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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일관론(初志一寬論)2002-09-07 00:47:42
 神醫화타


삼국지를 읽다 보면 성공가도를 달리다가도 처음 시작할때 먹었던 마음, 처음 시작할때 가졌던 뜻을 잃고 낙오자로 전락하는 경우를 접하게 된다. 또 반대로 초지일관된 자세로 성공을 하는 경우도 찾을수 있다. 주자의 맹자집주(孟子集註)에서도 이르기를, 『사람이 처음에는 요순과 조금도 다르지 않으나, 뭇사람은 사사로운 욕심에 빠져서 잃었다(人與堯舜初無少異, 但衆人汨於私欲而失之)』라 하였으니 사람이 처음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일(初志一寬)은 참으로 중요한 일이라 하겠다. 지금부터 삼국지를 통해 초지일관의 중요성을 살펴보기로 하자.

삼국지의 배경인 후한 말, 조정이 어지럽고 천하가 위태로워 각지에서 한다하는 영웅들이 일어날때 북방 유주를 차지하고 이름을 날린 ,삼국지의 영웅들 중 가장 먼저 천하에 제후로 자립한 사람은 바로 공손찬이었다. 공손찬은 가문의 후광을 입은 원소나 한왕실의 핏줄을 가진 유비처럼 기반이 될만한 것이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백마의종 이라 불리는 강력한 철기를 바탕으로 북방 이민족을 격파하고 천하에 이름을 올려놓았던 것이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초기의 그와는 달리 그의 말로는 비참하다. 우물안의 개구리마냥 높이 누각을 세우고 그속에서 은거하며 세월만 지세다가 적군의 침입을 받고 처자식을 죽이고 자결하고 마는 것이다. 그는 처음의 패기와 용맹은 잊고 자신이 차지한, 넓다 생각하면 한없이 넓지만 좁다 생각하면 부족한 영토에만 안주하다가 그런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되었다. 즉 초심을 잃어 패망한 대표적 케이스이다.

삼국정립(鼎立)중 하나인 촉의 2대 황제이자 마지막 황제, 유선또한 초심을 잃었다고 볼 수도 있다. 유비는 백제성에서 죽으면서 제갈량, 이엄에게 탁고하였으며 유선 또한 제갈량 등을 신임하며 선정을 폈다. 유선이 제위 초기의 마음가짐을, 제갈량이 승상으로써 보좌했을때의 마음가짐을 유지했다면 말년에 조정은 간신배에 의해 안팍이 차단당하고 백성들은 정부에 대한 신임을 잃고 쳐들어오는 위군에 파죽지세로 당하여 항복하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행히도 유선은 제갈량 사후에 황호 등에게 휘둘리며 국정을 그르쳤던 것이다. 정사 삼국지의 저자 진수 또한 유선을 평하기를 『유선은 현명한 승상에게 정치를 맡겼을 때는 도리를 따르는 군주였지만 환관에게 미혹되었을 때는 우매한 군주였다.』라고 말한것이 이와 같은 맥락이다. 유선, 그 또한 초심을 유지했더라면 선대의 업을 끊는 불운의 황제가 되지 않았을런지도 모른다.

수성의 명수 손권 또한 초심을 유지하지 못한 사람이다. 손권은 아버지 손견, 형 손책에 이어 가업을 유지하고 번성시켜 역시 삼국정립중 하나였던 오의 황제이다. 그는 젊은시절, 널리 재사를 등용하고 선정을 폈으며 강남을 외부세력으로부터 지켜내는 등 뛰어난 업적을 일구어 냈다. 하지만 많은 삼국지 독자들이 손권의 말년에 대해 실망을 금할수 없다고들 한다. '노망이 들은겐가..' 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그는 말년에 밝지 못한 판단으로 태자 손화를 폐위시키고 노왕 손패를 자살하게 하였는데, 진수도 『만년에 이르러서는 더욱 심하여 그는 참언을 듣고 믿어 인성을 멸하는 일을 하여 아들과 손자를 버리고 죽였다. 어찌 자손들에게 평안한 책략을 남기고 신중하게 자손의 안전을 기획한 자라고 말하겠는가? 그 후대가 쇠미하여 결국은 국가를 멸망시키게 되었는데』 라고 했다. 손권, 그는 젊어서의 빛을 말년에 흐리게 하였던 초지일관되지 못한 군주였다.

이들 세명과 달리 초심을 지킴으로써 성공한 사람도 있다. 삼국지 연의의 주인공 유비가 바로 그다.
유비 인생의 대부분은 조조와  관계되어 있다. 때론 동맹을 맺고 때론 그의 부하로 들어가며 때론 그의 최대 라이벌로 머리터지게 싸우기도 했다. 그의 정치철학을 정사 삼국지 촉서 방통전 주석에서 찾아볼수 있는데, 유비가 촉으로 처들어가기전 방통과의 대화중 일부이다.
『현재 나와 불과 물의 관계에 있는 자는 조조입니다. 조조가 엄격하다면 나는 관대하고, 조조가 폭력에 의지한다면 나는 인덕에 의지합니다. 항상 조조와 반대 행동을 한 일은 처음부터 성취되었습니다.』
유비는 처음부터 이러한 정치철학으로 죽을때까지 행동했으며, 한(漢)에 대한 생각, 천하통일의 야심 등을 끝까지 버리지 않아서 돗자리 짜고 팔던 한낫 상인에서 촉한의 황제까지 오르게 되는 것이다. 유비, 그는 초지일관된 자세로 난세를 살아 성공한 대표 케이스이다.

조조 또한 그렇다. 조조는 중원을 손아귀에 넣고 한 헌제를 수중에 넣은 채로 마음대로 조종할수 있었다. 군사력, 경제력, 명분이 다른 어느 국가보다 뛰어났으며 마음만 먹으면 제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처음 뜻을 높은 자리에 올랐을때도 지니고 있었다. 개구리 올챙이적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라고나 할까, 변변한 밑바탕 없는 환관 집안 출신에서 왕이 된 그는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자제하였다. 오의 손권이 제위에 오를 것을 권했을때 그가 한 『그대가 나를 뜨거운 화로 위에 앉히려 하는군』이말이 이를 잘 나타내 주지 않은가? 일본의 학자 나츠호리 쇼우겐이 말했듯이 '조조의 패도가 왕도를 더럽혀서는 아니된다는것을 조조는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는 말에서 조조의 초지일관된 자세를 읽을 수 있을게다.

앞서서 초지일관되지 못한 자로 지목했던 손권이지만, 젊은시절의 그는 초지일관된 자세였다. 그는 아버지나 형이 영토확장에 노력하여 강남을 전부 차지했던 것과는 달리 군주로 있던 내내 수성에만 힘썼다. 군사를 일으켰을때는 방어전이나 영토 내부의 소란을 잠재우기 위한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는 일관되게 수성체계였다. 이것이 비판을 많이 받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손권은 유비, 조조와는 달리 이류 군주로 평가 받기도 하고, 흥미없는 군주로 평가받기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위와 연결하고 때로는 촉과 동맹하는 유연한 외교 정치야 말로 지방정권 오에게는 최고의 정책이었다는 평가는 손권의 초지일관된 수비형 정책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이렇게 초지일관의 중요성은 대단하여, 일신의 성공 실패 여부 뿐만 아니라 가문, 국가의 흥망성쇄가 달려있는 문제이다. 난세를 살아가기 위해선 필요불가결한 조건인 셈이다. 그러나 한가지 주의할것은 융통성 없는 초지일관된 태도이다. 조조는 평소 참모들의 조언에 귀기울여 변화를 꾀하였으며 유비의 명군사 방통 또한 '변화의 시대'의 중요성을 이야기 하였다. 융통성없이 초심만을 고집하다가는 왕윤처럼 제거당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21세기, 전란의 시대였던 삼국지에 버금가는 시대이다. 실패와 성공의 갈림길이 눈앞에 항상 펼쳐져 있고 당장한치 앞을 보기 힘든 이러한 난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초지일관의 중요성은 명심해두어야 할 일이다.

덧글 6개
 神醫화타 눈병 걸린 기념(?)으로 써보았습니다.. 2002/09/07 12:09 
 천공하후패 늘 그랬든 이번에도 너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했구나. 여전히 관념적이야 2002/09/07 02:09 
 천공하후패 나쁜 말은 아니구. ^^ 칭찬이야. 초지일관 형 ㅡㅡㅋ 2002/09/07 02:09 
 난세간웅 그 중 제일 심한 타입이 바로 손권.. 이 오빤 도대체 왜 앙탈이었는질 모르겠다. 2002/09/07 11:09 
 난세간웅 아마 주유가 그때까지 살아있었으면 손권은 분명히 육손처럼 그도 제거했을거야... 쯧쯧. 2002/09/07 11:09 
 백마의종 손권..... 참.... 나중에 보면 진짜 노망든거 같더군요... 2002/09/07 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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