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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답변입니다.2003-01-11 03:33:23
 천공하후패


1. 제갈량에겐 전쟁수행능력이 부족했다.

제갈량이 후방에 있었다는 말은 반대로 제갈량에겐 전쟁을 수행하는 능력이 부족했다는 말이 됩니다. 제갈량은 그 스스로가 전술에 밝지 못하다고 고백한 바가 있는 인물로 변화하는 시세에는 능하지 못했습니다. 그의 병법적인 성향을 분석해보면 매우 교과서적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의 저서인 장원과 편의십육책이 그 단적인 예이지요.(다른 병법서와 비교해서 보세요. 그런 훨씬 도움이 될 것입니다.)

유비는 제갈량의 능력을 매우 잘 활용하였습니다. 그의 대국적인 안목을 파악하고 그를 후방으로 보내 효과적인 지원의 역할을 다 하게 했으니까요. 전략과 전술의 성향의 차이이므로 제갈량이 굳이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그리고 그가 서촉으로 간 이유는 그의 내정적인 능력때문도 있지만 장비를 비롯한 후속부대를 이끌어와 유비의 곁에서 보좌를 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서촉으로간 시기는 서촉정벌 이후가 아니라 서촉정벌 중입니다.)

더하여 법정과 황권에겐 내정의 능력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데 그것은 법정의 촉군태수 취임과 황권의 치중종사 취임으로서 해결 할 수 있습니다.
법정이 촉군태수가 된 것은 유비가 익주를 차지하고 허정을 대신해서 법정을 촉군태수에 세웠을 때 입니다. 촉군이라하면 파군과 함께 익주의 양대 노른자 땅으로 행정적인 면에서나 군사적인 면에서나 중요한 땅입니다. 이런 땅을 법정에게 맡긴다는 것은 유비의 개인적 신임도 있겠지만 그의 능력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태수라하면 행정권과 군사권을 동시에 갖는 인물로서 그 두가지의 능력이 적절히 요구되는 자리거든요.  
황권이 치중종사가 된 때는 유비가 한중왕에 취임했을 때 입니다. 치중종사란 주목이나 자사의 곁에서 문서를 관리하는 위치에 있는 자리로 행정적인 능력이 없다면 오르기 힘든 자리입니다. 당시 유비는 익주목을 겸임하고 있었고 황권은 그를 보좌하는 위치에 있었죠. 황권과 법정이 꼭 방통의 역할만은 이어받은게 아닙니다. 그리고 제갈량의 역할을 이어받은 자는 많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장완과 비의이며 마량 역시 그의 역할을 분담받았죠. (그리고 맹달 역시 뛰어난 모사였습니다.)


2. 방통이 외교엔 약했을까?

방통이 형주로 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바로 그의 능력과 그가 지니고 있는 인맥때문입니다. 정사 방통전을 보면 방통은 주유와 인연이 있었고 오나라의 인사들 모두 그의 명성을 들었으며 육적과 고소, 전종의 인사들은 방통이 서쪽으로 돌아갈 때 방통을 직접 배웅하며 방통과 사귀었죠.  

방통이 제갈량보다 인맥적인 면에서 유리한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방통은 촉의 동맹국인 오나라에 많은 인맥을 지니고 있었으나 제갈량은 제갈근을 중심으로 한 인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오나라와 화친을 맺고 위나라와 대적하는 형세에는 매우 유리한 것이었습니다.

방통이 형주로 가야하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입니다. 위나라와의 전쟁을 준비하면서 오나라와는 화친을 맺을 수 있는 중심인물로는 방통이 제격이거든요. 그리고 그의 전쟁수행능력도 한몫했구요. 그는 전략에도 능했을 뿐만 아니라 전술에도 능했습니다. 게다가 입지도 커 유비의 측근 중의 측근인 관우를 적절히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방통은 형주로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3. 관우의 형주 지킴의 실패.

형주가 침략당할 것은 예고된 일이었다는 말이었습니다. 관우가 알았다는 말이 아니구요. 그래서 전 예견 되었다라고 표현했습니다.

번성에 출격한 관우는 우금을 사로잡고 방덕을 참수시키는 등의 공적을 세워 중월은 위협했습니다. 양현과 협현 육혼현의 도적들까지 그의 인수를 받아 스스로 부하가 되기도 했으니 그의 명성이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관우는 크나큰 실수를 하고 맙니다. 바로 자신의 후방을 지원하는 자로 평소에 경시했던 사인과 미방을 놓았던 것이죠.

남군태수였던 미방과 장군 사인은 관우의 후방에서 물자를 지원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 미방은 강릉에 사인은 공안에 주둔하면서 관우를 지원했는데 평소 사이가 좋지 않던 그들이라 미방과 사인은 자신의 일에 전념하지 않았습니다. 관우는 이에 격분하여 돌아가면 그들에게 죄를 묻겠다고 했죠. 이를 두려워한 미방과 사인은 오나라에 투항을 해버리고 맙니다. 그 때문에 서황에게 패한 관우는 돌아갈 곳을 잃고 손권에게 사로잡히고 말죠.

이는 관우의 부실한 인재관리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입니다. 형주의 목인 관우는 형주의 인사권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런 그가 미방을 남군태수에 삼은 것은 왜 일까요? 그리고 평소 그를 경시했음에도 강릉에 주둔시켜 후방의 물자를 맡게 한 것은 또 왜 일까요? 전 관우의 인재관리능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신과 사이좋지 않은 인물을 요직에 맡기면서 그와의 관계 개선에는 전혀 힘을 기우리지 않았으니 썩은 동아줄을 잡고 하늘에 오르려는 호랑이와 무엇이 다릅니까?


* 정삼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0-0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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