌은 여지 없이 정을 맞았다..
계륵 사건이 가장 대표적이라 할수 있으며 예형등의 경우도 얼른 떠오르는 장면이다.
그는 언제나 나를 따르라~ 를 외치며 군소리 말고 나를 따르던지 죽던지 양자택일을 하라 였다.
그의 리더쉽의 이런 극과극을 달리는 장점과 단점들은 적벽대전에서 큰 화를 부르게 되는데,
촉과오의 모사들이 머리를 맞댄 함정을 조조혼자의 머리로는 감당치 못해 연환계에 이은 화공을 당해 대패를 하게 된다..그때 조조의 수하에 모사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들모두 불안하면서도 용기있게 조조에게 의의를 제기할수 있는 인물이 없었던 것이다.
바람의 방향이 바뀌면 화공에 큰 화를 당하게 되진 않을까요라는 물음에 호탕하게 웃으며 내가 그것을 모를줄 알았는가, 지금은 바람이 적들에게만 부는때이니 화공을 한다면 오히려 저들에게 불이 옮겨붙을것이다라는 말로 일축한다.
그리곤 그것으로 끝이다. 그래도 어쩌고 하며 조조의 신경을 긁을순 없는것이다.
결과는 단 하루 바뀐 바람의 방향의 영향으로 대패하고 그들은 도주하게 되는 운명에 처한다.
그들이 대패하고 도망하는 과정도 참 재미있다. 조조는 도주하는중에 껄껄 웃으며 제갈량과 주유의 머리가 나만 못하다. 만약 나였다면 이곳에 매복을 뒀을것이다 라며 자신감을 잃치 않는 모습을 보이고,
그와중에도 부하들은 역시 군주님은 대단하십니다라며 아부를 한다...;;
상황은 그 말이 끝나자마자 매복이 쏟아지고, 간신히 도망치는 와중에 한번더 똑같은 상황을 연출한다.
구사일생끝에 무사히 중원으로 돌아간 조조는 그제서야 가슴을 치며 내게 곽봉효만 있었더래도 오늘일은 없을것이다 라며 절규를 한다..이때 곽가가 제갈량과 맞먹을수 있는 대단한 지략가라고 보기보다는 어쩌면 어렸을때부터 친했기에 과감히 자기에게 조언을 해줄수 있는 유일한 모사였다고 말하는게 맞지 않을까 싶다.
다르게 말하면, 내게 곽가의 조언이 있었다면 이런참패는 없었을 것이라고 볼수 있으며, 아무리 그 누구가 지략이 뛰어나고 주유와 제갈량을 넘더라도, 조조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인것이다. (오히려 조조는 주위의 모든인물들에게 의심을 많이 하고 있는것을 볼수 있다..)
중원을 재패한 조조의 수하에는 천하의 기재들이 다 모였었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였을것이지만,
그들의 역량을 충분히 살리지 못한 조조의 리더쉽에 아쉬움이 남을 뿐이며,
조조 스스로의 지략이 제갈량 및 주유에 비교해서 손색없다면 모를까, 그의 자랑이였던 맹덕신서를 장송이 비웃었던것을 보면 남보다 뛰어나긴 했을 지언정 일류는 못됐었던 것 같다..
결국 위나라의 가장 큰 위기는 조조가 죽고 그의 공백이 남긴 자리를 메꾸는 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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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비.
삼국지 전체를 걸쳐 강조되는 그의 리더쉽은 덕망에 근거를 두고 있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무능력에 우유부단했다고 볼수 있다. 이런 스타일은 리더로 성공하기에 매우 불리하며 유비가 애초에 관우 장비의 형님이자 나아가 촉의 황제가 되는데에는 한왕조의 후손이라는것에 가장 큰 덕을 봤다고 생각한다.
그는 조용하고 타인의 말에 귀기울이며 가끔은 주관없이 남의 말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경우도 있지만, 그의 대의와 도덕성이 흔들리지 않았다는것은 그의 가장 훌륭한 점일 것이다.
전혀 없는듯 한 카리스마이면서도 은연중에 남의 도움을 많이 받는 유비는 타고난 복중에 인복이 가장 좋다고 볼수가 있을것 같다.
별 노력을 하지 않고도 그의 주변에는 뛰어난 인물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그 대단한 인물들을 데리고도 주둔할땅 한조각 없이 이리저리 방랑할수밖에 없었던 것은 유비 스스로도 가장 원통해했던 그의 결단력부족이다..
우리주변에 종종 볼수있는 지나치게 착해서 남에게 이용을 많이 당하는 스타일일 것이다.
하지만 반면에 수하들의 말에 귀 기울이며 자신의 역량은 부족하지만 수하들의 역량을 최대화 해서 일을 해결하는것은 그의 리더쉽에 가장 큰 장점일 것이다.
한왕조의 후손이며 한왕조의 재건이라는 대의에 하나 둘 모여든 인물을은 모두들 일생을 후회하지 않게 개개인의 모든 능력을 역사책에 남기고 갈수 있었다.
제갈량이 유비의 밑에 들어간것은 애초에 자신이 가야할곳을 정확하게 알았다고 볼수 있다. 만약 그가 조조의 수하에 있었다면, 그저 머리 좀 좋고 말좀 잘하는 인물정도로만 기록에 남아 있었을 것이다.
단 한가지 유비가 부하들을 완전히 그의 수중에, 그의 컨트롤밑에 놓고 수족처럼 부릴수 있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닌것 같다.
부하들이 스스로 알아서 유비에게 충성심을 보이지 않으면 유비로서는 그들을 컨트롤할 능력이 없었다.
제갈량과 관우의 알력다툼에 유비는 껴들수 없었고, (조조였다면 달랐을 것이다..)
유비가 제갈량에게 반항?한 몇안돼는 장면은 관우의 사후 동오정벌을 감행 할때였다.
제갈량은 반대했지만 유비는 제갈량을 집지키라 명령하고 장비들을 데리고 출정을 하는데,
조금만 주의깊게 보면 유비가 말을 못해서 그렇지 제갈량의 하는 일에 약간은 불만을 가지고 있었는것 같다.
유비가 거의 생전 처음으로 굳게 마음먹고 스스로 결단해서 스스로 전략전술을 짜가며 전쟁을 수행하지만 결국은 육손에게 거의 전멸을 당하고 결국은 스스로도 목숨을 잃게 된다.
유비생전부터도 제갈량은 대단한 영향력을 미쳤으며 그 승상이라는 자리는 나랏일을 수행함에 있어서 유비 대신이였다고 보는게 더 맞다.
제갈량이 자신의 후계자를 스스로 정하는것을 보면 참 놀랍게 생각이 되는 장면인데, 보통 황제가(유선이 ) 결정하거나 신하들의 추천을 받아 임명하는것이 정석일테지만,
제갈량은 스스로의 마음대로 촉의 진영에선 신인중에도 매우 초년병이라 볼수있는 강유를 자신의 후임자로 임명한다.
이야기가 전혀 다른곳으로 샜는데,,
유비생전부터 이어온 신하들의 알력다툼은 마치 우리 조선시대의 당파싸움을 연상시킬 정도있데, 이렇듯 수하들이 분열하는것에는 리더의 리더쉽 부족에 많은 이유가 있을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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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권.
손권의 형 손책은 무장에 가까웠던 반면 손권은 거의 모든게 균형잡힌 전형적인 리더의 모습이라 할수 있다.
수하들의 능력을 최대한 보이며 그들의 능력을 더 개발하도록 격려하기까지 하며, 안으로는 이름있는 학자들을 불러모아 내정일을 돌보게 하였다.
밖으로는 주유, 안으로는 장소등의 천하기재들이 있었음에도 그들에게 휘둘리지 않고 언제나 균형잡힌 모습을 보이며, 조조의 침공시 항복론과 항전론이 있었을때에도 양쪽의 말을 모두 주의깊게 들은후 책상의 모서리를 잘라내며 서릿발같은 결단력을 보이기도 한다.
일단 결단을 내리고 나면 추후의 진행에대해서는 부하에게 전적으로 일임시켜 그 부하의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 낼수 있도록 유도 했으며,
위 오 촉 삼국을 놓고 봤을때 가장 평화로운 나라를 만들어 냈다고 볼수가 있을 것 같다.
조조만큼의 지략은 없고, 유비만큼의 대의는 없었지만, 오나라는 둘의 나라와 비교해서 전혀 손색없는 국력을 갖추고 있었다.
손권은 평화로울때에 성왕이 될수 있는 자질을 갖췄지만, 격변하는 시대에 상황에 대처하여 변화하는 모습은 조조보다, 그리고 차라리 부하에게 대부분을 의지하는 유비보다 못하다고 볼수 있다.
손권의 영토가 중원이 아니라 동오에 있었다는것은 그에게 매우 다행이라 볼수 있을 것이다.
만약 중원어디에 위치해 있었다면 오래동안 제위를 유지하진 못했을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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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에 대해 아는 지식이라곤 미천하기 그지 없지만 그저 읽은후 느낀 점들을 몇가지 적어 봤다.
뭍 이 글을 읽는 분들중에 이 인물평에대해 불쾌감이 있고 사실이 아닌부분은 본인 혼자의 착각으로 사실인냥 적어논것이 있다면 사과를 미리 하는 바이다.

덧글 3개
 백마의종 곽가가 적벽 때 살아있었어도 조조가 그의 말을 들었을 지는 의문이지요. 정욱의 조언도 숫하게 무시했으니까요.. 그러나, 곽가의 성품으로 봐서는, 조조가 말을 들을 때까지 계속 조언을 했으리라고 보여집니다. 이점이 조조를 깨우치게 할 방도였겠지요. 또..손권..아..손책은 인재를 정말 잘 쓰는 훌륭한 군주였습니다. 무장에 가까웠지만, 지모가 많았고, 부하를 굳게 믿는 성격이었구요.. 손권은.. 황제로 즉위하기 전까지는 인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고, 잘 발굴해 내었지만, 황제로 즉위한 후 끝없이 오만해져서 어떤 모사의 말도 듣지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장소의 목숨을 걸다시피한 진언을 완전히 무시하고 공손연을 믿었다가 큰 피해를 보기도 하고, 장소의 강직함을 싫어하여 항상 박정하게 대했고, 육손의 진언을 무시하며 도리어 책망까지 하여서 육손을 분사하게 만들고, 우번을 죽이려 했고, 장온을 시기하여 고향으로 쫓아내버려서 장온은 시름시름 앓다가 일찍 죽었습니다. 이런 것들에 근거해서 진수는 손권의 도량을 손책에 미치지 못한다고 했고, 의심과 투기가 많고 사람을 지나치게 많이 죽였으며 말년에 이르러 점점 더 심했다고 평합니다. 손권은 고난은 함께해도 즐거움은 함께할 수 없었던 대표적 군주였지요. 물론 대부분의 군주들이 그렇습니다. 원소라던가, 원술 등 많은 군주들이 그래왔지요. 삼국지 연의에서는 손권에 대해 많은 묘사를 하지 못했기 때문에, 몇가지 두드러진 부분만 골라서 저술했다고 보여집니다. 2004/12/05 08:12 
 강화정 긴 답글 정말 갑사해요 ^^ 실은 이사하면서 부모님집에 삼국지 책을 놓고와서 못읽은지 꽤나 됐습니다..얼마전에 컴터로 다운받고 있는데, 컴터로는 영 안봐지네요..손권에 대해 쓰면서도 확인해보면서 쓸수가 없어서 대충 넘어갔는데, (그래도..조조와 유비를 썼으니 손권이 빠질수 없어서...) 님이 보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04/12/14 09:12 
 촉한황제 물론 강유도 제갈량의 뒤를 이어 대장군으로서 군사를 지휘하였으나
더 중요한 직위인 승상자리는 장완이 뒤를 이었습니다~
(제갈량이 죽기전에는 승상인 자신이 직접 정치와 내정,군사 모든면을
자기가 직접 다 하였지만 공명 사후는 달라지죠..)
황제 유선의 결정이나 신하들의 추천이 아닌 제갈량이 직접 사후 자기 뒤를 이을 승상으로 지목한 인물이 장완, 다음이 비위입니다..
이들은 너무 많은 병력을 이용할려하는 강유를 견제하기도 하였죠..
 2005/09/06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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