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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본]원소론(袁紹論) - 시대를 타고나지 못한 비운의 영웅.2003-05-11 23:45:48
 천공하후패


원소론(袁紹論) - 시대를 타고나지 못한 비운의 영웅.

프롤로그 : 순조로운 출발.

0. 들어가며.

동탁(董卓) 사후 천하재패 실현의 꿈에 가장 가까웠던 사내 원소.

이 글은 제 3부작으로 이루어진 본격적인 원소론에 들어가기 앞서 원소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해 쓴 글이다. 이 프롤로그는 원소가 군주로 성장하기 전의 모습을 다룬 것이기 때문에 주로 그의 가문과 그가 어떻게 가문의 힘을 이용했는지에 대한 분석이 담겨 있다. 아무쪼록 미흡한 실력으로 쓴 글이지만 좋은 글이 되길 바란다.  


1. 사세삼공의 가문.

사세삼공(四世三公). 사대가 모두 삼공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원소의 가문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이다. 이 단어는 단순히 풀이하면 사대가 삼공을 지냈다는 사실만 담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만 조금만 깊이 파해쳐 보면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이 단어에는 원소의 가문이 지닌 힘의 깊이와 범위가 담겨져 있다. 이제부터 하나씩 그 비밀을 파해쳐 보도록 하자.

(1) 원소의 가문이 지닌 힘의 깊이와 범위.

진수(陳壽)의 <정사(正史)>에서는 그의 가문에 대해서 아래와 같이 말하고 있다

『그의 고조부 원안(袁安)은 한나라 조정의 사도(司徒)를 지냈다. 원안 이후 사대가 모두 삼공(三公)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원씨 집안의 세력은 전국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다. 高祖父安 ?漢司徒 自安以下四世居三公位 由是勢傾天下 - 원소전 -』

이 기록에서 우린 원소의 가문이 사대에 걸쳐 삼공을 지냈다는 것과 전국적으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두가지 사실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 후에 원소가 군주로 급성장 할 수 있는 배경을 마련해준다. 이 두가지 사실을 분석해보자.

첫번째. 원소의 가문이 사대에 걸쳐 삼공을 지냈다는 사실은 원소의 가문이 후한(後漢)의 정치권에 매우 큰 영향력을 지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나라의 정치형태는 관료제가 귀족화된 형태이다. 그렇기에 중앙귀족은 지방호족과 달리 관직을 세습할 수 있었다. 본래 중앙귀족과 지방호족은 본질적으로 아무런 차이점이 없다. 단지 차이점이 있다면 전자는 관직을 독점하여 중앙정치권을 장악하여 문벌을 이루고 다른 존재의 진출을 막는 존재이며 후자는 중앙정치권으로의 진출에 실패하고 지방에 웅거하여 영토와 재력을 키워 중앙정치권으로의 진출을 시도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들의 구별이 꼭 이와 같은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이렇다는 것이다. 원소의 가문은 전자의 경우로 관직을 세습하여 힘을 키운 가문이다. 후한의 정치는 승상(承相)을 두지 않고 삼공을 두는 삼공제이다. 비록 상서령(尙書令)의 출현으로 권한이 축소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국가최고의 관직으로 자리잡고 있는 삼공의 권력은 막대했다. 그렇기에 원소의 가문이 후한내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지닐 수 있었던 것이다.

두번째. 원씨 집안의 세력이 전국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시실은 사대가 삼공을 지내면서 쌓아온 세력이 지닌 힘의 범위가 전국적이었으며 그 깊이가 매우 깊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소의 가문을 지탱하는 세력은 크게 3가지로 분류된다.

첫번째 세력은 문생(門生)이다. 문생은 명망있는 유학자 밑에서 간접적으로 학문을 배운 이를 의미한다. 이와는 반대로 직접적인 가르침을 받은 이를 제자(弟子)라 한다. 한나라 시대에는 유학이 장려되어 사(士) 계급에 있는 사람 중 유학으로 관직을 부여받은 관료의 추천이 있는 사람은 관직에 오를 수 있는 출세의 길이 존재했다. 문벌가문에 속해있는 문생들은 대부분 이런 류의 출세를 위해서 문벌가문에 종속되었다. 문생은 스승으로 모시는 문벌세력의 관료를 위해 재화를 바치고 부역을 하며 군신이나 부자의 예로서 관료를 모셨다. 그리고 세습적인 종속관계로 발전하였다. 이러한 문생의 세력은 문벌가문에 끊이질 않았고 문벌가문은 이들이 지닌 재력과 노동력 그리고 군사력을 적극 이용했다.

두번째 세력은 고리(枯吏)이다. 고리는 추천으로 인해 관직을 부여받은 사람을 추천해준 사람의 고리라 말한다. 주로 문생이나 효렴 등으로 추천된 자들이다. 이들은 중앙정권이나 지방정권에 고루 분포하면서 정치적 권력을 형성하여 문벌세력을 도왔다. 그들은 자신을 추천해 준 문벌세력을 위해 노역을 제공하고 선물을 보내며, 심지어는 생사를 의지하고 환란을 함께 하기도 하였다. 이들 중 지방정권에 진출하여 태수가 되 자들은 그곳에 존재하는 지방호족과 결탁하여 그들의 자제를 효렴으로 추천한 이후 이 세력과 자신이 모시는 문벌세력을 연결하여 새로운 종속관계를 형성하는데 일조했다.

세번째 세력은 우족(右族)이다. 우족은 지방정권에 진출한 고리와 결탁하여 중앙정권으로 진출한 호족을 의미한다. 이들은 세습적으로 군의 연사에 임명되어 점점 지식계층으로 성장한 경우인데 이들이 중앙정권 혹은 지방정권으로 진출하여 중앙귀족에 종속되어나 협조하여 새로운 권력을 얻었다.  

사료적 근거를 보자면.

『시중(侍中) 주비(周毖), 성문교위(城門校尉) 오경(伍瓊), 의랑(議郞) 하옹(何   ) 등은 모두 명망있는 사람으로 동탁에게 신뢰를 받았지만, 은밀하게 원소를 도왔는데, 동탁에게 이렇게 진언했다. "황제를 내쫒는 큰 일은 평범한 사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원소는 대강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두려워 달아난 것이기, 결코 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지금 현상금을 걸어 급히 붙잡으려 하면 반드시 병력에 변화가 생길 것입니다. 원씨 일가는 4대에 은덕을 베풀었으므로 그 식객들과 부하 관리들이 천하에 퍼져 있습니다. 만일 호걸을 규합하여 무리를 모으고, 영웅들이 이것을 기회로 하여 일어선다면, 효산의 동쪽은 공의 손으로 들어올 수 없을 것입니다. 그를 사면하고 어떤 군의 태수로 임명하는 것이 낫습니다. 그렇게 하면 원소는 죄를 용서받아 기뻐할 것이니 걱정이 업게 됩니다." 동탁은 이 말이 옳다고 생각하고, 원소를 발해태수로 임명하고 향향후에 봉했다. 侍中周毖、城門校尉伍瓊、議郞何?等,皆名士也,卓信之,而陰?紹,乃說卓曰:「夫廢立大事,非常人所及。紹不達大體,恐懼故出奔,非有他志也。今購之急,勢必?變。袁氏樹恩四世,門世故吏遍於天下,若收豪傑以聚徒?,英雄因之而起,則山東非公之有也。不如赦之,拜一郡守,則紹喜于免罪,必無患矣。」卓以?然,乃拜紹勃海太守,封??侯 - 원소전 -』

주비와 오경, 하옹 등 역시 이러한 점을 동탁에게 정확히 말하고 있다. 그들이 말하는 식객은 곧 문생을 의미하며 - 이들 중에서는 명망있는 선비들도 존재했다. - 부하 관리는 곧 고리를 말하는 것이다.

원소의 가문은 이렇듯 3가지의 세력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세력을 키웠으며 이 세력은 대를 지날 수록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후한 최고의 문벌가문이 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중앙정권을 비롯하여 지방정권에까지 큰 힘을 미친 명실공히 후한 최고의 가문이었던 것이다.  


(2) 가문의 사람들.

그렇다면 과연 '사세삼공의 영광'을 이룩한 사람들은 누구였을까?

첫번째 인물은 원소의 고조부인 사도 원안이다. 원안은 사세삼공의 영광의 시작을 알린 인물이다. 그는 사공(司空)을 거쳐 사도를 역임했는데 여기서 쌓은 명망과 입지는 사세삼공의 영광의 기초가 되었을 것이라 생각된다. 사공은 국가의 토목건축과 수리공정 등의 일을 관장하는 직위이고 사도는 국가의 토지와 백성을 관장하는 직위로서 국가의 내정적인 면을 총괄하는 직위라 할 수 있다. 원안은 이러한 직위를 역임하면서 정권을 휘어잡은 것이다. 두번째 인물은 원소의 증조부인 사공 원창(袁敞)이다. 부친의 명망과 입지를 이어받아 사공에 오른 그는 순탄한 관직생활을 하다 그 입지를 원탕에게 물려준다. 세번째 인물은 원소의 조부인 태위(太尉) 원탕(袁湯)이다. 선대의 원씨는 모두 내정면에서 활약한 것에 비해 그는 태위라는 최고의 군사장관에 오르면서 원씨 가문의 입지는 매우 넓어지게 되었다. 네번째 인물은 원소의 부친인 사공 원봉(袁逢)이다. 원봉 이후에는 원술이 그 대를 이어받았다.(원소는 원술의 배다른 형제로 첩의 자식이라는 설이 있다. 이 부분은 원술에 대한 설명에서 마저 하기로 하겠다.)

사세삼공의 인물 외에도 '원씨 집안의 영광'에 한 몫한 사람들이 많다.

첫번째 인물은 원소의 숙부인 태부(太傅) 원외(袁   )이다. 태부는 황제의 근신으로서 황제의 선도를 담당했다. 삼사(三師) 중 동한에는 유일하게 태부만이 존재했는데 명학한 실권과 권한은 없지만 황제의 근신이기에 정권에 미치는 영향력은 엄청났다. 후에 동탁이 정권을 잡은 이후 스스로 삼사 중 하나인 태사(太史)를 부활시켜 그 자리에 오른 것도 바로 그 영향력 때문이었다. 원외는 소제(小帝)와 헌제(獻帝)의 태부였는데 이는 동탁정권에서 태부를 맡았던 것을 의미한다. 고로 원외는 동탁정권 안에서도 원씨의 가문의 힘을 유지했던 것이다.  

두번째 인물은 원소의 종형인 산양태수(山陽太守) 원유(袁遺)이다. 원유는 18로 제후 중 하나로 원소와 원술과 함께 군웅으로서 참가한 인물이다. 이 이후의 행적이 자세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원외의 죽음 이후(혹은 그 이전)에 원소의 세력과 합한 것으로 추측한다.

세번째 인물은 정실에서 태어난 원소의 배다른 동생 - 위서의 기록을 인용한다.- 인 원술(袁術)이다. 원술은 하진(何進)정권의 행동대장으로 후에 동탁으로 정권이 교체되자 군웅으로 성장한 인물이다. 그는 '사세삼공의 영광'에 종지부를 찍은 이로서 그의 대에서 '사세삼공의 영광'은 끝이 났다. 비록 황제가 되기는 했지만 그것이 과연 영광이 될 수 있을까? 빛 바랜 영광일 뿐이다.(원술에 대해서 말하기 위해서는 그가 하진 정권에서 어떤 역할을 했고 어떤 위치에 있었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분석과 논의가 있어야한다. 그러나 지금 이 단란에서는 맞지 않으므로 원술과 원소의 사이와 중앙정권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다음 단락에서 설명하기로 하겠다.)


2. 사 계급을 규합했던 원소.

원소는 세상이 난세로 접어들자 우선적으로 자신의 주변부터 정비해나갔다. 그 이윤 자신의 출생과 사 계급의 중요성 때문이었다. 원소는 원봉의 첩에서 태어난 자식으로 정실에서 태어난 자신의 배다른 동생인 원술과는 입지가 달랐다. 원봉이 그를 박하게 대하거나 집안이 그를 외면한 것은 아니었지만 원소는 하진과의 인연으로 인해서 관직에 오르는데 비해 원술은 당시 엘리트 관료들의 승진가도가 그랬듯 효렴의 추천에 의한 낭에서부터 관직에 올랐다. 이는 출발부터 다른 것이었다.

원소는 집안에 존재하는 자신의 입지를 확대시키고 또한 후한정권에 진출하여 살아남기 위해 사 계급을 적극 이용했다. 이러한 원소의 노력은 <정사>에 잘 기록되어있다.

『원소는 풍모가 빼어나고 위엄스런 용모가 있었으며, 지위가 낮은 선비들에게도 허리를 굽혀 존경하였으므로 수많은 선비들이 그에게 귀의했다. 紹有姿貌威容 能折節下士 士多附之 - 원소전 -』

원소는 사 계급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그들을 자신의 세력권으로 규합하려 했다. 사 계급은 자신의 집안을 후한 최고의 가문으로 인정받게 해준 실질적인 원동력이었다. 이는 곧 재력과 권력이 있는 가문의 자제들로서 서민보다 한층 위인 중류계급이다. 그렇기에 원소는 지위가 낮은 선비(사 계급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에게도 허리를 굽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었다.

원소의 노력 덕분에 많은 사 계급의 사람들이 그에게 귀의했고 특히나 다른 가문에 비해서 지위가 낮은 가문의 사람들이 적극 그를 도와 그가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힘을 만들어 주었다. 원소는 여기서 얻어지는 막대한 자금력과 군사력 그리고 노동력으로 후에 동탁과 마찰을 빚은 이후 곧바로 기주로 가 세력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이다.


3. 원소의 승진가도.

원소의 승진가도는 매우 순탄했다. 당시 최고실권자였던 대장군(大將軍) 하진과의 인연으로 시어사(侍御史)가 되고 중군교위(中軍校尉)고 승진한 이후 사례교위(司隷校尉)로서 승진하게 된 것이다. 만약 원소가 하진을 만나지 못했다면 그는 관직으로 진출할 기회를 상실했을 지도 모른다. 불안한 정치적 입지를 가지고 있었던 하진은 사세삼공의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첩의 자식인 원소를 중용하는것이 여러모로 이익이 되었기 때문에 그를 적극 중용하여 사례교위에까지 올렸다. 상부상조인 셈이다. 이 일을 <정사>에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조조는 젊었을 때 그와 교제를 했다. 원소는 대장군 하진과의 인연으로 시어사가 되었으며, 점점 중군교위로 승진하고, 사례교위에 이르렀다. 太祖少與交焉 以大將軍何進侍御史 稍遷中軍校尉 至司隷校尉 - 원소전 -』

그에 비해서 원술은 효렴으로 추천되어 낭중이 된 다음 지방과 중앙의 관직을 역임한 이후 호분중랑장(虎賁中郞將)이 되었다. 정실의 가문에 태어난 그였기에 원소와 대조적으로 일반적인 엘리트 관료의 승진 순서를 밟을 수 있었다. 당시 중랑장은 크게 문관적인 낭과 무관적인 낭으로 구분되는데 그중 호분중랑장은 문관적인 낭으로 세습되는 직위였다.

『그는 효렴으로 추천되어 낭중에 임명되었으며, 중앙과 지방의 관직을 엮임했고, 후에 절충교위와 호분중랑장이 되었다. 孝廉 除郎中 歷職內外 後?折衝校尉 虎賁中郞將 - 원술전 -』

하진은 원씨 가문의 두 자제를 이용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굳혔다. 이렇게 하진과 상부상조하던 원소는 하나의 큰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영제(靈帝)의 사망이다. 하진은 영제의 사망을 기점으로 그동안 뿌리깊게 박혀온 환관세력과의 대결을 시도한다.

환관과의 대결은 곧 기득권을 지니고 있던 세력과의 대결을 의미한다. 하진은 불안한 정치적 기반을 지닌 자로서 자신의 누이외에는 큰 정치적 배경이 없다. 그렇기에 원씨의 가문을 이용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진은 영제의 사망 이후 배경이 사라진 환관들을 숙청하여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공고히 하려했다. 이 점은 원소에게도 마찮가지였다. 비록 사세삼공의 가문의 힘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그 힘이 모두 자신의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하진과 결탁했고 하진의 입지가 바로서야 자신의 입지도 바로섰다.  

하진은 영제의 죽음 이후로 유변(劉辨)을 소제(小帝)로 영립한다. 그리고 이 기세를 이용해서 원소와 함께 환관을 주살할 것을 계획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하진의 정치적 배경인 누이 하태후가 이 계획에 반대했다. 그렇기에 하진은 계획을 실현하지 못했고 원소는 애만 태웠다. 그러다가 환관들이 위험을 감지하고 하진을 살해하고 만다.

하진을 잃음으로서 정치적 배경 중 하나를 상실한 원소는 곧 위기감을 느끼고 곧장 환관을 모두 주살했다. 환관 중에서도 품행이 바르고 자신의 분수를 지킨 자가 있었다고 하나 이에 관여하지 않고 환관이라면 모두 죽였던 것은 원소의 정치적 입지가 그만큼 불안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이 행위 덕분에 원소는 순식간에 후한 정권에 중심세력으로 들어가게 된다. 환관으로서부터 황제를 보호한 공 때문이다. 그러나 하진과 하진의 동생 하묘(何苗)의 군대를 모두 흡수한 동탁에 의해서 이 공의 의미는 무산되고 제 2인자로 밀려나고 만다. 후한의 정치가 동탁을 중심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원소는 소제를 폐위하고 헌제를 왕으로 세우는 동탁과 마찰을 빚게 되는데 이로서 원소는 본격적인 군웅의 길로 접어든 것이다.


4. 원소의 인생 초반부에 대한 평가.

이 부분은 원소가 귀족적 관료에서 독자적인 세력을 구축한 독립적인 군벌세력으로 성장하는 과정이다. 그는 자신의 가문의 힘을 적극 이용해 세력을 이루는 구심점으로 삼았으며 후한내부의 정치적 입지를 이용해서 자신의 대외적 입지를 굳혔다.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원소의 모사들과 무장들은 모두 이 시기에 원소와 함께 궐기한 것이다.

군웅으로서의 면모가 어찌되었건 이 시기의 원소는 매우 패기있고 자신만만하며 일을 순차적으로 진행할 줄 아는 위인이었다. 즉 관료로서 원소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자신의 처세에 능했다는 말이 된다. 우린 다시 한번 그가 관료로 있었을 때의 모습을 재평가해봐야될 것이다.





* 정삼연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03-10-07 15:44)

덧글 1개
 神醫화타 많은것을 새로 알게 되었습니다 2003/05/12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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