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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조운은 장판파에서 조조군과 싸웠는가? - 1 -2003-05-16 13:18:42
 서량의금마초



  과연 조운은 장판파에서 조조군과 싸웠는가? - 1  -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치고 '조자룡' 이라는 인물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제갈량과 함께 인기투표에서 항상 1,2위를 다툰다. 무엇이 그를 이토
록 대스타로 만들었을까?

사람들이 조운을 좋아하는데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수려한 용모, 뛰어난
무용, 변치 않는 충성심...등이 그것이다. 이중에서도 그의 뛰어난 무용에 대
부분의 사람들이 반해버렸을 것이다.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적장들의 목을
마치 손바닥 뒤집듯이 베어넘기는 그의 모습에 누가 반하지 않겠는가? 비록
대부분의 이미지가 연의에서 가공된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조운의 인기가  지금과 같이 형성된 가장 큰 계기는 그 유명한 '단기구주 아
두' 에서 비롯된다. 여기서 수 많은 조운의 팬들이 비롯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나관중은 몇줄 되지 않는 정사의 기록을 인용해서 연의에서 가장
멋지고 환상적인 부분으로 승화시키는데 성공했다. 그의 글재주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는 지경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자들은 이미 조운의 백만대군 돌파는 허구적인 꾸밈이란
걸 알고 있다. 더 나아가 단지 조조의 5천 기병과 상대했다는것도 말이다. 여기
서 조운의 추종자들(팬 이상으로 지나치게 조운을 신격화 하는 사람들..)은
단기로 5천기병을 돌파했으니 조운은 뛰어난 장수임에 틀림이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과연 조운은 실제로 단기필마로 아두를 품에 않은채 조조의 5천 기병
대를 정면돌파 했을까?

정사의 <선주전><장비전>등에서 장판파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이 있다. 물
론 조조의 추격군수가 100만이 아니라 5천이란것도 말이다. 그렇다면 정사에
기록된 장판파의 상황을 옮겨 보겠다.

(전략) 조조는 정예 기병 5천명을 이끌고 급히 추격하여 하루 밤낮에 3백여리
를  가서 당양의 장판파까지 추격했다. 유비가 처자식을 버리고 제갈량,장비
조운등 수십기와 달아나자 조조는 백성과 군수물자를 대량 포획했다.(후략)

                                                             - 정사 촉서 선주전 -

(전략) 유비는 조조가 곧바로 도착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처자식을 버린채
달아나며, 장비에게 기병 20명으로 뒤를 차단하도록 했다. (후략)

                                                             - 정사 촉서 장비전 -

(전략) 유비가 조조에게 당양의 장판까지 추격당하여 처자식마저 버리고 달아
났을 때, 조운은 직접 어린 유선을 품에 안고 감부인을 보호하여 모두 난을 모
면했다. (후략)

                                                              - 정사 촉서 조운전 -

위의 기록들을 보기 쉽게 순차적으로 나열해 보도록 하겠다.

1. 조조가 5천 기병으로 당양의 장판까지 추격.
2. 유비가 놀라 처자식을 버리고 측근들과 달아남.
3. 달아날 당시 장비에게 뒤(장판교)를 끊은것 지시.
4. 장비는 장판교에서 조조군을 저지.
5. 조운은 낙오한 아두일행을 찾아서 유비와 합류.
6. 조조는 추격을 포기하고 군수물자, 백성들을 노획.

이것을 다시 정사의 기록들을 위의 순서에 맞게 <선주전><장비전><조운전>
을 합쳐서 하나의 기록으로 재구성하겠다.

     ------------------------------------------------------------

조조가 정예 5천 기병을 이끌고 급히 추격하여 하루 밤낮 3백여리를 가서
당양의 장판에 도착했다. 유비는 조조가 곧바로 도착할것이라는 소문에 놀라
처자식을 버리고 장비에게 20명의 기병으로 뒤를 차단하도록 했다. 이때 조운
은 직접 어린 유선을 품에 안고 감부인을 보호하여 모두 난을 면했다....

     -------------------------------------------------------------

각 전의 기록된 장판파의 내용을 하나로 묶어놓으면 이런식으로 전개가 된다.
즉,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겠지만 유비가 처자식을 버리고 달아난 것은 분
명 장판교를 넘어서서 취했던 행동이다. 즉, 아두 일행은 유비와 함께 장판교를
넘고서 곧바로 헤어지게 된것이다. 후에 장비에게 뒤를 끊으라는 명령을 보면
이미 유비일행이 장판교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를 뒷받침해준다.  

또 각 기록에도 유선일행이 조조군의 포로가 됐었다는 기록이 전무하다. 물론
조조측의 기록도 마찬가지다. 그에 더하여 조운이 조조의 추격군과 교전했
다는 기록도 전혀 언급이 없다. 이로 보아서 조운은 조조의 5천 기병을 돌파하
기는 커녕 조조군의 그림자조차도 본적도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비측의 포로에 관한 기록을 보자.

<선주전>에 기록된 "유비가 처자식을 버리고 제갈량, 장비, 조운등 수십기와 달
아나자 조조는 백성과 군수물자를 대량 포획했다." 이때가 유일하게 포로관
련 기록이고 또 유선이 만약 조조군에게 잡혔다면 이때가 전부가 될것이다.
하지만 이때는 이미 조운이 아두를 찾아 유비일행과 합류한 시점이며 조조는
퇴각하던 시점이기 때문에 절대 아두가 조조군의 포로가 될수 없다. 이에 따라
서 조운 역시 조조군과 교전할 필요도 없는것이다.

그러므로 유선이 조조의 5천 기병에게 포로가 되었는데 이것을 조운이 단기
필마로 달려들어 구출하고 다시 그들을 돌파해서 유비일행에게 귀환했다는
이야기 자체가 연의의 허구이다. 사람들은 단지 조조군이 100만이 아니고 5
천이었다는 숫자에만 관심이 있었지 실제로 조운이 조조군과 교전했는지 여
부에 대해서는 전혀 의심을 하지 않았다. 이것 역시 연의의 폐해이다.    

  결론은 장판파에서 조운의 빛나는 활약은 아두를 찾아 무사귀환한것 이외
에는 조조의 5천 기병 돌파는 모두가 꾸밈이다. 결코 조운은 조조군과의 교전
은 커녕 마주친 적도 없는 것이다. 위의 사실들에 강하게 거부반응을 일으키
는 사람들은 분명 진정한 조운을 좋아한것이 아니라 연의에서 나오는 허구의
산물인 조운의 겉모습과 껍데기만 좋아한것일뿐이다.

실제로 조운을 알고 좋아하는 사람들은 한결같이 이런 이유때문에 좋아한다고
한다.

" 조운의 공적은 관우나 장비, 심지어는 위연에게 조차도 아래다. 하지만 나는
조운의 후덕한 성정과 충성심 그리고 비록 공적은 낮지만 관우,장비,위연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높은 인격이 있다. "

사실 맞는 말이다. 실제 조운은 일군을 이끌고 적을 공격하여 섬멸하는 능력은
검증이 되지 않았다. 이는 그가 평생은 유비의 호위무장으로 있던것으로 알수
있다. 또 많은 전투에서 부장으로 출전하거나 열외가 되었는데 이것도 그가 뛰
어난 지휘력에 의문점을 갖게한다. 하지만 조운은 분명 유난히 성격적인 결함이
많은 촉의 장수들중에서 인격만큼은 으뜸이라고 본다. 또 정사나 계한보신찬에서
'후덕한 인물' 이라 공통된 평가를 한다.



위는 설명의 이해를 돕기위해 당시 장판파에서 각 장수들의 위치를 나타낸
그림입니다.



* 정삼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0-07 15:44)

덧글 4개
 난세간웅 삼국지 6로군.. ㅎㅎㅎ 그리운 게임.. 2003/05/17 09:05 
 강동맹호 ㅎ ㅏ ㅎ ㅏ~! 정말 좋은 글이군요. ㅋㅋ 2003/05/19 04:05 
 강동맹호 그런데 장판파 사건 말고도, 한수에서 든지 2003/05/19 04:05 
 강동맹호 검각에서 든지 조운의 위력은 많이 돋보였는데... 조운을 너무 하등시킨것 같네요. 2003/05/19 0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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