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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서론(徐庶論) (3)2003-02-17 22:29:42
 천공하후패


5. 서서의 능력

많은 사람들이 연의와 평화에 그려진 서서의 모습을 보고 그가 군무에 밝은 모사(謀士)라 말한다. 그리고 그것은 정설이 되어 서서하면 제갈량과 방통과 비슷하거나 혹은 그보다 약간 아래에 있는 뛰어난 모사라고 평는 상황에까지 이르렀다. 하지만 과연 그가 정말로 모사였을까? 필자는 여기에 강한 의문을 느끼며 또한 이견을 제시하는 바이다.  

모사란 일반적으로 군주가 외정과 내정을 행함에 있어서 군주가 행하는 일을 효율적으로 도와주는 참모(參謀)의 역할하는 사람이다. 이것은 크게 세가지의 형태로 나뉠 수 있는데 하나는 외정에 능한 사람이고, 하나는 내정에 능한 사람이며, 다른 하나는 두 가지 모두에 능한 사람이다. 이 때에는 약간씩 명칭이 달라지나 궁극적인 역할은 같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은 서서를 군사(軍師)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즉 외정에 능한 모사로 그를 본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큰 착각이다. 그가 군사로 보여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연의가 만들어낸 형상일 뿐이며 서서가 지닌 본질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서서의 능력이 어떠한지는 그가 우중랑장, 어사중승에 이르렀다는 기록을 분석해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이 서서의 능력을 알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식적인 자료이니 말이다.

우중랑장은 광록훈(光祿勳)에 속한 직위로서 우서랑(右署郞)을 통솔하는 제 4품의 직위이다. 당시 중랑장은 황제의 숙위를 담당하는 위치에 있었는데 유사시에는 병사들을 통솔하여 적을 막아내는 무관의 역할을 겸임했다. 중랑장은 병학에 밝고 무예에 능한 이들을 중심적으로 뽑았다. 서서가 이러한 관직에 올랐다는 것은 그가 무예에 능하고 병학에 밝은 인재였다는 것을 증명한다. 게다가 중랑장이라는 위치는 사람도 잘 다스려야된다. 중랑장은 낭관들의 장이기 때문이다. 고로 서서는 무예와 병학과 인사에 두루 능력을 발휘했다는 말이 된다.

어사중승은 여덞명의 시어사(侍御史)를 속관으로 둔 어사대의 수뇌이다. 어사중승은 백관들의 위법행위를 적발, 체포, 심문, 처벌 할 수 있는 권한을 지니고 있다. 이는 실로 막강한 권한인 것이다. 청렴결백하고 공명정대해야 함을 물론이요 법학과 내정에 밝아야하는 위치인 것이다. 이런 곳에 서서가 올랐다는 것은 그의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서서가 지니고 있는 능력은 단지 병법에 밝아 군사를 다스리는 것에 그친 것이 아니다. 208년에 창설된 어사중승의 위치에 곧바로 그가 올랐다는 것을 봐도 그의 내정실력은 수준급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단순하게 병법에만 능한 군사가 아니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유비가 그를 중용하지 않았던 사실로 보아도 알 수 있다. 당시 유비에겐 미축과 간옹, 손건과 같은 일류 내정관들이 존재했다. 서서의 이러한 능력이 쓰일 기회가 흔치 않았다는 말이다. 서서의 성향이 이들과 같으니 말이다. 서서가 제갈량과 같이 병법에 뛰어난 능력을 보이지 못했다는 것은 제갈량과 비교하여 유비가 제갈량을 더 중히 썼다는 기록을 보면 알 수 있다. 당시 유비군에 필요했던 것은 제갈량이 지닌 전략이나 전술과 같은 병법가적인 부분 즉 군사적인 부분이니 말이다.

그에 비하여 조조는 그의 능력이 절실히 필요했다. 승상이 되면서 그에게 권력이 집중되기 시작했고 이런 것에 반발하는 무리들을 숙청하고 자신의 권력을 유지시키면서 동시에 세력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서는 서서와 같이 법학에 밝고 내정에 능한 인재가 어사중승과 같은 감찰관의 역할을 맡아주는 것이 효과적이었다. 그래서 조조는 서서를 중용했다. 그리고 그를 우중랑장에 앉히면서 인사의 관리도 더불어 맡곁던 것이다.

서서의 능력은 제갈량과 방통과 같이 병법에 능했던 그런 것이 아니다. 비록 병법가적인 부분에서는 이들에 미치지 못할지 몰라도 뛰어난 법학가적 능력이나 내정관으로서의 자질을 매우 뛰어난 것이었으며 그 자질은 제갈량과 방통을 뛰어넘을 수도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었다. 서서는 여러 재능을 지닌 뛰어난 내정관, 즉 내정에 뛰어난 모사인 것이다.

6. 서서의 인맥

(1) 서서의 출신과 개과천선(改過遷善)

서서는 본래 뒷세계 출신이다. 조직을 위해서 살인도 서슴없이 저지르는 냉철한 사람이 바로 서서이다. '격검'에 뛰어났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는 검에 매우 능했으며 사람들을 위해 원수를 갚았다는 기록으로 보아 조직내에서 행동대장이 아니었나 싶다. 그러나 그런 그도 '사건'이 있은 이후에는 손을 씻고 학문에 몸 담게 된다. 이때부터 그의 인맥은 형성되기 시작하며 동시에 그가 명성을 지니게 되고 그의 능력이 진가를 발휘하게 된다.  

*여기에 기록되어있는 순서는 필자의 편의상 정한 것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2) 첫번째 인맥 석도

서서와 처음으로 인연을 맺은 사람은 석도이다. 그는 같은 영천군 사람으로서 서서가 경학에 심취한 이후 만난 유생(儒生)이다. 석도는 굉장히 뛰어난 인물이다. 당양전쟁에서 형주가 조조의 세력권 안에 든 이후 그는 서서와 함께 위로 임관하여 군수(郡守) 전농교위(典農校尉)를 역임했다. 군수란 승상(丞相)이 파견한 지방행정관으로서 각군의 행정을 담당하는 직책이다. 전농교위란 민둔(民屯)을 관리하는 전관(田官)으로서 당시 위국의 중요한 경제적 군사적 기반이었던 둔전제(屯田制)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 만든 직책이다. 이것으로 보아 그는 정치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행정에 매우 밝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석도는 연의에서 석광원이라는 이름으로 맹건(맹공위)과 함께 나온다. 이들은 제 37회 때 유비가 두번째 방문을 할 때 유비가 제갈량의 집으로 가던 길에 유비와 만난다. 최주평에 비하여 신비스러운 분위기는 떨어지지만 뛰어난 학식을 갖춘 현사(賢士)로 그려졌다. 이들의 역할은 제갈량의 등장에 앞서 제갈량의 능력을 간접적으로 소개하는 것이다. 유유상종(類類相從)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3) 두번째 인맥 맹건

맹건은 서서와 석도가 사마휘의 제자로 들어오면서부터 알게 된 사람이다. 그 역시 매우 뛰어난 자로 문제(文帝 : 조비曹丕) 때 온회를 대신하여 양주자사(凉州刺史)에 오르게 되고 관직이 정동장군(征東將軍)에까지 이른 사람이다. 그가 자사라는 직책과 장군이라는 직책에 오른 것으로 보아 그는 법학에 밝고 병학에 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맹건은 연의에서 맹공위라는 이름으로 석도와 함께 나온다. 자세한 설명은 석도를 설명하면서 했으니 맹건의 설명은 생략한다.  

(4) 세번째 인맥 최주평

최주평(崔州平)은 박릉군(博陵郡)의 사람으로 제갈량전의 주(注)에 인용된 <최씨보(崔氏譜)>에 의하면 그는 후한(後漢) 말의 대신인 최열(崔烈)의 아들이라 한다. 최주평의 아버지 최열은 영제(靈帝) 때 일찍히 태위(太尉)를 지낸 인물로 헌제(獻帝)가 즉위한 이후 위위(衛尉), 성문교위(城門校尉) 등을 역임했다. 초평 3년(192) 동탁(董卓)이 죽음을 당하자 그 부장 이각(李   )과 곽사(郭   ) 등이 장안(長安)을 공격하여 들어와 군사들을 풀어 크게 약탈하였는데, 그는 그 혼전 중에 전사하였다. 최주평은 아버지의 죽음 이후 큰 영향을 받은 듯 하다. 동료인 서서와 석도, 맹건, 제갈량 등이 모두 주인을 찾아 임관하는데 비하여 그는 홀로 은거하여 학문에 전념하니 말이다.

최주평 역시 연의에 나오는 시기는 제  37회이다. 석광원과 맹공위가 두번째 방문 때 만났던 것에 비하여 그는 첫번째 방문에서 유비를 만나며 비중도 석광원과 맹공위보다 크다. 아마도 은둔했던 최주평의 이미지를 적극 이용한 것 같다. 최주평이 나오는 스토리는 이러하다.

『유비가 처음으로 제갈량을 만나러 갔을 때 제갈량이 없어 유비는 헛걸음을 했다. 허탈해하며 돌아가는 길에 유비는 최주평을 만난다. 처음 유비는 최주평이 제갈량인 줄 알고 말을 걸었으나 그는 제갈량의 벗인 최주평이라는 사람이었다. 유비는 그를 기용하려 하나 그는 세상에 뜻이 없다 하며 홀연히 사라졌다.』

최주평 역시 석광원과 맹공위처럼 제갈량을 등장시키기전 제갈량에 대한 소개를 위해서 등장신킨 인물이다. 최주평의 신비하면서도 묘한 이미지는 은둔자의 매력을 물씬 느끼게 하며 박학다식한 그의 학식은 '친구가 저러한데 제갈량은 어떠하겠는가?' 라는 의문을 가지게 한다. 하지만 이는 모두 제갈량의 등장을 극적으로 만들기 위한 소도구에 불과하다.

(5) 네번째 인맥 제갈량

제갈량은 서서가 석도와 함께 형주로 내려와서 만난 사서(史書)상의 첫번째 인물이다. 박학다식하고 유학에 깊은 조예를 지닌 제갈량은 곧 그를 자신의 스승인 사마휘에게 소개하여 그의 밑에서 공부를 하게끔 도와주는 좋은 친구이다. 서서와 제갈량의 인맥은 정사 제갈량전에 나와있는 것이니 굳이 소개하지는 않겠다.

(6) 다섯번째 인맥 사마휘

사마휘는 서서의 스승으로 서서와 같은 영천군 사람이다. 그는 풍부한 인맥을 지니고 있었으며 유학과 경학에 능하고 정치학에 밝은 인물이었다. 세상에 뜻이 없어 은둔의 길을 택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는 은사(隱士)로서 많은 제자들을 길러낸 인물이다. 서서와 사마휘는 스승과 제자 관계이므로 그들의 관계에 대해서 따로 깊은 설명은 하지 않겠다. 서서의 뛰어난 정치적 능력은 아마도 사마휘의 가르침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있을 것이다.  

(7) 여섯번째 인맥 방통과 방덕공

방통(龐統)과 그의 종부인 방덕공(龐德公)은 서서의 스승인 사마휘의 친구이다.
방통이 20세 때 사마휘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사마휘와 방통은 깊은 교분을 맺는다. 방덕공은 오래전부터 사마휘와 함께 형주의 명사로 알여진 사람으로서 사마휘을 '수경(水鏡)'이라 하고, 제갈량을 '와룡(臥龍)', 방통을 '봉추'라 칭한 인물이다. 그는 사람을 구별하는 식견이 있었다.

이 둘과 서서와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사료는 없다. 다만 추측해보건데, 방통과 방덕공은 사마휘의 친구일뿐만 아니라 그의 제자인 제갈량과 사돈인 사람들이다.(방덕공의 아들 방산민龐山民은 제갈량의 자형이다.) 그러므로 사마휘나 사마휘의 제자로 들어오기전 부터 알았던 제갈량을 통해서 이들과 교분을 맺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뿐이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이다.

(8) 일곱번째 인맥 제갈근과 제갈균

제갈근(諸葛瑾)은 제갈량의 형이고 제갈균(諸葛均)은 제갈량의 동생이다. 제갈근에 대해서는 널리알려져 있으니 별다른 설명이 필요없겠으나 손권(孫權)이 칭제한 이후 대장군(大將軍) 좌도호(左都護)에 임명되었도 예주목(豫州牧)의 벼슬을 받았다는 사실엔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그는 손권의 중용을 받았다는 것이니 말이다. 제갈균은 둘째 형인 제갈량을 따라 유비에게 귀순하게 되는데 관직이 장수교위(長水校尉)에까지 이르렀다. 형들과 달리 그는 무예와 병학에 두루 능했다.

이 둘과 서서의 관계는 앞에서 방통과 방덕공과 서서의 관계 처럼 그저 추측일뿐이다. 그들의 관계를 설명해주는 사료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추측이 가능한 이유는 어디까지나 그들이 제갈량의 형제이기때문이며 제갈근이 손권에게 등용되었던 시기가 200년 이후이므로 아직까지는 서서가 만날 시기가 있었다. 그러므로 단지 그들의 관계를 추측을 해본 것일 뿐, 절대 사실은 아니다.


서서의 이러한 인맥은 그가 평생을 사는데 요긴하게 쓰인다. 석도와 맹건은 그와 함께 위로 임관하여 같이 벼슬을 했으니 말이다. 개과천선한 이래 그의 인생에는 꽃이 폈으니 어찌 그의 선택에 찬사를 아니 보낼 수는가.


ㅡ 계속 ㅡ
* 정삼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0-07 15:44)

덧글 1개
 서량의금마초 서서의 인맥중에 또 한명이 있더군요. 상낭.. 2003/02/26 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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