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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인국사론(衆人國士論)2003-01-25 22:12:36
 神醫화타http://1juk.wo.to


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목숨바쳐 자신이 섬기던 군주에게 충성하는 삼국지 등장 영웅들을 보고 감탄한적이 있을 것이다. 군주 입장에서 보면 그러한 수하장수들의 충성이 바로 세(勢)를 강하게 하는 원천이요 귀중한 보물인 것이다. 눈감으면 코베간다는 삭막한 이해관계로 점철된 현대 사회에서 자신을 위해 피해를 감수하는 벗이나 수하들을 얻는다면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 됨이 틀림없다.  
그렇다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타인을 대할 때 타인이 나에게 은혜로써 갚아 이롭게 해주겠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겠는가?
중국 춘추시대 진(晉)의 예양은 일찍이 중인(衆人)과 국사(國士)에 대하여 말한적이 있다.  
예양은 본디 범씨(范氏)와 중행씨(中行氏)를 섬기다가 지백(智伯)이 이들을 멸망시키자 지백을 섬겼던 사람이다. 지백은 예양을 중용하였으며 뒷날 조양자(趙襄子)가 지백을 다시 멸망시키자, 예양은 도망을 가 지백의 두개골로 술그릇을 만들고 말하길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라 하였다. 그 뒤 변성명을 하고 거세를 한 뒤 환관이 되어 조양자의 변소에 숨어들어가 원수를 갚으려다 발칵되었으나 의롭게 여긴 조양자가 풀어주자 온몸에 옻칠을 칠하고 숯덩이를 삼켜 반벙어리가 되어 다리밑에서 조양자를 다시 암살하려하였다. 역시 실패한뒤에 붙잡힌 예양에게 조양자가 "자네는 범씨와 중행씨를 위하여 지백에게 원수를 갚지 않았으면서 어찌 나에게는 지백의 원수를 갚으려 하는가?" 라고 묻자 예양은 "범씨와 중행씨는 나를 중인(衆人)으로 대하였으나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하였기로 그리하였다" 라고 말하고 조양자에게 그의 옷을 얻어 옷에 대신 칼질을 하고 자결하였다고 한다.
또한 논어(論語子路第十三)에서 공자도 "진실로 나를 써주는 자가 있다면..(苟有用我者..)" 라고 말하였으니, 우리가 타인을 국사(國士)와 같이 존중하면 우리는 그만큼 타인의 신뢰를 받을수 있는 것이다.
삼국지에서도 이러한 예를 찾아보기 어렵지 않으니, 삼국지의 인물의 고사에서 좀더 이러한 이치를 살펴보기로 하자.

소패왕이라 불리며 가는곳마다 전승하며 위엄이 높던 손책의 어이없고 허망된 죽음은 삼국지 독자들에게 항상 안타까움을 일으켰다. 바로 이 손책을 죽인 사람은 손책이 죽인 허공의 문객들이다. 오군태수허공은 손책의 야심을 알고 조조에게 보고하려 하였으나 중간에 서신이 손책의 정보망에 걸려들어 손책에게 죽임을 당한 사람이다. 그가 죽은 뒤 손책이 오군을 접수하면서 그의 가족은 뿔뿔이 흩어졌는데 이때 허공의 문객 3명이 허공의 작은아들과 함께 도망쳐 원수를 갚을 기회를 노리다가 손책에게 독화살을 쏘고 창질을 하여 죽음에 이르게 하였던 것이다. 이들은 마침 그곳을 지나던 정보와 그의 군사들에 의해 고깃떡이 되어 죽임을 당했으나, 생전에 입었던 허공의 은혜를 죽음으로 갚은 셈이 된다. 허공이 이들을 어찌 대하였는가는 문헌에 나와있지 않지만 중인국사론에 비추어 볼 때 허공이 이들 세명의 문객을 국사의 예로 대하였음은 보지 않아도 쉽게 참작할 수 있는 일이다.

주유의 뒤를 잇는 오나라의 명재상 노숙의 예에서 중인국사를 또한 찾아볼수가 있다. 손권이 막 군주자리에 올랐을 때 노숙은 소호(巢湖)의 정보(鄭寶)라는 사람에게 의탁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유가 노숙을 만나서 "과거 마원(馬援)은 광무제(光武帝)에게 요즘세상에는 임금이 신하를 잘 가려야 하지만 신하들도 임금을 잘 가려야 한다라고 했는데, 손장군(孫權)이 현명한사람을 가까이하고 재주있는 사람을 우대하여 중용하고 있소" 라고 말해 노숙을 설득시키었다. 이때 노숙은 자신을 알아줄만한, 국사로 대접할만한 군주를 선택한 격이니 과연 노숙은 죽는날까지 국가에 충성을 다하고 손권을 진심으로 보필하였던것이다.

삼국지에서 가장 유명한 고사중의 하나인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주인공 제갈량도 또한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사람이다. 유비는 한 집단의 최고권력자의 신분으로 일개 선비에 불과한 제갈량을 어려움을 무릅쓰고 세 번이나 찾아가(三顧草廬) 제갈량이 진심으로 자신을 따르게 했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죽을 때 뒷일을 제갈량에게 맡기면서 '아들이 능력이 되면 보좌해주고 혹 아들이 모자란다면 그대가 군주로 앉아라'고 하는 대단히 파격적인, 상대방을 지극히 신뢰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부탁을 하여(託孤) 제갈량이 충성과 열의로 촉한을 위해 봉사하게 만들었다. 이 일이야 말로 삼국지에서 중인국사의 가장 대표적인 예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군주가 국사로 대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신이 이를 거부하고 떠난 예가 있으니, 바로 조조와 관우이다. 조조에게 포위되어 토산(土山) 위에서 고립무원(孤立無援)의 형세에서의 관우는 장요의 권유에 못이겨 세가지 조건을 걸고 투항을 한다. 이때 조조는 세가지 조건중 "유비가 있는곳을 안다면 언제든 그를 찾아 떠날 것"에 대해 달갑게 받아들이지 못하였는데 장요는 관우를 진심으로 대한다면 그가 탄복하여 승상의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과연 조조는 관우의 투항을 받아들이고 삼일에 소연(宴:잔치), 오일에 대연을 열어주고 10명의 미녀를 보내었으며 적토마를 보내고 전포(옷)를 지어주었으며 수염보호대를 만들어주고 편장군에 한수정후를 제수해주는 등 진심으로 대하고 국사로 대하였으나 관우는 끝내 유비를 찾아 단기천리(單騎千里)하고 오관참육장(五關斬六將)의 고사를 남기며 떠나갔다.
이경우를 보고서 중인국사의 이치가 통하지 않을 때도 있구나! 라고 말할지 모른다. 허나 조조와 관우는 군신(君臣)관계로서 군주와 국사의 관계였으나 유비와 관우의 관계는 역시 국사로 대해준 군신관계에 의로써 맺은 형제관계와 동고동락하며 생긴 붕우(朋友)관계이니 비교할수 없는 일이며 따라서 중인국사가 통하지 않은바가 아니다.
한편 이렇게 관우를 국사 이상으로 대해준 유비에게, 관우는 역시 죽음으로 보답한다. 유비는 관우에게 형주를 맡겼으며 관우 또한 저버리지 않고 형주를 지키다가 죽었다. 중인국사론이 여기서도 적용되니,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이치는 이와 같은 것이다.

한비자는 자신의 저서(韓非子)에서 "임금이 남을 믿는다는 것은 해로운 일이다. 남을 믿으면 자신이 남에게 눌리게 된다(人主之患在於信人, 信人則制於人 - 備內篇)" 이라 말하고, 신하에게 '모르는척 시험할것(협지:挾智)과 거짓말과 꾀로써 시험할것(도언:倒言) - 內儲設上篇)' 등을 행할것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러나 중인국사(衆人國士)의 이치로 살펴볼 때, 어찌 이러한 번거롭고 남을 믿지 못한채 행해야 하는 일이 필요하겠는가?
가뜩이나 서로가 서로를 신뢰하지 못하고 모두를 적대시하여 경계하는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러한 중인국사론이 더욱더 절실하지는 않을까?



* 정삼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0-07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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