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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즐전 』출처 : 김원중 정사삼국지2002-01-18 17:09:48
 常山趙雲


                   . 보 즐 전 .  - 출처 : 김원중 정사삼국지

보즐은 자가 자산(子山)이고 임회군 회음 사람이다. 세상이 혼란스러웟으므로 난을 피해 강동으로 갔다. 광릉의 위정과 같은 나이로 서로 친하였으므로 함께 오이를 심어 자급했으며, 낮에는 육체 노동에 힘썼고, 밤에는 경전을 외웠다. 회계의 초정강은 군의 호족인데, 그의 문객들도 무례했다. 보즐과 위정은 그의 땅에서 먹을 것을 구하고 있었으므로 그들이 침범할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함께 명함을 지니고 오이를 가지고 초정강에게 진상하려고 했다. 위정은 돌아가려고 했다. 보즐은 그를 제지시키며 말했다.
"본래 우리들이 여기에 온 이유는 그의 강성함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오. 그런데 지금 떠나가서 고상함을 나타내려고 했다면, 단지 원수만을 맺게 될 뿐이오."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초정강이 창문을 열고 이들을 보았다. 그는 자신은 휘장 안의 책상에 기대 앉아 있으면서, 땅에 자리를 두도록 하여 보즐과 위정을 창문 밖에 앉도록 했다. 위정은 더욱 치욕을 느꼈지만, 보즐의 말과 안색은 자연스러웠다. 초정강은 식사를 준비하여 자신은 커다란 상을 사용하고 그 위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했지만, 보즐과 위정에게는 작은 소반에 밥을 주었는데 오직 야채뿐이었다. 위정은 먹을 수 없었지만, 보즐은 남김없이 배불리 먹고 나서야 감사의 말을 하고 나왔다. 위정은 보즐에게 화를 내며 말했다.
"이것을 어떻게 참 을수 있었소?"
보즐은 말했다.
"우리들은 가난하고 미천하오. 때문에 주인은 가난하고 미천함으로써 우리를 대우한 것이니 진실로 마땅한 것이오, 무엇 대문에 치욕스러워 해야만 하오?"
손권이 토로장군이 되었을 때 보즐을 불러 주기로 임명하고 해염현의 장으로 제수했으며, 다시 불러서 거기장군 동조연으로 삼았다.  
건안 15년(210) 밖으로 나와 파양태수를 겸임했다. 그 해 중에 교주자사·입무중랑장 으로 전임되었으며, 무장하고 활을 지닌 관리 1천명을 인솔하여 곧장 남쪽으로 갔다. 이듬해, 사지절·정남중랑장으로 더 임명됐다. 유표가 배치한 창오태수 오거는 안으로 다른 마음을 품고서 겉으로는 보즐에게 복종했다. 보즐은 자신을 낮추어 오거를 회유하고, 서로 만날 것을 요청한 연후에 기회를 타서 목을 베어 사람들에게 보였다. 이 일이 있은 후부터 보즐의 명성은 크게 떨쳐졌다. 사섭의 형제도 서로 이끌어  보즐의 명령을 들었고, 남방 지역이 복종한 것은 이로부터 시작됐다. 익주의 부호 옹개등은 촉에서 임명한 태수 정앙을 죽이고 사섭에게 통보하여 오나라로 귀순하기를 원했다. 보즐은 그래서 명령을 받들어 사자를 보내 성은을 나타내고 어루만지도록 했다. 이로부터 보즐은 평융장군의 관직을 더하고 광신후 로 봉해졌다.
연강 원년(220), 손권이 여대를 보내 보즐을 대신하도록 하고, 보즐에게는 교주의 의로운 병사 1만명을 인솔하여 장사로 나오도록 했다. 마침 유비가 동쪽으로 내려왓고, 무릉의 이민족은 움직이려 하고 있었다. 손권은 그래서 보즐에게 익양으로 진군하도록 명령 했다. 유비가 참패를 한 후에도 영릉과 계양 각군에서는 여전히 서로 겁먹고 동요되어 있었으며, 곳곳마다 무력을 기대로 있었다. 보즐이 두루 돌면서 토벌하여 모두 평정되었다.
황무 2년(223), 우장군 좌호군으로 승진했고, 임상후로 바꿔 봉했다.
5년(226), 부절을 받고, 구구로 옮겨 주둔했다. 손권이 제로 칭해진후, 보즐을 표기장군으로 임명했고 기주목을 겸임하게 했다. 이 해 그는 서릉으로 가서 도독으로 임명되어 육손을 대신해 두 나라의 접경지대를 진무시켰다. 오래지 않아 기주가 촉의 세력하에 있게 되어 기주목의 직책은 해임됐따. 당시 손권의 태자 손등은 무창에 주둔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을 아끼고 선행을 좋아했다. 보즐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 생략... ㅡㅡ; -
적오 9년(246), 보즐은 육손을 대신하여 승상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문하생들을 가르치며,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으며, 옷 입는 것이나 거처하는 것은 유생과 같이했다. 그러나 그 집안의 처첩들의 복식은 매우 사치스럽고 화려했으므로, 이 대문에 사람들의 비방을 받았다. 서릉에 있은지 20년이 되자 부근에 있는 적들은 그의 위세와 신의를 존경했다. 그의 성정은 관대하고 넒어 인심을 얻었으며, 기뻐하거나 노여워하는 것이 목소리나 안색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안팎으로 숙연했다.
적오 10년(247)에 세상을 EJ났다. 아들 보협이 후사를 이었고 보즐이 다스리던 곳을 통솔했으며, 무군장군을 더 했다. 보협이 죽자 아들 보기가 뒤를 이었다. 보협의 동생 보천은 업을 계승하여 서릉독이 되었고, 소무장군을 더하였으면 서정후에 봉해져TEk. 봉황 원년(272), 보천을 불러서 요장독으로 임명했다.

빠진 내용은 나중에 다시 쓸게요...

덧글 1개
 常山趙雲 밑에서 3번째줄 서정후에 봉해졌다... 2002/01/18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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