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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동탁연합군은 정당하지 않다2004-02-18 01:21:06
 전풍http://


0. 들어가며
1. 서론
2. 본론
2-1. 처음부터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거사
2-2. 잘못된 만남
3. 결론

0.들어가며


삼국지의 시작은 당고의 화로 부터 환관들로 국란은 시작된다.십상시로 인해 나라가 도탄에 빠져 곳곳에서 천자를 자칭하는자들이 궐기하는데,바로 한황실의 붕괴의 조짐이였고,그런데도 하태후는 사사로이 환관를 끼고 나라을 망치는 섭정을 하였다는 기록이 보인다.태후의 오라비인 대장군 하진(何進)이 원소와 함께 모든 환관들을 죽이려 했으나 태후가 반대하며 환관을 가까이 두웠다. 환관으로부터 매관매직한 일명 탁류 세력들이 관리로 임명되여 갖은 폭정을 일삼으므로 곳곳에서 부터 청류라 일컬어지는 실력가들은 동탁에게 도움을 요청한다.오라버니 하진이 동탁을 불러 태후를 협박하여 나라을 바로잡길 원했다.이로써 자타가 인정하는 군웅 동탁은 낙양에 입성한다.

1. 서 론

서량에서 낙양에 입성한 동탁은 개혁에 착수하는데 그 첫번째가 나라을 부패하게한 하태후와 소제의 처리문제였다.한황실의 부흥을 위해서는 개혁이 단행되어야 함은 모두 알고있었지만 누구도 감히 선듯 폐위론을 내세울수없은 위험천만한 거사였다.둘째로 한일은 탁류 정치인의 제거 작업이였다.동탁은 여러신료와 의론하는데 그당위성을 알기에 반대를 표명하지 못하였은데 집금오만이 반대의사를 확실히 하였으나 대세론에 밀려 죽임을 당하고만다.그일에 깊이 관여한 원소는 여론이 두려워 몸을 피해 달아 난다.그 이후 원소의 숙부도 동탁에게 죽임을 당하는데, 원소는 문중의 원수 동탁를 도모하기 위하여 계책을 내놓게되는데. 거짓 조서(詔書)로 제후를 동참시킨 일명 반동탁 연합군 창설이였다.

동탁(董卓)이 원소를 불러 천자를 폐하고 진류왕 협을 옹립할 것을 의논하였다. 이 때 원소의 숙부 원외(袁?)가 태부(太傅)였는데, 원소가 거짓으로 허락하여 말하였다. <정사 원소전>

2.본론  

2-1. 처음부터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거사

도겸이 조서(詔書)라고 사칭한 문서를 각지로 보내어 각 18로(路)의 영웅들에게 조정대권을 찬탈하여 함부로 나쁜 짓을 자행하고 있는 동탁을 토벌하자고 호소한다.하지만 몆명이 참전하였은지 정확하게 파악되지는 못하고 기록들을 보아도 이해타산에 의해 심하게 왜곡되였다는 생각이 든다.진림의 토조조격문에는 선별하여 연합하였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정당한 방법이 아닌 거짓 조서였기에 그뜻을 이루지 못한다.

후한서·원소전》에 의하면, 동탁 토벌에 참여한 제후는 11명으로 되어있는데, 《삼국지·위서·무제기》에 기록된 것과 내용을 비교해보면 광릉태수(廣陵太守) 장초(張超)의 명단이 첨가되어 있다. 그 외에 《삼국지·오서·손파로전》에는 장사태수(長沙太守) 손견(孫堅)이 동탁 토벌에 참여했던 활약상을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이상의 자료들을 종합하여 보면, 역사적으로 동탁을 토벌하기 위하여 연합했던 제후들은 실제로는 모두가 13명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삼국지연의》에서는 이 13명 이외에도 북해태수(北海太守) 공융(孔融)·서주자사(徐州刺史) 도겸(陶謙)·서량태수(西 太守) 마등(馬騰)·북평태수(北平太守) 공손찬(公孫瓚)·상당태수(上黨太守) 장양(張楊) 등 5명을 더 보태고 있다.

맹주라는 원소가의  지도력 부족으로 낙양에 입성하였으나 동탁의 계책(초토화)에 빠져 논공행상도 제대로 할수 없었다.그리하여 반동탁 연맹군의 사기는 저하 되였으며 서로 손실을 입고 공격하려는자가 없고 한두명만 분투하였다.

2월 동탁은 군대가 일어났다는 말을 듣고는 곧 천자를 협박하여 도읍을 장안으로 옮겼다. 동탁은 낙양에 그대로 남아 있으면서 결국 한나라 궁실을 불태워버렸다. 이때 원소는 하내에 주둔하고 있었고, 장막·유대·교모·원유는 산조에 주둔하고 있었으며, 원술은 남양에, 공주는 영천에, 한복은 업에 주둔해 있었다. 동탁의 군대가 강했으므로 원소 등은 감히 먼저 진군하려 하지 않았는데..<중략>..조조가 산조에서 돌아왔을 때, 여러 갈래의 의병 10여 만 명은 매일 주연을 성대하게 베풀 뿐 나아가 적극적으로 공격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정사 무제기>


  


2-2. 잘못된 만남


낙양에 들어온뒤로 연합군들은 분열된다.조조만이 분투을 주장하지만 조조의 책략이 받아들여 지지 않았으며, 조조는 병력이 적었으므로 하후돈 등과 양주까지 가서 병사를 모집했는데, 양주자사 진온, 단양태수 주흔이 그에게 4천여 명을 주었다. 돌아오던 중, 용항에 이르렀을 때, 병사들 가운데 대다수가 반란을 일으키는등 연합군은 붕괴되기 시작한다.

한왕실의 후예 유우라는 인물이 있었다, 행동이 검소하고 청렴하며, 백성을 교화로 다스려 덕망이 있어 오랑캐들조차 유우를 두려워하고 복종할 정도였다.유언,유표,유우 등은 모두 천하에서 청렴하기로 유명하였는데, 동탁은 황제를 협박하여서 서쪽으로 수도를 옮기고 유우를 불러서 태부로 임명했는데, 길이 막혀 전달되지 못했다. 원소와 한복은 유우를 황제로 옹립하려 했는데, 유우가 거절했다. 유우의 아들 유화가 장안에서 있었는데, 황제 또한 또한 유우를 신임해 유화를 탈출시켜 유우가 군대를 이끌고 자신을 맞이하게 하려 하였다.황제가 거짓된 의병의 야욕을 몰랐을리 없었던것이다.이일이 있고 조조은 원소의 본심을 알고 저주 할정도로 연합군은 분열을 가속화 하다가 원소가 한복에게 위협하여 기주마저 빼앗자.모두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이며 천하는 일대 혼란속으로 휩싸인다.


원소는 한복과 더불어 유주목 유우를 황제로 옹립할 계획이었는데 조조가 거절했다. 원소는 또 일찍이 옥새를 얻은 적이 있는데, 조조가 앉아 있는 좌석에서 팔꿈치를 치면서 들어올려 보여주었다. 조조는 이로 말미암아 비웃으며 원소를 증오했다.<정사 무제기>

상기 글들의 연합군을 다시 말하면 동탁이 옹립한 헌제의 정통성을 인정 인정하지 않으려는 상황이였다고 보면 맞을것 같다.그럼 결과론적으로 반동탁 연합군의 맹주 원소가 추구하는것은 공을 세워 땅을 넓히려는 표리부동한 계책이였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유대가 교모를 죽이고, 원소가 한복을 위협하여 기주를 빼앗고 자살케하였고,포신의말을 듣지않은 유대는 황건적에게 죽고,포신마저 황건적에게 죽었으며,도겸은 자칭 천자라 칭하는 궐선과 손을 잡았으니 그말로을 말할 필요가 없고.장막이 진궁과 반역을 도모하여 여포를 맞아 들이며 조조에게 대항하였으나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였으며 원술,원소,손견,공손찬,마등,공융 등이 서로 다투다가 서로 이전투구로 모두 죽어갔던 것이다.

반동탁 연맹군의 행태를 보면 조조의 간사함은 말할 필요가 없은것이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유비또한 공손찬,여포,조조,원소등에게 배신과 비겁한 행위등을 일삼으며 자기의 가업을 이루는데,배신은 믿음을 뒤로한다는 뜻이다.유비 입장에서 보면 한 왕조 부흥의 명분을 가지고 했다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비 입장에서만 본 것이지 배신을 당한 원소나 여포 조조입장에서 유비는 정말로 배은 망덕한 사람이고 난신적자라고 할 수 있다.이처럼 반동탁 연합군의 말로를 보면 모두 어처구니 없은 결말로 그들의 본심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다.  


3.결론

반동탁 연합군이 삼공의 조서를 사창하여 거짓 명분으로 의병을 이르켜 오자 위협을 느낀 동탁은 서량과 가까운 장안으로 수도를 천도하기에 이른다.여기서 동탁은 낙양을 방화하고 돈이 될만한것과 적에게 유용한것은 모두 불태우고 또는 가지고 장안으로 향한다.많은 사람들이 이부분에서 위정통론의 연합군측의 기록만보고 동탁의 제2의 악행으로 이야기 할수 있은데 그것은 병법을 모르고하는 비판일 뿐이다. 현세에도 사용되는 전술로 적을 약화시키기위한 전술전략이라 할수있다.동탁의 악행이라는것은 필자는 두가지로 보는데 황제폐위와 낙양성 방화라 할수도있다. 하지만 상기에서 보았듯이 동탁에게도 명분은 있었던 것들이다.다시 말하면 동탁도 난세의 평범한 위정자 였을뿐였다는것이다.다시 한번 강조하면 반동탁 연맹군의 맹주 원소와 조조의 대립으로 모두 죽거나 다투게되고 끝내는 살아남은 3가문이 제국을 3등분하여 한황실을 능멸하고도 동탁에게 죄를 전가시킨 기록들을 우린 역사라 부르며 어처구니 없게 되씹고 있은것이다.  

덧글 5개
 이기백 동탁이 했던 행위들은 일반적인 통치행위라고 쉽게 부르기가 힘듭니다. 굳이 정사전의 기록을 인용치 않더라도, 그 체제 자체가 스스로 붕괴하는 모습은 결과론적으로 동탁의 통치술에 대한 한계를 느낍니다. 2004/02/18 10:02 
 김길 그렇군요. 2004/02/20 09:02 
 리동혁 동탁은 안목이 없는 잔인한 군벌이었을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중국역사에는 그와 비슷한 군벌들이 많이 나오는데 구태어 동탁을 미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동탁을 부른것은 청류가 아니라 하진이었고 당시 하진이 여러 곳의 군벌을 불러들였음에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동탁 하나에게 의거한 게 아니지요. 장정일씨는 동탁을 치켜세웠던데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우스운 일이구요. 전풍님이 동탁의 "초토화"를 군사전술로 쳤는데, 동탁이 무덤을 파 헤친 것은 또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요? 반동탁 연합군이 웃기는 건 사실이나 그 때문에 동탁을 정당화한다면 역시 잘못입니다. 2004/04/24 10:04 
 연오랑 반동탁 연합군은 연합군의 군주들이 나쁜 것이지 시도는 좋았다고 봅니다. 2004/06/07 03:06 
 조조 동탁을 무능한 인물로 보는 경향들이 있으시네요.. 동탁은 정치에 일가견이 있는 인물입니다.. 장안천도는 반동탁제후들때문에 한것이 아니라 그이전에 이미 이루어졌던것입니다.. 장안천도를 한목적은 크게 두가지가 있습니다. 장안이란곳이 자신의 근거지였던 옹주와 가까워서 여러 이점이 있었으며.. 장안으로 천도하고 낙양을 불태워버림으로써.. 반동탁연합군의 목적을 없애는것이죠.. 반동탁연합군의 목적은 동탁을 토벌하고 낙양을 수복하는것이였는데.. 동탁이 장안으로 미리 도망간것이죠.. 그결과 반동탁연합군은 스스로 와해되어버립니다. 동탁의 통치체제가 스스로 붕괴했다고요?? 사도 왕윤의 미인계에 의해서 붕괴한것을 모르시는건가요?? 사도왕윤의 미인계로 인하여.. 여포가 배신을 하여 동탁을 죽임으로써.. 통치체제의 중심인 리더가 사라지자 붕괴된것이죠 이런점만 봐도 동탁의 정치능력이 뛰어났음을 충분히 알수있습니다. 2006/03/25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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