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삼연 :: 동호회


정삼연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아이디, 비밀번호 찾기
 회원가입
자유게시판
 치기 어린 시절에 남겨...
 sbs 야구병법
 EBS 세계견문록 삼국지...
  EBS 세계견문록 아틀...
 정원기 소장와 함께 떠...
공지사항
 중화TV 삼국지 덕후 콘...
 sbs 야구병법
 EBS 세계견문록 삼국지...
  EBS 세계견문록 아틀...
 정원기 소장과 함께 떠...

[RE] 답변입니다.2003-02-25 23:52:30
 천공하후패


1. 관직으로 본 능력.

일반화의 오류. 분명 맞는 말이다. 관직만으로 사람의 능력을 알아본다는 것은 매우 큰 무리수이기때문이다. 그래서 관직으로 능력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전후 사정을 확실히 파악한 이후에 관직에 관련되어 능력을 평해야하는 것이다. 관직은 능력을 검증해주는 매개체이지만 그 상황이 맞지 않는다면 그로 인한 능력의 평은 설득력 없는 가설에 불과하다.

팽성의 상으로 임명된 미방의 경우 역시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미방이 팽성의 상이 되었다고 해서 그가 뛰어난 것이 아니다. 팽성의 지리적인 중요성과 당시 팽성의 역할을 보아 팽성의 상이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며 그 자리에 오른 미방의 능력을 중히 본 것이다.

난세간웅님은 조조가 유비와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미방을 팽성의 상으로 임명했다고 하였는데, 이것은 약간 무리한 추측이다. 당시 유비의 중요한 측근은 관우와 장비, 간옹이다. 난세간웅님의 말대로 유비와의 이해관계를 위해서 미방을 팽성의 상으로 임명했다면 반드시 이들에게도 미방 이상의 대우를 해주어야한다. 하다 못해 동등한 대우라도 해주어야 되는 것이다. 서주에서 얻은 미방보다는 오래전부터 함께 해돈 관우와 장비 그리고 간옹을 대우해주는 쪽이 유비와의 이해관계를 원만히 하기 위한 좀더 나은 조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조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패장이었던 유비를 예주목으로 추대하여 명목을 살려준 다음 관우와 장비에게 중랑장이라는 자리를 주어 유비의 세력이 유지되게 도와주었다. 예주목은 짐작하다 싶이 형식적인 자리이며 중랑장은 그 위치상 중요한 요직이긴 하나 관우와 장비가 조조의 부하가 아니었으므로 그 관직에 맞는 군사력과 행정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미방과는 분명 격이 다른 대우이다.  

팽성은 매우 중요한 땅이다. 과거 초나라의 수도였으며 당시에는 원소의 진영과 마주보는 땅이다. 원소가 조조를 배신했을 때는 군사적 요지가 될 땅인 것이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원소와 조조는 동맹관계였기 때문에 팽성의 군사적인 역할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내정이 더 중요한 시기이기 때문이다. 조조는 서주를 막 얻었기 때문에 그쪽의 인사를 이용하여 내정을 원할히 하려 했다. 태산군의 오현을 나누어 영군을 만든 이후 그 자리를 미축에게 준 조치가 바로 그것이며 진등을 광릉태수로 삼은 것이 그러한 조치 중 하나이다.

미방을 팽성의 상으로 임명한 것은 내정의 안정과 조조세력의 서주입지를 굳건히 하려는 것에 촛점이 마추어저야된다. 그것이 이해관계보다 우선시 되기 때문이다.


2. 관우와 미방 그리고 형주의 신료.

1. 관우의 오만함

관우의 오만함은 형주에서 새로이 얻은 신료들에게 두드러지게 작용한다. 미방 외에 관우와 불화가 있다고 기록되어있는 사인과 학보, 반준 등은 모두 형주의 인사들이기 때문이다.(관우가 노병이라 무시한 황충역시 형주의 인사 중 하나이다.) 장군 사인에 대한 정보가 없기때문에 그에 대한 평을 할 수 없지만 영릉태수 학보와 청렴결백하며 고명한 성격을 지닌 치중종사 반준이 그를 싫어했다는 것을 보면 관우의 성격은 도를 지나친 오만함으로 가득했을 것이다. 이는 분명 그가 패망한 원인 중 하나이며 미방이 그를 배신한 이유중 하나이다.

2. 작전의 과정.

미방과 사인의 항복에 대해서 재미있는 사실은 관우전 외에 그 사실이 기록되어있는 여러 전에는 다른 말이 적혀있다는 것이다.

여몽전에서는 미방과 사인이 여몽의 작전에 속아 항복했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우번전에서는 여몽군이 도착한 이후에 항복을 했다고 하며 육손전에서는 관우가 경계를 하지 않고 있다 여몽군을 파견하여 남군을 정복했다고 한다. 그리고 손권전에서는 여몽군이 공안의 사인을 격파하고 곧장 남군으로 진격하여 미방의 항복을 받아냈다고 한다.

이는 관우전과는 상반된 기록이다. 관우전에는 어디까지나 미방과 사인이 미리 항복을 계획한 이후 사람을 보내 항복을 한 것으로 나와있기 때문이다. 어느 전의 말이 맞는가? 따로 사가를 둔 오의 기록이 더 신빙성있지 않을까?(촉은 역사가를 두지 않았다.) 난 그렇게 생각하고 오의 기록을 따라 가설을 세운 것이다.

난세간웅님과 나의 근거가 다르다. 그러므로 나오는 의견 역시 다르다.

오의 기록에서는 어디까지나 관우가 번성의 포위를 위해서 군사를 돌렸기 때문에 후방을 지원하던 많은 관리들이 항복한 것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평소의 불화도 한몫했다.)

난세간웅님이 보는 미방의 항복과 내가 보는 미방의 항복이 다른 이유. 근거의 차이때문이다.
* 정삼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0-07 15:44)

덧글 16개
 오장군육항 근거를 되짚어 보자면... 손권이 관우를 공격한 결정적인 계기가 관우가 오나라의 식량을 2003/02/26 01:02 
 오장군육항 맘대로 썼기때문이죠..그 이전에 관우는 식량이 모잘랐고..그이전에 미방과 사인이 식량을 2003/02/26 01:02 
 오장군육항 제대로 조달하지 않았고..그것은 그들이 사적인 감정으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지 못한것에서 2003/02/26 01:02 
 오장군육항 비롯된것이죠 항복의 과정이야 어떻든간에 그들의 죄목을 누명이라 할수는 없는겁니다 2003/02/26 01:02 
 오장군육항 흡사 매국노로 유명한 이완용이를 그렇게 미화하자면 얼마든지 할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2003/02/26 01:02 
 오장군육항 안녕을 뒤로하고 나라를 위해 목숨걸고 싸운 독립군이 그걸보면 땅을 치고 한탄하겠지요 2003/02/26 01:02 
 오장군육항 이완용이가 당시 상황에 어쩔수 없이 친일파가 되었다..라는 연구자료가 나온다면 과연 우리는 2003/02/26 01:02 
 오장군육항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2003/02/26 01:02 
 오장군육항 저의 생각은 근본적인 죄목을들어 미방은 유죄! 입니다!! 2003/02/26 01:02 
 오장군육항 쓰다보니 말이 길어졌네..^^ 리플달껄..쩝 ㅡ,.ㅡ 2003/02/26 01:02 
 서량의금마초 미방의 유비무리에서의 위치는 전적으로 미축을 기본에 두고 생각해야 됩니다. 2003/02/26 01:02 
 서량의금마초 미방의 유비무리에서의 위치는 전적으로 미축을 기본에 두고 생각해야 됩니다. 2003/02/26 01:02 
 서량의금마초 워낙 미축이 서주시절의 유비에게 큰 힘이 되었기에 유비는 죽을때까지 미축,미방형제를 크게 2003/02/26 01:02 
 서량의금마초 썼고 미축과 미방이 본래 능력에 넘는 직위를 가지고 있었다고 정사는 전하죠. 2003/02/26 01:02 
 서량의금마초 결코 능력을 존중해서가 아니라 신세를 졌고 오랫동안 전전한 측근이기에..결코 뛰어나다고 볼 2003/02/26 01:02 
 서량의금마초 수 없습니다. 미방의 경우는 더욱.. 2003/02/26 01:02 
Copyright 1999-2022 Zeroboard / skin by green
연구소 소개  |  이용약관  |  개인정보보호정책  |  이메일 무단수집 거부  |  고객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