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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답변입니다.2003-01-11 10:48:54
 진공대


>1. 제갈량에겐 전쟁수행능력이 부족했다.
>
>제갈량이 후방에 있었다는 말은 반대로 제갈량에겐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이 부족했다는 말이 됩니다. 제갈량은 그 스스로가 전술에 밝지 못하다고 고백한 바가 있는 인물로 변화하는 시세에는 능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병법적인 성향을 분석해보면 매우 교과서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저서인 장원과 편의십육책이 그 단적인 예이지요.(다른 병법서와 비교해서 보세요. 그런 훨씬 도움이 될 것입니다.)
>
>유비는 제갈량의 능력을 매우 잘 활용하였습니다. 그의 대국적인 안목을 파악하고 그를 후방으로 보내 효과적인 지원의 역할을 다 하게 했으니까요. 전략과 전술의 성향의 차이이므로 제갈량이 굳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그리고 그가 서촉으로 간 이유는 그의 내정적인 능력때문도 있지만 장비를 비롯한 후속부대를 이끌어와 유비의 곁에서 보좌를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서촉으로간 시기는 서촉정벌 이후가 아니라 서촉정벌 중입니다.)
.............
만약 방통이 살아 있었더라면, 제갈량이 후속 부대를 이끌고 서촉으로 들어갈일은 없었겠죠. 그러나, 내정적 능력이 확실하게 보장된 제갈량이기에 방통이 살았더라면 서촉으로 들어갔을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제갈량이 내정이나 외교적 분야, 방통은 전략적 분야에서의 능력이 더 우수하게 보이는 것 같다.라고 이야기 한듯 싶습니다만, 그 두가지 모두, 참모의 재능이고, 두가지 재능중 어느것이 더 뛰어나다고는 말할수 없겠죠.


>
>더하여 법정과 황권에겐 내정의 능력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그것은 법정의 촉군태수 취임과 황권의 치중종사 취임으로서 해결 할 수 있습니다.
>법정이 촉군태수가 된 것은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고 허정을 대신해서 법정을 촉군태수에 세웠을 때 입니다. 촉군이라하면 파군과 함께 익주의 양대 노른자 땅으로 행정적인 면에서나 군사적인 면에서나 중요한 땅입니다. 이런 땅을 법정에게 맡긴다는 것은 유비의 개인적 신임도 있겠지만 그의 능력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태수라하면 행정권과 군사권을 동시에 갖는 인물로서 그 두가지의 능력이 적절히 요구되는 자리거든요.  
>황권이 치중종사가 된 때는 유비가 한중왕에 취임했을 때 입니다. 치중종사란 주목이나 자사의 곁에서 문서를 관리하는 위치에 있는 자리로 행정적인 능력이 없다면 오르기 힘든 자리입니다. 당시 유비는 익주목을 겸임하고 있었고 황권은 그를 보좌하는 위치에 있었죠. 황권과 법정이 꼭 방통의 역할만은 이어받은게 아닙니다. 그리고 제갈량의 역할을 이어받은 자는 많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장완과 비의이며 마량 역시 그의 역할을 분담받았죠. (그리고 맹달 역시 뛰어난 모사였습니다.)
.............
황권이나 법정도 내정가적 재능이 있었군요. 천공하후패님의 처음 답론이 약간 부족했던건가요 ^^;; 그러나 황권이 치중종사가 된 시기를 살펴보면, 유비가 한중왕에 오르고 난 뒤라고 하셨습니다. 법정은 그 보다 일찍 촉군태수가 되었지만, 유비가 그의 재능을 확실하게 알았기에 그런 일을 맡겼다기 보다는, 서촉 입성의 공훈에 대한 보상으로 그런 일을 맡긴게 아닌가? 라는 추측을 해봅니다.(그 뒤로 법정은 한중전에 책사로써 참가하게 된느걸로 압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일은 그들이 능력이 있었냐. 없었냐. 가 아닙니다. 능력 유무를 떠나서, 유비는 그들의 능력을 확인해볼 기회가 없었고, 그렇기에 형주때부터 알고 있었고, 그 능력이 여실히 드러난, 방통이 서촉에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장완이나, 비의등이 제갈량의 역할을 이어받은 자라고 말씀하셨는데, 그러나 서촉은 유비가 막 평정한 땅이고, 앞으로 유비의 모든 행동에 기반이 되는 땅입니다. 그렇기에 마땅히 형주의 내정은 유비군의 최대의 내정가가 맡아야 될 것이며, 저는 그 자리에 마땅히 제갈량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임관횟수에 따른 유비의 신임도나, 유비의 보좌 역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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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방통이 외교엔 약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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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이 형주로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의 능력과 그가 지니고 있는 인맥때문입니다. 정사 방통전을 보면 방통은 주유와 인연이 있었고 오나라의 인사들 모두 그의 명성을 들었으며 육적과 고소, 전종의 인사들은 방통이 서쪽으로 돌아갈 때 방통을 직접 배웅하며 방통과 사귀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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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통이 제갈량보다 인맥적인 면에서 유리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방통은 촉의 동맹국인 오나라에 많은 인맥을 지니고 있었으나 제갈량은 제갈근을 중심으로 한 인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오나라와 화친을 맺고 위나라와 대적하는 형세에는 매우 유리한 것이었습니다.
>
>방통이 형주로 가야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위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오나라와는 화친을 맺을 수 있는 중심인물로는 방통이 제격이거든요. 그리고 그의 전쟁수행능력도 한몫했구요. 그는 전략에도 능했을 뿐만 아니라 전술에도 능했습니다. 게다가 입지도 커 유비의 측근 중의 측근인 관우를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방통은 형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
인맥 = 외교적 능력  이란 형식으로 말씀하시네요. 그리고 굳이 외교에선, 지형적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대군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한두명의 사신이 가는 것이니, 굳이 외교를 위해서 위치를 바꿀 필요까지는 없었겠죠.
제가 알기 로는 한중전투가 형주 공방전보다 먼저 일어 났다고 압니다. 전에도 말씀드린것 같은데, 법정이나, 황권등의 재능이 특출나다고 하더라도, 유비로써의 서촉공방전에서 자신을 수행한 경험이 있고, 서촉공방전에서의 큰 공을 세운 방통이 다른 사람보다야 더 든든했을 것이고, 만약에 있을지 모르는 서촉의 상황이나, 서촉의 목줄기라는 한중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형주보다는 서촉에서 방통의 역할이 더 필요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손권과의 관계는 인맥으로써만 해결될 관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형주 문제 때문 촉과오의 마찰은 더욱더 심해졌고, 단지 인맥이 풍부한 사람이 그 일을 맡는다고 해서.. 끝날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갈량 역시 제갈근이나, 노숙등의 인맥이 있었겠지만, 형주 문제에서는 노숙등과 첨예하게 대립하지 않았습니까?
>
>
>3. 관우의 형주 지킴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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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주가 침략당할 것은 예고된 일이었다는 말이었습니다. 관우가 알았다는 말이 아니구요. 그래서 전 예견 되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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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성에 출격한 관우는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참수시키는 등의 공적을 세워 중월은 위협했습니다. 양현과 협현 육혼현의 도적들까지 그의 인수를 받아 스스로 부하가 되기도 했으니 그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관우는 크나큰 실수를 하고 맙니다. 바로 자신의 후방을 지원하는 자로 평소에 경시했던 사인과 미방을 놓았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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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군태수였던 미방과 장군 사인은 관우의 후방에서 물자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미방은 강릉에 사인은 공안에 주둔하면서 관우를 지원했는데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그들이라 미방과 사인은 자신의 일에 전념하지 않았습니다. 관우는 이에 격분하여 돌아가면 그들에게 죄를 묻겠다고 했죠. 이를 두려워한 미방과 사인은 오나라에 투항을 해버리고 맙니다. 그 때문에 서황에게 패한 관우는 돌아갈 곳을 잃고 손권에게 사로잡히고 말죠.
>
>이는 관우의 부실한 인재관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형주의 목인 관우는 형주의 인사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미방을 남군태수에 삼은 것은 왜 일까요? 그리고 평소 그를 경시했음에도 강릉에 주둔시켜 후방의 물자를 맡게 한 것은 또 왜 일까요? 전 관우의 인재관리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사이좋지 않은 인물을 요직에 맡기면서 그와의 관계 개선에는 전혀 힘을 기우리지 않았으니 썩은 동아줄을 잡고 하늘에 오르려는 호랑이와 무엇이 다릅니까?
>
........
물론 관우가 형주의 인사권을 전임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할수 없었던 일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방에 관해서라면, 미방은 미축과 함께 유비가 곤고했을 때부터 유비를 섬겨오던 충신이 아닙니까?(물론 나중에 배신을 했지만.) 아무리 관우라도 그런 오랜 충절을 바친 사람을 찬밥대우할수는 없었겠죠. 그것은 유비의 인의에 먹칠을 하는 일일 뿐더러, 서촉에 미축이 있기에 자신의 입장도 곤란했을테니까요. 물론 관우가 좀더 임기응변 했더라면, 미방의 반란을 막았을수도 있었을지 모르겠지만, 무장인 관우에게 그것까지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 정삼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0-0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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