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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조운은 장판파에서 조조군과 싸웠는가? - 2 -2003-05-20 23:39:48
 서량의금마초


과연 조운은 장판파에서 조조군과 싸웠는가? - 2 -


우선, 조운이 장판파에서 조조군과 싸웠는지 밝혀낼 조건이 될 가장 중요한 부분이 과연 유비가 처자식을 버린 시점이 장판교를 넘어 섰느냐? 아니냐? 가 될것이다. 그 문제가 해결이 된다면 조운의 교전 진위여부가 밝혀질 것이다.


1. 조조군과 유비일행과의 거리

유비일행과 조조군과의 거리가 과연 얼마나 차이가 있을까? 조조군과 유비는 다급하게 처자식을 버리고 도망칠 만큼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다. 먼저, 조조군과 유비일행의 행군속도에 대한 정사의 기록을 보자.

" 조조는..(중략).. 추격하여 하루 밤낮에 3백여리를 가서 당양의 장판 파까지 추격했다. "

" (유비는)(전략)...군수물자는 수천대나 되어 하루에 10여리씩 밖에 가지 못했으므로...(후략) "


보는 바와 같이 조조군은 엄청난 추격속도로 유비일행을 뒤 쫓았다. 이런 속도라면 유비가 왠만한 거리를두고 미리 도망치지 않는 한 모두 사로잡힐 정도로 빠른것이다. 장비를 보내 뒤를 끊으라는 명령을 내릴 여유 조차 없이....때문에 유비가 처자식을 버린 이유는 조조가 바로 뒤까지 쫓아온것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도망치는데 속도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조조군은 하루밤낮 300리(평균 하루에 150리)를 움직였다하였고 유비는 하루에 10리를 움직인다고 하였다. 이런 속도라면 얼만큼의 거리가 있다한들 조조에게 추격당하게 된다. 따라서 행군 속도 때문에 처자식을 떼어 놓은것이지 결코 조조군이 바로 뒤에까지 왔을만큼 다급해서가 아니다.

또 조조군과 유비일행의 거리를 대충 가늠케 하는 구절이 또 있다.

"(전략) 유비는 조조가 곧바로 도착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후략)"

위 구절을 보면 실제로 조조군의 추격에 대해서 유비는 실제로 눈으로 보고 알게된것이 아니라 소문을 들어서 알게된것이다. 소문이 나려면 일정한 시간이 걸린다는것은 다 알것이다. 그것을 바꿔 말하면 조조군과 유비일행의 사이에는 소문이 날 정도로 거리가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여기에 더하여 장비가 20여명의 병사로 5천을 막아낼때 어느정도 대비와 방비가 이루어졌다. 연의에서도 보면 장비는 조조군을 막아내기 위해서 계략을 준비했다. 실제로는 다리까지 부수고 나서 조조군을 기다렸다. 20여명으로 다리를 부수려면 상당한 시간이 소비된다.

즉, 계책을 세우고 다리를 끊을 만큼 얼마간의 시간적 거리적인 여유가 있었다는 것을 말해주는것이다. 따라서 조조군과 유비와의 일정한 거리가 있다는것을 있었음을 알수 있다. 그러므로 유비일행이 장판교를 넘어설때까지 얼마간에 거리가 유지되었다.


2. 유비가 처자식을 버린 시점.

이것 또한 조운이 조조군과 만날수 있는지 없는지 밝히는데 상당히 중요한 조건이 되는 부분이다. 과연 유비는 처자식을 떼어놓은때가 언제가 일까? 아래를 살펴보면 유비가 처자식을 버리는 과정과 장비에게 명령한 상황이 동시에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 (전략) 처자식을 버린채 달아나며, 장비에게...(후략)"

' ~~하며 ' 는 다시 쓰면 ' ~~하면서 ' 가 된다. 즉, 처자식을 버린채 달아나는것과 장비에게 명령을 내리는것이 동시에 이루어진 상황이다. 또 처자식을 버리는것과 달아나는것 역시 동시에 이루어지거나 극소한 차이가 나는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유비는 유선일행과 헤이짐과 동시에 장비에게 뒤를 끊을것을 명령했다. 여기서 뒤는 장판교이다. 분명 유비가 유선일행과 헤이지는것과 장비에게 명령하는것은 동시에 이루어지면서 장비가 장판교로 가는것보다 먼저 발생한 행동이므로 분명 유선은 유비와 장판교를 넘어섰다는걸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유선은 장판교를 넘어서서 유비와 헤어지게 된것이다.


3. 유선이 포로가 될 가능성...

" 유비가 처자식을 버리고 제갈량,장비,조운등 수십기와 달아나자, 조조는 백성과 군수물자를 대량 포획했다. "

라고 나온다. 이것은 이미 조운과 장비가 각각의 임무를 마치고 합류하여 달아난것을 말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되돌아온 유선도 포함이 되었다. 다만, 선주전에는 장비의 일과 조운의 일을 세세하게 기록하지 않고 개략적인 서술만 이루어졌다. 즉, " 유비가 처자식을 버리고 제갈량,장비,조운등 수십기와 달아나자.." 에 장비와 조운의 내용이 이미 포함된 상태이며 과정은 생략한채 결과만 하나로 묶어서 서술한것이다.

분명 장비는 조조군을 저지하기전에 유비와 함께 달아난적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위 기록이 초반에 이루어진 상황을 묘사한것이라면 달아나는 사람중에 조조군의 추격 저지를 명령받은 장비는 제외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은것은 이미 모든 상황이 종료된 결과를 기록한것이라는 뜻이다.

또 " 조조가 백성과 군수물자를 포획했다." 는 것은 장비에 의해서 유비군의 추격에 실패하고 돌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를 말하는것이지 결코 유비를 추격하는 도중의 과정을 나타내는것이 아니다. 따라서 조운이 이미 유비에게 귀환한 시점에서 유선이 뒤늦게 추격을 포기하고 되돌아가는 조조군의 포로가 어찌 될 수 있겠는가?

만약, 유선이 조조군의 포로가 되고 이를 조운이 구출했다면 이런 문장배열로 기록이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 유비가 처자식을 버리고 제갈량등과 달아나자, 조조는 백성과 군수물자를 대량 포획했다. 이때 조운은 처자식을 구출하여 돌아왔고 장비는 20여명의 기병으로 뒤를 끊었다. "

각 문장이 이런 배열로 사건의 순서에 맞게 씌여져야 비로소 조운이 아두를 구출한것이 된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다. 그것은 유선이 조조군의 포로가 됐었다는 가능성을 더 나아가서는 조운이 조조군과 교전했다는 가능성이 희박하다는것을 말한다.


4. 조운이 조조군과 조우할 가능성.

장판파에서 조운이 조조군과 교전할 수 없었던 이유는 또 있다.

- 정사 촉서 장비전 - 에 보면...

" 장비는 냇물을 점거하여 교량(장판교)을 끊고 눈을 부릅뜨고 창을 비껴잡으며 말했다...(후략) "

보다시피 장비는 연의에서처럼 다리위에 서 있었던 것이 아니라 장판교를 파손시킨 상태에서 조조군을 맞이 했다. 만약 유선일행이 장판교를 넘지 못한 상황이고 조조군에게 붙잡혔었다면 이미 다리는 끊어졌는데 어찌 조운이 유선에게 갈수가 있고 또 구출해서 되돌아 올수가 있을까?

혹시 조운이 아두를 구출하고 돌아온후에 장비가 다리를 끊었다고 할수도 있겠다. 아니 그랬다고 하자. 분명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조조군의 추격속도는 대단했다. 조운에게 아두를 빼앗겼다고는 하나 추격을 포기한것은 아니다. 분명 추격은 장비를 만나기전까지 이루어졌다. 도망치는 조운과 추격하는 조조군은 거리 차이는 그리 많이 나지 않게 된다. 20여명 남짓으로 조조군이 눈앞에 다가왔는데 다리만 부수고 있겠는가? 따라서 장비가 조운이 돌아온 후에는 다리를 끊을 시간은 커녕 조조군을 저지할 여유조차 없게된다. 따라서 유선일행이 장판교 이전에 헤어졌으며 조조군에 포로가 되었고 이걸 조운이 구출해서 되돌아 왔다는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5. 기록에 대한 의문.

당시는 조조가 직접 군사를 지휘하여 유비를 추격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엄밀히 말하자면 작전에 실패한게 된다. 아무런 전공도 없는 이런 상황에서 아두를 한번이라도 생포했다면 당연히 기록이 될것이다. 더구나 지휘관은 다른사람도 아닌 바로 '조조'였기 때문에 더더욱 기록되는것이 마땅하다. 더욱이 과장하기를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습성상 없는 전공도 만들어 내고 작은 전공도 부풀리는 마당에 엄연히 적장의 처와 자식을 생포했었다면 당연히 기록이 되야 하는데 그것이 없다. 더군다나 유선은 촉의 2대 황제가 되는 인물로 비록 놓쳤지만 생포했다는것은 대단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큰 공적이 기록되지 않았다.


생포하지 못했다 하더라도 했다고 거짓으로 기록해야 될 상황인데도 그러지 않았다. 이것은 전혀 유선 생포 비슷한 상황에 조차도 이르지 못했다는 이야기가 된다.

따라서 유선은 절대 조조군에게 잡힌적도 이것을 조운이 구한적도 없는것이다.


6. 결론

다시 장판교의 당시 정황을 정리한다면...

유비무리는 강릉성을 향해 매우 느린 속도로 퇴각하고 있었다. 조조는 정예 5 천의 경기병을 이끌고 엄청난 속도로 추격을 개시했다. 시간이 지나자 조조군이 추격한다는 소문이 유비에게 전해졌다. 이에 장판교를 넘어선 유비는 걷는(시종들)자와 수레를 끄는자(감,미부인의 수레)들 때문에 더 이상 속도가 나지 않았다. 이런 행군속도로 계속 가다가는 곧 조조군에게 추격당하여 잡힐것이라 생각해서 그들을 놔두고 측근들만 데리고 달아나며 장비에게는 조조군의 추격을 저지케 명령한다. 함께 달아나던 조운은 되돌아와서 헤어졌던 아두를 되찾아 유비와 합류한다. 명령을 받은 장비는 뒤로 되돌아가 장판교에 도착하여 다리를 끊고 적을 막아내고 유비에게 돌아간다.


* 불쌍한 장비

이 글을 쓰게된 것은 장판파에서 최대의 공적을 세운 장비가 너무 불쌍하기 때문에서였지 결코 조운을 깎아내리려고 한것이 절대 아니다. 조운을 폄하고자 글을 썼다면 정사의 구절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공적
과 명성이 없에 대해서 썼을것이다. 나는 다만 성곽에 의지한것도 아니고 구원군도 없이 홀로 20여명으로 5천명을 막아낸 장비의 엄청난 용맹과 공적에도 불구하고 허구중 하나인 조운의 '단기구주아두' 에 너무 묻혀버린것이 안타까웠다. 이것은 학소가 진창성에서 제갈량을 막아낸것, 장료가 합비에서 손권을 무너뜨린것에 비길만한 대단한 공적이다. 하지만 모든것이 조운때문에 잊혀져 버렸다. 장판파에 대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서 알아보고 싶었을뿐이다. 그저 유선이 포로가 되지 않았다는것, 이에 따라서 조운이 조조군과 교전할 이유가 없었던
것을 말한 것이다. 그리고 장판파의 진정한 주인공은 바로 장비라는것을.....  
* 정삼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0-07 15:44)

덧글 7개
 강동맹호 것도 그렇지만.. 역시 조운이나 장비나 목숨을 바쳐가면 충성을 바쳤습니다. 2003/05/26 10:05 
 강동맹호 그들의 공적을 따지는 것 보다는, 백성들을 이끌만한 힘도 없으면서 무모한 짓을 한 유비를 2003/05/26 10:05 
 강동맹호 탓하는게 좋을 듯 하지만.. 역시... 금마초님의 글은 대빵 좋군요..ㅎ 2003/05/26 10:05 
 강동맹호 탓하는게 좋을 듯 하지만..(제 생각임당..^^;;) 역시 장판파의 빛은 장비같습니다... 2003/05/26 10:05 
 한지훈 '단기구주아두'가 허구라.. 옛사람에게 치욕적인 말씀을 하시는군요.. 님혼자 생각하시는것은 좋지만 글을씀으로써 다른이에게 혼란을 준다는생각은 왜 못하시는지 83만 대군을 돌파한 조자룡의 전설이 내려오는 중국에가서 물어보십시오 그런일이 있었는지.. 한사람이 기록한 사서 한구절씩 탐구하면서 아님을 맹렬히 주장하시는 이유는 뭔지.. 진수의 삼국지를 봐도 2004/03/22 07:03 
 한지훈 아두를 구출하고 아문장군으로 승진했으며 강유가 후주에게 조운은 왜 후에 봉하지 않습니까라고 하자 "어렸을때 나를 구해준 은혜를 잊지않고있소.."와 비슷한 말을 했고 정사를 그렇게 집중탐구했으면서 조운전에 "선주가 패하자 조운이 북으로 가버렸다라고 하는자가 있었다 유비는 극을 던지며 소리쳤다 "자룡은 그럴자가 아니다!" 얼마안있어 조운이 도착했다"라고 있는건 왜 안보셨는지.. 확실한 갭이있고 조운이 조조진영으로 뛰쳐들었기에 이런 말이 나오지않았겠습니까 다음부터 글을 쓰실때는 좀더 살펴봐주시길 2004/03/22 07:03 
 스맬리캣 그러게요..글쓰실때는 좀더 살펴봐주시길 바랍니다... 개인의 바람으로 역사를 바꿀수야 없지 않습니까? ^^ 2007/01/2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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