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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이 살아있었다면.2003-01-13 04:59:46
 천공하후패


1. 방통이 들어온 이후 변하는 유비의 세력.

형남전쟁을 승리로 이끈 유비는 세력을 안정시키기 위해 새로운 인사관리를 실행했다. 그는 관우를 양양에 두고 장비를 의도에 두어 조조의 세력을 견제했으며, 제갈량을 장사와 계양, 영릉에 두어 오를 견제하는 동시에 경제력의 안정을 추구했다. 그리고 자신은 공안에 머물면서 형주에서의 세력을 안정적으로 키우는데 주력했다.

이 당시 참모였던 제갈량은 이런 형주에서의 세력형성에 안정을 가져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밖으로는 오의 손권을 적절히 견제하고 그의 세력과 우호적인 관계를 형성하면서 후방을 탄탄히 했으며, 안으로는 장사와 계양, 영릉을 다스리면서 그 부세로 군용물자를 충실하게 함으로서 세력이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했던 것이다.

안과 밖으로 이루어진 노력으로 인하여 유비의 세력은 안정적으로 돌아가게 되었고 유비는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군벌로서 성장하게 되었다. 이때가 210년의 일이다.

방통은 이러한 형세에 약간의 변화를 가져왔다. 바로 익주의 정벌을 추진한 것이다. 형남을 얻은 이후 유비의 진영에 들어왔던 방통은 세력이 안정적으로 돌아가자 유비에게 형주의 역할을 일깨우면서 익주를 취하라고 권한다.

본래 방통과 제갈량은 궁극적으로는 형주를 군사적 요충지로 이용하고 익주에 기반을 마련하는 형태의 전략을 추구했다. 그러나 오나라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인하여 그 시기의 차이를 보였다.

제갈량은 손권의 세력을 이용하자는 입장을 내세웠기에 상대적으로 손권을 견제할 수 밖에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익주의 정벌의 시기는 상대적으로 늦을 수 밖에 없었다. 손권을 견제할 수 있는 세력을 형성하고 동맹을 맺어 후방을 든든히 해야했기 때문이다.

그에 비하여 방통은 손권의 세력과 유비의 세력은 같은 노선을 걷고 있는 동반자로 생각했다. 그렇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제갈량에 비해서 익주의 정벌 시기가 빨랐다. 그는 오의 세력에 대해서 상당히 우호적이었고 오 역시 별 다른 움직임이 없었기에(당시는 주유가 죽고 친유파인 노숙이 군사권을 쥐던 시기였다.) 확실한 '만일의 대비'는 필요 없었던 것이다.

이에 유비는 방통과 제갈량의 전략을 동시에 취하였다. 형주에 고정되어있던 세력이 드디어 움직이는 것이다. 유비는 방통에게 자신의 보좌를 맡기고 제갈량을 형주에 남겨 관우를 보좌하게 했다. 유비는 각각의 모사에게 자신의 전략을 모두 수행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한 것이다.


2. 유비가 구상했던 익주를 차지하고 난 이후의 움직임.

유비의 모사였던 방통과 제갈량이 기본적으로는 같은 노선을 취했고 유비는 전적으로 그들의 전략을 수용했기 때문에 유비가 생각했던 익주와 형주의 관계는 그들의 것과 비슷했다. 즉 형주는 군사적 요충지로 사용하고 익주에 기반을 마련하여 오와는 동맹을 맺은 다음 형주와 익주 양면으로 군사를 움직여 위를 견제하는 형태를 구상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바로 한중의 존재이다.

유비는 익주에 들어와서야 비로서 한중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즉 그 전까지는 한중에 존재에 대한 중요성의 인식이 약했다는 말이 되며, 유비의 인식이 약했다는 말은 곧 제갈량과 방통이 그 중요성을 역설하지 않았다는 말이 된다. 진천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어떤 정확한 지명을 이야기하는게 아니다. 즉 그들은 익주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대였다면 익주를 차지하고 나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전반적인 개요를 성립할 수 있다.

바로 형주의 제갈량 익주의 방통이다.


3. 방통이 살아있었다면.

방통이 살아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것은 본래 유비가 생각하고 있던 이들의 배치를 의미하는 것이다.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 유비의 진영은 형주로부터 위를 견제하는 루트에 대해선 어느 정도 확실히 그 길이 생각되어져 있었다. 완현과 낙양쪽의 공략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익주로부터 위를 견제하는 루트에 대해선 불확실하다. 그져 진천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아선 익주에서 한중을 거쳐 장안쪽으로 빠질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이들은 한중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으므로 그져 익주에서 장안으로 가는 길을 정확히 마련해지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그렇다면 익주의 정벌이후 방통은 자연스레 익주와 형주의 중간사이인 파동이나 건평쪽에 머물면서 익주와 형주의 평형을 이루는 역할을 했을 것이며 제갈량은 형주에 머물면서 형주로부터 출발하는 공격루트를 굳건히 했을 것이다. 그리고 유비는 익주에 머물면서 기반을 다지고 익주에서 얻은 인재들로 구성된 새로운 모사진으로서 익주로부터 출발하는 공격루트를 마련했을 것이다.

이것이 방통이 살아있었다면 이라는 주제로 생각해낸 천공하후패의 가설이다.

(반드시 질문이 올 것같으므로 보총은 질문에 대한 답변의 형태로 드리겠습니다.)

P.S :  진공대님과 서량의금마초님의 등장에 매우 반가워하고 있는 천공입니다. ^^ 많은 활동 부탁드립니다.
* 정삼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0-07 15:44)

덧글 2개
 천공하후패 ^^; 이번엔 한 6시간을 공부하고 2시간 정도 마무리를 지었습니다. 지명쪽에선 찾을께 참 2003/01/13 05:01 
 천공하후패 알아봐야할께 많더군요. 에휴~ ㅋㅋㅋ 2003/01/13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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