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吳나라의 경제력&군사력에 관한【보고】(2)2002-09-15 14:09:04
 당근쥬스


2- 2) 오나라의 경제력

전에 올린, 《吳나라의 경제력&군사력에 관한【보고】(1)》의 1-3) 기병보유설 편을 다루면서 필자는 오나라의 [개마기병] 보유설을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 내용중 두 번째것을 2-2)인 오나라의 경제력 편에서 다루기로 하였는데 그내용은 아래와 같다.

- 둘째로는 말갑옷을 만들 기술과 경제력

* 여기서 유의할점은 기술에 대해서는 앞에서 짧게나마 설명을 하였고, 2-2) 오나라의 경제편에는 어울리지 않으므로, 이것에 대한 설명은 후일로 미루며, 생략하도록 하고 오나라의 대외정책과 경제력을 분석하여 본다.

손자가 지은 [손자병법]에서는 고대전쟁은 " 도양수징승 " 으로 결정된다고 하였는데 여기서 도는 토지의 면적이며, 양은 자원의 양을 뜻합니다. 吳나라 경제의 경우는 자원이나 무역을 통해서 얻어지는데, [三國史記]의 대목이나 [三國志]의 [사섭전]의 구절을 통해 그 (매장된)자원과 오나라 배들의 규모등을 알수 있습니다. ※ 주1)

▷ 사실상 오나라가 보유한 강남지방은 강수량적인 면이나, 지형적으로 농장물이 잘 자랄수 있는곳이고, 형주는 삼국정립기 동안 일시적으로 6백만이 넘는 인구로 기주의 뒤를 이어 차지했던적이 있을정도 입니다. 또한 앞에서 잠시 언급했듯이 교주는 자원의 보고이며, 중원에서는 얻기 힘든 동남아의 신자원들을 얻을수 있는곳이기도 합니다. (거의 군현에 가깝운 반독립 지역이겠지만) 그리고 다음은 오나라의 대외관계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동천왕 10년(236) 봄 2월 오왕 손권이 사자 호위를 보내 화친 (후략)』-【三國史記】
『적오 7년(244) 부남국(미얀마)에서 악인들을 바쳤다.』- 【건강실록】

이를 볼 때 3세기 오나라의 대외활동은 삼국중 가장 활발하고, 그세력이 베트남 하노이를 넘어 미얀마 지역까지 미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보아 추측하건데 오나라의 황제 손권을 가르켜 [수성의 군주]라고 표현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표현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그들의 말대로 손권이 수성을 목적으로 하였다면, 유리한 이점을 차지하기 위한 이런 대외활동과 고구려와의 동맹건등은 사실상 필요가 없을테니 말이죠. ;

『쌀은 남방 오에서 밖에 수확되지 않았다.』-【삼국지 인물사전】

현재는 중국 대부분의 지역에 쌀이 생산되고 있지만, 고대에는 현재처럼 개간기술과 기술이 발달되지 않았었다는 것은 여러논문과 저런 책에서 보입니다. 특히 [오서]에서도 쌀이 났다는 기록이 큰 사건처럼 다뤄지고 있는데 이것은 쌀이 당시 귀중했으며, ※ 주 2) 촉이나 위에서는 오와의 상업적인 교류나 무역으로 얻을 수밖에 밖에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 필자가 어디서 본 자료로는 오나라의 쌀이 상업적인 요소로 큰 부를 축적했다고도 합니다. (이자료는 인용된 자료인지라 신빙성 여부는 불투명합니다. ;) 또한 쌀이 먹여살리는 인구가 밀이나 조에 비해 더많다는 사실과 영양이 차지하는 비율을 볼 때. 오의 상업적의 부축적과 경제수준을 짐작하게 하고 있습니다.

3- 1) 맺음글

우리가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았던 오나라에 대해서 다른 기타 여러 서적을 찾아 연람하였고, 또 많은 것을 필자도 이번을 계기로 알게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필자의 작은 바램은 흔히들 수성의 국가요. 삼국의 변방정도로 생각했던 오나라의 경제력과 무역 그리고 대외관계등에 대해서 이번글을 통해 많이 알았으면 하는 것이며, 이를 통해 앞으로는 좀더 오나라에 대해서 깊은 관심과 애정을 쏟아주었으면 하는것입니다. 실제로도 일본의 홈을 필자가 몇차례 탐방한 결과 일본의 경우 오나라의 팬사이트가 따로 있을정도로 (우리나라에는 위나라의 팬사이트로 대위제국이 있다.) 오나라에 대한 연구와 토론이 많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좀더 나아진(발달된) 삼국지의 토론을 위해서는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바라보았던, 오나라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시각을 달리하여 주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할것이고, 전문적인 연구도 필요할것입니다.

※ 주1) 【조선상고사】왈 『오나라의 배는 도저히 그규모가 고구려와 같이 싸울만한 수준이 아니다.』라는 기록이 있지만 그것은 다른기록은 보이지 않으므로 [야사]취급을 하기에 제외하였다.

※ 주 2) 세계적으로 보면 인도에서는 BC 7,000~5,000년대에, 중국에서는 BC 5,000년경(神農時代)에 벼를 재배하였다고 한다. 한국에는 기원전 2,000년경에 중국으로부터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 쌀이 보급되기 이전에는 잡곡(피 ·기장 ·조 ·보리 ·밀 등)을 주식(主食)으로 하였으나 1천여 년 전, 즉 통일신라시대부터 벼의 생산량이 많아지면서 쌀이 우리 식생활의 커다란 부분을 차지하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였다. 결국 쌀이 들어오면서 분식(粉食) 중심에서 쌀밥 중심의 식생활로 전환하게 되었다. 그 후부터 한국에서 쌀이 차지한 정치적 ·경제적 ·농업기술적 위치는 너무나 뚜렷하다.

쌀은 5∼6세기경까지만 해도 귀족식품으로 인식되었다. 통일신라시대의 주식 유형을 보면 북부는 조, 남부는 보리, 귀족층은 쌀이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오면서 쌀은 물가의 기준이요 봉급의 대상으로 할 정도로 귀중한 존재가 되었다. 쌀의 생산량이 좁쌀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차차 좁쌀보다 많아져 곡류의 대표격이 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온 후부터라고 생각된다. 쌀을 이용하는 방법으로는 옛날부터 낟알로 밥을 지어 일상식품으로 하였고, 분식으로서는 가루를 내어 떡을 만들어 명절이나 제사 때 별식으로 사용하였다.

시간 관계상(또 심한 감기에 걸려서;) 전편에 비해 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래도 좋게 봐주시면 감사드리겠구요 ; 따끔한 지적도 해주세요 ~

덧글 4개
 神醫화타 부남국 등과의 대외활동과 고구려와의 교류 등도 수성의 일환으로 볼수 있지 않을까요..? 2002/09/15 09:09 
 神醫화타 그건 그렇고, 당근쥬스님 실력 대단하시군요^^ 2002/09/15 09:09 
 당근쥬스 칭찬은 감사드립니다만, 아직저는 나이도 어리고 아는것도 적습니다. ;; 2002/09/16 04:09 
 당근쥬스 방통님이었나요 ? 그분의 소개로 왔는데 전 그분보다 나이가 한참 어립니다. 2002/09/16 0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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