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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주론2001-10-05 22:05:10
 천공하후패


주제 : 주군을 위한 삶을 살아온 초주
참고 : 정사삼국지(김원중 옮김)

▷초주의 성장배경과 과정
▶아버지.. 그리고 어려운 집안환경..

『부친 병은 자가 영시이며 《상서》를 배웠고, 아울러 각종 경전및 도위(신비한 예언서)에도 정통했다. 주나 군에서 그를 초빙했지만 모두 응하지 않았다. 주에서는 그의 집으로 가서 사우종사의 직책을 주었다.』

초병은 세상에 나아가길 시러한 은둔자인지.. 아니면 단순한 재능꾼에 불과했는지 모르지만 그는 벼슬을 거절했다. 주나 군에서 그를 불렀을 정도라면 그가 인재임은 분명하며 또한 명성도 있었을 것이다. 초주는 이런 아버지 밑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초병을 일찍죽는다.  벼슬을 거절하고 살아온 탓에 재산은 있을리 만무하고 초주가 어렸을때 죽었으니 어린 초주는 당연히 어려운 집안환경에서 살게 되었다. 동복 형이있다고 하지만 그 형의 나이를 모르는 이상 그 형이 어린 초주에게 얼만큼의 의지가 될지는 불분명 하다.

원래 일찍 부모를 여읜 어린애들 대부분은 사람에 대한 불신과 약간 삐딱하게 세상을 바라고는 시선과 약간 냉소적인 측면을 으레 가지기 마련이다. 물론 아닌 경우는 허다하나 일반적으로 그렇다는 소리이다.
초주는 어려운 집안 환경에서도 비뚤어 지지 않았다. 그것은 그의 학문적 성향이나 후에 있을 그의 행동을 통해서 나타난다.

▶학문에 심취한 초주.. 그리고 그의 재능..
어려운 집안환경을 잊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단순한 배움의 즐거움을 위해서인가? 초주는 성장한 이후 학문에 푹 빠지게 된다.

『초주는 고서에 묻혀 학문에 정진했고 집은 가난했지만 일찍히 산업에 관한 질문을 한 적이 없었으며, 경전을 통독할 때는 혼연히 홀로 미소를지으며 잠자는 일과 먹는 일을 잊었다.』

이 문장을 봐도 그가 얼마나 학문을 좋아했는지 알 수 있다.(학문을 통해서 혹은 종교를 통해서 자신의 가난한 삶을 극복하려고 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다학에 뜻을 두지 않았다. 자신이 배우고 싶은것을 배우되 완전히 자기것으로 만드는 것.. 그게 그의 학문이다. 그는 도리를 중요시 했고 바른 길을 추구했다. 그의 배움을 보면 잘 알수 있는 부분이다.

『육경을 정심하여 연구했는데, 특히 편지쓰는 일에 탁월했다. 그는 천문에 매우 밝았지만 마음을 두지 않았다. 제자백가의 문장에도 관심이 없었으므로 전부 읽지 않았다.』

육경이라고 하면 유교의 경전들과 공자의 사서를 뜻하는 것으로서 유교의 사상이 담긴 책들이다. 초주가 이 부분에 많은 관심을 두고 배워왔다는 것은 그가 바른 길을 추구하는 자라는 것이다. 천문과 제자백가의 문장등에 관심을 보이지 않은 이유도 바로 이것에 있으리..

초주는 이런 사람이다.

『그의 신장은 8척이나 되었고, 풍모는 소박하였으며, 성격은 진실되고 꾸미지 않았고, 뜻하지 않은 질문에 대답하는 재간은 없었지만 식견을 안에 감추고 있었고 명민한 두뇌의 소유자였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리?

▷초주의 출세과정
▶승상 제갈량과의 만남
초주와 제갈량의 만남에서 작은 이야기가 있다. 초주도 방통과 같은 인물이었을까? 제가량과의 만남에서 그는 수많은 대신들에게 비웃음을 당한다. 행색이 초라하기에 많은 비웃음을 당한 초주가 떠난 뒤에 제갈량이 말하길
"나도 참기 어려웠는데, 하물며 대신들이야.."
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초라한 행색속에 감추어진 재능을 알아챈건가? 초주는 제갈량이 익주목을 겸임하면서 권학종사가 된다.

▶과정
『건흥 연간, 승상 제갈량은 익주목은 겸임하면서 초주를 권학종사로 임명했다.』
『대장군 장완이 익주자사 를 겸임할때 초주는 전학종사로 임명되어 주의 학자들을 총괄했다.』
『유선은 태자로 세워진 후, 초주를 복야로 임명했으며 후에 가령으로 전임시켰다.』
『초주는 후에 중산대부에 임명되었지만 여전히 태자를 모셨다.』
『초주는 이후에 광록태부로 승진하여 구경 다음가는 직위가 됐다.』
『초주가 국가를 보존한 공로가 있어 양성정후로 봉해졌다.』
『초주가 질병으로 일어나지 못하자, 그의 집으로 가서 기도위로 임명했다.』
『초주는 함희6년(269) 가을에 산기상시로 임명되었지만 질병이 심해 임명받지 못하고 겨울이 되자 세상을 떠났다.』

여기저 중요한 것은 초주는 위나라의 벼슬을 대부분 사양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나라측은 초주에게 벼슬받기를 강요하다싶이 떠넘겨 주고 초주를 붙잡아 둘려 했다. 그것은 후에 아들 초동이 위나라에서 벼슬을 하기 꺼린것도 아버지의 기풍을 이어받았기 때문일까..

그리고 초주는 유비가 죽고 난 뒤 활동했던 것으로 보인다. 즉 천문 어쩌고 하는 것은 다 구라라는 소리다.

▷초주의 충성과 사나이 한길
▶초주의 상소문
초주의 학업적 성향이나 사상등을 볼수 있는 것은 아마 그의 수많은 상소문을 통해서 일것이다.

유선이 태자가 되었을때.(여기서 유선은 유선의 아들 유선이다.)
유선이 자주 유람을 나가며 노래부르는 자와 악단을 늘려나가자 초주는 상소를 올려 간언했다.(이때의 유선이 후주인지 아들인지 모르겠다.)요점만 간단히 하여 말하자면, 유선이 방탕해지자 초주는 세조때의 덕행을 들어서.. 덕망을 얻는 자만이 진정한 강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경전의 내용을 들어 그에 대한 근거를 들었으며 덕행을 중요시 했다.(유교의 영향때문이리..) 근검절약을 강조하며 유선을 말렸다.

필자가 보기에 초주는 유교의 가르침 중 하나인 덕행을 가장 중요하게 손곱으며 황제의 길과 촉나라의 상황(상대적인 약소국)에 가장 필요한게 덕망과 덕행이라고 말하고 있다. 초주의 학문은 유교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초주의 학문은 나라를 안정시키기에 더 없이 좋은 그런 학문인 것이다.(유교의 폐단은 후세가 저지른 그릇된 만행이다.)

▶초주의 항복론
이 부분은 필자로서 가장 신중하고 또 가장 확실히 하고 싶은게 바로 초주의 항복론이다. 초주같은 대학자가.. 그리고 촉의 충성스런 신하가 그릇된 항복론의 해석으로(고의적인 픽션일수도 있다. 나관중의 초주묘사) 일구이언의 인물로 평받는게 난 너무 아쉬웠다.

(1)초주는 전쟁에 관해서 무관한 자였다.
그는 주로 촉의 학자와 촉의 내정을 관리하는 자였다. 초주는 전쟁과는 거의 무관한 자라고 봐야된다. 즉 강유의 북벌이나 그 외 여러전쟁을 말렸다는 부분은 모두 허구로 봐야된다는 말이다. 정사의 기록에는 나와있지 않고 또한 초주의 행동을 봐도 그런 부분은 전혀 나올 수 없다.(그는 전쟁을 피해다녔다고 봐야되는게 옳은 것이다.) 하지만 그는 대세를 볼 줄 알았고 파악할 줄 알았다. 그렇기에 그는 유선을 위해서.. 촉을 위해서 항복론을 주장한 것이다.

(2)항복론
초주가 항복론을 주장한 시기와 천하의 대세는 대략 이렇다.
등애가 이미 면죽으로 처들어와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었다. 촉나라의 마지막 무장들은 모두 촉을 막는데 죽었던 것이다.(강유는 마무리에서 말하기로 하겠다) 초주는 최후의 방법으로 항복론을 펼쳤고 유선은 그의 항복론에 의지하여 목숨을 부지 할 수 있었다.

그럼 초주의 항복론을 보도록 하자
『옛날부터 다른 나라에 기탁하고 천자로 있었던 사람은 없었습니다. 지금 만일 오나라로 들어간다면 당연히 신하가 되어 복종해야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정치 큐율에 차이가 없으면 큰나라는 작은 나라를 먹을 수 있는데, 이것은 자연스런 이치입니다. 이로부터 말하자면, 위나라는 오나라를 병탄할 수 있어도, 오나라는 위나라를 병탄할 수 없음이 분명합니다. 똑같이 신하가 된다면 작은 나라의 신하가 되는 것을 어떻게 큰 나라의 신하가 되는 것과 비교하겠습니까? 오가 멸망한 후 다시 치욕을 받는 것이 어찌 한 차례 치욕을 받는 것과 비교하겠습니까? 그리고 만일 남쪽으로 도주한다면, 일찍이 계책을 세운 연후에야 실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지금 강대한 적군은 가까이 접근했고 재화와 멸망이 도래하려고 하니, 소인들의 마음은 할결같이 지킬 수 없습니다. 아마도 남쪽으로 출발할 때에는, 뜻하지 않는 변란이 발생할것 입니다. 어떻게 남쪽으로 가는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어떤자가 의의를 달자

『현재 동오가 아직 위나라로 귀순하지 않고 있으니, 일의 추세는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고, 받아들인 후에는 대우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만일 폐하께서 위나라에 항복하여 위나라에서 토지를 분할하지 않고 폐하를 봉한다면, 저는 직접 경성으로 가서 고대의 도의로써 항복한 군주에 대해서 논쟁 할것입니다.』

라고 했다. 촉의 신하들중 이 의견에 의의를 달거나 반대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상소를 올리기를(줄여 말한다)

『남쪽은 반드시 반란을 하기에 의지할 수 없다. 우린 그들을 무력으로 차지했고 많은 세음을 군사비용썻기때문에 원수가 되었으므로 그들에게 의지 할수 없다.(1천째 이유) 그리고 북쪽의 군대는 이곳만이 목표가 아니기에 남쪽으로 달아나면 그들의 추격을 피할수도 없다.(2번째 이유) 도착하더라도 세력을 유지하기 위해 경비를 늘리면 그 민족들과 마찰이 일어날 수 있으므로 그곳을 얻을 수 없다면 필히 다른 세력과 소모전을 벌여야되고 심하면 모반할 수 있으므로 갈수 없다(3번째이유)』

초주의 항복론은 멸망할 수 밖에 없었던 촉에게 한줄기의 희망이었다. 개죽음이냐.. 삶이냐.. 유선은 선택할 수 밖에 없었고 초주는 삶에 길을 열어준 것이다.(유심이 한 일이라고는 촉이 항복한 후 자살한 수준에 불과하다.)

(3)항복.. 그후
유선이 항복을 하자 초주는 유선을 나몰라라 하지 않았다. 유선이 위나라에서 세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왔고, 유선이 항복한 후 그가 편히 살수 있도록 도왔으며 촉의 백성들이 이주하여 편히살 환경을 제공했다. 그 내용은 정사에 나오는데

『유선이 근심이 없고, 한나라의 백성들이 의지할 곳을 얻은 것은 초주의 계책을 썻기 때문이다.』

초주는 그 이후로 위나라의 벼슬과 영토를 사양해왔지만 대부분은 거절되고 다 받아야만 했다.

▶초주의 논문
구국론(仇國論)
법훈(法訓)
오경론(五經論)
고사고(古史考)
등 100여편


▷초주의 아들들
『조추의 세 아들은 초희, 초현, 초동이다. 작은 아들 초동은 초주의 학업을 매우 좋아하였으며, 또 충성과 질박함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아 효렴으로 천거되었고 석현의 현령, 동궁세마로승진시켜 불렀지만 취임하지 않았다.』

초주의 아들중 초동을 보면 초주의 교육을 살펴볼 수 있다. 초동은 아버지의 학업을 본받고(그만한 가치가 있었을 테니까..) 또 충성과 질박함을 행동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초주가 어렸을적 부터 자신이 배운 유교적 성향이 짙은 학문을 가르켰기 때문이리라.. 그리고 효렴으로 삼았을 정도면 초동이 어떤 인물인지는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초주의 교육은 바른 교육이었다는 것은 바로 초동을 통해 볼수 있는 것이었다.

▷마무리
이 부분에서 난잡하게 적혔던 모든 내용을 압축하여 정리하고 싶다.
내 의견을 정리하여 말하자면

초주는 유교의 사상에 많은 영향을 받은 자로서 그의 학문적 성향이나 그의 사상등에 유교적 성향이 많이 묻어났다. 그의 학문적 명성은 매우 높아 촉나라에서도 많은 지지를 받았던 자였다. 그는 정사에 큰 관여를 하지 않았는데(구경다음 가는 직위에 있었음에도..) 아마도 집안의 성격탓인거 같다.(초병, 초주, 초동.. 모두 벼슬에는 큰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사를 멀리하면서도 때때로 그에게 자문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경전에 근거하여 논리적으로 말해주었고 후진들이 그에게 배움을 청하면 언제든지 그들의 질문 등을 받아주었다. 초주는 이렇게 촉에서 어느정도 위치에 있었던 자였다.
초주는 뛰어난 학자임과 동시에 훌륭한 신하였다. 왕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 왕이 살아남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그것에 있다. 옛날 임진왜란때 임금이 죽지 않은 것은 종묘사직을 보존하면서 또한 백성들에게 상징적인 인물이 바로 왕인것이다. 왕만 살아있다면 언제든 왕을 중심으로 나라를 재건할수 있다. 부흥군들이 왕을 내세우면서 싸운 이유도 바로 그것에 있다. 초주는 유선을 보호해야되었고 이미 무력적 저항을 할수 없었던 촉의 입장에서는 남쪽 혹은 오나라나 위나라에 항복을 해서 살아남아야 했다. 그리고 남쪽와 오나라는 불리함때문에 갈수 없었다. 남은 길을 위나라인데 초주는 자신의 항복론을 주장함으로서 보다 안전하게 유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유선이 굳이 죽기를 청한다면 어쩔수 없었지만 유선은 삶에 의미를 두었다.)그리고 초주는 끝까지 위나라에서 중요한 직위를 사양하면서 위나라에게 자신이 촉을 항복하게 하여 얻은 공로를 치하 받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자신의 나라를 판 대가라는 의미가 있으니까.. 초주는 그만큼 끝까지 충실한 촉의 신하로 남고 싶어했다.
초주는 뛰어난 아버지이기도 하다. 초동을 보면 그의 교육관이 훌륭했다고 할수 있다. 위의 부분에서 충분히 설명했을 듯 하니.. 이쯤에서 그만두고..

그의 다른 모습을 보이자면 그는 천문에 매우 밝았다. 하지만 그 능력을 쓰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능력을 숨겼고 진수가 그에게 물었을때 그는 그져 경전에 근거하여 말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가 말한건 정확히 맞았다. 자신의 죽음도 정확히 예언했다.)

그리고 매우 순박하고 내성적이었던 자 였다. 게다가 사람이 진실되었다. 연의에서는 전혀 이런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강유의 이야기를 잠시 해보자면.. 강유는 그 당시 성도에 병력을 보낼만한 여건이 안되었다. 식량보급이 멀었고 또한 면죽은 성도 바로 위쪽에 있는 현이었다. 검각에서 종회의 군사를 물리치고 면죽의 군사를 물리치기는 사실상 불가능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보충설명을 원하면 언제든지 해주겠다. 성도에서 등애의 공격을 막을 만한 여건은 아무것도 없었다. 등애를 막기 위해 보낸 병사들이 모두 전멸했기 때문이다.(등애가 강유가 병사를 이끌고 올 시간까지 기다릴지 의문이다.)

고로 항복은 살기 위한 유일한 수단인것이다.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초주는 훌륭한 학자이며, 충신이며, 아버지였다는 것이다..

보충은 원한다면 언제든지 해주겠다.

덧글 4개
 서서[원직] 약간 오타가 있군여 찾아보세 2001/10/05 10:10 
 서서[원직] 초동이 초주의 학문을 엄청나게 좋아했군 2001/10/05 10:10 
 티니스 초주의 촉의 아니 위진남북조 시대의 중요한 사학가인데, 그 부분에선 약간 부족한 것 같네요 2001/10/06 08:10 
 티니스 ^^ 2001/10/06 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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